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왕의 복수
- 감독
- 장진원
- 제작년도
- 1972
- 출연
- 백표, 노준곡, 호인인, 김영인, 고원, 태일, 심상현, 천장수, 박동룡, 안진수, 김왕국, 맹리, 강남, 양위, 당국사, 김월성, 이예성, 최성규, 이기영, 조춘, 한명환, 마도식, 조용수, 노사강, 남성국, 윤일주, 김승남, 강동규, 조덕성, 김웅, 이영호, 성소민, 유영국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안하였다. 1969년 9월 14일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3선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킨 다음 7개월 만의 일이다. 그 해는 모든 것이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인 김지하가 당시 재벌,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을 (을사보호조약 당시의 매국노에 비유하며) 담시(譚詩) 형식을 빌려 풍자한 시 <五賊>을 발표하자 이 시가 실린 문학지 ‘사상계’ 시판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 1일 자에 이 시를 다시 게재하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기관원들이 6월 2일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새벽 1시 50분에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종로경찰서 경찰이 인쇄소에 난입하여 인쇄한 10만 부 전량을 강제 회수하였으며, 6월 20일 시인 김지하와 사상계 대표, 편집장을 “계급의식을 조장하고 북한 선전 선동물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하였다. 7월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 시다공’ 전태일은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다음 분신을 하였다. 그는 그날 저녁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3선 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김대중과의 득표 경쟁에서 이 과정은 몹시 힘겨웠다. 독재를 위한 확고한 지지 세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농촌을 중심으로 산업간 소득격차를 줄여야 할 필요가 대두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감시의 외곽지역에 놓여있었던 지방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 속에서 새마을 운동은 유신 정권의 행정체계 안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사업이 되었다. 아마도, 아마도 이 시기부터 이미 시작된 감시하의 문화예술과 학계에 대대적이고 적극적인 국책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중들과의 전선에서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 버림받고 다른 한편으로 유혹당했다. 1973년 영화 진흥조합에서 영화진흥공사로 기구 개편을 한 다음 공사는 정부 지시에 따라 “한국영화 진흥을 위한 개선책”이라는 명분 아래 국책영화를 지원하기 위한 우수영화 보상 제도를 부활시켰다. 여기서 우수영화는 반공영화와 새마을 영화, 문예영화로 다시 분류되었다. 한국영화는 (시나리오 사전검열과 제작 검열이라는) 이중검열과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으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매우 제한적인) 외화 수입으로 영화산업을 가까스로 이끌던 국면이었지만 그 와중에조차 정부는 외화수입이 외환을 보유해야 하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사들의 수입권을 제한하였다. 그런 다음 내세운 당근인 우수영화 제도는 ‘우수영화로 선정된 작품에 한해 제작사에 외화 수입쿼터 권리 1편’을 보상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은 물론 한국영화의 산업적 몰락을 부추겼다. 영화사들은 ‘쿼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우수영화’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좀 더 정확하게는) ‘쿼터를 따기 위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국책지원을 하는) 우수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은 이면의 외설적 진실을 놓친 절반의 사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착취당한 것이다. 그걸 도대체 누가 본다고?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감독들은 ‘흥행 감독’들이었다. 왜냐하면 ‘우수영화’는 반드시 그 사실을 (문화부의 권고에 따라 ‘강제적으로’) 광고에 표기해야 했으며 관객들에게 ‘우수영화’는 재미없는 ‘국책영화’와 이음동의어였기 때문이다. 반복된 학습의 결과. 거리의 포스터와 신문 기사, 라디오에서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베트남 파월장병들을 위한) 군가, 학교에서 암기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노래, 국민들은 국가정책에 관한 선전에 극도로 피로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극장에 가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학생들과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단체관람을 시켰다. 좀 더 우스꽝스럽게 말할 수 있다. ‘흥행 감독’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며, ‘우수영화 감독’들은 (제작사를 대신해서) 우수 영화에 선정되어 외화 스크린 쿼터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쓰긴 했지만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걸 비웃으면 안 된다. 이건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이 없었던 상황의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를 그만 두면 된다. 하지만 그런 다음 영화산업 바깥에서 어떤 영화도 만들 수 없는 기술적 산업적 조건 아래에서 영화를 만드는 기술밖에 없던 사람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남아있었을까. 여기는 물샐 틈 없는 감시망으로 이루어진 경찰국가였고, 피비린내 나는 독재정치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창백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는 어떤 미래도 없었다. 박정희는 영원히 살 것만 같았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으며, 사람들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일상생활 속의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제 막 독점재벌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었다. 잠시만, 잠시만 멈추어야 한다. 당신은 이 부정적인 연쇄 망 속에서 문득 긍정적인 수사가 출현했을 때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는 지금 거짓 긍정을 말하는 중이다. 자, 여기서부터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새마을 운동이 정권연장을 위한 경제적인 속임수였으며 사실상 실패한 국가주도의 경제계획이었다는 것을 지금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미 파국의 계획에 대해서는 1980년대에 전두환이 이 국가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새마을 운동연합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1970년대에 벌어진 이 기괴한 부의 재분배를 둘러싼 국가사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간단치 않아진다. 나는 지금 외면, 이라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새로운 단계. 당신에게 부자라는 (허구적) 타자로부터 (거짓된) 주체에로의 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간의 기회가 도래했다.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아니,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금융자본과 결탁한 (거짓된) 부의 증식. 하늘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잉여가치. 그걸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나섰을 때 온 사회가 들뜨고 있었다. 아마 정확하게 바란 것은 그 (정치경제학적인) 혼수상태였을 것이다. 박정희의 슬로건이 자본주의를 밑바닥부터 전복시키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타자의 황당무계한 약속을 사람들은 믿었다. 그들은 믿는 척한 것이 아니다. 