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킬러
- 감독
- Daniel Stone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Vincenzo Ricotta, Isabel Lewis, Gustavo Camazcho, Manuel Cassol, Hamish Cranfield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고어한 영화를 좋아했다. 요즘에는 그런 종류의 작품을 보는 게 조금 피곤해졌다. 썰고, 베고, 찌르고, 뽑고 하는 장면을 보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해서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던 20대 시절에는 일부러 피투성이 영화를 찾아보고는 했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도 있고 당시 분위기에 영향받은 바도 있었다. 일본 영화 전면 금지와 검열이 심해 웬만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수입이 보류됐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 영화를 몰래 찾아보는 움직임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국내에서 뒤늦게야 개봉했던 < 스크림 >(웨스 크레이븐, 1996)과 <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등을 조악한 화질과 자막의 비디오로 돌려봤다. 금단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쾌감, 남이 못 본 걸 먼저 접한다는 우월감이 더해져 더 강한 묘사의 영화들을 찾다 보니 < 고무인간의 최후 >(피터 잭슨, 1987) < 텍사스 전기톱 학살 >(토비 후퍼, 1974) 등으로 정도가 심해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 이치 더 킬러 >(미이케 다카시, 2001) < 휴먼 센티피드 >(톰 식스, 2009) 등에 열광했다. 물론 고어한 영화만 본 건 아니고 검증받은 클래식도 관람했지만, 피 칠갑 작품들은 곧 내가 즐겨보는 장르가 되었다. 개인적인 선호가 있다 보니 잔인하고 직접적인 묘사도 창의적이면 미덕이라고 생각해 그걸 작품 평가의 척도 중 하나로 삼기도 했다. 박훈정 감독의 < 브이아이피 >(2016)는 그래서 내게는 별 다섯 만점에 세 개 반인 작품이었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그때 20자로 평하길 ‘아이디어 하나로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북한의 고위층 자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남한에 넘어온다면’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장면이 전면에 나섰고, 잔혹 행위의 여파를 개인의 일탈 수준을 넘어 남과 북과 미국의 역학 관계로 풀어가는 게 기존 장르물과 비교해 색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둔감한 판단이었다. 고어한 영화도 남과 북이 분단된 한국에서 만들면 국제정치와 결합한 또 다른 하위 장르로 발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을 피해자이자 성적 대상으로 비추는 관습에 내재된 문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관성에 젖어 장르 친화적으로만 바라본 까닭이었다. 그에 관한 생각의 변화를 촉구한 작품이 <브이아이피>였다. 더 정확히는 이 영화가 공개된 후 벌어진 ‘여혐’과 ‘젠더 감수성’에 관한 논란이었다. 여성 신체 노출과 노골적인 살해 장면이 정말 필요했는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됐고, 남성 중심적 힘의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여성을 시각적 장치로 도구화한 혐의가 짙어, 그간 남성을 위한, 남성의 영화로 소비되어온 한국 장르 영화계 전반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선행됐어야 할 인식을 담아내지 못한 20자 평을 쓰고나서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관련해 모 일간지로부터 전화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영화일 뿐이라고 옹호하기에 영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컸고, 허구의 룰이 미장센 요소이기도 한 장르물의 논리로 설명하기에 <브이아이피>는 특이점이 있었다. 박훈정의 연출 필모그래피에서 감독의 세계에서 판을 치는 ‘폭력’은 문제 해결의 제1요소이되, 조직을 통해 인간의 아귀 악착과 같은 감정을 ‘은유’하고(< 낙원의 밤 >·< 신세계 >), 슈퍼파워를 내세워 만화적으로 ‘과장‘하고(< 폭군 >·< 마녀 >), 조선시대와 같은 ‘과거’로 돌아가는(< 대호 >·< 혈투 >) 데 적용되면서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둔 분위기를 자아낼 여지가 다분했다. <브이아이피>의 경우 남·북·미의 힘의 관계에 더해, 무엇보다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묘사를 영화적 설정으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현실의 실상이 겹치는 정도가 강했다. 이 모든 것을 장르로 풀다 보니 여성 혐오와 차별의 심각한 현실은 재미를 위한 자극적 요소로 소비되고, 감독이 이를 의도한 건 아니어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생긴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 개봉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보통의 다른 남자들보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과는 그의 다른 연출작 GV를 진행하며 만난 적이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영화적 취향과 그걸 생성한 과정이 나와 비슷했다. 