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의 애교점
- 감독
- 헬렌 리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샐리 리, 카메론 베일리, 필립 불, 헬렌 리, 유미코 무라카미, 팀 파우이스, 케리 사카모토, 미츠요 와다, 린 야마모토, 도미닉 패시니, 헬렌 리, 조이스 리, 크리스토퍼 필립스, 케리 사카모토, 린 야마모토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은 “스크린 케미스트리: 스타로 보는 한국영화사”라는 제목으로 1950~1990년대 한국영화계 스타 커플의 관계성을 분석하는 시네포럼을 개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수행하는 아카이브로서, 영화연구자는 물론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국영화사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영자원은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술적인 분석 중심의 발제나 토론이 아니라 발표자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네포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주요 스타 커플이 등장한 시기를 네 구간으로 구분하고, 각 구간별로 등장한 스타 커플과 당시 한국영화나 대중문화의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시기별로 논의될 만한 스타들을 미리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이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발표자가 스스로 고민한 후 관객에게 제안하도록 열어뒀다. 1950~1990년대 급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영화산업의 지형을 참고하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대중에게 남긴 여운을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추적할 수 있었던 포럼 현장을 요약한다. 1950~1960년대 스크린 속 스타 커플 영화평론가·영화사가 김종원 김종원 평론가는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커플로 등장한 스타들 간 케미스트리를 발견했다. 1950년대 스타 커플의 역사는 < 출격명령 >(홍성기, 1954)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고 실제 부부가 되어 < 춘향전 >(이규환, 1955)에서 향단과 방자를 연기한 전택이 와 노경희 부터 시작한다. 배우 노경희는 < 내가 넘은 삼팔선 >(손전, 1951)을 비롯해 < 피아골 >(이강천, 1955) 등에서 해방 이후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여성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 아리랑 3편 >(나운규, 1936)으로 데뷔한 전택이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사에서 함께 활약했다. 이후 김승호 와 황정순 이 강대진 감독의 < 박서방 >(1960), < 마부 >(1961), 김수용 감독의 < 굴비 >(1963)에서 돋보이며 또 다른 스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로 데뷔한 배우 최은희 는, 커플을 구성하는 인물들 간 관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당시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 케미스트리를 주도하는 여성 인물로 떠올랐다. 김진규 와 신영균 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신상옥 감독의 < 동심초 >(1959), < 상록수 >(1961), < 산 >(1967)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한편, 스타 커플의 일원으로 거론된 적은 드물었지만 멜로드라마 위주의 문예영화 영역 밖의 상업영화 작품들에도 다수 출연하며 입지를 다진 김지미 배우의 행보도 독특했고, 그의 활약은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불나비 >(조해원, 196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에 등장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 김종원 영화사가는 배우 엄앵란 , 윤정희 , 문희 를 꼽았고, 그들과 배우 신성일 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했다. 엄앵란은 < 청춘교실 >(김수용, 1963), < 맨발의 청춘 >(김기덕, 1964) 등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며 ‘청춘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두 배우의 호흡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의 존재를 부각함과 동시에, 이전까지 외화에 치중됐던 국내 관객의 관심이 한국영화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윤정희는 데뷔작 < 청춘극장 >(강대진, 1966)부터 < 안개 >(김수용, 1967),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6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주축을 구성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문희 역시 이만희 감독의 < 흑맥 >(1965)과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연기하면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일 중심의 트로이카 구도로 대표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 커플 구조는, < 결혼교실 >(정인엽, 1970) 속 신성일과 윤정희, 문희, 남정임 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윤정희 X 신성일: 1960~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밀고 당기기’ 영화평론가·영화연구자 금동현 금동현 평론가는 1960~1970년대 대표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신성일과 윤정희가 동반 출연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관계를 ‘밀고 당기기’라는 용어로 재해석했다. 극중 그들의 배역이 점하는 위치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함께 출연한 87편에 달하는 작품들에서 거듭 역전되고,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두드러진 <안개>와 < 야행 >(김수용, 1977)에서 이 점이 선명히 관찰된다. 