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 감독
- 이강천
- 제작년도
- 1960
- 출연
- 최은희, 김진규, 신성일, 김혜정, 이빈화, 최삼, 허장강, 이대엽, 남궁원, 이예춘, 안성기, 윤왕국, 이기홍, 최은연, 정득순, 윤정란, 성소민, 강일선, 이해룡, 유춘, 최성, 이창식, 정성숙
서울아트시네마 1층 구매표소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시네마테크 운동의 결실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탄생하다 서울아트시네마 는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로, 한국의 시네마테크 운동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형성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시네필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00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 불법 복제된 VHS를 구해 함께 보는 관행에서 벗어나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영화를 상영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서울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문을 열었고, 전국 각지에도 협의회에 소속된 시네마테크 성격의 극장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 대전아트시네마 , 광주극장 등이 협의회 소속 상설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청주의 씨네오딧세이와 제주 씨네아일랜드 등은 특별전과 다양한 기획을 통해 영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협의회 초기부터 대표를 맡은 故 최정운 대표가 단체의 틀을 잡는 일에 힘썼고, 현재는 곽용수 대표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탄생과 이동의 역사 1990년대부터 비디오테크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문화학교 서울’은 2000년대로 접어들며 안정적이고 공식적인 영화 상영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빌린 공간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시작된 활동은 상설 극장의 필요로 이어졌고, 여러 사람의 노력을 모아 2002년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갖추기 어려운 민간 시네마테크의 특성상 서울아트시네마는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며 운영되었다. 2007년부터는 종로 낙원상가 옥상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으로 자리를 옮겨 180석 규모의 극장으로 운영되었다. 2개관으로 구성된 허리우드극장의 한 관을 서울아트시네마가 사용했고, 옆 관은 필름포럼 이 사용했다. 이후 필름포럼이 떠난 자리에는 노년층을 위한 영화관 ‘실버시네마’가 들어섰고, 위층에는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 뮤지컬 공연장이 운영되었다. 극장 시설의 노후화와 주변 입지 문제로 서울아트시네마는 2015년 4월 서울극장 11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극장에서 운영되던 시기에는 옆 관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함께 자리하면서 서울극장 자체가 시네필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상영업 전반이 큰 타격을 입고 서울극장도 문을 닫게 되자, 서울아트시네마는 여러 후보지 가운데 과거 정동극장이 운영되었던 경향아트힐 건물로 옮겨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외관 서울아트시네마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많은 시네필들의 기억도 함께 쌓였다. 아트선재센터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 낙원상가 옥상의 눈 내리던 밤, 서울극장 앞 포장마차의 풍경은 그 시절의 예술영화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 고전영화들과 함께 기억된다. 이를 증언하는 기록과 회고 역시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올라오는 길과 미술관·박물관이 어우러진 지역의 문화적 풍요가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에 새로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공간과 시설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 종로구 정동 경향신문사 경향아트힐 2층에 자리하고 있다. 1층에 있었던 매표소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흔적만 남아 있으며, 현재는 2층에 매표소와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다. 라운지는 영화관 특유의 단정한 분위기를 위해 조도를 낮게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아트시네마의 역사를 보여주는 포스터와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매표소에서는 티켓 발권 외에도 책자 구입과 관객회원 및 후원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단관으로 운영되는 상영관은 230석 규모로, 독립예술전용관 가운데서도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휠체어석은 객석 후미 좌우측에 총 4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 이용자는 2층으로 올라올 때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다. 상영관은 과거 공연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어 뒤편에 분장실 공간이 남아 있으며, 현재는 회의실과 게스트 대기 공간, 창고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무실은 상영관과 떨어져 있지만 중앙 통로를 지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서울아트시네마 로고가 있는 입구를 통해 연결된다. 