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파티
- 감독
- 이문웅
자,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를 보면서 ‘쇼와 고질라’와 ‘헤이세이 고질라’의 전통을 언급하며 유년기의 추억이 귀환한 듯 기뻐하는 평들이 딱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고질라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일 수가 있지? 쇼와든 헤이세이든 내가 극장용 고질라를 처음으로 본 건 2000년대 이후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진정한 첫 번째 고질라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 고질라 >였던 것 같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다시 매만져진 일본인들의 전통을 목격한 뒤, 그걸 토대로 다시 일본인들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 머릿속에 입력시켰다는 이야기다. 문방구의 꽃,「괴수대백과」 만약 고질라가 내 안의 아주 미묘한 덕심을 살짝 건드리긴 했다면, 그건 오로지 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 덕분이다. 이걸 기억하는 세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80년대 문방구에서는 한국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에 대한 번역본 해설지를 팔았다. 그게 또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괴수대백과」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질라와 가메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와 메카 고질라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들을 진짜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열망은 십여 년 뒤에나 겨우 DVD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건담대백과」로 접한 <기동전사 Z건담>을 십수 년 뒤에나 카피본으로 겨우 (그것도 중간중간 더 이상 성인에게는 온전히 통하지 않는 과장된 감상주의를 감내해가며) 목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괴수물’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질라나 가메라 대신, 입에서 꺼내는 즉시 살짝 웃음이 터지는 제목을 굳이 꺼내야만 한다.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면 기억할 < 비천괴수 >라는 제목 말이다. < 비천괴수 >는 60년대 신상옥 , 나봉한 같은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과 홍콩 합작영화가 쏟아지던 시절 성룡, 홍금보가 출연한 <용호문>(1975), < 사대철인 >(1977) 등 무협 영화를 만들었던 김정용 감독의 영화다. 합작영화 시절이 막을 내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80년대 초반, 그는 < 소림사 주방장 >(1981)이나 < 무림 걸식도사 >(1982)같은 코믹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낯설다고? 80년대 토요일 낮에 당신은 TV로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하여간 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조형기가 임화수를 연기하는 < 충무로 돈키호테 >(1999)같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이 남자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격정적인 B급 영화가 바로 이 한국형 괴수물 <비천괴수>다. 뭔가 대단한 영화일 것 같다고? 확실히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김 박사(왜 그 시절에는 다 김 박사인가!)가 실종된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강 기자는 박사를 찾아 어느 작은 해안 도시로 간다. 알고보니 김 박사는 딸과 함께 숨어서 공룡의 존재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강 기자는 이러저러해서 김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자정신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괴수가 부활해 인간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공룡이라더니 왜 괴수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봐야......). < 비천괴수 > 스틸 홍보물 당대의 국민학생들에게, 아니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 항구도시의 유년들에게, < 비천괴수 >는 센세이셔널한 블록버스터였다. 소문이 퍼지자 거의 주변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괴수대백과」에 나올 법한 괴수들이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쓰나미를 일으키고(태풍이었던가? 어쨌든.....), 하여간 모든 걸 파괴했다. 그건 그야말로 당대 한국 영화의 어떤 괴수적 절정에 다름 없었다. “「괴수대백과」 괴수들이 다 나와!”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비천괴수>를 보라고 권했다. 