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 감독
- 오슨 웰스
- 제작년도
- 1941
- 출연
- 오손 웰스, 조셉 코튼, 도로시 커밍고어, 아그네스 무어헤드, 루스 와릭, 레이 콜린스, 어스킨 샌포드, 에버렛 슬로언, 윌리엄 올랜드, 폴 스테워트, 조지 컬러리스, 포투니오 보나노바, 거스 쉴링, 필립 반 잔트, 조지아 배커스, 해리 새논
< 아쿠아리우스 >의 주인공은 은퇴한 음악평론가인 노년의 여성 클라라(소니아 브라가)다. 그녀는 브라질 해변 도시 헤시피(Recife)의 1940년대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 아쿠아리우스에 산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흑단 같은 긴 머리를 말아 올리고 바다로 나가 해수욕을 즐긴다. 방대한 LP 컬렉션에서 음반 하나를 꺼내어 즐기며 평화롭게 낮잠을 즐긴다. 가정부 라드자니와 수다도 떨고 그녀를 마치 박물관의 밀랍인형같이 바라보는 젊은 기자와 인터뷰도 한다. 주말이면 남동생 부부와 조카가 방문하기도 하고 가끔 이혼한 딸이 손자를 맡기면 할머니 역할도 곧잘 해낸다. 그렇다고 그냥 하릴없는 뒷방 할머니인 것만도 아니다. 로맨스에 대한 열망도 갖고 있고, 훌륭한 섹스를 위해 기꺼이 남창을 고용하기도 한다. 이런 클라라의 일상은 대형 건설회사가 아쿠아리우스의 재개발을 시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건설사는 클라라의 이웃과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접근, 자신의 모든 역사를 담은 집을 포기하지 않는 클라라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쿠아리우스에는 불편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빈 윗집에서는 밤새 요란한 섹스파티가 벌어지고 수백 명이 모이는 종교집회가 열리기도 하며 복도와 계단이 배설물 천지가 되기도 한다. 클라라는 이 모든 상황들이 그녀를 퇴거시키기 위한 건설사의 계략임을 깨닫지만, 정계와 언론까지 장악한 건설사에 대항하기란 바위로 계란치기일 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침입’의 증거를 확보한 순간, 클라라는 당당하게 계란으로 바위를 부숴버리기로 작정한다. 다수의 평론가들이 ‘캐릭터 연구의 훌륭한 판본’이라고 지적했듯이, 클레베르 멘돈사 필루는 러닝타임 내내 마치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클라라를 관찰한다. ‘자본의 폭압에 대한 개인의 투쟁’이라는 영화의 시놉시스가 제공하는 어떤 기대에 비추어본다면, 이 연구는 짐짓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중반부터 속도를 내는 흡사 스릴러적인 전개나 < 에린 브로코비치 >의 줄리아 로버츠스러운 클라라의 회심의 반격으로 끝나는 짧은 엔딩에 비하면, 클라라의 과거와 현재, 기억과 일상, 사물과 주변을 두 시간 반가량 내내 차분하고 꼼꼼하게 관찰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클라라의 재구성’이야말로 이야기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정치적 주체의 현시에 가장 중요한 원리다. 멘돈사 필루는 고전적인 영웅 서사는 개인의 투쟁과 정의의 구현을 담아낼 수 없다고 믿는 듯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그가 궁금한 것은 개인은 어떤 질료들로 삶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삶은 어떻게 개인의 감정과 행동을 견인하는 준거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멘돈사 필루가 관찰하는 클라라의 삶,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 사람들 같은 삶의 질료들은 클라라라는 하나의 일관된 캐릭터를 목적으로 하는 인과율에서 자유롭다. 마치 격자를 짜듯, 그 질료들은 클라라의 상이한 욕망, 욕구, 불안, 당당함, 허전함을 영화 안에 배치한다. 그 격자 안에서 그녀는 당차고 고집 세지만 외로운 노인이고 유방암으로 가슴 하나를 도려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성적 매력을 소유한 여성이며 모든 이에게 너그러워 보이지만 결국 계층의 도덕률과 행동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산계급 중산층이다. 이러한 캐릭터 연구는 멘돈사 필루가 믿는 어떤 리얼리즘의 방식으로 보인다. 기실, 개인의 역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감정과 행동, 태도는 하나의 유형으로 수렴되지 않으며 종종 각각은 서로 대항하거나 모순된다. 영화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클라라의 입체적인 면들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영화가 차이와 모순으로 구성된 개인으로서의 클라라를 관객과 조우하게 하는 보다 흥미로운 방식은 다른 데 있다. < 아쿠아리우스 >를 언급하는 모든 평문이 빼놓지 않는 클라라의 이모 루시아의 서랍장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젊은 시절 유부남 애인과의 열정적인 섹스라는 루시아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품고 있는 서랍장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클라라의 현재에 머무르면서 과거의 현재의 공존함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사물이다. 영화 내내 감독은 마치 장난하듯 무심하게 이 서랍장을 힐끗힐끗 보여주면서 현재와 기억이 맺는 찰나적이지만 강렬한 순간들을 제공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등장하는 브라질 가수 타이구아라의 노래 ‘오늘 hoje’의 첫 소절이 들려주듯이(“오늘, 나는 내 시간들의 흔적들을 내 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다네”), 사물과 몸, 표정과 행동에 깃들어 있는 어떤 기억과 의지를 쳐다보는 방식이야말로 <아쿠아리우스>가 관객으로 하여금 클라라라는 한 개인을 경험케 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인 셈이다. 과거와 현재, 정신과 몸, 그것을 품고 있는 사물들과 사람들, 그것들이 채우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그것이 한 개인의 역사성을 구성하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인 양, 멘돈사 필루는 수 천장의 LP 컬렉션을 보유한 클라라와 똑같은 수집가(archivist)마냥 차곡차곡 그 질료들을 모아 쌓아나간다. ‘어떤 영화적/윤리적 방식을 통해 개인과 세계의 관계 맺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힘 관계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해석과 입장을 정립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영화의 정치성 논의에 있어 핵심적인 테제라면, <아쿠아리우스>는 분명 주체-영화-정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서사 영화다. 평론가 출신으로 늦깎이 데뷔를 한 멘돈사 필루의 첫 장편 극영화인 < 네이버링 사운드Neighboring Sounds >(2012)와 마찬가지로 < 아쿠아리우스 >의 또 다른 주인공은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브라질 해변 도시 헤시피다. 영화는 흑백 사진에 담긴 헤시피의 과거 모습과 파노라믹한 현재의 풍경 등으로 이 중요한 주인공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헤시피 내부로 줌인(zoom-in)하듯이 들여다보자면, 두 작품 모두에서 헤시피는 과거와 현재, 보존과 개발, 유산자와 하층민이 파이프 하나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기이한 구획의 도시다. 시간이 기입된 클라라의 몸과 그 주변의 사물이 그녀의 역사를 구성하듯 헤시피 역시 낙후된 건물과 반짝이는 초고층 콘도가 공존하며 그 역사를 현시한다. 아쿠아리우스가 개인-시간-공간의 관계맺음을 드러내는 알레고리적인 공간이라면, 헤시피는 ‘클라라의 암’의 세 번째 파트의 제목이 암시하듯 마치 암세포와 같은 대형 자본과 권력의 욕망이라는 위협이 그 질서를 재배치하는 위기의 공간이다. 고향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과시라도 하듯 멘돈사 필루의 카메라는 헤시피의 다양한 구석들을 비추면서 클라라-아쿠아리우스-헤시피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온고적인 수집광이자 시네필인 감독의 취향을 분명하게 영화에서 드러낸다. 그러나 클라라의 수집가적 면모나 영화를 가득 메우는 레트로 이미지들 혹은 감독 본인의 시네필적 흔적들(멘돈사 필루는 브라이언 드 팔마나 샘 페킨파, 로버트 알트만 등 70년대 미국영화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은 단순한 복고취나 노스탤지아의 취향 이상의 위상을 갖는다. 특히 영화의 공간적 교통과 그 경험은 줌이나 트래킹 같은 카메라 움직임이나 2.39:1 와이드스크린에 대한 미학적 고집, 70년대풍의 스프릿 디옵터 쇼트(특수 필터나 렌즈를 사용하여 전경의 피사체와 원경의 피사체 모두 초점을 맞추는 일종의 딥 포커스 화면) 등을 통해 스크린 위에 세밀하게 재현되는데, 이는 안과 밖, 정신과 몸, 개인과 사회의 관계 맺음과 그 인식이라는 정치적인 토픽을 관객-공간의 시각적 관계로 표상하는 영화적 원리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속에서 미디어는 보존과 수집의 물질적 근거이자 관찰/청취라는 인지의 매개로서 사려 깊게 언급된다. MP3 등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클라라와 젊은 기자가 나누는 대화나 보존상태가 엉망인 문서보관소의 광경은 현재를 구성하는 준거로서의 과거, 기억이나 인식 같은 정신적 작용을 가능케 하는 사물과 공간이라는 토픽에 대해 멘돈사 필루가 던지는 농담이자 비판이기도 하다. 이 모든 관심과 미학적 원리 안에서 소니아 브라가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존재다. 걸크러쉬의 할머니 버전으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브라가는 전무후무한 브라질 최고의 섹시스타지만 그녀의 존재는 단순한 스타 혹은 역할을 잘 소화하는 베테랑 여배우라는 의미 그 이상을 갖는다(원래 멘돈사 필루는 클라라 역의 배우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을 찾고자 했다). 트레이드마크인 풍성한 검은 머리와 당장이라도 < 거미 여인의 키스 >를 다시 찍을 수 있을법하게 나이가 무색한 몸매, 특유의 강인한 표정과 유방 하나를 절제한 가슴 등 소니아 브라가라는 한 여성 스타를 구성하는 과거, 현재, 신체, 표정, 카리스마는 스크린 위에서 매 순간 클라라라는 캐릭터와 마주하며 관객의 기억과 반응에 즉물적으로(viscerally) 접속한다. 영화의 유물론적 입장과 원리를 담아내는 또 다른 장으로서의 소니아 브라가의 현전은 ‘배우’라는 스크린 존재-공간이 가진 잠재적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예다.
