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입술
- 감독
- 이요섭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오창경, 구본웅, 김대현, 김태윤, 최영성, 장성우
최근 개봉한 몇몇 한국영화에서는 전에 없던 주인공들이 발견된다. 이제껏 영화가 비극을 소재로 삼는 경우, 자주 인물은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로 분류되었는데, 범죄 사건을 다루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추적하고 처벌하여 정의질서를 확립하거나 혹은 가부장적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이 영화의 골격을 이뤘다. 그에 비하면 피해자는 구원자의 대활약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에 가까워서, 무력하고 무고해서 더 가엾은 인물로 묘사되며 관객들의 동정과 연민을 샀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재해나 전쟁과 같은 특수 상황이 배경이 될 때에는 고통에 시달리던 피해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용기 내자고 독려한다. 결국 시간이 약이다, 그만 울고 어서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서자, 라는 식의 서사는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서둘러 과거의 미담으로 얼버무렸고, 그 와중에 절망과 우울을 극복하지 못한 소수의 인물들은 도태되기 일쑤였다. 가해자가 되었건 피해자가 되었건 비현실적으로 강렬한 의지와 낙천성을 가진 주체적 인간들이 약하고 여린 인물들을 내치고 내내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던 셈이다. 그동안 사건의 1인칭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물들 혹은 상실과 애도를 견뎌내야 하는 물리적 시간은 자주 이야기의 외부로 밀려나거나 아예 삭제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영화는 서사의 바깥에서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그들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들의 시간을 담기 시작한 것 같다. <생일>, <살아남은 아이>, <봄은 가고> 그리고 박근영 감독의 < 한강에게 >(2018)는 이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한 몸이 된 죄책감을 품은 채, 상실감의 고통으로 얼룩진 현재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조심스럽게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슬픔에 공감하려는 시도는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 혹은 한국영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와 공명하려는 방식일 것이다. 진아에게는 10년을 사귄 연인 길우가 있고, 그는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있다. 이별의 순간은 유보되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비극은 이미 진행중이다. 진아의 얕은 꿈에는 길우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들이 끊임없이 출몰하고, 현실은 괜찮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을 반복하며, 내내 길우의 빈자리와 침묵을 마주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시인인 진아는 일상의 무게와 속도를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하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들여 단어를 골라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몫이 된 죄책감과 상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그녀에게 예전에 썼던 시들은 이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길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진아에게 한강은 그 물결의 반짝임이 ‘간질간질하여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지만, 길우의 사고를 경계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존재는 진아의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한강에서 연상되는 생생한 고통과 슬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아는 자기 연민을 토로하거나, 소리내 통곡하지 않는다. 차마 시를 쓸 수 없는 그녀의 무기력, 걸핏하면 잠에 빠져드는 일상이 실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담담한 애도의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한강에게>에는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장면들이 섞여 있다. 광화문 거리에서, 시 낭독회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숨쉬고 있는 배우의 얼굴이다. 시나리오의 대사를 외우는 대신, 본인의 이름을 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즉흥적인 대사에는 온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전고운 , 이요섭 감독 부부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진실로, 진심으로 믿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영화의 말미, 마침내 진아는 ‘한강에게’ 라는 제목의 시를 완성한다. 자신의 죄책감과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말을 건네는 셈이다. 한강 혹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시를 쓴다는 것은 기억과 감정이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포박하는 결연하고 적극적인 행위다. 흘러가는 것들은 이내 엷어 지겠지만, 상실의 슬픔과 고통 같은 묵직한 감정은 아마도 강물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을 것이다. <한강에게>는 수면에 뜬 작지만 선명한 부표처럼, 드러나지 않는 감정들이 흘러가지 않은 채 여전히 여기 있다고, 버티는 삶에 대한 응원을 보낸다.
