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몰랐을까요(인형영화)
- 감독
- 손종권, 박광진
- 제작년도
- 1999
원신연 감독, 공유 주연 < 용의자 >는 왕년의 ‘레전드’ 스턴트맨들이 총집결하여 반가웠다. 최태환 무술감독과 원신연 감독의 동생인 배우 원풍연 , 그리고 성룡이 이끄는 무술팀 ‘성가반’에서 이충지, 박현진 등과 함께 맹활약한 한국인 이인섭 도 눈에 띄었다. 최태환 감독이 소속된 무술팀 ‘트리플A’(All About Action)는 이인섭이 < 러시아워3 >(2007)를 끝내고 돌아와 오세영 무술감독과 함께 < 왕의 남자 >(2005)에 참여하기 직전 공동대표로 꾸린 팀이다. 가장 반가웠던 인물은 바로 원진 이었다. 영화 속 청량리역에서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얼핏 왜소해 보이는 남자가 지동철(공유)과 싸우며 그야말로 날렵하고 화려한 발차기를 자랑했다. 가끔이라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스턴트맨들 중 정두홍 무술감독의 몇 안 되는 선배이자, 그가 머리 숙여 실력을 인정한 진짜 레전드가 바로 원진이다. 그들 대부분은 ‘밥풀데기’ 개그맨 김정식이 몸담기도 했던 ‘오뚜기 무술단’ 동료들이었다. 최태환 , 원풍연 , 이인섭 물론 그는 < 조폭마누라 >(2001), < 청풍명월 >(2003), < 낭만자객 >(2003), < 청춘만화 >(2006) 등의 무술감독이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실력자라 종종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무명 시절에도 왜소한 체격 탓인지 주연 여배우 대역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조폭마누라>에서 신은경 대역을 한 것도 역시 그다. 다소 중국스러운 이름 때문에 중국 액션배우로 아는 사람도 많았고, 실제로 홍콩 골든하베스트사의 초청으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바로 < 가자왕 >(1992)에서 길게 머리를 늘어트리고, 다리를 뒤편 위로 치켜 올려 전갈 권법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그 자세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한 ‘공중 돌려 가위차기’는 홍콩 스턴트맨들도 한없이 부러워했다. 원진 을 포함해 역시 오뚜기 무술단 스턴트맨 출신의 원신연 감독이 옛 동료들을 불러 모아 완성한 < 용의자 >는 그야말로 훈훈한 ‘우정의 무대’라고나 할까. 여기서 떠오르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비록 전체적인 완성도는 미흡하지만 당대 ‘무술인’들의 ‘십시일반’ 정신으로 완성한 김춘식 감독의 < 고수 >(1997)다. 역시 스턴트맨 출신의 김춘식과 당시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원진 이 동료들을 규합해 ‘진짜 우리들만의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품앗이하듯 의기투합한 것. 비록 스타급 배우는 없고 제작비는 넉넉하지 못 했지만 스턴트맨들끼리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거기에는 ‘액션을 영화의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주재료로 써보자’, ‘우리도 남들 대역만 하지 말고 진짜 배우가 되어 보자’는 생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배경은 1930년대 일제치하, 친일파인 기봉( 장정국 )은 딸 승희( 김지은 )를 일본의 실력자 노무라( 최성 )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이에 승희는 연인 형철( 우승봉 )과 함께 돈을 훔쳐 달아난다. 전국을 떠돌던 그들은 우연히 차례로 변소동( 오동영 ), 조달구(김춘식)를 만나 도움을 얻게 된다. 기봉이 보낸 조직 ‘야수파’ 등에 맞서 승희와 형철을 도와주는 그들은 물론 돈 때문이다. 한편, 한 손에 갈고리를 하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고수(원진)는 조달구를 쫓는다. < 고수 > 출연자들 아쉬운 점은 역시 어설픈 유머가 난무하는, 물론 보다 보면 귀엽기도 한 이야기의 완성도다. 승희와 형철을 추적하는 조직의 이름이 야수파인 이유는 그들의 별명이 하나같이 멍멍이, 풍뎅이, 메뚜기, 반달곰, 올빼미 등 ‘야수’ 혹은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개의 귀 모양을 한 모자를 쓴 멍멍이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이인섭 이며, 승희와 형철을 쫓는 또 다른 3인조 중 핑크색 옷을 입은 남자가 바로 오세영 무술감독이다. 또한 ‘홀쭉이와 뚱뚱이’처럼 반목하는 변소동과 조달구는 서로의 이름으로 장난을 친다. 자신을 ‘조달구’라고 소개하자 변소동이 “좆 안 달고 태어나는 남자도 있당가?”라고 놀리고, 이에 질세라 조달구는 ‘변소똥’이라 부르며 달려든다. 이들이 등장해서 완성한 추격의 로드무비가 B스러운 것은, 바로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동료들을 규합해 영화를 찍고자 합의는 하였으나, 이 사람도 눈에 밟히고 저 친구도 눈에 밟히니 그저 엇비슷한 분량으로 몽땅 출연시킨 느낌이다. 그래서 친일파 기봉은 딸을 잡아들이기 위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야수파도 보내고, 혼성 3인조도 보내고, 다시 남성 2인조까지 보낸다. 게다가 서로 각자의 실력을 자랑해야 하니 의욕에 넘쳐 그야말로 영화 내내 묘기 대행진이다. 별것 아닌 동작도 굳이 날아오르거나 몇 번 굴러서 ‘짠’ 하고 잡아내는 식이다. 당연히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한 덤블링 하는’ 스턴트맨들이다. 