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의 명절
- 감독
- 이송희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송성정, 송경순, 최용진, 서광일
2016년 여름 나는 이송희일 감독의 중편 < 미행 >의 스크립터로 참여했었다. 굵직한 스케일의 상업영화도, 전문적 스크립터로서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하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영화 <미행>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정옥)가 경찰의 수색작업으로 출입이 통제된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고, 한 경찰(재원)이 정옥을 쫓는다. 영화 <미행>은 아이를 쫓는 정옥과 그녀를 쫓는 재원의 이야기다. 산에서 시작하여 산에서 끝나는 영화라 모든 촬영이 산에서만 이루어졌다. 가장 무더운 8월의 산에서 촬영을 했기에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은 더위에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정옥 역의 조민수 배우는 본인이 나오지 않는 분량의 촬영에서도 항상 레퍼런스 음악을 들으며 현장의 스태프들과 함께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이제는 죽은 아들의 행복했던 모습을 정옥이 회상하는 장면을 찍고 있을 때였다. 정옥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정옥은 화면상에 출현하지 않았다. 그 분량을 다 찍고 스태프들은 다음 컷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모니터를 체크 하고 있었다. 다음 컷은 회상이 끝난 뒤 정옥의 격앙되는 감정을 보여주는 컷이었다. 조민수 배우는 모니터 체크를 하던 나에게 다가와 방금 전 컷의 오케이 테이크를 다시 보여 달라고 하였다. 조민수 배우는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서 회상하는 것이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배우 조민수가 아닌 ‘아이를 잃은 정옥’처럼 느껴졌다. 정옥과 내가 같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참여하는 게 아닌 한 영화가 그대로 세상이 되는 순간 속에 있다고 느껴서였을까? 촬영이 끝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처럼 스크립터는 감독 다음으로 배우와 화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스크립터의 실제적인 업무는 무엇일까? 스크립터는 프리프로덕션에 있어서는 시나리오를 포함한 모든 ‘문서’와 관련된 일을 한다. 각종 회의록 정리, 콘티 정리, 연출적인 디테일에 관한 변동 사항 체크 등을 말한다. 또한 프로덕션에서는 촬영된 데이터를 파악하고 정리하며 스크립 페이퍼를 작성한다. 스크립 페이퍼에는 이전 컷과 바로 다음 컷이 어긋나는 부분이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연결을 파악하고 기록한다. 예를 들면 영화 < 미행 >에서 지리산에 들어온 관광객들에 섞여 재원이 정옥의 뒤를 쫓아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엑스트라가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였다. 촬영 여건상 엑스트라가 이틀 다 참여할 수 없어서 그 장면의 넓은 컷(엑스트라가 나오는 컷)은 촬영 첫날 찍고 타이트한 컷(재원 단독 컷처럼 엑스트라가 나오지 않는 컷)은 다음날 찍게 되었다. 첫날 찍은 넓은 샷에서 재원이 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움직임을 행했는데 타이트한 샷에서 그와 반대인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임을 행하면 두 컷 사이의 운동성이 맞지 않아 편집을 할 때 두 컷이 붙지 않게 돼서 나와 감독님은 첫날 찍은 영상을 핸드폰에 넣어 더블 체크를 했던 경험이 있다. 이처럼 스크립터는 화면에 출연하는 사물과 인물의 모든 연결을 체크 한다. 또한 현장에 따라 감독이 카메라로 촬영되고 있는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모니터와 연결에 필요한 모니터 라인을 스크립터가 들고 다녀야 곳도 있다.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에서는 정리된 스크립 페이퍼를 가지고 포스트프로덕션팀이 후반 작업을 할 때 함께 한다. 