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와 맥스
- 감독
- 아담 엘리어트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토니 콜렛,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에릭 바나, 배리 험프리즈
< 메리와 맥스 >(2009) 이후 6년 만에 애덤 엘리엇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 어니 비스킷 >(2015)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작부터 가슴이 설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독의 신작은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어니 비스킷 >은 감독의 전작들과 다름없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색감을 제거한 흑백 화면의 차분한 정서와 미니멀한 연출 스타일도 그대로 이어진다. 간결하고 명료한 스토리와 함께 희비극이 교차되면서 드라마와 유머를 맛깔나게 그려냈던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전사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19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파리지앵 어니 비스킷은 박제사이다. 어니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니는 후천적 청각 장애인이다. 어린 시절 여름 캠프에서 만난 어느 고약한 아이의 장난으로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어니의 기구한 운명은 어쩐지 감독의 작품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운의 아이콘들과 많이 닮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암울한 어니의 유년 시절에도 네넷이라는 옆집 소녀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있다. 새를 좋아하고 머리에서 계피가루 향이 나는 네넷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어니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친구이자 그의 첫사랑이다. 어니는 늘 그녀와 베니스행 신혼여행을 꿈꾸며 풋풋한 첫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뿐, 독일 침공과 동시에 유대인이었던 네넷과 그녀의 가족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어니의 첫사랑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세월이 훌쩍 지나 노년이 된 어니, 네넷이 남기고 간 오리와 단둘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어니 앞에 죽은 비둘기가 우연히 떨어지게 되고, 이를 계기로 어니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베니스행을 감행한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늘 계획한 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특히 꼬일 데로 꼬인 지지리 운도 없는 어니의 인생이 그렇게 쉽게 술술 풀릴 리가 없다. 그토록 꿈에 그려왔던 베니스 대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황량한 호주의 오지 마을뿐. 여기까지의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가 어쩐지 그의 또 다른 단편 < 하비 크럼펫 >(2003)을 닮아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라졌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였던 이전의 수동적인 캐릭터들과 달리 어니는 용기를 내어 스스로 뭔가를 쟁취하고자 노력한다. 인생이란 게 전적으로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운명에 달린 것도 아니기에...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감독의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텍스처를 드러내는 실험적인 시도들을 보여준다. 물론 감독의 시그니처인 흑백 화면과 전통적인 스톱모션 기법 그리고 내레이션 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간결한 스토리와 모노톤의 화면, 희비극이 교차하는 캐릭터가 가장 어둡고 드라마틱한 정서를 건드리며 동시에 유머를 머금고 있는 아이러니한 조화를 생산하는 것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반적인 작품의 톤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감독은 본래 장편으로 기획된 시나리오에 25번이나 수정을 가할 만큼 시간과 열정을 쏟았으며, 작품이 주는 역동성과 리듬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변화의 시도는 바로 캐릭터에 있다. 캐릭터들이 한층 더 풍부해진 질감과 왜곡된 아름다움 그리고 성격화를 드러내고 있다.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캐릭터들과 늘 충분한 교감을 이룬 후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편인데, 이런 이유로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단순히 클레이로 만들어진 인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삶 속에 존재하는 실재처럼 다뤄진다. 특히, 어니의 새로운 인연으로 등장하는 앤젤리나라는 캐릭터를 통해 감독은 스스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감성을 지닌 이전의 캐릭터에서 보다 단단하고 강한 캐릭터로 진화해 나가는 모습을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역력히 드러낸다. < 메리와 맥스 > 이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방전됐다던 감독의 창작 세계가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에너지를 재충전한 것처럼 보인다. 미니멀한 스타일이 보여주는 미학과 번뜩이는 재담은 한층 더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진화했다. 애덤 엘리엇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위트에 또 한 번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다. 조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 하비 크럼펫 >, < 어니 비스킷 >에 이어 제작될 예정인 단편 3부작의 완결편을 어서 빨리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담 앨리엇 감독이 그리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은 잘나고 똑똑한 캐릭터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리바리하고 어딘가 덜 떨어져 보이는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거기에 더 보태서 불안과 장애를 보이는 캐릭터들이 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애니메이션 속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100%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캐릭터들은 감독의 개인적 경험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거나 혹은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그것이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과 만나면서 창조된 산물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에서 읽혀지는 캐릭터들에서는 진실이 모락모락 묻어나서 그 어떤 잘난 영웅담 보다 늘 더 강한 감동을 받게 된다.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 메리와 맥스 >의 이야기는 1970년대 중반,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8살짜리 사춘기 소녀 메리는 이마 위에 남겨진 몹쓸 모반의 흔적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당하고, 점차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메리의 고민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외로움을 보태는 가족들. 한 마디로 가관이다. 언제나 술에 찌들어 사는 엄마. 설상가상으로 도벽까지 있어 가는 곳곳마다 메리를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메리의 아빠는 언제나 회사 일로 바쁘고, 모처럼 집에 있어도 오로지 자신의 취미 생활인 박제에 빠져 사는 탓에 메리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늘 외로운 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메리에게도 소중한 친구가 생기게 된다.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뉴욕시의 전화번호부를 보고, 그곳에 사는 아무개 씨에게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적어 무작정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메리의 편지는 미국 맨해튼의 어느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44살의 맥스 제리 호로비츠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남자에게 배달된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자폐증과 비슷한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맥스는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탓에 세상으로부터 별난 사람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점점 더 사회로부터 격리되면서 외롭게 살아간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라곤 애완용 물고기와 앵무새, 그리고 같은 층 복도 끝에 사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할머니뿐... 우연히 시작된 펜팔을 계기로 이 둘은 나이와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무려 22년간의 우정을 지속하게 된다. 비록 이야기는 상처와 외로움, 불안과 장애로 가득하지만, 결코 처절하거나 어둡지 않다. 클레이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투박함과 톤은 오히려 경쾌하고 흥겹기까지 하다. 정상에서 벗어난 인물로 그려지는 유별난 성격의 맥스와 외모 콤플렉스로 고민하는 엉뚱한 상상력을 지닌 소녀 메리의 삶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는 실사영화 속의 어떤 주인공들보다 더 강하게 이들에게 이끌려 몰입하게 된다. < 메리와 맥스 >를 포함한 감독의 전작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다. 그것도 불안과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이거나 완벽하지 않은 캐릭터가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고, 조건 없이 세상을 끌어안고 용서한다. 그렇기에 감독의 작품에는 늘 희비극이 교차하면서 동시에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투박한 캐릭터들이 갖는 슬픔과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 놓지 않고, 장난스럽고 경쾌한 유머로 가리는 역설이 보여주는 정서적 울림! 그래서 감독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난 늘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여운을 오랫동안 느낀다. 입꼬리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물을 살짝 머금고 말이다.