그렇다.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건, 알라바마주의 할매가 옆 동네 천을 하나씩 훔쳐다가 기워낸 퀼트 같은 영화였으니까. < 비천괴수 >는 8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는지에 대한 근사한 역사적 사료다.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스펙터클은 < 울트라맨 > 시리즈의 괴수 장면들을 불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돌아온 울트라맨>의 시고라스, 벰스타 등이고, 초기 울트라맨의 페스타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한국형 괴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자와 감독은 아무리 원화를 팍팍 투자해도 엔화로 만든 특촬물의 퀄러티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어차피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특촬물의 괴수 장면들을 조금씩 떼어다가 영화 속에 삽입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 영화의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따오는 거야. 공룡을 발견한 학자 이야기를 넣으면 근사하잖아? 응? 공룡이 아니고 괴수물 아니냐고? 한국 사람들은 괴수 이런 단어 잘 모르니까 일단 공룡으로 시작해. 그리고 그냥 해변 마을에 가서 배우들 데리고 도망치고 이런 거 찍은 다음에 편집하면 되는 거야. 괴수랑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컨택트하는 장면이 하나 쯤 있어 하지 않냐고? 그러면 발만 하나 만들어! 발만!” 발만! 당연히 괴수가 나오는 장면들과 실제로 찍은 인간들의 장면들은 도대체 붙을 리가 없다. 아마도 김정용 감독은 거의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이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 뒤에는 옅게 미소 짓거나 좋아서 박수를 쳐대는 인간의 리액션 씬이 등장한다. 아, 혹시 이것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이한 인간들의 광증을 표현한 몽타주인가? < 비천괴수 > 최대의 명장면은 배우 김을동 이 마을에서 아기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둘러업고 온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프게 오열하는 장면이다. 공포에 질려서 산으로 도망쳤던 김 박사의 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도 기쁘게 웃어젖힌다. 나중에 <비천괴수>를 다시 봤더니, 이 영화의 진정한 괴수는 괴수가 아니라 김 박사의 딸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형 괴수영화 속 아이들은 이토록 인간미 없는 사이코패스인가에 대한 논문을 누가 하나 써볼 법도 하다. 전설적인 < 대괴수 용가리 >에서 용가리와 춤을 추는 소년의 캐릭터와 함께 묶어서 말이다. < 비천괴수 >는 < 대괴수 용가리 >(1967), < 우주괴인 왕마귀 >(1967)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한국 B급 괴수영화의 계보도에서도 결코 진골은 될 수 없는 영화다. 두려움 없는 저작권의 테러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괴수 용가리>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몬스터들은 ‘괴수’라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존재였다(그리고 심형래의 < 용가리 >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었다). 지금 삼사십대의 한국 몬스터 영화광들에게는 <비천괴수>가 주는 어떤 미묘한 향수를 도저히 거부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 고질라 >를 보고 싶었으나 정작 알라바마주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는 샘 커츠만의 거대 ‘칠면조 괴수물’ <자이언트 클로 The Giant Claw>(1957)가 생애 첫 괴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예순이 넘은 미국의 어떤 괴수광 노인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뭐, 그런 느낌적 느낌일 거란 소리다.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감독: 김정용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오스카(서울) 관람인원: 2,741명(서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 김기영 감독의 이상한 영화’라고 부르기엔 석연찮은 기분이 가시길 않는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중 이상하지 않은 영화가 있었나? 그는 초기작인 < 양산도 >부터 ‘악취미의 영화’, ‘국산영화의 품위를 타락시킨 불성실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 인생을 시작한 감독이다. 그가 최고의 흥행사이자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한 작품인 < 하녀 >는 당시의 어떤 영화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뛰어난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당시 한국영화로선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완성도와 뉘앙스를 구현해낸 걸작. 