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 감독
- 조슈아 로간
- 제작년도
- 1958
- 출연
- 로사노 브라지, 밋지 게이너, 존 커
대한극장 이 영화 상영관으로서는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아쉬움 가득한 회고가 쏟아진다. 과거의 화려했던 극장 건물이 허물어지고 고층 빌딩으로 변신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안녕을 고하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20세기 대한극장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1958년 4월 4일과 1998년 4월 4일 1998년 4월 4일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CGV 강변 이 정식 개관하기 전까지 극장의 규모나 흥행수입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곳이 서울 중구 충무로의 대한극장이었다. 우연인지 한국 극장역사의 필연인지, 대한극장은 최초의 멀티플렉스 개관으로부터 40년 전인 1958년 4월 4일 개관했다. 개관작은 1994년 리메이크해 국내에서도 사랑받았던 < 러브 어페어(Love Affair) >(글렌 고든 카론, 1994)의 원작인 < 잊지 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 >(레오 맥캐리, 1958)이었다. 극장 측은 대지 660평, 연건평 1,432평의 무창(無窓) 5층 건물에 냉난방 장치와 고급 좌석, 최신식 상영 설비 등을 갖춰 외국 극장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건전한 오락과 영화문화를 위하여 많은 기여가 있기를 바란다”라는 위풍당당한 출정 소감을 밝혔다. *주1 하지만 1년도 채 못돼 운영난을 겪게 되면서 1959년 2월 극장의 운영권은 영화 수입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던 세기상사로 넘어갔다. 세기상사는 폴 뉴먼의 대표작 중 하나인 < 상처뿐인 영광(Somebody Up There Likes Me) >(로버트 와이즈, 1956)을 ‘신발족(新發足)’이라는 야심찬 문구를 곁들여 광고하며 대한극장 인수를 알렸다. 한편으로는 입장객에게 피아노와 고급상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마련하고,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내한공연을 올리는 등 새롭게 출발하는 대한극장의 다양한 면모를 알리기도 했다. (좌) <잊지 못할 사랑> 전단 (우) <상처뿐인 영광> 전단 대형극장의 위용을 갖추다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말까지는 국도 , 명보 , 단성사 등을 잇는 후발주자의 느낌이 강했던 대한극장이 본격적으로 대형극장, 흥행극장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국내 최초로 70밀리 초대형 영화를 상영하면서부터였다. 1961년 9월 21일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 남태평양(South Pacific) >(조슈아 로간, 1958)은 영화의 내용과 평가를 넘어 영화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케 하고, 당해 연예계의 주요 뉴스에 꼽히는 등 영화 매체의 큰 변화로서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남태평양> 이후 대한극장이 국내 제일의 대형극장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 영화는 < 벤허(Ben-Hur) >(윌리엄 와일러, 1959)였다. <벤허>는 1962년 2월 1일 대한극장에서 개봉해 10월 8일까지 무려 8개월 동안 장기 상영했고, 10월 9일부터는 세기상사가 소유한 또 다른 개봉관인 세기극장으로 이동해 상영을 이어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의 기록적 흥행과 초대형 영화관람의 경험은 여러 차례에 걸쳐 <벤허>가 재상영될 때마다,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대중을 극장으로 이끄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벤허>가 대한극장에 관한 회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좌) <벤허> 국내 포스터 (우) 1986년 대한극장의 모습 <벤허>와 더불어 < 오클라호마(Oklahoma!) >(프레드 진네만, 1955), < 캉캉(Can-Can) >(월터 랭, 1960), < 왕중왕(King of Kings) >(니콜라스 레이, 1961) 등 70밀리 영화들의 연이은 상영은 대한극장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대형 스크린과 좌석 수 2천이라는 규모, 그 위용에 걸맞은 초대형 영화, 그리고 극장 앞 인산인해를 이룬 관람객의 모습을 삽입한 광고는 1990년대까지 대한극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했다. 