잠시 방향을 돌려 존 포드의 무성영화 시대로 돌아가 보자. 존 포드는 거의 한 세기 전인 1917년, <토네이도 Tornado>(단편, 프린트 소실)로 데뷔한 이래 첫 토키 영화 <블랙 왓치 Black Watch>(1929) 전까지 모두 67편의 장 단편 무성영화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스트레이트 슈팅 Straight Shooting>(1917, 첫 장편)과 < 철마 The Iron Horse >(1924)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 두 편을 포함해 < 우리는 친구 Just Pals >(1920), <샴록 핸디캡 The Shamrock Handicap>(1926), < 3인의 악인 3 Bad Men >(1926), < 사형집행인의 집 Hangman’s House >(1928) 등에서 포드는 뛰어난 장인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필름들에 한정할 때, 무성영화 시대의 존 포드를 당대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올리기는 망설여진다.(물론 <켄터키 프라이드 Kentucky Pride>(1925)를 사랑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나 <형사 라일리 Riley the Cop>(1928)를 절찬하는 태그 갤러거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1894년에는 존 포드를 비롯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유난히 많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도 킹 비더, 조셉 폰 스턴버그, 프랭크 보재지 등은 무성영화 시대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영화사가 추앙하는 기념비적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들의 걸작 무성영화들에 비해 존 포드의 현존하는 무성영화들은 얼마간 성기고 거칠어 보인다. 무언가 허술해 보이던 존 포드의 무성영화들이 후에 존 포드 월드라고 불리어지게 될 거대한 세계를 향한 치열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나중의 일이다. 여기서 다룰 영화는 존 포드가 1928년에 내놓은 < 네 아들 Four Sons >이다. 이 영화는 많은 미국인들을 울린 성공적이고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이고 당대엔 절찬을 받았지만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앤드루 새리스나 태그 갤러거, 린지 앤더슨과 같은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도 훌륭한 작품으로 꼽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며 포드의 영화 이력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 네 아들 >이 탄생한 1928년은 기묘한 해다. 영화사상 첫 토키영화 < 재즈싱어 >가 등장한 것은 1927년이지만 이 해에는 물론이고 1928년에도 대부분의 필름들은 여전히 음성을 담지 않았으며, 토키 영화의 본격적 확산은 1929년에 가서야 이뤄진다. 대신, 마치 무성영화의 마지막 연도를 축복이라도 하려는 듯, 경이로운 무성영화들이 1928년에 쏟아져 나온다. 버스터 키튼은 < 스팀 보트 빌 주니어 >와 함께 그의 마지막 걸작 < 카메라맨 >을, 찰리 채플린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 서커스 >를, 킹 비더는 그들 사이의 우열을 논하기 힘든 위대한 무성영화 < 군중 >과 <쇼 피플>과 <팻시>를, 스웨덴에서 건너온 빅터 쇠스트롬은 당대의 여신 릴리언 기쉬와 함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 바람 >을,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조셉 폰 스턴버그는 에밀 야닝스를 기용한 < 마지막 명령 >과 조지 밴크로프트를 기용한 < 뉴욕의 항구 >를, 독일 표현주의를 이끈 또 다른 맹장이지만 무르나우에 가려진 폴 레니는 자신의 할리우드 대표작 <웃는 남자>를 내놓았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 프리츠 랑의 < 스파이 >, 마르셀 레르비에의 <돈>, 장 엡스탱의 < 어셔가의 몰락 >이 태어난 것도 이 해였다. 물론 이 목록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1928년의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거의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평자라도 존 포드의 < 네 아들 >을 1928년의 최고의 10편에 포함시킬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이 해의 영화들에 관해서라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물론이고, 차라리 감독 경력 3년 차에 불과했던 하워드 혹스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항구마다 소녀가 있다>를 더 앞세우게 될지도 모른다. 당대의 쟁쟁한 작품들에 비하면 < 네 아들 >은 왜소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포드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는 단순하다. 독일의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머니(베르늘 여사)는 네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둘째 조셉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전쟁이 터지고 두 아들(프란츠, 요한)은 징집돼 전사한다. 어머니는 곤궁과 비탄의 시간을 보낸다. 이어 막내 안드레아스도 징집되며 미국이 독일의 적국으로 참전하자 조셉도 미군으로 징집된다. 전장에서 조셉은 안드레아스의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이 끝난 뒤, 조셉은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하고 모자는 재회한다. 이야기만으로는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와 함께 존 포드의 대표적인 최루성 가족 멜로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존 포드의 가장 이례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의 영화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도 < 네 아들 >에서 포드의 터치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즉각 떠오르는 이름은 F. W. 무르나우다. 카메라의 움직임, 인위적인 조명, 심지어 연기 스타일에까지 무르나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영화를 보고 알기는 힘들지만 촬영 장소가 < 선라이즈 >의 세트이기도 했다.) 한 감독의 영향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존 포드 영화는 <네 아들> 외에 찾기 힘들다. 이 점이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조차 이 영화를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무르나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27년은 < 재즈싱어 >의 해이지만, 동시에 < 선라이즈 >의 해이기도 했다. 포드를 고용하고 있던 윌리엄 폭스는 무르나우의 < 마지막 웃음 >(1924)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 독일 감독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고, 무르나우는 1927년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 <선라이즈>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할리우드 감독들에게는 중대한 체험이었던 것 같다. 앤드루 새리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무르나우와 그의 UFA 동료들은 영화적 표현에 대한 할리우드의 사고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고 적었다. (무르나우의 UFA 동료들이란 무르나우와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와 유니버설에서 <고양이와 카나리아> 등 세 편의 호러를 만들고 죽은 폴 레니, < 메트로폴리스 >와 <마지막 웃음>으로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떠올랐고 1929년부터 미국에서 촬영과 연출을 겸한 칼 프로인트 등을 말한다. 프리츠 랑과 오토 프레민저가 할리우드에 도착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다.) 