배우 신성일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 아낌없이 주련다 >(유현목, 1962)로 데뷔한 이후 유수의 작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았고, 특유의 소년미로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현대사회에 완전히 정박하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도회적이고 지적인 여성 인물을 대표했던 배우 윤정희는 1972년 석사 논문 「영화사적 측면에서 본 한국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배우이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면모를 보이며 ‘멜랑콜리’한 정서를 중심으로 스타 이미지를 갱신했다. <안개>와 <야행> 중 신성일, 윤정희 / © ㈜태흥영화 일례로, <안개>에서만 해도, 윤정희는 주변 소품이나 인물들 사이에 갇혀있고 신성일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행>의 몇몇 장면에서 윤정희는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활성화하는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신성일과의 케미스트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구축된 윤정희의 스타 이미지를 참고하면, 금동현 평론가는 그가 ‘보여지는(보이는) 여성’에서 ‘보여주고 보는’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고전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두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당대 형성된 두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더불어, 두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명랑한 얼굴로 콤비를 이룬 작품 <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정인엽, 1970), < 모범운전사 갑순이 >(이형표, 1972) 역시 언급하면서, 둘의 케미스트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재조명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장미희 X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 커플 영화연구자 이윤종 이윤종 영화연구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장미희 와 안성기 를 다루면서, 당대 한국영화 주요작에 출연하며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 이들을 ‘황금 커플’로 지칭했다. 안성기는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 황혼열차 >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해 연기 활동을 지속하다가 < 애수의 언덕 >(김대희, 1969) 이후 10여 년간 휴식기를 보내고 < 병사와 아가씨들 >(김기, 1977)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 바람불어 좋은날 >(이장호, 1980),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등 1980년대 화제작의 주연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시기 장미희와의 동반 출연이 특히 빛났다. 장미희는 < 성춘향전 >(박태원, 1976)으로 데뷔하고 흥행작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당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에도 합류한다. 이후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에서는 안성기와 상대역으로 만나 열연함과 동시에 흥행까지 거두면서 두 배우 모두 영화계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적도의 꽃>와 <깊고 푸른 밤> 중 장미희, 안성기 / © ㈜동아수출공사 그런데 이들이 동반 출연한 1980년대 작품들에서 각자가 욕망의 주체(안성기)와 대상(장미희)으로 설정되면서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파국’의 결말을 통해 발휘된 점이 인상적이다. 안성기는 순수함부터 비열함에 이르기까지 중·하층민 남성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장미희는 세련된 외관을 지닌 채 심리적 결핍을 겪는 부유한 여성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적도의 꽃>에서는 중년 사업가에게 착취당하는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한 미스터 M(안성기)이 그를 구출하려 하지만 결국 화합에 실패한다. < 황진이 >(배창호, 1986)에서 황진이(장미희)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갓바치(안성기)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고,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 영주권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백호빈(안성기)이 계약 결혼을 통해 제인(장미희)을 이용하며, 두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이렇게 산업화와 군부 독재의 한가운데 드리운 감정 소외나 우울감의 그림자를, 불행의 케미스트리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김혜수 X 한석규: 1990년대 소비문화와 트렌드 신화, 도시의 얼굴 영화평론가·성결대학교 교수 정민아 이전까지 언급된 배우들의 활동이 과거 한국사회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전개됐다면, 정민아 평론가는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내 현재까지도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갱신하고 있는 배우로서 배우 김혜수 와 한석규 를 조명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사실 많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닥터봉 >(이광훈, 1995)에서 처음 협업한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 이층의 악당 >(손재곤, 2010)으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작품에서 발생시킨 케미스트리보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역량을 개발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상) 영화 <쉬리>,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중 한석규 / (하) 영화 <첫사랑>, <내가 죽던 날> 중 김혜수 © ㈜필름쿡플러스, tvN 1990년대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며 대중문화 산업의 규모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인물이 주목받았던 때로, 이때 등장한 스타들은 대체로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팬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김혜수와 한석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이 선망한 ‘세련됨’을 구현했고, 데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속에서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해왔다. 