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관
- 감독
- 양공량
- 제작년도
- 1948
- 출연
- 마사증, 홍선녀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다 준 작품이다. 켄 로치 감독은 오랫동안 많은 작품에서 노동자, 소외계층, 억압받는 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아왔다. 이러한 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간 목수 일을 해온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심장병을 얻어 일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타기 위해 신청을 해보지만, 심사관은 다니엘의 심장병과는 관련이 없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질문을 한다. 그의 건강 상태는 ‘점수’로 나타내어질 뿐이다. 질병 수당 취소 결정에 항고하려 하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다.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화면에 마우스를 갖다 댈 정도로 디지털 세대에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구직 지원금과 질병 수당 신청은 또 하나의 장애물로 다가온다. 다니엘은 누구보다 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복지 혜택을 누리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다니엘은 관공서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 런던의 아파트에서 부당하게 쫓겨나 이사를 왔다. 그는 새로 온 지역의 지리를 몰라 조금 늦은 것 때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추운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 그녀에게 다니엘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니엘 본인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 때문에 이웃의 처지에 더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과 케이티를 하나의 사람으로서 바라볼 때, 이들이 그러한 혜택을 받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이 마땅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과 어려움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겪어야 하는 것은 체계가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것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을 존중해줘야 하는 존재들보다는 시스템 속의 한 개체로 보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시스템을 거스르다 생길 혹시 모를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시민들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복지 시스템의 폐해를 고발한다. 영화 제목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두 장면에 등장하는 말이다. 다니엘이 관공서 건물 밖 벽에 자신의 메시지를 까만 스프레이로 쓰는 장면과, 항고 때 말하려고 했던 글을 다니엘의 장례식장에서 케이티가 읽어주는 장면이다. 두 장면은 모두 다니엘이 자신이 겪은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한 대우에 대해 항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니엘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강조한 것은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복지 시스템과 그 속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잘못된 복지 시스템의 폐해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식으로 돕는지도 담고 있다. 다니엘은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케이티의 집 수리를 도와준다. 다니엘 역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 역시 이웃집 청년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관공서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구직 수당과 질병 수당 항고 신청을 이웃집 청년들이 도와준다. 정작 다니엘에게 도움을 줘야 했던 공무원들이 아닌, 그저 가난한 이웃이 그를 도와준 것이다. 그 외에도, 케이티의 도둑질을 눈감아준 마트 직원이나 어느 상황에서든 동등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식료품 보급소의 직원들, 혹은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도 다니엘에게 인간으로서 융통성 있게 대해주는 소수의 공무원 같은 인물도 나온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사람들 간의 공감과 연대, 도움으로 이들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주제들을 보여주는데 극적인 이야기나 화려한 화면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 놓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을 카메라가 따라가듯 연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담백하게 담아냈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더 이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또한, 다니엘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어서 영화가 끝난 뒤 여운이 길게 남았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수상소감으로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합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켄 로치가 오랫동안 영화를 연출하면서 비춰왔던 수많은 노동자, 소외계층, 억압받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수상소감에서의 ‘다른 세상’이 아닐까? 그는 그의 영화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들을 남겼다. 이제 정말로 그런 세상을 위해 사회가 변화해야 할 때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미국만 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환상은 맹목적인 열기를 낳았다. 너도나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그 시절. 