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 감독
- 김시우
- 제작년도
- 2024
- 출연
- 이호원, 김원해, 안내상, 도지원
올해 이상하게도 영화제 예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무수한 영화들을 보면서 당연히 한국독립영화의 경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아가 부산에서 제작되는 영화들과의 차이도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올해 11월이 되면 열아홉 번째를 맞는 ‘부산독립영화제(이하 부독제)’의 예심만 남아 있다. 부산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만으로 경쟁작을 선정할 만큼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고, 해마다 공모작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제작의 폭이 넓어지는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양적인 증가가 부산영화의 특질로 이어지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기회가 된다면 차근차근 생각해볼 만하다는 사실만 밝힌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중요할지 모를 부독제 예심을 앞둔 지금 부산독립영화의 몇 가지 단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첫째. 영화를 만드는 인력의 층과 경로가 다양해졌다. 1980년대 중반 경성대학교 영화학과의 졸업 작품이 상영된 이후 각 대학에서 제작된 영화들과 시네마테크부산, 영화의전당 아카데미 워크숍을 통해 극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간혹 교육제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영화를 습득하고 직접 카메라를 든 경우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과 편수가 축적된 셈이다.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 ( 김수정 , 2015) 둘째. 독립영화 배급의 주목할 만한 확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배급과 상영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공동체 상영이나 대안 공간에서의 상영을 시도했었지만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하지만 올해 봄 20대 청년들이 모여서 부산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영화배급협동조합 ‘시네소파’을 만들었다. 이들은 김영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개봉시켰고 후속작으로 김수정 감독의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제에 소개됨으로 인해 미약하나마 상영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화가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확장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 지금까지 어렴풋이 잡히는 부산영화 고유의 정서와 특징들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 1999년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가 첫선을 보였을 때는 말 그대로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의지가 최우선이었다. 독립영화를 알리려는 열망과 이곳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모으고 기록한다는 뜻도 포함된 첫 영화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이름이 발견되거나 다채로운 생기를 품은 영화들과 만나게 되었다. 16mm 필름에서 출발한 부산독립영화는 디지털 포맷으로 바뀌는 동안 꽤 긴 명단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부산영화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흔히 부산영화의 특징을 말할 때 인물들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감수성의 표현이나 삶의 여러 층위 중에서도 유독 부재와 상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자주 거론된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지리적 특수성과 개인의 삶과 정서가 교차하거나 만나는 장소로 영도나 산복도로, 태극마을이 등장하는 영화도 심심찮게 만났다. 바다가 제공하는 풍광은 인물의 경험과 감정을 품거나 뱉어내기도 하고 유동적이고 임시적이었던 장소가 정박된 곳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삶의 맥락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철거되는 지역의 스산한 현장과 좁은 골목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빈곤과 부재, 떠남과 애도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 뿔을 가진 소년 > ( 김휘근 , 2017) 촬영 현장 < 오두막 > (이상환, 2016)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네 번째 단상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흐름에 대해서다.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감독들과 그들의 영화가 뿜어내는, 거칠지만 순전한 기운과 새롭고도 낯선 감각들, 다른 태도로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을 그 앞에 세운 영화들이다. 김휘근 감독은 고등학생 때 만든 < 이빨 >(2013), 스무 살에 혼자의 힘으로 꾸려나가 완성시킨 < 하얀색은 더럽다 >(2014)에 이어 < 뿔을 가진 소년 >을 완성했다. < 파수꾼 >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시나리오와 연출, 촬영을 맡은 첫 단편에서부터 그는 직접적인 표현과 상징을 사용함에 주저함이 없다. 다양한 인물들이 특정한 사건에 연루되는 드라마를 위해 장르를 활용하거나 비관습적이고 작가주의적인 스타일도 포용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본능적인 감각, 그의 열정과 집념이 일과 영화의 병행 안에서 쉽사리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수정 감독은 < 이매진 >(2011), < 달을 쏘다 >(2013)를 만든 후 부산에 돌아와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는 비슷하다’는 전제와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새롭다. 관객의 호감마저 배척한 인물들, 매정하면서도 차가운 현실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거리감, 관람하기 편하게 조율된 요소들에 저항하는 방식이 곧 영화가 된다. 현재 그는 부산독립영화협회가 제작하는 부산여성감독들의 단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올해 부독제에서 김수정 감독 특유의 신중하지만 단호한, 느린 호흡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부독제에서 만난 이상환은 가장 흥미로운 감독이다. 부산에 터를 잡은 후, 형과 가까운 친구들과 품앗이를 하듯 만들어낸 영화가 작년 한 해 동안 여섯 편에 이른다. < 오두막 >(2016)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청년의 고단하고 흉포한 삶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집요하게 쫓으면서 인물을 둘러싼 편견을 직시하도록 촉구한다. 너무나 직설적이기 때문에 인물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 이 영화의 힘은 그들의 필사적인 탐색과 속도전에 가까운 생산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세 감독의 영화에 담긴 부박한 삶은 때론 도전적인 테마,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편집, 공감하기 힘든 까다로운 캐릭터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관찰하고 모색하는 영화의 다양한 방법 즉 충동적인 감각과 낯설고 막다른 길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하다.