한석규는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도시 남성의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처럼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불운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이는 최근까지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소시민적’ 영웅의 리얼리티와도 맞닿아있다. 또한 감독에 의해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자발적인 비전에 따라 작품과 장르를 선택하고 신인 감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흥행보증수표 영화인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한편, 김혜수는 활동 초기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나 영화 < 첫사랑 >(이명세, 1993)을 통해 젊고 발랄한 청춘스타의 면모와 특유의 건강미로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즈음에는 < 굿바이 싱글 >(김태곤, 2016)과 <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19), < 밀수 >(류승완, 2023) 등을 통해 독립된 여성 자아가 돋보이는 씨네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 윤서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과 영자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은, ‘비디오 에세이’라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며 포럼 주제에 맞는 작업 결과물 한 편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이무언은 관객이나 연구자로 하여금, 각자가 작품에서 발견한 특별한 지점을 중심으로 연출과 편집을 주도하면서 영화와 한층 더 친밀해지는 기회로 비디오 에세이를 인식했다. 윤서연 연구원 역시 비디오 에세이가 주제가 되는 대상(물)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한 결과이자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논의 [1] 를 인용하며, ‘오디오 비주얼 크리틱’으로서 비디오 에세이의 영역이 지닌 비평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한 작업은 영자원이 올해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수행하던 도중 두 사람이 기획하게 됐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영화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몇 편의 공통 소재를 제목으로 하여, 작품별 본편 영상과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그리고 코멘터리 영상 등을 수록한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해외 공관이나 문화원 등에 비영리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스타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DVD에, 한국사회의 일면과 시대의 감성을 머금고 있는 남성 인물들이 인상적인 한국영화 6편을 수록했다. 그리고 감상자들이 한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받을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기획해 부가 자료로 함께 수록하고자, DVD에서 다루고 있는 남성 배우 6인 중 한 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기획했다. 내부 논의 끝에 최종 선정하게 된 에세이의 주인공은, 순정과 헌신, 소시민의 나약함, 일그러진 욕망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국민 배우이자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기억되는 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였다. 실제 연령대로 비춰볼 때, 안성기는 에세이를 제작한 이무언의 아버지 세대이면서 작품 촬영 당시에는 그(이무언)와 같은 또래였다. 또한 안성기가 극중 인물을 형상화하며 선보인 특유의 ‘얼굴’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의 각기 다른 국면을 관통함에 따라, 1980년대의 시절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고 이무언은 전했다. “이미지들의 느슨하고 싱거운 연결”을 통해 이러한 인상이 에세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윤서연 연구원은 안성기가 각기 다른 영화에서 선보인 대사들 중 인상 깊은 부분들을 모아 1980년대 시대정신과 같은 특정 의미를 강조하여, 작품과 쇼트들의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17년 시네마테크KOFA에서 그에 관한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제작된 영상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을 참고하고, 구술채록 사업 진행 중 그의 구술 내용이 녹음된 파일들을 다시 들어봤으며,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10편을 골라 실제로 삽입할 쇼트를 신중히 선택했다. 쇼트마다 배어있는 정서를 자막과 음악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에 속한 장면을 소품이나 장소 등을 매개로 연결하며 안성기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 중 하나는,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중 덕수궁의 벤치에서 각각 아내( 황신혜 )와 딸에게 자상함을 베풀지만 냉대를 받고 마는 두 장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해 동시에 재생한 대목이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행동이 중첩되는 순간들이 보이는데,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두 개의 영상을 2채널로 나란히 배치하며 가능해진 실험이라고 윤서연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이미지 클릭 후 재생) 관객과의 대화 (질문1)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스타’들에게는,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국내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부터는 이들만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영화의 각 시기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에 대해 발표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답변_이윤종 