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워 3
- 감독
- 브렛 래트너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성룡, 크리스 터커, 막스 폰 시도우, 사나다 히로유키, 이반 아탈, 쿠도 유키
영화 동아리 시절. 매일 밤 음주 70% 저질농담 20% 영화 얘기 10%의 함량으로 지새며 아침 해를 맞이하던 때였다. 당시 나와는 꽤 학번차이가 많이 났던 선배가 ‘너 이런 영화 아냐?’라며 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영화판에서 10년이나 연출부 생활을 하던 두 사내가, 인생 역전을 꿈꾸며 현금수송차량을 탈취한다는 내용이었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에 나름대로 재미를 느껴왔던 바이고, 또 한국에 그런 장르 영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때였기 때문에 < 랏슈 >라는 좀 이상한 제목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 선배는 넌 평생 볼 일 없는 영화라며 마치 전설 속의 무엇처럼 말했지만, 섭섭한 소리. 영상자료원에 비디오테이프가 있다. 영화는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는 여자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마도 명동으로 생각되는 곳.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 한 여인의 몸이 추락한다. 땅에 부딪히는 순간 감독의 ‘컷!’ 소리가 들리며 그것이 마네킹임을 알게 된다. 연출부로 일하고 있는 택호( 송승환) 와 촬영부인 영준( 최영준 )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영화인이다. 하지만 십 년째 이러고 있는 본인들의 처지가 불쌍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택호는 영준에게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죽여주는 계획을 풀어 놓는다. 그것은 가짜 영화 제작사를 차리고, 실제 현금수송차량이 지나가는 시간, 장소에서 영화를 찍는 것처럼 위장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들에게 차량 탈취를 시키는 것이다. <서울 루팡>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가짜 영화 계획은 탈 없이 성공한 듯 보였다. 그들은 탈취한 차량의 돈을 서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의 어느 산속에 묻어놓고 1년 후에 찾기로 했으나, 돈은 사라지고 처음 보는 사람의 시체가 누워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때부터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갖 곳을 수소문하는 택호와 영준. 알고 보니 택호는 단골술집 마담인 혜란의 술수에 걸려들어 이용당한 것이었고 혜란 역시 영화 제작사의 사장인 황사장(박용식)의 사주를 받은 것이었는데. 영화의 초반은 상당히 재미있다. 십 년째 영화판을 전전하지만 늘 구박 덩어리에 언제 감독 입봉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가진 돈도 없어 깡소주를 까거나 단골 술집에 가 남은 술을 요구하는 택호와 영준(이 부분은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이 가짜 영화 촬영을 하며 현금수송차량을 탈취하는 부분까지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을 만큼 썩 괜찮은 연출을 보여준다. 늘어지지 않는 진행과 필요한 부분을 적절히 보여주며 흥겹게 도둑질의 과정을 그린다. (개그맨 백재현 이 앳된 모습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돈의 행방을 찾는 모험은 허탈할 만큼 아쉽다. 훔친 돈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관객으로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들의 탐정 같은 활약일 테다. 그러나 택호와 영준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아 어떡하지.” “어쩐담.” 을 연발하며 불쌍한 얼굴을 하고 수소문 한다. 원래도 불쌍한 얼굴인데 더 불쌍하게 영준은 여장을 한다.(말투도 여자 말투 흉내를 낸다.) 수배 전단이 뿌려져 정체를 감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둑질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 도둑들 >이 그렇고 < 리얼 맥코이 >가 그렇듯이 멋있어야 한다. 그것은 장르의 법칙이다. 그러나 택호와 영준은 지질하기만 하다. 그렇게 돈을 찾아 헤매던 중간 중간 영준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자수하자며 잉잉 울고, 택호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럴 수는 없다고 달래고. 이 안쓰러운 기분. 택호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영준 그러니까, 시작은 현금 탈취인데, 진행될수록 휴먼드라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원동력은 ‘돈을 찾는다’가 아니라 ‘이 불쌍한 두 영혼이 결국 어떻게 될까’ 가 되어 버린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게 되면 돈의 행방은 궁금하지도 않다. 