존 포드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 선라이즈 >를 보고 난 뒤 포드는 “지금까지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아마 앞으로 10년 안에 이보다 더 훌륭한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포드가 이 정도의 찬사를 바친 대상은 D. W. 그리피스, 그리고 역시 1894년생인 장 르누아르 정도다.) 그런데 <선라이즈>의 어떤 점이 존 포드를 사로잡았을까. 더 중요하게는, 무르나우는 존 포드 월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물론 확답은 불가능하다. 다만 < 네 아들 >에서 약간의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네 아들> #2 <마지막 웃음> < 네 아들 >이 무르나우의 노골적인 모방처럼 보이는 점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첫 장면(#1).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베르늘 여사 집으로 향한다. 이 노인의 수염과 인상, 체구와 제복, 그리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의 첫 장면(#2)에 등장하는 호텔 도어맨(에밀 야닝스)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3 #4 #5 전사 소식을 전하러 가는 우체부의 쇼트에서 그림자의 과장된 사용(#3), 경계선을 가시화하는 인위적 조명 기법(#4), 어머니가 떠난 네 아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5) 등은 특정한 유사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잘 알려진 무르나우와 독일 표현주의 본산인 UFA 스튜디오의 단골 기법들이다. #6 #7 #8 #9 #10 #11 무엇보다 < 네 아들 >의 특별한 점은 카메라워크다. 존 포드는 평균 4번에 1번 정도는 이동 카메라를 썼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네 아들>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카메라 워크가 있다.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지를 때 핸드 헬드 카메라(#6, 7, 8), 그리고 기차가 도착할 때 아마도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9, 10, 11)는 자기 과시적으로 보일 만큼 부드럽게 공간을 유영한다. #12 #13 #14 <마지막 웃음> 아무래도 존 포드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을 교본으로 삼은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에 영향받은 사람이 존 포드만은 아니다. 촬영기술과 그에 연관된 영상기법에 관한 한 <마지막 웃음>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페이드, 디졸브, 이중인화, 몽타주, 거울의 왜상 등 그때까지 개발되어온 기법들이 총동원되었고, 여기에다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시점 쇼트를 선보였다. 수평 트래킹은 돌리를 사용했지만, 공간의 안쪽으로 이동하는 수직 트래킹을 위해 프로인트는 무거운 카메라를 가슴에 묶고 움직이며 공간의 질감 자체를 변화시켰다.(#12, 13, 14) <마지막 웃음>은 최초로 본격적인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기록된다. 포드는 이전까지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지 않았으나 < 마지막 웃음 >에서 사용된 카메라 워크의 거의 모든 것을 < 네 아들 >에서 시도한다. 하지만 무르나우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이 시기의 다른 영화들 < 사형집행인의 집 > <블랙 왓치> 등을 제외하면 이후의 포드 영화에는 <네 아들>의 무르나우적인 카메라워크가 더 이상 눈에 띄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 아들>은 그저 일회적인 모방의 실험에 불과한 것일까. #15 #16 #17 #18 #19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네 아들 >과 포드의 이전 영화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모방될 수 있고 유행될 수 있는 이런저런 표현주의적인 기법이라기보다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연재의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포드의 프레임에서 종종 동굴을 보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런 느낌을 주는 첫 영화가 바로 <네 아들>이다. 이 영화는 공간의 깊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한다. 인물들도 가로축이 아니라 공간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의 혹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의 수직축을 따라 혹은 사선 방향으로 이동한다.(#15, 16, 17, 18, 19) 포드의 다른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무르나우의 영화에서도 이처럼 공간의 깊이에 거의 강박적으로 몰두한 장면은 거의 없다. 칼 프로인트에게 배웠고 후에 오슨 웰스와 윌리엄 와일러와 함께 과시적인 딥 포커스 화면을 만들어낸 그렉 톨랜드의 작품에서도 이 정도의 심도화면을 찾긴 힘들다. 물론 심도 화면은 이미 뤼미에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토마스 인스와 그리피스를 거치며 풍성해졌다. 포드의 이전 무성영화들에도 종종 아름다운 심도화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경 중경 후경을 모두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도 화면은 < 네 아들 >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프로인트의 수직 이동 카메라가 감각케 하는 공간의 아득한 깊이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물론 공간의 깊이 자체가 특별한 미학적 성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풍경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풍경은 자연 풍경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되지 않지만 프레임을 구성하는 물질적 환경을 뜻한다. 말하자면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추구하다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미지들의 특별한 표정과 강인한 침묵을 만나면서, 사건에 연루된 환경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사건을 초과하는 환경으로서의 풍경이라는 차원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예컨대 < 철마 >(1924)의 카메라는 인물과 행위에 집중하며 풍경은 사건의 장소라는 객관적인 지표로서만 등장한다. 하지만 < 네 아들 >의 카메라는 공간의 깊이에 몰두하면서 인물과 행위와 사건을 초월하는 풍경의 흔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20 <마지막 웃음> 이것은 무르나우나 UFA의 작업을 통해 직접 배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무르나우와 UFA 영화에서 앞서 정의한 의미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심지어 자연 풍경조차 모두 일종의 무대장치다. 그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객관적 장소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가 투영된 주관적 풍경, 혹은 배우의 표정 및 동작과 함께 불안과 히스테리의 정신적 상황을 구성하는 감정 이미지이다. < 마지막 웃음 >에서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환상에 빠지는 장면을 떠올려보라.(#20) #21 <애로우스미스> #22 <역마차> #23 <도망자> 독일 표현주의의 미학적 뿌리가 연극 무대였고, 무르나우와 폴 레니, 에른스트 루비치, 오토 프레민저 그리고 배우 에밀 야닝스가 표현주의 연극을 이끈 막스 라인하르트 사단에 속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풍경의 무대장치화 혹은 풍경의 심리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들의 공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물과 사건에 비해 부차적이었던 물질적 환경을 강력한 정신적 심리적 이미지로 변형시킨 것이다. 존 포드는 분명히 이것을 배웠고 이후의 영화에서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앞서 말한 장면 외에도 예컨대 <애로우스미스>(1931)의 한 장면(#21), 혹은 < 역마차 >(1939)나 < 도망자 >(1947)의 한 장면(#22, 23)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존 포드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풍경이 사건을 부차화하고 사소화하는 초월적 차원까지 밀고 갔다. 비유컨대, 그는 지평선을 발견한 것이었다. 만년의 존 포드가 영화를 찍는 방법을 묻는 어린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지평선을 프레임의 아래에 둘 건지 중간에 둘 건지 위에 둘 건지 그것만 알면 돼.”라고 대답했을 때 그가 말한 지평선이나, “내 영화의 진정한 스타는 대지”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대지는 바로 이 풍경의 다른 차원이었을 것이다. #24 그런 점에서 이 단순하고 감상적인 영화 < 네 아들 >에서 단 하나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바로 초반의 이 장면이다.