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Kim]종이컵 당신 예고편 박동현 감독
- 제작년도
- 2012
최근 우연한 기회에 소목(小木)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업제목이 전통가구제작이라 기계류는 쓰지도 못하게 하는 그런 클래스이다. 대패날을 갈고, 끌을 갈고, 대패집을 손본다. 초보자에게 대패날을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대패의 뒷날은 평면이어야 하는데 처음하는 일이다보니 자꾸 엉뚱하게 갈리기 일쑤다. 조금만 힘의 균형이 무너져도 평면이 깨어지고 날은 엉뚱하게 갈려있다. 숫돌도 마찬가지이다. 날을 갈다보면 숫돌의 평면도 당연히 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날을 가는 중간중간에 정반이라는 것에 숫돌의 평면도 잡아주어야만 한다. 게다가 800, 1000, 4000, 6000 등 숫돌의 거칠기를 달리하며 점점 고운 숫돌에 날을 갈아 매끈하게 날을 세워 간다. 전문가들의 날은 거울처럼 반짝인다. 그러다보니 단지 날을 가는데 들어가는 시간만 한두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시간 안에 날갈기를 끝낸다고 하는데, 나는 뽑기의 잘못이었는지, 내 날갈기 실력의 문제였는지 무려 다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목수는 보통 자기의 연장을 남에게 빌려주는 법이 없다고 한다. 특히 끌이나 대패는 절대 빌려주지 않는단다. 나는 그 이유를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라고나 할까? 바짝 날을 세우고, 정확히 평을 잡아 손질을 한 대패가 나무 위에 올려져 잡아 당겨지고, 이때 종이장보다 더 얇은 대패밥을 토해낼 때,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조차도 처음엔 내 손으론 만만치 않다. 누군가 고수가 내 대패를 사용했을 때와 내가 직접 대패를 잡았을 때 대패가 토해내는 대패밥은 양도, 질도 다르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연장과 나무와 친해진다. 하루에 아주 조금씩.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역시 그 쾌감을, 그 손맛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된다.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80-90년대에 날 매료시킨 사진이 있다. 썬글라스를 쓴 고다르가 담배를 물고, 필름을 들고 쳐다보는 사진. 워낙 유명한 사진이니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 되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일들을 손으로 해야만 했었다. 꼭 핸드메이드의 실험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만드는 일에도 손맛이란 것이 존재했던 것이다. 100피트 스풀을 필름 통에서 꺼낼 때 나는 그 필름 특유의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며 필름을 로딩하는 손맛. 체인징 백에서 캔을 열고 보이지도 않는 매거진을 더듬거리며 하는 필름로딩. 그리고 고다르가 그랬듯이 스틴벡 앞에 앉아서, 아니면 뷰어 앞에서 필름을 직접 보고, 만지고, 필름의 길이를 재서 시간을 맞추고, 필름을 붙이고, 떼고, 빈에 걸었다가 둘둘 말아 놓기도 하고 이런 모든 행위가 바로 그 손맛과 관계가 있는 일들이었다. 물론 핸드메이드 실험영화로 들어가면 그 손맛은 더더군다나 많아진다. 어떤 사람은 피클을 담그듯 해마다 자신이 촬영한 필름의 일부를 각종 약품들에 담궈 놓고 몇 년후에 꺼내보기도 하고, 직접 핸드프로세싱을 하기도 하고, 스크래칭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한다. 이러한 손맛을 느껴본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지... 벌써 10년은 훌쩍 지나간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현상소는 폐쇄하기로 잠정 결정된 것 같다고 얼마 전 관계자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 시설은 영상자료원에서 활용할 계획이라는 얘기까지 오고 갔다고 들었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완전히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자료원 내의 저 많은 자료들이 다시 새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꾸준한 관리의 토대가 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영상자료원은 분명 수요가 많아서 외부 작업에 대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한 이야기를 들었고, 영진위가 현상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필름으로는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스페이스셀 같은 곳에서 핸드메이드로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 조차도 점점 시설이 노후되어가고 있다.) 물론 대세는 디지털이다. 4K, 더 나아가서 나중엔 8K 등이 나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필름은 그 고유의 질감이라는 것이 있다. 디지털과는 분명 다른 그 아날로그적 질감. 최근 들어 가구에 더욱 더 많은 재료들이 사용된다. 플라스틱이나 각종 금속 등은 당연하고, 하물며 티타늄, 카본까지도 사용되고 있지만 나무는 여전히 중요한 재료이다. 필름을 잃는 다는 것은 하나의 매체를 잃는 것이다. 인류가 100년을 넘게 사용해 오던 매체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의 나조차 필름 작업을 안하고, 혹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필름은 매력적인 매체이다. 영진위가 되었든 영상자료원이 되었든 공공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필름 현상서비스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기이한 춤; 기무 >를 만들고 벌써 2년이 흘렀다. 작년에 개봉까지는 아니어도 겨우 전국 순회 상영을 할 기회를 얻어 전국 몇 개의 극장에서 몇 번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겨우 20여명 남짓한 관객이 전부였다는 후문이다. 물론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까지 합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지만 그래봐야 몇 백명 수준. 그리고 내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꽤나 오랜 세월(게으른 탓에 과작이긴 하다)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왜 돈도 안 되는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그것도 여전히 주변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이건 나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 나라에서 독립영화를 한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지원 받을 확률적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꾸준히 제작지원 사업들에 지원서를 내는 방법(이 방법은 페이퍼 웍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만 유용하다. 실제로 페이퍼 웍만 잘한 작업들이 자주 나온다.), 혹은 영화를 잘(?) 