척박한 토양에서 이상하게 혼자 뛰어난 영화. 개인적으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 싸이코 >에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것이 없는 영화라 생각한다. 네알 안경 김기영 그런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이라고 해도,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는 개중에서도 특히 기괴하다. 감독의 괴상한 상상력이 만개한 작품인 것은 알겠으나, 관객이 영화가 진행되는 걸 따라가려 스스로 이야기를 꿰맞추고자 노력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멘-붕의 나락에 빠져버리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영화는 대학생 김영걸( 김정철 )의 이야기다. 그는 친구들과 MT를 간 장소에서 나비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인이 따라준 오렌지쥬스(스누피가 그려진 플라스틱 컵에 환타를 따라준다)를 받아마시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 음료는 자살하려는 여인이 혼자 가기 적적해 영걸을 끌고 가려고 독을 타서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약의 후유증인지 계속 비관적인 생각이 들고 죽고만 싶은”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명장면들이 생각날 것이다. 우선은 ‘의지’로 죽음을 추방한 책 외판원 할아버지가 있다. 영걸의 자취방에 매일 찾아와 「의지의 승리」(레니 리펜슈탈의 나찌 선전영화하고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가져다 쓴 것 같다.)라는 책을 거의 강매 수준으로 권유한다. 그는 “나는 이 책을 통달하고 죽음을 추방했다. 의지의 승리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집요하게 의지의 중요성 혹은 ‘의지의 승리’의 중요성을 말하던 영감은 자살하려는 영걸을 방해한 대가로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의 삶 속에서 죽음을 추방했기 때문에, ‘세포는 죽었’지만 죽지 않고 입은 살아남아 계속 이야기를 한다. (정말로 죽은 것처럼 누워서 입만 나불거린다.) 영걸은 그를 매장도 해보고 화장도 시키지만, 종국에 할아버지는 해골이 되어 영걸을 찾아와 그의 자살을 방해한다. 의지! 의지만 있으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의지다! 나는 영원히 산다! 의지다!!!!! 흡사 배우 김보성 이 ‘의리’를 말하는 정도의 횟수로 의지를 이야기하는 이 할아버지는 영걸의 자살을 막는 데 성공한다. 내가 왔다, 죽지 않고 내가 왔다 이후 영걸은 친구 만호( 김만 )가 알고 있다는 종유굴 속에 2천 년간 묻혀 있었던 시체의 유골을 파내어 집으로 가져온다. 어느 비오는 날 밤, 비를 맞은 유골은 살이 붙어 사람이 된다. 그녀( 이화시 )는 신라시대 사람으로,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드는 정혼자와 결혼을 시키려 하자 무당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동굴에 들어가 30일간 단식을 하면 잠들었다가 2천 년 후에 깨어나 좋은 남자를 만나 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행해 옮긴 스마트한 여성이었던 것. 모든 좋은 것에 그렇듯 하찮은 부작용이 있는데 열흘에 하나씩 인간의 싱싱한 간을 먹어야 하는 대단찮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대사, 미장센을 포함한 이 시퀀스 전체가 전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유례없이 독특하다. 2천년 된 여자의 간지나는 환생 여자 : 30일동안 단식했잖아요. 배가 고프다구요 영걸 : 여긴 라면밖에 없다. 빨리 먹을 수 있어. 인스탄트니까. 여자 : 서방님... 영걸 : 서방님이라니 난 김영걸이다 여자 : 김씨예요? 나도 김씨인데. 같은 성씨끼린 결혼 못 하잖아요 영걸 : 걱정 마. 금년에 동성동본끼리도 결혼할 수 있는 법이 생겼다 여자 : 정말요. 2천 년이나 걸렸으니 우리 백성은 너무 완고해요 (중략) 영걸 : 배가 고프면 내 간도 먹을 건가 여자 : 배고프면 가릴 것이 없잖아요 영걸 : 이것이 여자의 본 모습이다. 하여간 정직해서 좋다. 그리고 이어지는 섹스씬은,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뻥튀기 러브씬’이다. 용돈을 벌겠다고 뻥튀기 기계를 들여놓은 영걸은 신이 나서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런 후 여자와 대화 도중, 쌓여있는 뻥튀기 위에 누워 사랑을 나눈다. 옛날 한국 영화에서 성적인 행위가 시작되면 타는 장작, 도는 물레방아를 보여주듯 카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행각을 뒤로하고 뻥튀기 기계를 클로즈업 한다. “욱” “아니 왜 그래” “무당이 그러는 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 싼 건 못먹는 댔어요.” (기껏 끓여주니까..!) 뻥튀기 러브씬. 중앙 좌측으로 날아가는 것이 뻥튀기. 영걸은 이 유골을 가지고, 오래된 유골을 분석하여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인간의 변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자 이박사( 남궁원 )에게 가져가 그의 조수가 된다. 