영화연구자)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산업은 몇몇 주류 영화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배우들 역시 각 스튜디오에 소속된 채로 활동했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에서 이러한 영업 활동이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여러 스튜디오가 해체됐고, 여기에 소속됐던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의 스타 시스템 자체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고, 할리우드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당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근접한 운영 양태를 보였는데, 1970년대부터는 이마저도 쇠퇴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감독과 배우, 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1990년대 이후에 비해, 영화를 비롯해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얻지는 못했던 시점인데, 와중에 안성기와 같은 ‘국민 배우’가 탄생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질문2) 20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 라디오스타 >(이준익, 2006)나 < 실미도 >(강우석, 2003) 등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안성기 배우를 기억하게 되는데, 과거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면서,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예상된다. 작업 도중 겪게 되신 고충 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답변_이무언 비디오 에세이스트)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장면을 확인할 때마다 영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캡처해두고, 작품 안에서의 타임코드와 함께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메모했다. 에세이에서 다룰 모든 작품에 대해 이 작업이 완료되면, 캡처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관련 장면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안성기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가지 인상들(‘아버지’, ‘남성’ 등)이 쇼트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지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안성기 개인의 삶이 연상되거나 관객 스스로가 처한 ‘현실’ [2] 과 작품 속의 ‘허구’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장면들도, 어렵지만 제시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안성기의 ‘얼굴’ 외에 다른 요소들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미지, 수면 위에 반사된 이미지, 극중 시계를 비춘 이미지 등이, 매 장면 돋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연결해줬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중 시계와 잔이 등장하는 쇼트 (질문3)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멜랑콜리적 지식인 주체성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는데, 금동현 평론가의 발표에서 <장군의 수염>과 <안개>가 다뤄져서 반가웠다.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담지하고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성 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쭙고 싶다. (답변_금동현 영화평론가) 오늘 분석한 작품들에서는 멜랑콜리를 자아내지 않고 ‘체현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멜랑콜리를 재현하는 몇 가지 요소가 발견될 뿐 멜랑콜리라는 감수성 자체가 이 시기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멜랑콜리의 흔적이 관찰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대목을 꼽자면, ‘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웃음은 모종의 이유로 ‘경직되어버린’ 무언가를 조롱할 때 자주 발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웃어야 하는 데 웃지 못하는 순간(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서의 몇 가지 장면이 예가 될 수 있다)이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4) 오늘 언급된 배우 중, 배우 김혜수가 유독 눈에 띈다. 1990년대 당시 그는 확고한 ‘무비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가 아니었고,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아직 다른 스타들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김혜수 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이 시기 스타로서 김혜수의 부상을 분석하실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여 어떤 접근법을 적용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질문5)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배우 김혜수와 한석규가 선보인 연기 스타일이, 그들이 1990년대에 수행하던 방식과는 달라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의 방향성이 재정립되는 데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욕망이 변화하는 현상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이념이나 정치성, 관객의 욕망 등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변모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답변_정민아 영화평론가) 두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변 드리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김혜수 배우가 영화계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다. 