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 감독
- 이채은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박경민, 이준영, 강준서, 이준서
이채은 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 중 비속어와 욕설을 가장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영화 속에서 이런 것들을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곧장 말해 아주 싫어하지만), 이채은이 그런 대사를 읊는 동안은 몇 초 동안이나마 방심하게 된다. 이채은의 욕설에는 묘한 정갈함이 있다. 이게 욕설이나 상황과 어울리는 건지, 아니면 작정하고 어긋나 있는 건지 나는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를 건성으로 지나치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채은 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 중 ‘싸가지 없는 여자’를 가장 잘 연기하는 배우이다.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이채은이 < 거짓말 >에서 연기했던 싸가지 최연희가 2009년 한국 영화 최고 캐릭터 중 하나이며 이채은의 연기 역시 그 해 최고였다고 말한다. 이채은의 싸가지 연기에는 티꺼운 대사 몇 개를 어색하게 틱틱 뱉다가 여자주인공에게 따귀 한 번 맞고 훌렁 넘어가는 연속극 까칠 재벌남들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입체성이 있다. 다차원적이고 다채롭고 변화무쌍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신경을 긁고 찌르고 베는 싸가지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일상생활에서 싸가지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거짓말>의 결혼식 장면을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거다. <거짓말>은 우리 싸가지들을 위한 처절한 고백이자 변호이다. 그리고 이채은은 우리들의 여신이다. 이채은 의 이미지를 싸가지로만 제한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기엔 이 배우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아마 이것은 단편 영화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하는 인디 배우의 이점이리라. <거짓말>의 대척점에는 < 송한나 >와 같은 귀여운 영화가 있다. <송한나>를 먼저 본 관객이라면 한나와 같이 샤방샤방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거짓말>의 연희를 이해하며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도 못할 거다. 내 추측엔 연희가 자연인 이채은에 더 가깝고, 한나는 고도로 정제된 내숭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송한나의 진실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송한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채은은 우리나라 최고의 안경미인이다. 어떻게 안경 하나로 미모가 그렇게 확 상승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중간에는 다양한 성격의 수많은 영화들과 캐릭터들이 있다. 그 정확한 중간 지점에는 < 비노, 달리다 >의 남희가 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과외제자의 페이스에 훌러덩 넘어가버리는 그 어리버리함의 표현은 절묘하다. 남희 역시 철저하게 자신의 세계 속에 사는 한나나, 세상의 모든 것과 싸우며 살아가는 연희와는 조금도 닿지 않는 인물이다. 그 주변에는 보다 정상적인 인물들도 있다. < 내 깡패 같은 애인 >에서 호들갑 떠는 박중훈을 대사 한 마디로 눌러버리는 간호사를 기억하시는지? 회상 장면에서 젊은 송씨로 나와 옛날 시골 아낙네의 처절한 생활 비극을 보여주었던 < 그대를 사랑합니다 >는 또 어떻고. 들 수 있는 예는 끝이 없다. 김예리와는 달리, 이채은 에게는 아직 장편 주연작이 없다. 그 때문에 나는 우리 사이트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김예리 씨가 무심코 정보를 흘렸던, 이채은, 김예리, 김꽃비 주연의 인디 영화판 < 여배우들 > 영화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길래, 이 원고를 쓰는 동안 트위터로 김꽃비 씨에게 물어보니 감독은 떠났고 계획은 잠시 중단된 상태란다. 아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길 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기획내용과 캐스팅만으로도 하악하악하게 되는 영화니 말이다. / 글: 듀나 (영화평론가)
