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 감독
- 차룡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최태환, 양은용, 서인석, 차룡, 박영록, 이사비, 윤용현, 이재용, 김형식, 김용운, 김흥국, 박영록, 권성영, 이설희, 박칠용, 정남현, 한태일, 이승일, 이쇠안, 이길자, 신동원, 지성환, 조명행, 김상용, 태영, 이시은, 최동헌, 권회수, 심동표, 강풍, 김철준, 김석준, 박종석, 이성훈, 손혜순, 김건아, 김창현, 권오복, 맹양수, 정영화, 제갈창균, 이주철, 이명주
< 걸어서 하늘까지 >라는 제목에서 노래 가사가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지난 추억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너를 생각하게 하는데…” 가수 장현철이 주제가를 불렀고, 최민수 와 김혜선 이 모닥불 앞에서 눈물 흘리며 키스하는 명장면을 남긴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1993)가 있었다. 최민수는 거칠지만 깊은 순정을 가진 남자를, 김혜선은 그런 남자가 차마 다가설 수 없을 만큼 순수한 여자를 연기했다. 한 집에서 친남매처럼 자란 남과 여. 경찰에게 쫓기는 소매치기의 비루한 인생. 이들 앞에 나타난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여자를 살리기 위한 남자의 비극적인 희생 등의 테마로 당시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보다 1년 먼저 나온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도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소설가 문순태가 1979년 일간스포츠에 연재했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드라마와 영화에 깃든 감정의 결은 상당히 다르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이렇다. 드라마 속 물새의 죽음에서 비장함과 감동을 느꼈다면, 영화 속 물새의 죽음은 당황스럽다. 한집에서 자란 드라마의 남과 여와 달리, 영화의 물새( 정보석 )와 지숙( 배종옥 )은 일(?)을 하다가 처음 만난다. 경찰에 잡힐 뻔한 지숙을 구해준 물새는 그녀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독고다이보다는 식구를 갖는 게 낫지.” 물새의 조직원들은 모두 황새, 앵무새, 촉새, 참새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데, 지숙은 ‘날치’란 이름을 얻는다. 한 식구가 된 이들의 팀플레이는 꽤 멋스럽다. 소매치기에 대한 영화적인 매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눈을 속이는 손기술, 그런 손기술이 더하고 더해지는 팀플레이, 무엇보다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범죄에 비해 보는 이의 죄책감이 덜한 범죄라는 점에서 말이다. 심지어 이들의 일상은 꽤 낭만적이며 가끔은 따뜻하다. 일당 중 한 명인 꼬마는 어느 날 지숙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누나 오늘 참 이쁘다. 왕조현 같애.” 그런데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도 그놈의 낭만이다. 지숙은 어느 날 호텔에서 정만( 강석우 )의 지갑을 훔친다. 지갑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과 등록금 고지서가 함께 들어있다. 지숙은 자신 때문에 이 대학생이 공부를 못하게 될 거란 생각에 지갑을 돌려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만이 지숙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이때 지숙을 좋아하고 있었던 물새는 정만을 증오하게 된다. 물새는 지숙을 사랑하지만, 지숙은 정만에게 끌리는 마음을 다잡으려 하고, 그녀가 멀어질수록 정만은 집요하게 다가간다. 물새는 정만이 지숙을 갖고 놀다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만은 그런 남자가 아니다. < 걸어서 하늘까지 >는 < 게임의 법칙 >과 < 본투킬 > 등을 연출한 장현수 감독의 데뷔작이다. 더러운 독기로 보자면, 물새는 <게임의 법칙>의 용대와 ‘맞짱’이 가능하다. 물새는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 싶은 악당이 아니다. 그는 지숙을 사랑하지만, 그녀에게도 비열하다. 지숙에게 상처를 받을 때면, 자신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여자 오덕자( 송옥숙 )를 찾아가 위로를 강요하기도 한다. 