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도시
- 감독
- 김문흠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조성하, 김석훈, 이기영, 서영희, 정애리, 안길강, 서영화, 지대한, 김태환, 이주원, 박정아, 김건, 김재승, 박희본, 우지해, 남성준, 나수원, 손상경, 전봉현, 김철환, 정재훈, 추종범, 김슬기, 김문흠, 박진서, 김기진, 김중탁, 권혁주, 박세희, 곽지혜
영화사가 이영일은 스릴러-액션 영화가 1963년에서 67년까지 5년간, 한국 영화제작의 “주조가 되다시피 했다”고 썼다. 하지만 당대에 누린 상당한 인기나 산업적 파급력에 비한다면 이 장르에 대한 후대의 관심은 그다지 큰 편이 못된다. 이만희 나 정창화 같은, 이 장르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연출한 몇몇 영화가 작가주의적인 맥락에서 조명되거나 합작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로 거론되는 정도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회고전 이후 작가로서 재조명된 정창화 감독의 작품들은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여전히 한국영화사에 대한 작가주의적인 접근이 지배적인 탓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해당 시기 스릴러-액션 영화의 대표작 대부분이 남아 있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오랫동안 장르 영화를 폄하하는 시선을 견지해왔던 한국영화 비평담론에 의해 그저 그런 상업영화로 치부되었던 스릴러-액션 장르는 대표적인 영화들이 사라짐으로 해서 재평가를 받을 기회마저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범구 감독은 매우 불운한 경우다. 1964년 당시 이만희 , 김수용 과 함께 “현역 젊은 감독의 대표선수 격”으로 꼽혔던(경향신문, 1964년 7월 13일) 강범구 감독은, 그러나 문예영화 붐을 이끌면서 영화작가로 입지를 굳혀간 이만희, 김수용과는 달리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남았다. 문예영화 감독이 되지 않거나 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가 스릴러-액션 영화 장르에서 아주 잘 팔리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들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 또한 역설적이게도 그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탓이었다. < 검은 꽃잎이 질 때 >(1962) < 안개 낀 거리 >(1963) < 창살 없는 감옥 >(1963) < 유랑극장 >(1963) 등이 대만과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되었고 그는 곧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1966년 그가 한국-대만 합작영화 < 탈출명령 >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작들이 대만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강범구 감독의 네 작품은 1963년과 64년 사이에 대만과 동남아시장을 묶어 작품당 만 달러에 수출되었다. 같은 시기에 신상옥 감독의 < 성춘향 >이 5천 달러를 받고 일본시장에 판매되었음을 상기해보면, 이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성공적인 해외시장 진출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만으로 보내진 것이 영화의 원판이었다는 데 있었다. 강범구 감독에 따르면 대만은 원판과 프린트를 가리지 않고 작품 편수에 따라 관세를 매겼기 때문에 대만 쪽에서는 원판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대만과 동남아 시장을 포괄할 여러 벌의 프린트를 한국에서 만들어 내보내는 것보다는 원판을 가져가 대만에서 만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1964년 작 < 동굴 속의 애욕 >과 < 소만국경 > 두 편뿐이다.(물론 1960년대 말 이후의 영화들은 몇 편 남아 있다. 하지만 한국 장르영화의 전성기이자 감독 강범구 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의 영화 가운데는 이 두 편만이 남아 있다.) 사라져버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당대의 평가가 높지 않았던 이 영화들을 통해서도 감독의 솜씨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동굴 속의 애욕 >은 권순영 판사가 춘천지방법원에 있을 당시 재판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쓴 이른바 ‘법정 수기’가 원안이다.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악명 높은 판결문을 남긴, 이른바 ‘박인수 사건’의 담당 판사가 바로 권순영이었다. 그는 박인수 사건 재판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던 그 해에 「법창(法窓)의 봄」(정문사, 1955)이라는 수필집을 내놓았다. 그 책에는 그가 판결을 맡았던 사건들의 내막이 때로는 소설 형식으로, 또 때로는 수기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원안 <동굴 속의 애욕>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의 땅이 되었던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반도의 많은 지역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 지배했던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산(山)사람’, 이른바 빨치산이 되어야 했다. 