그때 국가는 실체였으며, 어떤 부(富)도 국가보다 작은,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객관적 정세에 기반을 둔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의 중심부로 들어서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반대로 그 안에 휘말려 들어간 국민들에게 새마을 운동의 유혹이 무엇이었을 지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조차,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의 정책과 결과. 그 효과로서의 박근혜의 (유예받은 환상의) 프레임. 반문하고 싶어진다. 새마을 운동을 단순하게 거짓 사기극이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박정희 자신조차 이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치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논점을 여기서 재빨리 멈추고 영화에로 돌아갈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건드린 논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혼수상태 안으로 멈추지 않고 들어가는 중이다. 여기서 영화라는 제도는 단순하게 국가 정책을 반영하거나 복제하는 기계가 아니다. 혹은 제도라는 기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제도가 역사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건 구체적인 정치사회적인 조건이 그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 조건은 단지 영화를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스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영화 안에서 제도가 요구하는 검열의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와 역사 안의 영화 사이의 관계는 종종 경계로 옮겨간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든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흔적은 서로 각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은 서로에게 역사의 이름으로 기억의 내러티브가 된다. 그때 우리는 말하자면 기억을 다루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이를테면 볼셰비키 혁명과 쿨레쇼프 공장은 1943년 직후 로마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얼마나 서로 같으면서 다른가. 1919년 표현주의 영화와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 ‘직후’의 영화는 또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 안에서 자기의 역사, 자기의 조건, 자기의 상황,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힘이 능동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상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존재론적인 대답이다. 대답으로서의 질문. 이때 질문이 대답으로 이동하는 자리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이 영화 안에서 형식이 될 정도의 특이한 사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건의 모습으로서의 형식이다. < 아내들의 행진 >(1974), < 아내 >(1976), < 옥례기 >(1977) 임권택 은 (이 시기의)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으며 세 편의 새마을 영화를 찍었다. 물론 반공영화를 포함하면 그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그리고 문예영화들이 또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범주의 난점이 있다. 이를테면 < 증언 >과 < 짝코 >가 모두 반공 우수영화라는 제도적인 분류와 그 사이에서 얻게 된 행운이자 위험으로서의 미결정성. 여기서 우리는 제도가 처리하는 방식과 비평이 가져야 할 해석 사이에서 서로 공유하기 힘든 그늘을 본다. 우리의 괄호로 돌아오자. < 아내들의 행진 >과 < 아내 >, 그리고 < 옥례기 >.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예외 없이 세 편 모두 새마을 운동에 자발적으로 헌신한 세 명의 여자에 관한 실화를 찍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세 명 모두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물론 이 인물의 선택이 임권택의 결정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매번 잘 기억나지가 않아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내들의 행진>은 영화진흥공사 제작이고 <아내>와 <옥례기>는 우진필름 제작이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내의 실화. 우리는 임권택이 그 자신의 영화를 시작했다고 스스로 말한 < 잡초 >가 아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임권택은 아내에 관한 영화를 줄기차게 찍었다. 여자로부터 아내에로의 이행. 딸로부터 아내에로의 치환.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영역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전망. 좀 이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여자보다 아내에 훨씬 관심이 많다. 여기에는 그 자리에 대한 몹시 강력하고도 집요한 요구가 있다. 새로운 가족.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 안으로의 편입. 그런 다음 그 자리의 책임이라는 문제, 한국 사회 안에서의 그 자리의 독특한 부름과 응답.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의 형국. 그런 다음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 드문드문 그러나 계속해서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 어쩌면 임권택은 점점 더 허구의 이야기, 그 안의 인물을 믿지 않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자책하듯이 혐오해오던 장르영화(들)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어쩌면 실화에서 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떠나온 다음 다시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되돌아온 <장군의 아들>에서 조차 김두한이라는 실존 인물을 거의 마지막 방어선처럼 거기 그렇게 배치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홍순혜 김진호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 아내 >의 첫 장면에는 “이 영화는 도시 새마을 운동의 기수 홍순혜 여사의 성공사례를 소재로 한 것이다”는 자막이 뜬다. 홍순혜 씨의 이야기는 「억새풀은 시들지 않는다」라는 자서전으로 출판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KBS에서 <억새풀>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진 이듬해 홍순혜 씨는 도시 새마을운동 전진대회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실화이지만 여기서는 영화로 쫓아간) 홍순혜 씨의 전기의 요약. <아내>가 영화의 무대로 삼은 시간은 그녀의 삶 거의 전부이다. 이야기가 홍순혜의 22살에서 시작하지만 금방 영화는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과거로 넘어간 다음(flash_back) 태어난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극장 매표직원으로 일하는 홍순혜. 그녀는 지금 막 자신에게 구혼한 남자 김진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중이다. 무대화된 영화 안에서의 수행과 행위. 서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해서 학교에서 창문 너머 배우던 시절.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겨우 손에 쥔 초등학교 졸업장, 끝. 그런 다음 단 한 차례도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만) 진행되는 이야기. 마치 홍순혜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영과도 같은 시간의 질서. 김진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김진호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으로 장사를 하고 홍순혜는 쌍둥이 아들과 그 아래로 두 딸을 낳고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면서 저택에서 마님 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김진호는 미군 부대 사업을 그만둔 다음 사기를 당하고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하루아침에 시골 달동네로 이사 가야 하는 온 가족. 