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맨 2
- 감독
- 존 파브로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사무엘 L. 잭슨, 폴 베타니, 미키 루크, 샘 락웰, 기네스 팰트로우, 돈 치들
일단 감독이 클락 그레그다. 누구냐고? < 어벤져스 >에서 장렬히 전사했지만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지키고 있는 필 콜슨 요원이다. 수십편의 영화에서 맹활약을 펼친 바 있는 이 배우가 사실은 작가이기도 하고 또한 감독이기도 하다. 작가로는 딱 한 편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게 바로 < 왓 라이즈 비니스 >, 로버트 제멕키스의 히트 스릴러였다. 지금까지 감독으로는 두 작품을 남겼다. 그중 첫 번째 작품, 말하자면 감독 데뷔작이 오늘 소개하는 < 초크 >다. 영화를 보기 전에 선입견 팍팍 들어가게 사전 정보를 주입하자면 일단 원작자가 어마어마하다. < 파이트 클럽 >의 원작 소설가인 척 팔라닉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이 작가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질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인데, ‘초크Choke’는 한마디로 이종격투기에 나오는 기술 초크, 그 단어다. 조르기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영화의 중요한 설정을 가리키는 말로, ‘질식’이 더 내용에는 맞는 번역인 셈이다. 사실 감독 클락 그레그는 2008년 < 아이언 맨 >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닥 많은 관객들이 알아보는 배우가 아니었는데, <초크>도 같은 해인 2008년에 나온 작품이다. 위대한 배우와 끝내주는 배우,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 순서대로 안젤리카 휴스턴, 샘 록웰, 그리고 켈리 맥도날드. 영화가 시작되면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교실 같은 곳에 둥그렇게 앉아 있는 미국인들. < 파이트 클럽 >의 고환암 환자 모임이 반사적으로 기억 날 것이다. 같은 원작자의 영향이 느껴지는 순간,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섹스 중독자’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혹시 이 영화는 섹스 중독자 판 파이트 클럽?’이라는 엉뚱한 기대가 버섯처럼 솟아오르게 되는데, 그건 아니다. 아니,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샘 록웰이 맡은 주인공 빅터는 성중독자다. 세상의 ‘거의’ 모든 여자들을 자신의 성적 접촉의 상대로 생각하며 그들이 벗은 몸을 항상 상상한다. 이 모임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지 성중독자들끼리 정보와 기회를 교환하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폭발적으로 섹시한 여성, 이름마저 섹시한 니코와 모임 중간중간 빠져나가 화장실에서 정사를 벌이기도 한다. 사실 빅터는 자신의 증세를 치료할 생각조차 별로 없다. 그저 니코와 만나기 위해서 이 모임을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아, 니코로 말할 것 같으면 파스 데 라 우에르타가 분했다. 이 배우가 헤픈 여자를 연기하는 것처럼 설득력 강한 캐스팅은 드물다. 샘 록웰 그렇다면 주인공 빅터는 뭘 해서 먹고 사느냐? 미국의 개척시대를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에서 개척시대 사람인 척 연기하는 일종의 투어 가이드로 살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속촌의 거지, 이장님, 처녀귀신, 광년이 등의 알바가 떠오르는데 그거 맞다. 빅터는 자신의 직업적 커뮤니티 안에서도 수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고 있다. 이 파트에 감독인 클락 그레그가 직접 출연한다. 빅터와 그 절친 데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동료 투어 가이드인 찰리 역이다. 주로 대학생들이 알바를 하는 우리나라의 민속촌과는 달리 영화 속 테마파크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은데, 빅터가 딱 그런 케이스다. 수입도 별로 좋지 않고, 삶의 태도도 매우 불성실하며 오로지 머리 속에는 섹스밖에 없는 주인공 빅터는 가끔씩 몫돈이 필요할 때 하나의 쇼를 벌이는데 그건 바로 식당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하는 척’을 하는 거다. 그러고는 식당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아니다. 