상영관 상영 시설은 시네마테크라는 지향에 맞게 다양한 매체를 상영할 수 있도록 갖추어져 있다. DCP 프로젝터는 4K 사양이며, 그 외에도 35mm 영사기 2대, 16mm 영사기 1대, 자막 영사용 별도 프로젝터가 객석 후미에 마련되어 있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HDCAM, DVCAM, Blu-ray, DVD, miniDV, VHS 등 다양한 매체를 상영할 수 있는 데크와 플레이어도 구비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근무와 극장 운영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진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으면서도 긴밀하게 협업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프로그램 디렉터, 프로그래머 2인, 영사기사 2인, 사무국장, 매표 및 회원 관리 2인, 홍보 담당, 회계 담당 비상근 직원, 자막팀장 등 총 10인이 상근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밖에도 디자이너 1인이 극장 소속은 아니지만 전속 계약을 통해 홍보물 디자인 전반을 맡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오후 1시에 첫 상영을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지막 상영을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된다. 개점 시간이 늦은 것은 영사기사와 운영진의 지속가능한 근무를 고려한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2층 매표소 로비 티켓은 지금도 영수증 형태가 아닌 종이 티켓으로 발권되고 있어 이를 모으는 관객들도 있다. 온라인 예매는 ‘타이티 티켓’ 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다. 관람료는 일반 9천 원이며, 연회비 6만 원의 관객회원으로 가입하면 1년 동안 모든 영화를 5천 원에 관람할 수 있다. 현재 관객회원은 약 3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10회 관람권을 8만 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청소년·65세 이상·장애인에게는 3천 원 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상영 시작 15분 후 입장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등의 운영 원칙이 있으며, 노쇼 방지를 위해 시네토크가 포함된 회차는 당일 취소가 불가능하다. 또한 비영리 극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광고를 상영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 독립예술영화관 가운데서도 서울아트시네마는 독특한 프로그램 구성을 보여주지만, 상영작 선정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상영되는 작품은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 요컨대 좋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하는 셈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1년 내내 기획전이 이어지며, 고전영화와 동시대 예술영화를 고르게 상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대표 프로그램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다. 2006년에 시작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9명의 친구들과 함께 출발했다.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던 시절부터 그 필요성과 존재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캠페인의 성격이 강한 영화제로, 평론가와 영화감독, 배우들이 참여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까지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제로 자리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18회를 이어오고 있다. 역대 기획전 포스터 전시 여름 휴가철에 맞춰 열리는 ‘시네 바캉스’ 역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못지않게 많은 관객이 찾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고전영화와 동시대 영화를 아우르는 주제별 상영을 이어오고 있다. 이 밖에도 감독 회고전과 특정 지역, 영화 사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획이 계속되고 있다. 2025년에는 보이체크 하스, 유디트 엘레크,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감독 회고전을 준비했다. 영화 자체가 되는 영화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연 3만 명 아래로 떨어졌던 관객 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024년의 연간 총관객 수는 약 3만 6천 명이었다. 관객회원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20~30대로 나타났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관객층은 10대부터 노년층까지 폭넓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한편으로 ‘특이한 관객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상영 중 소음을 지적하는 장면 같은 에피소드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의 말에 따르면 실제 극장을 찾는 관객층은 매우 다양하다. 조용히 혼자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즐기는 관객도 있으며, 오랜 시간 극장을 찾아온 연령대 높은 관객들 역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표소 차단벽 홍보물 김보년 프로그래머는 이상적인 영화관을 두고 “개성이 없는 영화관”이라고 말한다. 