나의 아버지
- 감독
- 김희철
- 제작년도
- 2001
영화 < 일월 >(1967)은 소설가 황순원 이 1962년부터 1964년 사이에 발표한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문예영화가 붐을 이룬 1960년대, 이성구 는 < 메밀꽃 필 무렵 >(1967)과 < 장군의 수염 >(1968) 같은 대표작을 발표했다. <일월>은 이성구가 그 시기에 작업했던 작품이다. 영화의 인물과 줄거리는 대체로 원작을 따르고 있으나, 대중영화의 특성상 원작의 인물이 몇몇 빠졌고 후반부의 전개 방식도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런 까닭에 원작의 주제는 영화로 옮겨오면서 어느 정도 변한 게 사실이다. 이 글은 그 부분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건축학과 대학원생인 인철은 스키장에서 만난 미나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이웃으로 함께 자란 다혜가 있다. 다소곳하고 착한 다혜가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철에게 미나의 자리가 점점 커진다. 더욱이 미나는 별장의 설계를 인철에게 맡기면서 그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어느 날 인철이 자기 집안의 선조가 백정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 사실로 인해 그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평론가 김종원 선생의 소개로 < 일월 >을 보았다. 백정이란 신분을 전면으로 다뤘다는 게 흥미를 끌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20분 가까이 지나도록 그런 이야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원을 배경으로 과감한 스키 장면을 배치한 오프닝 크레디트는 혹시 영화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원작에서 인철은 대천 해수욕장에 갔다 미나를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는 해수욕장을 스키장으로 바꾸었다. 아마도 계절상 촬영 스케줄 문제로 배경이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게 효과를 발휘한다. 한국에서 스키가 대중화된 건 수십 년 후다. 그런 시기에 두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스키를 타며 마침내 키스를 나눈다. 한국에서 근대라는 개념은 이상하게 경제적 발전과 연결돼 읽힌다. 그런 탓에 근대가 개인의 영역으로 좁혀지면 개인의 생활 수준을 일컫는 양 받아들여진다. <일월>에서 상류층인 인철과 미나는 근대를 지나 현대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소개된다. 인철의 아버지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고, 다혜의 아버지는 대학의 교수이며, 미나의 아버지는 은행장이다. 그리고 인철은 군수인 큰아들이 장차 정치가로 성장하도록 뒷바라지한다. 지식인을 포함한 상류층이 전체에 포진된 영화 속에, 과거 천민 계급으로 분류된 백정이란 소재를 들이밀면서 영화는 한국에서 근대가 과연 어떤 개념인지 질문한다. 한국에서 사민평등의 포고가 내려진 건 갑오개혁 때다. 다시 60년이 흐른 때, 지식인인 다혜의 아버지가 과거의 잘못된 유산과 선을 긋는 것과 달리, 현실 권력에 가까이 위치한 미나의 아버지가 신분제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사이에 놓인 인철은 고뇌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다혜와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미나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선뜻 다가서지는 못한다. 흥미로운 건, 원작과 영화가 공히 취하는 태도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보통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사회를 비판하는 쪽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주인공을 얽매는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대 이전의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 그 사회를 비판하기란 오히려 쉽다. 그런데 < 일월 >은 철학적 태도로 문제에 접근한다. 원작은 인철의 가족을 중심으로 개별 구성원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를 포괄해서 다룬다. 인철의 아버지 김상진, 어머니 홍 씨, 형 인호, 동생 인주와 인모(영화에서는 인모와 인주를 인주라는 인물로 통합했다)이 구성원인 가족은 기이할 정도로 공동체로 기능하지 않는다. 단지 대화를 나누지 않는 수준을 지나, 그들 각자는 사회가 개인을 소외하는 방식 그대로 상대방을 대한다. 인철과 인주가 오누이로서 가깝기는 하지만 그들의 관계도 점차 변질된다. 클라이맥스에서 인주의 사고가 일어나고, 상진과 인철이 구원을 두고 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원작은 끝이 난다. 영화는 인모뿐만 아니라, 인주와 홍 씨, 그리고 상진의 두 아내, 기생이었던 인주의 어머니 등이 지닌 이력을 이야기에서 제외시켰다. 그 결과, 인물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의 보편성은 영화에서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되었다. 대신 영화는 인철과, 인철의 큰아버지이자 백정인 김본돌의 둘째 아들인 기룡과의 관계에 더 치중하는 편이다. 고독의 긴 터널을 통과하며 살았던 기룡의 삶은 인철에게 피붙이 이상의 것으로 다가온다. 인철의 마지막 대사 “인간이 소외당한 자기 자신을 도로 찾으려면 우선 각자에 주어진 외로움을 참고 견뎌 나가는 데서 시작해야 할 거야” 가 곧 기룡이 예전에 내뱉었던 말의 반복인 건 우연이 아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원작에는 위의 대사 뒤에 몇 마디의 독백이 더 있다는 점이다. 인철은 기룡의 태도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거기에 자신의 태도를 더한다. 그는 속으로 “그 외로움이란 인간과 인간이 격리돼 있는 상태에서만 오는 게 아니지 않는가. 서로 부딪힐 수 있는 데까지 부딪혀본 다음에 처리되어야만 할 문제가 아닌가. 기룡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 라고 외친다. 그런데 영화는 그 부분을 지워버렸다. 제목의 일월 즉,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인 해와 달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해와 달을 나란히 세워 그것이 구성하는 세상 전체를 읽고 싶었던 게 원작이라면, 영화는 개별 인간의 내면적 성숙에 더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보호받으며 천진하게 커야 할 어린이가 고통을 받는다는 설정이 어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항상 대중의 시선을 갈망하면서, 더불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어하는 영화는 종종 어린이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시각화한다. 어린이들은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어른들을 골탕먹일 수도 있고,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의 주인공들처럼 이란이라는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다. 