이와 같은 대형극장으로서의 위용과 이미지는 1990년대까지 단관극장으로 버티는 힘이 되었다. 1990년대 말 대한극장의 상영⋅배급을 담당했던 임철호 의 구술처럼 영화 한 편이 “터졌다 하면 하루에 만 명인데, 열흘 만에 십만 명이 되” *주2 는 규모를 여전히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화하며 극장 지형과 극장 문화 또한 변화를 겪었지만, 단관극장의 매력과 흥행의 묘미가 남아있었던 20세기 말 충무로의 풍경에 대한극장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70밀리 대형영화와 마무리한 단관극장의 여정 멀티플렉스의 성공적인 안착과 함께 단관극장으로서의 대한극장 또한 마무리에 들어가면서 들고 온 프로그램들은 역시나 70밀리 초대형 영화들이었다. 또다시 재탕이라는 소리도 들었겠지만, 대한극장다운 프로그램 선정이었다. 1998년과 1999년 상영한 <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데이빗 린, 1962), <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데이빗 린, 1966) 등은 여전히 단관극장과 초대형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 단관극장의 마무리가 어땠는지를 둘러보면 비교적 아름다운 행보였다고 할 수 있으려나.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던 단관극장으로서의 대한극장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대한극장도 멀티플렉스로 전환하면서 충무로의 풍경 또한 변했다. 그동안 충무로와 종로, 을지로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극장들을 계속해서 목격했다. 사라진 극장들과 20세기의 대한극장을 기억하면서 꽤 오래전 광화문 네거리의 동화면세점을 국제극장 이라 지칭하시던 택시 기사님이 불현듯 떠올랐다. 구술채록을 하면서 대한극장에서 원로영화인을 뵐 일이 많았는데, 그들과 나는 항상 최첨단의 시설을 갖춘 대한극장에서 만났지만, 그 기사님처럼 우리는 늘 20세기의 대한극장을 떠올리며 약속을 정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해 본다. 어쩌면 나는 대한극장의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상영 전 대기할 변변한 장소도 없어 극장 밖 거리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20세기 후반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천 명이 함께 < 미저리(MISERY) >(롭 라이너, 1990)의 공포를 느끼고, < 라밤바(LA BAMBA) >(루이스 발데스, 1987)의 OST를 소리 없이 따라부르던 그 시절로 말이다. *** 주1. “새영화-잊지 못할 사랑”, 《경향신문》, 1958. 4. 5., 4면. 주2. 채록연구 공영민, 「임철호」, 『2020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60~1990년대 수입외화의 변화 3』, 한국영상자료원, 2020, 153쪽. 공영민(영화사 연구자) l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인 구술사의 채록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경이로움을 안기는 체험이 있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았을 때 시간이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 사진으로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핀란드의 청록색 오로라나 남태평양 어딘가의 투명한 바다를 접한다면 그때와 같은 황홀경에 빠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산다. 압도적인 이미지는 때론 그것만으로 세계를 완성한다.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 붉은 거북 >은 아마도 그와 유사한 체험을 지향하는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우리는 대개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즐긴다. 반면 숫자가 많진 않지만 움직임과 이미지라는 본질에 좀 더 몰두하는 작품들도 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움직임에 집중하는 애니메이터 중 한 사람인 미카엘 두독 데 비트는 이미 여러 차례 대사 없는 단편을 선보이며 평단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2000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아버지와 딸>은 한 편의 영상시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은 충분한 여백과 온화한 조형미, 움직임의 마술을 통해 언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그려’나간다. 미카엘 감독의 스타일은 단순 명확하다. 목소리와 대사를 지우고 확보된 여백을 관객의 상상력과 공감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애니메이션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영상시인 마이클 두독 데 비트의 첫 번째 장편 < 붉은 거북 >은 지브리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단편의 성취엔 미치지 못했고 흥행 면에서는 참패했다. 