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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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이민지
- 참여 작품
-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2020), 우키시마호 (2019)
이민지
- 참여 작품
- 야시장 10 (1995), 그 여자의 숨소리 (1995), 금지된 정사 8 (1994), 유혹의 오후 2시(당신 부인은 어디 있습니까?) (1993)
이민지
- 참여 작품
- 찌질의 역사 (2025), 완벽한 정산 (2024), 아주 먼 곳 (2024), 공조2: 인터내셔날 (2022), 1승 (2021), 불어라 검풍아 (2021), 좀비크러쉬: 헤이리 (2020), 반신반의 (2018), 사라진 밤 (2018), 매직배딩 (2016), 게임회사 여직원들 (2016), 꿈의 제인 (2016),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2016), 슈우웅 (2014), 차이나타운 (2014), 비치 하트 애솔 (2014), 현기증 (2014), 뎀프시롤: 참회록 (2014), 발광하는 현대사 (2014), 고추가 사라졌다! (2013), 문감독 예고편: 40MIN (2013), 서울연애 (2013), 사이비 (2013), 세이프 (2013), 달이 기울면 (2013), 물고기는 말이 없다 (2012), 거짓말 (2011), 브로큰 피시스 (2011), 초대 (2011), 애드벌룬 (2011), 부서진 밤 (2010), 짐승의 끝 (2010), 이십일세기십구세 (2009)
수집자료
[코난][영상] 박해일 첫 독립영화:박해일, 이민지의 〈짐승의 끝〉- 배우 이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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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영상] 박해일 첫 독립영화:박해일, 이민지의 〈짐승의 끝〉- 감독 조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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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등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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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이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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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인터뷰①]'꿈의 제인' 이민지 "비슷한 역할이라 더 도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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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하-박영서-이민지, 영화 '코알라'서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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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열여덟, 바람의 색깔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초이스]뎀프시롤: 참회록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게, 누구에겐 항상 벅찬 감동이겠지만 내게는 딱히 이럴 것도 그럴 것도 없는 뭐 대충 시계 침 돌아가는 걸 보다가 해가 졌구나, 해가 떴구나, 어딜 가야 되는구나, 뭘 해야 되는구나, 하는 참으로 시시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나는 왜 제육 덮밥을 먹을 걸 콩나물국밥을 먹었나, 샤워할 걸 왜 세수만 하고 말았나, 담배를 조금 적게 피웠어야 했는데, 커피를 좀 비싼 걸 살 걸 싸구려를 1kg 나 사서 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맛없는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게 서럽고... 침대에 누워 이런 구질구질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 인생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정말이지 깜깜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병구( 조현철 )은 주목받는 권투선수였다. 그는 ‘판소리 복싱’(!)을 기반으로 세계를 제패할 인재였다. 그럴싸하다. 격투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먹 (혹은 발)을 주고받으며 타격을 한다는 것은, 나의 리듬을 사용해 상대의 리듬을 흐트러트리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누적된 충격으로 인해 펀치-드렁크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방금 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의사는 그에게 치매 판정을 내린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저도 예전엔 안 이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비호감에 답답한 사람이지만, 원래는 카리스마 있고, 신명 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친구 교환(구교환)의 흥겨운 장구 장단에 맞추어 적들을 갈아 마시던 시절이 떠오르자, 병구는 다시 글러브를 끼우길 원한다. 그러나 관장(박종환)이나 민지( 이민지 )는 그런 그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거의 떼를 쓰는 병구에게, 민지는 자신과 한 판 붙어 이기면 다시 권투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훈련에 돌입하는 병구. 하지만 그의 옆엔 휘모리, 자진모리, 굿거리장단을 맞춰줄 교환이 이제 없다. “사람들 다 미안할 짓하고 사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코치님” 다른 기억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교환에 대한 미안함만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병구에게 민지는 말한다. 병구가 아직 멀쩡했을 때, 권투를 그만두고 나이트 기도를 하던 어느 날 교환은 그를 찾아와 간절히 돌아오기를 요구한다. 길거리에서 장구를 펼쳐놓고 장단 뽑아내던 교환은 비장하게 말한다. “너는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를 제패할 거야.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병구는 그런 교환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꺼지라는 말과 함께 친구이자 파트너를 내치고 결국 병구는 망가지고 말았다. 인제 와서 왜 그런 생각이 다시 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참회하고 싶다. 링 위에서 말이다. < 뎀프시 롤: 참회록 >은 농담 같은 영화다. 일단 ‘판소리 복싱’이라는 것도 그렇고, 병구가 구사하는 동작들을 보면 이건 복싱이 아니라 오징어 춤을 추는 동작이 더 비슷할 지경이다.(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교환의 장구 솜씨는 영 형편없다. 그나마 민지의 잽과 스트레이트가 나름대로 각이 조금 잡혀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어쩐지 다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체육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넌지시 전한다. 미안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괴로움에 대해서, 그것 자체를 받아들이라고. 부정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기를.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으리니... 이미 우리는 죽어가고 있고 지난 것들에 사과할 방법은 없다. 참회, 그리고 다시 해 나가는 것만이 주어졌을 뿐. 영화의 마지막 부분, 병구는 민지에게 스트레이트를 제대로 맞고 다운된 상황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교환이 떠나기 직전에 해준 재미있는 이야기. “옛날에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대. 그런데 남자는 다른 여자랑 결혼했고, 여자도 다른 남자랑 결혼했대. 재밌지?” 다운된 상태에서 깨어난 병구는 긴 꿈을 꾼 거 같다고 한다. 꿈속에서 판소리 복싱 같은 걸 했던 거 같고, 관장님도 나오고, 친구도 나오고, 민지 씨도 나오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사랑하는 남자랑 여자가 있었는데... 어, 뭐더라... 아, 맞다.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대요. 농담 같던 영화가 뭔지 모를 진득한 정서로 갈아입는 순간이다. 하여튼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해는 지고, 때가 되면 침대에 눕겠지만, 아마도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싶다. 조금 덜 구질구질한 내일을 좀 그리고 싶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판소리 복싱으로 적들을 갈아 마시는 상상을 하던, 병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지 않았겠는가. 대단할 것 없이, 시시하게, 조금은 다른 기억을 쌓고 싶다. 내일부터는. P.S : 본 작품은 K’ART 미디어 콘텐츠센터에서 볼 수 있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최근에 막혀 버린 것 같다. (등록된 작품이 전부 막힌 거로 보인다.) 지금 볼 수 있는 경로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옴니버스 작품 <서울 연애>를 통해 관람 가능하다.
