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머리
- 감독
- 김유민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이재은, 김기연, 김형철, 김희옥, 민경진, 김종훈, 박경환, 강태준, 손정섭, 박지환, 박선재, 이정학, 문영일, 전경우, 강정수
<해피엔드> / © ㈜명필름 ***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 ’ 가 진행 중이다. 1919년 < 의리적 구토 >로 시작해 2025년 개봉작까지 8,4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 역사를 ‘영화 제목’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목은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문장(혹은 단어)이지만, 이를 통시적으로 관통해 보면 제목 하나하나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 제목은 한 편의 영화를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가 태어난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는 문장이다. KMDb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두 편의 글을 공유한다. 1970~90년대 ‘저항’의 움직임 을 다룬 문주화 영화평론가에 이어, 이윤종 영화 연구자가 1980년대 한국영화계에 발생한 ‘에로티시즘’ 영화의 붐을 제목에서 읽어낸다. ***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이 최초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등 유럽 모더니즘 감독들과 전후의 일본 신세대 감독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실험적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각적 에로티시즘을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 50년대 중반부터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영화는 물질적 제작 여건이 상당히 열악했던 50년대부터 세계영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갔던 셈이다. 영화의 제목에서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부터이지만, 에로티시즘의 조류는 50년대 중반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영화적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살펴보며 제목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에로티시즘, 세계영화의 문법 앞서 언급했던 1950년대에 등장한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은 윤인자 가 주연을 맡았던 < 운명의 손 >(한형모, 1954)의 한 장면이다. < 쉬리 >(강제규, 1999)와 유사한 내용의 스파이 스릴러물인 <운명의 손>에서 그녀는 북한군 첩보원 역을 맡아 남한의 방첩대원과 사랑에 빠져 그와의 비극적 결전 장면에서 아주 짧은 입맞춤을 나눈다. 공교롭게도 윤인자는 한국영화 최초의 욕조 신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광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에서 그녀는 성악가를 지망하는 고학생으로서 온천장에 여행을 가서 욕조 안에서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고 앉아 있는 장면을 촬영한다. <운명의 손>의 키스 신은 뽀뽀에 가까운 데다 다소 성(聖)스러운 느낌마저 들어 에로틱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를 선정적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며, <그 여자의 일생>의 어깨 노출 장면은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연출이었던 만큼 윤인자는 50년대 최고의 섹시 배우로 등극하게 되었다. <운명의 손> 중 한국영화 최초 키스 신 60년대에는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한 군부 정권의 강력한 검열로 인해 에로티시즘의 표현이 불가능했을 것 같지만, 세계영화의 조류를 따르려는 한국영화계의 강렬한 몸부림으로 인한 것인지, 뒷모습이지만 여성의 누드 장면이 최초로 등장해 감독이 검찰에 기소되고 벌금형이 부과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현목 감독의 1965년작 < 춘몽 >이 그것으로 일본의 실험적 핑크영화인 <백일몽>(다케치 테쓰지, 1964)의 대본을 번안해 일본적인 화면을 유럽 모더니즘, 특히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상징주의가 결합된 무대로 변형해 연출한 것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영상 실험을 중시한 <춘몽>에는 여주인공이 제목처럼 ‘봄의 꿈’을 표현한 추상화와 같은 텅 빈 백화점에서 누드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장면이 뒷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히는데, 여배우는 실상 살색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는 60년대에 상당히 많아서 문예영화의 다수가 지금의 기대치로는 매우 수위가 낮은 정사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승옥 소설가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하는 < 안개 >(김수용, 1967), 오영수와 차범석의 동명소설을 각각 원작으로 하는 < 갯마을 >(김수용, 1965)과 < 산불 >(김수용, 1967), 이어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을 들 수 있다. 정진우 감독의 청춘영화인 < 초우 >(1966)와 < 초연 >(1966)도 유사한 흐름 속에 있었으나, <춘몽>에 이어 검열의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한 비운의 영화는 <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69)였다. D. H. 