적군에게 협력한 전력이 드러나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가 그들을 산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 살인사건의 세 주인공인 유동록과 안태선, 그리고 이옥녀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공산치하의 마을에서 리(里) 세포위원장으로 권세를 누리던 동록은 태선의 아내 옥녀를 겁탈한다. 세 사람의 치정에 얽힌 관계는 9.28수복 이후 북으로 진격해오던 국방군이 마을을 점령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동록의 동생 동관과 그의 애인이자 여맹위원장인 정숙, 그리고 세 사람은 국방군을 피해 대성산 산마골의 동굴로 숨어들고, 그곳에서 그들의 ‘짐승 같은’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그곳에서 옥녀의 마음은 점차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남편 대신 억세고 강인한 동록에게 기울어간다. 사건의 폭발은 태선이 마을로 내려가 자수하겠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옥녀는 인민군에 나간 전력을 가진 남편이 자수한 뒤에 겪게 될 불안한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의 공포를 잠재워줄 억센 팔을 가진 동록을 택한다. 그녀는 태선의 자수 의사를 은근슬쩍 정숙에게 흘리고 정숙은 이를 곧바로 동록에게 고발한다. 인민재판을 통해 동록은 태선을 반동으로 낙인찍고 낫으로 그를 살해한다. <선데이서울> 같은 주간지에 ‘짐승과도 같은 빨치산의 생태’ 류의 제목을 달고 실렸을 법한 이야기, 또는 얼핏 1950년대의 < 피아골 >을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강범구 감독의 영화에 와서 법정드라마의 외피를 입으며 전혀 다른 질감을 확보했다. < 검사와 여선생 >에서 < 어느 여대생의 고백 >에 이르는 한국 법정드라마들은 그 장르 특유의 심문(審問)의 형식을 기구한 운명을 감당한 여인네들의 고백의 장치로 흔히 활용하곤 했다. 죄지은 여성의 억울한 사연에 대한 공감이 차가운 법의 논리를 압도하면서 흥건한 눈물이 법정을 채우는 것이 한국 법정드라마의 관습이었다. < 동굴 속의 애욕 >은 그런 면에서 예외적인데, 이는 비정한 도시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능숙하게 다뤄온 강범구 감독의 영화적 수완이 발휘된 결과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순간의 정황이 동록의 자백으로 먼저 재현되고, 이후부터 검사의 논고와 피고의 자백, 그리고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간부(姦夫)와 내통하여 남편을 죽였다는 이 치정 살인사건은 조금씩 그 내막을 드러낸다. 법정드라마의 장치들은 이야기의 정보들을 적절히 안배하고 그로부터 서스펜스와 스릴을 만들어내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여러 명의 화자(話者)가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은, 그 사건에 연루된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며 정부(情婦)의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동록조차도 절대적인 악의 화신이 아니라 인간적인 연민을 자아내는 존재로 그려지도록 한다.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옥녀의 증언 거부가 이야기 정보를 지연시키는, 서스펜스 영화의 고전적인 장치도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재판이 벌어지는 현장의 관객 역시 정서적 공감을 자아내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는데, 특히 신문기사로 사건을 접하고 호기심을 느껴 법정을 찾아가는 젊은 부부를 배치한 것은 탁월한 설정이다. 전계현과 방수일이 맡은 이 부부는,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은 짧지만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사건을 소개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도록 한다. 전계현은 옥녀의 마지막 진술을 듣고 난 후에 “다른 사람들은 저 여자를 미워할지 모르지만 전 동정해요”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그 사건에 대한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후 남한사회가 품어야 했을 수많은 이적행위자들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가(물론 현실 속에서는 관철되지 못했지만) 그려지는 순간이라고 하겠다. 3선 개헌에서 유신체제의 출범으로 이어지는 1960년대 후반 이후의 정세 속에서 한국사회는 점점 더 경직되고 억압적으로 되어갔다. 이와 비례하여 한국영화에서 ‘반공’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범될 수 없는 영역으로 공고해졌다. 인민군의 묘사를 문제 삼아 감독 이만희 를 구속까지 했던 < 7인의 여포로 > 사태 이후에, 많은 영화감독, 비평가들이 반공의 이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공산주의자의 재현에 유연성을 보여줄 것을 검열 당국에 호소하곤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범죄에 한국전쟁의 경험이나 간첩의 소재를 활용했던 스릴러-액션 장르는 1960년대 후반이 되면 공산주의자의 비인간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철저한 반공영화로 변모하면서 점차 대중의 공감을 잃어갔다. 강범구 감독의 < 동굴 속의 애욕 >은 그 이전, 그러니까 한국의 장르 영화들이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고 때로는 사회의 통념에 도전할 수도 있었던, 그럼으로써 장르 영화의 활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대의 수작(秀作) 가운데 한 편이다.