특정한 공간의 인상보다 그곳에서 본 영화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는 극장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를 가장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100년 뒤에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존재하고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남아 있다면, 누군가가 첫 번째 영화를 보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체험의 본질이 ‘내가 없는 세계를 보는 경험’이라면, 서울아트시네마는 누군가의 인생 첫 영화의 기억이 남고, 그 기억이 훗날 다시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 경향아트힐 2층 (경향신문사 건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관, 낙원동 허리우드 극장과 종로3가 서울극장을 거쳐 현재 위치로 이전 2) 설립일 : 2002년 5월 10일 3) 운영주체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곽용수) 4) 공간 구성 - 경향아트힐 2층을 타 엔터테인먼트 공간과 나누어 사용 중 - 230석 규모 1개관 및 대기공간, 매표소,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5) 극장 규모 : 1개관 230석, 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첫 상영 오후 1시, 마지막 상영 종료 오후 10시 기준으로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 -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일반 9,000원, 관객회원 5,000원(연회비 6만원), 10회권 8만원, 청소년/65세이상/장애인 할인 6,000원 - 현장 예매 및 TINY TICKET을 통한 온라인 예매 가능 8) 조직 구성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 주체 - 서울아트시네마 조직은 팀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나 크게 프로그램 파트, 영사 파트, 사무 및 운영 파트로 구분할 수 있음 9) 구성원 : 상근 10인, 비상근 1인, 외부전속 1인 - 프로그램 디렉터 1인 / 프로그래머 2인 / 사무국장 1인 / 영사기사 2인 / 매표 및 회원 관리 2인 / 홍보 1인 / 회계 1인 / 자막팀장 1인 (비상근) / 디자이너 1인 (외부 전속) 10) 주요 장비 - 35mm 영사기 2대 / 16mm 영사기 1대 / 4K DCP 프로젝터 / HDCAM / DVCAM / VHS / miniDV 상영용 데크/ (시네마테크 정체성에 따라 모든 매체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함) 취재 일자: 2025년 6월 17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누군가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사진첩 속에서 그 누군가는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진첩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죠. 그렇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어느 영화인의 사진첩’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영화인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사진첩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누벨바그 시네마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이 유명한 말은 한국의 수많은 시네필에게 영화 사랑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주1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영화 창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 창작 욕구가 없다고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영화 사랑 정도가 트뤼포가 말한 저 세 단계 중 어느 경지에 있는지 재본 적이 있지 않을까? 게 중에는 실제로 영화 창작의 꿈을 펼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영화에 관한 글 혹은 영상을 쓰거나 만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저 영화 보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사랑의 정도를 단계로 매겨 고수와 하수로 평가할 일은 사실,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 정해진 단계란 있을 수 없다. 트뤼포가 말한 세 단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이도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할 ‘사진첩’의 소장자, 고(故) 홍영철(1946~2016) 선생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여느 영화팬과 마찬가지로 영화 보는 걸 즐기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영화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이윽고 자신이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며 영화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영화를 즐겨 보면서 입장권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 포스터와 신문광고 같은 것을 함께 모으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 그러다가 체계적으로 자료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1년이다. 영화에 빠지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하려 했지만 어려웠다. 변변한 자료집 하나 없었으니.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이것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다. - “ 한국 영화사 연구가 홍영철에게 ‘영화도시 부산’의 길을 묻다 ”, 《부산시보 부산이라 좋다》, 2014. 8. 25. 194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으로 부산에 정착했다. 젊은 시절, 영화를 즐겨 보며 입장권을 모으던 데서 시작해, 영화 포스터와 스틸, 전단 등 영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부산의 여러 영화관을 돌아다니며 극장 간판 사진을 찍었고, 영화관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집을 했다고 하니,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꼭 45년 동안 수집한 자료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당연히 그는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해 『한국영화도서자료편람 1925~1990』(한국영상자료원, 1991)과 『부산영화 100년』(한국영화자료연구원, 2001), 『부산근대영화사: 영화상영자료 1915~1944』(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편, 산지니, 2009), 『부산극장사』(부산영상위원회·한국영화자료연구원 엮음, 부산포, 2014) 등의 책을 편찬했다. 