분명 장현수 감독에게 물새는 <게임의 법칙>의 용대를 상상하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단, 용대가 가지고 있던, 나름 유쾌해 보이기도 했던 허세의 기운을 물새에게 찾을 수는 없다. 배우 정보석은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더해놓는 한편, 물새의 신경질적인 기질을 더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그가 연적인 정만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지숙에게 큰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는 모습들은 자기 파괴적으로 보일 정도다. 영화 개봉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보석은 “이전 작품에서는 주로 이성적인 인물이 대부분이서 가면을 쓸 수 없었고, 인위적으로 연기해야 했으며 인간미가 결여되어 허점이 많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내 감성에 가깝게 욕구를 폭발시켰다”고 말했다. ‘폭발’이라는 말이 맞는 듯 보인다. 드라마의 물새가 장렬히 산화했다면, 영화의 물새는 끝내 외롭게 폭발한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했던 지숙은 자신이 외면했던 소매치기 일당들의 음모로 과거를 들킨다. 지숙의 정체를 알게 된 정만은 흔들리고, 또한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지숙을 위해 돈을 구하려던 물새는 사람을 죽인다. 사랑하는 여자는 떠났고, 경찰이 뒤쫓는 상황에서 물새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때 물새의 선택은 1990년대 당시로써는 매우 영화적인 선택이었겠지만, 물새는 그리 영화적인 느낌으로 자살하지 않는다. 모든 걸 내려놓는 표정이었던 드라마의 물새와 달리, 영화의 물새는 아직 미련이 많아 보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술을 마시며 자신을 말리려는 지숙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그녀를 방 밖으로 밀어낸 후, 다시 손을 떨며 술을 마신다. 영화의 초반부, 물새는 자신의 부하와 구역을 뺏어간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며 엄포를 놓았었다. 하지만 진짜 자살을 결심한 순간, 물새가 혼자 있는 방안에서 느껴지는 건 그의 슬픔과 두려움, 후회, 짜증이 뒤섞인 피로감이다. 물새는 매우 아픈 얼굴로 기어이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그는 정말 힘들게 죽는다. 제발 누가 자기 대신 자기를 죽여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이렇게 죽는다는 표정이다. < 걸어서 하늘까지 >를 드라마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를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장면의 감정이다. 당시 한국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이토록 아프게 자살한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P.S < 걸어서 하늘까지 >는 장현수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이 영화의 각색을 맡았던 곽지균 감독의 작품들이 먼저 연상된다. 정보석 과 배종옥 의 만남에서 < 젊은날의 초상 >(1991)의 이영훈과 윤점숙이 떠오르고, 정만을 연기한 강석우 의 모습에서 < 겨울 나그네 >(1986)의 민우가 기억나는 것이다. (장현수 감독은 < 젊은 날의 초상 >의 조감독이었으며 각색에도 참여했었다.) 물새와 지숙, 정만 등 세 남녀가 엮인 심리적인 갈등 또한 그의 영화들에서 본 듯한 감정이다. 고 곽지균 감독은 7년 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걸어서 하늘까지>를 보다가 그의 영화들을 떠올린 지금도 5월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새로운 시작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한 시대의 마침표였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에서 이명세 감독은 이전과 판이한 시도를 선보였다. 요컨대 인공적인 세트 미학 탈피와 액션 장르에의 도전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공개된 때는 1999년 여름. 그 무렵의 한국영화들은 묘한 세기말적 감수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네 명의 사내가 이유 없이 ‘그냥’ 주유소를 턴다는 코미디 < 주유소 습격사건 >과 심해의 잠수함에서 공멸의 꿈을 꾸는 스릴러 < 유령 >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이 두 작품이 서사를 통해 자기파괴의 혼란을 담아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양식적인 면에서도 마치 지난 세기 액션영화의 관습들이 어지러이 뒤섞여 끓는 솥과 같았다. 