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버스터 키튼
- 감독
- 피터 보그다노비치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피터 보그다노비치, 멜 브룩스, 폴 두리, 빌 헤이더, 베르너 헤어조크, 빌 아윈, 제임스 카렌, 버스터 키튼
사진: “ Safety Last!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때로는 영화보다 그 영화의 어떤 장면, 그 장면의 스틸 사진이 더 유명한 순간이 있다. 안경을 쓴 순진무구한 젊은 청년이 도시 한복판 높은 빌딩 시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아마 (스필버그가 제작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 빽 투 더 퓨쳐 >(1985)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신이 방금 떠 올린 그 영화, 마이클 J. 폭스가 매달려 있는 그 장면은 오마주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도 조르주 멜리에스에 관한 3D 영화 < 휴고 >(2011)를 연출하면서 이 장면을 오마주했다. 성룡도 < 프로젝트 A >(1984)에서 시계에 매달렸다. 더 많은 예를 열거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장면은 영화에서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아카데미의 영화 이론서 표지에도 등장한다. 나도 스틸 사진을 먼저 보았다. 영화사에서 빌딩 시계에 처음 매달린 사람은 해롤드 로이드이다. 위대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제는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름. ‘방랑자’ 채플린, ‘스톤 페이스(Stone face)’ 버스터 키튼과 함께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코미디를 이끈 세 명 중의 한 명. 둥근 프레임의 뿔테 안경을 쓰고 (이 스타일의 안경은 이제 로이드 안경테라고도 불린다) 둥글고 납작한 보터 모자를 쓴 해롤드 로이드는 가난한 ‘모던 보이’. 그 소년이 시계에 매달린 영화는 Safety Last (1923)이다. 영어 제목으로는 금방 이해되지만 번역하기 까다로운 “Safety Last”는 공사장에 붙어있는 “Safety First(안전 우선)”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안전 마무리>라고 하겠다. 하지만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고, 더 좋은 제목이 떠오르면 수정하겠다. 역시 세 명의 위대한 대가들을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채플린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험한 상황에 휘말려 들지만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신의 도움을 받기라도 하듯이 거기서 빠져나온다. 버스터 키튼은 자기가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인간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력 질주하면서 벗어난다. 해롤드 로이드는 반대이다. 버스터 키튼이 스피드의 대가라면 해롤드 로이드는 위험한 상황에 온갖 장애물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늘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 실수를 연발하면서 가까스로 거기서 벗어난다. 그 실수의 시간을 최대로 연장한 영화가 <안전 마무리>이다. <안전 마무리> 중 / 사진: “ Safety Last! ”, IMDb 이번에는 LA가 무대이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지참금을 구해야 하는 (영화 속의 이름도 마찬가지인) 해롤드는 백화점에 취직한다. 그런데 함께 지내는 빌에게는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스파이더맨’ 같은 재능이 있다. 백화점 지배인은 손님을 건물에 끌어모으기 위해 1,000달러를 내걸고 빌은 12층 빌딩에 1층부터 등반하겠다고 알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해롤드가 1층을 올라가게 된다. 일이 생긴 빌은 다음 층에 옷을 갈아입고 자기가 오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층에서 이런저런 일이 생겨 바꿔치기는 그다음 층으로 미뤄지고 그러면서 가여운 해롤드는 계속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게다가 그 자리에 여자친구도 도착한다. 층마다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나고 너무 높이 올라가 이제 내려갈 수도 없는 해롤드는 위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클라이맥스는 빌딩에 달린 시계에 매달릴 때 벌어진다. <안전 마무리>는 해롤드가 12층 빌딩을 19분 50초 동안 등반하는 장면을 감상하기 위해서 보는 영화이다. 거의 슬로우 모션처럼 진행되는 이 등반은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다. 좀 이상한 비교이기는 하지만 이 씬은 < 전함 포템킨 >(1925)의 오뎃사 계단 장면의 거의 두 배이다. 물론 마지막은 여자친구와 키스로 마무리하는 해피엔딩이다. 사진: “Safety Last!( 1 , 2 )”, IMDb 해롤드 로이드가 이 장면의 영감을 받은 것은 1922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다음 영화 회의를 위해서 영화사로 향하던 길에 LA 7번가 브록맨 빌딩 아래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두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상한 모습을 보았다. 