하지만 1990년대 화보와 예능, TV를 포함해 대중매체 전반에서 그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한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 시기 관련 콘텐츠를 향유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김혜수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는 오늘날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영화’와 그밖의 영역(방송 등)이 명확히 구분됐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배우’의 활동 분야가 대폭 확장됐고 분야 간 경계도 거의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분야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모두 ‘배우’로 호명되며, 그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분야 역시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크린을 통해서만 스타로 거듭나기보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파급된 각기 다른 매체에서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김혜수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복합적 차원의 배우상을 1990년대부터 선구자적으로 확립한 이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장 BEHIND CUT * *** [1] 박진희, “ 복혜숙과 석금성을 헷갈려하다 ”, KMDb 영화글, 2023. 7. 27. [2] < 개그맨 >(이명세, 1988) 중 이발사가 이종세(안성기)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 방면에 재능이 많으셨죠?”라고 물어 아역 배우 시절 안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 칠수와 만수 >(박광수, 1988) 중 “우리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 이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등이 있다.
올해 5월 31일에서 6월 7일까지 8일간 개최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회를 맞아 지나온 역사를 축하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가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997년 4월에 첫 회를 개최했었다. 영화제의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던 시절, 1996년 10월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국제영화제였다. 당시 내걸었던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See the world through women’s eyes)"는 지금까지도 영화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되고 있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여성의 삶을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표현한 영화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스크린에서 사소하게 여겨지거나 왜곡되고 심지어 아예 배제되어온 소수자들의 비전과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조건의 마련을 뜻한다. 따라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 전체(여성영화와 남성영화의 총합이라는 실질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정)’의 일부를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한정된 세계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가려져왔던 비전과 이야기를 드러내며 영화의 세계를 확장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페이스북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이를 보다 더 구체화하기 위해 최근 4년간 두 개의 문구를 더 내걸었다.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Women Make Great Films)”와 “여성이여 스크린을 점령하라(Occupy Screen!)”가 그것이다. 뒤의 문구는 현재 영화관련 교육기관의 학생과 관객은 여성이 50%를 상회함에도 영화현장과 재현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근 10년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중 여성감독의 영화는 10%를 넘지 못하며 주인공이 여성인 영화는 20%대에 머무르고 있고, 이러한 수치가 나아질 기미 역시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큰 격차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차별적 시스템의 문제다. 따라서 지속된 영화계의 불균형과 불공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관객운동도 필요하지만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 한편 “여성은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조금 더 담론적인 개입이다.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하면 많은 이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여성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재미없거나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작·상영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일차적 문제는 이처럼 유의미하게 평가를 할 만한 영화들이 아직 충분히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남성이 주연이거나 남성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도 혹평을 받거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영화가 무수히 많지만 그 이유로 남성이라는 성별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지금도 실제 통계 수치는 우리의 막연한 추측과 다르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에 열린 "영화산업 성평등을 위한 정책과 전략들" 국제 컨퍼런스에서 주유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은 최근 극장 개봉작의 편당 동원 관객수를 감독 성별에 따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여성 감독의 관객 동원수가 남성 감독보다 약 13,600명이 더 높았다. 여성 감독은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고 만들 수 있지만, 충분히 실현되지 않고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셋째, 어떤 영화가 ‘좋다’ 혹은 ‘퀄리티’가 높다는 평가의 요소와 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의 평가가 더 많이 가시화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은 영화적 스킬, 미학적 새로움, 이야기의 설득력과 응집력, 대중적 공감과 재미, 보편적 가치의 구현 등, 상황과 조건에 따라 여러 판단 기준이 있을 것이다. 