세대가 같은 박훈정 감독 또한 금지된 영화를 향한 호기심으로 고어 관련 장르물을 찾아보았고, 이 경험이 창작자로서 작품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신세계>의 피가 난무한 격투씬이나 각본에 참여한 <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2010)의 신체 훼손 장면이랄지, 한때 즐겨봤던 영화로 형성된 개인적인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브이아이피>에 등장하는 남자들, 좋게는 제멋대로, 실제는 단세포적이면서 동물, 아니 짐승같은 캐릭터들은 모두 익숙한 면모가 있다. 귀공자풍의 연쇄살인마 김광일( 이종석) 은 만화 『몬스터』의 요한, 그를 쫓는 경찰 채이도( 김명민 )는 기타노 다케시의 < 그 남자 흉폭하다 >(1989)와 < 하나비 >(1997) 등에 등장하는 폭력 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이를 가져와 재가공하기보다 감독이 설계한 세계에 맞춤한 결과로, 등장인물이 모두 성인임에도 유치한 구석이 있다. “X 되기 일보직전인 거 알지?”, “벌써 X 된 거 같은데요”와 같은 대사가 있고, 극중 범인 김광일 곁에 굳이 여자 경호원을 배치해 사건을 키우는 묘사에 관해서는 감독의 무신경으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흔히 영화와 같은 콘텐츠를 두고 시대의 산물이란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건 작품 자체뿐 아니라 이를 창작한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도 포함한다. 단, 오해하지 마시기를! 작품과 창작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해당 창작물이 사람의 됨됨이까지 파악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박훈정 감독은 앞서 언급한 인터뷰 자리에서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며 반성의 의지를 나타냈고, 특히 <마녀>(2018) < 마녀 Part2. The Other One >(2022)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슈퍼히어로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피가 난무하는 폭력씬이 등장해도 <브이아이피>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은 많이 개선한 형태였다. 각각의 작품에서 여성 병기로 등장하는 자윤( 김다미 )과 소녀( 신시아 )는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가는데, <브이아이피>에서 기능적인 캐릭터에 가까웠던 남성들보다 이성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녀>의 자윤, <마녀 Part2. The Other One>의 소녀 / © (주)영화사금월 시대는 요구하는 윤리와 감수성이 있고, 거기서 벗어날 때는 강한 저항에 부딪히거나 외면받기 마련이다. 연출자가 과거에 갇힌 영화적 감성으로 완성한 <브이아이피>는 시대착오의 작품이었다. 현재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이 영화는 대중 정서와 괴리된 완성도로 박훈정의 작품 목록에서도 평가와 흥행 면에서 최악을 면하지 못했다. 혹자는 여성 현실을 외면한 묘사와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금지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굳이 창작의 영역에 인위적인 금지의 조치를 가하지 않더라도 시대와 통(通)하지 못하는 영화는 자연스레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게 어디 영화에만 해당할까. 시장에서 영화평론가로 통하는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브이아이피>에 관해서 다시 20자로 평하라고 한다면 ‘뭐 볼 거 있냐, 가자. 보기 험할 거 같다.’라고 쓰지 않을까 싶다. 실은 극 중 채이도의 대사를 빌린 거다. 동료 간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한다는 소리가 “뭐 볼 거 있냐, 가자. 비 올 거 같다”였다. <브이아이피>의 여성에 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 상징적으로 들려서다. 내가 기존에 쓴 이 영화의 20자 평을 접한 이들의 반응도 다시 작성한 단평의 뉘앙스와 다르지 않았을 테다. 고어 취향이라는 방구석 스크린의 틀에 갇혀 넓은 현실에 발 담그지 않은 채 평론가 타이틀을 허울 삼아 좁은 식견을 전문 지식이라 공개해 불편하게 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고해성사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고어한 영화와 담쌓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화제가 되는 작품은 찾아보기는 해도 이 장르를 보는 관점이 이전과 달라졌다. 이 장면이 영화의 콘셉트에 필요했는지,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를 점검하면서 재현의 윤리를 따져 묻게 되었다. 앞으로도 잘못 보는 경우가 있겠지만, 시대를 나침반 삼아 바르게 보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허남웅(영화평론가) l 《딴지일보》 영화팀, 《FILM 2.0》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개봉 영화의 복사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의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 30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다. 구조되지 않아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상태가 또 맘에 든다. 영화에 관한 관심이 아직 식지 않아서다. 그래서 여전히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