낙엽 지는 가을에 시작해 겨울에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어쩌면 당시 개봉작들 중 세기말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40계단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우영민( 박중훈 )을 필두로 한 서부서 강력반 형사들이 용의자 장성민( 안성기 )을 72일의 긴 시간동안 추적한다는 단선적 구조다. 하지만 서사와 캐릭터에도 양면적인 혼란들이 담겨 있다. 영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우영민은 도입부에서 사채업자들과 혈혈단신으로 맞짱을 뜨며 자신을 소개한다. 옷차림부터 입버릇까지 형사라기보단 건달처럼 보인다. 김동석( 장동건 )을 위시한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정면을 향해 걸어오는 인트로 슬로모션은 조폭영화의 상투적 이미지에 더 가깝다. 반면 범죄자 장성민은 말수가 적고 진중하며, 첫 등장 장면에서는 형사의 클래식 패션인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다. 깡패 같은 형사와 형사 같은 범죄자. 둘은 결말부 겨울비 쏟아지는 진흙탕에서 대결하며 숫제 한 몸을 이룬다. 교란은 또 있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서사에는 끝끝내 밝히지 않은 채 괄호를 쳐 놓은 대목들이 존재한다. 가령 40계단 살인사건은 플롯의 핵심이지만 범행의 이유와 동기는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수사 도중 만난 장성민의 연인 김주연( 최지우 )을 향한 영구의 감정도 내내 모호하다. 하드보일드 필름 누아르의 공식대로라면 그녀는 명백한 팜므 파탈로, 주인공 형사를 유혹하여 악의 그림자에 발을 딛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설렘과 연민, 원한이 뒤섞인 감정으로 주연을 대하는 영구는 줄곧 그녀와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두 남녀가 술을 마시고 장을 봐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감독의 전작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마냥 로맨틱하게 연출되었다. 영화는 버디 형사물과 필름 누아르를 넘나들지만 둘의 관습을 오갈 뿐 어느 하나도 올곧게 따르지 않는다. 세기말적 혼란의 극치는 영화의 형식에 있다. “표현을 계속 바꿔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는 이명세 감독의 말대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에는 흑백화면, 프리즈 프레임, 분절적인 슬로모션, 옵티컬 스텝 프린팅, 애니메이션 효과 등 액션 표현의 실험들이 연출 테크닉의 백과사전마냥 펼쳐진다. 동석과 소매치기가 맞붙는 초반부 지하철 대결 신은 구도와 편집 호흡을 서부극 결투 장면의 관습에서 가져왔다면, 장성민의 부하 짱구( 박상면 )와 영구의 옥상 격투 장면은 만월의 정경과 너풀거리는 빨랫감부터 무협영화의 클리셰인 가운데, 또 다른 용의자 영배( 안재모 )와 영구가 주유소에서 맞닥뜨릴 때는 <요짐보>의 바람이 분다. 쌍권총이나 사무라이 검 대신 가스총과 진압봉, 잭나이프가 난무하는 육박전은 돌연 적과의 탱고로 변주되기도 하고, 펀치의 타격감은 만화적으로 과장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저 장르의 혼성 모방으로 세기말 징후를 담아낸 작품에 불과할까?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진정한 힘은 오리지널리티가 빛나는 순간들에서 나온다. 훗날 < 매트릭스: 레볼루션 >의 표절 설왕설래까지 낳은 대단원의 크로스카운터 액션은 물론, 달동네 골목길의 심야 추격전도 미증유의 것이었다. 부산 범일동 등지에서 촬영된 이 가파른 달동네를 포함하여, 영화는 유독 사라져가는 지난 세기의 공간과 풍경들에 집착한다. 재건축을 앞둔 주연의 낡은 맨션, 인질극이 벌어지는 이발소, 거기에 대미를 장식하는 곳은 태백의 폐광이다. 작품세계의 관점에서 이것은 이명세 특유의 인공적 세트 공간에 바치는 고별사이기도 하다. 한 시대와 작별을 고하는 것은 공간의 선택만이 아니다. 애초 영화의 화자는 동석으로, 그의 내레이션은 사건의 경과를 해설한다. 늘 원칙을 준수하고 범죄자들에게도 반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영화 후반 장성민에게 피습당해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후에는 수사를 위해 폭력적인 수단도 불사하는 형사 영구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순수의 집행자가 잠든 사이, 자신의 법도에 따라 악을 제압한 흉폭한 집행자는 엔딩 컷에서 ‘쨍하고 해 뜰 날’의 미래를 해맑게 기약한다. 그리고 그 기약대로, 새로운 세기의 한국 경찰영화를 열어젖힌 것은 강철중(< 공공의 적 >)과 박두만(< 살인의 추억 >)이라는 영구의 직계 후예들이었다.