그의 집에 들어간 영걸은 이 집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경미( 김자옥 )를 만나고 영화 초반 그에게 음료수를 건넨 여자는 경미와 동반자살을 약속했던 친구이며, 경미 역시 죽음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영걸은 이박사의 집에 죽은 자의 머리를 매주 하나씩 소포로 보내져 오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크게 세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어 옴니버스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는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는 영화 내내 ‘삶’과 ‘죽음’의 싸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걸은 의지로 죽음을 추방한 책 외판원, 이미 죽었으나 다시 삶을 얻어 영걸 앞에 나타나지만, 차마 영걸의 간은 빼먹지 못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랑을 얻었으니 됐다’고 말하며 다시 유골로 돌아가는 신라 시대 여자. 마지막으로 ‘죽음은 사랑의 극치요, 생의 절정’이라고 말하며 동반자살을 집요하게 권유하는 경미를 만난다. 그는 “난 언제나 라면 신세를 면하나. 하루 여섯 번을 먹어도 배가 고프니 성가셔서 얼른 죽어야겠다”고 말할 만큼 생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끝없이 자살을 ‘유혹’하는 경미에겐 “여자랑 죽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내가 죽고 싶을 때 원하는 사람 앞에서 죽겠다”며 자세를 바꾸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를 관통하는 영걸의 행동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단정적인 문어체 대사를 읊으며 개폼을 잡고는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에 불과하다. 결국 영걸은 괴한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효수되어 이박사의 집에 소포로 보내지고. 그는 책 외판원 할아버지가 그랬듯, “의지가 있으면 죽지 않는다!”고 외친다. 이박사의 칼부림을 억척스럽게 이빨로 받아내는 그는 의지라고 보기엔 너무 살벌하고 광기로 보기엔 이상하게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고 만다. 난 죽지 않아! 그리고 영화는 만호와 영걸이 쓰러져 있는 장면을 비춘다. 경찰이 나타나고, 이들이 만취하여 목이 잘렸다는 둥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영걸이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영걸을 심문했던 형사다. ‘내가 어릴 때 신 나게 놀아보지 못해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다’며 호기롭게 대신 계산을 마치는 형사를 보며 만호와 영걸은 외친다. “사나이는 의지다!! 의지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은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도 모르게 하고, 검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남궁원 을 쫓아가는 김자옥 을 보고 있노라면 살인나비가 이박사였단 말인가? 하는 허탈한 충격에 휩싸이게도 된다. 대체 이 영화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검은 나비 남궁원 스틸은 좀 더 멋있음 영걸이 이런 모습인 이유는 아무래도 당시 김기영 감독의 상황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기영 감독은 생전에 이 영화를 회고하며 “생각하기도 싫은 쓰레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화려한 60년대를 보내고 맞은 1970년대는, < 충녀 > , < 화녀 >로 괜찮은 출발을 했으나 점점 더 심해지던 검열과 반공, 선전영화로 대충 편수를 채워 외화를 할당받으려는 영화 거간꾼들의 술수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때였다. 걸작 < 이어도 >를 찍은 이듬해 만든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마치 예술적 에너지를 다 쏟고 난 후에 그간의 서러움과 불만을 폭발하듯 쏟아낸 영화처럼 보인다. 내내 나타나는 삶과 죽음의 대비는 영화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유로 느껴진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찍으라는 대로 찍을 것인가, 찍고 싶은 대로 찍을 것인가. 김기영은 그 갈림길에서 결국 ‘의지’라는 답을 찾은 것 같다. 영화 속에 셀 수 없이 들리는 ‘의지’라는 말은 곧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다. 세월이 지나 그는 이 영화를 “쓰레기”라고 칭했지만, 78년 당시의 그에겐 반드시 필요한 배설이자, 스스로 만든 극약 처방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 위를 말 그대로 활보하는 만호와 영걸을 보면, 흡사 “이제 되었다. 나는 내 영화로 돌아간다.” 는 김기영 감독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P.S :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1시간 57분의 놀라운 경험을 추천하는 바이다. 남궁원 김자옥 김정철 김만 감독: 김기영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스카라극장 관람인원 14,27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