(#24) 전경에 나뭇가지가 어른거리고 있고 중경에 어머니는 빨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후경에는 돌다리 위로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이 장면은 아름답다.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므로 더없이 화사하고 밝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말하기 힘든 비애의 기운이 있다. 그것은 단지 어머니가 혼자 빨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뭇잎이 어머니 앞에서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멀리 교각은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사람들은 아무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가 심도 화면에 매혹되어 이 장면을 찍었을지라도, 그렇게 찍힌 풍경은 불현듯 인물을 떠나고 있다. 포드의 세계가 이 장면으로부터 새로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계속)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가 나의 백한 번째 영화가 아니라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지난 백 편의 작품에서 도망쳐 새로운 느낌의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임권택 은 여러 자리에서 말했다. 두 번째 데뷔작. 다시 시작한다는 말. 영화사에는 두 번째 데뷔작의 역사가 있다. 이를테면 1950년, 로베르 브레송의 < 시골사제의 일기 >. 1978년, 고다르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 1979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 카메라 광 >. 1996년, 후 샤오시엔의 < 남국재견 >. 이들은 물론 각자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이 영화들을 자신의 두 번째 데뷔작이라고 불렀다.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보면서 그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두 번째 시작한다는 말. 이제까지의 영화를 제로라고 선언하는 것.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혹은 생겨난 것일까. 말하자면 결단. 그런데 어떤 결단? 서로 다른 판본의 대답. 그는 무엇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당신은 이 두 가지 질문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 중단되어야만 했다. 두 개의 무엇.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 앞에서 문득 멈추었다. 임권택은 무엇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영화 안에서 중단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중단되지 않았다. 그 자신이 한 말. 그래서 백 편의 영화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표현. 도망치다. 왜 버린다고 말하지 않고 도망친다고 말한 것일까. 임권택은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백 편의 영화라는 병풍. 나는 거슬러 올라가면서 셈하기 시작했다. (백 번째 영화) < 천년학 >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아흔아홉 번째 영화) < 하류인생 >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나는 백 편의 영화 안에서 한 편씩, 한 편씩 차례로 그 안에서 도망쳐야 한다, 는 말을 생각해볼 것이다.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나면 두 번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뜻이다. n + 1. 언제나 이미 시작된 시작. 이때 도망치면서 (두 번째로 만든) 첫 번째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말하자면 n - 1 이라고 불러볼 수는 없는 것일까. 거기서 멈추기.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무엇을 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에 대해서 모두들 무엇을 새로 더했는지를 셈하였다. 나는 반대로 그가 일백 편의 영화로부터 도망친 다음, 혹은 도망치기 위해서 시도한 뺄셈을 생각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때 뺄셈을 시도하게 되면 우리는 다소 난처한 논제와 만나게 된다. 거기서 빼야 하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들이 임권택 이라고 불러온 영화적인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우리는 뺄셈에서 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세계의 일부를 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는 언제나 영화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셈을 시도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반(反) 임권택적인 영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제까지 임권택이 만든 일백편의 영화와 싸우(기 시작하)는 (첫 번째) 영화이다. 혹은 외면하려는 영화이다. 이때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임권택 영화냐고 근본적으로 반문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달빛 길어 올리기>가 지나칠 정도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어서 두렵게 느껴진다. 그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은 영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은 임권택 영화 안의 내재적인 기호들 사이의 네트워크 안에서만 설명되어야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임권택이라는 일백 칸의 방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집. 그 집을 등 뒤로 하고 다시 그 집의 주인이 ‘도망치듯이’ 떠나기로 결심을 했을 때, 누구보다 그 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가 거기서 나가려고 할 때, 그 집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권택 그 자신일 것이다. 두 명의 임권택. 아니, 백 명의 임권택(들)과 한 명의 임권택.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임권택(들)과 거기서 도망치고 있는 임권택. 그런데 그 집에서 어느 문을 열어야 거기서 나갈 수 있을까. 그 문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무거운 빗장들.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정말 문일까. 그런 다음 마침내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문을 열고 문턱을 넘자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상한 시작.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첫 장면은 “이 영화는 전주시에서 추진 중인 조선왕조실록 복본화(複本化)사업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라는 자막이다. 두 가지 사실. 첫째, 이 사업은 전주시와 한국고전문화 연구원이 2008년에 시작해서 (영화가 이미 2011년 3월 17일 개봉을 끝난 다음인) 2012년 7월에 완료하였다. 이는 태종에서 명종까지 13대에 이르는 조선 전기 왕조실록을 제작 당시의 원본에 따라 재현한 것으로 806권 614책 5만 5130쪽에 이르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 15억 원의 국고를 지원했으며 이 작업을 위해서 전주를 비롯하여 전국 24개 업체에서 공급된 전통 한지가 3만 8,000장이었다. (조선일보 2012년 8월 29일자 김창곤 기자)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 사업의 진행 과정 중에 기획된 다음 전주영화제가 제작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 안의 대사에 따르면) 2008년 7월 15일이다. 그러니까 전주시가 막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시작했을 때 시작한 다음 영화는 그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본화 사업의 성공 여부를 이 영화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종종 이 영화에 비판적인 글들은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전주시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관한 정책홍보 영화라고 비평을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그 사업에 별 관심이 없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함께 시작한 다음 그냥 중간에 끝나는 영화이다. 둘째, 첫 자막이 끝난 다음 첫 장면은 전주시청 강당 회의실에서 전주 시장이 새로운 업무를 맡은 직원들에게 인사발령 임용장을 나눠주는 데서 시작한다. 