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
- 감독
- 서예찬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심해인, 김송은, 이예성
2002년 < 하드보일드 초콜릿스타일 >과 < 진혼곡 >을 보고 두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이후 장르영화를 하겠구나, 생각했다. 뒤늦게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서 발견한 ‘창준’역의 장건재 감독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장건재 감독을 다시 만난 건 2008년. 안부가 궁금하던 사이 그가 작업한 단편 < 꿈속에서 > 프리뷰를 받았다. 영화를 보며 나의 기억 속에 막연한 선입견으로 배치되어있던 장건재 감독 작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감독의 자전적 작품인 < 꿈속에서 >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그린 영화로 장건재 감독의 정서를 엿보게 한다. 영화는 떠난 친구를 서정적 흐름으로 기리며 애잔하게 애도한다. 그 후 연출한 장편 < 회오리바람 >은 <꿈속에서>에서 보여준 서정성과 섬세함을 영화적으로 숙고한 작품이다. 장고의 시간 동안 제작된 <회오리바람>은 이전 필모그래피가 충실히 쌓인 작품으로 장건재 감독의 영화적 언어가 관객들과 공감을 일으킨 영화였다. 그리고 < 잠 못 드는 밤 >. 일상을 포착해 내는 감독의 관찰력과 그것을 영화로 옮기기까지 동반되었을 진중한 고민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주인공 주희와 현수는 결혼 2년을 맞은 30대 부부. 부유하진 않지만 둘만의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을 행복으로 사는 이들이다. 늦은 밤 산책을 하고 둘만의 기념일도 챙기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다. 그러던 이들의 대화에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등장한다. 둘만으로 부족함 없던 이들의 온전한 세계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현실적 고민으로 미세하게 흔들린다. 결코 가볍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이 문제는 둘만의 일상이 사라지게 할 것이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할 것이다. 이로 인한 불안감은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며 부부의 꿈으로, 상상으로 재현된다. 이 작품 또한 감독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 잠 못 드는 밤 >의 프로듀서와 감독은 실제 부부이며 이들의 협업은 이번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김수현, 김주령 배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스탭이다. 감독은 배우들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발전시켰고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를 완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절제된 구도와 정제된 사운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군더더기 없이 배치되어 집중하도록 한다. 65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 흐르고 엔딩이 올라갈 때, 이후 ‘주희’와 ‘현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말하는 가운데서도 일련의 수순으로 찾아온 ‘양육과 출산’의 고민.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딜 그들의 성장과 변화할 세계가 궁금해진다. 관객은 ‘보통의 일상’이 감독 안에서 치열하게 다듬어져 영화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통해 감독의 세계관과 만나게 된다. 장건재 감독의 초기작부터 봐온 관객으로서 이번 < 잠 못 드는 밤 >을 관람하고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한동안 감독 안에서 곱씹어질 수 많은 ‘보통의 일상’들이 진정성 있게 영화적으로 확대되길, 다음 작품에서도 기대해 본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동네로 밤 산책을 많이 한다. 길을 걷다 요사이 눈에 든 것은 길거리에 버려진 인형들이다. 꽤 큰 부피의 곰이나 개 인형들이 먼지를 덮어쓰고 비에 젖어 버려져 있는 것을 보면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어떤 동물의 외형만 딴 헝겊을 둘러쓰고 있는 솜 따위임에도 마음이 간다. 길에서 유기견을 맞닥뜨린 것처럼 그 커다란 솜털뭉치에 마음을 두고 길을 지난다.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만난 옴니버스 영화 < 미안해, 고마워 >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면서 어떤 소외와 그늘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영화다. 반려동물인 그들로 인해 성장하고 지난 길을 돌아보고 그들과 눈을 맞추고 껴안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을 어떠한 이해로 살아야하는 지 생각해 보게 된다. 네개의 에피소드 중 박흥식 감독이 연출한 <내 동생>은 조그만 강아지를 의인화한다. 6살의 보은에게는 아끼고 사랑하는 여동생 보리가 있다. 보은이에게 귀여운 여동생인 보리는 어른들 눈에는 사실 하얗고 어린 강아지일 뿐이다. 보은을 보고 형이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철없는 여동생 보리(보리가 강아지라서 멍멍거리는 소리를 보은이는 형 형으로 듣는다)를 아끼는 보은은 결국 보리와의 아쉬운 이별을 만난다. 보은이와 보리가 만드는 추억에 울고 웃다보면 사람과 강아지를 오가는 보리에게 깊은 여운이 남는다. 헝겊 쪼가리 인형에게도, 꽃에게도, 강아지에게도 마음을 쓰고 주었던 어린 시절이 사람, 국가, 사회, 집단. 가족, 단위의 협소한 애정으로 바뀌어 가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기이겠지만 어느 날 꽃이 다시 좋고 바뀌는 계절을 즐기고 거리를 지나는 길고양이에게 연민을 느끼다 보면 조금씩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의 범위가 늘어날 때가 있다. 임순례 감독의 <고양이 키스>를 보면 가족적 이기에만 집중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그 가족에 대한 이기 때문에 결국은 길고양이에 작은 관심을 가지고 그 지키고 싶어하는 범위가 커지는 것을 보여준다. 강아지 보리의 추억을 잃어가는 것도 자연스럽지만 그러한 이기심에 매어 사는 습관이 젖어 살다가도 내가 견디기 위해 주위에 다른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게 되고 지키고 싶은 새로운 것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 작지만 커질 수밖에 없는 우리와 같이 사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 줬던 감정들이 < 미안해, 고마워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