여전히 큰소리치는 김진호는 집안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홍순혜는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나르며 동네방네 돌면서 물장사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구들장을 고치고, 떡 장사를 하고, 공사장에 나가서 남자 인부들처럼 벽돌을 나르고, 그런 와중에 허세의 잘못을 깨우친 남편이 택시 운전기사를 시작하고, 홍순혜는 재봉 학원에서 새롭게 공부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한 문장으로 썼다. 영화는 그렇게 일사천리로 나아간다. 그런 다음 약간의 일시적 정지. 후일담처럼 덧붙여진 우수영화 제도를 위한 이야기 안의 이야기. 거기서 배운 기술과 타고난 근면으로 사업에 성공한 그녀는 옛 달동네에 찾아가 신세타령만 하면서 화투로 소일하는 부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의 기회를 열어준다. 말하자면 착한 이야기. 약간의 (사회적) 설명을 덧붙이면 홍순혜의 새마을 사업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1980년대에 가정 파출부 직업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 직업은 연변 중국인들, 혹은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여성노동자들로 다시 대체 되어갔다) 변수는 거의 개입하지 않으며 홍순혜는 앞으로만 나아갈 뿐 실패를 알지 못한다. (우)박동룡 임권택 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을 택한다. 디테일은 대부분 홍순혜가 상황이나 내면의 감정을 설명하고 있으며(voice_over_narration) 시퀀스를 대부분 씬으로 압축한 다음 전개하는 대신 배치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시간의 분배 안에 부정적인 제한을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순간 범주들이 도식적으로 제한받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멈추어선 운동. 치워진 흔적.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충해야 할까. 게다가 가끔 이 경제성은 < 아내 >에서 의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남편 김진호가 “한탕을 위해서 옛 친구들을 만나”자 친구들이 은밀하게 말을 건넨다. “흑인 존이랑 어디 한번 해보자” 하지만 그런 다음 이 제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게 그냥 영화 안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 안에서의 수많은 불안정한 스타 기호의 출몰과 소멸의 한 예. 박동룡 은 (아마도) 오직 이 씬을 위해서 김진호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 중의 한 사람으로 등장한 다음 내내 영화에서 보이지 않다가 여기서 다시 출연한 다음 마치 영화가 그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사건도 없이 또다시 사라진다. 아마도 이 이름이 낯선 당신에게 약간의 소개. 박동룡은 < 돌아온 팔도 사나이 >로 처음 한국영화에 출연한 다음 단 한 번도 조연조차 하지 못하면서 거의 내내 ‘다찌마와리’ 영화와 공포영화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악한 배역을 떠맡다시피 했다. (박동룡 자신은 인터뷰에서 악역 배우라는 표현 대신 ‘성격파’ 배우라고 불렀다) 그가 남겨놓은 인상은 지나치게 결정적이어서 첫 삼 년 동안 35편의 영화에 악역으로만 출연할 정도였다. (아주 이따금 그가 착한 배역을 맡을 때는, 착하면 착할수록 더욱더,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끝까지 불길하게 남겨 놓았다) 그래서 한국영화에서 박동룡은 등장 자체가 장르적 약속에 따라 악한 기호처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표지. 임권택은 한국영화사 전체에서 달리 예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야기의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진행하고 있는 홍순혜의 이야기 전체로부터 김진호가 탈선할지도 모르는 이 장면을 찍은 다음 만일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왜 (말 그대로) 삭제하지 않고 편집에서 남겨두었는지 알 수 없게 이 에피소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스스로 소멸해버린다. 무언가 하나의 행위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활동했음이 분명한데도 어디에서도 반응이 오지 않고 그저 거기서 마치 우발적인 실수인 것처럼 머물 때 자꾸만 영화 안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게 된다. 설명하기 힘든 잉여. 아무런 반향도 없는 진동. 이런 불균형이 <아내>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방에 남아있다. < 서학일대녀 > 하지만 불균형이 < 아내 >에서 부정적인 표시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재표시의 순간과 마주할 때 임권택 안에서 다른 임권택이 시작되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순간이 너무 갑자기 나타나서 약간 멍한 상태가 된다. 홍순혜가 김진호를 만나서 결혼을 한 다음, 그러니까 홍순혜의 긴 고백이 끝난 다음 다시 한 번 김진호가 청혼을 하자, 그다음 장면은 결혼식 장면 없이, 이미 네 아이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누리고 있는 씬이다. 임권택은 마치 홍순혜의 행복한 시절에 거의 관심이 없기라도 한 듯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런 다음 김진호가 사기를 당하고 몰락할 때까지 거의 특징 없이 홍순혜의 실화를 장르처럼 다루면서 진행될 때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조차 한다. 그런데 홍순혜가 후암동 저택을 팔고 성북구 송천동 달동네로 이사 온 날, 그날 아침 홍순혜는 물을 동네 저 아래서부터 길어오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주인댁이 있는 이웃집에 간다. 거의 이제까지 진행되었던 방법을 무효로 만들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카메라는 약간 뒤로 물러난 다음 홍순혜가 부엌에서 나오는 것을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그저 홍순혜와 그의 가족이 살게 될 이 집의 가난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master_shot)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부엌문을 열고 나와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를 따라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옆집 아줌마에게 주인댁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본 다음 이웃집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화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그 집을 나서서 골목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간다. 두 개의 선. 홍순혜의 동선과 카메라의 시선. 홍순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선을 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pan) 때로는 가상 수평선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면서 다가갔다가 다시 물러서면서(zoom_in_and_out) 두 개의 선은 하나가 된다. 그런 다음 그 집 안의 방문을 여는 장면(end_point)까지 따라간다. 느린 팬과 재빠른 줌, 약간의 달리, 조심스러운 틸트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낸 이 롱 테이크 장면은 단지 임권택 안의 임권택의 새로운 발견일 뿐만 아니라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쇼트 중의 하나이다. 그 위에 다시 덧쓰기로서의 방법. 그 순간 즉각적인 영화사적인 연상. 명백히 이 장면은 < 서학일대녀 >의 어떤 쇼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때 임권택은 아직 미조구치 겐지의 어떤 영화도 보기 전의 일이다. 나는 어느 순간 임권택이 미조구치 겐지와 거의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결론의 교집합을 이루는 시간은 < 개벽 >에서 끝났다) 그가 언제 이러한 미학에로 이끌렸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이런 방법을 발견했는지는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런 다음 다시 왜 이 방법을 중단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내>의 첫 시작부터 이 순간에 이를 때까지 이상하게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왜 이 영화에 미학적 일관성을 부여하지 않았는지는 누구도 설명하기 어렵다. 