그렇게 질식한 것처럼 목을 잡고 주위 손님들을 둘러보다가 ‘딱 맞는’ 사람 앞에서 쓰러져 그 사람으로부터 구해지는 퍼포먼스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그 사람은 영웅이 된다. 결국 그에게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을 선물함과 동시에 그로부터 동정심을 얻어내기 쉬운 상태가 된다. 자신의 생명을 구한 그 사람에게 자신의 가난함과 비참함을 털어놓고 금전적 지원을 얻어내는 것. 아주 오랫동안 해 온 빅터의 장기이며 삶의 변곡점들을 돌파하는 하나의 필살기이기도 하다. 안젤리카 휴스턴 첫 문단에서 안젤리카 휴스턴 이야기를 했는데 왜 아직도 안젤리카 휴스턴 이야기가 안 나오느냐 현기증 난다, 이런 독자들이 계실 텐데 이제부터다. 대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은 빅터의 어머니 역할로 등장한다.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중증이다. 알츠하이머로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빅터가 병원을 자주 찾아가는데, 그 이유는 일단 어머니께 효도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병원의 여러 직원들과 성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빅터를 주로 자신의 변호사로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는 빅터를 끔찍하게 사랑하는데, 빅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머니와의 관계도 매우 중요한데, 빅터는 어린 시절 엄마와 떨어져 여러 양부모와 지냈다. 엄마는 치매가 오기 전부터 이미 뭔가 정신세계가 독특했는데, 양부모와 잘 살고 있는 빅터를 찾아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집에 보내고 그런 식으로 살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는데, 빅터는 이제 자신의 그 출생의 비밀이 알고 싶어졌다. 어머니가 이제 얼마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새로 온 어머니의 담당 의사 페이지는 어머니의 병세가 지극히 악화됐음을 알린다. 이 영화의 매우 중요한 캐릭터가 이 의사 페이지다. 앞서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한다고 말했던 켈리 맥도날드가 맡고 있다. 켈리 맥도날드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많은 이들이 미드 < 보드워크 엠파이어 >의 마가렛 역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 트레인스포팅 >에서 이완 맥그리거를 클럽에서 만나자마자 집으로 데리고 간 여고생으로 각인 돼 있다. 목소리가 특히 신뢰감 가는 배우인데, < 메리다와 마법의 숲 >에서 메리다 역을 맡은 배우이기도 하다. 하여튼 의사 페이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어머니를 치료할 것을 빅터에게 제안한다. 자신의 전공이라는 줄기세포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내용누설을 피하기 위해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다. 빅터는 어머니의 일기장이 집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찾아낸다. 드디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인가 했더니 아니다. 어머니는 이탈리아 사람, 일기는 온통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의사 페이지에게 어머니의 일기를 맡겨 해석하게 하는데, 빅터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누군가의 보관된 체세포를 통해 탄생한 그의 클론이라는 사실을. 예측불가능한 스토리와 예측가능한 스토리가 새끼줄처럼 꼬여 있는 가운데 역시 < 파이트 클럽 > 원작자의 솜씨답게 적당히 재치있는 반전까지 도사리고 있다. 영화 < 초크 >는 3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이다. 이 상은 누구에게 주어졌느냐 하면 샘 록웰, 안젤리카 휴스턴, 켈리 맥도날드, 그리고 대니 역을 맡았던 브래드 윌리엄 헨케. 영화의 주요 배역들이 열연을 인정받았다. 샘 록웰이 할리우드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배우로 평가받는지 모르는 관객들이라면 의외의 한방을 얻어맞을 수 있다. 노년의 안젤리카 휴스턴은 아직도 괴력을 지닌 대배우라는 사실을, 켈리 맥도날드의 차원을 가늠할 수 없는 예측 불허의 연기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초크>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IPTV에서만 만날 수 있다.