그리고 2017년, 홍영철 선생의 유족은 그가 반평생을 넘게 수집한 자료들을 부산시에 기증했다. 자료의 원본은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보존·관리하기 시작했는데, 2019년에 한국영상자료원은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일부 자료를 디지털 복사본의 형태로 기증받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이번에 공개한 “ 영화 수집가 홍영철 소장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 컬렉션(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은 바로 이들 자료 중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을 정리해 해제를 덧붙인 것이다. 이 컬렉션에는 1923년 하야카와 고슈(早川孤舟)가 연출한 < 춘향전 >부터 1944년 방한준 감독의 < 거경전 >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제작된 극영화 70여 편의 스틸 132점이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언뜻 영화 스틸 같아 보이지만 영화 스틸이 아닌 것도 섞여 있다. 사진 속에는 그 유명한 영화 < 아리랑 >(1926)의 감독이자 배우로도 인기 많았던 나운규 가 등장하고, 그와 함께 <아리랑>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남궁운 과 주인규 가 출연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진들은 심훈 이 1926년 11월 9일부터 12월 1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영화소설 「탈춤」의 스틸이다. 극의 한 장면을 실사(實寫)로 촬영한 스틸인데 영화가 아닌 소설의 스틸이니, 그렇다면 ‘소설 스틸’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까? 그런데 잠깐만! ‘소설 스틸’이 무슨 말이냐고? 문자를 존재의 수단으로 삼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시각 요소가 핵심인 ‘스틸’이라는 용어가 붙은 합성어가 말이 되냐고? 하신다면…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1920년대 중반에 등장한 ‘ 영화소설 ’이라는 문화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0년대까지 ‘영화 관람의 시대’를 보낸 식민지 조선의 영화계는 1919년 < 의리적 구토 >를 시작으로 본격 영화를 만드는 시대를 맞았다. 이와 함께 영화의 대중적 인기도 날로 높아졌다. 이를 반영이나 하듯, 1920년대 중반부터 여러 신문은 연재 소설에 삽화 혹은 연출된 사진을 수록하고, 여기에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소설’이 일련의 공통된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왕의 신문 연재 소설과 다른 특별한 양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보다 당시 신문들이 앞다투어 사용한 ‘영화소설’이라는 표제에는 나름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화소설을 문학 장르가 아닌 ‘문화현상’이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신문에 연재된 것은 김일영의 「삼림의 섭언」이라는 작품으로, 이는 《매일신보》를 통해 1926년 4월 4일부터 5월 16일까지 총 7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20년대는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민간 신문 발행을 허용했던 때로, 1910년대까지 총독부 기관지로 독주했던 《매일신보》는 이제,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민간 신문과 경쟁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1926년에 《매일신보》가 처음 도입한 ‘영화소설’은 당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신문 판매 부수로 견인하려는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등도 잇달아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단 작품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주2 영화소설을 신문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은 《매일신보》에 「삼림의 섭언」이 연재되고 약 6개월 후, 《동아일보》에 연재된 「탈춤」(1926. 11. 9.~12. 16., 총 34회 연재)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탈춤」 연재를 시작하기 하루 전, 다음과 같은 홍보 기사를 게재했다. 사진: " 창작 영화소설 탈춤(예고) 심훈 작 ", 《동아일보》, 1926. 11. 8., 3면 심훈의 「탈춤」을 “조선서 처음되는 영화소설”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미 수개월 전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연재된 작품이 있기에,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이 홍보 기사에서 방점을 찍어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기왕의 신문 연재 소설과 다를 바 없이 삽화를 수록했던 최초의 영화소설 「삼림의 섭언」과 달리, 「탈춤」은 “매일 삽화 대신으로 미려한 실연 사진”을 수록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차용했을 ‘영화소설’이라는 표제에 대해 최초라는 타이틀은 다른 신문 다른 작품에 뺏겼지만, 《동아일보》는 처음으로 소설에 “실연 사진”을 도입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신문 독자들에게 영화 관람 못지않은 기대감을 심으려 했을 것이다. 비로소 그 실상이 공개된 「탈춤」의 스틸은 화려한 캐스팅마저 자랑했다. 연재 첫 화의 스틸에는 같은 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아리랑>의 감독이자 스타 배우 나운규가, 또 같은 해 < 장한몽 >(이경손, 1926)의 심순애 역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김정숙 을 안고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어지는 회마다 차례로 공개된 스틸에는 <아리랑>에서 현구 역으로 큰 인기를 끈 배우 남궁운과 악역 연기의 일인자로 정평이 난 주인규가 등장했다. 