혹은 이 동네에 들어서야만 그러한 방법이 가능한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S#_1 S#_2 S#_3 S#_4 나는 이 장면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홍순혜의 가족이 머무는 이 단칸방 집을 다른 씬의 다른 쇼트에서 방문을 등으로 하여 맞은편을 보면(reverse_shot) 거기엔 마당 말고 다른 것이 없다. 임권택 과 (이 영화를 촬영한) 이석기 는 이 좁은 마당에 짧은 레일을 놓은 다음 줌을 단 카메라를 올려놓고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홍순혜와 카메라 사이의 동선과 이동을 서로 맞추었을 것이다. 홍순혜는 약속된 선을 따라 움직였겠지만 종종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며 줌의 범위를 빠져나가기 쉬운 난처한 장소의 블랙홀들이 사방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가로막은 나뭇가지들. 유감스럽게도 마당이 좁아서 카메라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쇼트는 부엌문에서 나온 홍순혜( S#_1), 둘러본 다음 이웃집 아줌마에게 물어보는 홍순혜( S#_2), 무언가 생각하는 홍순혜( S#_3), 대문을 나서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이웃집에 들어서는 홍순혜( S#_4)를 하나의 쇼트로 찍은 것이다. 물론 디테일을 더 세분해서 나눌 수 있으며 방향과 동선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서트가 필요해질 것이다. 혹은 좀 더 단순하게 찍는 방법이 있다. 이 영화는 1.66 비스타비전 사이즈이다. 그러므로 단지 좀 더 물러나면 된다. 그러면 더 넓은 화면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찍을 필요가 생긴 것일까. 여기서 임권택은 홍순혜를 유심히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때 홍순혜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영화적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래서 마치 방향을 돌아서기 위한 일종의 전환처럼 보이는 잉여로서의 순간인, 그러니까 내가 S#_3이라고 지적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잠시 멈춰선 홍순혜의 생각의 시간이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그저 생략해도 괜찮은 순간(dead_time)처럼 보이지만, 혹은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동선의 방향을 틀어보기 위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이지만,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순하게 나눠 찍어도 괜찮을 이 장면을 그렇게 공들여서 하나의 쇼트(안의 쇼트)로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한다, 는 동사의 쇼트. 비가시적인 생각의 행동. 이 순간은 일시적인 정지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선 안에서 찍어야 할 필요가 생긴 잉여의 시간(dead_time)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그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 부근 어딘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부근 어딘가에서부터 데드 타임을 찍을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데드 타임의 쇼트를 인서트로 삽입하는 대신 쇼트의 진행 안에서 일종의 푼크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거기 그렇게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노엘 버치의 충고. 모든 쇼트는 언제나 맞은편의 쇼트(reverse_shot)와 어떻게 이음매를 만들 것인가(raccord)라는 문제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좀 더 단정적인 충고를 보충한다. 쇼트 사이의 접합을 논증하는 건 영화에서 진실의 문제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홍순혜가 이웃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었을 때 두 개의 공간이 만나게 될 것이다. 안과 바깥. 그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아니, 차라리 어떻게 접속시킬 것인가. 하나로 귀속시키는 조형력, 서로 간의 사이에서 도식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통일된 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는 원칙. 여기서 임권택 은 공간을 펼쳐놓은 다음 홍순혜로 하여금 그 안의 굴곡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나쳐서 목표에 가 닿도록 이끈 다음 방안에 들어서면 그녀가 바라보는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약간의 원을 이루면서 수평으로 앉아있다. 이때 이들이 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몸과 머리를 분리한 다음 앉아있는 자세와 시선을 두 개의 방향으로 서로 다르게 연결시켜 놓은 일종의 착시효과이다. 물론 여기서 그렇게 펼쳐놓은 인물의 미장센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 구도를 < 망부석 >에서도 보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이 방법을 (아마도 유일한 스승인) 정창화에게서 가져왔(을 것이)다. 방점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 여기까지 홍순혜를 이끈 바로 그 힘, 우리들이 방금 바라보았던 갑작스러운 일시적인 정지라는 반응에 대해서, 롱 테이크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성립시킬 수밖에 없었던 데드 타임 안의 동작에 대해서, 다음 씬에서는 대사에 의해서건, 제스처를 통해서건, 드라마를 이용해서건, 이웃집 방문을 열고 나면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홍순혜는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미소를(close_up) 짓는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그저 지나쳐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커다란 얼굴의 쇼트로 다시 보여준다. 별다른 동작도 없이 그저 얼굴 가득히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 표정만이 그 전부이다. 편집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다가간다면 여기서 시간은 잠시 중단되고 일종의 과잉된 여백의 상태가 된다. 이 장면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앞으로, 단 한 순간도 물러나지 않고, 잠시의 틈도 없이, 진행되던 리듬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더 인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결코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며, 그렇다고 (부자 동네로부터 가난한 달동네로 추락한 다음 여전히 마님처럼 보이는 그녀를 향해서 이웃들이 보이던 적대감에 대해서) 그녀가 내보이는 (항복하는 것만 같은) 위장의 표시는 더더욱 아니며, 그녀 자신이 짓는 (일시적인) 만족의 표현도 아니다. 이 표정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통과할 수 없는 불투명성. 그리고 그것이 핵심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극장 매표원이 된 다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시적으로 안정된 경제적 환경에서 살았지만 여기까지 홍순혜는 아직까지 (네 아이의 엄마이자 김진호의 아내) 홍순혜일 뿐이다. 그러나 달동네에 온 첫날 홍순혜는 마치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갑자기 새로운 태도를 획득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 장면이 홍순혜가 달동네로 온 첫날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일깨우고 싶다. 첫날, 새 아침. 여기에 도착하자 문득 그녀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 여기에는 홍순혜에게 던져지는 어떤 질문도 없었다. 조건이 주어지자 그렇게 된다. 그런 다음 그냥 그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간다는 듯이 홍순혜는 새마을 지도자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거기에 없는 전체 안의 과정. 