이맘때면 항상 조카들과 애니메이션을 보러 극장에 가곤 했다. 이젠 중학생이 된 조카가 바빠져서 날 쳐다보지도 않는 통에 올해 5월은 그럴 일 없이 지나가고 있지만. 오래 전 어린이날 조카들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 키리쿠와 마녀 >가 아직도 기억난다. 갓난아기 키리쿠가 마녀에게 키스한 후 어른으로 자라는 모습에 조카들이 감동하던 모습. <키리쿠와 마녀>와 함께 세트로 묶여 있는 내 기억의 한 조각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중 어느 하나는 이맘때쯤 꼭 개봉했던 것 같다. 올해도 비슷하다. 4월 말과 5월 초 국내에 개봉했거나 개봉 예정인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애니메이션 < 파리의 도둑 고양이 >, 대니 드비토가 나무 요정 목소리를 연기한 할리우드의 3D 애니메이션 < 로렉스 >, 일본 애니메이션인 < 컬러풀 >과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 태풍을 부르는 황금스파이 대작전 >이다. 이 중 세 편을 직업상 시사회에서 봤다. 어떤 건 전반적으로 심심했고, 어떤 건 대단히 귀여웠으며, 심지어 가슴 깊이 먹먹해져 ‘강추’하고 싶은 작품도 있었다. 그런데 시사회에서 봤으니 망정이지. 개봉 후 이 애니메이션들이 상영하는 곳을 찾아가서 봐야 한다면? 솔직히 볼 엄두는 나지 않았을 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 로렉스 > 빼고 다른 애니메이션들은 상영하는 곳이 별로 없다. 극장 찾기가 어렵다. 기를 쓰고 서울에서 몇 개 되지 않은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아가는 부지런함을 떨 수도 있다. 하지만 ‘뭐 그렇게까지 찾아가야겠어? IPTV로 들어오면 보지 뭐...’ 하며 대부분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 결국엔 챙겨보지 않게 된다. 올해 초에도 극장에 잠깐 걸려있었던 호주 애니메이션 < 메리와 맥스 >를 그렇게 놓쳐서 얼마나 후회했던지. 요즘에야 극장 개봉 애니메이션을 뒤늦게 볼 수 있는 여러 경로가 많다. 그래도 역시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들은 작품이 스크린에 걸리는 것을 오랫동안 바랐을 것이다. 보는 입장에서도 스크린에서 봤을 때의 감동이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광활한 멀티플렉스 스크린엔 온통 3D 애니메이션 투성이다. 3D 안경을 끼고 보는 그런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점점 더 감흥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더 심하게 3D야!”라며 자랑하듯, 경쟁하듯 만드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시리즈. 솔직히 이제 정말 지겹다. 2편, 3편 나올 때마다 직업상의 의무감으로 보고 있지만, 그리 큰 기대를 안고 극장에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즘 애니메이션 시사회를 갈 때마다 상상해보는 게 있다. 하루 종일 세상의 온갖 애니메이션을 트는 애니메이션 전용관이다. 다양한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국적의 애니메이션을 트는 애니메이션 전용관. 상영 기준은 철저히 재미있냐다. 학구적인 관점에서 러시아, 폴란드, 체코 등의 거장들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프로그램을 짜는 식은 절대 사양! 재밌는 단편이라면 예외지만. 연구나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완전 재밌고 감동적이고 신나서 열심히 보니 보니까 저절로 교육적이 되는 그런 애니메이션들만 잔뜩 트는 거다. 그럼 재미의 기준은 뭐냐고? 철저히 내 기준이다. 불만 있으면 고소하시던지! 아무튼 하루종일 보고 또 보고, 밤이 되는 줄도 모르고 보다가, 집에 가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며 결국 집에 가게 되는, 그런 애니메이션 극장이 있으면 어떨까... 디즈니랜드와도, 지브리 미술관과도 다른, 아주 독특한 장소로 말이다. 이런 얘길 입 밖에 꺼냈다간 상업성도 없으며 현실적으로는 절대 이루어지기 힘들 거라는 얘길 들을 게 뻔하다. 작품 수급 문제, 비용 문제 등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들이 벌써 줄줄이 떠오른다.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애니메이션 틀면 되지, 뭘 더 바라냐고 할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상상하지 말란 법도 없다. 상상하는데 돈 드나? 그래도 혹시 어떤 눈 먼 돈이 이런 일에 투자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