올해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은 인상을 받은 작품 중 하나는 이요섭 감독의 < 범죄의 여왕 >이었다. 싱거운 유머와 심각한 범죄가 공존하는 이 작품은 씁쓸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스릴러 장르의 클리셰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각자 고유한 개성을 부여받은 캐릭터들이 뛰어난 앙상블을 펼치고 고시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연출도 보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박지영, 조복래, 허정도 배우의 연기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적확한 캐릭터 해석으로 이야기에 색을 더한다. 이런 많은 장점 중 특히 좋았던 건 박지영이 연기한 미경의 캐릭터였다. 드센 ‘시골 아줌마’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녀는 상투적인 ‘아들 바보’이자 ‘오지랖 넓은 아줌마’이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자신에게 덧씌워진 선입견들을 격파하듯 하나씩 깨나간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고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이지만 잘못을 인정해야 할 때는 바로 사과하고 물러설 줄 안다. 남의 사생활에 필요 이상으로 귀찮게 개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행동들이 타인의 상황에 대한 깊은 공감이 바탕에 깔려있음도 암시된다. 또한 비굴해 보일 정도로 아들의 뜻을 따르던 미경이 처음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는 어떤 쾌감까지 만들어낸다. 더구나 이 모든 사건을 겪은 후에도 미경은 어떤 엄청난 심경의 변화를 겪은 사람처럼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원래 삶으로 바로 돌아간다. 즉 영웅 흉내를 내지도 않고 ‘변호사 자식을 둔 엄마’로서 다른 삶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해 미장원에서 친구들과, 애인과 수다를 떨며 살아간다. 주인공이 어떤 큰 사건을 겪은 뒤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는 건 물론 매력적인 서사이지만 < 범죄의 여왕 >의 미경은 지금까지 열심히 만들어온 자신의 삶에 굳이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흘 동안 겪은 비일상적인 사건 하나로는 그녀의 단단한 일상에 균열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평범한 생활에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긍정적인 기운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드물고 귀한 존재로 느껴진다. 게다가 미경은 ‘엄마’라는 하나의 역할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복수의 정체성을 순간순간 만들어나간다. 미경은 개태( 조복래 )와 있을 때는 성적 매력이 넘치는 성숙한 여인이며, 고시원 사장이나 폭력 남편과 맞설 때는 프로페셔널한 싸움꾼이다. 그런가 하면 진숙( 이솜 )과 대화할 때는 나이를 잊은 좋은 친구처럼 보이고 덕구( 백수장 )를 바라볼 때는 마음 따뜻한 선배처럼, 자식을 찾는 다른 어머니를 도와줄 때는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또 한 명의 어머니로 보인다. 한 명의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재확인하는 경험은 의외로 감동적이다. 자신의 원래 성격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하고 능숙하게 제 역할을 바꿔나가는 미경은, 상투적인 표현을 쓰자면, 정말 존경할만한 어른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 범죄의 여왕 >은 미경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에 힘입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아가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 속에서 웃음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최소 여섯 명 이상의 캐릭터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숙제를 풀면서 이런 흥미로운 인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요섭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단순하고 명쾌한 인물을 제시하면서도 이처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야기 구성과 연출은 분명 주목해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요섭 감독의 다음 영화가 빨리 보고 싶다.
나에게 여 중고생들과 같이 버스에서 탄다는 것은 멜로보다 하드보일드에 더 가깝다.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쌍욕과 발랄함을 넘어서 괴성에 가까운 웃음소리. 교복은 마치 예비군이 입은 군복 같은 용감함을 심어주는지 그녀들의 거칠 게 없는 에너지에 나는 주눅이 들어버리곤 한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내 중고 시절을 돌이켜보자. 중학교 시절은 무림에 가까웠다면, 고등학교 시절은 감옥과도 같았다. < 더티혜리 >를 만든 이요섭 감독도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담배 한 갑만 사주세요.”라고 말하는 중고등학생이 무서워졌다. 그들은 어딘가 화나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 그들에게 하드보일드 장르라는 탈을 씌워주고, 맘껏 움직이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혜리는 말과 함께 주먹이 나가는 여고생이다. 혜리는 중국집 배달부 수봉이가 자신의 친구 뿅을 임신시키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봉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렵게 수봉을 찾아 시원하게 복수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녀의 주먹은 바른 방향으로 향하였을까? 영화 < 더티혜리 >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장르를 취하고 있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주제의식보다는 장르가 주는 재미를 더욱 탐닉한다. 혜리가 수봉을 찾기 위해 거치는 캐릭터와 배경 역시 현실성보다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과장되어있고 미화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고, 장르의 리듬을 즐기게 한다. 예를 들어 혜리에게 정보를 주는 오미자의 캐릭터는 도서관에 기거하며, 포스트잇으로 혜리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건네준다. 도서관의 미장센 역시 탐정영화에서 볼법한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수봉을 찾아 헤매는 공간도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차이나타운으로 설정해 놓으면서 이 영화의 관람 방향을 확실히 제시한다. 또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하드보일드 탐정물에서 느껴지는 위스키의 냄새보다는 달달한 캔디향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탐정물의 클리셰를 여고생이기에 가능한 공간과 행동, 소품들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과 끝은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며, 위스키 냄새로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채워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장르의 테두리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자칫 소품 같은 영화로 보일 수 있다. 이는 장르영화를 단편으로 압축시켰을 때 오는 위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장편으로 옮겨도 훌륭한 하드보일드 탐정영화가 탄생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 더티혜리 >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