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 감독
- 임상수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김강우, 윤여정, 백윤식, 김효진, 온주완, 마우이 테일러 , 달시 파켓, 황정민, 권병길, 갈소원, 이서현, 송혜린, 김명하, 리도프, 김보민, 홍수지, 김하얀, 이혜경, 박혜조, 김지훈, 박세용, 이도현, 남궁선, 데릭, 양윤영, 엄다혜, 최은, 에이미, 유리, 라라, 마이크, 인천 답동 성당 성가대, 알렉스, 조엘, 나스카, 조창우, 김승필, 김슬기, 양재준, 이찬유, 이규화
박성배(황정민)는 옛 미군 건물이 재개발을 앞둔 안남 시(市)의 시장이다. 부패한 정치인 성배의 수족 노릇을 하는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범죄와 결탁한 자신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어쩔 수 없이 내통하는 관계가 된다. 도경이 이 조야한 권력자들에 굽신거려야 하는 이유는 병원비를 변통해야 하는 말기 암 환자 아내 윤희(오연아) 때문이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남자는 시장의 오른팔 은충호(김종수)의 장례식에서 한 가지 묘수를 짜낸다. 도경의 기지로 두 권력자가 장례식장에서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는 시퀀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도경과 선모, 성배, 차인은 예정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순회하면서 서로를 대면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상대를 향한 으르렁거림과 생존을 위해 울부짖는 위협, 땀에 젖은 얼굴을 묘사하는 날카로운 카메라 워크로 주요 인물들 간의 간의 대결이 차례로 기술된다. 성배는 무늬만 시장이지 지하세계와 연줄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의 수괴에 가까운 갱스터로 뼛속까지 타락하였다. 성배와 같은 인물이 선거에 통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권력과 도시의 퇴행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법의 수호자인 차인은 성배를 체포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다가 그 자신이 범죄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조무래기 형사였던 선모(주지훈)는 도경을 추종하여 피와 돈의 맛을 본 순간 비열한 갱스터로 빠르게 변질된다. < 아수라 >(2016)는 남성성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작품으로,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통제할 수 없는 도덕적 타락으로 붕괴한다. 충성심과 우정이 변질되면서 남자들이 차례로 자동차, 손도끼, 망치, 금속 스파이크 및 재래식 무기의 희생자가 될 때 세상은 피바다로 변한다. 김성수 감독은 ‘갱스터’라는 장르의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이다. <아수라>에서 그의 연출은 영화에 풍자적인 분위기와 악독한 코미디의 느낌을 고조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에 갇힌 캐릭터에 선의의 뉘앙스까지 부여한다. 세상이 나아질 가능성을 0%로 보는 비관적인 세계관이 새로울 건 없으나 촘촘하게 짜인 긴장을 고조해가는 스토리는 권위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를 경멸하며, 가망이 없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어두운 골목길과 옥상, 불길해 보이는 회의실과 경찰서 등 <아수라>의 현대적인 누아르 스타일에선 위협과 위험의 분위기가 반영된 공간 세팅이 핵심을 이룬다. 영구적인 분노와 적대감, 고통에 매몰된 존재의 상태는 폐쇄적인 프레이밍(framing) 연출을 통해 시각화된다. 장엄한 엔딩을 보여주는 장례식장 시퀀스에 이르기 전까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작은 옥상, 미로와 같은 빈민가의 건물들, 골목, 쇠창살의 교도소, 황폐한 건물의 내부 등은 살아남기 위해 모사와 굴욕,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무대를 제공한다. 구타와 살인이 끊이지 않는 세계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김성수는 도경이 마약에 찌든 부랑아 작대기(김원효)를 의도치 않게 살해하는 옥상 신, 조선족 갱단들과 도경이 벌이는 빗속의 자동차 추격 신,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에게 도경이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사무실에서의 린치 신 등을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공간의 함의와 조형에 기초한 김성수의 장면 연출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폭력과 유혈이 도처에 널렸으며 그 소용돌이에 휩싸인 사람은 누구도 탈출할 수 없으리라는 강력한 신호를 전달한다. 공간의 프레이밍 전략은 헤어날 길 없이 갇힌 존재들의 비의(悲意)를 보여주는 폐쇄성에 기초하고 있다. 고문과 구타, 칼질을 포함하여 잔인한 유혈의 장면들 중 대학살로 점철된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공간의 시각화라는 관점에서 역사에 남을만하다. 거의 140분에 육박하는 영화에서 이 시퀀스는 서사의 흐름이 지루한 수준으로 끌려갈 즈음 다시 스릴이 넘치는 광경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한다. 장면 연출의 초점은 수직의 복도에서 벌어지는 자비가 없는 폭력이다. 모든 인물이 벌이는 권력 투쟁과 충성심, 힘의 우열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들의 위치에서 절정에 이르며 장례식장의 좁고 수직으로 난 복도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파열된다. 김성수의 연출은 도경과 그의 충직한 동생 선모의 쟁투가 벌어지는 복도와 박성배와 김차인의 수하들이 벌이는 장례식장 복도의 살육극을 나란히 배치한다. 