이유야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만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단편의 뛰어난 영상미학과 시적인 운율도 8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홍보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름을 끌어들인 것도 패착 중 하나인데 명백한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연장에 있는 작품임에도 지브리라는 거대한 기대치가 도리어 이질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타카하타 이사오가 프로듀서를 맡은 걸 제외하면 대부분 프랑스 애니메이터들이 작업을 했으며 수채화 풍이라곤 하지만 CG를 적극 활용한 만큼 지브리의 색감, 질감과는 거리가 있다. < 붉은 거북 >은 놀랄만한 역작이라고 말하기엔 분명 약점이 꽤 많은 작품이다.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시적인 감각이 장편의 호흡으로 거듭나는 걸 기대했지만 새로운 영감보다는 늘어지는 쪽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변명하고 옹호하고 싶다. 단지 미카엘 감독이 추구하는 애니메이션의 방향성, 움직임 조형, 압축과 상징을 통한 표현에 찬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장을 나선 이후로도 가슴 속에 꽤 오래 남는 어떤 것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무인도에 표류하고 번번이 탈출에 실패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섬에 나타난 신비한 여인을 만나 변화를 겪게 되는 이야기 자체는 별다를 것 없다. 아마도 누군가 이 작품의 교훈과 메시지를 묻는다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순환하는 삶의 흐름, 고요함 가운데 빛바래지 않는 삶의 의지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맞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남자의 모습과 그런 남자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펼쳐져는 섬의 영롱한 풍광은 둘 다 아름답다. 대사 한마디 없이 남자의 행동을 원경으로 잡아낸 화면들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자연과 인간, 양쪽 모두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킨다.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나 주제의식은 이미 익숙하고 식상하다. 중요한 건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인데, 말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의 감흥을 그려내는 빼어난 이미지와 음악이야말로 < 붉은 거북 >의 핵심이자 모든 것이다. < 붉은 거북 >은 단 한 장면으로 마음을 뺏기는 순간들로 충만하다. 대나무 숲의 푸른 빛깔, 수면 아래까지 맑게 비치는 드넓은 바닷속 풍경, 해 질 무렵의 구름떼, 적막한 밤하늘 등등 어느 순간 어떤 화면에 마음을 빼앗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나의 부족한 어휘력이 안타까울 만큼 마음을 흔드는 순간과 이미지들로 빼곡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 아니 멈춘 채 계속 머물고 싶은 풍광들. 때론 아름다운 건 그저 아름다운 거로 충분하다. 물론 장편의 이야기와 호흡을 생각하면 마이클 두독 데 비트의 시도가 실패로 기록될 수도 있다. 하지만 80분간 어떤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들어간 극장에서 이야기를 넘어선 이미지를 접했을 때 당신은 또 다른 가능성의 목격자가 될 것이다. <붉은 거북>이 아쉬운 실패가 아닌 의미 있는 도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이유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은 2차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초에 촬영되었고 그해 12월에 개봉되었다. 전쟁 중에 만들어져 전쟁 직후에 공개된 셈이다. 이런 정황은 이 영화가 전쟁 영웅을 미화하는 선전영화일 것이라고 짐작하도록 이끈다. 누구보다 존 포드는 전쟁기록 촬영 팀을 이끌고 자진 입대한 ‘애국자’였고 이 영화 연출을 위해 본국으로 불려 오기 전까지 정보장교로서 태평양, 북아프리카, 노르망디를 누비고 다녔다. 크레딧의 감독 이름도 ‘John Ford Captain U.S.N.R.’(해군 예비역 대위 존 포드)로 되어 있다. 