극영화가 아니더라도 제3세계 어린이들의 혹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보여줄 수도 있다. 이렇듯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에서 어린이의 모습은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주제를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금의 한국의 겉모습은 풍요에 가깝다. 물론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심한 빈부격차와 밥을 굶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의 확장 탓에 이런 부분을 상쇄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경로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친 후, 독재를 이어갔던 80년대까지도 이런 복지의 출현은 미미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당시 사회에서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감당할 몫이기도 했다. 1978년에 개봉된 김준식 감독의 < 슬픔은 이제 그만 >은 1977년에 개봉된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의 성공 이후 만들어진 일종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 잔혹사 계열의 대표작이라 할 <엄마 없는 하늘 아래>모티브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 국민(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나( 강수연 )는 희소병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누워 지내는 아버지( 박근형 )와 젖먹이 동생을 키우는 소녀 가장이다. 이제 막 부임해온 담임선생님( 한혜숙 )은 모범생인 미나가 결석이 잦아지는 걸 보면서 미나의 가정형편을 알게 된다. 추운 겨울날 미나는 눈 덮인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가거나, 꽁꽁 언 강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며 먹을 것을 마련한다.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만 병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미나에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펜팔을 했던 한 미국인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나에겐 행복이 찾아온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 그로 인한 어머니의 지독한 노동과 죽음. 그리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린 아이라는 스토리는 1981년 개봉작인 이영수 감독의 < 하늘 나라 엄마 별이 >에 까지 이어지며 전형성을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무능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이라는 설정은 70년대가 되면서 좀 더 두드러진다. 이원세 감독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의 무능을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분열로 설정하면서 비극의 원인을 좀 더 과거에서 찾고 있긴 하지만, 이후의 작품인 <슬픔은 이제 그만>과 <하늘나라 엄마 별이>에서는 아버지의 무능을 노동현장에서 병을 얻어오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직접적으로 당대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70년대라는 급격한 경제개발의 시대에 아버지들은 앞만 보고 달리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이 시기에 자신의 몫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을 이 영화들은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위치가 상당히 중요해진다. 어머니들은 더 이상 남편의 무능 때문에 집을 나가지 않는다. 대신 그녀들은 남편을 제자리로 올려놓기 위해 모진 고생을 감내하다 죽어버린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슬픔은 이제 그만>, <하늘 나라 엄마 별이>에서는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자리를 비워둔다. 그런데 어머니의 부재가 단지 엄마가 없어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비극을 더하는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힘든 삶의 원인이 아버지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라고 관객들이 오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전혀 훼손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딸들이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채우며 효라는 이름으로 희생하고 이러한 효녀 심청의 스토리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옷고름을 적신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모든 비극의 원인으로서의 사회적 모순은 씻겨져 내려가 버린 채, 그것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희생이라는 테마는 한국 현대사에서 낯설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아버지의 회복은 질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파도 결코 죽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가 죽는다. < 엄마 없는 하늘 아래(속) >에서 보듯 어머니의 자리는 항상 누군가로 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아이들이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순혈주의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려도 카타르시스 대신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것은 아마도 당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거스르지 않고 품어 올리려고만 했던 한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준식 감독의 <슬픔은 이제 그만>에서는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화가 개봉된 1978년 당시 기독교와 미국은 그야말로 선진화의 표상이었던 것 같다. 미나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의료진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펜팔친구였던 미국인이 기독교의 중심인 목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미국인 의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라. 또 하나는 198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 씨받이 >로 한국 최초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의 대표적 여배우로 성장하게 되는 강수연 의 어린 시절을 본다는 것이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낭설이 아님을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수연 박근형 한혜숙 감독 김준식 각본 윤삼육 촬영 임진환 1978년 95분 칼라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B0017 ※ DVD로 변환된 매체로 영상도서관 감상이 가능합니다