단지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킬러를 보낸 인해전술의 추격극이 과연 있었던가. 원진 그래도 역시 실질적인 주인공은 가장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원진 이다. < 가자왕 >을 연상시키는 돌려차기에다 쉴 새 없이 ‘날고 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분명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적어도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대역도 속임수도 없는 진짜 퀄리티 높은 액션영화인 것. 원진의 또 다른 추천할만한 한국 액션영화로는 < 용호취 >(1988)와 <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1989)가 있다. 코흘리개 신인 정두홍이 참여한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는 그가 실력을 인정하는 두 선배 류창국 과 원진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들이 이른바 ‘아동용 영화’의 긴 암흑기를 지나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게 된 건 무척 뿌듯한 일이다. 한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김춘식 감독은 작년 조주현 , 전세홍 주연의 ‘리얼 액션영화’를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진짜 완성됐는지 어땠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 아는 여자 >의 패러디인지 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건 제목은 < 패는 여자 >였다. 오동영 김지은 감독: 김춘식 각본: 이무섭 개봉극장: 바다, 파고다4관(서울) 관람인원: 1,300(서울)명
불현듯 이른 아침시간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맺혔다. 이 영화 < 반달곰 >은 슬프고 애잔하고 답답하다. 현실을 예쁘게 포장하지도 않고 큰 목소리로 자신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거의 들릴 듯 말듯 어눌하게 자신의 이야기하는 주인공 원식의 입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비루한 삶과 조우하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대학을 졸업한 원식은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누나의 소개로 취직한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 하지만 모든 게 서툴기만 하고, 어색해진 원식은 중간에 피시방으로 땡땡이를 친다. 결국 그 일로 치킨 집을 관두기로 하고, 누나가 사준 점퍼를 다시 벗어 내놓고 피시방으로 간다. 결국 누나와 한바탕을 한 원식은, 치킨 배달 오토바이를 키를 훔쳤을 것 같은 고등학생을 찾아간다. 한바탕 난리 끝에 결국 싸움이 일어나고, 그 길로 치킨 집으로 되돌아간다. “열심히 하겠다”며 다시 치킨을 포장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20대의 만만치 않은 삶을 다룬 단편영화들은 많았다. 아니 많았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그들 세대들의 이야기니깐. 하지만 < 반달곰 >은 이들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회적인 이슈나 소재 혹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피해서 우회로로 돌아간다. 배우들의 연기와 카메라를 통해 천천히 감정을 끌어올린다. 즉, 영화의 ‘정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등장인물들을 정해진 앵글 안에서 연기하는 방법보다는, 배우의 감정을 살리는 방향으로 영화 내내 한곳에 정박하지 않는 카메라 워킹(핸드 헬드)이 정서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참 멀고 어둡고 자존심 상하고 현재가 깜깜한 그 길을 카메라가 주인공과 함께 휘청휘청 걸어가는 장면은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 멀리 아파트의 불빛만이 스크린에 남는다. 어쩌면 그것을 희망이라고 우리는 포장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을 던지는 것 같다. <반달곰>에서 보여주는 핸드 헬드는 지금의 20대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들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나친 생각일까. < 반달곰 >의 진정성은 원식의 마지막 대사에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열심히 할께요’라는 자기고백. ‘열심히 할께요’라는 자기 고백으로 앞으로도 불확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방어, 자기 긍정의 신화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 말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희망은 다시 봉인된다. 어쩌면 그게 현실이다. 어설픈 자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잠시 봉합된 삶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관객들과 정서적인 일치감을 형성하다. 모두 힘내서 같이 살자!
