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헤어
- 감독
- 박소연, 윤영실
- 제작년도
- 2021
우리가 정지영 감독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 남부군 >(1990) 이후에 고정되어 있다. 빨치산의 이야기 통해 당대의 금기를 넘었던 그는, < 하얀 전쟁 >(1992)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4)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되새겼고, < 부러진 화살 >(2012) < 남영동 1985 >(2012) < 블랙 머니 >(2019) 그리고 아직 미개봉 상태인 최근작 < 소년들 >까지 공권력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이른바 ‘사회파 리얼리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1980년대 호헌 철폐 운동부터 시작해 스크린쿼터와 영화법 개정과 스크린쿼터 수호 등 한국영화계 이슈의 중심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인물. 그가 바로 ‘감독 정지영’이다. 하지만 그의 1980년대 필모그래피는 사뭇 다르다. 첫 영화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3)는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쓴 소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1952)를 각색한 스릴러였다.(이 소설은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1955년에 < 디아볼릭 >으로 영화화했고 할리우드에선 1996년에 이자벨 아자니, 샤론 스톤 주연의 < 디아볼릭 >이 나왔다.) 모델 출신 배우였던 오수미와 윤영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캐스팅 만으로도 압도적인 작품으로, 한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반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이다. 이후 그에게 ‘여성’은 중요한 테마가 되는데,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1949)을 각색한 < 위기의 여자 >(1987)는 결혼한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었고, 한수산 원작의 < 거리의 악사 >(1987)는 여성의 운명을 중심으로 한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1988년, 정지영 감독은 악녀 캐릭터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변주한다. < 여자가 숨는 숲 >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의 성적 일탈과 이중 생활을 다룬 심리적 성향의 에로틱 스릴러라면, 이어지는 < 산배암 >은 김기영의 < 하녀 >(1960)를 연상시키는, 계급과 섹슈얼리티를 결합한 가정 파탄 스릴러다. 우리에겐 < 외계에서 온 우뢰매 6 >(1989)의 ‘데일리’ 캐릭터로 기억되는 김종아의 데뷔작이자 첫 주연작인 이 영화는 정지영 감독 필모그래피의 이색지대로, 지금 접하는 그의 리얼리즘 영화를 생각하면 꽤나 낯설다. 1988년 당시 충무로의 젊은 피였던 정지영, 장길수, 신승수, 이황림, 박철수, 곽지균 감독은 오디션을 열었고 총 5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그 중 한명이었던 김종아는 <산배암>의 주인공이 되었고, 함께 선발되었던 김홍제는 이 영화에서 박 기사 역을 맡았다. ‘원초적 관능’의 세계를 줄곧 추구해온 김지연 작가의 장편소설 『산배암』(1979)을 각색한 이 영화는 전형적 설정으로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뱀을 잡으며 살아가는 시골 소녀 탄실(김종아). 그는 가난 때문에 도시로 와 우 사장(남궁원) 집 하녀가 된다. 임무는 우 사장의 아내(김영애)를 모시는 것. 하반신 불구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그는 탄실을 마치 딸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들에겐 빅 픽처가 있었으니…. 탄실을 씨받이로 사용하는 것. 불임인 그는 탄실을 우 사장에게 접근시키고 드디어 ‘일’은 벌어진다. < 씨받이 >(임권택, 1987)의 현대 버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유교 사회에서 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희생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산배암>에서 탄실이는 ‘아이를 소유하고 싶다’는 부르주아 여성의 모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일단 우 사장 부부의 음모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탄실은 아이를 낳고, 우 사장 부부는 그 아이를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위장하며, 탄실은 집에서 쫓겨나 어느 아파트에 홀로 격리된다. <씨받이>에서 아이를 낳은 후 옥녀(강수연)가 처했던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탄실은 옥녀처럼 자살하지 않는다.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시골로 돌아갔던 탄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선언한다. “오늘부터 저는 이 집의 떳떳한 식구인 거라예.” 그러면서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며 젖을 물린다. 현대판 씨받이인 탄실. 같은 침실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관계. 여기서 끝났다면, <산배암>은 탄실의 소심한 복수극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3중 반전으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마무리했던 정지영 감독은 <산배암>의 결말에서도 이야기를 뒤틀며 탄실을 산배암처럼 독기를 지닌 악녀로 만든다. 우 사장의 아내는 박 기사(김홍제)에게 탄실을 강간하도록 지시하지만 탄실은 또 다시 돌아와 말한다. “내가 박 기사에게 쉽게 당할 줄 알았능교?” 이후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아기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다. 다시 여기서 끝났다면, 다소 황당한 결말의 드라마 정도겠지만, <산배암>은 갑자기 1년 후로 이동해 다소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사고로 불구가 된 우 사장과, 휠체어를 밀고 있는 탄실. 그는 “아기를 다시 낳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 사장은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 여기서 탄실은, 이젠 안주인이 되어 집안을 장악한 그는, 한때 자신을 범하려 했던 박 기사와 몸을 섞는다. 사극 식으로 말하면, 씨받이였던 여자가 씨내리를 통해 양반 집안의 혈통을 잇는 셈이다. 백일 잔치 장면은 부르주아 가족의 위선과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이다. 