그러므로 그녀가 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치 실존적 깨달음처럼 주어진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삶. 이 결정적인 첫날의 첫 번째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일시적인 정지의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시간을 찍은 다음 그 공명현상처럼 자리한 쇼트의 자리에서 홍순혜의 커다란 표정으로 짓는 웃음을 찍을 때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라는 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만큼 뒤로 물러난다. 왜 당신은 그렇게 희생적인 자리에 가려고 하나요? 무엇이 당신을 불렀나요?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요? 그런데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그런 다음 이렇게 기괴한 웃음을 짓는 홍순혜의 표정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거의 마지못해 임권택은 웃음 짓는 홍순혜가 작은 부처님의 상을 모시는 장면을 찍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서 부처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은 알리바이를 전시하지만, 홍순혜의 이어지는 행위는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 어떤 연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기괴해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투명한 데 인물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주체의 과정은 정반대로 그만큼 불투명하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임권택 과 홍순혜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간극의 심연이 존재하고 있다. 이때 < 아내 >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영화를 임권택이 찍고 있었을 때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홍순혜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 홍순혜는 대통령상을 표창받았다) <아내>가 다루는 이야기는 홍순혜가 새마을 지도자가 된다, 라는 단 하나의 진술로 환원되지만 여기에는 임권택의 어떤 포기가 있다. 포기?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거기서 마주치는 간극 안에서 점점 더 음울한 희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려서 시작해서 십 대를 지나도록 어머니 홍순혜의 활동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성공에 어떤 한순간에도 방해가 되기를 원치 않기라도 하듯이 행동한다. 심지어 이 아이들이 십 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영화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다음 이따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아침마다 씩씩하게 하기 위해서 등장할 뿐이다. 남편 김진호는 홍순혜가 자기 몰래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모습을 본 이후 개과천선을 한다. 드라마의 상투적인 반전. 그런데 그런 다음 김진호는 이야기에서 완전히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단지 이것을 가정에서 (경제적) 힘의 새로운 분배에 따른 재배치라고 설명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남편은 거의 사라진다. 홍순혜의 가정이 몹시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 평면적인 외양은 내게 홍순혜의 알 수 없는 미소처럼 보인다. 아마 임권택 도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따금 이 단조로운 평면을 뚫고 나오는 흔적들은 여기에 종종 왜상(anamorphosis)의 순간들과 마주치게 만든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은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집은 아줌마들로 가득 차 넘치면서 재봉틀과 씨름을 하며 넘쳐나는 일감에 돈 버는 재미로 밤 깊은 줄 모른다. 이때 임권택의 관심은 오랜만에 남편에게로 향한다. 그때 김진호는 마치 남의 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장모가 열어주는 대문 사이로 들어선 다음 거의 조심스러운 자세로 들어선다. 여기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남편 김진호가 마루에 들어섰을 때 일하는 아줌마들 중에서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위계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매일처럼 마주쳤을 그들 사이에서 왜 아무런 인사가 없을까. 그건 김진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그녀들. 차라리 우글거린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아줌마들. 그녀들은 깔깔대고 웃으면서 신바람이 나 있지만 정확하게 그만큼 김진호는 그녀들 바깥에 놓여있다. 이 층에 올라서서 눈이 마주쳤을 때야 비로소 이 층의 그녀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지만 곧 시선을 돌리고 일감에 매달린다. 김진호는 구태여 계단을 따라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홍순혜를 구석으로 부른 다음 이제 우리들의 가정생활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하지만 홍순혜는 더 기다려달라고 대답한다. 둘 사이의 대화는 너무 상투적이어서 거의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완전히 대화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상투성 자체를 동요하게 만든다. 동시적인 두 개의 장면. 먼저 홍순혜가 김진호의 요구에 대답하는 장면. 분명히 김진호가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순혜는 대답하는 순간 마주 보던 몸을 돌린 다음 자신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 마치 그의 요구에 대한 거절을 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약간 웅변하는 것처럼 말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또한 둘 사이에서 가능한 일말의 해결도 없다. 홍순혜의 선택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기서 홍순혜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을 독백으로 바꿔칠 때 여기에는 임권택의 포기가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도착적으로 읽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홍순혜와 김진호를 벽 옆에 세워 놓은 다음 카메라를 마름모꼴로 세웠다. 물론 이 위치는 홍순혜가 김진호에게 대답(하는 척하면서 독백을)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을 보기 위한 자리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서 홍순혜와 김진호의 그림자가 마치 정말 보여주고 싶은 진짜 모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벽에 비쳐 보인다. 이때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해석이다. 과잉진술에는 언제나 어딘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망설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임권택이 바라는 두 사람 사이의 진실한 행위가 아닐까. 전체의 배치 속에서 괄호를 치는 것은 내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새마을 영화들이 (볼 때마다 점점 더) 매우 이상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단지 제도에 한정 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거장’ 임권택을 이야기하다 말고 이 자리에 오면 슬그머니 피해버린다. (아마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아내 >가 < 왕십리 >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비평을 불편하게 만든다. 지레짐작을 하고 ‘이 시기의’ 임권택은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들)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미리 방어선을치기도한다. < 족보 >와 < 짝코 >가 우수영화였다는 사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임권택 자신은 “우수영화로만 선정되면 되니까 그저 제작자 눈치 보지 않고 관객들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 아내 >에서는 “하고 싶은” 무엇을 “해 본” 것일까. 