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 감독
- 김한결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안재홍, 서정현, 정다원, 최정섭, 배유람, 위주경, 최민영, 정지형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박흥식 | 원안: 이은영 황혜영 | 각본: 박흥식 최은영(최반야) 장학교 | 각색: 신현정 김유진 장명숙(장명우) | 제작: 차승재 | 촬영: 조용규 | 미술: 박일현 | 음악: 조성우 CAST 정원주: 전도연 | 김봉수: 설경구 | 홍탁: 서태화 | 태란: 진희경 페데리코 펠리니의 < 나는 기억한다 Amarcord >(1974)를 보면 한 남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 외칩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기억한다>에선 처절한 외침이었지만, 박흥식 감독의 첫 영화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평범한 남녀의 다소 밋밋하면서도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평범할 수 없는 건, 전도연과 설경구라는, 당시 가장 ‘핫’했던 두 배우의 만남이었기 때문이죠. 2000년 가을에 공개된 현장은 봉수(설경구)와 원주(전도연)이 민방위 훈련으로 텅 빈 거리를 뛰는 장면입니다. 은행원인 봉수는 빨리 직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 은행 건너편 보습학원 선생님인 원주를 우연히 만난 봉수는, 갑자기 원주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합니다. 촬영은 수원시 정자동의 어느 도로에서 이뤄졌는데요, 촬영을 통해 교통 통제가 이뤄졌습니다. 평소에 안면은 있지만 결정적 모멘트는 없었던 두 사람에게, 어쩌면 갑작스러운 ‘손 잡고 달리기’는 어떤 사건일 수도 있었겠죠. 혹은 제대로 된 연애는 한 번도 못 해본 봉수가, 나름의 스타일로 프러포즈를 한 것일 수도 있고요. 촬영을 위한 교통 통제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 배우는 100미터 정도 되는 동선을 끊임없이 뛰고 또 뛰어야 했습니다. 대여섯 번은 뛰었던 것 같은데요, 전도연은 굽 있는 신발을 신고도 온 힘을 다해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선 박흥식 감독이 사인을 줍니다. “둘에 뛰면 돼. 하나, 둘!” 박흥식 감독과 전도연의 인연은 이 영화에서 시작되어 < 인어공주 >(2004) < 협녀, 칼의 기억 >(2015)로 이어집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이며 박광수 감독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허진호 감독의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연출부를 거친 박흥식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100여 명의 결혼 적령기 남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결혼에 관해 한때 굉장히 깊이 생각했었다. 주변에서 연애나 결혼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사실 한결같이 재미가 없다. 그래도 누구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게 된다. 그런 감정의 달라짐을 포착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느낌의 디테일’에 대한 영화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트랙이나 크레인 같은 장비가 동원되었습니다. 지난 번 < 품행제로 >(조근식, 2002) 포스팅 때 언급했던 조용규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황에서, 박흥식 감독을 직접 만난 설경구는 감독에게 느꼈던 좋은 느낌만으로 시나리오도 안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서른여섯 살인가 되는 감독이 꼭 미소년 같았죠. 영화가 그대로 나올 것 같았어요.” 그리고 현장에선 최소한의 정보만 듣고 찍었다고 하네요. “그냥 그대로 찍었어요. 시나리오에 없는 설정이라도 웃음이 나오면 웃고, 얼굴이 가려우면 긁어가면서.” 강렬했던 < 해피엔드 >( 정지우 , 1999) 이후 9개월 정도 쉬면서 전도연은 우울증을 겪었다고 하네요. 이때 만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는 너무나 재미있게 술술 읽혔고, 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원주는 실제로 제 모습과 많이 비슷해요. 전 영화 밖에서는 정말 평범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전도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힘들진 않았어요.” 그리고 상대역인 설경구에 대해선 “< 박하사탕 >(이창동. 2000) 보면서 솔직히 무섭고 소름이 끼쳤는데, 알고 보니 소박하고 털털하고 배려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영화 이후 17년 만에 개봉 예정작인 < 생일 >( 이종언 , 2018)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취재진과 감독 배우 사이의 간담회는, 도로 한 구석에서 이뤄졌습니다. “액션!” 소리에 뛰기 시작하고 “컷!” 사인에 멈추기를 반복하는 두 배우. 그들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겉으로는 밝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재미있지만 씁쓸하기도 한 영화. 그리고 ‘자연인 설경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영화.”(설경구)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에게도 이중적인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외향적인 면도 있고, 내성적인 면도 있고, 그런 입체적인 면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 만드는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박흥식 감독은 두 배우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캐스팅 할 때 다른 배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스타이긴 하지만 배우라는 레테르만 빼면 보통 사람 같은 면이 가장 많은 배우들이다. 