요약하면, <산배암>은 순수했던 한 여성이 도시라는 공간으로 오면서 욕망에 휘둘리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린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탄실은 순수한 상태가 더럽혀지며 타락한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잠재되었던 악녀적 본성을 발견한 걸까? 마치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과도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에 굵직한 자막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카인의 무리여, 네 형벌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1980년 부정의 하게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정권은 여러 가지 유화책을 시도한다. 그중 컬러TV 방송과 통금 해제는 1980년대 한국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통금 해제의 해방감을 틈타 심야 영화 상영은 폭발적인 흥행으로 이어졌다. 1982년 3월 < 애마부인 >( 정인엽 )을 보기 위해 20-30대 젊은 커플들이 줄을 이었고,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한국영화계는 탈출구를 에로영화에서 찾았다.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는 <애마부인> 신드롬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83년 한국영화 흥행 6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에다 아직 한국영화에서는 생소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이며,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을 미처 입증하지 못한 두 여배우의 출연은 분명 위험요소였을 것이다. 1970년대 유신시대의 혹독한 검열로 인해 난자당한 한국영화는 점차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이는 1980년대 초반까지 신인감독의 등장을 보기 힘들었던 이유였다. 당시 에로영화의 성행을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의 결과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 애마부인 >은 꽉 막힌 한국영화계 현실에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고, 에로영화는 경제 호황 및 부동산 열풍을 통해 중산층 의식을 확고하게 다지게 된 관객에게는 화려한 도시영화로 받아들여졌다.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는 이전의 여느 에로영화보다 더 에로틱한 데다,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의 장르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훗날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이 된 정지영 감독의, 조금은 예상을 비껴가는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너무도 매혹적이었지만 너무도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야했던 자매 배우 오수미 와 윤영실 의 영화로 기억한다. 이국적인 미모로 등장부터 화려했던 오수미가 스캔들로 영화계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 했다가 재기하게 된 작품이고, 최정상급 패션모델이었던 윤영실이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내건 주연작이었다. 상대 남자배우는 70년대 남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서 남성적 매력을 뽐내던 신일룡 이었다. 세 명의 개성파 배우들의 존재감이 스크린을 압도한다. 정지영 감독은 히치콕의 <싸이코>를 좋아하다가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히치콕 류의 미스터리 스릴러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했다. 패션 디자이너인 아내( 오수미 ) 덕에 무위도식하는 상류층 남자( 신일룡 )가 아내의 후배이자 자신의 내연녀인 패션모델( 윤영실 )과 짜고, 아내를 죽인 후 재산을 가로채려고 한다.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가 전화와 편지를 보내고, 남자는 때때로 아내의 환영을 보는 등 신경불안증세를 보인다. 죄의식으로 인해 남편은 점점 미쳐가고, 결말부는 수차례 반전을 거듭하며 범인에 대한 단죄를 지연시킨다. 남편, 아내, 모델, 재산관리인 김 부장의 배신과 연대가 여러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총 5번의 반전이 이루어지는 서사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식 스릴러 영화의 제작 단계에 이르렀다는 역사적 신호이다. 본격적인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돌입한 한국사회 상황에서 서로 뒤통수를 치는 연쇄구조는 자본과 성에 대한 집착으로 탐욕적인 도시로 변해가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다. 주인공들은 시크하고 차가운 표정, 그리고 실루엣을 강조하는 세련된 의상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자본을 추종하며 비인간화된 시대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소비자본주의의 핵심 주체로 등장한 여성들로 인해 권력의 자리에서 점차 물러나게 되어버린 남성의 위기감과 불안을 투사하는 한 측면이 있고, 또 한 측면에는 소비주체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 중산층 여성의 섹슈얼리티에의 욕망이 있다. 대저택과 별장, 자가용, 화려한 의상, 장식물, 가구, 칵테일파티, 드레스, 샹들리에, 패션잡지, 벽에 걸린 사진액자, 치렁치렁하게 드리워진 커튼, 화장품, 마네킹, 실내 가운 등 소비재들의 병치는 스크린 공간을 반짝이는 원색의 스펙터클로 만들어낸다. 클로즈업으로 비춰지는 사물의 상징적 활용, 계속해서 사건을 오인하게 만드는 교차편집, 끊임없이 유동하며 불안감을 상승시키는 카메라 등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장치가 효과를 발휘한다. 미장센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전시하는 것과 함께 소비와 탐욕의 시대를 잘 보여준다. 과잉된 소비주의의 미장센과 과잉된 성적 욕구의 병치는 ‘자본과 성’의 기호로서 1980년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영화는 팜므파탈로 구성된 중산층 여성을 가해자로 바라보지 않고, 대신 진정한 주체로서 호명하는 파괴적 힘을 가진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 여자는 비처럼 남자를 적신다 >( 이혁수 , 1983), < 여자의 대지에 비를 내려라 >( 노세한 , 1985) 등 ‘여자’가 들어간 긴 제목의 여성 복수 영화의 제작이 연이어 이어졌다.