암전된 화면에 조용히 깔리는 차 소리. 크레딧이 이어지다 제목이 뜨면 화면 가득히 흰색의 복면이 보인다. 극대화된 클로즈업이라 세세한 천의 격자무늬 질감마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와 함께 심장박동처럼 둥둥둥 울리는 저음의 빠른 타악 리듬, 불안한 심정을 마구 휘젓는 속삭임의 보컬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이국적인 구음의 노래가 펼쳐지면 그제야 비로소 공간과 인물이 소개된다. 달리는 차 안. 무장한 군인. 흙바닥의 경치. 생소한 아라비안 문자. 회반죽의 건물들과 히잡 그리고 카피에까지.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불타는 화약고, 중동이다. 남자는 지금 복면을 쓴 채 헤즈볼라 무장단체 지도자를 섭외하러 가는 길이다. 이 긴박감 넘치는 오프닝을 통해 마이클 만 감독은 < 인사이더 >라는 영화에 대해 명료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진실에 도달하는 길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에 대해. 여기에서 흐르는 곡은 호주의 뉴웨이브 듀오 ‘데드 캔 댄스’ 출신의 리사 제라드 2집에 실린 ‘Tempest’란 노래로, (제목 그대로) 잘 살던 두 남자 인생에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의 전조를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번뇌에 찬 목소리와 혼동에 가까운 퍼커션을 통해 그들에게 닥칠 폭풍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짐작게 한다. 로웰 버그만, 제프리 와이건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의 강의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제프리 와이건 박사는 기로에 서 있다. 그는 자고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 지식이 공익적으로 사용되지 않음을 불편해했고, 미국 굴지의 담배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스는 그러한 그의 자의식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서 원만치 못한 대인 관계를 핑계 삼아 그를 해고해버린다. 비밀서약과 가족의 안정을 빌미로 그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온다. 안전한 비겁자가 되느냐, 용감한 희생자가 되느냐 그 사이에 낀 그는 신념과 도덕적 가치를 좇아 싸워온 PD 로웰 버그만과 만나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비록 자신에게는 최악의 결정이 되겠지만. 로웰 버그만 역시 압력과 회유에 시달린다. 보도를 통해 소송에 걸리면 회사 매각과 관련해 주가가 폭락할 것을 염려한 간부들의 방해로 방영금지라는 초유의 결정을 받아든다. 모든 상황이 무(無)로 돌아가 버릴 위기에 빠지자 그는 다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미디어를 폭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결국 인터뷰는 무삭제로 방영되지만 제프리 와이건은 고소당하고 이혼하며, 로웰 버그만은 직장을 떠난다. 이 인터뷰가 방영되는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다시 리사 제라드 2집에 실린 ‘Sacrifice’가 흐른다. 처연하고 소름 끼치는 마력의 보이스가 그들의 희생을 위로하고 달래준다. 어쩌면 감독은 이 두 곡을 쓰기 위해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에게 음악을 맡겼는지 모른다. 마이클 만은 영화만큼이나 음악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이다. 데뷔작 <비정의 거리> 와 그다음에 찍은 <악마의 성>에선 당시 하이테크한 유행의 정점에 오른 탠저린 드림의 차갑고도 강렬한 전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인기 TV 시리즈였던 <마이애미 바이스>에선 감각적이고 현란한 얀 해머의 신디 사운드로 스타일을 과시했다. 고전적인 멜로 서사극의 절정을 보여준 < 라스트 모히칸 >에선 트레버 존스와 랜디 에델만이란 정반대적인 성향의 작곡가를 고용해 인상적인 교향시를 조율하기도 했다. <히트>와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다양한 삽입곡들과 함께 엘리웃 골든탈의 미니멀하면서도 전위적인 스코어로 임팩트를 남겼으며, 도시의 어두운 이면과 우울한 범죄의 초상을 담은 < 콜래트럴 >과 극장판 < 마이애미 바이스 >에서는 제임스 뉴톤 하워드와 존 머피를 통해 HD 질감에 걸맞은 세련된 감성의 잿빛 스코어를 요구했다.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고, 비정한 도시(장소)의 슬픔을 간직한 그의 영상 속에서 설명과 대사는 지엽적이다. 대신 음악이 그 감성을 묘사한다. 모자란 설정을 채워주고 있다. <인사이더>에서도 마찬가지. 대사는 적되, 카메라는 인물에게 초근접해 다가가고, 사건의 무게와 심각성은 그들의 얼굴과 뒷모습에 진 음영을 통해 표현되며, 감정은 음악으로 발현된다. 대기처럼 영화 내 부유하는 스코어는 조용하지만 은은한 울림으로 그들의 심적인 고통과 피로함을 호소한다. 상처뿐인 영광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텁텁한 뒷맛이다. 