얘네가 이 곤경을 어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가 관건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80년대 한국 영화이니 잘 끝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되면... 거 참 예상 밖의 엔딩이 우리를 기다린다. 모든 범죄를 지휘한 황사장을 찾아낸 택호와 영준은 그를 잡기 위해 뛰어다닌다. 마찬가지로 최종 보스의 체통 따위는 내다버린 황사장도 뛴다. 마치 통과 제리처럼 건물 안에서 서로를 쫓고 쫓기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참 안됐다는 생각 이상 어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탄 황사장이 머리를 벗는다. 가발이었던 것이다!(고 박용식씨가 앞서 머리가 있는 모습으로 출연하고 있어 아, 그때는 두발이 있으셨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장면의 충격은 꽤 크다. 물론 너무 뜬금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고서는 황사장은 포위된 경찰과 구경꾼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니 이 영화는 범인이 잡히지 않는 영화의 몇 안 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갖다 붙이자면 < 살인의 추억 >의 선배쯤이라고나 할까. 사라지는 황사장 뒤로 경찰에게 체포된 택호와 영준의 억울한 외침이 들리지만 영화는 그렇게 끝나고 만다. 생각해보면, 장르 영화라고 시작은 했지만 결국 뛰어도 날아도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를 표현한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택호와 영준은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혜란이 전달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어찌어찌 일은 해내지만 결국 누군가의 손 안에서 놀아난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봉원 감독은 전작 < 내일은 뭐 할거니 >를 통해 담담한 일상 속에 현실 풍자를 녹여내 당시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검열 당국의 폭력 속에 많은 부분 삭제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의 경험이 < 랏슈 >를 조금 애매한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일이다. < 랏슈 >는 ‘RUSH’를 발음한 것이다. 옛날 신문에도 ‘러시아워’를 ‘랏슈아워’로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러시 필름’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영화판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설정된 제목일 테다. 장르 영화 제작이 원활하지 않았던 1989년에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서 꽤 모험이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는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어서 <랏슈>의 소재선택은 나름대로 과감한 면이 있다. 꽤 섭섭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 매력적인 소재와 괜찮은 연출의 초반부를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개인 블로그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간단히 올렸더니, 이봉원 감독 본인이 찾아와 ‘6공 시절에 영화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라는 댓글을 남겨주셨다. 이해가 간다. 전작 < 내일은 뭐 할거니 >를 제작하면서도 검열 삭제를 통해 큰 상처를 입은 뒤였다. 당시 많은 영화들이 진부한 가치관을 보여주며 제자리걸음을 할 때, 나름대로의 야심으로 색다른 영화를 들고 나왔지만 흥행에도 실패 하고 말았다.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 갈 길 모르고 한숨 쉬며 방황하듯 돈의 행방을 찾는 택호와 영준처럼, 이봉원 감독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많은 제한들 속에서 어쨌든 영화 한 편 만들겠다는 의지만 남았을 것이다. 범인이 잡히지 않고 도심 속으로 사라지고, 피해자인 택호와 영준이 황사장이 저기 간다며 고래고래 악을 쓰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경찰의 모습은 이봉원 감독의 작은 반항은 아니었을지. <랏슈> 이후 이봉원 감독의 연출작은 확인되지 않는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송승환 최영준 감독: 이봉원 각본: 이봉원 개봉극장: 허리우드(서울) 관람인원: 3,424(서울)명