초계 어뢰정 함장인 두 주인공 중 브릭 중위 역을 맡은 배우 로버트 몽고메리는 톱스타 시절에 과감히 입대한 뒤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초계어뢰정 함장 조니 벌킬리(Johnny Bulkeley)의 부관으로 1943년 남태평양 전투에 참여했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구축함 작전장교를 맡았다. (스크린 캐릭터로만 짐작하면 가장 앞장섰을 법한 존 웨인은 의아하게도 입대하지 않았는데, 이 ‘오점’ 때문에 존 포드는 이 영화 촬영 때 존 웨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어 로버트 몽고메리가 뜯어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존 웨인이 입대하지 않은 이유는 가족문제와 계약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요컨대,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은 전쟁 중에 군인들이 만든 전쟁영화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우리의 짐작은 완전히 빗나간다. 수십 대의 전투기까지 동원된 대규모 해전 장면이 두 번 등장하지만 화면에는 종종 회한의 기운이 짙게 번져있고 인물들은 비장하기보다 심드렁하거나 침울하다. 그러고 보면 제목부터 선전영화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들은 소모품이었다’가 아닌가. 그렇다고 반대로 이 영화를 전쟁의 참혹함에 몰두하는 반전영화라고 말하는 건 사태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데이 워 익스펜더블>은, 포드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단일한 해석과 손쉬운 범주화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미묘한 표정과 시적 정감으로 가득하다. 앞서 소개한 두 영화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 도망자 >와 달리, 존 포드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 린지 앤더슨(Lindsay Anderson)과의 인터뷰에서 포드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자신은 ‘명령에 따라’ 만들었을 뿐이고 촬영한 뒤에는 다시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편집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음악도 제작사 간부가 임의대로 넣었다는 것이다. 포드는 인터뷰 한 달 뒤 앤더슨에게 “<익스펜더블>을 봤는데, 당신이 맞았어”라고 전보를 보내긴 했지만, 말년의 특강에서 이 영화를 싫어한다고 다시 말했다. 인터뷰, 특히 비평가와의 인터뷰를 싫어했던 존 포드가 앤더슨에게 진심을 말했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적어도 포드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에 속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앤더슨은 이렇게 썼다. “내켜서 만들었건 그렇지 않건 간에,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을 보면 그 주제가 포드의 마음을 깊이 움직였음이 분명하다.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심원한 사적 체험이 명료하고도 힘 있게 담겨 있다. 입대 권유라는 의도가 처음부터 제작과정에 개입되었다 해도, 결과물은 그것을 초월한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의 가치와 인간적인 반응은 <분노의 포도>의 그것이기도 하다. 사랑과 동지애, 신념에의 헌신, 패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인내의 영혼을 두 영화는 공유한다. 강렬하고 일관된 표현을 통해 이 영화는 걸출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 나도 이 영화를 존 포드의 10베스트에 넣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그 이유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좋은 영화가 좋은 이유를 말하는 건 늘 난감한 일이지만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경우엔 좀 더 까다롭다. 앤더슨의 말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지만 얼마간의 보충설명은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약간의 우회로를 택해보자.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941년 필리핀 마닐라에 주둔 중인 초계어뢰정 함대의 지휘관 브릭 중위(로버트 몽고메리)와 부지휘관 러스티 중위(존 웨인)는 라이벌이자 실전 명령이 떨어지기를 고대하는 전투적 해군 장교다. 그들은 소형 초계정으로 거대한 일본 구축함과 순양함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발휘해왔다. 하지만 일본군은 막강한 화력과 거대 병력으로 필리핀의 각 미군 주둔지를 포위해온다. 미군 사령부는 필리핀 철군을 결정하고, 맥아더 장군은 브릭과 러스티가 이끄는 초계정을 타고 필리핀을 탈출한다. 맥아더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지만, 필리핀에 남은 수만 명의 미군 병사들은 그저 일본군의 진격을 지체시키고 그들의 병력과 무기를 소진케 하는 한시적 용도의 소모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브릭과 러스티는 알고 있다. 