특히 ‘퀄리티’라는 것은 많은 경우 미학적 완성도와 두리뭉실하게 동일시되어 논의되곤 한다. 하지만 미학적 완성도라는 것 또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촬영, 편집, 구도 등의 스타일적 장치들을 능숙하고 매끄럽게 사용하면 충족될 수 있는 것인가. 위에 언급한 컨퍼런스의 패널로 참석한 BFI(British Film Institute) 제작기금 집행이사인 리찌 프랭키는 토론 세션에서 다양성은 영화의 ‘퀄리티’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BFI는 이미 제도적으로 제작지원을 위한 공적 기금을 배분하는 데 있어 다양성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2020년까지 감독의 성별을 50:50으로 맞추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 인지하다시피 이 정책과 실천은 성별 다양성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성이 미학적 새로움 및 완성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에 근거한다. 시점과 이야기 주체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세계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방식을 다르게 만든다. 다양성은 카메라의 앵글과 구도를 다채롭게 만들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가시화되었던 소수자의 눈과 이야기가 세계를 더 입체적이고 보편적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여준다. 소수자의 시각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정했던 ‘보편적’ 가치와 공감에 질문하게 만들며 오히려 그것이 사실 단편적이고 편협한 것이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아녜스 바르다와 JR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은 다양성이 영화에 어떻게 영화적 재미와 새로움을 불어넣는가를 보여준다. 55년의 나이차가 나는 바르다와 JR이 공동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와 영화가 담아내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환기하는 진정한 시네필 영화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이 영화의 재미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이자 대표적인 여성감독인 바르다와 젊고 성공한 사진작가이자 남성인 JR이 예술가적 주장과 삶의 태도를 서로 꺾지 않으며 차이를 인정하는 우정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르다가 같은 여성이 왜 영화감독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온다. 둘은 포토 트럭을 타고 마을을 돌며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해 낡은 벽에 붙여주는 퍼포먼스를 하던 중에 르아브르 항만을 찾게 된다. 주로 남성인 그곳의 노동자들은 파업 중이다. 바르다는 남성인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들을 만난다. 그리고 인터뷰 중 자신의 남편을 지지한다며 “늘 남편 뒤에 있었어요”라고 답하는 여성에게 “왜 옆이 아니라 뒤죠?”라고 바르다는 묻는다. 바르다 감독은 이 여성들을 누군가의 아내, 보조자가 아니라 그녀들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개인으로 대한다. 그 마을의 산업을 함께 일궈온 그녀들에게 바로 그 노동의 현장에서 그녀들의 얼굴을 돌려주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얼굴마다 사연이 있”고 바르다는 그녀들의 이미지로 그것을 들려준다. 바르다는 항만에 세워둔 대형 컨테이너에 그곳을 지켜온 토템처럼 항만 노동자의 아내이자 스스로도 노동자인 세 여성의 대형 사진을 붙여놓는다. 그리고 기중기를 이용해 그녀들을 자신의 대형 사진이 붙은 컨테이너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그녀들은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 세계가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이야기한다. 그녀들은 일상과 관습에서 벗어난 자신의 대형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의 눈”이자 지가 베르토프, 발터 벤야민 등이 언급했던 해방의 잠재성을 품고 있는 영화적 매체의 특징 아닌가. 여성으로서 바르다의 시선은 ‘노동자’라는 통념이 배제했던 아내들을 스크린에 불러들여 가치적으로나 시각적으로 보편성을 강화하고, 소재와 미장센에 새로움과 다채로움을 불어넣는다. 그로써 영화는 더 재미있어지고 설득력을 갖게 되며 더 다양한 이들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다양성은 곧 보편성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획득하는 요소이자, 영화의 ‘퀄리티’를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된다.
유신체제기 청년의 정신병리 유난히 그 시대의 공기를 예민하게 흡습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완성도나 흥행, 혹은 예술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개 그런 영화들은 모순되고 부조리하며 치기와 센티멘털리즘이 넘치는 가운데 혼종성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당대에 수용되던 것과 후대에 이해되는 것의 차이가 커서 새롭게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영화들의 특징이다. 걸작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런 영화들이야말로 영화사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대상일 수 있다. 이장호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 어제 내린 비 >는 197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그런 영화다. 김홍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겉으로는 우드스탁을 표방하는데 몸은 아직 청계천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그 당시의 절묘한 감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1) 영화 중 하나이며, ‘청계천’ 2) 으로 제유될 수 있는 그 시대의 억압과 그로 인한 청년의 병리를 노출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3) 이 영화는 “< 별들의 고향 >으로 한국영화 흥행사상 최고기록을 세운 인기 작가 최인호 와 이장호 감독 콤비가 내놓은 제2탄”으로 개봉 전부터 주목받는다. 