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선생
- 감독
- 류관위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진우, 전소호, 주홍, 누남광, 맹해, 전준, 황병요, 엽영조, 원화, 장견정, 조영, 임교, 이세봉, 오요한, 서소명, 호풍, 원규
사진: “ 졸업 ”, tvN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이 글을 구상할 즈음 ‘비상계엄’이 도둑처럼 선포됐다. 용감하게 국회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투를 벌인 공직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사회의 시간은 ‘12.3 내란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지난 여름에 본 < 돌풍 >(김용완, 2024)이 떠올랐다. 한국 정치사를 압축한 것 같은 <돌풍>이 재현한 한국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음모와 폭로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당시 나는 이 드라마의 위험한 상상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상은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참으로 유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비상계엄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는 이미 비상시국이다. 먼 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기후위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음을 절감했고, 경기침체로 인해 온갖 사회 지수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다. 마치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 종말의 바보 >(김진민, 2024) 풍경처럼. 이런 유해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극적인 맛, 즉 도파민을 상승시킬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드라마 세계도 마찬가지다. 사적 복수극, 고자극 장르물, 이번 생은 망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욕망을 실현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며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원국, 한진선, 2024)가 주목을 받았고, <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2024), < 더 에이트 쇼 >(한재림, 2023),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2024) 등 사적 복수물이나 고자극 장르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생산되던 고자극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된 탓이다. <돌풍>, <종말의 바보>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뜻밖에도(!)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는 <눈물의 여왕>(장영우, 김희원, 2024)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 늦게 도착한 과거’와 같은 드라마이다. ‘퀸즈’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벌가(가부장제)를 선하고 무해한 집단으로 재현하며 무너진 퀸즈 일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빠지지 않았다. 위기를 통해 부부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혈연·혼인 중심 가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피로감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맛을 찾기 마련이다. 맵거나 달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자극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낀 우리는 순하고 달달한 드라마를 도피처 삼아 그 세계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필요를 잘 반영했기에 진부한 설정에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나 시원하고 무해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웰컴 투 삼달리>(차영훈, 김형준, 2023~2024) 등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 “ 눈물의 여왕 ”, “ 선재 업고 튀어 ”, tvN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곁에는 서로를 구원함으로써(쌍방구원) 위로를 전하며 치유적 기능을 한 드라마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먼치킨’ 주인공이 위험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구하거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여 ‘사이다맛‘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물이 인기를 모았으나 그 히어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어로’가 사라진 자리에 ‘힐러(healer)’가 찾아왔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조현탁, 2024)은 우울증, 불면증, 비만이라는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초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화재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디 드라마 속 인물들뿐일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사회 속 우리들 또한 같은 이유로 현대인의 질병에 걸린 게 아닐까? 드라마는 상처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던 인물들이 “히어로는 아니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구원하고자 애쓰는 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 Mr. 플랑크톤 >(홍종찬, 2024)은 뿌리를 모른 채 딛고 설 땅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과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구원했다. 세상은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선함’의 본능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고야 만다는 단단한 신뢰를 이런 드라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Mr. 플랑크톤> (사진: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JTBC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가 단지 도피처, 위로와 치유적 경험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망라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구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드라마가 담은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이 절절하게 보여주었듯 기성사회와 미디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혈연·혼인 중심 가족을 대표적 가족 모델로 반복재생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통 가족 모델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전통 가족의 모순성을 보여주거나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는 지향성을 가진 드라마들을 통해 구현됐다.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 2024)나 <가족X멜로>(김다예, 2024) 등에서는 가부장 중심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고, <우리, 집>(이동현, 위득규, 2024)이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송연화, 2024)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오해로 조각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 씁쓸하고 서늘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당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도 있었다. < 트렁크 >(김규태, 2024)는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부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이나 혈연을 넘어선 가족들도 등장했다. <조립식 가족>(김승호, 2024)과 <손해 보기 싫어서>(김정식, 2024)와 <Mr. 플랑크톤>은 ‘정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들이 혈연·혼인이라는 관습과 제도를 넘어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의 재구성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활고 때문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한다는 신박한 설정의 < LTNS >(전고운, 임대형, 2023)는 ‘불륜’이라는 키워드로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상기시켰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친밀’한데 ‘배신자’ 일수도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흔들리거나, 해체되거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상) <우리, 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 우리, 집 ”,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MBC) (하) <트렁크>, <LTNS>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 유튜브 CJ ENM 글로벌)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늘어난 여성서사가 올해도 다양한 얼굴로 우리와 만났다. 