두 장교 역시 병사들을 남겨두고 필리핀을 떠나는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 이야기는 전쟁 중에 자원입대 고취라는 목적 아래 메이저 제작사가 만든 전쟁영화에는 전혀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누가 자원해서 소모품이 되려 할 것인가. 자원입대 고취라는 목적이 없었다면 왜 미군은 이 영화에 대대적인 지원을 했을까. 제작사의 기획 의도, 제작과정에 관한 증언과 자료가 별로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앤더슨에게는 극히 부정적으로 말한 포드가 이 영화를 만들 때는 어느 때보다 열성적이었다고 존 웨인은 회고했다. 포드에게 이 영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제작사의 개입으로 그의 의도가 어디선가 훼손된 것일까. 태그 갤러거에 따르면 이 영화의 평판은 좋은 편이었고 흥행성적도 10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린지 앤더슨 외에 이 영화를 포드의 중요한 작품으로 다룬 후대의 비평가도 거의 없다. 말하자면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은 존 포드 영화 중에서도 유달리 기묘하고 애매한 자리에 놓인 영화다. 영화의 내부로 들어가면 애매성은 배가된다.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장면은 맥아더 장군의 쇼트다. 그는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이 아니며 탈출하는 순간에 잠깐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이 장면의 카메라는 맥아더를 신격화한다(#1). 그가 모습을 보이자 병사들의 얼굴에는 경외의 눈빛과 표정이 번져가고 국가만큼 유명한 공화국 찬가(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가 울려 퍼진다(#2, #3). 철없는 한 병사는 그에게 사인을 부탁한다. #1 #2 #3 맥아더의 비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사는 없지만 그의 발언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4은 영화의 시작 장면이고 #5는 마지막 장면이다. 모두 맥아더의 말이며,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실은 그의 명령에 의해 진행된다. 맥아더는 특정 장면의 시각적 표상에서뿐만 아니라 서사의 질서에서도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이라는 영화적 소우주의 보이지 않는 군주다. #4 #5 이런 장면들은 이 영화를 선전영화라고 보는 관점을 지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시에 맥아더의 신격을 은밀히 훼손한다. #1의 다음 장면에서 맥아더를 실은 배가 떠나자 병사들은 그것을 물끄러미 본다(#6). 그리고 떠나는 배를 흘끔흘끔 보며 반대 방향으로 터덜터덜 행진하기 시작한다(#7). 다음 쇼트에서 그들은 소실점을 향해 걸어간다(#8).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죽음 혹은 포로이다. 신적 영웅은 신도를 버리고 삶을 향하며, 그를 떠나보낸 신도는 죽음을 향한다. #6 #7 #8 이 대목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장교 브릭과 러스티를 실은 비행기가 이륙한 직후 장면에 병사들은 역시 소실점을 향해 힘없이 걷고 있다(#9). 비행기 소리를 듣고 그들은 하늘을 바라본다(#10). 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마지막 쇼트가 바로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라는 맥아더의 말이 새겨진 #5이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비행기를 쳐다보던 병사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영웅은 그들을 버렸다. #9 #10 #5 아마도 브릭과 러스티(그리고 맥아더)는 자신의 부하들을 사지에 두고 떠나는 포드의 유일한 영웅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전쟁영웅을 비판하는 반전영화인가. 그렇게 말하는 건 초점이 빗나간 것 같다. 러스티(존 웨인)가 마지막 순간에 비행기에서 내리려 할 때(물론 부하들과 함께하기 위해) 브릭은 “자넨 누굴 위해서 일하고 있나? 자네 자신인가?”라고 말하며 그를 주저앉힌다. 여기서 영웅의 명예율과 국가의 명령은 충돌한다. 스스로 전쟁의 최전선에 나섰던 서부사나이 존 포드는 전쟁 막바지에 만든 이 영화에서 두 계율이 화해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른다. 이 영화의 애매함은 화해할 수 없는 두 계율 앞에 선 영웅의 망설임과 깊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존 포드가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에서 찍은 건 망설임이다. 물론 앞 장에서 살펴본 전전(戰前) 영화들에서도 포드의 주인공들은 확신에 찬 고결한 속인이 아니라, 망설이고 주저하는 범속한 성인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망설임은 인물의 망설임이 아니라 쇼트의 망설임이다. 