청소과에서 근무하던 7급 공무원 한필용 주사( 박중훈 )는 이날 한 스타일 한지과로 새로 배속된다. 그런 다음 이 영화는 내내 한필용을 따라 진행된다. 아니, 한필용이 등장하지 않는 씬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카메라로서의 한필용. 이야기의 동선으로서의 한필용. 이때 처음에는 이 첫 씬을 무심코 보았지만 이때 임용장을 나눠주기 위해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송하진 전주시장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권택은 종종 (주연이 아닌) 어떤 인물의 경우 전문적인 연기자를 사용하는 대신 거기에 걸 맞는 이들을 현장에 초대하여 이들에게 그 배역을 맡기곤 하였다. 이를테면 <태백산맥>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공산군 장교들을 연기하는 (그 영화 촬영 당시의) 영화담당 기자들. 그러나 여기서 그는 그 자신이자 동시에 그 자신이 아니다. 그 대신 그 자신이 그를 연기한다. 이때 두 말의 차이를 생각해주기 바란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영화에 출연해서 그 자신이 항상 해 오는 업무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 행동은 그에게 익숙한 일의 일부이며, 그는 이 장면을 위해서 별다른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송하진 전주시장 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그 자신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는 세 종류의 연기자가 있다. 하나는 박중훈 , 강수연 , 예지원 , 안병경 처럼 전문적인 연기자들이 영화 속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 물론 그들은 전문적인 연기자들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 역으로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 한지 수집가로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한지제작소 사장으로 민병록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시청 국장으로 장제국 동서대 총장처럼 임권택 의 지인들, 혹은 영화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이들이 자신과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 그들이 아마추어의 연기자들이긴 하지만 종종 자신의 영화에서 그렇게 연기자를 선택하는 건 임권택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만일 척 보고 믿을만한 얼굴이나 살아온 모양새가 나지만 연기가 안 되는 사람과 연기는 잘 하지만 도무지 그 일을 했을 것 같지 않은 겉모습을 지닌 연기자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면 그 역할이 단역이면 단연 전자지요. 왜냐하면 모양새가 안 나면 그걸 설득시키는데 한참 걸리는 거예요. 그게 영화인 거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세 번째 경우이다. 우선 기술적인 설명. 이 영화는 전문적인 연기자 박중훈에서 시작하지 않고 전주시장 송하진이 그날의 하루 일과가 진행 중인 생활의 시간 안에서 시작한다. 전주시장 송하진에게 그 일은 항상 하는 일의 일부이고, 그 장소는 그가 생활하는 업무 공간의 일부이다. 부디 아무 것도 더 하지도 말고 덜 하지도 말아 주세요. 그때 박중훈은 그 장소에 들어와서 그 일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때 그 일과의 매카니즘 안에서 박중훈은 송하진과 연기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박중훈의 쇼트는 송하진의 쇼트와 서로 마주 붙어야 한다. 자크 오몽의 지적. 위대한 연기자들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순간은 나무 옆에 서 있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의 일부인 나무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나무와 경쟁해야하기 때문, 이라고 썼다. 이 첫 씬에서 임권택은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를 분리해서 찍은 다음 그 둘을 붙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둘이 하나의 프레임에 있는 경우는 없다. 프레임 안에서의 공존과 쇼트의 분리라는 문제. 이 방법은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일관되게 몇 차례이고 상대를 바꿔가면서 반복되고 있다. 이때 나는 분리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대신 두 개의 쇼트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박중훈의 쇼트(라고 여기서 부른 연기자의 쇼트)를 찍어본 연출자이다. 그러나 송하진의 쇼트를 찍어 온 연출자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손쉽게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송하진이라는 실재. 박중훈이라는 드라마. 이때 이 분리에는 송하진이라는 실재 안으로 박중훈이라는 드라마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견딜 수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송하진이라는 실재의 리얼리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어떤 구체적인 충실성에 대한 존중과도 같은 태도를 보게 된다. 이 장소에서 실재와 드라마 사이의 종합을 포기할지언정 그 둘의 어느 쪽도 다른 한쪽에 양보하거나 봉사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한 어떤 위장도 없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실재와 드라마, 현실의 일부와 허구의 이야기,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냥 간단하게 세계와 영화 그 둘 사이의 서로가 서로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둘 사이의 어느 쪽도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상처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했다. 현실이, 실재가, 세계가 상처 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연기가, 영화가 상처 난다는 말은 두 개의 연결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미학적 흔적의 고통이 뒤따른다는 뜻이다. 이때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영화의 어떤 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일까. 종종 비평은 이 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때로 이 둘 사이를 오갈 때 무언가를 위반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그것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약속이 있다. 물론 이때 여기서 그것, 이라고 불리는 수수께끼는 항상 미학적 전쟁터가 되었다. 대부분 우리들은 현실에서 시작해서 영화가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아왔다. 종종 이 과정에서 한쪽은 다른 한 쪽을 위해 봉사하거나 혹은 일부를 잘라 내거나 때로는 변형을 가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쪽은 다른 한쪽에게 어떤 불순물이 되어서 과도한 잉여의 불연속성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에게 많은 경우 그를 둘러싼 세계는 이야기의 풍경이었다. 종종 풍경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혹은 미장센의 일부로 그 자리를 차지한 다음 슬그머니 이야기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런 다음 인물을 설명하거나 혹은 칭칭 동여매듯이 그의 운명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다음, 의 연쇄적 사용법. 그런 다음은 여기서 중단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현실에서 시작해서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쇼트가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주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마주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서로 마주하는 순간. 그 둘을 움직이는 서로 전혀 다른 운동의 기록.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주인공이 작동하는 방식의 이야기와 인물이 작동하는 방식의 세계 사이를 분리시킨 다음 그 둘을 마주보게 만들고 있다. 이때 이 착상의 잔상들이 이제 서로의 쇼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을 건드리느냐는 질문이 되어 그 안에서 스스로 창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하나의 차원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뒤이어 이어지는 씬은 갑자기 이 영화를 원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자리에로 되돌려 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씬. 늦은 밤. 