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연씨 영결식날, 삼성본관 앞
- 제작년도
- 2010
“당신과 헤어진 것은 싫어져서가 아니야.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 같은 거야.” 남자는 우주를 떠다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초현실주의 같은 장면은 박지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 낙타들 >(2011)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작품의 남자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 원래는 진짜 배우가 연기하기 전 가이드 녹음이었지만 적당한 배우를 구하지 못한 감독의 결단으로 나의 목소리 연기가 작품에 남게 되었다. 사실 내가 목소리 연기 했다는 이유 말고도 이 작품은 무척 뛰어난 작품이다. 마치 관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 여자. 이 집은 텍사스의 어느 모텔처럼 사막과 같이 덥고 황량하다.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전 애인은 냉장고에 앉아 있다. 남자는 “당신과 같이 있지 않을 때 당신이 더 그립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 얼굴 안에 들어 있는 앵무새이다. 남자 안에 있는 앵무새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2008)과 마찬가지로 남자와의 연애와 이별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지연 감독의 희소성은 그녀가 다루는 사랑의 일면이 성숙하다는 데에 있다. 성숙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많이 보는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이다. 국내의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이 있는 편이다. 그러다 대부분의 작품이 사랑이나 이별을 TV 드라마와 다르지 않은 깊이에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들이 주로 대학생들이고 20대 초중반의 나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좋은 남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오해를 풀고 재회를 하는 정도의 패턴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 낙타들 >에 나타난 여자 주인공은 다르다. 많은 상처 때문에 메말라 버린 주인공은 그렇다고 남자를 욕망에 사로잡힌 나쁜 존재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다시 달콤한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관같이 생긴 냉장고를 타고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박지연 감독 본인은 자신의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 내면을 이렇게 건조하면서 시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드물다. 또한 이 작품의 이미지와 상징 또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앵무새가 들어 있는 얼굴을 가진 남자. 앵무새는 남자의 욕망을 상징하는데, 앵무새가 날갯짓을 시작하면 남자는 정신없이 방안을 날아다닌다. 여자는 “내가 구해 줄게” 하며 밧줄을 던진다. 그리고 밧줄에 잡힌 남자는 시계추처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러다가 앵무새는 얼굴에서 나와 남자의 몸을 완전히 먹어 버린다.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힌 남자의 모습을 이토록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독특한 스타일 때문인지 이 작품은 부산 국제영화제와 4대 애니메이션에 페스티벌로 불리는 안시, 자그레브, 오타와를 포함한 해외 많은 영화제에 상영되었다. 박지연 감독의 신작이 곧 나오는데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로 신작을 만들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
독립애니메이션 최대의 축제인 인디애니페스트(9.20~9.25)가 올해도 인상적인 작품들에게 상을 안겨주면서 축제의 시간을 끝냈다. KIAFA 특별상 독립애니메이션 협회의 집행위원들이 주는 이 상은 다른 부분이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에게 수여된다. 수상작은 김왕걸 감독의 < 집 >. 이 작품은 연필 드로잉으로만 그려진 페이퍼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고 한국사회에 집이 주는 계급 구조만을 집중 조명하였다. 치솟는 전세와 작아지는 사람들의 여유와 마음. 대한민국은 집의 공화국이며 집이 계급이다. 주제에 집중하는 능력은 단연최고였고 현실적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작품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초록이상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오성윤 감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그래서 상이름도 주인공의 이름을 딴 초록이 상. 초록이 상 수상자는 < 연인의 방 >의 전용석 감독이다. 이 작품은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한정된 장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집이 기울어지는 아이디어는 새롭지는 않다. 유명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벨런스>와 박지연 감독의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에도 이미 나오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균형이 주제라기 보다 기울어가는 남자의 마음을 기울어가는 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한 현실적인 연애정서를 스탑모션으로 그것도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대사로 표현한 것은 이 작품의 강점이다. 영화아카데미 실습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컨셉으로 승부하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준다. 새벽비행상 성혜진 감독의 < 너 때문에 >에는 어떤 의미에서 예스러운 작품이다. 작품에 묻어나는 정서도 지금의 삼사십대가 기억하는 풍경,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남매의 감정을 잘 잡아내고 있다. 