김정용이라는 분이 계시다. 그는 많은 권격 영화를 연출해 이름을 알렸다. 6~70년대 스크린을 수놓던 수많은 액션 배우들이 그의 지시 아래 주먹을 지르고 발을 휘둘렀다. 그 명성은 무술영화의 본산인 홍콩까지 알려져 비록 공동감독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스타 홍금보와 함께 < 귀타귀 2 >를 만들었다. 또 죽은 이소룡의 영상을 편집해 집어넣어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한 한중합작영화 < 사망탑 >에 각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며 걸작을 만드는 데 보다는, 당대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흡수하여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인기를 끄는 타입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짝퉁’이겠고 좀 더 좋게 말하면 ‘재해석’이라 말할 수 있다. 소림사를 무대로 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자 < 소림사 주방장 >을 만들어 크게 히트를 쳤고, < 취권 >이 인기를 끌자 그는 황비홍(성룡)이 아니라 소화자(원소전)의 캐릭터를 가져와 < 무림걸식도사 >를 만들어 팬들의 뇌리에 큰 인상을 남겼다.(여담이지만, 이 영화에는 80~90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책임졌던 왕룡 감독이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였다.) 특히 그의 페르소나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작품을 함께한 정진화 는 앞서 말한 작품들은 물론 < 복권 >, < 무림사부대행 > 등으로 ‘짝퉁 성룡’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짝퉁 성룡 뿐 아니라, 짝퉁 이소룡들의 큰 형님뻘 되는 거룡, 당룡도 그를 거쳐 갔다. (이 영화들은 그나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나은 편이고, 괴작들을 찾는 팬 사이에서 더욱 유명세가 높다. 인디아나 존스와 소림 무술의 기괴한 만남 < 아라한 >,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악명이 높은 강시 무협 < 소화성 장의사 >,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괴수물의 재앙 < 비천괴수 > 등 대부분은 자료가 없어 볼 수 없는 ‘구전 괴작’들이다.) 오늘 소개할 < 소림십대여걸 > 역시 그런 종류의 영화다. 소림xx제자, 소림xx방 같은 영화들이 유행하자 우리의 김정용 감독은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 소림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 여인들이 청나라에 ‘공물’로 바쳐지던, 아마도 병자호란 직후의 어느 즈음. 압록강 인근 어딘가에 위치하는 ‘성도사’라는 절에 자매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일가를 몰락시킨 ‘이귀’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이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청나라의 부자. 일종의 인신매매범으로 조선 여인들을 납치하여 팔아먹고, 그 과정에서 잔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이다. 이귀는 문화재 절도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아들인 흑풍을 시켜 성도사의 보물인 ‘황금약사여래상’을 약탈한다. 절의 주지 삼장법사는 청나라에 잡혀간 여인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 열을 모아 함께 복수하라고 일러준다. 미후, 미사는 열 명의 여인을 모아 황금약사여래상을 되찾고 이귀에서 복수를 해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 헤라클레스 ’적 고난보다는, 동료를 모으고 그들이 각기 다른 스킬을 가져 도와가며 펼치는 ‘ 반지의 제왕 ’ 같은 모험담을 좋아한다. < 소림십대여걸 > 역시 그런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꽤 재미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심은 어떻게 재미있는 그림의 다찌마리를 만들 것인가에 더 치중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을 ‘화냥년’의 배경이 된 시대로 설정하고 여자들에게 무술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뿐이다.