[칼럼]영화제 프로그래머, 그 빛과 그림자
요즘 화제의 드라마는 단연 <응답하라 1988>일 것이다. 추억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음악도 좋지만 <응답하라 1988>의 인기 비결엔 그동안 드라마에서 익히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류준열 , 류혜영 , 안재홍 , 김선영 , 이민지 등 독립영화를 열심히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배우들이 이 드라마에서 각자의 매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독립영화를 열심히 챙겨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배우들이 비로소 대중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류준열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 소셜포비아 >에 이어 올해 < 글로리데이 >라는 영화를 들고 다시 부산을 찾았다. 류혜영 은 < 잉투기 > < 나의 독재자 > < 그놈이다 >로 낯이 익은데 몇 년 전부터 독립영화에서 인정받던 배우다. 안재홍은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 족구왕 >의 주연배우로 찾아와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민지는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의 단편 < 세이프 >로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이밖에 선우의 어머니로 출연 중인 김선영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은 < 소통과 거짓말 >에 나왔던 배우다. <소통과 거짓말>의 초반 10분 동안 이어지는 롱테이크 장면에서 김선영이 보여주는 연기는 압도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문소리 씨는 “주연이 아니라 김선영에게 상을 주지 못했지만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을 꼭 언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응답하라 1988>의 사례는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보람을 갖게 한다. 다들 재능 있는 배우들이라 언제가 어떤 식으로든 두각을 나타냈겠지만 영화제가 그들의 재능을 보여주는 좋은 장소가 됐을 거라 믿는다. 관객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영화제 상영 덕에 조금씩 연기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기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가 되고 올해의 배우상을 새로 만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해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 거인 >의 최우식 이 올해 연말 다른 영화상 시상식에서도 신인배우상을 많이 수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 자식의 성공을 보는 듯 뿌듯하다. 물론 프로그래머의 가장 중요한 선정기준이 배우의 연기는 아니다. 배우의 재능을 알아보고 배우의 매력을 제대로 포착하는 감독의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 연출력이 우선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일 한국영화를 선정하는 경우는 해마다 6월 말 단편, 7월 말 장편 마감을 한다. 8월 중순까지 모든 선정을 완료하는 일정에 맞추자면 독립영화, 단편영화 신작을 모두 봐야 하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이 피 말리는 시간이다. 3개월간이 아닌 다른 기간에도 꾸준히 영화를 보고 선정 작업을 하지만 이 3개월은 주로 어디서도 선보인 적 없는 독립영화에 할애되는 시간이다. 한눈에 좋은 배우를 알아보는 것만큼 한눈에 좋은 감독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작품 선정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영화제가 시작되고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순간부터 비로소 알 수 있다. 영화감독이 시사회를 통해 처음 영화를 선보일 때 긴장하는 것만큼은 아니라도 프로그래머가 영화제를 긴장하며 기다리는 이유이다. 자기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감독, 배우들을 보면 기쁘다. 한 발 더 나아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발판으로 유수 해외영화제에 나가 상을 받거나 개봉을 해서 대중적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가끔 영화제에 선정되지 못한 이유를 묻는 감독을 만난다. 영화의 장단점을 설명하지만 납득을 못하는 표정일 때도 있다. 그럴 땐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다른 영화제에선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실제로 그런 일은 많다. 프로그래머는 시험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영화를 남보다 먼저 보는 관객일 따름이다. 나름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안목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려서 내가 선정하지 않은 영화들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중 단편영화 한 편을 꼭 언급하고 싶은데, 영상원 예술사 과정 김석영 감독의 <연애>라는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으나 선정하지 못한 이 영화를 최근에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 좋은 작품을 왜 선정하지 않은 건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에 볼 때 작위적이라 느꼈던 대목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고 재능 있는 감독을 못 알아봤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제 선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연애>라는 단편영화를 추천하는 일일 뿐이다. 다른 영화제에서라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먼저 이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 간절히 소망한다. 프로그래머란 내 안목이 틀려 누군가에게 실망을 줬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동거하는 직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