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 감독
- 연상호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조영빈, 한현민, 이재형, 한윤서, 이수현, 정인기, 김재록, 김성현, 장효진, 김성현, 연상호, 이주영, 이돈용, 허지웅, 최규석, 김혜나, 연상호, 경순, 조영각, 하명석, 김꽃비, 박희본, 김혜나, 한윤서, 연상호, 이재형, 연상호, 김민찬, 하명석, 오승준, 연상호, 조영각
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작품을 보고 있었다. 피와 폭력, 욕설 등 표현의 수위가 제법 높은 작품이었는데 두 그룹의 가족 관객이 눈에 띄었다. 감독이 상영 전 가벼운 경고(?)를 했지만 작품이 중반에 이르도록 요지부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의 아이들은 잠시 극장을 나간 듯했으나 이내 다시 돌아왔고, 다른 가족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가족 모두 상영의 중간에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은 주최 측이나 한참 동안 아이들과 영화를 감상한 부모들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나 보는 움직이는 그림이 잔인해 봤자 얼마나 잔인할까 싶었던 걸까. 이것이 현재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한 장르로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TV,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대부분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오후 시간에 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해외에서는 다양한 장르,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한국 작가들의 장,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단편은 이미 2000년대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만 해도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정다희 감독의 < 의자 위의 남자 >와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가 각각 대상을 수상하며 독창적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편 역시 이성강 감독의 < 마리 이야기 >와 성백엽 감독의 < 오세암 >이 안시에서 2002년, 2004년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 안재훈 ,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 이대희 감독의 < 파닥파닥 >, 장형윤 감독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등이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은 영화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고 장편은 < 블루시걸 > < 아마게돈 > < 원더풀 데이즈 > 등 과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화제성에 비해 부진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철저히 상업 논리에 따르는 국내 거대 배급사들이 아동을 타깃 삼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 돼지의 왕 >은 첫선을 보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확보의 한계에 부딪히며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는 청소년, 여성 타깃의 감성적인 작품임에도 흥행을 위해 국내 시장의 애니메이션 주요 수요층인 가족 관객 중심의 홍보를 선택해야 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해외 애니메이션들도 픽사나 드림웍스, 디즈니 등의 작품 외에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수요가 일부 마니아에 국한돼 있는 형편이다. 반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겨울왕국> 처럼 막대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뛰어난 퀄리티의 영상과 어른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전 세계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픽사의 작품 퀄리티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형성을 지닌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더욱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힘 있는 스토리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매력과 울림을 가지고 있는 국산 창작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즐기고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 앞에서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오히려 낮은 퀄리티와 비슷비슷한 내용의 아동 타깃의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 극장가에서 동급으로 취급되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국내 감독들은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덕표 감독의 성인을 위한 국내 최초의 VOD 전용 애니메이션 < 발광하는 현대사 >, 현대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오롯이 옮겨낸 안재훈 감독의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등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애니메이션은 작품들의 실패를 딛고 다양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독립 장편애니메이션 < 사이비 >가 2013년 11월 21일 개봉하며 전국에 < 돼지의 왕 > 이후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았다. ‘사회고발’, ‘리얼리티 잔혹 스릴러’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쎈’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그의 단편 < 지옥 > 시리즈에서부터 예고되었다. 주제에 대한 끈질긴 일관성으로 감독의 사회의식과 세계관이 기존 한국애니메이션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보다는 실사영화를 한편 보는 듯 색다른 느낌이랄까? 이러한 느낌은 < 돼지의 왕 > 때 아쉬웠던 작품의 미술적, 애니메이션적 완성도가 많이 보강된 점과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한 연출적 완성도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동작이 뻣뻣하고 표정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지 못하는 기법상의 문제가 눈에 거슬렸지만 저예산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돼지의 왕 >이 20개 관 내외였던 것이 비하면 < 사이비 >는 New의 투자배급으로 개봉관이 80개 관으로 늘어났으며, 그에 힘입어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관객 2만을 돌파했다. 3억 5천 정도의 제작비와 2억 정도의 마케팅비(영진위 개봉작 지원 포함)를 모두 다 합친다 해도 5억 내외로, 평균 제작비만 30억 내외의 기존 상업 작품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낙관적인 평가는 아직 금물이다. 연 감독의 작품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마니아층마저 비판적인 목소리를 서슴지 않는 적극적인 소수가 지지하는 영화이기에 초기 관객유입은 오래가지 못했고 상식적인 예상 성적표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르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답답한 현실의 벽은 조금씩 무너질 수 있지 않을까. < 사이비 >는 이미 국내 개봉 전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해 10월 20일 폐막한 제46회 시체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스페인에서 열린 제51회 히혼국제영화제에서도 장편애니메이션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11편의 경쟁작과 겨루어 < 치팅 >(미국, 빌 플림튼)과 공동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제86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예비후보로 선정되는가 하면 최근엔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제17회 홀랜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해외의 반응과 평가가 오히려 더 뜨거운 것 같다. < 돼지의 왕 >이 덜 정리된 듯한 스토리와 극 구성이라면 < 사이비 >는 보다 세련되고 매끄러운 극 구성임에도 힘이 넘쳐났다. 