리사 제라드, 피터 버크 80년대 초반부터 리사 제라드는 브랜든 페리와 함께 ‘데드 캔 댄스’를 통해 아프리칸 폴리리듬과 아일리쉬 민속음악, 그레고리안 성가에 중세 진언까지 포용한 월드뮤직 스타일의 뉴웨이브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들이 시도한 다크 웨이브는 고딕적인 성향의 복합적인 엠비언트 사운드와 아트록의 만남으로 비록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지속적인 반응과 평단의 호응을 얻어냈고, 90년대 초반 그들의 앨범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되면서 차츰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다. 1995년 < 히트 >에서 그녀의 곡 ‘La Bas’와 ‘Gloradin’, ‘Celon’을 사용하며 눈여겨봤던 마이클 만은 전격적으로 차기작이었던 <인사이더>의 음악을 리사 제라드와 그녀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피터 버크에게 맡기는데, 앞서 소개한 삽입곡 외에 다양한 트랙에서 미니멀하면서 에스닉한 분위기의 엠비언트 사운드를 구사하며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형화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느낌을 탈피하는 건 신비스러운 구음을 구사하는 리사 제라드의 목소리 덕분이다. 두성과 가성, 진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아프리카 토속적인 주술서부터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일까지 두루 연결 짓는 그녀의 보이스톤은 영화에 묵직하면서도 숭고한 정신을 부여하고 있다. 내부자(Insider)들이 철저히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어가는 과정을 건조하게 담아낸 영화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 건 그 한 맺힌 살풀이의 힘이 크다.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의 부족한 부분은 베테랑 영화음악가 그레이엄 레벨이 메꾸고 있다. 전체적인 톤은 비슷하게 맞춰나가면서도 자신의 특징이었던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클래식컬한 감성을 덧붙여 두 캐릭터가 가지는 고독과 시련을 형상화했다. 영화음악가가 되기 전 인더스트리얼 밴드에서 활동한 바 있는 그답게 음울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의 짧은 큐들이다. 이들의 스코어가 영화의 전체적인 공기를 스케치한다면 쟁쟁한 네임 밸류를 자랑하는 삽입곡들은 영화 내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며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되었던 것처럼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서 증언할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현란한 기타 연주곡은 두 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에 빛나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개인 앨범 [Ronroco]에 실린 ‘Iguazu’로, 심란한 제프리 와이건의 용기를 대변한다. 반면 방송국의 전횡을 신문사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인상적인 색소폰 연주곡은 ECM 레이블의 간판이자 유럽 최정상급의 아티스트 얀 가바렉의 앨범 [Rites]에 실린 동명의 ‘Rites’란 곡으로, 로웰 버그만의 양심을 상징한다. 두 곡은 각각 캐릭터들의 고독과 고난, 행동과 맞물리며 스코어가 지니지 못한 질감을 명징하게 표출한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트립합의 대부 메시브 어택의 ‘Safe from Harm’이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나서는 로웰 버그만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후일담 자막이 이어지는 부분까지 마치 재단된 것처럼 딱 맞춰 흐른다. 엔드 크레딧에선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가 작곡한 멜랑꼴리한 분위기의 ‘Meltdown’이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Massive Attack - Safe From Harm 마이클 만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방식과 달리 이 2시간 40분에 이르는 긴 영상에 영웅주의 스코어와 상업적인 팝으로 도배하지 않았다. 음악은 단지 필요한 부분에 효율적으로 배치됐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 용기와 좌절, 공포와 희망을 표현하는 데 있어 결코 모자람이 없다. 건조하고 차갑기 이를 데 없지만, 때론 침묵하고 관조함에도 이런 모노톤의 투명한 소리들의 총합이 바로 <인사이더> 사운드트랙이 가진 매력이다. 그 속에서 일말의 온기를 찾아내는 것이 진실과 정의에 다가가는 길과 비슷하지 않을까.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는 <인사이더>로 골든 글로브 음악상에 올랐다. 작업에 만족한 마이클 만은 차기작 < 알리 >에서도 이들과 작업을 이어갔고, 이 역시 골든 글로브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노고와 실력을 인정했다. <인사이더>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F-320) 에서 직접 귀로 확인할 수 있다. Track List 1. Tempest 2. Dawn of the Truth 3. Sacrifice 4. The Subordinate 5. Exile 6. The Silencer 7. Broken 8. Faith 9. I'm Alone on This (by Graeme Revell) 10. LB in Montana (by Graeme Revell) 11. Palladino Montage (by Graeme Revell) 12. Iguazu - performed by Gustavo Santaolalla 13. Liquid Moon 14. Rites ? performed by Jan Garbarek 15. Safe from Harm ? performed by Massive Attack 16. Melt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