스틸 캐스팅만으로도 당대 소설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영화소설 「탈춤」을 읽는 재미는 이뿐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재되는 사진 위에는 상황을 요약한 지문 내지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말풍선으로 제시되었다. “영화 수집가 홍영철 소장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 컬렉션(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속 영화소설 「탈춤」 스틸 역시 연재 당시에 다음과 같은 말풍선과 함께 실렸다. 소설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말풍선으로 제시되는 대사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재미까지 의도한 듯한 구성은 어느새 독자들에게 ‘진짜로’ 만들어진 혹은 만들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들게 하지 않았을까? 특히 보통의 소설처럼 서술되던 내용이 연재 후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영화 시나리오 형식으로 제시되었을 때, 이러한 의심(?)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 심훈은 연재 중 불쑥 등장해, 다음과 같이 변명을 하기도 했다. 결혼식까지 하게 되기 전에 여러 가지 층절이 잇서 좀 더 세밀한 묘사를 해야 할 것이나 “스티-ㄹ”(삽화 사진)이 부족 해서 부득이 겅정겅정 뛸수밧게 업시되얏고 결혼식 장면은 전문용어만 쓰지안코 원 영화 각본을 꿈이는 체로 시험삼아 써봄니다. - " 탈춤(26) ", 《동아일보》 1926. 12. 6., 3면 그런데 작가의 이 말은 또 다른 혼란을 가중한다. 심훈은 극 중 혜경이 준상의 강압으로 그와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을 세밀하게 전개하지 못한 이유를 스틸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과 스틸의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소설의 스토리를 뒷받침해 주는 보조 수단이 스틸이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이 순간부터는 역으로 소설이 스틸의 스토리를 보완하는 장치가 되어버린다.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 연재가 기획된 것인지 아니면 연재하던 중에 영화화가 결정된 것인지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소설 「탈춤」은 연재가 끝난 그 이튿날, 영화 제작 소식을 전했다.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제작할 영화 < 탈춤 >은 원작자 심훈이 각색을, 나운규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다. 나운규를 비롯해 소설 스틸에 출연한 남궁운과 주인규가 영화에서도 그대로 출연할 계획이지만, 여배우만큼은 전격 신인으로 교체하리라고 발표되었다. *주3 그러나 영화 촬영은 예고했던 것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7월, 《조선일보》는 그간의 각색 작업을 마치고 계림영화사 제작 아래 심훈이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 알렸다. 배우 역시 선정 중이라고 밝혀, 영화소설 「탈춤」 스틸에 출연한 배우들마저 전격 교체될 것임을 시사했다. *주4 그러나 영화 <탈춤>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주5 대신 심훈은 1927년 9월, 자신이 쓴 시나리오 < 먼동이 틀 때 >를 촬영하며 첫 메가폰을 잡았다. 심훈의 연출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7) * 공교롭게도 영화소설 「탈춤」이 신문에 연재 중이던 때에 「탈춤」 스틸에 출연한 나운규, 김정숙, 남궁운, 주인규는 조선키네마프로덕션 제작, 나운규 연출의 < 풍운아 >에도 출연했다(1926년 11월 19일 크랭크인, 1926년 12월 18일 조선극장에서 개봉). 그 때문인지 나운규가 자동차 뒤에 매달린 스틸은 훗날, 영화 <풍운아>의 스틸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스틸이 영화소설 「탈춤」에 수록된 날짜(1926. 11. 15.)가 <풍운아>의 공식 크랭크인 날짜보다 나흘 앞선다는 점에서, 그 정보는 수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주1. 정성일에 따르면, 이 말은 일본을 경유하며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트뤼포는 ‘시네필로서 어떤 순간에 감독 혹은 비평가가 되려 했는가’라는 질문을 반추하며, 자신의 비평집 『내 인생의 영화(Les Films de ma vie)』에서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첫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영화관을 나서면서 감독을 적어 두는 것이며, 세 번째는 연출의 자리에 가서 내가 선택한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일, 「트뤼포,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사람처럼」,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을유문화사, 2006, 980~981쪽. 주2. 《매일신보》의 영화소설 게재 배경 및 특징에 대해서는 배현자·이혜진, 「근대 영화소설의 처음과 끝- 『매일신보』 영화소설」, 『한국 근대 영화소설 자료집: 매일신보편 上』, 소명출판, 2019, 3~34쪽 참고. 주3. 《동아일보》 , 1926. 12. 17., 5면. 주4. 《조선일보》, 1927. 7. 23., 2면. 주5. 심훈은 “촬영을 개시하기 6일 전에 초지(初志)를 뒤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탈춤」은 부르주아의 생활 이면을 유치하게나마 그린 것이 되기 때문에 스케일이 여간 크지가 않고 출연 인원도 엄청나게 많은 동시에 한 이천 원 한도하고 촬영비를 내게 되는 터라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도저히 실현시킬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라고 회고했다. 심훈, 「『먼동이 틀 때』의 회고-조선영화감독고심담」, 『심훈문학전집 1』, 탐구당, 1966, 577쪽; 주인, 「영화소설 정립을 위한 일고- 심훈의 탈춤과 영화평론을 중심으로」,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어문연구』, 34권 2호, 2006, 267쪽에서 재인용.