요즘은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예전 영화를 많이 재개봉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 회로 >를 다시 봤고, 스탠리 큐브릭의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을 4K로 봤다. 미이케 다카시의 < 오디션 >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했다. 비디오나 DVD가 나온 적이 없었고, 영화제에서만 상영했다. 해외에서 꽤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고, 한국에도 마니아들이 있었지만, 그동안 정식으로 선보이지 못했다. 마니아들은 해외 DVD를 사고, 그것을 복사하거나 파일로 변환해서 돌려봤다. 과거에 봤던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 새로운 감흥이 일거나 기억과는 다른 장면과 대사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오디션>은 3, 4번 봤었는데,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한 10여 년 만에 다시 보니 느낌이 약간 바뀌었다. 그 남자는 자연재해처럼 난데없는 불행에 휩싸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여자의 마음은 모두 진심이었다. 애타게 전화를 기다린 것도, 완벽한 사랑을 갈구한 것도. 물론 다리를 자른 것도.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의 걸작들을 다수 연출하며 유명해진 감독이다. 1989년,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 도에이의 산하에 있는 도에이 비디오는 ‘V 시네마’라는 레벨명으로 <크라임 헌터>를 출시한다. 20, 30대 남성을 타겟으로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극장용 영화보다 제작비는 적지만, 일반적인 인디 영화보다는 훨씬 스케일이 크고 상업적인 장르 영화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도에이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고, 다른 제작사들도 V시네마에 뛰어들었다. 미이케 다카시는 1991년부터 <돌풍! 미니파트대> 등으로 감독 데뷔를 하며, 일년에 서너 편의 영화를 만드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1995년부터 만든 ‘흑사회 3부작’-<신주쿠 흑사회>, <극도흑사회>, <일본흑사회>는 극장 개봉도 했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면서 종종 극장 개봉작과 해외영화제 수상작을 연출했고, 2000년대 중반 순조롭게 메이저로 진출했다. 1999년에 연출한 <오디션>은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에 출품되어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은 미이케 다카시를 보고 ‘악마’라며 욕을 했고, 보다가 나가버린 관객들도 아주 많았다. 이후 해외에서 개봉을 했을 때, 충격을 받아 병원에 실려 간 관객이 나오기도 했다. 주간지 <타임>이 2007년 발표한 ‘공포영화 톱 25’에 선정되었고, 영국의 영화지 <토탈 필름>의 ‘공포영화 역대 베스트 50’의 29위에도 올랐다. 메이저에 간 후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다소 느슨해졌고, 평범해지기도 했지만 2천년대 초반까지 미이케 다카시는 가장 기발하고, 독특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 이치 더 킬러 >, < 극도 공포대극장 우두 >, < 비지터 큐 >, <중국의 조인> 등을 만들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원작인 <오디션>은 중반이 넘어가기까지 큰 사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호러영화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모호함이 맴돌 뿐이다. 아오야마는 아내가 죽은 후 7년 동안 아들 시게히코와 함께 살아왔다. 시게히코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오야마의 사업도 안정됐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세계는 불안정하다. 당시 일본은 장기 불황의 한복판이었다. 아오야마는 재혼을 하기 위해 오디션을 만든다. 명분은 영화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것. 지원서를 뒤지던 아오야마는 한 여인에게 꽂힌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지만 부상으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던 아사미. 아사미에게 끌린 아오야마는 오디션이 끝난 후 연락하고 만나기 시작한다. 아오야마의 친구는 뭔가 의심스럽다며 신중하라 하지만, 푹 빠진 아오야마는 무시한다. 아사미도 아오야마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두 사람은 함께 바닷가의 호텔로 여행을 간다. 아사미는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과거를 고백한다. 아오야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첫 섹스를 한다. 아마도.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섬뜩한 장면이 가끔 등장하지만 아오야마와 아사미의 연애가 진행되는 중반까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한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아오야마는 호텔 방에서 아사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아무 연락이 없고, 수소문해도 행방을 찾을 수 없다. 아사미의 흔적을 찾아가는 곳에서 두 발이 잘린 남자를 만나고, 여자가 토막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파고들면 들수록 아사미라는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집에 있던 아오야마는 아사미의 습격을 받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바늘이 몸에 꽂히고, 발이 잘려나간다. 도대체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무라카미 류의 소설 <오디션>은 1997년 <펜트하우스 재팬>에 연재되었다. 오로지 환락과 희망, 밝은 미래만이 충만했던 버블경제가 끝난 1990년대의 일본은 혼돈이었다. 1995년에는 한신 대지진과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이 있었다. 