자기도 올려다보니 한 남자가 건물을 타고 매달려 한 층씩 등산하듯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옥상까지 올라갔고, 마치 등반에 성공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옥상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환호에 응답했다. 시계를 보니 이미 회의 시간을 놓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잠깐 본다고 생각했는데 등반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롤드 로이드는 보는 내내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이 등반에 매혹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만일 이 건물 등반을 영화로 찍으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수촬영이 초보 단계였던 1923년에 이 장면은 쉽게 찍을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안전 마무리>가 첫 상영을 마쳤을 때 극장 안은 비명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관객들은 이 시퀀스를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였다. 물론 해롤드 로이드가 ‘진짜로’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걸 찍을 수는 없었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할리우드의 특수촬영은 이미 전문화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퀀스는 세 단계로 나누어서 촬영되었다. 처음 1층에서 올라가는 장면은 해롤드 로이드가 건물을 타고 오른다. 그런 다음 3층 높이의 세트를 지었다. 이 장면이 세트 촬영이고 거리의 풍경을 이중노출로 합성했다는 것은 매달린 해롤드 로이드를 보지 말고 카메라의 위치를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 장면을 그 위치에 찍었다면 정말 위험한 사람은 해롤드 로이드보다 촬영감독이었을 것이다. 시계에 매달린 장면을 위해서는 또 다른 세트를 건물 옥상에 지었다. 그래서 옥상에 세워진 세트에 달아놓은 시계에 해롤드 로이드가 매달렸다. 건물을 타고 오른 후, 시계에 매달리는 해롤드 로이드 / 사진: “Safety Last!( 1 , 2 , 3 , 4 )”, IMDb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이 장면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것은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에 관한 콘티이다. 게다가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해롤드 로이드에게는 신체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하여튼 매달리고 올라가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1919년 촬영 도중 소품 사고로 해롤드 로이드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잃었다. 그러니까 오른손은 세 손가락으로 건물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는 뜻이다. 나는 <안전 마무리>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촬영과정을 알고 난 다음에도 다시 볼 때마다 이 시퀀스가 위치와 각도, 편집 타이밍, 구도, 동작, 진행 사이로 끼어드는 장애물들의 리듬, 이 모든 것이 마치 정교한 마법 기계장치처럼 작동하고 있음에 감탄하면서 보았다. 하지만 해롤드 로이드의 손가락 이야기를 알고 난 다음에는 매달려 있는 장면을 마음이 아파서 다시 보기 힘들어졌다. 아직 이야기가 남았다. 해비 페리를 잊으면 안 된다. 해비 페리는 1919년부터 해롤드 로이드의 위험한 장면 대역을 연기했다. 더 정확하게는 위험한 장면에서 해비 페리는 해롤드 로이드의 상대 쇼트(reverse shot)를 연기했으며. 높은 곳에 매달리거나 혹은 위험한 순간에 멀리서 해롤드 로이드 대신 건물을 타고 올라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오랫동안 해롤드 로이드의 모험을 믿었다. 해비 페리는 자신이 대역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해롤드 로이드가 세상을 떠나는 1971년까지 입을 다물었다. 스턴트맨으로 경력이 60년에 달하는 해비 페리는 험프리 보가트, 피터 로레의 할리우드 영화들, 심지어 키가 1미터 52센티였기 때문에 매리 픽포드의 대역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매리 픽포드가 달리는 말에 능숙하게 올라탈 수 있는지 비밀이 풀렸을 것이다. 물론 비밀이 풀릴 때도 있지만 할리우드는 스턴트맨들의 피의 역사이기도 했다. 해비 페리 (사진: “ Harvey Parry ”, IMDb / © 1980 Steve Banks_ mptvimages )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영화 만든다고 누가 떡 하나 던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영화라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일까’. 이러한 고민은 다시 한 번 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무수한 형태로 표현되곤 한다. 임대형 감독의 첫 장편 독립 극영화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역시 자신만의 영화를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비슷한 주제의 여타 영화들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도 물론 영화를 깊게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영화 제작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그 자신에 있어 영화란 일종의 종착지를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충청남도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중년 남성 모금산( 기주봉 )의 삶은 지극히 단조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발소에 출근해 사람들의 머리를 깎고, 수영을 하고,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가 강냉이를 우적우적 씹으며 TV를 보다 잔다. ‘금산’에 거주하는 ‘모(某) 씨’를 뜻하는 주인공의 이름만큼이나 이렇다 할 감흥도, 자극도 없는 삶이 꾸준히 반복된다. 