만들어서 각종 영화제들에 출품하여 상금을 받는 방법, 아니면 사재를 출연해서 어쨌든 한편씩 만들어 내는 방법 등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작년에 처음 사회적 제작단을 모집해 영화를 만든 < 잼 다큐 강정 >이 새로운 대안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특별한 이슈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이상의 지속화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멀티플랙스가 좀 더 독립영화에 개방적이어서 충분히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상영관이 확보되고, 관객들 역시 ‘재미’라는 오락적 요소 보다는 문화를 향유하는 개념으로 독립영화를 꾸준히 소비(관람이 더 어울리는 단어겠지만)하게 된다면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순환적 재생산 구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요원한 일일 것이고, 또 현시점에서 보면 어쩌면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독립영화는 분명 상업영화와는 다른 공공적인 문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는 상업과 다른 공공적 영역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해외의 경우 DVD를 제작하여(과거에는 필름프린트를 직접) 학교나 도서관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을 작가에게 분배하는데, 일반적인 소비자용 DVD와는 다르게 공공시설에서 대여할 수 있는 카피라이트를 따로 주어 더 비싼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을 사들이는 공공기관이 수천에서 수만 곳에 이른다. 물론 모든 공공기관에서 그 해에 나오는 모든 영화들을 다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혜택은 제작비 지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작용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개별적인 감독들이 각각 자신의 영화 DVD를 만들어 등급분류 받고 판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장편이면 모르겠지만 단편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최근 들어 공동체 상영 등의 상영 프로그램과 인디플러그 등을 통한 온라인 배급도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그 소비는 그리 크지 않다. 초중고에서 어떤 형태든 영화에 대한 수업을 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꽤 된 것 같다. 지금도 학기 중에 학생들은 다양한 형태의 감상 및 제작 수업을 듣고 있다. 하지만 평가를 나가보면 대부분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영화나 상업영화를 벗어난 영화를 수업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강사가 개별적으로 인디플러그 등에서 영화를 직접 다운 받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도 되겠지만, 사실 다운로드 서비스는 특정 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이지 어떤 집단, 특히 공공 영역에서 사용하도록 되어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조금 더 공적 네트워크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학교에서건, 공공도서관의 미디어실에서 건 이 서비스에 접속해서 수업이나 강좌를 진행할 수 있고, 또 일반적인 관객들이 도서관에서 직접 이러한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독립영화의 관객 수도 늘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스트리밍이건 다운로드건, 이 서비스를 클릭수로 계산을 하건, 월로 사용료를 내건, 아니면 허가받은 작품에 대하여 임대료를 내건 기술적인 논의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선 영진위든, 자료원이든 아니면 다른 조직을 만들어서라도 공적인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제작지원도 늘었다, 줄었다하고, 독립영화 전용관도 휘둘리는 상황에 좀 더 안정적인 재생산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도 또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 영화는 탈북자, 새터민에 대한 영화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층이 바로 이 탈북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어쩌면 탈북자들이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러한 최후의 보루마저도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 비장하다. 무산일기. 감독은 주인공 승철의 고향이 무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재산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없는 자의 일기. 없는 자의 하루. 참 비장하고, 비루하다. 탈북자인 주인공 승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닥 적응을 잘 하질 못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번번히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절당한다. 담당 형사가 소개시켜주는 일자리도 그렇고, 포스터 붙이는 일 역시 단지 구역을 잘못 배정받아 방해자가 있어서 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못하는 것으로 낙인찍혀 그 마저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곤 한다. 잘 하려고 했는데, 그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뿐인데, 승철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대와 멸시뿐이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절규와도 같은 이 말이 아마도 승철의 모든 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잘 못한 일도 없는데 단지 잘 못한 것이 있다면 남들처럼 영악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 승철은 열심히 교회에 나간다. 그것이 성가대에 있는 여인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의지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함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는 교회를 나가고, 그 곳에서 ‘구복求福’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승철은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성가대 여인이 노래방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노래방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승철은 그 곳에서 돈의 또 다른 가치에 대해, 자본주의의 이면에 대해 하나씩 알아나간다. 오해로 인해 노래방에서 ?겨 난다. 그리고 연이어 포스터 붙이는 일도 짤린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 승철은 변화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배들과 맞서게 된 것이다. 승철이 순수한 마음을 버리게 되는 순간, 자본주의에 적응을 시작한 순간, 교회에서 고해성사와도 같던 악에 받힌 과거 고백의 순간 교회와 숙영은 승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결국 변화한 승철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경철의 돈을 가로챈다. 승철이 유일하게 정을 준 대상은 강아지이다. 승철이 노래방에 다시 출근하게 된 날, 승철은 가로챈 경철의 돈으로 양복을 맞춰 입는다. 그리고 강아지를 노래방 밖에 묶어놓는다. 잠시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나온 승철은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하지만 승철을 따라가려던 강아지는 차에 치어 죽고 만다. 맥주를 사서 노래방으로 돌아가려던 승철은 강아지의 주검을 발견한다. 망연자실한 승철의 뒷모습. 하지만 승철은 죽어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다 그대로 일터인 노래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비정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누구의 대한민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탈북자이건, 이주노동자이건, 도시빈민이건 상관없이 아직도 이 나라의 최하층에는 무엇을 하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