간단히 말해 현장과 촬영 후 포스트프로덕션팀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원론적인 질문 말고 누군가 내게 “스크립터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연출전공으로서 나는 “스크립터란 감독의 또 다른 눈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는 사람” 이라고 대답할 것 같고 스크립터로서의 나는 “화면의 연결을 잘 파악해 편집할 때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물론 저 대답이 스크립터의 많은 업무를 통칭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심플하면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며 그렇다면 상업영화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스크립터란 무엇인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문 스크립터를 하는 동생과 상업 영화감독인 선배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우선 전문 스크립터인 동생은 스크립터란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얘기하자면, 스크립터란 현장과 편집실을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대답했다. 스크립터를 하면서 좋은 점은 작품에 깊숙이 소속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지점이 부담이 된다고도 말했다. 상업 영화감독인 선배의 대답은 연결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쨌든 시나리오부터 콘티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계속 감독 옆에 있으니 영화 전체의 흐름에 있어 감정과 내용 면에서 어긋나거나 불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함께 보고 체크하여 감독이 최종 오케이를 내기 전에 참고할 수 있는 의견을 제공하는 역할인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이렇듯 나의 의견과 두 사람의 말처럼 스크립터는 영화 내 모든 컷의 연결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체크하고 고려하여 감독의 판단을 도움과 동시에 최종 결정권자인 감독 다음으로 작품에 가까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역할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부서보다 스크립터를 하고 싶다고 얘기할 것 같다. 역시나 그 이유는 현장의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투영되는, 그야말로 ‘영화적 순간’의 떨림과 감흥을 감독과 함께 가장 처음으로 만끽하는 역할이 스크립터이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보고 방금 전 테이크가 너무 좋아서, 영화적 모멘트를 갖고 있는 그 순간에 도취되어, “감독님, 이번 컷 너무 좋아요.” 라고 말하고 감독과 나는 둘 다 황홀해 하는, 그러한 순간들이 스크립터로서 영화에 참여하는 내내 나를 감싼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험들이 내가 앞으로 영화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의지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렇듯 스크립터의 역할은 영화에 참여하는 다른 스텝들의 역할 못지않게 멋지고 빛난다.
신파는 한국 영화의 척추다. 아무리 성형수술을 가해도 척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만큼 신파는 그가 출현한 시점부터 100년을 반복해왔다. 더 이상 신파는 싫고 좋고의 문제도 아니다. 마치 한국인의 밥상에서 된장찌개가 무한 반복되듯이, 신파는 한국영화판에서 무한 반복된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신파를 대하는 가장 모범적인(혹은 가장 ‘모던한’) 태도는 그러한 신파의 반복성을 비웃는 일이 되어버렸다. “또 신파야?”라고 비웃으면 그만이다. 그 모든 눈물과 운명의 신비에 나도 모르게 감응하는 본능적 반응에 대해서 여타의 지성적(다시 ‘모던적’) 해석과 변명을 꾸며댈 수고를 스스로 덜어내며, 그저 비웃으면 그만인 게다. 하지만 그처럼 잘도 반복되는데, 한낱 비웃고 말면 그만일 구닥다리 인습에 불과할까. 무한루핑되는 된장찌개가 한국 혼의 척추이듯, 신파는 또 그렇지 아니할까. 신파의 핵심은 모던인들이 비웃는 바로 그 반복에 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확인되는, 신파의 짐짓 ‘모던한’ 정의는 ‘개연성 없는 감정의 과잉 반복’이다. 다시 말해보면, 신파는 ‘개연성의 공백을 채우는 감정의 반복’이다. 이 정의를 하사해주신 모던인들에게 감사드린다. 하지만 모던인들께서 하나 잊은 게 있다면, 바로 그 개연성의 출처다. 신파에서 개연성이 없는 이유는 그것이 정말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에 없고 딴 데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 없고 저기 저 하늘에 있어서다. 왜냐하면 신파에서 모든 사건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운명, 즉 천명(天命)이기 때문이다. 신파의 진짜 주인공은 하늘이다. 