원석은 스스로의 시간을 멈춘 듯 보인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아주 오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게으르고 둔하며 단지 몸을 웅크린 채 추호의 성장도 거부하듯 아주 느슨하게 자아를 묶어놓은 시커먼 잉여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피시방 구석에서 자신을 성찰 할 어떤 기회도 거부하며, 스스로 찾아야 할 그 다음의 길도 걷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온라인 게임 안에 서식중이다. 그런 원석에게 이제 어쩔 수 없는 “알바”의 인생이 시작된다. 원석의 누나는 원석이 혹여 추위에 고생이라도 할까봐, 혹은 그의 느리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기특한 듯 원석에게 겨울용 파카를 사준다. 영화는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파카를 입은 원석이 누군지를 궁금해 하며 관객이 그의 모습을 서서히 따라가면 관객은 곧 원석의 무능함과 답답함에 지겨움을 느낄 수 도 있다. 누나의 애인이 주인으로 있는 치킨 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원석. 그러나 그는 입으로 떠들던 것과는 달리 스쿠터 하나 잘 몰지 못한다. 주소를 하나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재빠르게 움직이며 세상의 주문을 감당할 깜냥도 없어 보인다. 추운 겨울 우리의 반달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잠에서 이제 깨어나 보려 애쓴다. 그는 알고 있다. 누나의 마음을. 그러나 그의 시작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는 스쿠터의 열쇠를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제대로 돌리려 하지만 그가 믿어주길 바라는 어른들은 그가 여전히 겨울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반달곰. 이정홍 감독의 대범한 중편 데뷔작 < 반달곰 >은 그런 영화다. 세상은 열아홉, 스물의 “소년”들에게 단지 그들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의 책임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하지만 어떤 어른도 그들에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세상의 책임이란 어떤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년들은 세상의 1퍼센트에 자신이 포함되어지지 않는 그 순간, 자신에게 허용된 생산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 어린 시기에 부유하는 혹은 정지된 자신을 돌아볼 휴식의 시간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 반달곰 >의 원석이 그 모든 것들을 배신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바깥으로 도망을 가버려도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석은 다시 돌아온다. 그는 결국 그를 아껴주는 사람 곁으로 돌아가 투박하게 어른들에게 말한다. “이제 잘 할게요.”배달용 상자를 접으며 내뱉는 원석의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저리도 훌쩍 성장하는 녀석의 모습이 안쓰러웠기도, 혹은 아파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이정홍 의 <반달곰>은 그래서 아픈 영화다. 감독은 두어 발자국 떨어져 원석을 보여주려 하지만 거칠지만 송곳 같은 대사와 심사숙고한 장소의 이미지들로 인해 우리는 감독과 캐릭터의 거리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된다. 아직 장편도 단편도 아닌 그 사이의 시간인 < 반달곰 >은 비범함과 평범함이 공존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장면은 기적처럼 놀랍고 어떤 장면은 학생영화처럼 단정적이고 어떤 장면은 단지 거칠기만 하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심장이 흔들리는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반달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작하는 감독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며 또한 그 다음 작품을, 그의 장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2012년 내가 뽑는 최고의 다음 세대의 영화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