청주 – 대구 – 케임브리지로 그들 각자의 터전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스카이프(Skype)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삼총사 정희(김주아), 민영(윤아정), 수산나(손다현)는 이 썰렁한 재회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저들 사이의 간극은 청주 – 대구 – 케임브리지로 분리된 세 장소의 지리적 거리감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여고 시절을 동고동락한 세 친구가 스무 살이 되면서 변화해가는 역동성을 묘사하는 < 성적표의 김민영 >(2022)은 물리적 거리감을 실재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 은유하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우정이라는 감정을 고요하고 섬세하게 담아내는 이 영화는 ‘김민영’을 평가 대상으로 집중하여 관찰하는 제3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환상과 추억으로 일상을 확장하는 내러티브의 궤적은 청소년기의 종말에 대한 가볍고 우울한 자화상을 따라간다. 도입부는 임박한 시험을 앞두고 삼행시 동아리를 작파하기로 결정한 세 친구의 마지막 회합을 보여준다. 이날 이후 세 친구의 길은 갈라진다. 몽상가 기질의 정희는 수능을 보던 날 시계를 지참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소년 정일(임종민)에게 손목시계를 주고 창밖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과 작별한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도 태평해 보이는 정희는 우연히 정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청주 나달 테니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누구도 가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한 상상을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세계를 쌓아간다. 집과 테니스클럽 사이를 벗어나지 않은 좁은 활동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테니스클럽 홍보를 위해 자신의 그림 재능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여고 시절부터 모임 결성을 즐겼던 민영은 대구의 대학에 진학하여 교내 청자켓 동호회 대표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수산나는 모두가 탐내는 자리를 확보하여 옛 친구들과 연결되기 어려워진다. 여름방학 동안 민영이 머무는 서울 집을 방문한 정희는 친구를 초대한 뒤 그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있는 민영에게 어색함을 느낀다. 민영의 마음은 서울의 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하는데 보탬이 될 성적(학점)에만 집중되어 있다. 성적에 집착하는 대학생이 된 민영과의 재회는 정희에게 명령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의 성공에 대해 조용한 자각을 준다. 뚜렷한 근거 없이 학점 교정을 탄원하는 시시한 대학생이 되어 친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민영에게 성적표를 남기고 정희는 돌아선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스무 살을 지나갔거나 곧 지나갈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우정이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을 세심히 관찰한다. 느린 서사의 진행은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곳곳에 뿌려진 건조한 유머는 안도감을 제공하면서 몽상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정희의 본성을 포착하는 것을 돕는다. 이재은, 임지선 공동감독은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던 두 친구의 나란했던 자리가 조금씩 이지러지는 순간들을 제시하면서 한동안 마음에 남는 애틋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보드게임, 햇반, 배드민턴 라켓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상경한 정희의 재회에 대한 상상은 슬프게도 현실에 부응하지 못한다. 앉은뱅이 책상과 노트북을 떠나지 않는 민영은 정희가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져버렸다고 비난하지만 그 자신의 소홀했던 학업성취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상하려 한다. 점차 한국적으로 변해가는 민영의 위선에 비해 정희의 상상의 나래는 실제 우정 장면과 상상의 우정 장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엮는다. 홀로 남겨진 정희는 민영의 일기와 개인 영상을 발견하고 민영의 우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하게 된다. 이는 여고 시절의 친우(親友)가 멀어져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도록 이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아의 희생을 의미하는가? 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서울집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표면화되는 상황의 장면 연출은 탁월하다. 민영이 단 하루로 시한을 한정하였으나 정희의 목적은 옛 시절처럼 민영과 ‘룸메이트’가 되는 것이다. 여고 시절 기숙사 방과 군에 간 민영의 오빠 자취방은 미묘하게 대조된다. 여고 시절 기숙사에서 나란했던 정희와 민영의 침대는 일치된 이상을 향하고 있던 존재의 조건을 묘사한다. 민영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정평이 난 도시인 대구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지루하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정한 친구 정희에게는 냉담하다. 자취방에서 두 사람의 배치와 자세, 카메라 위치는 엇갈리는 두 친구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문과 거울, 방바닥을 어지럽히는 잡동사니들, 신체적 제스처 따위가 교착된 관계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을 분리하는 촉매가 된다. 