1990년에 나온 < 캡틴 아메리카 >는 마블이 직접 그리고 제일 처음 손 댄 극영화였다. 사실 그보다 앞서 몇 차례 실사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1979년에 나온 건 TV용 영화였고, 1989년에 모습을 드러낸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 응징자 >엔 정작 마블 딱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따라 <사이보그>로 이름을 알린 알버트 파이언이 감독하고, 스탠 리가 처음 제작자 크레딧에 오른 이 작품이 실질적인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극영화 데뷔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조악한 완성도와 낮은 배우 인지도로 인해 극장 개봉은 하지 못한 채 비디오로 직행됐다. < 슈퍼맨 >이나 < 배트맨 >으로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린 DC 코믹스와 달리 마블에게는 영화적인 노하우가 부족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제작한 21세기 픽쳐스에 문제가 있었다. 영화화 판권을 산 매너햄 골란은 < 아메리칸 닌자 > 시리즈나 < 델타포스 >, <대특명>과 같은 척 노리스의 B급 액션 영화로 돈을 모은 이스라엘 출신의 제작자 겸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에 앞서 < 슈퍼맨 4-최강의 적 >을 제작해 슈퍼맨 시리즈에 종말을 고한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방패에 악당 레드 스컬까지 나름 원작 설정에 충실히 만들어졌지만, 예산 부족이란 약점을 커버하지 못한 채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희대의 망작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 다시 캡틴 아메리카를 큰 스크린에서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캡틴 아메리카(들) 반등은 마블이 영화 제작에 전면에 뛰어들면서 부터였다. 자신의 품을 떠난 < 엑스맨 >과 < 스파이더 맨 >이 놀랄만한 흥행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걸 보자 마블은 단순한 판권 장사나 공동 제공이란 한정된 크레딧에 만족할 수 없었다. 마블 영화에 깊게 개입된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를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앉히고, 2008년 < 아이언 맨 >을 필두로 < 아이언 맨 2 >, < 인크레더블 헐크 >, < 토르 >를 차례대로 선보이며 성공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화려한 은막 복귀작인 <퍼스트 어벤져> 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퍼스트’라는 제목과 달리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과거와 현재, 인간과 영웅, 신화를 아우르는 <어벤져스> 의 사전 포석으론 비교적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1990년 흑역사 이후 무려 21년만의 성공적인 부활이었다. 재미있게도 감독의 중책을 맡은 이는 조 조스톤으로, 그는 비슷한 시기인 1991년 역시나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화 원작의 히어로 < 인간 로켓티어 >를 만들어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그는 고색창연한 전쟁 영웅을 현대로 데려와 미 패권주의와 내쇼널리즘이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보다 근본적인 자유와 평화에 몰두하는 진지한 성인군자 코스프레로 제목에 비친 선동적인 시각이나 오해를 피하려 노력했다. 이는 알란 실베스트리가 맡은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스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DC코믹스와 마블의 영화화 <퍼스트 어벤져>는 바로 전에 개봉한 <토르>처럼 베테랑 작곡가의 힘을 믿었다. 신화적인 묵직함과 고대 비극을 연상케 하는 인물 간의 설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세익스피어 극에 능통한 (캐네스 브래너 감독과) 패트릭 도일을 등용했듯, 전쟁영화의 외피를 두른 블록버스터 액션물의 진수를 전달하기 위해 밀리터리 사운드와 액션스릴러에 최적화된 작곡가 알란 실베스트리를 선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B급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주로 활동을 한 그는 국내에선 ‘기동순찰대’로 알려진 < Chips >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로맨싱 스톤 >에서 템프 트랙 작곡가로 고용되었으나 이 음악이 맘에 든 로버트 저멕키스가 그를 정식 작곡가로 고용하며 메이저 데뷔를 치뤘다. 이후 < 백 투 더 퓨쳐 > 삼부작과 < 포레스트 검프 >, < 콘택트 >와 < 캐스트 어웨이 >, < 폴라 익스프레스 > 등 30년간 저멕키스의 모든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스필버그-윌리엄스나 버튼-엘프만 조합처럼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했다. 또한 코미디나 액션, 스릴러, 공포와 SF, 애니메이션과 서부극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활동했으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진취적이고 활력 있는 팝스 오케스트라로 보편화된 미국적인 사운드를 잡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유행처럼 번진 리모트 컨트롤 류의 사운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작법을 오롯이 영상에 대입, 투영할 수 있는 음악 장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알란 실버스트리 <퍼스트 어벤져>의 음악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자신의 지루한 틀을 깨고 실베스트리는 과거 8-90년대 중반 최전성기 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최상급의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최근 남발되어온 여느 슈퍼히어로 음악의 전형적이고 피로한 형태에서 벗어나 고전적이고 애국적인 진군가를 갖추며, 캡틴 아메리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망과 진지함을 그럴듯하게 꾸며주었다. 