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투쟁속보, 죽음을 딛고 해방으로
- 제작년도
- 1991
1991년 4월, 강경대가 사망했다.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그는 사복경찰에 쫓겨 학교 담을 오르다 붙들렸고 무자비한 매질을 당했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고작 1학년 학생이었다. 너무 이른 죽음이었고 사무치는 죽음이었다. 강경대의 죽음은 전국적인 학생 시위가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5월, 자본과 국가권력의 거대한 폭력에 압도당한 불가항력의 상황 속에 어린 노동자와 청년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사르고 투신했다. 이른바 분신정국이라 불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와중에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고, 그의 시신마저 공권력이 병원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와 탈취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시위에 참여했던 성균관대 김귀정이 거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렇게 5월, 국가권력의 폭력 속에, 그해 한 달 동안에만 무려 열 한 명의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정국과 여론이 심상치 않자 권력은 묘수를 찾아낸다. 서강대 박홍 총장은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선동했고, 한때 민주주의를 노래하던 시인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며 권력을 비호했다. 그리고 예의 사건이 벌어진다.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전민련 김기설 씨의 죽음이 함께 일했던 동지들에 의해 방조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이십 대 중반의 청년, 강기훈이 유서 대필자로 지목되어 수감된다. 폭력적인 권력과 그 하수들이 만들어낸 상상을 뛰어넘는 조작극이었다. 그로부터 이십육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저항보다는 순응을, 연대와 공동체보다는 경쟁과 생존을 강요받은 지금의 청춘들과 대학가의 풍경은 91년 청년들이 투쟁하고 부대끼던 시대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하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누가 오월의 열사들을, 그리고 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인가. 영화 < 국가에 대한 예의 >는 91년 4월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저항 운동과 그 역사적 격랑에 희생된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서대필자로 처벌받았던 강기훈 씨의 현재를 기록한다. 시대에 저항했던 죽음을 한낱 ‘강요되고 대필 되는’ 죽음의 프레임으로 매도했던 이들이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동안,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들을 잃어야만 했던 이들은 강요된 죄의식과 트마우마 속에서 숨죽여야만 했다. 이십 대 청년이었던 강기훈은 당시 3년의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출소 후 오랜 진상규명과 법적 투쟁 끝에, 24년이 지난 2015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즈음 그는 간암 판정을 받았고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몸은 사위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의 병세를 알아챌 무렵 그는 뜻밖에도 기타를 들고 그들 앞에 서게 된다. 속내를 알 수 없고 무심하던 그가 그의 곁을 지켜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감사의 표시이자, 자신의 오랜 음악적 열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시대적 폭력이 앗아간 청춘의 꿈과 상처에 대한 회한과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제는 잊힌 열사들의 이름들. 혹은 ‘열사’라는 거대한 호명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이십대 혹은 십대 어린 청춘들의 피지 못한 사적인 소망과 앳된 얼굴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면 더더욱 이 영화는 자신의 망각과 혹은 청춘의 기억을 자극한다. 동시대 시위현장에서 무수하게 외치고 부르짖었던 저들의 이름은 우리의 길고 지루한 삶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영화 속 영정 사진들을 통해 본 저들의 얼굴은 너무도 젊고 어렸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김귀정은 일기장에 “십 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글귀를 남겼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왔던 우리들, 십 년 후가 아니라 이십여 년의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 그들의 이름은 우리의 청춘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비로소 밀려오는 상념들. 나의 지난 삶은 어떠했는가. 2016-17년, 촛불의 승리가 주는 묘한 ‘환각’적 상태에서 불현듯 상기된 오랜 기억들. 이 영화는 이제는 잊힌 지난 시절, 격렬히 저항하고 부대끼며 살아왔던 선배들에 대한 기억이자 증언이며, 그들과 같은 시대를 보냈던 청춘들에게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상기시킨다. 그런데 그 기억은 묘하게 씁쓸하고 아련하며 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