귀가하는 한필용.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을 따라서 걸어오면 그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 집이 기다리고 있다. 뇌경색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 효경(예지원). 한필용의 등 뒤를 따라가면서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장면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도 특별하게 우아한 순간이다. 또한 필용과 효경이 이야기를 나누는 씬은 매우 간결하게 그 두 사람의 지난한 삶을 소개한다. 바람을 핀 필용 때문에 효경은 뇌경색으로 고생하게 되었고, 게다가 아내 효경이 한지 장인 집안사람이라 시댁으로부터 천대를 받았으며, 그 아내가 어려서 고향을 잃어버려서 간절하게 한번은 그곳에 가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쓰러진 아내. 되찾아야하는 고향. 이제 이 영화가 나아가야 할 운동의 방향은 이미 여기서 결정된 셈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임권택은 이 장면을 매우 고전적으로 연출하였다. 무엇보다도 박중훈과 예지원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대부분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두 사람의 쇼트는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롱 테이크로 멈춰 선 카메라 앞에서 두 사람의 동선이 딥 포커스 안에서 이어지거나 아니면 두 개의 쇼트 사이에 위 아래로 분리된 두 사람의 육체의 일부가 중첩된다. 여기서는 이미 앞서 본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가 분리된 것과 완전히 반대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공간. 배우들의 연기. 그 안에 이야기 바깥의 실재는 그 방에 놓인 텔레비전 모니터 안에서 제한적으로 작동된다. 이때 임권택은 한편으로는 필용과 효경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방송물 <조선왕조실록 93년만의 귀환>을 보여준다. 이 방송 영상물의 쇼트가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독립적으로 우리에게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에 관해서 알려주기 위해 등장하지만 그러나 이 씬 안에서 이 쇼트들은 부분집합이다. 왜냐하면 재빨리 필용의 시점 쇼트가 이 장면들을 씬 안으로 다시 봉합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는 두 개의 모델이다. 그들은 각자 자명해보이지만 그러나 그 둘이 하나의 씬 안에 자리하는 순간 갑자기 세계와 이야기 둘 중 어느 쪽이 자명한 것인지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롤랑 바르뜨라면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썼을 것이다. 세계와 영화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새.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용법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는 인물의 쇼트와 세계의 쇼트 두 가지 방법 사이를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소 과도하게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집으로 들어가면 공존의 고전적인 운동에로 되돌아가고 세상 바깥으로 나오면 두 개의 분리된 쇼트들 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워진 위험한 범주들 사이의 마주침에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싶다. 이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골목길. 여기에 한필용이 세계로부터 자기 집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스테디캠으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기나긴 쇼트. 이때 임권택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골목길을 걸어가는 장면 위에 송하진 전주시장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세계로부터의) 청각적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등 뒤에 들러붙은 세계. 그런 다음 집 문 안으로 들어오자 그 청각적 신호는 중단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 임권택 은 세 번째 차원을 더한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한지제작업자들에게 설명하는 장면,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22분의 지점, 이 자리에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이 조수와 함께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등장. 지원이 나타나면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두 편의 영화가 된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그녀가 한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 달빛 길어 올리기 >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 그러나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원의 다큐멘터리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지 제대로 전체를 보지 못한다.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 촬영 장면들은 별다른 사건 없이 그로부터 45분후, 그러니까 1시간 10분 정도가 되었을 때, 아직 영화가 40분이 더 남아있는 데도, “촬영 쫑이에요”라며 지원이 필용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물론 그런 다음에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그녀가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를 끌어들여 과도하게 어떤 미학적인 게임을 벌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지원이 등장하면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그녀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에 매달린 전주시청 공무원과 그 사업에 관련된 사업자들 사이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던 이 영화를 갑자기 여기서부터 방향을 틀어서 한지 이야기로 옮겨간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처음 시작과 마지막 끝이 이상할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이다.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하게도 그 자리에 모두가 목청을 높이며 서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진정한 한지 장인은 구석에 앉아 술에 취해 졸고 있지만, 그렇게 슬그머니, 이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유일한 장인. 오직 그만이 천년을 견딜 수 있는 한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는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현실 속의 환상. 그런 인물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혹은 적어도 (이 영화의 자막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 바깥에 있는 인물이다. 실재 안의 증후. 그러나 그런 인물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실망스러운 실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동시에 등장한 두 인물. 그 둘은 서로 반대 반향에서 나타나서 이 자리에서 마치 교차하듯이 동시에 공존한다. 이때 지원은 영화와 세계 사이에서 영화 쪽을 향해서 우리에게 일정한 거리만큼 물러난 영화의 자리를 계속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그녀는 영화와 세계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기는커녕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거리를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전시하고 있다. 반대로 이 한지 장인은 천년을 가는 종이라는 한지에 대해 품고 있는 내밀한 의심을 역설적으로 긍정하는 표상이다. 세계 속의 조건과 관계로부터 초월적 인물이라는 설정. 그 안에서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의 긍정. 사실상 < 달빛 길어 올리기 >가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관한 영화라면 이 한지 장인은 매우 불합리한 잉여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한지에로 전회하면서 갑자기 이야기는 한지에 대한 존재론적 보증과 함께 세계와 이야기 사이의 부조화 사이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교환가치가 필요해진 것이다. 다소 서둘러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먼저 생각해보자. 