자칫 이 영웅적인 찬가가 유치하게 들리거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발현으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선동적이고 노골적인 수식은 최소화한 채 다양한 액션 큐들과 드라마에 적절히 메인 테마를 혼용하며 밸런스를 맞추었다. 실베스트리는 유난히 밀리터리 사운드에 특화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앞서 잠깐 언급된 매네햄 골란의 <델타포스>를 필두로 < 프레데터 >, 아카데미 단편상을 수상한 <투 솔져>, 코미디 < 말뚝상사 빌코 >와 , < A-특공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발현한 군악대 행진곡 스타일을 여기서도 매끄럽게 녹여내며 특유의 활력을 부여했다. 그런 부분들이 2차 대전이라는 배경과 레드 스컬로 대표되는 흑막의 잔재를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조와 상충되며 묘한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슈퍼히어로’와 과거 ‘전쟁’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과 장르가 뒤섞여 발생되는 하이브리드한 쾌감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음악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질감과 음영을 남긴다. 전자음을 배제한 대규모 심포닉 사운드의 위력은 사운드트랙 전반에 걸쳐 곳곳에서 드러낸다. 존 윌리엄스나 브루스 브루턴, 제임스 호너를 연상케 하는 장엄하고 영웅적인 메인테마가 바로 그 정점으로, 7-80년대 한참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테마를 떠오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할리우드 황금기에 활약했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나 알프레드 뉴먼, 미클로스 로자 등의 선율까지도 환기시키게 만든다. 하지만 실베스트리는 영화상 최대한 이 테마를 숨겨놓았다가 엔딩 크레딧에 이러서야 행진곡 형태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낡은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차용한 멋진 타이틀 화면과 함께 어우러지며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안타깝게도 ‘Captain America March’는 디지털 음원에만 포함되어 있고 CD에는 삽입되지 않았다.) 그 외 액션 큐들도 환상적이다. 금관악기를 위주로 스트링과 타악기가 보조적으로 받쳐주며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실베스트리만의 스피드하면서 박력 넘치는 액션 스코어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나 <프레데터>에서 활용되었던 이래 변함없이 장점으로 발휘됐던 스타일로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든다. ‘VitaRays’나 ‘Kruger Chase’, ‘Motorcycle Mayhem’과 ‘Hydra Train’ 등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전쟁 선전에 이용되며 코러스와 같이 채권을 팔 때 흐르던 노래 ‘Star Spangled Man’도 잊을 수 없는 트랙. 전시 어빙 벌린이 만든 곡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디즈니 전담 작곡가로 유명했던 알란 멘켄이 데이비드 지펠과 손잡고 만든 노래로, 그 때 그 분위기가 물씬 살아 숨 쉬며 묘한 기시감을 전달한다. 알란 실버스트리의 OST 음악적인 완성도와 호평으로 인해 알란 실베스트리는 바로 다음해 마블 캐릭터들이 모인 <어벤져스>의 음악을 연달아 맡게 된다. 그는 두 개 이상의 마블 작품을 담당한 첫번째 작곡가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속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선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 헨리 잭맨에게 바톤을 넘겨줬지만, 그의 팡파르가 여전히 등장하며 살짝 여운을 남겨두었다.(흥미로운 건 알란 실베스트리가 하차한 <지.아이.조>의 속편 음악도 헨리 잭맨이 넘겨받았다는 사실!) 하지만 언젠가 알란 실베스트리가 마블 영화에 다시 컴백할지 모른다. 70년 뒤에 깨어난 스티브 로저스처럼. 21년 뒤에 성공한 캡틴 아메리카처럼 말이다. ‘Captain America March’ Track List 1. Captain America Main Titles 2. Frozen Wasteland 3. Schmidt's Treasure 4. Farewell to Bucky 5. Hydra Lab 6. Training the Supersoldier 7. Schmidt's Story 8. VitaRays 9. Captain America "We Did It" 10. Kruger Chase 11. Hostage on the Pier 12. General's Resign 13. Unauthorized Night Flight 14. Troop Liberation 15. Factory Inferno 16. Triumphant Return 17. Invader's Montage 18. Hydra Train 19. Rain Fire Upon Them 20. Motorcycle Mayhem 21. Invasion 22. Fight on the Flight Deck 23. This is My Choice 24. Passage of Time 25. Captain America 26. Star Spangled Man