그리고 “대목 노린 설빔 영화”로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약 15만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1975년 ‘방화’ 흥행 3위에 오른다. 4) 그런데 이 영화는 가부장제가 공고했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대본 검열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되어 “여주인공의 타락된 성도덕” 5) 이 지적되고, “근친상간의 인상을 주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 6) 하라는 개작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풍기(風紀)’ 쪽으로 집중되었고 당시 저널리즘에서도 이 영화는 “이복형제 사이에 끼어든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그리고” 7) 있는 멜로드라마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큰 문제없이 개봉되고 소비되었으나, 이 영화가 반영 내지 은닉하고 있는, ‘풍기’의 잣대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복잡한 이면이 제대로 독해될 기회를 잃기도 했다. 영후 주인공 영후( 김희라 )는 본처 자식보다 나이가 많은 사생아다. 그는 태생과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깊은 절망과 패배의식을 지니고 있다.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음에도 대회에 나가면 제대로 승부하지 못하며, 머리맡에는 항상 교수대 밧줄을 걸어두고 때때로 자신의 목에 걸어보기도 하는 것은 그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웃음을 띠며 명랑하게 행동한다. 그가 지니고 있는 장난감에서 나오는 과장스러우면서도 위악적인 웃음소리는 영후의 웃음, 나아가 이 영화에서 웃음이 지니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한 그를 생모( 도금봉 )는 ‘멍텅구리’, ‘돼지새끼’라 부르며, “비위가 거슬리면 오히려 웃는, 웃을 때가 제일 무서운 새끼”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영후가 장성하여 아버지( 최불암 )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동생이자 적자인 영욱( 이영호 )을 만나게 된다. 영욱은 영후와 달리 합법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내성적이고 유약한 외동이다. 그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약혼녀에게조차 미성숙한 남성으로 간주된다. 영욱의 성격은 무구한 얼굴로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는 것으로 상징된다. 영욱의 어머니는 영후에게 이러한 영욱을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영후는 영욱에게 웃는 것부터 배우라며 자신의 장난감을 선물하고, 무작정 달리게 하는가 하면 윤락가에 데려가 성매매를 종용한다. 여기에서 ‘강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없는 웃음을 지을 줄 알고 앞만 보고 뛰어가며 여자를 쉽게 취할 수 있는 남자로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강한 남자’가 된다는 것을 이렇게 이해하고 동생에게 훈육하려 하는 영후 또한 그러한 남자는 못 된다. 그는 육상대회에만 나가면 뒤를 돌아보느라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상습적 패자인 것이다. 민정과 영욱 영후가 영욱의 약혼녀 민정 (안인숙 )과 사랑에 빠지면서 형제는 갈등에 휘말린다. 여기에서 영후가 민정과 연인 관계가 되는 계기는 생모의 결혼이다. 아버지와 비합법적인 관계였던 생모는 영후보다 더 나이 많은 아들들이 있는 늙은 남성의 합법적인 아내로 새출발한다. 이로써 사생아로 태어난 영후가 돌아갈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안식처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는 “돼지새끼”, “멍텅구리 새끼”라 불리며 “우리 엄마 섹시하지?”라고 말할 수 있었던 영후와 생모 간의 원초적인 관계 또한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영후 생모의 결혼식 풍경이 가장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복을 갖춰 입고 예식에 충실하면서도 문득 문득 노출되는 두 사람의 표정과 눈빛은 협소하고 강고한 틀 안에 스스로를 길들일 수밖에 없는 야생동물을 환기시킨다. 평소에 가장 우울한 처지이면서도 겉으로는 제일 명랑한 척했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이 유발하는 서글픔은 배가된다. 이렇게 생모가 결혼하던 날 민정이 영후를 위로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이는 영후의 생모를 향했던 욕망이 민정에게 전이됨으로써 민정이 생모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영후는 이미 아버지의 질서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인물이다. 더구나 민정은 동생의 약혼녀다. 따라서 영후는 민정과의 사랑을 부정하고 민정을 버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이미 이 삼각관계의 비극적 결말은 예비되어 있다. 영욱은 영후에게 애인을 빼앗겼음을 알게 되자 민정과 함께 죽으려고 한다. 그러나 민정이 영후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고는 형을 찾아가 웃음소리 나는 장난감을 돌려주며 자신은 이제 명랑해졌으니 이 물건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상영 당시 스크린 밖에서는 긴급조치가 발효되고 있고, 국가는 젊은이의 절망이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며 명랑하고 건전한 영화만을 권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에게 애인을 빼앗긴 동생의 입을 통해 ‘명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는 < 바보들의 행진 > (하길종 , 1975)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어서 여자를 쫓아다니고 무의미한 스트리킹을 하며 시시덕거리는 청년들의 명랑과 상통한다. 결코 밝고 환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웃음마저 부정한다면 견뎌낼 도리가 없기에 쾌활을 가장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 영후는 원체 그것을 알고 있었고, 영욱은 믿었던 형과 애인의 배신을 통해 그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영욱은 민정이 형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 앞에서 민정을 포기하는데 반해 영후는 민정의 임신을 동생의 일로 미룬다. 여기에서 영후가 민정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명분은 ‘우애’이다. 영욱과 함께 있는 민정에게 “네 까짓 × 죽는 건 괜찮아. 