범죄의 잔혹성과 대담성, 14세의 범인이라는 사실에 모두 당혹스러워했던 고베아동연속살인사건은 1997년이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무차별 살인과 범죄도 증가했다. 버블 붕괴 후의 일본은 모든 것이 닫힌 회색의 시공간이었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누군가를 혹은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영화 <오디션>에서는, 공룡에 심취한 아오야마의 아들 시게히코가 가장 현명해보인다. 호사로운 향락에 빠지지도 않고,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지도 않는다. 중년의 아버지에게 재혼을 권하고, 자신의 미래를 담담하게 준비해간다. 아오야마도, 아사미도 누군가를 만나 완전한 소통을 바라는 기성세대다. 타인과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 자신이 완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얽매여 있다. 친척의 학대, 어머니의 남자가 가한 폭행은 아사미를 고립되게 만들었다. 아사미는 자신을 이해해 줄,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를 갈구한다. 하지만 둘만의 완벽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한 그녀는 남자가 도망갈 수 없도록 발목을 잘라버린다.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고문하며 말한다. “말은 거짓이어도 아픔만은 믿을 수 있죠,....아프니까 잘 알겠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을 수 있을 때는 괴로울 때나 힘들 때죠. 정말 괴로울 때만 자신의 마음이 보여요.”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기 위해 아오야마를 들여다봤다. 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오야마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아오야마는 세속적인 인간이다. 크게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 아마도 아오야마의 부하 여직원은, 그에게 크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사미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강렬하게 타인을, 타인의 사랑을 원하고 있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이 좌절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오디션>의 세계는 세기말의 일본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원작에서는 아오야마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아사미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설명된다. 나만을 사랑하겠다는 아오야마의 말이 거짓이었으니까. 영화 <오디션>에서는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랑의 과정으로 보였지만, 갑자기 아사미가 사라져버렸다. 미이케 다카시는 인터뷰에서 ‘이유 없는 재난’이라고 말했다. 길을 가다가 건물 공사장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머리를 맞는 사고 같은 것. 이유가 없고, 예측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사고. 하지만 미이케 다카시는 영화의 꿈 장면에 많은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아오야마는 아사미의 고문을 당할만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너무 가혹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잘못은 있다. 아오야마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럴만한 이유와 공동 책임이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그대로 각색하면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분명하게 투사한다. 아오야마는 좋은 남자이지만, 중년의 회사 사장이라는 위치에 걸맞는 비열함을 또한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루 속의 남자와 아오야마의 고문, 계속 머릿속에서 들리는 ‘끼릭끼릭’ 소리 등 <오디션>을 보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은 그 시절의 미이케 다카시만이 연출할 수 있는 기괴한 풍경이다. 지금 봐도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다. 아마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이재한 감독은 1971년 한국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4살 때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다 뉴욕대학교 영화과에서 영화를 공부한다. 대학 졸업 후, 뉴욕의 이민 2세대, 10대 갱스터의 삶을 다룬 < 컷 런스 딥 >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 여러 국제영화제를 돌며 상영된 후 2000년 한국에서 개봉하지만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드는 능력이 인정되어 이후 이재한 감독은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연출하다 2001년 일본의 니혼TV 드라마 <퓨어 소울~내가 너를 잊어도 Pure Soul~君が僕を忘れても>를 리메이크한 영화 <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04)를 연출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2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어 인기를 모았다. 특히 이 영화는 일본에서는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30억 엔의 수입을 올려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흥행 1위의 한국영화가 되었는데, 2010년에는 츠지 히토나리(?