나는 상상해본다. 만약 4.19 민주화 혁명이 5.16의 군홧발에 짓밟히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왔다면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지독한 암흑기가 아니라 전성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1970년대는 민주화의 경험을 했던 4.19 세대들의 의식과 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만나 한국영화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길종 은 이런 암울한 시기에 한국영화계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패기 넘치는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상시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패악적인 한국의 제도권 아래에서 영화를 통해 파문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 도전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동인의 한사람이었던 홍파 감독의 77년 작품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를 보면서 그들의 위풍당당함이 어떻게 큰 불꽃을 만들지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는지 나름대로 짐작해 보고 안타까워할 뿐이다. 한국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국적이라 할 만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와 주체적 이미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이 땅에서 영화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사명이었을 것이고, 영상시대 동인들도 그 부분을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고민했을 법한 한국적 이야기와 이미지를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와 함께 하길종 감독이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 한네의 승천 >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전통적으로 한국적 스토리라 이야기 되어온 한恨이라는 정서를 밑바탕에 두고, 불교의 윤회설을 끌고 들어온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이어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의 이야기는 승려가 된 남편 광덕을 둔 아내의 이야기 - 그녀가 아내인지는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스토리를 통해 유추한 것이다- 로 아내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탈을 쓰고 침입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현대에 와서 그들의 환생이라 할 대학생 커플 엄장우와 현진 커플과 중첩된다. 탈춤을 추는 장우는 갑자기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환영에 시달린다. 장우는 탈을 보면서 기이할 정도로 불안정함을 느끼는데, 결국 그 원인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죄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과거 비극의 진원지였던 안동 하회마을에서 다시 만나 장우와 현진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간사건을 겪는다. 과거 광덕이 아내의 강간과 죽음을 막지 못했듯, 현재에서 장우는 애인이 강간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도 < 한네의 승천 >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을 순환시켜 패배주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하고 불편해 할 때 쯤, 영화는 작은 반전을 준비한다. 나는 장우와 현진의 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몇 초 끼워 넣은 장면이 참 좋았다. 이 몇 초가 관객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하길종 감독이 <한네의 승천>에서 끊어지지 않고 윤회를 통해 반복되는 비극을 그리며 끝나지 않는 고통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홍파 감독은 강간범의 체포, 장우와 현진의 결혼으로 마무리 한다는 점에서 이런 결말이 더 현대적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결국 장우의 죄의식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여성들에 대한 죄의식이기도 하겠고, 좀 더 의미를 확장하자면 당시 유신 독재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던 민중에 대한 죄의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알레고리를 동원한 우회적 사회비판일 수밖에 없을 때 느껴지는 영화작가의 자괴감도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서 현생의 에피소드에서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목소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극중 인물인 장우든, 감독의 것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유신과 독재를 막지 못한 모든 남자들 혹은 지식인들의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더더기처럼 붙어있는 마지막 시퀀스, 뜬금없이 삽입되는 “회개하시오”라는 기독교적 외침을 이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불친절한 것은 어쩔수가 없다. 민속과 윤회를 통해 한국적 스토리와 영상미에 대한 고민은 분명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편집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끊임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편이다. 이러한 시도가 분명 상업적 헐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대한 대항마로서 끌고 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절제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해 지다보니 오히려 혼란만 부축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아쉽게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는 외화 쿼터를 따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로 전락해 창고에 처박혀 버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개봉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대중과 만나지 못한 한국적 영상 혹은 소수의 대중만이 본 한국적 영상미는 관객들의 취향을 변화시키지 목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도전과 오류를 보면서 영상시대가 혁명이 되지 못했던 원인을 관객에 대한 배려부족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 영상시대 동인들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시나브로 한국영화계에 단비가 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뒤집어엎지는 못했지만 그 영향력은 서서히 깃들었다.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한국적 스타일은 이듬해 임권택 감독이 <족보>에서 좀 더 섬세하게 구현한다. 영상시대 동인이든 아니든 의식 있는 동시대 영화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영상시대의 끝자락에 나온 홍파 감독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의 실패가 사랑스럽다. 김윤택 유정희 윤영실 장두이 감독 홍파 각본 이원영 촬영 권재홍 음악 황병기 미술 조경환 편집 장길상 1977년 100분 칼라 판매원 (주)일진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