두 개의 복도(도경-선모, 성배-차인)는 기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형제애를 기반으로 했던 도경과 선모의 투쟁, 이권과 권력욕에 눈이 먼 성배와 차인의 대결은 남성적 유대가 파탄 난 세계의 지옥도를 그려 보인다. 각각 경로를 통과한 도경과 성배가 피의 복도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누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이 냉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무려나 우정과 형제애가 사라졌을 때 온 세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시퀀스의 촬영과 편집은 도경과 선모가 드잡이 싸움을 벌이는 복도, 성배가 고용한 조선족 갱스터와 차인을 호위하는 검찰 병력의 충돌이 빚어지는 장례식장 복도의 수직적 형상을 강조하는 기교들을 활용하여 구도와 앵글, 사이즈, 조명, 액팅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시퀀스의 초입에 천장에서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형광등은 초기 설정의 용의주도함을 입증한다. 흔들리는 빛의 특성과 텍스쳐는 현실과 은유적인 차원 모두에서 죽음이 도열하는 이 수직의 공간을 편집증적인 불안으로 세팅하면서, 성배와 도경이 최후를 맞는 대단원에서 시각적으로 절정에 달하는 그 기능(앞뒤로 흔들리며 죽음의 풍경을 비추는 빛)을 예비하고 있다. 공간 연출의 성취는 벽들이 프레임의 1/3을 점유한 복도 공간에서 총 하나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육박전을 벌이는 도경과 선모, 좌우대칭의 비좁은 벽 사이에서 조선족 갱단에 도륙당하는 창학, 길게 수직으로 난 장례식장 홀에 쌓이는 시체들의 조형 방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시퀀스의 목표는 어느 누구도 품위가 있거나 호감이 가는 인물이 없는 이 세계에서 아둔한 남자들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서로의 목을 조르며, 경쟁 상대를 쓰러트리려 발버둥 치는 형상을 묘사한다. 안남 시라는 가상의 무대 구축은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 또는 이해할 수 있는 것 너머로 이동을 허용함으로써 언캐니한 공간감을 조성하고 도시의 음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은 불가능한 정도의 밀도와 깊이를 전달한다. 갱스터 장르에 대한 김성수의 폭넓은 이해와 공간 연출은 낮은 조도의 조명과 더치 앵글, 대담한 색상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활기를 통해 안남이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라기보다는 ‘씬 시티’에 가까워 보이도록 만든다. 도시 정체성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한데 안남은 도시 구조에 자율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수많은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별되는 구역들의 경험은 독특하며, 각각의 구역은 고유한 물리적 특징은 물론 현실 세계의 구조를 압축하고 있다. 도시 갱스터 장르에 대한 감각과 비트를 내장한 하드코어 액션 장면들에서 뛰어난 공간 연출은 장례식 시퀀스 외에도 몇몇 장면들로 선행적으로 축적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도경의 SUV 차량과 갱단이 탄 승합차가 격렬한 파열음을 내며 경합하는 체이스 시퀀스에서 도경의 차 안에서 번쩍이는 붉은 등과 푸른 화염, 가드레일을 충격하는 동안의 불꽃 등이 사이키델릭 조명을 대신한다. 먹이사슬 구조의 억압과 고통을 광적으로 분출하는 도경의 폭주는 비에 젖은 도로의 번들거림,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빗줄기의 미장센과 조응하여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만 할 뿐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는 암흑의 터널 안에 갇힌 인간의 조건을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이모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차의 안과 바깥을 오가며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괴성을 지르는 한 남자가 구제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지옥에 억류되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선함과 온기를 거둔 정우성의 악에 받친 연기는 흑적색으로 물든 멍자국들, 퉁퉁 부은 눈두덩, 독기를 품은 욕지기로 폭발한다. 허무주의적인 배음과 그림자의 극단적인 사용, 양식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불길함을 조성하면서 대비의 인상을 강화한다. 무고한 피해자들과 달리 모든 인물들이 완전히 무참하고 버림받은 채 잔인하게 살해되는 영화의 결말은 도덕적 신념 체계를 완전히 거부하며 진실과 도덕, 선의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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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문 >이 6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참 낯설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이가 꿈꾸는 1만 관객을 훌쩍 넘기다니, 낯설 수밖에. 때로는 비현실적 상황인 요즈음, 그 안에서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흥행 현상을 경험하면서 < 종로의 기적 >의 ‘소박했던’ 개봉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절대적 매커니즘을 목격한 기분이다. < 두 개의 문 > 개봉 첫 주의 높은 관객 점유율과 뜨거운 반응 덕분에 우리 모두는 상영관 확대를 기대했었다. 특히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통해 ‘독립영화 음영지역’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두 개의 문>의 기록적인 흥행에도 불구, 멀티플렉스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무비꼴라쥬’나 ‘아르떼’ 밖으로 나가긴 쉽지 않았다. 