그런데 감독이 여고생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손으로 일일이 문질러서 만들어낸 부드러운 아트웍은 흡사 페인트온 글라스와 같이 자연스러운 장면 변화의 느낌을 준다. 오랜만에 나타난 전통의 강호 계원 조형예술대학교의 작품이다. 심사위원 특별상 < 수영장의 고양이들 >. 이 작품은 작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 작품들 중 가장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단색이지만 섬세하게 배열된 색의 조화와 캐릭터의 디자인들이 인상적이다.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고양이와 새의 관한 진실’과 같이 죽의 고양이에게서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심상을 표현하였다. 독립보행상 < 연애 놀이 > 정유미 . 전작 < 나의 작의 인형 상자 >, < 먼지 아이 >로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정유미 감독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의 한명이다. 그녀의 특징은 포스트 모던 하다는 것. 작화와 컷아웃 형식이 결합된 움직임은 분절되고, 절제된 사운드는 효과음을 빼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내용 또한 일반적인 영화의 스토리 텔링과 전혀 다르다. 영화는 다큐를 보듯, 현상을 관찰하듯 감독이 관찰자처럼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전작과 같이 각 장면들은 반복와 차이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흑백의 극사실주의 묘사가 결합된 이 작품은 연애를 ‘서로의 반응을 통해 일어나는 놀이’로 보고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디의 별 인디의 별은 < 오목어 >의 김진만 감독. 이 작품으로 김진만 감독은 관객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전작에 비해 눈에 띄게 작품이 재미있어 졌다. 톡특한 목소리연기를 한 연기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모든 연기는 본인이 했다고 한다. 김진만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인정신을 유지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혼자서 오랜기간 촬영을 거쳐서 완성된다. 스탑 모션은 중간 움직임을 수정할 수 없고 한 컷이 잘못되면 그 컷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산물. 이렇게 섬세하고 꾸준하게 좋은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이 있다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행운이다. 게다가 점점 재미있어서져서 웃기기까지 하다. 그의 대상 수상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독립 작가들, 특히 10년이 전부터 작품을 만들던 박현경, 김준기 감독의 신작은 반갑고 그리고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정민영, 오수형, 양선우 감독 그리고 김예영, 김영근, 강민지 감독 등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의 폭이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이다. 초창기 인디애니 페스트는 실사 영화제에서 소외된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하였고 또한 아시아의 작가들과의 교류도 점차 늘어가게 되었다. 이런 역량을 유지하면서 점차 관객을 늘리는 형태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원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인 박지연 감독이 만든 단편인데 박지연 감독은 원래 EBS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레카’와 ‘흑장미 부인의 문방구’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이다. 사실 그녀는 그 전에 한 번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이 작품은 문화센터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그 워크숍의 담당 강사는 나였다. 그녀는 ‘버리는 것은 없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녀는 내가 ‘작화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라고 테스트로 그려 준 컷 까지 모두 화면에 넣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친구, 후배 그리고 엄마와 자신의 중학교 제자들까지 한 장씩 그리게 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은 종종 채색이 덜된 부분이 보이고 심지어는 화면의 픽셀이 깨진 부분도 있다. 감독이 포토샵을 잘 모르는데다가 픽셀이 깨진 것도 괜찮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성이 되고 나서 작품을 보니.........너무 재미있었다. 두 연인이 대화하는 내용을 따라가는 애니메이션인데 두 사람의 대화는 옛날 방화에서 나오는 그것이다. 그러니까 ‘날 잡아 봐요~’해변에서 뛰어가는 두 남녀 분위기.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분위기의 화면에 옛날 방화의 말투의 성우녹음의 간극이 큰 재미를 준다. 신선했다. 그리고 상영 할 때마다 관객들도 무척 좋아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러한 제작 방식과 완성된 작품이 주는 재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고 어찌되었던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작품. 마이클 두독 비트의 ‘아버지와 딸’도 훌륭하고 픽사의 단편들도 훌륭하고 앙시나 자그레브의 대상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그것만 보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면 왠지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하는 육상선수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언제부터였을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많은 준비가 필요해 진 것이......... 이런 작품들을 보면 준비가 없어도 되며 즐겁게 연주하는 거리 공연 같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이 엄숙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즐겁고, 만든 사람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