그 무엇이라는 모순의 미지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세 편의 영화, < 아내들의 행진 >과 < 옥례기 >, 그리고 <아내>를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거의 와해 직전까지 간 다음 불화를 무릅쓰고 갑자기 거기서 무언가 환상의 쾌락을 누리려는 듯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게 볼 때마다 몹시 이상하게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잠시만 <아내>의 소재를 옆으로 치운다면, 그래서 그저 하나의 드라마로써 다가가 본다면, 아아, 라고 탄식할 정도로 이 영화에는 임권택 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행복한 순간들이 과도할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그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그 자체를 임권택이 잠시라도 망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물론 (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임권택은 결코 홍순혜에게 단 한 순간도 동일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무얼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는 용기를 내서 말하고 싶다. 여기에는 행복에 대한 도착적 기쁨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다. 만일 그걸 내어줄 수 있다면 모든 고난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르는 희생을 치를 용의가 있다는 대답이 거기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쳐다보아도 괜찮은 것일까. 임권택은 이 순간 두 개의 시선 사이의 간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차라리 찢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이야기 안에서 오가는 시선과 이야기를 쳐다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서로를 내맡기고 각자의 시선을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희생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체로서의 자기의 자리를 잃고 불투명한 타자의 질서에로 밀려나는 반면 주인공의 행동을 쳐다보는 시선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대신 마치 그것이 자기의 기쁨이기라도 한 양 반대로 타자의 질서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척한다. 그때 기쁨과 희생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임권택의 새마을 영화(들)는 그렇게 매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향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임권택은 여기서 비로소 임권택이 된다. 그렇지만 여기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임권택. 영화 안에서 무언가 서로 다른 목소리가 웅성거릴 때 우리는 어느 쪽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핵심을 찾으려면 안 된다. 반대로 우리를 무질서에 내맡겨야 한다.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속삭임들이 들려온다. 여러 명의 소리. 기꺼이 질문의 카오스 속에서 부서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재난을 환대한다. (계속) 1976년 99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우진필림 각본 문상훈 , 박철민 촬영 이석기 조명 차정남 편집 김창순 음악 정인섭 태현실 ... 홍순혜 박근형 ... 김진호
2000년대 초반은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시기였다. 세계 종말도 Y2K도 없었다. (있었어도 나 같은 서민은 모를 정도로 능력자분들이 잘 처리해 주셨다.) 그렇게 맞이한 밀레니엄에서 사람들은 뭔가 해방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2000년 이후의 삶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다른 문화현상들이 나타났고, 이전부터 근근이 이어지던 서브컬쳐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영화계에서도 그런 모습은 다르지 않았는데 과격한 상상력과 놀라운 실행력이 결합된 재미난 작품들도 많았다. 그런 경향의 일부였던 < 씨어터 >와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를 본 코너에서 소개하기도 했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들 젊은이들의 재기가 꽃피우던 시기에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려 고독하게 16mm 카메라를 다찌마리로 수놓았던 어느 노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것이다. 2003년 8월 21일 주간지 ‘일요 서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퀵서비스 배달원의 애환을 그린 영화 < 퀵맨 >이 최근 극장에서 개봉 돼 화제다.” 이 문장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 퀵맨 >은 퀵서비스맨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 직업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둘째, 개봉됐다는 언급은 있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KMDb에는 개봉 날짜 및 관람객 수 표기란이 아예 비어있고 네이버 영화에는 2002년 개봉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위의 기사는 2003년 기사... 도시 전설이 보통 이런 식으로 탄생하곤 한다. 게다가 ‘화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말 <퀵맨>은 화제였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제’는 일반 관객이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영화는 1967년 < 새벽길 >로 영화인생을 시작해 1996년 < 알바트로스 > (그렇다 차인표 , 이휘재 의 국방부 퀘스트였던 그 영화다.)까지 쉼 없이 달리던 그가, 6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영화기 때문이다. 이혁수 라는 이름은 뭐랄까. 임권택 도 남기남 도 아니지만 상당한 다작에(KMDb 등록 감독작이 51편이다) 나름대로 인정받는 흥행작, 장르의 걸작도 필모에 몇 편 포함되어있는 (그 중 42번째 영화이고 86년에 연출한 < 여곡성 >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한국 공포영화의 클래식이다.) 감독이다. 그는 결코 거장도, 연타석 안타의 흥행 마술사도 아니었지만 영화인으로서 오랜 시간 갈고닦은 연출력을 통해 장르 영화의 구조를 튼실하게 구축할 줄 아는 감독이었던 것 같다. 그의 필모에는 권격 영화, 호러 영화, 사회 고발,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액션영화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한 때는 흥행사로 불리기도 했다. ‘삐용삐용 B무비’의 다른 필진인 주성철 기자가 소개했던 < 애권 >에 언급되었던 ‘웃겨서 죽여버리는 권법’이 등장하는 < 소권 >이 이혁수 감독의 작품이며 이 작품은 장르 팬들의 애정을 받는 영화다. < 퀵맨 >은 그런 이혁수 감독이 2000년대에 들어 연출한 유일한 영화다. 영화가 제작된 2002년 당시는 디지털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고(한국 디지털 에로영화의 춘추전국시대가 바로 이 시기였다. 클릭 엔터테인먼트와 봉만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 한국 영화계에 ‘새로움’이라는 화두가 실제로 눈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때였다. 그러나 이혁수 감독은 <퀵맨>을 16mm 필름으로 찍고, 등장인물은 퀵서비스 기사와 사악한 기업의 부사장이지만 영화의 골격은 무협영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권격 영화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놀라운 반전까지. 모델인 승희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난 미모 덕에 급상승 중이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들과의 술자리, 에이전시의 무리한 요구에 염증이 난 승희는 일을 그만두고 본인의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 강사로 돌아간다. 한편, 코리아유통의 오 회장은 ‘코브라’라고 불리는 암살자에게 살해 당한다. 