한국 최초의 디지털독립장편 애견영화 < 뽀삐 >를 기억하시는가. 또는, 2009년 잔잔한 화제를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 앞산전 >을 들어보셨는가. 그것도 아니면 < 웃음 >< 연애에 관하여 >< 바다가 육지라면 > 등 관계의 유희적 속성에 대한 단편 3부작을 아시는가? 농담이다. 저 앞의 진술들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김지현 감독의 작품들에는 저런 거창한 수식 - 무슨 관계 3부작이니, 한국 최초니, 화제작이니 - 을 붙이는 게 머쓱하다. 플롯은 있지만 고지가 높지 않고 스토리는 있지만 훅에 온 힘을 걸지 않는다. 나름의 전언은 있지만 절실한 방백이라기보다는 긁적거리며 ‘너도 뭐 그런 거 있잖어’ 하는 독백에 가깝고 (실제로 이 감독님이 어느 무대에선가 수상 소감을 말하며 그 정도 톤과 매너로 중얼대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름 컷을 나누지만 굳이 그 구조 속으로 유혹하려는 것 같지도 않다. 먹을 땐 심심한데 나중에사 땡기는 평양냉면의 맛이랄까. 평수를 넓히고 분점을 내는 기업형 냉면집이 아닌, 그냥 어느 골목의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로 남는 데 개의치 않는, 무슨 ‘방망이 깎는 노인’ 마인드. 대단한 고백은 아니지만, 영화라는 매체장르를 지망하지도 그닥 애호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지금 각본도 쓰고 스탭들도 건사하게 된 계기에는, 영화사의 걸작이나 상당한 견적의 영화에 압도된 때문보다는, 화면은 거칠지만 분명 정서적인 순간을 제공하는 ‘한국독립 (필름도 아니고) 비디오’ 들의 영향이 큰데 그 중 특히 ‘레퍼런스급’의 소품을 꾸준히 선보인 분이 김지현 감독.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아티스트 백현진이 나와 심상스레 라면 레시피를 선보이고 (바다가 육지라면), 배우인지 일반인인지 가늠이 안 가는 여성 셋이 모여 앉아 조곤조곤 30분 넘게 대화만 나누고 (연애에 관하여), 강아지가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권력 위상에 관한 썰을 진지하게 풀어나가고 (뽀삐) 하는 씬들을 인디포럼 등의 독립영화제를 통해 구경하며 ‘이거 봐라, 의외로 재밌는데, 근데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 라며 희한하게 고조됐던 기억. 이 분이 2010년 오랜만에 극영화 신작을 가지고 나타났다. 제목도 < 경주여행 >. 지난번에 소개했던 < 거짓말 >이 서간문의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진 짧은 기행문. 공교롭게도 인디포럼 기간 동안 <경주여행>과 같은 섹션에서 상영됐던 단편 <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 >의 이우정 감독이 경주를 여행하는 여학생으로 나와서, 특유의 ‘볼부터 지레 웃는’ 비전문 연기를 선보이고 (근데 이 어색함이 캐릭터랑 맞는다) ‘돼지와 셰익스피어’라는 단편으로 알려진 김건 감독(‘약탈자들’ ‘동결’ 등의 독립영화에서도 존재감 있는 단역으로 출연했던)이 경주여행길에 마주친 의외의 훈남으로 출연해 꽤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단편영화의 히로인 이채은 양이 극 초반 단독 여행을 부추기는 주인공의 친구로, 대구 경북지역의 독립영화‘통’인 남태우 씨가 여정에서 마주치는 비호감남으로 한 단락씩을 책임진다. 보는 내내 신난다, 재미난다, 어른을 위한 소품.
영희( 이정아 )와 연희( 이채은 )는 이름도 비슷하고 동네도 같지만, 체구와 성격이 한참 다른 오랜 절친이다. 어느날 문득 영희네 집에 도착한 편지. 수취인을 늦게 찾아온, 때문에 잘못 배달된 편지 안에는 `나쁜 놈 안되려고 이 얘기 저 얘기 갖다붙인` 문장과 그래도 나름 진심이었을 약속이 첨부되어 있다. 키 크고 싱거운 영희는 - 구영탄의 여성 버전이랄까 - 친구에게 저도 모를 사연을 긁적거리며 말해보지만 작고 단호한 연희는 - <고스트월드> 이니드의 한국 버전이랄까 - 시큰둥하다. 제 편한 자리로 착지하곤 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에 혐오를 발산하는 연희와 그래도 편지를 뜯어본 호기심에 책임감을 느끼는 영희. 들쩍지근한 사연이 있는 결혼식에 함께 가던 중, 마음처럼 길을 잃고, 축의금 봉투 안에 뒤늦은 경고를 삽입하다 기분처럼 손을 벤다. 이럴 때 누군가 멱살 한 번 잡혀주면 좋으련만, 연희의 뾰족한 일갈들은 시원한 과녁을 찾지 못하고 영희의 안쓰러운 시선은 난처한 정황 대신 애먼 데를 쳐다본다. 그렇게 기스만 쌓이던 주말 오후, 어찌됐든 이드거니 함께 걸었던 연희와 영희. ‘연대’ 라는 거창한 호명을 동원할 필요는 없겠지만 안쓰러움과 번거로움이라는 두 덕목과 은근히 동행을 한 이 둘은 어쩐지 행복한 공동체. 영화의 말미, 편지의 본래 임자에게 영희가 보내는 나레이션은 다름 아닌 관객의 마음이다. “우연히 닿았겠지만 편지에 담긴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의 오늘 하루와 닮아 있었습니다. 당신이 결국 받지 못한 비어 있는 기억을 제가 대신 간직하겠습니다.” 마음을 담은 서간문은 결국 누군가 읽어줄 사람을 찾아 도착하기 마련. 우리 존재 파이팅, 우리 동무 파이팅. ps. 영화 바깥의 몇가지 정보. 연출자인 임오정 감독은 홍상수 감독 최근작들의 든든한 조연출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내러티브 바깥의 실험적인 영상작업을 주로 해왔다면 <거짓말>을 통해 인물과 서사를 다루는 솜씨도 확인시켜준 셈. 선머슴 같은 영희 캐릭터를 감칠나게 연기한 이정아 는 단편영화 < 남의 속도 모르고 >의 연출자이자 영화아카데미에서 촬영을 전공한 비전문 배우. 이 단편을 계기로 스탭 요청보다 출연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한다. 한편, 따박따박 말 짧게 하는 연희는 < 송한나 >< 모퉁이의 남자 >등의 단편으로 낯익은 배우 이채은 . 감히 한국 독립영화계의 크리스티나 리치라 부르고픈 이 ‘관록의 동안’은 이 단편에서 특히 몸에 맞는 캐릭터를 입은 듯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며 미장센 단편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히 연기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