브릭과 러스티는 전투에 나서고 싶어 안달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포드의 쇼트는 인물의 심리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지배하는 모종의 공기 혹은 보이지 않는 질서의 리듬을 따른다. 무언가가 그들을 멈춰 세우거나 그들의 행위를 지나쳐간다. 그것이 이 영화의 특별한 시적 정취를 빚어낸다. 이 영화의 매혹적인 시정(詩情)은 한두 가지 요소로 환원될 수 없으며, 프레임, 미장센, 인서트 컷, 리듬이 모여 빚어내는 합주의 효과다. 이 영화를 분석자의 태도로 반복해서 볼 때도 어느새 그 합주의 능란함에 홀려 평자의 임무를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심도 화면이다. 나는 포드의 영화를 볼 때마다 종종 동굴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진다. 존 포드는 심도 화면의 대가이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그는 화면의 전경 중경 후경을 동시에 활용했다. 포드는 고전기 감독 가운데 2차원의 화면으로 3차원의 효과를 빚어내는 데 가장 능숙한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심도 화면은 포드의 영화 가운데 가장 공간 중심적이며, 가장 정서적이다. #11 #12 #13 초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11) 은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이미 어둠의 운명 깊숙이 가라앉아있음을 암시한다. 브릭과 러스티가 일본군 폭격기와 맞서 싸우고 돌아오자 그들의 진지는 이미 폐허가 되어있는 장면(#12), 출정을 앞두고 죽음을 앞둔 전우를 문병 온 장면(#13) 역시 깊은 심도로 황량하거나 어둡게 묘사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심도화면은 소실점을 향한 병사들의 수직 혹은 사선방향의 이동 쇼트에서도 등장한다. 그것은 짐작할 수 있듯 죽음을 향한 행진이다.(#14, #15, #9)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에는 포드의 서부극과는 달리 수평 이동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움직임은 소실점을 향한 수직 이동 혹은 사선 이동이다. 인물들은 관객으로부터 멀어져 소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풍기는 깊은 회한의 정서는 이 움직임의 방향과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14 #15 #9 이 영화의 심도화면과 대구를 이루는 것이 인물화 쇼트라고 부르고 싶은 클로즈업이다. 일반적으로 클로즈업은 사건이나 상황이 벌어진 다음의 감정 반응을 드러내는 주관적 쇼트로 사용된다. 하지만 포드는 이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의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기록하듯이 클로즈업을 사용했다(#16, #17, #18, #19). 대부분은 클로즈업 쇼트는 렘브란트 조명을 연상시키듯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때 그곳의 있었던 사람들의 표정을 보듯 이 인물 쇼트들을 마주하게 된다. #16 #17 #18 #19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의 사건의 영화가 아니라, 장소의 영화, 표정의 영화, 나아가 공기의 영화다. 무언가 하나씩 사라져 간다. 진지와 물자와 무기와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혹은 소실점을 향해 차츰 사라져 간다. 마지막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전쟁이라는 사건의 결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포드는 일본군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았고 그들의 공격 장면도 찍지 않았다. 전쟁, 더 정확히 말해 패배한 전투를 이처럼 자연적 소멸과정처럼 묘사하는 다른 전쟁영화를 기억해내기 힘들다. 이 영화가 풍기는 애매함이라는 첫인상은 우리가 이런 영화를 접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데이 워 익스펜더블> 역시 재발견되어야 할 포드의 걸작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러스티와 간호장교의 저녁 식사 직후 장면이다(#20). 다른 손님들이 먼저 자리를 뜬 뒤, 남녀는 지금 문밖을 향해 가만히 앉아있다.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이날 이후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쇼트를 오랫동안 롱테이크라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확인해보니 실제 지속시간은 10초 정도에 불과했다. 좋은 영화에는, 쇼트의 물리적 길이에 관계없이, 앞뒤의 모든 사건을 잊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아득한 순간이 등장한다. 그런 순간을 담고 있는 영화는 다른 어떤 결함들도 사소하게 만든다. < 데이 워 익스펜더블 >에선 이 장면이 바로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