원신연 감독, 공유 주연 < 용의자 >는 왕년의 ‘레전드’ 스턴트맨들이 총집결하여 반가웠다. 최태환 무술감독과 원신연 감독의 동생인 배우 원풍연 , 그리고 성룡이 이끄는 무술팀 ‘성가반’에서 이충지, 박현진 등과 함께 맹활약한 한국인 이인섭 도 눈에 띄었다. 최태환 감독이 소속된 무술팀 ‘트리플A’(All About Action)는 이인섭이 < 러시아워3 >(2007)를 끝내고 돌아와 오세영 무술감독과 함께 < 왕의 남자 >(2005)에 참여하기 직전 공동대표로 꾸린 팀이다. 가장 반가웠던 인물은 바로 원진 이었다. 영화 속 청량리역에서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얼핏 왜소해 보이는 남자가 지동철(공유)과 싸우며 그야말로 날렵하고 화려한 발차기를 자랑했다. 가끔이라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스턴트맨들 중 정두홍 무술감독의 몇 안 되는 선배이자, 그가 머리 숙여 실력을 인정한 진짜 레전드가 바로 원진이다. 그들 대부분은 ‘밥풀데기’ 개그맨 김정식이 몸담기도 했던 ‘오뚜기 무술단’ 동료들이었다. 최태환 , 원풍연 , 이인섭 물론 그는 < 조폭마누라 >(2001), < 청풍명월 >(2003), < 낭만자객 >(2003), < 청춘만화 >(2006) 등의 무술감독이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실력자라 종종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무명 시절에도 왜소한 체격 탓인지 주연 여배우 대역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조폭마누라>에서 신은경 대역을 한 것도 역시 그다. 다소 중국스러운 이름 때문에 중국 액션배우로 아는 사람도 많았고, 실제로 홍콩 골든하베스트사의 초청으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바로 < 가자왕 >(1992)에서 길게 머리를 늘어트리고, 다리를 뒤편 위로 치켜 올려 전갈 권법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그 자세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한 ‘공중 돌려 가위차기’는 홍콩 스턴트맨들도 한없이 부러워했다. 원진 을 포함해 역시 오뚜기 무술단 스턴트맨 출신의 원신연 감독이 옛 동료들을 불러 모아 완성한 < 용의자 >는 그야말로 훈훈한 ‘우정의 무대’라고나 할까. 여기서 떠오르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비록 전체적인 완성도는 미흡하지만 당대 ‘무술인’들의 ‘십시일반’ 정신으로 완성한 김춘식 감독의 < 고수 >(1997)다. 역시 스턴트맨 출신의 김춘식과 당시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원진 이 동료들을 규합해 ‘진짜 우리들만의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품앗이하듯 의기투합한 것. 비록 스타급 배우는 없고 제작비는 넉넉하지 못 했지만 스턴트맨들끼리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거기에는 ‘액션을 영화의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주재료로 써보자’, ‘우리도 남들 대역만 하지 말고 진짜 배우가 되어 보자’는 생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배경은 1930년대 일제치하, 친일파인 기봉( 장정국 )은 딸 승희( 김지은 )를 일본의 실력자 노무라( 최성 )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이에 승희는 연인 형철( 우승봉 )과 함께 돈을 훔쳐 달아난다. 전국을 떠돌던 그들은 우연히 차례로 변소동( 오동영 ), 조달구(김춘식)를 만나 도움을 얻게 된다. 기봉이 보낸 조직 ‘야수파’ 등에 맞서 승희와 형철을 도와주는 그들은 물론 돈 때문이다. 한편, 한 손에 갈고리를 하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고수(원진)는 조달구를 쫓는다. < 고수 > 출연자들 아쉬운 점은 역시 어설픈 유머가 난무하는, 물론 보다 보면 귀엽기도 한 이야기의 완성도다. 승희와 형철을 추적하는 조직의 이름이 야수파인 이유는 그들의 별명이 하나같이 멍멍이, 풍뎅이, 메뚜기, 반달곰, 올빼미 등 ‘야수’ 혹은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개의 귀 모양을 한 모자를 쓴 멍멍이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이인섭 이며, 승희와 형철을 쫓는 또 다른 3인조 중 핑크색 옷을 입은 남자가 바로 오세영 무술감독이다. 또한 ‘홀쭉이와 뚱뚱이’처럼 반목하는 변소동과 조달구는 서로의 이름으로 장난을 친다. 자신을 ‘조달구’라고 소개하자 변소동이 “좆 안 달고 태어나는 남자도 있당가?”라고 놀리고, 이에 질세라 조달구는 ‘변소똥’이라 부르며 달려든다. 이들이 등장해서 완성한 추격의 로드무비가 B스러운 것은, 바로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동료들을 규합해 영화를 찍고자 합의는 하였으나, 이 사람도 눈에 밟히고 저 친구도 눈에 밟히니 그저 엇비슷한 분량으로 몽땅 출연시킨 느낌이다. 그래서 친일파 기봉은 딸을 잡아들이기 위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야수파도 보내고, 혼성 3인조도 보내고, 다시 남성 2인조까지 보낸다. 게다가 서로 각자의 실력을 자랑해야 하니 의욕에 넘쳐 그야말로 영화 내내 묘기 대행진이다. 별것 아닌 동작도 굳이 날아오르거나 몇 번 굴러서 ‘짠’ 하고 잡아내는 식이다. 당연히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한 덤블링 하는’ 스턴트맨들이다. 단지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킬러를 보낸 인해전술의 추격극이 과연 있었던가. 원진 그래도 역시 실질적인 주인공은 가장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원진 이다. < 가자왕 >을 연상시키는 돌려차기에다 쉴 새 없이 ‘날고 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분명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적어도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대역도 속임수도 없는 진짜 퀄리티 높은 액션영화인 것. 원진의 또 다른 추천할만한 한국 액션영화로는 < 용호취 >(1988)와 <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1989)가 있다. 