작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주제의식과 주인공 캐릭터인 김민철( 양익준 )의 쎈 캐릭터가 돋보였으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뼈가 사무치는 사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적 현실을 질리게 만든다. 상대역 최경석 장로( 권해효 )의 평범한 마스크 속의 전형적 죄질 나뿐 사기꾼 또한 영화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 캐릭터다. 여기에 한배를 타게 된 젊고 매력적인 성철우 목사( 오정세 )의 막판 파국은 신의 전도자 이전에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들어선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김민철의 딸 김연선( 박희본 )은 포악무도한 가부장의 전형인 아버지의 피를 뼛속까지 거부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캐릭터다. 그 밖에도 무능하기 그지없는 공권력과 무지하고 허황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은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인 인물들로 설정된 것 같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종교적 소재를 다루지만 종교가 아닌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파헤침을 통해 결국 도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참인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일상의 사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를 김민철의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김민철의 토굴 속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은 인간적 한계와 본질에 대한 관객에게 던지는 감독의 선문답과 같은 것이리라. 이러한 연 감독의 저예산 속도전을 통한 성공전략은 일찍이 세계 어느 스튜디오에서도 시도된바 없는 독창적인 전략으로, 시장기반이 좁고 허약한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적은 예산은 스튜디오 규모의 최소화, 빠른 제작기간, 제작기술 효율성을 극대화, 지원사업의 적극 활용, 국제적 영화 무대의 공략이라는 전략 하에 산학협력을 통한 신진인력을 활용한 디지털제작시스템의 적극 활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개봉 이후 얼마 안 돼서 벌써 세 번째 장편 프리프로덕션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전해 듣고 연상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속도전에 혀를 내둘렀다. 차기 작품은 < 서울역 >이라는 장편으로 공포의 비판적 은유로 한국사회에 문제를 던지는 야심 찬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독립애니메이션의 현재, 그리고 나아갈 길 -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상영작을 중심으로 얼마전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가 막을 내렸다. 영화제 경쟁부문에 해당하는 독립보행/새벽비행을 통해 소개된 작품 40편과 초청부문 상영작을 모두 합쳐 100여편에 이르는 작품이 상영되었다. 한 해동안 제작된 독립애니메이션을 결산하는 자리이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모이는 만남의 자리였다. 다양해진 상영작의 스펙트럼 9회를 맞은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상영된 작품은 어느 해보다 다양했다. 동 영화제의 단골로 단편작가로써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는 강민지 , 박재옥 , 한지원 감독 등의 작품과 오랜만에 단편으로 돌아온 이성강 감독의 작품이 상영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장편애니메이션의 뮤직비디오 형식인 <맞춤희곡>(최진성)이 상영되었으며, 동물자유연대에서 제작한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김준)이 상영되었다. 국내에서 제작된 작품이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유독 해외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는데, < 나무의 시간 >( 정다희 ), < 너무 소중했던, 당신 >(백미영)은 프랑스에서, (원애린), <마음나무>(박희영)는 미국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온 ( 김학현 ), <나의 액자>(김예원) 두 작품이 상영되는 등 해외에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었다. 내러티브 중심의 단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고병준)와 같은 비서사적 형태의 실험애니메이션 작품도 찾아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다양한 색깔로 굴절한다 ‘영화제’는 프리즘이다. 작품들이 한 곳에 모이는 축제이자, 앞으로의 애니메이션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이 기법적?내용적?공간적?형식적으로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가능성은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스타일과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작가로서의 가능성이다. 강민지, 김준, 오수형 감독은 꾸준히 단편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로, 거의 매해 쉬지 않고 작품을 영화제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러한 작가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둘째로 단편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다. 올해 상영작인 <맞춤희곡>이 그렇다. 화제작인 < 돼지의 왕 >, < 사이비 >를 만든 연상호 감독이나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를 만든 장형윤 감독도 오랫동안 단편을 작업해왔다. 이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의 씨앗이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로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이다. 캠페인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이나, 전시와 결합하여 제작된 작품은 이미지를 통해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과 프레임 단위로 이루어지는 작업과정이 전시형태로 보여질 수 있다는 특성을 살린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독립애니메이션은 내부의 실험과 고민을 거쳐 다양한 가능성과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정책적 프리즘이 필요한 때 얼마 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 사이비 > 상영후 한 관객이 묻는 ‘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냐’는 질문에 연상호 감독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애니메이션은 다양하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애니메이션은 다양하다.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이 아닌 것처럼, 독립애니메이션이 단편애니메이션의 다른 말이 아닌 것처럼, 애니메이션은 형식과 내용에서 다양할 수 있다. 90년대부터 서서히 싹을 틔우기 시작한 독립애니메이션이 이제는 양적?질적 성장을 거쳐 다양한 색깔로 세상을 향해 그 빛을 드러내고 있다. 그 빛이 더 멀리 더 강하게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단편 작가들에 대한 지원, 극장용 독립장편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한 자리에 모여 꿈틀대기 시작한 독립애니메이션이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