김지곤 은 2009년 어느 날, 오랜 시간 산복도로에서 살아오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비가 오는 날이면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래를 부르고, 손자들(할머니들은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를 이렇게 부른다)이 놀러 오면 수제비나 라면을 뚝딱 만들어서 술판을 벌인다. 한국의 부패한 정치 풍토, 이웃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젊은이들의 연애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오랜만에 만난 스태프가 반가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할머니의 시간과 기억은 그들의 주름진 얼굴과 굵은 손마디로 포착되거나, 오랜 시간 할머니 곁을 지켰던 사물들(못, 낡은 대야, 이름 모를 풀과 꽃, 시멘트 바닥)의 응시로 이어진다. 김지곤 이 < 할매 >(2011)와 < 할매:시멘트 정원 >(2012)에 이어 < 할매-서랍 >(2016)을 만드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 제목이 눈에 띈다. 할머니가 단독으로 등장하다가 할매와 시멘트, 정원은 콜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되비치는 관계에 놓인다. 최근작에서 할매와 서랍 사이에 놓인 하이픈은 시간(2009-2015), 관계(이 놈-손자), 공간(집과 폐허), 사물(시멘트로 구성된 집과 벽-풀과 꽃)의 연결이 부각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할머니들은 정든 집을 떠나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네 친구였던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더 이상 이웃으로 지내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반주(飯酒) 공동체는 말필 할매의 아들들과 스태프 모두를 포함하면서 점점 대가족이 되어간다. 마치 산복도로가 자생적인 골목과 계단으로 구성된 유기체가 된 것처럼 <할매> 연작을 통해 스태프도 산복도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실제로 김지곤은 할머니들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술과 노래를 사랑하고, 막걸리 사 들고 찾아오는 손자들을 살갑게 맞아준다. 온정으로 이어진 소박한 이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랜 기간 살았던 집을 강제로 허물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정책을 비롯한 부산시의 고압적인 행정은 오랜 시간 그 지역을 지켜왔던 사람들과 사물들에 무관심하다. 처음에는 공원을 조성하겠다던 부산시의 계획은 빌라 건축으로 변질되었고, 할머니들의 집터는 몇 년에 걸쳐 서서히 폐허로 변해갔다. 할머니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기록하는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 또한 변해간다. 철저하게 목소리로 등장하던 감독의 존재(< 할매 >)는 프레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할매:시멘트 정원 >, < 할매-서랍 >)으로 변했으며, “카메라 치워라”고 얘기하던 할머니는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스태프의 얼굴을 찍게 된다.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을 찍고 있는 기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할머니와 카메라의 거리감은 감독과 할머니의 거리감을 좁혀나가는 표지가 된다. 하지만 5년이 흐를 동안 이별과 해체가 이어지기도 한다. 말필 할머니의 개 해피는 이사 간 집을 찾지 못해 실종되었고, 스태프들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났다. 무엇보다 계단-골목-계단으로 연결되는 산복도로의 비좁고 구불거리는 길들은 평평한 땅이 되었다. < 할매-서랍 >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김지곤 과 스태프가 할머니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한 축으로 삼고, 다른 쪽에 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은 공간과 사물 인서트들을 디졸브한 이미지로 구성한다. 사람과 공간의 머무름/사라짐은 이미지의 겹침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상실을 극대화한다. 또한 이 영화는 ‘할매’ 연작의 마지막 영화임을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첫째로 전작에서 사용하지 않는 구체적 날짜를 명기한 자막이 13차례 등장한다. 산복도로의 정의와 ‘산복도로 르네상스’에 대한 부산시의 발표를 제외하면 태풍이 불어 닥친 어느 날의 기록, 해피가 있었다는 사실,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의 말, 할머니들의 이삿날, 할머니의 79세 생일잔치, 평상을 만든 기념으로 함께 먹은 삼겹살 등 감독이 체감한 산복도로에서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둘째로 영화의 타이틀이 러닝타임의 중간쯤에 삽입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김지곤의 카메라는 산복도로의 이웃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철거 후에도 할머니의 집터에서 몇 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버려진 냉장고와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것이 서랍을 여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서랍을 닫는 형태는 할머니의 대가족으로 편입된 스태프의 모습과 산복도로의 계단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시던 할머니들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졌다는 기록이다. 특히 전작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산복도로의 조감도는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이곳을 바라보라는 감독의 요청 같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시선에 담긴 산복도로는 긴밀하게 연결된 길과 계단,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동맥을 흐르고 있는 피처럼 보인다. 그 사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덩그러니 놓인 할머니의 집터를 포함한 산복도로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전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참혹한 조망이긴 하지만, 김지곤이 포착한 그곳의 자생적인 생명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시멘트를 뚫고 풀이 자라날 것이며, 천막으로 덮어놓은 땅에서도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독립영화계에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바람이 생겨났다. 