로렌스의 영국 모더니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서사의 <벽속의 여자>는 성 불구인 남자친구와 혈기왕성한 다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성( 문희 )의 방황을 내세워 박종호 감독이 외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했다. <춘몽>, <벽속의 여자> / © 세기상사(주) 70년대에 접어들면 < 해변의 정사 >(신봉승, 1970, 필름 소실), < 속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70), < 그날밤 생긴 일 >(이영우, 1971), < 벽속의 남자 >(박종호, 1972), < 몸 전체로 사랑을 >(홍파, 1973) 등의 영화 제목이 눈에 띈다. 60년대의 마지막 해에 감독이 불구속 기소되긴 했으나 제법 괜찮은 흥행을 거둔 <벽속의 여자>의 속편과 더불어 유사한 제목의 남성 버전 영화가 제작되고, 다른 영화들도 이 영화처럼 삼각관계를 앞세운 연애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의 영화적 에로티시즘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집약된다. 첫째, 작가주의 감독인 김기영 감독과 하명중 감독이 에로티시즘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을 70년대에 꾸준히 만든 것이 하나이다. 김기영 감독은 1960년작 < 하녀 >에 이어 < 화녀 >(1971), < 충녀 >(1972), < 육체의 약속 >(1975), < 이어도 >(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 수녀 >(1979), < 느미 >(1980)에 이르는 ‘여자’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사회적 욕망과 엮어서 펼쳐냈다. 하길종 은 미국 유학 후 화려하게 데뷔한 만큼 여러 논란(표절이 아님에도 이탈리아 영화 표절론 및 동성애 묘사 논란 등)에 휩싸이기도 했던 < 화분 >(1972)에 이어 < 수절 >(1973)과 < 한네의 승천 >(1977)에서도 다소 높은 수위의 정사 장면을 선보이는 시도를 했다. <육체의 약속>, <한네의 승천> / © ㈜동아수출공사, 동국대학교 둘째,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난과 외압에 의해 성매매업에 종사하게 되는 젊은 여성들의 고난과 불운을 다루는 ‘호스티스 영화’의 등장이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인 < 별들의 고향 >(1974)에 이어 김호선 감독의 < 영자의 전성시대 >(1975)가 젊은 호스티스의 방황과 좌절을 그리며 침체를 겪던 70년대 충무로에 촉촉한 단비와도 같은 대흥행으로 가뭄을 해소시키자 대다수의 감독들이 호스티스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홍파 감독의 <몸 전체로 사랑을>도 여자친구와 호스티스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를 그리고 있고 하길종 감독도 < 속 별들의 고향 >(1978)을 연출했던 것을 감안하면, 호스티스 영화의 시작은 이미 1973년부터 예고되어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마저 허물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중현의 동명 히트곡을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호스티스 영화 < 미인 >(이형표, 1975)을 포함하여, < 여자들만 사는 거리 >(김호선, 1976), < 나는 77번 아가씨 >(박호태, 1978), < 미스양의 모험 >(김응천, 1978), <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8), <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엽, 1979), < 가시를 삼킨 장미 >(정진우, 1979), < 속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9), <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박용준,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 >(김호선, 1979)등이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계보에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 호스티스 영화의 제목들은 여성의 노동과 욕망을 비유와 은유를 거쳐 우회하지 않고 매우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영자의 전성시대>, <미인>, <꽃순이를 아시나요> / © ㈜태흥영화, 김미연 한국적인 ‘에로’가 꽃피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에로티시즘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호스티스에서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확대되며 다양한 장르물 속에서 에로티시즘이 구현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에로방화 [1] 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1982년 초에 개봉한 정인엽 감독의 < 애마부인 >으로, 이 영화의 제목은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프랑스 영화이자 작품성 있는 에로물로 유명한 < 엠마뉴엘 Ⅰ >(쥐스트 자캥, 1974)을 연상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다만 ‘말을 사랑하는 부인’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부에서 문제삼은, ‘애마’의 어감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말 마(馬)’ 자가 삼베를 뜻하는 ‘마(麻)’로 바뀌었다는 슬픈 비화 또한 항상 영화를 따라다닌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애마부인>은 중산층 가정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커리어에만 너무 매진하여 아내와 가정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모던한 주제의 영화다. <애마부인>의 등장 이전부터 < 아낌없이 바쳤는데 >(박호태, 1980), < 화려한 경험 >(이상구, 1980),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진우, 1981), < 색깔있는 여자 >(김성수, 1981),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1981), < 육체의 문 >(이기환, 1981), < 피막 >(이두용, 1981)등의 영화에서 멜로드라마, 시대극, 스릴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급과 삶의 방식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애마부인> / © 최재용 에로방화는 크게 현대극과 사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대극은 <애마부인>을 포함하여 < 사랑의 노예 >(고영남, 1982), < 반노 >(이영실, 1982), < 자유처녀 >(김기영, 1982), < 나비품에서 울었다 >(임권택, 1983),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정지영, 1983), < 김마리라는 부인 >(정인엽, 1983), < 엑스(X) >(하명중, 1983), < 오마담의 외출 >(김수형, 1983),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 < 달빛 멜로디 >(이황림, 1984), < 밤의 열기 속으로 >(장길수, 1985), < 육식동물 >(김기영, 1985), < 장사의 꿈 >(신승수, 1985), < 여왕벌 >(이원세, 1985), < 달빛 사냥꾼 >(신승수, 1986), < 두 여자의 집 >(곽지균, 1987), < 레테의 연가 >(장길수, 1987), < 안개기둥 >(박철수, 1986), < 매춘 >(유진선, 1988), < 성공시대 >(장선우, 1988), < 성야 >(신승수, 1988), < 아메리카 아메리카 >(장길수, 1988), < 그후로도 오랫동안 >(곽지균, 1989), <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송영수, 1989), < 불의 나라 >(장길수, 1989), < 서울무지개 >(김호선, 1989), < 추억의 이름으로 >(유영진, 1989), < 물의 나라 >(유영진, 1990)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이들 현대극은 급속하게 산업화된 한국 사회에서 이전과 달라진 입지를 가진 여성들이 변화된 연애와 결혼, 생계와 직업 세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국적 근대화의 빛과 어둠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극은 <피막>을 포함하여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1984), < 땡볕 >(하명중, 1984), < 내시 >(이두용, 1986), < 변강쇠 >(엄종선, 1986), < 뽕 >(이두용, 1985), < 태 >(하명중, 1986), < 씨받이 >(임권택, 1986), < 사노 >(엄종선, 1987), < 감자 >(변장호, 1987), < 사방지 >(송경식, 1988), < 아다다 >(임권택, 1987), < 업 >(이두용, 1988)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대다수가 칸, 베를린, 베니스는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나 북미권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며 영화사상 거의 최초로 한국영화를 세계 무대에서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에로사극은 전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양반 가부장제에 빗대어 80년대의 신군부 독재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상) <무릎과 무릎 사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 ©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뽕> / © 정지훈,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보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8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 세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째, 에로티시즘을 차용하면서도 80년대보다 더 강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들이 가부장제하에서 겪는 억압과 고통, 저항 등을 그리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김유진, 1990), < 물위를 걷는 여자 >(박철수, 1990), < 수탉 >(신승수, 1990), <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 1990),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1989), < 경마장 가는 길 >(장선우, 1991),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이석기, 1991), <서울, 에비타>(박철수, 1991), < 아그네스를 위하여 >(유영진, 1991), <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길수, 1991), < 그대안의 블루 >(이현승, 1992), < 개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 네온속으로 노을지다 >(이현승, 1995),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오병철, 1995),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1996), < 산부인과 >(박철수, 1997), < 올가미 >(김성홍, 1997), <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강우석, 1998), < 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1998), < 송어 >(박종원, 1999) 등의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둘째, 에로티시즘이 로맨티시즘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로맨틱코미디의 조류가 형성되며 미성년자 관람불가 로코물이 당대에 큰 흥행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 결혼이야기 >(김의석, 1992), < 미스터 맘마 >(강우석, 1992), < 가슴달린 남자 >(신승수, 1993), < 그 여자, 그 남자 >(김의석, 1993), <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유동훈, 1993), < 마누라 죽이기 >(강우석, 1994), < 닥터봉 >(이광훈, 1995), < 고스트 맘마 >(한지승, 1995), < 코르셋 >(정병각, 1996), < 넘버 3 >(송능한, 1997), < 미스터 콘돔 >(양윤호, 1997)등이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 접속 >(장윤현, 1997)과 < 정사 >(이재용, 1998)도 에로물과 로맨스물의 경계를 흩뜨려 놓은 작품들로 당대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들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영화임에도 포르노에 근접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90년대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80년대 <애마부인>의 대흥행 이후 <애마> 시리즈로 나온 영화들을 포함하여 <매춘> 시리즈 및 과일 이름을 딴 < 산딸기 >(김수형, 1982), <뽕>, < 빨간 앵두 >(박호태, 1982) 시리즈가 90년대에도 꾸준히 만들어진다. 