영욱이 살려 올라오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은 영후의 선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여자에 대한 사랑 대신 동생과의 우애를 선택하여 아버지의 질서에 편승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생물학적 아비로서의 책임조차 회피한 채 모든 책임을 적자인 동생에게 전가하고 스스로 가부장이 되기를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뿌리 깊은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왜곡된 순응이자 부도덕한 아버지의 질서에 대한 수락이다. 여기에서 유신체제기에 살아남아야 했던 청년의 심리가 포착된다. 이 영화가 숨 쉬고 있었던 유신체제기는 유일한 가부장의 권력만이 고수되던 시대이기에 청년 세대에게 권력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현실 질서는 자율적 주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남성 주체의 성장 또한 막아섰다. 그래서 그들은 미완의 자아 상태에서 자살하거나, 현실 질서에 수용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현실질서와 타협하며 퇴행적 기성인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여성을 타자화한 이기적인 주체로 비난받아왔으나 정작 그들 또한 (주어가 될 수 없었던) 시대의 타자들이었던 셈이다. 8) 영욱과 영후의 선택 아닌 선택은 그것을 보여준다. 영욱은 형의 궤변과 왜곡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민정과 함께 자살함으로써 미성숙 상태로 남게 된다. 그들의 죽음을 조롱으로 애도하듯 영욱과 민정의 피투성이 시체 위로 영후가 준 장난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남겨진 영후는 홀로 터널을 달린다. 터널 밖으로 밝은 세상이 보이며 영후가 그쪽으로 뛰어가고 있는데, 경쾌한 음악까지 배경에 깔려 일견 희망찬 결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후는 계속 뒤를 돌아보고 코치( 박암 )의 목소리로 “돌아보지 마라!”는 외침이 반복되며 영화는 끝난다. 이러한 결말에 대해 나중에 이장호 감독은 “슬픔 다음에 금방 감정 변화를 해서 냉정하고 멋들어진 걸 연출”하려는 데서 비롯된 ‘쿨’한 엔딩이었다고 말한다. 9) 그러나 이 엔딩은 지금 봐선 냉정하고 세련되었다기보다 오히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도저히 ‘쿨’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뛰어간다는 것이 어쩌면 궁극적 좌절을 거부하는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하고,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명령 속에서 계속 뒤돌아보는 영후의 모습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안쓰러움을 유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제 내린 비>는 명랑해지기 힘든 시대에 명랑을 강요받는 젊은이의 분열과 왜곡을 보여주고 있다. 씩씩함을 가장하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뛸 수는 있으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는 없으며, 욕망하면서도 책임은 질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절망과 비애를 웃음으로 위장할 수밖에 없는 정신적 상황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을 죽음 또는 극복할 길 없는 외상으로 이끄는 영화 속의 ‘가장된 명랑’은 국가가 강조했던 ‘명랑’과 겹쳐지면서 부조리한 강요 속에 무책임을 무한 긍정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정신의 병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유신체제로의 드라이브가 시작되는 1968년, 검열 당국이 < 휴일 >( 이만희 )을 두고 주인공이 머리 깎고 군대에 가면 개봉을 허가하겠다고 한 데서 드러나듯이, 당시 정권의 영화 통제에서 내세우는 ‘건전’이나 ‘명랑’과 같은 기준은 그 적용 범위가 탄력적이고 자의적인 것이되 기본적인 원칙은 이분법에 의거해 재단(裁斷)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웃음 이면의 반어적 슬픔, ‘불륜 멜로’가 내장하고 있는 현실질서와의 부조화와 같이 양가적이고 부조리한 측면들은 검열에서 포착되기 어려웠다. 강고한 검열 아래에서도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새로운 영화들이 명랑과 웃음을 내세우는 가운데 반어적 방식을 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제 내린 비>는 <바보들의 행진>과 더불어 그러한 표현 방식을 취한 대표적인 영화로 긴급조치기의 아이러니한 걸작이다. 아울러 파격적 불륜을 내세우고 명랑의 외피를 두르지 않고서 동시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식을 달리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유신체제기의 정신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리얼리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10) 1) 김홍준은 <별들의 고향>에 대한 당시 소개 글을 인용하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김홍준 대담, 「별들의 고향_1974」,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도서출판 작가, 2013, 72면. 2)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어 광교에서부터 마장동에 이르는 총 길이 5.6㎞에 이르는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이는 개발독재기 도시 근대화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3) 당시 영화평론가 이영일은 “특히 <별들의 고향>,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 <바보들의 행진> 등 신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활력소 구실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이 영화들이 본고에서 말하고 있는 1970년대 중반의 대표작에 해당한다.-이영일, 「영화 연륜 따르지 못한 질적 향상」, 『동아일보』, 1975.8.18.,5면. 4)「참패 거듭 방화 흥행」, 『경향신문』, 1975.10.1.,6면. 5)「국산영화 <어제 내린 비> 대본 개작 통보 지적사항」, 문서번호: 영화 1733-8124, 문화공보부, 1974.7.3. 6)「국산극영화 <어제 내린 비> 대본 개작 통보 별첨」, 문서번호: 영화 1733-1434, 문화공보부, 1974.11.14. 7)「대목 노린 설빔 영화」, 『동아일보』, 1974.12.28.,5면. 8) 박유희, 「‘그녀’라는 거울 속 타자들: <겨울여자>의 남성인물 고(考)」,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한국사회와 남성』, 한국영상자료원, 2017, 123면. 9) 김홍준 대담, 앞의 책, 110면. 10) 박유희, 「박정희 정권기 영화 검열과 감성 재현의 역학」, 『역사비평』 99호, 역사문제연구소, 2012.5, 71-73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