신파극에서 망막에 진물이 날 때까지 반복되는 하늘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기실 신파를 볼 때 가장 신비로운 점은, 죄는 있는데 죄인은 없다는 사실이다(그리고 바로 이 역설을 가장 첨예하게 밀고 나갈수록 좋은 신파극이 된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엇갈렸을 이수일과 심순애 때부터 그랬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죄인이 아닌 것처럼, 김중배와 심순애의 어머니도 악인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악역일 뿐이다(그들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끝내는 뉘우치기까지 한다). 실상 신파에서 진짜 죄를 짓는 것은 하늘이다. 하늘은 운명적 사랑을 개시한 진짜 범인이다. 신파의 인물들이 죄지은 적도 없이 고통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다시 한번- 이걸 잘해야 안타까움은 배가되고 좋은 신파극이 된다). 그들은 하늘의 잘못 때문에 상처받고, 하늘의 죄를 뒤집어쓰는 자들이다. 이 모든 것이 현대신파극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 미워도 다시 한번 >( 정소영 , 1968)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딱히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시작한 남녀가 있다. 그리고 그 나름 생의 무게 때문에 “나예요? 저 여자예요?”라고 운명의 선택을 강요하는 본부인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갈라놓고 또 각자 가둬놓는 침묵과 투명성, 공기의 벽들이 있다. 그들은 하늘에 감금되어 있다. 실상 두세 명의 인물들이 엇갈리게, 혹은 서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정소영의 샷은 한국 신파(막장드라마 포함)가 앞으로도 부단히 참조하게 될 하늘감금샷의 원조다. 정소영은 하늘감금샷의 끝판왕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희망고문의 이미지다. 운명에 의해 시골어촌으로까지 유배당한 여인을 진정 가둔 것, 또한 그녀가 기다림과 노란 풍선으로 채워나가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늘이다. 한국신파는 하늘감옥으로 정의된다. 하늘이 잘못했네. 이것이 신파를 대하는 가장 올바른 반응이다. 그런데 분노를 거두기엔 아직 이르다. 더 얄미운 것은 잘못을 해놓고 또 그것을 애써 고쳐보려고 하는 놈도 하늘이란 사실이다. 신파의 하늘은 병 주고 약 주는, 우주의 에너지 자체다. 개연성 없는 사건의 해결과 진전? 개연성은 바로 그 하늘의 보이지 않는 약손에서 온다. 이 엄청난 약손을 거의 최초로 선보였던 장일호 감독의 < 사랑하는 사람아 >를 보라. 양색시였던 어머니의 혈통 때문에 연인이 파혼되자, 어머니가 돌연사하고 남자의 본처가 돌연사하고 아버지가 돌연사하고... 사건의 심화와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갑자기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이러한 인물들에게서, 저승사자가 되어버린 하늘이 아니라면 그 개연성은 당최 무엇일쏘냐. 하늘의 폭력적 개입, 자연(自然)의 돌연(突然)으로의 변신,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아> 연작으로 장일호 감독이 한국신파극에 남긴 엄청난 유산(막장 드라마로까지 이어지는)이다. 하늘은 제멋대로다. 제멋은 모든 운명의 조각을 맞추는 것 외에 다른 어떠한 맵시도 알지 못한다. 실상 한국 신파영화는 하늘의 위대한 변주들이다.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 이원세 )에서 지평선을 대들보로 해서 만든 하늘감옥이 그렇고, < 만추 >( 김수용 )에서 연인마저 낙엽으로 만드는 가을바람이 그렇다. 병도 주고 약도 주는, 또 감옥도 되고 집도 되는 공기(空氣)는 신파극의 진정한 주연이다. 신파에서 진정 반복되는 것은 바로 그다. “개연성 없는 과잉감정”이 아니라. 신파는 하늘이 그 자신만의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이다. 신파극 인물들은 수동적이지 않다. 바로 이 제헌과정에 참여하여 그를 몸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늘은 팔다리가 없다. 심순애와 이수일의 팔다리를 빌어야 한다. 신파극은 하늘의 자율성(말 그대로- 스스로 다스림)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신파극의 소중한(동시에 독특한) 계승은 이송희일 의 작품들일 게다. 이송희일 영화는 한국사회의 육체적이고 정신적 법규들을 가로지르는 가장 끈적이는 바람에 도전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아 > < 백야 > < 야간비행 >). 이송희일은 젠더의 자율성이다. 난 잘 모르겠다. 모던인들이 신파를 비웃는 이유를. 반대로 그들은 비웃는 통에 하늘과 땅을 혼동한다. 그들은 대지 위에서의 감정의 반복을 말하지만, 실상 신파에서 먼저 반복되는 것은 하늘이다. 한국신파에서 감정은 반복되기보다는 바로 그 반복을 “버티는 힘”이다. 하늘이 자율성의 원환을 완성할 때까지 병 줌과 약 줌을 버티고, 감옥과 집을 버티는 힘. 버팀도 밉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대 모던인의 밥상에도 된장찌개는 오늘도 버티고 있다.