80년대에 맨 처음 흥행에 성공했던 이들 영화의 1편은 대중영화의 선에서 만들어졌고 한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작품들이었으나, 90년대까지 이어지는 후속 시리즈들은 소프트포르노에 가까운 성애물로 변질된다. 그리고 80년대 에로방화와는 에로티시즘의 수위가 다른 본격 성인용 대중영화들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흥행에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 성애의 침묵 >(정인엽, 1992),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양병간, 1993), < 아담이 눈뜰때 >(김호선, 1993), < 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선우, 1994),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오일환, 1996), < 모텔 선인장 >(박기용, 1997), < 쁘아종 >(박재호, 1997), < 창(노는계집 창) >(임권택, 1997), < 물위의 하룻밤 >(강정수, 1998), < 실락원 >(장길수, 1998), < 죽이는 이야기 >(여균동, 1997), < 해피엔드 >(정지우, 1999), < 노랑머리 >(김유민, 1999), < 거짓말 >(장선우, 1999)등이 있다. <성애의 침묵>에는 <엠마뉴엘> 시리즈로 유명한 네덜란드 여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아담이 눈뜰 때>, <거짓말>은 외설론에 휩싸였던 장정일의 소설 [2] 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은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의 여성 캐릭터와 정사 장면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많은 논란을 얻기도, 매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해피엔드>, <거짓말> / © ㈜명필름, 신씨네 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은 남성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치중했다는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시각화하고 부각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점차 여성영화로 진화했다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5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 속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억압하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성적·사회적 욕망을 억누르는 피해자로 그려지던 여성들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에 이르러서는 여성 해방에서 더 나아가 개인적 쾌락을 위해 사회적 일탈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욕망의 주체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은 거의 완전히 소멸되기 시작하여 2020년대에는 로맨스와 멜로드라마마저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로맨스와 멜로드라마가 부재하다는 것은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성의 연애와 결혼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면 여성이 영화 속에 등장할 자리조차 없다는 2020년대 중반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 [1] ‘에로방화’는 비디오 출시 전용의 소프트포르노 영화인 에로비디오와 이 시대 35mm 극장 개봉용 영화를 구분하기 위해 필자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에로’라는 단어 때문에 편견이 생기기 쉽지만, 당대에는 에로라는 표현이 항상 사용되던 것이고, 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 불렀기 때문에 이 역사적 용어를 소환해 당대에 극장에서 개봉한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대중영화를 ‘에로방화’라 지칭하기로 한다. [2] 앞선 3편의 영화는 장정일의 동명소설을, 영화 <거짓말>은 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를 원작으로 한다. 이윤종(영화 연구자) l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연구에 이어 1980년대 이후 한국 스릴러 장르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활동. 저서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198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진보적 양면성』(영화진흥위원회, 2024), 논문으로 「젠더와 계급 갈등 위에 교차된 인종화: <버닝>의 벤 캐릭터에 대한 재고찰」(아시아영화연구, 2023) 및 「한국영화의 은자적 코스모폴리타니즘: 배창호의 <적도의 꽃>을 중심으로」(2024) 등 집필.
2002년 | 두사부필름, 필름지 감독, 각본: 윤제균 | 제작: 윤제균 이효승 조윤호 | 촬영: 김용철 | 미술: 구진오 | 음악: 박영철 김형중 CAST 은식: 임창정 | 은효: 하지원 | 성국: 최성국 | 유미: 유채영 | 상욱: 정민 | 지원: 진재영 | 경주: 신이 | 현희: 함소원 ‘섹스 코미디’는 한국영화가 취약한 장르입니다. 심의와 검열이 긴 시간 동안 영화적 상상력을 억제했던 게 큰 이유죠. 1980년대 사극 에로나, 1990년대 몇몇 시리즈가 섹스와 코미디를 결합하려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 색즉시공 >(2002)은 이 장르의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입니다.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남녀들의 호르몬 왕성한 이야기. 추하거나 노골적이지 않고 사실적이면서 야한 영화. 바로 <색즉시공>입니다. 2001년 8월, <색즉시공>은 영화의 컨셉트에 맞게 수영장 신을 공개했습니다. 촬영 장소는 지금은 문을 닫은 드림랜드 수영장. 