하지만 이 삶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반복조차도 할 수 없게 될 위기에 놓인다. 조금 몸이 좋지 않아 찾아간 보건소에서 영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삶의 마지막에 놓인 모금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일탈을 시도한다. 수영장에서 길게 잠수도 해보고, 수영장에서 마주친 젊은 여성 자영( 전여빈 )과 진솔한 대화도 나눠본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는 서울에 살며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아들 모스데반( 오정환 )과 여자 친구 예원( 고원희 )을 부른다. 한때 소망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꿈인 ‘영화배우’가 되어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풍진 세상에서 떠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향에 내려온 모스데반은 어딘가 모금산과 서먹해 보이며 아버지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이 와중에서 예원이 간신히 부자 사이를 중재하며 좌충우돌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과연 영화 제작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온갖 사건 사고 끝에 완성된 영화는 이 세 명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가. 문득 영화를 보면서 매년 가을경에 열리는 서울노인영화제가 생각났다. 노인과 노년의 삶을 소재로 한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는 물론, 노인 자신이 직접 만든 영화도 골고루 상영하는 영화제다 보니 자연스레 전자와 후자의 영화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만든 영화는 전문적으로 영화 교육을 받고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상당히 투박하기 그지없다. 촌스러운 특수효과, 이러지리 툭툭 튀는 사운드, 어딘가 많이 본 것 같은 서사. 그에 비하면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인들이 만든 영화가 더욱 흥미롭다는 생각을 할 수밖엔 없었다. 많은 부분들이 어색할지라도 이들이 만든 영화는 삶의 황혼기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자신이 그간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역시 그렇다. 모금산은 단조로운 자신의 삶만큼이나 지독하게 과거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아는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오래된 배우들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가 찍고 싶은 영화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무성 영화이다. 영화의 극 중 극이자 모금산이 배우의 꿈을 이룬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가 만약 영화제에 출품되었더라면 예심을 통과하기도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금산은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이 갇혀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과 조우한다. 삶의 종착지라 여겼던 영화 촬영은 예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모스데반의 행보를 통해 점차 모금산 자신이 그간 직시하기를 꺼려했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질박해도 소소한 웃음을 낳는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만든 세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와 서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들에게 있어 영화 제작은 곧 사람을, 그리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구가 된 것이다. 비록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아무리 모금산의 삶이 철저히 과거에 놓여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전후를 제시하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서울노인영화제에 상영되었던 노인들의 작품들처럼 말이다.