그들은 30대 전후의 젊은 감독들이고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조성봉 감독이 제주 4.3 학살에 대한 도전적인 기록인 < 레드 헌트:빨갱이 사냥 >(1997), < 레드 헌트 2: 국가범죄 >(1999)를 제작했고, 계운경 감독이 장애 여성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 팬지와 담쟁이 >(2000)를 만들었다. 기채생 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부산, 광주 등의 지역 인디씬의 성립과 변화, 와해의 지점을 오랜 기간 기록했다. 새롭게 등장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주축이 된 집단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나 시점에 차이가 있고,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수사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만 부산독립다큐멘터리의 층이 세분화되는 지점은 이들로 인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오지 필름’은 박배일 이 주축이 된 집단으로, 이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에 찾아가 함께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박배일은 <제제에게 가는 길>(2007), <내 사랑 제제>(2008), < 나비와 바다 >(2013)를 통해 장애인의 연애와 사랑,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그들의 곁을 지켜보았다. 소외된 이웃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 < 잔인한 계절 >(2010)은 이웃집 할머니, 분주한 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노동하는 환경미화원의 열악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못 본 척 지나치는 그 지점을 찾아가 새벽과 밤의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했다. 이후 박배일은 다른 지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옴니버스로 제작한 4대강 문제, 제주 강정 마을의 문제 등을 담은 영화를 거친 후에 < 밀양전 >(2013), < 밀양 아리랑 >(2014)에 이르렀다. 밀양 송전탑 설치를 맨몸으로 막기 위해 산을 오르는 밀양의 할머니들과 함께하기 위해 밀양에 머물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면서 밀양에서 살아온 시간에 대해 기록하고 증언한다. 박배일의 카메라가 충돌의 현장을 마다치 않고 종횡무진하면서 관찰한 사건들은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기본적인 인권이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함부로 훼손시키면서 공동체의 가치까지 허물어뜨리는지 낱낱이 폭로한다. < 밀양 아리랑 >( 박배일 , 2014) < 악사들 >( 김지곤 , 2014) ‘탁주조합’은 김지곤 과 그의 조연출을 맡았던 오민욱 이 함께 만든 집단이다. 이들은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예민한 영화적 감각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직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지곤은 쇠락해가는 극장을 좁은 영사실을 통해서 바라본 < 낯선 꿈들 >(2008)과 극장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터전을 기록한 < 오후 3시 >(2009)를 통해 사라질 공간, 매혹으로서의 극장에 대해 접근하는 그의 감수성을 드러냈다. 이후 제작된 < 할매 >(2011), < 할매-시멘트 정원 >(2012) 연작은 우연하게 만난 산복도로의 할머니들의 삶과 무자비한 도시개발의 파괴력, 그로 인해 흩어져야 하는 할머니들의 친근한 공동체의 와해 과정을 기록한다. 김지곤의 카메라는 할머니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순간을 중심축으로 구성해낸다. < 악사들 >(2014)은 속칭 ‘오부리’라고 불리는 악사들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면서 이들이 다시금 연주를 들려주는 순간을 기록한다. 오민욱 은 < 1987061020080610 >(2008), < 상 >(2012)을 통해 부산민주화운동의 뜨거웠던 투쟁을 과거와 현재의 시점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특히 <상>의 오래된 사물을 통해 그 순간의 기억이 현재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존재하는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오랜 기간 인간의 눈과 관심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사물을 통해 역사와 기억에 대해 미학적인 접근을 하는 방법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 재 >(2013)와 < 범전 >(2015)은 부산의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시선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현재 그곳을 채운 개발의 흔적과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실험적인 이미지와 바라봄의 체험이라는 감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재 >( 오민욱 , 2013) <사냥>( 김영조 , 2013) 이 외에도 김영조 의 제작사 ‘월요일 아침’은 다큐멘터리의 활성화와 후배 육성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김영조의 < 가족 초상화 >(2007), <목구멍의 가시>(2009)는 가족의 숨겨진 비밀과 가족사를 관통하는 문제들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이 증폭시키는 감정이 인상 깊다. < 태백, 잉걸의 땅 >(2008), <사냥>(2013)은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담백하게 관찰하는 사람 중심의 영화다. 또 현재 영화 제작보다 미디어 운동이나 풀뿌리 운동과 연관된 실천을 중심에 둔 ‘미디토리’의 대표인 박지선의 <전설의 여공>(2012), < 그림자들의 섬 >(2014)을 제작한 김정근 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시선과 묵직한 삶이 교차하고, 미학과 정치가 예리하게 맞물리기도 하는 부산의 독립다큐씬의 활력은 감독들의 차기작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 김지곤은 할매 연작의 마지막 편을 제작 중이고, 김정근은 지하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닌다. 박배일은 막걸리 생탁의 노동쟁의를 기록하고 있고, 오민욱 역시 부산의 잊힌 공간을 부지런히 오간다. 김영조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중이다. 이들의 카메라가 운동으로 향하건, 투쟁이나 사색의 현장을 지칭하건 그들 모두는 부산이라는 지역과 장소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카메라의 태도에 대해 고군분투한다. * 사진설명: 좌측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배일 , 김지곤 , 오민욱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