야외 촬영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물까지 있어서 촬영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사실 영화 촬영 현장 공개를 수영장에서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죠. 그런 만큼 취재진의 열기가 매우 뜨거웠는데요, 하지원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만 적어도 10대는 넘었습니다. 교양 체육 수업을 위해 수영장에 집합한 차력부 남학생들. 이때 에어로빅부의 여학생들을 발견합니다. 남학생들은 어설프게 자른 수박을 들고 다가가는데… 이때 은식(임창정)은 짝사랑하는 은효(하지원)의 수영복 차림 앞에서 움찔합니다. 여대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최고의 킹카 함상욱(정민). 그리고 퀸카인 김지원(진재영). 그들의 등장은 이 신에 묘한 텐션을 만들어냅니다. 은효의 에어로빅부 친구들. 그들은 함상욱과 김지원을 바라보며 선망과 질투의 눈빛을 보냅니다. 현희 역의 함소원은 미스코리아 출신, 경주 역의 신이는 < 노랑머리2 >( 김유민 , 2001)에서 하리수 와 공연하며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윤경 역의 윤시후는 CF 모델 출신. 대부분 신인급 배우들입니다. 파란색 비키니의 하지원은 이때까지만 해도 호러 퀸 이미지가 강했죠. <색즉시공>을 통해 확실한 이미지 변신을 한 셈입니다. “은효는 말이 전혀 없다가도 갑자기 엉뚱한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애인지 잘 모르겠어요”라며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합니다. 안쓰러운 눈빛의 은식. 이날 임창정이 준비한 의상은 모두 평상시 그가 입던 옷들이었다고 합니다. 첫 영화 < 두사부일체 >(2001)로 빅 히트를 기록했던 윤제균 감독.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을 토대로 <색즉시공>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임창정은 <두사부일체>의 카메오 출연으로 윤제균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색즉시공>에선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촬영 전부터 숱한 술자리로 호흡을 맞추며 작품을 준비했는데요, 윤제균 감독은 임창정을 모델로 은식이라는 캐릭터를 구체화시켰고, 차력부 설정은 임창정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색즉시공>은 하지원 임창정, 두 배우에 큰 육체적 도전이었습니다. 하지원은 에어로빅 장면을 위해 3개월 이상 매일 5시간씩 에어로빅 연습을 하며 역할을 준비했는데요, 이외에도 팔굽혀펴기 150회와 윗몸일으키기 350회가 일일 기본 운동량이었다고 합니다. 임창정은 각목, 철근, 불 등이 동원된 차력 장면을 직접 소화했는데요, 합기도 유단자들이나 할 법한 수위였습니다. <색즉시공>의 가장 뜨거운 커플은 아마도 성국(최성국)과 유미(유채영)일 겁니다. 차력부와 에어로빅부의 엄한 고참들인 그들은 첫눈에 반해 ‘운명’ 같은 커플이 됩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유채영은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서 오버액션 전문 코믹 캐릭터로 활약했는데요, 2014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민과 진재영은 <색즉시공>에서 가장 섹시한 남녀였습니다. 지금은 두 배우 모두 은퇴했네요. 개봉 전 <색즉시공> 제작 발표회 현장입니다. 출연진 대부분이 참여해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몇몇 배우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정민은 은퇴 후 바리스타로 활동중이며 진재영은 인터넷 쇼핑몰 CEO가 되었습니다. 최성국은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만날 수 있고, 윤시후는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중입니다. 함소원은 <색즉시공> 이후 가수와 연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대학은 이후 트랜스젠더로서 이시연으로 개명하고 지금은 BJ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달환과 최원영은 꾸준히 연기 활동 중인데요, 특히 최원영은 최근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출연했습니다. “은수는 솔직히 멍청하죠. 순박하고 착한 역할이에요. 은식이는 지금까지 제가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총집합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이제 이 영화 하고 그런 역은 안 하려고요.”(임창정) “은효란 인물은 남들이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아요. 엉뚱한 면도 많고, 때로는 당차고 때로는 엽기적이에요. 너무 터프해서 남자다울 때도 있고요. 그런 반면에 순수하고 여리기도 해요.”(하지원)
2002년 | 강제규 필름 감독: 정초신 | 시나리오: 박채운 | 제작: 최진화 | 촬영: 서정민 | 프로덕션 디자인: 서명혜 | 음악: 이영호 이소윤 CAST 병철: 이범수 | 유리: 김선아 | 동현: 노형욱 | 석구: 전재형 | 상민: 정재훈 | 영재: 안재홍 아마 이 영화가 전국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한참 성적 호기심에 불타는 남자 중학생들과 여자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였던 < 몽정기 >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즉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입니다. <몽정기>의 촬영이 있던 2002년 8월 부산의 한 여중 교실은 영화 현장이라기보다는 생기 넘치는 교실 같았습니다. 창 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교생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 장면. 도시락 세대의 추억이기도 하죠.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애는 어떻게 생겨요?” 녀석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묻지만 꿈 많은 소녀 표정의 선생님은 풋고추를 좋아한다느니 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을 가볍게 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조금 궁상맞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선생님 역은 이범수. 