그는 사망 전 유언 동영상을 남겨 자신이 어릴 때 버렸던 유일한 혈육 ‘오승희’를 찾아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해 주기를 당부한다. 이 유언을 본 고문 변호사 문 변호사와 부사장 태욱은 ‘오승희’의 사진 한 장을 그 가지고 그녀를 추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다르다. 문 변호사는 오 회장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그녀를 찾지만, 태욱은 그녀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오 회장을 ‘코브라’에게 사주해 살해한 것이 태욱이기 때문이다. 회장을 살해하고 기업을 통째로 먹으려던 태욱에게 몰랐던 승희의 존재가 매우 성가신 것이었다. 태욱은 기어코 승희를 찾아내고야 만다. 위기에 빠진 승희는 우연히 만난 퀵서비스 기사 성민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적어놓은 줄거리만 보면, 적당한 액션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이런 식의 이야기기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를 주무르는 자의 ‘감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영화의 모양을 결정한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 퀵맨 >을 어디에서든 검색한다면 많은 정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포스팅에서 이 영화가 ‘괴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통할 법할 이야기를 현재시제의 상황으로 변형시킨 뒤, 감독 본인이 가장 잘했던 시절의 연출을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암살의 실행자 ‘코브라’와의 결전이 아니다. (진짜로 멋지게 찍힌) 성민 최후의 결투는, 영화 내내 이태리제 소파에 앉아 암살자에게 지시를 내리던 부사장 태욱과 이루어진다. 이것은 마치 한 명씩 적들을 격파하며 올라가는 옛 무협영화의 공식이다. 게다가 성민이 위기에 빠지자 수많은 오토바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등장해 벌이는 깡패와 퀵서비스맨의 패싸움 장면은 마치 위험에 처한 사형을 구출하기 위해 단체로 출동한 ‘퀵서비스 문파’의 형제들을 보는 듯하다. 그렇듯, 이 영화는 진지하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진지함이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혁수 감독의 장기인 다찌마리 액션 장면을 떼어놓고 본다면 대사 하나하나, 상황 두 개 세 개가 황당하다. 이런 장면이 있다. 성민과 승희의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정말 아무런 두서가 없이) 호스트바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처음 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 여자 손님이 선수(호스트바 남성 접대부를 지칭하는 말)가 마음에 안 든다며 꼬장을 부린다. 그러자 마담이 오늘 처음 온 친구라며 장발의 청년을 소개하고 이 둘은 잠자리까지 가게 된다. 둘의 욕정이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여기까지 한 5분 걸린다) 갑자기 성민이 등장한다. 다짜고짜 신참 선수를 때리기 시작하는 성민. 장면이 바뀌어 한강둔치로 예측되는 곳에서 성민은 계속 구타하며 말한다. '달수야 임마! 사내놈이 할 짓이 없어서 고추장사를 해!? 내가 널 친동생같이 생각하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자 달수는 말한다. '형 그럼 어떻게 해! 취직도 안 되고 돈은 필요하고... 훌쩍훌쩍' '그래도 어떻게 고추 장사를 하느냔 말이야! 나는 널 이제 안 볼 거야!' 아무 말 없는 달수. 돌아가는 성민. 그러자 달수는 성민의 뒷모습에 대고 말한다. '형... 내가 잘못했어. 이제 고추 장사 안 할게.' 그러자 성민은 환하게 웃으며 달수에게 다가가 말한다. '그래. 잘 생각했어.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앞으로는 형과 함께 퀵서비스를 하는 거야! 하하하' 그리고 달수는 퀵맨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소개에 할애된 시간이 무색하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다. 이런 장면도 재미있지만, 여주인공 승희의 사정은 감탄이 나올 정도라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모델 오승희는 코리아유통의 인물들이 찾던 승희가 아니었다. 진짜 승희는 그녀의 이모부인 박 선생(레전드 박동룡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다.)이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었던 것이다. 결국 문 변호사는 그녀를 찾아내고 한국으로 입국을 시키면서 태욱은 멘탈이 붕괴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쫓고 있던 오승희는 누구란 말인가? 물론 이 배역은 전혜윤 배우의 1인 2역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관객은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영화 시작할 때 오승희를 찾기 위해 들고 있던 사진에는 얼굴에 점이 하나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모델 오승희에게는 점이 없다! 이 점을 영화 초반엔 극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태욱의 부하 중 하나가 “사진엔 점이 있는데 이 여자는 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욱은 “요즘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점 하나 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대충 넘어가는 장면이 잠깐 나오긴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리 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아유유...’ 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몸이 조금 오그라든다. 결국 진짜 승희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가서는 지금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유혹>적 리얼리즘’이 이미 시도되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만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공자님의 말씀. 막장의 세계에서도 이 진리는 통한다.) 그러니까 전직 모델 오승희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엮여 온갖 고초를 다 겪게 되었던 것이다. 불쌍한 사람. 그래도 성민이라는 듬직한 사랑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인연이란 것은 꼭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만날 수 있는 것일 텐데 여하간 불쌍하다는 생각 외에는 그녀에겐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닮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런저런 산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액션에 관해서는 절대로 웃기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격투 씬 때문에 앞서 말한 황당함들 조차 잊을 수 있을 정도라면 조금 오바스러운 이야기일까? 특히 공장에서 펼쳐지는 내분으로 인한 코브라와 깡패들의 일대 다수 싸움, 마지막 개천에서 부사장 태욱과 성민의 결전은 왕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원한 다찌마리였다. 이혁수 감독님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시고 본인의 내공을 풀어낸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액션 영화’라는 말은 있지만 ‘권법’이나 ‘권격’ 이라는 말은 거의 사장된 듯 싶다. 정말, 정말 마지막 권격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 퀵맨 >은 그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감독의 작별인사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정의를 위해 세상을 등지는 쾌남의 시대는 없다. 세계는 그런 사람을 (예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완전한 멍청이로 보이게 재구성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의의 주먹은 현실에서 더욱 더 멀어져 만화 속에서 스크린으로 이주한 캐릭터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나는 이혁수 감독의 <퀵맨>을 보면서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고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의는 단순하고, 영웅은 원래 바보다. PS : 영화의 주연인 윤세웅 (KMDb에는 ‘윤호’로 기재)씨는 배우 ‘ 윤양하 ’ 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영화는 많지 않은 수의 출연을 했지만 현재까지 성우로 맹활약 중이다. 전혜윤 윤호 송금식 감독: 이혁수 각본: 윤석훈 , 안진원