코흘리개 신인 정두홍이 참여한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는 그가 실력을 인정하는 두 선배 류창국 과 원진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들이 이른바 ‘아동용 영화’의 긴 암흑기를 지나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게 된 건 무척 뿌듯한 일이다. 한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김춘식 감독은 작년 조주현 , 전세홍 주연의 ‘리얼 액션영화’를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진짜 완성됐는지 어땠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 아는 여자 >의 패러디인지 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건 제목은 < 패는 여자 >였다. 오동영 김지은 감독: 김춘식 각본: 이무섭 개봉극장: 바다, 파고다4관(서울) 관람인원: 1,300(서울)명
샌프란시코 강력반 형사 하나가 단골 식당에 들른다. 언제나처럼 커피를 시키며 신문에 정신 팔린 형사. 그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사실 식당은 4인조 무장 강도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음에도 신문 삼매경에 빠진 형사는 종업원이 타준 커피를 받아 계산을 치르고 유유히 밖으로 나선다. 한 모금 커피를 맛보고서야 고개를 들고 식당을 쳐다보는 형사. 문에는 어느새 영업종료 간판이 걸려있다. 그가 나가자마자 작업을 개시하는 4인조 강도들. 손님과 주인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데, 식당 안쪽 문에 형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우뚝 서 있다. 그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강도들. 그들과 상관없이 형사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10년간 이곳에서 단골로 블랙커피를 마셔왔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너무도 단 커피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형사의 협박에 영문을 모른 채 되묻는 강도들. 분명 그 혼자 서 있는데 ‘우리’라니? 그러자 스미스와 웨슨과 나라고 대답하는 형사. 그의 ‘스미스 앤 웨슨’ 총에서 불꽃이 튄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3명의 강도. 그리고 인질을 잡은 한 명의 강도에게 총을 겨누며 AFI에서 선정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대사 6위 에 오른 바로 그 말을 건넨다. “Go ahead, Make my day!” (덤벼봐, 오늘 다 죽었어!) “Go ahead, Make my day!” 7~80년대 가장 파급적이고 논쟁적인 경찰영화였던 <더티 해리> 시리즈는 그간 도덕 교과서에 나올법한 모범적인 경찰 이미지를 걷어차고 악을 악으로 제압하는 이이제이식의, 다소 불경한 태도를 보이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성능의 매그넘 44를 들고 언제나 인상 쓴 얼굴로 당당하게 등장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렇다고 공권력에 대해 불신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나름의 소신과 임계치를 갖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가 이전에 연기했던 마카로니 웨스턴 속 ‘반영웅’ 총잡이들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대만 현재로 바뀌었을 뿐,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세력과 매스미디어의 탐욕 그리고 70년대 당시 인권 신장과 부흥으로 교묘히 법망을 악용해 피해가는 범죄자들과의 싸움은 과거 황무지 속 무법자들과의 결투와 다를 바 없다고 빗대는 듯하다. 히피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정치 못한 시선이나 보수·우경화된 내러티브가 종종 엿보이지만, 그런 동시에 사회적 입지가 약한 히스패닉과 흑인, 여성과 동양인을 각 시리즈마다 파트너로 택할 만큼 공정하고 진보적인 측면도 갖고 있었다. 그중 시리즈 사상 가장 흥행했던 < 서든 임팩트 >는 여러모로 더티 해리 영화들 중에서 인상적인 특징들을 보이는데, 우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유일하게 직접 감독한 작품이자 영화 내 그의 파트너가 등장하지 않으며, 시리즈의 배경인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 센폴로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유일하게 범인을 처단하지 않고 묵과해주는 파격적인 엔딩을 취하고 있다. 그나마 변함이 없는 게 있다면 시리즈 내내(는 아니다. 3편만 제리 필딩이 맡았다) 음악을 맡아주던 랄로 쉬프린 정도랄까. < 미션 임파서블 > 테마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그는 재즈를 차용한 리드미컬한 악곡으로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창출해내 귀를 사로잡았다. 