모든 가족에는 그들만의 비극이 있는 법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가족들 역시 들여다보면 얽히고 설킨 말 못할 사연이 있다. 도대체 이 비극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홍재희 감독의 가족에게 그 원인은 술에 취해 휘두르는 아버지의 폭력인가, 혹은 그 곁에서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평생 묵묵히 견디기만 했던 어머니였을까? 아니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저 멀리 그를 버린 자식들인가. 감독은 이 비극의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마지막 생해였던 2008년에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내온 이메일함을 열어본다. 43통의 이메일들은 아버지가 남긴 자기 생의 기록이었다. 홍성섭. 1938년 5월 25일 황해도 황주군 구락면 출생, 2008일 12월 23일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사망. 평생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으셨던 아버지의 삶은 그가 관통한 한반도의 근현대사 그 자체였다. 1948년 그는 북조선의 인민군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월남한다. 바로 비극의 시작. 이후 그는 평생 북에 남겨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부역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이내 계모 때문에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된다. 1965년 교사였던 어머니와 선을 보고는 단지 서울 여자가 아니고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1964년 한국은 월남전에 파병을 보내게 되었고, 그는 한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홀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는 해외건설 촉진법으로 중동건설붐이 한창이던 사우디로 오일 달러를 벌러 간다.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 곁을, 이 땅을 떠나려 했다. 서독에 광부로 가려했고, 베트남에서는 미국에 가려 했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와선 브라질로, 사우디에서는 호주로 이민을 가고자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의 발을 묶은 것은 바로 반공체제였다. 처남들이 6.25때 보도연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외 출국을 금지 당했고, 소망이었던 이민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좌절한 그는 무력감에 평생 동안 2평짜리 골방에서 술만 마셔댔고, 술에 취한 채 ‘빨갱이’집안을 원망하며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완전히 변했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미쳤다.’ 자기 연민에 빠져 그가 미쳐갔던 건 오로지 그의 잘못이었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왜 그토록 조국을 떠나려 했을까? 지긋지긋한 인민군을 벗어나 남한으로 왔으나 그의 자유는 국가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살았던 그에게 이 나라는, 그 시대는 무엇이었을까? 실향민이자, 반공 시대에 의해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에게 남한은 진정 그의 조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주의와 군사적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아버지란 국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전쟁과 이념대립, 군사정권 시절에 개인의 삶이란 국가의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꿈과 자유 찾아 그가 머물던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이 가족의 비극은 전쟁, 남북의 사상 대립, 그리고 군부독재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의 미시적 생의 기록은 질곡의 근현대사를 직조한 씨줄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도박에 빠져 지내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일자리를 잃고서 절망에 빠져 지내던 그의 삶은 당시 들이닥친 IMF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대를 겪어 보지 못한 우리에게 아버지는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상처 입은 타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거나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연좌제에 묶여 이민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의 딸이자 감독의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미국으로 떠난 그녀는 과연 자신의 바람대로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기이하게도 아들에게 히스테리에 가까운 역정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정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와 오버랩 된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에 보이는 냉담한 반응 속에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포용하려는 대신 그토록 고통을 주었던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난 그녀 역시 여전히 아버지-국가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나의 단순한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그로부터 버림받은 역사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모두 자기 시대의 역사적 부산물이었고, 그들을 혐오하는 우리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해 불가능한 아버지의 모습만큼이나 가족의 비극은 계속 이어질 것 같지만,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역사에 다가서고자 감독이 내민 담담한 용기에 나 역시 당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