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점으로 무공을 펼친다든가 하는 것도 없다. 그냥 맞짱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분명 10명의 여걸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는 것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 영화에서는 그냥 살이 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좀 남자 같거나... 하는 식의 특징만 주어졌을 뿐 그다지 특별난 무공들은 없다. 사실 마지막 전투까지 진행하면서 그들은 하나씩 몸빵을 하고 퇴장하고 마는 정말이지 으악새. 그러다보니 이게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미후 역을 맡은 당시 미녀 권격 배우로 유명했던 김명아 선생이 이 영화의 반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무리 남성과 다를 바 없는 무술이라 하더라도 선천적으로 여성이 가지고 태어난 곡선이 거칠기만 한 격투 장면을 좀 더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걸 즐길 새도 없이 여기저기 실소가 터지는 장면들에서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싸우기로 하고 모인 처자들이 힘들다고 도망을 가려 하자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심각한 얼굴을 한 미후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린 여자라고 방관만 해야 옳은가요. 나라가 약한 결과입니다. 나 하나만 편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넋두리였어요... 편히 쉬세요....” 라며 설득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대사를 치기도 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시대 배경을 그렇게 하고 보니, 뭔가 이야기는 만들어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서 였을까? 어차피 도둑맞은 여래상 찾고 이귀한테 복수만 하면 되는데, 중간에 이야기가 많다. 삼장법사가 죽고, 백년사의 송월법사를 찾아가고, 이귀는 백년사의 사천왕상을 훔치려 하고, 그 와중에 여걸들 중에 스파이가 있는데다가 또 다른 여걸은 잃어버렸던 서방님을 찾기도 하고... 스토리 진행해야지 다찌마리는 채워 넣어야지 게다가 이 영화의 카피가 ‘82년은 여성 코믹 액션의 해!’ 였으니 코미디도 해야 하고... 제대로 굴러가기 참 힘든 상황은 맞는 거 같다. 그래도 권격 영화의 황금기를 보냈던 사람들인 만큼 액션은 상당히 멋진데, 김명아 와 정진화 그리고 이귀(배우 이름을 찾지 못했다)의 3인 격투장면은 상당하다. 특히 싸움의 초반에는 이귀가 자신은 장애인이라며(이런 설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수세에 몰리니 벌떡 일어나 발차기를 한다) 의자에 앉아 초식을 펼치는 장면이 있는데 박력이 대단하다. 물론, 이런 이귀의 사망이 있는 줄도 몰랐던(언급도 없었다) 함정에 빠져 죽는 허탈한 것이긴 하지만. 이귀가 죽자마자 ‘감사합니다’가 떠오르며 가슴을 두 번 때리는 야속한 우성프로덕숀.. < 소림십대여걸 >은 무협영화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 갈 때쯤 행해진 여러 시도 중에 하나였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끼얹은 팩션의 형태를 취해보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오늘도 실패다. 전반적으로 허탈한 이야기와 뜬금없는 애국심 그리고 약간의 괜찮은 다찌마리로 대충 빚어진 영화다. 감독 본인이야 안타깝겠지만(필모그라피를 봐서는 그닥 안타까울 것은 없을 듯하나) 이런 영화의 깨알 같은 재미를 찾는 나 같은 관객도 있는 법이니,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한 것일지도. 김정용 감독은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이어오다가 2001년 < 우먼 파트너 놀자 >라는 기묘한 제목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김명아 김해은 방희정 감독: 김정용 각본: 윤석훈 개봉극장: 아세아(서울) 관람인원: 37,28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