이미 수용 한계에 다다른 전용관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도 상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극장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 두 개의 문 >은 멀티플렉스의 2부 리그 소속이었다. 일반 상영관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철저히 분리된 시스템이었다. 물론 견고한 극장 문이 열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문으로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이 날렵하게 치고 들어왔다. 전용관의 상영작들이 문 밖을 나서는 것은 1부 리그 진출이 아닌 종영을 의미했다. 가끔 지역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먼저 상영을 요청, 일반 상영관에서 짧게나마 개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혜’는 멀티플렉스 본부의 지시가 아닌 현지 관객들의 끊임없는 상영 요청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부 리그는 박 터질 수밖에 없었다. 사이좋게 멀티플렉스에 진출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은 전용관 안에서 곧 서바이벌 오디션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우열이 정해졌고, 순번이 매겨졌다. 전국 멀티플렉스 좌석 수의 1%도 안 되는 전용관을 수십편의 독립?예술영화들이 나눠가졌다. 그러다보니 전용관의 동료들이 괜스레 미워지기까지 했다. 유수한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들의 아트하우스 작품과 스타급 명배우를 기용한 작가주의 영화들과도 한 배에 올라 경쟁해야 하다니, 이건 좀 불공정하지 않은가? 이왕 전용관을 운영할 거라면 국내파와 해외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섬세한 구분과 안배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복잡다단한 생각에 이르자 억하심정에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다양한 영화들에게 극장 문을 열면 될 것을, 왜 이런 구별 짓기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포화 상태에 이른 가두리 양식장에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파상공세가 시작되고, < 두 개의 문 >의 관객 점유율이 떨어지는 시점부터 그 분노는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여름 극장가에서 이마저도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고마워라, 멀티플렉스 전용관이여!’ 이 지경에 이르니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순간 <돈의 맛>에서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에서 재벌가의 아들이 이죽거렸던 대사가 떠올랐다. “싸구려 아파트 하나 줘서 중산층입네 하고 살게 했어야 하는데.” 아주 독한 가정이지만, 나는 극장 재벌의 머리 속엔 분명 이런 대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멀티플렉스가 전용관 하나 던져주면 그 안에서 아웅다웅 독립영화 개봉합네, 예술영화 합네 하며 살겠지.” 전국적인 네트워크, 다양한 관객을 염두에 둔 빼어난 접근성, 최신의 쾌적한 시설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한 멀티플렉스. 장사의 이치에 통달한 극장 재벌들은 자신의 멀티플렉스에서 개봉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에 자족하도록 매트릭스를 펼쳐놓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두 개의 문’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영악하게 이용 중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문을 열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척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뽐내고, 다른 한 쪽 문은 굳게 닫은 채 그 뒤에서 게걸스럽게 긁어모은 돈의 맛을 탐닉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특별한 감격의 순간은 찾아온다. 머지않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 두 개의 문 >의 1만 번째 관객을 만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의 총 6만 관객 중 15% 이상이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경쟁 논리가 아닌 조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 흥행 스코어에 따라 난잡하게 시간표를 바꾸지 않고 관객들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꾸준한 상영 회차를 안배하는 고집, 무엇보다 독립영화를 향한 응원의 마음과 무한한 믿음이 왜 중요한지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두 개의 문 > 개봉을 앞두고 개봉을 통해 자력갱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작은 바람이라 했는데, 개봉을 경험하며 아주 큰 바람이 생겼다. 내가 만든 영화로 큰 수익을 얻는다면 극장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꿈.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모두들 치기 어린 장래희망이라 했던 영화감독의 꿈도 25년 만에 이뤘으니, 극장을 짓는 꿈은 20년 정도면 가능하려나. 아차, 그러려면 일단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구나. 자! 그럼 저는 이제 차기작 준비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