이제는 이름조차 사라진 산속 깊은 월곡 마을 폭포를 마주보며 한밤중에 보름달 아래서 한지를 뜰 때 그들 중 누구도 이 종이로 조선왕조실록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 사업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다시 한 번 당신을 환기시키자면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이 진행 중에 (그것도 거의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영화는 이 세 명을 놓고 한필용이 이들 사이를 오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이때 이 영화는 무언가 자꾸 이야기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자꾸만 중단된다. 그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세계. 그저 놓여진 세계. 아무 것도 더 이상 손 써볼 수 없고, 거기서 어떤 것도 손대서는 안 되는 세계. 사실의 집합. 존재의 현상들. 그 사이에 선 영화라는 기록의 매체. 그러나 임권택 은 눈앞에 있는 존재들과 현상의 특징들을 찍었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를 담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어떤 곤궁에 처한 입장 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이상한 것은 영화 전체에서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씬과 만날 때마다 그것을 느껴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시적이기는 하지만 세계 속에서 존재론적으로 허약해보이고, 세계는 자명해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는 거리감을 끝내 좁히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유기적 관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한 대의 카메라처럼 한필용은 계속해서 이야기와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그들 사이의 동선이 되려고 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그 안에서 거의 기복을 느껴볼 수 없는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대부분의 모든 것들이 그냥 거기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서서 자기의 반경을 넘어서지 않는 정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제까지 자기가 해온 삶에 대한 반복. 그 반복 안의 일상. 종종 그 삶을 전시하고 있는 듯한 인물들. 그런 다음 그 상태를 영화가 살짝 건드려보는 방법을 취한다. 지원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선생님에게 한지란 무엇인가요. 작은 반응들.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 씬들의 연속. 여기에는 어떤 결정적 행동이나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그 무언가를 설득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영화와 세계 사이의 거리.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필용은 한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그러므로 한지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는 한지에 관한 정보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 세계를 돌아다닌다. 한지라는 기호. 그를 둘러싼 수 없는 정보들. 반복적인 설명. 그때 임권택 이 발견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한 대답. 그는 달빛을 바라본 다음 밤하늘에 휘영청 뜬 보름달을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두 번째 밤 장면. 서울에서 막 사업을 승인받고 집에 돌아온 필용은 기분이 좋아서 아내를 마루에 나와 앉힌 다음 한 가득 물을 담은 세수 대야를 들고 오면서 “달 따왔다”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아내의 발을 씻겨주면서 고등학교 시절 불국사 수학여행을 갔을 때 효경이 써서 필용에게 건네준 이규보의 시를 낭송한다. “산속에 사는 스님, 달빛이 너무 탐나 물을 길러 갔다가 달도 함께 담았네, 절에 돌아와서야 응당 깨달았네, 물을 비우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 영화 속의 네 명의 등장인물, 필용과 효경, 지원, 그리고 한지 장인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들이 달빛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달빛에 관한 시를 읽은 다음 그걸 건네 준 효경. 이 시를 읽고 “뽕 간 다음” 임신한 그녀와 결혼한 필용. 둘이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달빛도 좋은 데 불을 끄죠”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필용이 아니라 지원이다. 그리고 달빛 아래서만 천년 가는 종이를 뜰 수 있다고 배우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한지 장인. 그 네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달빛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달은 저 하늘에 뜬 것이며, 달빛은 세계의 구석구석을 비출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만이 그것을 바라보고 그런 다음 느껴본다. 그 말뜻은 달빛은 세계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석구석만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신기한 것은 필용을 매개로 한 효경과 지원 사이의 공명 현상이다. 이규보의 시를 쓴 사람은,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 효경이다. 필용은 지금 그걸 다시 효경 앞에서 낭송한다. 그러나 그 시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달빛 길어 올리기’로 정한 사람은 지원이다. 지원은 그 시를 낭송할 때 (영화 안에서조차) 아직 알지도 못한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이 시를 낭송한 씬 바로 다음에 지원과 한지 장인이 등장하는 씬과 우리는 만난다. 그래서 이야기 속의 이 두 사람은 이 시가 불러낸 등장인물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것이 이 두 인물에게 이상하게도 시적인 감흥을 감돌게 만든다.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이 영화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단어는 월곡(月谷)이다. 나는 이 지명이 전라북도 전주에 실존하는 마을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이름인지를 알지 못한다. (실제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월곡리가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필용의 말에 따르면 “대구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아닌 것 같고”라고 효경에게 말한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아내의 잃어버린 고향 월곡을 찾아다녔고 이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지명이 이 영화를 자석처럼 이끄는 것은 이 이름이 ‘달빛이 떨어지는 계곡’이라는 뜻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이 장소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아내 효경의 개인적인 기억의 지명이었을 뿐이었다. 필용은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의 고향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고향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월곡은 이야기의 외곽에 자리한 호명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규보의 시를 낭송한 다음 이야기 안으로 두 인물을 불러내고, 그런 다음 느린 속도로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서 한지에로 전회하면서 갑자기 월곡은 이 모든 인물들을 한 자리로 모으는 그 어떤 매개의 공간으로 조금씩 좌표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 장소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오로지 한지의 세계 내 존재의 보증을 온당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세계를 버리고 오로지 영화 내의 이야기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 현존재의 세계라는 현상을 버려야만 들어올 수 있는 잃어버린 고향. 말하자면 종종 마술처럼 작동하는 그 어떤 비밀이 담겨있는 말. 자기가 태어난 곳, 장인이었던 효경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 아주 오래 전 한지 장인에게 종이 뜨는 법을 가르쳤던 사람이 효경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 장소에 이르러서야 듣게 된다. 