민영의 과업에 동참하여 교수에게 탄원 메일을 작성하는 것을 돕는 정희에겐 나의 친구가 좀 유치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한편, 민영은 정희의 선택을 무시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더 현실적이 되어야함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청소년 성장 서사의 상투형은 경쟁적인 입시 제도로부터 비롯되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학위, 직업, 가족을 형성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이다. 사회적 기준이 제시하는 표준적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인생의 고충은 성장 서사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이는 <성적표의 김민영>의 주제이기도 하나 이 영화는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상상의 힘을 지지하며 성인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길을 묘사하는 무미건조하고 유머러스한 스타일을 창안해냄으로써 통상의 성장담과 다른 길을 간다. 눈치조차 성공의 덕목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국에서 정희는 사회적 관습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민영과의 멀리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피어날 수 있을까? 두 공동감독은 점차적으로 서로 분리되어가면서 세상을 헤쳐나가는 젊은 여성들의 내면적 삶을 유머와 솔직함, 연민으로 다룬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풍으로 상상된 제주 여행 삽화는 진부한 공간을 현실의 기억과 상상의 장면들로 채우는 정희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소원과 애정 사이를 오가는 순간들은 섬세한 연출력 덕분에 잘 다루어지고 있으며 스토리를 따라가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신뢰하게 한다. 정희에게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할 수 있고, 환상과 오류의 차이를 평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화하기보다 현실화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학력 중심의 소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평판에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스무 살의 모습을 본다. 정희는 민영의 우월한 태도에 상처를 받지만 우정을 회복하여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민영이 그녀를 계속 무시하는 동안에도 온건한 태도를 유지한다. 정희를 혼자 남겨둔 채 떠나는 민영의 일기는 낮은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암시하며, 친구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는 소녀의 감정을 보여준다. 친절한 태도와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바탕으로 정희는 친구의 더 나은 자질을 칭찬하는 동시에 민영의 위선과 결점을 가감 없이 지적하는 성적표를 작성한다. 정희는 ‘한국인의 삶’에 F를 주면서, 좁은 땅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남의 눈치를 보면서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보다 덜 한국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녀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문화에 대한 온건한 비판을 제시하는 이 사려 깊은 드라마는 일탈적인 공상의 강렬함을 소유한 자유로운 영혼의 정희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성숙한 인간이라고 설득한다. 완전했던 세계의 파괴, 우정의 몰락을 형상화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이야기를 쌓아가는 공동 감독은 ‘삼(3)’이라는 숫자를 통해 이를 암시한다. 숫자 삼(3)의 논리는 무엇인가? 수비학(數秘學)에서 지혜와 이해, 창의의 수로 간주되었던 삼(3)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획된 시간의 세(3) 축, 탄생, 삶,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삼(3) 주기로 약호화된다. ‘조화’와 ‘일체감’, ‘통일성’을 상징하는 삼(3)은 세(3) 개의 꼭짓점을 연결한 삼(3)각형처럼 삼위일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호재와 악재는 세(3) 단계를 거쳐 온다고 하며, 가장 이상적인 스토리의 구성은 삼(3)막의 행위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되곤 한다. 내쳐 <성적표의 김민영>은 삼(3)의 해체, 몰락에 관한 스토리라고 할 수도 있다. 삼(3)행시 짓기 동아리로 하나가 되었던 세(3) 친구의 분리는 삼(3)행시 모임을 중단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삼(3)행시는 단어를 이루는 세(3) 음절을 모체로 하나의 문리(文理)를 조형해내는 행위인 바, 그 결과는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문맥을 창조하게 된다. 문학적 깊이마저 지니게 되는 저들의 삼행시는 그저 말을 지어내는 놀이를 넘어 진짜 ‘시’를 닮게 된다. 하나로 뭉쳐 삼(3)행시를 짓던 세(3) 친구는 세(3) 도시로 흩어지며 셋(3)으로 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생은 따라야 할 목록, 결의안의 지침처럼 간단하다. 문제는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정희가 관리하는 테니스 코트의 경기로 환원하자면 이재은, 임지선 감독은 완강한 완력으로 라인을 타고 공을 보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라켓을 휘두르는 대신 담장 바깥에서 담장 안 가까운 곳으로 보내야 하는 테니스공들처럼 스핀이 많이 걸린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성적표의 김민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다가 점진적으로 그 깊이를 체감하게 하는 감정을 드러내면서 조금씩 스며드는 환멸을 묘사한다. 감춰진 감정들이 많은 이 영화는 이별은 감상적일 수 없으며 매우 가혹하지만 필요하다는, 희소성 있는 주제를 다룬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곳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깊고 그윽한 숲속 어딘가, 정희가 그린 곳에서 살고 싶었던 마음처럼, 우리들의 친구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 혼자 있으리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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