교생이자 과거 제자였던 김선아는 그를 사랑하는데요, 이범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 라인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총각 병철을 짝사랑하는 유리. 그녀에게 그는 ‘영원한 테리우스’지만, 병철은 그녀에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교생도 선생이야”라며 엄하게 충고합니다. 유리의 친구이자 동료 교생인 소정 역을 맡은 배우는 김기연 . < 노랑머리 >(김유민, 1999)의 상희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소정은 유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테리우스가 어딨니?” 짬을 내 네 명의 ‘중딩’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조숙한 아이 상민(정대훈), 그나마 똑똑한 영재(안재홍), 어리숙한 석구(전재형) 그리고 교생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동현(노형욱)입니다. 영화에선 중학교 2학년 설정이지만, 영재 역의 안재홍(14살)을 제외하곤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정대훈과 노형욱은 18살, 전재형은 성인인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모두 30대가 되었네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석구 역의 전재형은 이 영화의 ‘신 스틸러’였죠. 첫 영화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 몽정기 2 >(정초신, 2005)에도 출연합니다. 노형욱은 <몽정기> 개봉 즈음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죠. <몽정기> 전엔 < 깊은 슬픔 >( 곽지균 , 1997)에서 김승우 의 아역이었고요. 이후 < 효자동 이발사 >( 임찬상 , 2004)에선 송강호 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상민 역의 정대훈은 ‘여관집 아들 상민’ 역을 맡았습니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천혜의 환경인 셈인데요, 그래서 <몽정기>의 인상적인 여관 에피소드가 가능했죠. 안재홍은 < 악어 >( 김기덕 , 1996)의 ‘앵벌이 꼬마’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죠. 묘한 표정의 김선아. 이때만 해도 그녀는 영화계에선 신인급이었죠. < 예스터데이 >( 정윤수 , 2002)의 여전사 메이가 첫 영화였는데요, ‘포텐’이 터진 건 <몽정기>였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범수. 이 시기 그는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 < 정글 쥬스 >( 조민호 , 2002) 등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흥행작 <몽정기>를 통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습니다. 메이크업 중인 이범수와 김선아의 모습입니다. 이범수는 촌스럽게, 김선아는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는 것이 컨셉트였습니다. 1988년이 배경인 만큼, 교실 뒤편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들은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소품들이었죠. 그 옆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즐겼던 종이 축구 게임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으로 첫 연출작 < 자카르타 >(2000)에서 흥행을 맛 본 정초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몽정기>를 선택했고, 흥행세를 이어갑니다. <몽정기>에 대해 “오프라인 세대의 청소년기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어 무비’라는 거죠.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1934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68세의 노익장이셨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마의 계단 >(1964) < 만추 >(1966) 등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스타일리시한 촬영을 보여주었던 그는 대규모 스펙터클부터 섬세한 감성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80년대엔 이장호 감독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엔 < 개 같은 날의 오후 >( 이민용 , 1995) 같은 코미디부터 <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 신승수 , 1992) 같은 로맨스, 그리고 < 손톱 >( 김성홍 , 1994) 같은 스릴러와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같은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고요. 놀라운 건 <몽정기> 이후 칠순의 연세에 < 어린 신부 >( 김호준 , 2004) 같은 ‘뽀사시’한 영상을 만드셨다는 점인데요, 서정민 촬영감독에게 불가능한 장르와 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5년, 위대한 카메라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001년 < 친구 > 이후 한국의 영화 현장에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겨 급속하게 보급됩니다. <몽정기> 현장에선 그 장비가 매우 간소해졌더군요. <몽정기>의 콘티 북입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콘티 북이, 어떨 땐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정교했는데요, <몽정기>의 콘티 북은 거의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몽정기>는 제작 초기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갑자기 투입된 정초신 감독은 시간이 없어 꼼꼼하게 콘티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충 그린 콘티 북이 탄생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는 ‘대박’을 기록했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