류승완 감독의 <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라는 제목이 박노식 감독의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1976)에서 온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미처 몰랐지만 이명세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8)와 최호 감독의 < 사생결단 >(2006)도 각각 과거 독고성 , 장동휘 주연, 이신명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65)와 이두용 감독의 < 사생결단 >(1975)이 있음도 알게 됐다. 그렇게 재미삼아 찾다보니 나홍진 감독의 < 추격자 >(2007) 이전 김수용 감독의 반공영화 < 추격자 >(1969)와 김선경 감독의 ‘짝퉁’ 합작 액션영화 < 추격자 >(1979)도 발견하게 됐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경우처럼 장르적 자의식이 새겨진 제목 모방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무척 흥미로웠다. 같은 제목 다른 영화 포스터들 그러면서 다소 덜 알려진 B무비 감독 김선경 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 추격자 >는 사운드트랙 ‘Run and Run’은 물론 올리비아 핫세가 다소 육감적으로 등장하여, 올드팬들에게는 지금도 굉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탈리아 B무비 < 섬머타임 킬러 >(1972)의 주인공 크리스 미첨(로버트 미첨의 아들)이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소련에 있는 한 한국 과학자가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고, 미국 CIA 요원(크리스 미첨)이 그의 망명을 돕는다는 내용의 첩보액션영화였다. 멋진 태권 액션을 선보인 권부길이 크리스 미첨의 태권도 스승이었던 인연으로 캐스팅이 이뤄졌고, 재미교포가 제작자였기에 한미 합작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김선경 은 < 잘 살아다오 내 딸들아 >(1972)로 데뷔했는데 이형표 , 최영철 , 김시현 , 고영남 , 이혁수 , 김정용 감독의 경우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았던 한국 장르영화 감독 계보에 포함시킬 만한 인물이다. 조감독으로는 김시현 감독의 < 필살의 검 >(1969)에 참여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로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 항일 액션영화 < 빌리쟝 >(1974)을 시작으로 < 흑룡 >(1975), < 밀명객 >(1976), < 흑룡강 >(1976), < 금호문 >(1977), < 무림대협 >(1978), < 노명검 >(1980), < 산동반점 >(1982), < 산동여자물장수 >(1983) 등 주로 권격 액션영화나 한홍합작 액션영화들을 만들었다. 가공할 뱀떼가 등장하는, 아마도 실제 동원한 뱀 숫자만으로 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법한 동물 공포영화 < 인사대전 >(1983)도 떠오른다. 김선경 감독, < 밀명객 >, < 흑룡강 > 주로 트렌드에 편승한 액션영화들을 만들긴 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나름의 선 굵은 액션 연출과 이야기 전개로 독특한 매력을 풍겼다. 특히 호쾌한 발차기가 일품이었던 액션배우 왕호가 주연을 맡은 < 밀명객 >과 < 흑룡강 >이 그러했으며, 이를 통해 왕호는 홍콩 골든하베스트로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영상자료원에서 영화제를 통한 필름 상영이 아닌 VOD나 DVD로 감상 가능한 김선경 의 액션영화는 < 특명 >(1976)과 < 산동여자물장수 >(1983) 정도다. 최근 TV 드라마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캐릭터 ‘각시탈’이 최초로 등장했던, ‘권격영화의 결산시대가 왔다’는 당당한 카피와 함께 김추련 이 각시탈로 출연한 < 각시탈 철면객 >(1978)도 그의 영화다. 영상자료원에 DVD가 있는 것으로 검색되지만, 영상자료실에서 재생해본 결과 왕우가 등장하는 엉뚱한 액션영화였다(자료원 담당자 분께서는 꼭 참고해주시길). 라호용 의 첫등장과 한참 후의 얼굴 공개 김선경 감독의 영화들 중 베스트 서너 손가락으로 꼽긴 아쉽지만, 어쨌건 < 특명 >은 그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던져준다. 용( 라호룡 )은 독립군인 아버지 황대인을 잃고 한 도사 밑에서 자랐는데, 이제 그는 독립군의 지령을 받아 아버지가 목숨을 잃으며 탈취당한 불상을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현주( 김정란 )가 자신의 정혼자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 라호룡은 김선경 감독이 야심적으로 발굴한 배우로, 액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목을 쭉 빼고 자세를 낮춘 포즈가 독특하다. 하지만 역시 액션스타도 ‘얼굴’이 중요해서인지 <특명> 이후 그의 별다른 활약상을 들어본 적 없어 안타깝다. 현주를 연기한 김정란은 태권도 3단으로 홍콩 쇼브라더스로 진출해 < 여신탐 >(1976)을 찍기도 했으며 성룡이 한국에서 촬영한 < 사학비권 >(1978), < 오룡대협 >(1978) 등에 출연했다. <여신탐>에서는 홍콩경시청의 요청으로 홍콩으로 파견된 한국 여경이었다. 당시 ‘한 액션’했던 대표 여배우 중 하나였으며 < 애권 >(1980)에서는 사부(배수천)의 애권 연마를 도운 화류계 여자였다. 기본적으로 ‘불상’을 ‘금괴’로 바꾸면, < 특명 > 역시 당시 전세계적인 트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셀지오 레오네의 < 황야의 무법자 >(1964), 그러니까 이만희 의 < 쇠사슬을 끊어라 >(1971)나 < 용호대련 >(1974) 등 이두용 감독의 태권액션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파게티 웨스턴’의 변형에 가깝다. 가짜 불상이 판 치고, 서로 다른 세력들이 주인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영화 속 누군가의 대사처럼, “불상을 노리는 사람이 많지만 불상이 하나뿐이라는 게 비극”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영화에서, 흑장미를 협박하며 “5분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흑장미가 똥장미가 될 줄 알아라!”라는 식의 언어유희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특명>은 이두용 감독의 영화들처럼 만주 독립군들이 가죽점퍼에 나팔바지를 입고 화려한 발차기를 구사하는 ‘무술 레지스탕스 영화’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수원화성 표현주의, 아수라 백작, 꺽기도 스타일 수원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후반부 심야의 추격 결투신은 거의 표현주의적인 명장면이다. 불상을 찾으러 나타난 아수라 백작 스타일의 선글래스 쓴 금발 남자를 비롯해, 성곽 이곳저곳에서 총을 겨누고 뛰어내리며 옥죄어오는 악당들의 위압감도 좋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느닷없이 <개그콘서트>의 ‘꺾기도’ 스타일로 느닷없이 ‘대’자로 드러누우며 적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후 현주가 자신의 오래전 정혼자임을 알게 된 순간 찾아오는 황당한 연애장면들(사이좋게 자전거 타고 가다가 괜히 쓰러지는 그런) 만큼이나 당황스럽지만, 어쨌거나 설득력은 있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비현실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니까. 나중에 다나까( 박동룡 )의 본거지를 습격할 때의 활력도 좋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쫓고 쫓기는 가운데 느닷없이 ‘쌍부채’ 액션을 펼치고, 급기야 모터사이클에서 뛰어올라 악당( 권일수 )에게 날아 차기를 후려갈기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때도 멈춘 오토바이의 돌아가는 굉음은 멈추지 않는다. 승부는 끝났으되 관객의 감각은 여전히 열려있다는 액션영화 연출의 장인적 감각인 것. 그렇게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서야 주인공이 사실은 멀쩡하고 의협심 강한 ‘태권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요즘 사람들이 래프팅 하러 많이 가는 동강 혹은 한탄강에서 작별하는 장면을 끝으로, 그때서야 영화 제목이기도 한 ‘특명’을 받들어 떠난다. 그러니까 영화는 주인공이 비로소 ‘특명’을 받기 전까지의 이야기인 것. 한 송이 특명을 받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인용하고 보니, 영화의 정서와 반대로 서정주 시인의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킨 시의 한 구절일세). 라호 룡 김정란 감독: 김선경 각본: 최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