이 영화에선 무엇보다 배우들의 힘이 컸다. 난 디테일에만 신경 썼고. 슛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의 자연스런 말투와 행동들을 관찰하면서 캐릭터에 반영해나갔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 메리와 맥스 >(2009) 이후 6년 만에 애덤 엘리엇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 어니 비스킷 >(2015)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작부터 가슴이 설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독의 신작은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어니 비스킷 >은 감독의 전작들과 다름없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색감을 제거한 흑백 화면의 차분한 정서와 미니멀한 연출 스타일도 그대로 이어진다. 간결하고 명료한 스토리와 함께 희비극이 교차되면서 드라마와 유머를 맛깔나게 그려냈던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전사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19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파리지앵 어니 비스킷은 박제사이다. 어니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니는 후천적 청각 장애인이다. 어린 시절 여름 캠프에서 만난 어느 고약한 아이의 장난으로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어니의 기구한 운명은 어쩐지 감독의 작품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운의 아이콘들과 많이 닮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암울한 어니의 유년 시절에도 네넷이라는 옆집 소녀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있다. 새를 좋아하고 머리에서 계피가루 향이 나는 네넷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어니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친구이자 그의 첫사랑이다. 어니는 늘 그녀와 베니스행 신혼여행을 꿈꾸며 풋풋한 첫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뿐, 독일 침공과 동시에 유대인이었던 네넷과 그녀의 가족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어니의 첫사랑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세월이 훌쩍 지나 노년이 된 어니, 네넷이 남기고 간 오리와 단둘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어니 앞에 죽은 비둘기가 우연히 떨어지게 되고, 이를 계기로 어니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베니스행을 감행한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늘 계획한 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특히 꼬일 데로 꼬인 지지리 운도 없는 어니의 인생이 그렇게 쉽게 술술 풀릴 리가 없다. 그토록 꿈에 그려왔던 베니스 대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황량한 호주의 오지 마을뿐. 여기까지의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가 어쩐지 그의 또 다른 단편 < 하비 크럼펫 >(2003)을 닮아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라졌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였던 이전의 수동적인 캐릭터들과 달리 어니는 용기를 내어 스스로 뭔가를 쟁취하고자 노력한다. 인생이란 게 전적으로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운명에 달린 것도 아니기에...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감독의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텍스처를 드러내는 실험적인 시도들을 보여준다. 물론 감독의 시그니처인 흑백 화면과 전통적인 스톱모션 기법 그리고 내레이션 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간결한 스토리와 모노톤의 화면, 희비극이 교차하는 캐릭터가 가장 어둡고 드라마틱한 정서를 건드리며 동시에 유머를 머금고 있는 아이러니한 조화를 생산하는 것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반적인 작품의 톤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감독은 본래 장편으로 기획된 시나리오에 25번이나 수정을 가할 만큼 시간과 열정을 쏟았으며, 작품이 주는 역동성과 리듬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변화의 시도는 바로 캐릭터에 있다. 캐릭터들이 한층 더 풍부해진 질감과 왜곡된 아름다움 그리고 성격화를 드러내고 있다.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캐릭터들과 늘 충분한 교감을 이룬 후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편인데, 이런 이유로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단순히 클레이로 만들어진 인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삶 속에 존재하는 실재처럼 다뤄진다. 특히, 어니의 새로운 인연으로 등장하는 앤젤리나라는 캐릭터를 통해 감독은 스스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감성을 지닌 이전의 캐릭터에서 보다 단단하고 강한 캐릭터로 진화해 나가는 모습을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역력히 드러낸다. < 메리와 맥스 > 이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방전됐다던 감독의 창작 세계가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에너지를 재충전한 것처럼 보인다. 