진가신 감독이 연출한 < 아메리칸 드림 인 차이나 >는 80년대 중국의 경제 개혁기, 아메리칸 드림에 젖어있던 세 청년이 어떻게 그들이 열망하던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지금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지 20년의 세월을 되짚으며 따라가는 성장스토리다. 80년대 캠퍼스. 입학하는 날부터 쳉(왕효명)은 왕(통따웨이), 맹(덩차오)과 우연히 ‘엮이게’되고 그렇게 절친히 된다. 가난한 지방에서 삼수 끝에 어렵사리 대학에 온 쳉은 미국 여자와의 섹스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라 여기며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왕이 신기하고, 유학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맹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어쨌든 같은 캠퍼스 안에서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기회의 땅인 미국에 가는 것이다. 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별다른 규칙도 없이 퇴짜를 놓는 미국 비자 심사관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강구하는데 그들의 20대를, 대학 시절을 아낌없이 바친다. 바야흐로 중국은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그 변화의 가치를 직접 몸으로 습득하고 있던 때였다. 맹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바꿀 거야”라고 말하며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나라’는 바로 자신의 고국이 아닌 미국이라고 확신한다. 진가신 감독은 그렇게 미국행에 목을 맨 세 친구 중 맹 만을 미국으로 보내준다. 쳉은 번번이 비자 심사에서 탈락해 좌절하고, 왕은 여자친구가 중국에 남길 원해 미국행을 자진 포기한다. 맹에 대한 부러움을 접고 쳉은 교편을 잡지만 대학등록금으로 어머니가 진 빚을 갚으려 아르바이트로 불법 과외를 하다가 적발돼 교사직 파면을 당한다. 그즈음 왕은 여자친구에게 버림받고 홀로 남겨진다. 이렇게 친구들이 중국에서 고전하는 동안, 셋 중 유일하게 미국행에 ‘성공’한 맹의 미국생활도 바라던 생활이 아니었다. 전공을 살려 그럴듯한 일을 하는 건 불가능인 데다 식당에서 고된 노동만이 그를 기다린다. 채광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며, 세탁소에서 노동으로 지쳐가던 맹의 아내는 급기야 “우리 도대체 이 나라에 왜 온 걸까”라며 절규한다. 맹과 그의 아내가 맛 본 좌절과 패배의 시간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실패한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홍콩 반환기, 기회를 찾아 본토에서 홍콩으로 미국으로 가 힘들게 적응해야 했던 < 첨밀밀 >의 소군과 이요의 초상도 다르지 않았다. 세 친구가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장소로 진가신 감독은 이제 미국이라는 해외가 아닌 중국 내부로 눈길을 돌린다. 쳉은 돈을 벌기 위해 토플 강습을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잘돼서 왕에게도 같이 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 생활에 실패한 맹 역시 중국에 돌아와 챙의 학원사업에 함께 참여하게 되고 점점 사업이 커진다. 80년대 미국을 못 가 안달하던 세 친구가 모두 중국 학생을 미국으로 보내는 유학원 ‘뉴드림’의 운영으로 성공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중국은 이제 그들이 거닐던 80년대의 낙후된 캠퍼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90년대 초가 되면서 중국은 고도성장하였으며, 비록 불발됐지만 북경올림픽 유치를 시도하는 등 국제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한창 달리던 때였다. ‘하루 종일 있어도 치킨 한 조각만 시켜도 뭐라 하지 않는’ 미국 체인 패스트푸드점 KFC는 이제 미국이 아닌 북경에서도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흔한 장소가 되었다. 그 급격한 변화의 시대가 불과 10년 만에 도래한 것이다. 쳉에게 미국행은 씁쓸한 기억이었다. 비자심사에 실패해 좌절감을 맛봐야 했던 자신과 달리 비자를 받은 여자 친구만 미국에 가게 되고 결국 환경의 차이로 헤어진 젊은 날의 실패한 연애담과도 얽혀있었다. 그런 그가 비자를 받게 되는 건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다. 바로 뉴드림이 EES의 기출문제를 도용했다는 혐의로 미국 영어 평가 EES 시스템 저작권 침해 소송 건에 휘말려서였다. 소송을 위해 미국에 간 쳉과 친구들은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선입견에 맞선다. EES 사의 변호사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세 친구는 미국인의 눈에 비친 ‘컨닝을 일삼고’ ‘이민 오고 싶어 안달하는’ 중국인의 모습은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으로 점철된 과거일 뿐, 더 이상 현재는 아님을 알려준다. EES사에 맞선 뉴드림의 일방적 승리를 보여주는 이 장면의 연출은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실패도 좌절도 기회도 승리도 이제는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다. 맹목적인 아메리칸 드림 이후 실패한 그들이 실패를 딛고 지금의 중국에서 ‘차이니즈 드림’을 키워나가는 세 친구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동방학원의 위민홍 진가신 감독의 작품으로 볼 때 < 아메리칸 드림 인 차이나 >는 < 퍼햅스 러브 >(2005) 이후 < 명장 >(2007) < 무협 >(2011)과 같이 주로 스케일이 큰 대작 위주로 연출에서 벗어나 오랜만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세 친구가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갈등을 그린 후반부보다는 역시 전반부 연출이 진가신 감독 특유의 아기자기한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 장면이다. 특히 최근 중국 대중영화에서 각광받는 소재인 80년대 복고 콘텐츠의 정서가 세 친구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어리숙한 쳉이 캠퍼스에서 가장 예쁜 수메이를 향해 구애하는 장면의 멜로 연출이나, 비자를 받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고군분투하는 청춘드라마의 풋풋함이 잘 연출되어 있다. 영화 속 쳉의 모델이자 진가신 감독이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는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중국 최대의 사교육업체 신동방(新東方)의 창업자 ‘위민홍’의 스토리다. 1993년 31살에 북경에 신동방학원을 설립한 그는 44살에 자신의 사업체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며 승승장구해 온 기업가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미국으로 갈 때 국내에서만 공부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변화하는 시대, 중국인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