월곡은 <달빛 길어 올리기>가 세계라는 현상과 이야기라는 구조 사이에서 끈질기게 두 개의 씬을 오가면서 반복적으로 겪는 불안 속에서의 영화적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갑자기 물러나는 장소처럼 보인다. 하여튼 일상적 흐름 바깥으로 나와야만 구할 수 있는 대답. 진정한 한지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나요. 그건 지금 세계 안에서 불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천년을 가는 한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헛된 것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버리고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거에요. 필용과 지원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네, 맞아요, 그것이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나요. 과거의 유산 속에 있습니다. 그저 남겨진 것만 남았을 뿐입니다. 동어반복. 필용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 지원은 여기서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실패했음을 느낀다. 다시 우리는 정신적인 대답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때 임권택은 자신이 쫓아낸 것을 여기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정보의 세계. 존재의 표면들. 세계는 한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자기의 수행적 차원이 종료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거기엔 (천년을 가는) 한지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바깥으로 나올 필요를 느끼게 된다. 필요라는 요청. 그 무언가에게 해야 할 상징적 위임. 세계 속의 누구도 그 위임장을 받을 생각이 없다.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해지는 것은 세계와 이야기 사이의 절대적인 분리이다. 그 사이에 생겨난 틈새. 월곡은 정확하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런 다음 영화는 월곡으로 들어온다. 이때 당신은 이 영화가 다시 월곡에서 나가는 장면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장면 전체는 두 가지 모두로 읽힐 수 있다. 하나는 이 영화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는 방법이다. 사실상 이 장면은 어떤 목표를 가지지 않은 행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행위는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1시간 38분 지점에서, 필용과 한지 장인, 그리고 그의 아들과, 금둔사 주지스님이 ‘사라진’ 월곡 마을 깊은 계곡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갈 때 화면 가득히 가로 질러 걸려있는 ‘출입금지’라는 플랫카드는, 물론 여기가 사람들의 손이 잘 미치지 않게 잘 보존된 장소라는 정보의 기능을 하지만, 오히려 더 나아가 세계로부터 떨어져나간, 현재의 시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불가능의 장소에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출입금지’의 영화적 표지판의 신호를 잘 알고 있다. 가장 유명한 예. 오손 웰즈의 < 시민 케인 >의 첫 장면. 혹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 그들은 여기서 세계로부터의 어떤 간섭도 없이 ‘천년을 가는’ 한지를 만들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런 다음 이 자리에 필용은 차례로 초대한다. 처음에는 아내 효경을, 그런 다음 한지에 대한 다큐멘터리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만든 지원을 부른다. 지원은 카메라를 들고 이 장소를 찾아온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모두 끝났고, 이미 시사를 마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는 “선을 본다”면서 시사를 마치고 필용에게 인사를 한 다음 서둘러 전주를 떠났고, 그런 다음 그녀는 영화에서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찍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일까. 물론 가장 따분한 대답은 보충 촬영을 위해서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 장면 전체는 세계 안에서 마주친 그 모든 한지에 대한 불만족에 대한 대답처럼 진행된다. 필용은 끊임없이 한지 장인에게 질문한다. “정말 여기서 천년가는 종이를 뜰 수 있을까요?” 한지 장인은 대답한다. “여기가 선녀님들이 내려와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의 폭포 계곡이여,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도원경이나 마찬가지여, 이런 데서 천년 종이를 뜨지 어디 가서 천년 종이를 떠”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도원경. 불가능한 장소. 말하자면 환상의 공간. 그냥 단 한 마디로 월곡. 효경은 여기서 잃어버린 자기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한지를 만들던 모습을 재현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지원은 진정한 한지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온다. (세계 안의) 불만족에 대한 (이야기의) 만족스러운 대답. 이때 이 장면 전체를 읽는 다른 또 하나의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을 모두 하나의 꿈으로 읽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꿈이 도피가 아니라 욕망의 실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좀 더 시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꿈을 유지하기 위해서 꿈 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내부라는 잉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세계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여기서 화면 가득히 보여주는, ‘출입금지’는 얼마나 적절한 보호막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마지막 장면을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다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과도하게 초월적인 정신에 몰두함으로써 사로잡히게 된 지나치게 시적인 대답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장면은 어쩌면 세계 바깥에서 실현된 저승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낮에 그들은 잠들고 밤에만 일어나서 그들은 천년을 가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잠들어버린 낮의 시간. 깨어난 밤의 시간. 여기에는 과거의 시간에서만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슬픔이 감돈다. 지나가버린 시간. 잃어버린 시간. 그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때 어쩔 수 없이 이 장면에서 바로크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 느껴보는 멜랑꼴리.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어떤 행동도 완료되지 않은 것이지만(우리는 이 장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장의 종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냥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그들의 행위가 완수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그들의 행위가 충만했음을 알게 된다. 밤은 끝나지 않았고, 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떨어지는 보름달 달빛을 보면서 효경은 이렇게 말한다. 천천히 한 글자씩, 한 문장씩,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당신께서도 음미하시길. “달빛은 아무리 바라 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아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는 친근한 빛으로 조용히 어둠을 밝혀요. 그 고요하고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품성이 달빛과 너무 닮았어요.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고 담담하고 조용해졌을 때 한지와 같은 달빛은 한가득 길어 올려질 거예요.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게 아니에요. 달빛은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소 한가득 길어 올려지는 거예요” (계속) 2010년 11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전주영화제 각본 임권택 각색 송길한 , 김미영 촬영 김훈광 음악 김수철 미술 주병도 편집 박순덕 박중훈 필용 예지원 효경 강수연 지원 안병경 덕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