실벵 쇼메 감독의 2003년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 벨빌의 세쌍둥이 >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매 장면이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실벵 쇼메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반열에 올려놓은 이 작품이 올가을 13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했다. 혁신적이라 평가받았던 연출은 지금 봐도 탁월하다.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 < 일루셔니스트 >와 실사영화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으로 작품 세계가 확고해진 실벵 쇼메의 13년 전이 거기 있다. 2D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추구한 젊은 애니메이터의 초심, 씨네필로서의 취향이 한껏 녹아 있다. 이야기는 파리 외곽에 사는 노부인 마담 수자와 외로운 어린 손자 챔피언이 ‘벨빌의 세쌍둥이’가 나오는 TV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작된다. TV를 봐도, 강아지를 안겨줘도, 통 웃지 않는 소년 챔피언. 실은 자전거에 관심이 있다. 마담 수자가 자전거를 선물하자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챔피언은 세월이 흘러 사이클 선수로 성장한다. 하지만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 참여했다가 대회 도중 마피아들에게 납치당한다. 곧 반려견 브루노와 함께 손자를 찾아 나선 마담 수자. 손자를 납치한 마피아들의 배를 쫓아 낯선 도시 ‘벨빌’에 도착하고, ‘왕년의 스타’ 세쌍둥이를 우연히 만난 후 함께 챔피언 구출 작전에 돌입한다. < 벨빌의 세쌍둥이 >는 그림이 주는 힘이 압도적이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니콜라 드 크레시의 영향을 받은 그래픽 스타일의 배경부터 캐리커처 느낌으로 그려진 캐릭터들까지 개성이 뚜렷하다. 게다가 모든 캐릭터들은 대사가 거의 없다. 그 대신 캐릭터마다 각자 독특한 동작으로 성격을 드러내고 감정을 전달한다. 마치 컬러풀한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인데, 실제로 자크 타티,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을 사랑하는 ‘씨네필’ 실벵 쇼메가 의도한 바다. 그로 인해 이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사람의 일상과 움직임, 사물의 쓰임새를 예민하게 관찰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애니메이터들이 캐릭터의 액션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 집중할 수 있도록(!) 자동차, 자전거, 마피아들이 타는 배 등등 ‘탈 것’은 3D로 작업했다. < 벨빌의 세쌍둥이 >는 그렇게 캐릭터의 움직임과 이미지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대표적인 장면이 마담 수자와 세쌍둥이가 ‘벨빌’의 다리 밑에서 처음 만나 연주를 하는 장면, 그리고 세쌍둥이의 레스토랑 공연 장면이다. 마담 수자가 세쌍둥이와 우연히 만나서 함께 ‘벨빌 랑데부’를 연주하는 첫 장면은 그야말로 기발하고 유쾌하다. 이 장면과 중반 이후 나오는 세쌍둥이의 레스토랑 공연 장면은 실벵 쇼메 감독이 ‘스톰프’ 공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레스토랑 공연에서는 세쌍둥이가 신문을 접었다 펴고, 냉장고 안 받침대를 튕기고, 진공청소기로 소리를 내서 음악을 만든다. 여기에 마담 수자가 자전거 휠을 실로폰처럼 두드려 환상적인 합주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 떠들썩한 순간, 마담 수자는 매서운 눈초리로 마피아 보스가 읽고 있던 신문 기사를 통해 그들의 음모를 알아낸다. 몇 개의 컷으로 짧게 표현되지만 애니메이션다운 편집 효과를 확실히 보여준다. 일상적인 장면들도 지나칠 수 없다. 마담 수자가 훌쩍 커버린 챔피언과 극한 훈련을 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장면은 대사 없이 오직 사운드만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창문 밖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반려견 브루노가 짖는 소리, 축음기의 음악 소리 등으로 집안의 공기와 일상의 리듬을 전달한다. 마담 수자가 진공청소기로 챔피언의 다리를, 잔디 깎기로 챔피언의 등을 자연스레 마사지해주는 광경은 또 어떤가. 자크 타티와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이 봤다면 흐뭇하게 웃어줬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세쌍둥이 자매가 자기 전 침대에 앉아서 TV로 실사영화(자크 타티 영화 < 축제 >의 한 장면)를 보며 깔깔대는 광경도 기막히다. 영화 후반 마피아들과의 엄청난 추격전까지, 말없이 많은 것을 말하는 이 기묘한 유머 감각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공간 디자인도 눈여겨 볼만하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역시 ‘벨빌’이다. 1960년대 캐나다의 몬트리올과 퀘백, 미국 뉴욕의 건축 양식을 혼합해 디자인했다. 2m 길이의 종이에 애니메이터들이 직접 초고층 빌딩들을 그린 후 스캔을 해서 작업한 도시 전경이 압권이다. 뚱뚱한 자유의 여신상이 빅 버거를 들고 있고, 거리엔 온통 비만 체형의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벨빌’은 마담 수자가 살아온 파리의 동네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실벵 쇼메는 자신이 경험했던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벨빌’을 통해 다양하게 풍자한다. 그곳에서 유독 호리호리하게 나이든 세쌍둥이는 자신들처럼 대도시의 외곽에서 수수하게 살아온 마담 수자와 의기투합하는데, 이들을 둘러싼 묘한 대구와 공통점, 아이러니한 설정은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실벵 쇼메는 자신이 사랑해온 문화적 유산, 어린 시절 파리 외곽에서 살았던 추억, 애니메이터가 된 후 영국과 캐나다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한편의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유쾌하고 멜랑꼴리한 스릴러 < 벨빌의 세쌍둥이 >는 오랫동안 아끼고 추구해온 많은 것들이 일상에 뿌리를 둔 상상력을 통해 하나가 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좋은 창이 되는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