2025년 5월 19일, 아침에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종로에 간다. 예술영화 제작지원 심사 면접이 있다. 오늘 면접을 잘 치러야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다. 종로 3가에 내려 아담한 건물로 들어선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다. ‘한국독립-예술영화진흥위원회’. 8년 전인 2017년에 ‘영화와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개정되면서 새롭게 신설된 영화 기구다. 기존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독립-예술영화 진흥 사업이 통합되어 있었지만, 8년 전부터 따로 분리되었다. 영진위가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인프라 구축에 집중한다면, ‘한국독립-예술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발전기금의 문화적 공공성을 보다 긴밀하게 집행하는 기구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경유하며 영진위가 독립-예술영화를 검열하고 축소 재편해왔던 10여 년의 폐허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근원적 수립. 이 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전국의 독립예술영화관이 3배 이상 더 확장되었다. 제작지원의 반경도 더 넓어졌고, 배급 여건도 점차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독립영화제들의 단체 지원 사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진흥기구의 성공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벤치마킹되고 있을 정도다. 사실상 면접 심사위원들의 면면만 봐도 이 진흥기구의 신실성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계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영화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응모한 내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한다. CG가 많이 가미된 SF 판타지 영화다. 한국의 예술영화도 이 장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땀나도록 피력했고, 심사위원들은 여러 요건들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렇게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 곧이어 나는 종로에 있는 ‘독립영화관 X’를 방문한다. 작년에 제작한 내 영화의 배급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서다. 3개관으로 운영되는 이 독립영화관은 개봉과 각종의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서울에 독립영화관은 단 한 곳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에 다섯 개의 독립영화관, 전국에 걸쳐 30여 개의 독립-예술영화전문 상영극장이 포진해 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영비법이 개정되면서 특정 상업영화가 독점하던 멀티플렉스 환경이 개선되었다. 상영의 1/5이 독립예술영화로 보장되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장편영화의 60%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 시장은 고작 1%밖에 되지 않았던 과거의 적폐가 타개된 것이다. 영비법 개정과 독립예술영화관 확충을 통해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들은 최소한 20%의 시장을 확보하게 됐다. 손바닥만 한 어망에 갇힌 채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바둥거리던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이제서야 어망을 벗어나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일 오후 영화 배급 일정을 상의한 뒤, 나는 곧바로 노동부에 간다. 이번에 찍은 영화의 크레디트와 ‘예술노동자 기본 소득’ 신청 서류를 접수해야 한다. 자신이 참여했던 영화의 크레디트와 간단한 자격 요건만 접수하면 6개월 동안의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예술노동자 기본 소득’ 제도가 3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감독뿐 아니라 해당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와 배우들도 모두 해당된다. 이 제도 덕에 그동안 퇴적층처럼 항상 월세와 생활고에 짓눌려 있던 내 가난한 삶은, 그나마 간신히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됐다. 쫓겨나듯이 생활고 때문에 꿈을 버려야 했던 다른 독립예술영화인들도 마찬가지다. 시혜와 온정이 아니라, 문화노동자들의 노동 가치와 그 공공성을 인증받아 뿌듯한 나날이다. 그렇게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부지런히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후 나는 집에 들어와 간단히 밥을 해 먹고 영화를 보러 인근 극장에 간다.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갈 수 있는 ‘공공극장’이다. 고전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극장. 2017년부터 ‘문화 재생 도시’라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는데, 문화 소외층을 위해 공공극장들이 서울에만 해도 30여개로 확장되었다. 낮에는 전시 및 공연이 이루어지고, 저녁부턴 고전영화들이 무료로 상영된다. 도시 전역에 미니 영상자료원, 미니 시네마테크가 밤마다 펼쳐져 시민들이 문화적 자산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동네 공공극장에서 오늘 상영되는 영화는 니콜라스 레이의 <쟈니 기타>다. 어제는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수도 없이 본 영화들이지만, 50년대의 총천연색 컬러영화를 동네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른하고 충만하다. 오늘 극장은 나이 자신 어르신들부터 재잘거리는 10대 후반 관객들까지 북적인다. 2025년 5월 19일 늦은 밤, <쟈니 기타>를 보고 페기 리의 주제곡을 흥얼거리며 극장을 나서면서 문뜩 2017년의 풍경이 떠올랐다. 만일 그때 이런 변화들이 시도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아직도 영화를 하고 있었을까? 한국에 독립-예술영화의 자리는 남아 있었을까? 또 시민들은 이렇게 다양한 영화적 궤적들을 향유할 수 있었을까? 그때, 독과점 영화 기업들과 영화계 보수 인사들, 보수층 반발에 직면해 모든 변화의 시도들이 좌초되었다면 2025년의 오늘은 과연 존재할까? 새삼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영비법에 가해진 몇 문장의 변화, 문화체육관광부의 간결한 의지가 나비효과처럼 만들어낸 오늘의 일상은 그저 소중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지금 내가 쓴 이 글이 SF라고 우기겠지만, 동네북처럼 정권 바뀔 때마다 두들겨 맞아 너덜너덜해진 2017년의 한국 독립예술영화 처지가 훨씬 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나는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니라, 현실을 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