이미 오랜 기간 방영된 TV 형사극 <매닉스>나 피터 예이츠 감독의 <불리트>를 통해 이런 장르에 최적화된 바 있는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도 그루브한 리듬에 탁월한 멜로디 감각으로 시니컬한 영화에 더욱 쿨한 감성을 채워 넣는데, 때론 멜랑꼴리한 라운지 음악으로 우수에 젖다가도, 재즈가 가진 즉흥성과 불협화음으로 혼돈의 시대상과 흉포한 야수성을 드러내고,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고유의 테마를 부여하며 최신 유행 스타일과 접목하는 등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물론 1편부터 5편까지 반복되는 더티 해리의 고유 선율은 존재하지만 이에 특별히 집착하기보단 더 확장되고 펑키한 사운드를 덧입히며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같은 형사의 단죄와 고독한 질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더티 해리>에서 락킹한 일렉 기타와 도시감각 넘치는 재즈로 기본 베이스를 잡았다면 2편 < 이것이 법이다 >에선 으스스하고 사이키델릭한 여성 보이스를 극대화시켜 역동적이고 폭력적인 색채를 더했다. 3편 < 집행자 >를 건너뛰고 10년 만에 시리즈에 복귀한 4편 <서든 임팩트>에선 시대적 유행을 받아들여 기본 그루브한 재즈 사운드는 유지한 채 DJ 스크래칭과 무선 경찰 주파수를 믹스시킨 그루브하고 박력 넘치는 메인 테마를 완성해냈다. 이는 당시(1983년) 가장 화두를 이끈 허비 행콕의 ‘Rock it‘을 연상케 만드는 파격적인 힙합 비트로 최첨단 유행을 지나치지 않고 접목시킨 랄로 쉬프린의 노련한 감각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거기에 그루브한 베이스와 열정적인 브라스 섹션이 어우러져 쉽게 잊혀지지 않을 더티 해리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물론 메인 테마 외 다른 큐들도 언더스코어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전의 <더티 해리>와 <이것이 법이다> 때보다 원숙해지고 절정에 오른 쉬프린은 더 크고 풍부해진 스트링 편성에 목관부와 혼의 강조, 그리고 신디와 어쿠스틱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 다양하고 깊어진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다 개인적이고 어두우며 침울해진 영화의 내용처럼 분열적이고 실험적인 큐들도 종종 눈에 띄는데, 트라우마로 가득한 놀이동산을 상징하는 카니발 사운드 (‘Remembering Terror’나 ‘Unicorn’s Head’)의 기괴한 변조와 인용은 여성 유린을 담은 남성 유희에 대한 음악적인 기믹이며, 악당들과 더티 해리와의 최종 대결에서 등장하는 ‘A ray of Light’같은 곡조는 얼핏 그가 주연하고 랄로 쉬프린이 음악을 맡았던 일련 서부극(<일망타진>이나 < 조 키드 >같은)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연상케 한다. 또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차 안에서 흐른 ‘Muder by the sea’의 초반부나 제니퍼와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You’ve come a long way’의 초반부는 라운지 스타일의 무드 곡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안타깝게도 사운드트랙엔 더티 해리의 주된 테마 선율로 만든 엔딩 크레딧 때 흐른 로베타 플랙의 주제곡 ‘This side of forever’가 실려 있지 않은데, 그 연주 버전인 ‘San Francisco after dark’로 조금은 해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든 임팩트>는 랄로 쉬프린의 가장 황홀했던 전성기의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이다. 이후 그는 브렛 레트너 감독과 < 러시아워 >를 함께 하기 전까지 주로 TV물이나 마이너급 영화들의 음악을 담당하거나 재즈 콘서트 작업에 매진했다. 점점 거장이 되어간 액션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달리 인상적인 필모를 쌓지 못한 랄로 쉬프린은 그러나 자신의 레이블을 런칭하며 여전히 현역으로 최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비록 상복도 작품복도 유난히 없던 그이지만, 누구나 들으면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전설적인 음악을 만든 그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의 진정한 마에스트로 중 하나다. 이견이 많았던 <더티 해리> 시리즈와 달리 전혀 이견 없는 스코어를 완성한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빛나는 노력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랄로 쉬프린의 이 강력하고 매력적인 사운드트랙은 영상도서관(F-0444)에서도 만날 수 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Murder by the Sea 3. Too Much Sugar 4. Frisco Night 5. Target Practice 6. The Road to San Paolo 7. Remembering Terror 8. Cocktails of Fire 9. Robbery Suspect 10. Ginley’s Bar 11. Another Victim 12. You’ve Come a Long Way 13. Darkness 14. Crazy 15. Hot Shot Cop 16. Alby and Lester Boy 17. The Automag 18. Unicorn’s Head 19. A Ray of Light 20. Stairway to Hell 21. San Francisco After Dark (End Titles) Bonus track: 22. Main Title (Alter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