거대 로봇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 숨겨진 보석 같은 애니메이션! 한 해 개봉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에 비하면 당연히 숫자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지만, 당해 연도에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들에서 상영되는 단편 애니메이션까지 모두 합해본다면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양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한 영화제에 출품되는 애니메이션 작품 편수가 해마다 천편 이상이나 되니 말이다. 디즈니를 비롯해 픽사나 드림웍스 등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몇몇 블록버스터급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제작사들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개봉관을 잡아 비교적 여유 있게 상영을 하지만, 그 외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사실 개봉관 상영은 언감생심이요, 주로 지구촌 곳곳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들을 통해 관객들과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나마도 선택된 작품들에 한해서만 말이다. 이쯤 되니 사설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각설하고, 어찌됐던 세상에는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보석 같은 진귀한 애니메이션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개봉 당시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시기가 적절하지 못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거나, 그도 저도 아닌, 배급사와의 갈등으로 배급망을 충분히 타지 못했거나 혹은 아예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사라져 버린 애니메이션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데 < 아이언 자이언트 >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독립제작사도 아닌 거물급 영화·TV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에서 직접 제작한 작품에다가 심지어 1999년 미국 개봉 당시 그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는 평단의 찬사까지 받으며, LA 비평가협회가 주는 애니메이션 부문의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 성적은 초라했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영화제를 통해 극장에서 소개된 것이 고작이다. 혹자는 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워너브러더스의 홍보와 마케팅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위, 제작사의 ‘소극적인 배급탓’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고 지나쳤으면 더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던 불운의 명작이다. < 아이언 자이언트 >는, 현재 픽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감독들 중 한 사람으로 < 인크레더블스 >, < 라따뚜이 >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 대박을 터뜨렸던 바로 브래드 버드의 장편 데뷔작이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당시까지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디즈니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된 스타일과 소재, 탄탄한 스토리 구성에 코믹함까지 더해지면서 재미와 감동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테드 휴즈의 동화 ‘아이언 맨(The Iron Man)`을 각색한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는 1950년대 미국의 록크웰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로 돌입한 상황에서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와 공산주의 거센 물결이 미국인들에게는 위협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시기였다. 주인공인 아홉 살 소년 호거스는 이 작은 마을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거대한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소문은 조용하고 평화롭던 마을을 들썩이게 만든다. 호기심 많은 소년 호거스는 추락한 물체의 실체를 찾고자 탐험에 나서게 되고 마침내 거대 로봇과의 첫 만남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로봇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정부는 국가안보를 운운하며 거대 로봇을 오로지 위협의 대상으로만 몰고 가게 되고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되면 흡사 지브리의 ’ 천공의 성 라퓨타 ‘에서 등장하는 로봇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혹은, 흔한 로봇물의 공식을 떠올릴 법도 하겠다. 그러나 기존의 로봇끼리 싸우는 대결 구도와는 다르게 이 애니메이션은 거대 로봇과 꼬마 소년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의 교감과 우정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 브래드 버드식의 유머가 더해지면서 보는 내내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거대 로봇의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주는 극적 반전은 묘한 흥분과 함께 눈가에 살짝 눈물까지 어리게 하면서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어준다. 비록 미국시장에서의 흥행 실패로 국내에서는 개봉조차 하지 못한 비운을 겪은 작품이지만, ‘낭중지추’라 했던가? 결국 좋은 작품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마련인가 보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명작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에서도 이미 꽤나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말이다. < 아이언 자이언트 >는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동심의 세계에 대한 향수와 유쾌한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기분 좋은 동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