仁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일본어 영화 < 사요나라 이츠카 サヨナライツカ >를 연출하며 일본에서 자신이 세운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라는 박스오피스 기록을 깬다. <사요나라 이츠카>는 13억 엔의 수입을 올리며 장기 상영되었고, 2010년 일본에서 상영된 외국영화 중 16위의 흥행기록을 세운다. 2010년 여름 개봉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 포화 속으로 >는 한국에서 약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고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차기작으로는 오우삼 감독의 1989년 작 < 첩혈쌍웅 >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는 <더 킬러 The Killer>가 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무산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 베스트셀러 「제3종의 애정」을 원작으로 한 < 제3의 사랑 >을 촬영하여 2015년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영화감독 이재한 의 행보는 그의 데뷔작 < 컷 런스 딥 >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소수 민족적 정체성으로부터 얻었을 법한 경험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 사요나라 이츠카 >는 한국에서 기획/제작된 프로젝트이지만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여 일본어로 제작되었고 태국 방콕에서 한국/일본/태국의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되었다. 그의 영화들은 제작, 투자 방식, 그리고 그 영화가 말을 거는 대상을 설정하는 데 있어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영화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어로 제작된 영화든, 영어로 제작된 영화든 그의 프로젝트들의 기획과 제작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이러한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범-아시아적인(pan-Asia) 궤적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동시대의 ‘한국’ 영화계를 홈 베이스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동시대의 한국영화란 전통적인 충무로 영화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 내는 프로듀서 체계가 근간이 된 충무로-이후 영화도 아닌 아시아에서 가장 최전방의 엔터테인먼트 상품들을 생산해 내며, 전 아시아적인 팬덤을 지닌 문화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한국영화이다. 한류는 아시아 각 지역의 문화산업계에 때로는 감탄을 동반한 벤치마킹의 모델로서, 때로는 방어적이고 적대적인 음모론의 중심으로서 한국 정부가 세밀하게 기획한 전략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정부에서 기획하고 시행한 한류의 전략이, 실제로 존재해온 아시아의 각 지역의 한류 팬덤을 앞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부 차원의 그리고 산업 차원의 전략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러한 전략적인 프로젝트들은 오히려 번번이 실패했다 할 것이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연달아 기획되었으나, 실패한 합작 블록버스터들은 상당 부분 이렇게 잘못 계산된 대(對)-아시아 전략들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실패의 원인이 아시아에서 한국영화나 한국의 문화 상품들에 대한 인기가 식었기 때문은 아니다. 히트 한류 상품들은 세대와 지역의 범위를 넓히며 계속 출현하고 있으며, 다만 그 흐름과 규모를 예측하고, 기획,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여전하다. 이재한 감독과 그의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그러한 규모와 영향력을 갖는 동시대의 한국 문화상품에서 기대할만한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범아시아적인 감각들의 예상 가능한 구현물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시장 전략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의 한국문화 소비자들 역시 함께 공유하고 있을) 취향과 문화적 자산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보여 더욱 흥미롭다. 이재한 감독은 < 사요나라 이츠카 >의 제작 동기를 말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츠지 히토나리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자연스레 익숙한 일본 배우가 일본어로 연기하는 장면이 상상되었기에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이러한 <사요나라 이츠카>의 제작 동기는 경제적 전략을 위한 현지화라는 목표에서가 아니라 다문화적인 문화상품 소비와 그로부터 비롯한 지식, 역사적 상상력에서 온다. 예컨대 (해적판을 제외하고라도) 한국 밖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유래의 출판 콘텐츠인 귀여니의 청춘 소설을 읽으며 방콕이나 자카르타, 혹은 상하이나 부탄의 소녀들이 자신의 로컬 스타보다는 그만큼, 혹은 그보다 친숙한 한국의 아이돌들을 떠올리며 가상 캐스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2010년대의 한국영화는 연구도, 비평도 심지어 산업도 따라 잡고 있지 못하는 어떤 순간을 목도 중이며, 이재한의 영화들은 그 새로운 현상과 변화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