미니멀한 스타일이 보여주는 미학과 번뜩이는 재담은 한층 더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진화했다. 애덤 엘리엇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위트에 또 한 번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다. 조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 하비 크럼펫 >, < 어니 비스킷 >에 이어 제작될 예정인 단편 3부작의 완결편을 어서 빨리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해가 바뀌었다. 동서양이 만들어 놓은 새해의 유예기간도 음력 설이 찾아오며 끝나버렸다. 5년을 견뎌야 할 새 정부도 출범했고, 어느덧 찾아온 봄날은 초여름 수준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2013년의 1/4이 술술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새 출발의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탓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특정 질문이 많아진다. 모든 창작자가 부담스러워하는 바로 그 질문. “다음 작품은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물론, 막역하지 않은 감독에게 건네는 만만한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마치 “잘 지내시죠?” 와 같은 관용적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부담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딱히 차기작 제작에 돌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면 정말,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차기작 구상이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기는 하지만, 큰 진전은 없다. 전작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 좀 더 쉬어야 한다는 변명이 이젠 부끄러울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남용하고 있다. 남들 눈에는 딱 봐도 천하태평 한량이겠지 싶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10여 년을 해왔던 다큐멘터리 작업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인생의 궤도를 바꿔 탈 수 있는 여지도 줄어간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무슨 깡이 있어 이렇게 영화 한답시고 살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뭘까? ‘나는 왜 찍는가’에 대한 상념에 빠져있던 중, (남몰래 흠모했던) 친한 선배가 영화 잘 봤다며 선물로 준 책이 생각났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스스로 ‘MTV 영상 세대’라며 활자와는 담을 쌓고 지낸 나였지만, 거장인 조지 오웰에게 무언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책을 읽으며 그 선배를 향한 연정을 되새겨 보고픈 마음도 한몫.) 나는 대체 왜 찍는 걸까?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과 아름다움을 향한 ‘미학적 열정’을 꼽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대의명분보다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생각했던 다른 삶의 롤모델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몹시도 허황한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이 선지자의 창작 동기는 ‘역사적 충동’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로서의 충동. 이런 충동 덕분에 조지 오웰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남겼을 것이다. 그가 글을 쓰며 역사를 남겼다면, 다큐멘터리스트는 영상을 찍으며 역사를 보존하는 사람들 아닐까. < 종로의 기적 >을 만들며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종로 게이들의 역사가 다큐를 통해 남겨지길 바랐다. 2010년의 한국에서 성 소수자가 이렇게 생존했음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다. 어디에나 있는 삶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역사였으니까.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외면당했던 여성의 역사가 여성주의자들을 통해 새롭게 발굴되었듯, 성 소수자의 역사를 성 소수자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 싶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한술 밥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남겨야 할 성 소수자들의 삶은 무수한데, 엄혹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선배 성 소수자들의 인생을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꼼꼼히 기록해둬야 하는데, 인제야 역사적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차기작에 대한 열쇠는 내 첫 작품이 쥐고 있었으니, 에둘러 왔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다행이지 싶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카메라를 들고 다시 종로 골목을 어슬렁거려야겠다. 아!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조지 오웰의 마지막 동기는 바로 ‘정치적 목적’이다. 무슨 군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조지 오웰 작가님의 말씀을 오롯이 인용하는 게 낫지 싶다.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새 정치로 어수선한 봄날이다. 황사가 불어와도 꽃은 필 터이니, 우리 모두 충동 느끼며 정치하게 영화 찍으며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