여성서사는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 다수가 ‘여성’인 경우를 의미하지만, 그 여성‘서사’에 무엇을 담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올해도 드라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응시했고, 용감하고, 슬기롭고, 끈질기게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형민, 최선민, 2024)는 뜻밖의 사건으로 낮에는 ‘아줌마’로 호명되는 50대 여성으로, 밤에는 ‘취준생’ 20대 여성인 본래 몸으로 살게 된 이미진/임순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졸업>(안판석, 2024)에서는 대치동 학원가 1타 강사, 서혜진( 정려원 )이 퍽퍽하고 고단한 30대 여성 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에 피는 꽃>(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2024)은 사별한 여성에게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의적으로 활동한 조여화( 이하늬 )의 액션 활극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생계를 위해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을 통해 여성들이 ‘정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또한 무능하고 유해한 가부장들과 능동적이고 협력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대비시켰다. 199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낡은 서사로 여겨질 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향은 오늘날의 여성들과 공명하기에 충분했다. <굿파트너>(김가람, 2024)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 장나라 )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손해 보기 싫어서>는 ‘위탁모’로 봉사한 어머니를 둔 손해영( 신민아 )과 ‘위탁아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딸들’의 자매애를 보여주었다. <피라미드 게임>(박소연, 2024)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밀 투표로 왕따를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이 연대하여 힘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 정년이 >(정지인, 2024)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한 ‘여성국극’을 재현하여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을 해보게 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여성서사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는 장르도, 시대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적 지향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사진: “ 밤에 피는 꽃 ”, MBC / “ 굿파트너 ”, SBS 드라마에서 여성서사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서사의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게임>, <웨딩 임파서블>(권영일, 2024),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과 같이 퀴어 캐릭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퀴어프렌들리’ 드라마들이 있었고, <정년이>, < 대도시의 사랑법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2024), <옥씨부인전>(진혁, 2024) 등 퀴어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제작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가 박상영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여 호응을 얻었는데 게이 남성 고영( 남윤수 )을 통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도 당연하고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 구덕( 임지연 )을 중심으로 여성, 노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정년이>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퀴어서사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년이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부용’이 드라마에는 삭제됐다는 면에서 그렇다. 부용은 페미니즘과 퀴어서사를 담당한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타협적이고도 퇴행적 각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거센 항의에 예고편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절감하게 했다. 이화여대 퇴임교수 김훈순의 진단처럼 드라마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문화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시대 흐름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담아내는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그렇기에 순응하거나 퇴행하는 면도 있지만, 관습의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운 순간도 있다. <정년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충돌하는 가치들을 ‘뚫고’ 나아가는 서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사진: “ 정년이 ”, tvN / “ 옥씨부인전 ”, JTBC 한 해 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드라마들의 흐름을 톺아봤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유해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무해한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위로를 받았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의 말처럼 드라마가 “하루하루 수고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가 구현한 작은 세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드라마가 비춘 현실은 자주 절망적이었지만, 관습을 깨고,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성서사와 꿋꿋하게 등장하는 퀴어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정숙한 세일즈>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처럼 어떤 시도는 “시대를 앞서간 느낌”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지만 곧 그 시차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질문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과 ‘가족’으로 상상된 사회공동체다(그렇기에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이 반갑다). 올해 본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한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졸업>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졸업>은 한국사회의 욕망이 집약된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과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혜진은 수업 시간에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유해한’ 세상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명과도 같다. 사진: “ 졸업 ”, tvN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이번 주부터 「김종원의 배우열전」이라는 제목으로 해방 후 등장한 영화배우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이는 사실상 ‘해방이후 한국영화배우사“에 해당하는 글로서 필자가 2014년 3월부터 2017년 4월까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발행하는 "웹진 민연(民硏)"에 26회에 걸쳐 연재한 「한국영화배우사 돌아보기」 (1919~1946)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획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활동사진연쇄극의 여형배우 시대에서 발성영화시대를 거쳐 광복영화 시기에 들어서는 시점까지가 그 대상이었다. <자유만세>의 여주인공 황여희와 조연 하연남이 빠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글의 방향이 ’영화배우의 열전‘에 있는 만큼 성장 배경 등 배우 주변의 이야기는 물론 대표적인 출연작과 연기의 특징, 당시의 평가 및 영화사적 의미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려 한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역사를 정리한 저서는 몇 권 나왔으나 배우 중심의 역사를 기록한 예는 없었던 만큼 영화사를 연구하는 학구적 눈높이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게 조명하고 평가하려 한다. 우선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서 정부가 수립되는 1940년대 말까지 영화계에 등장한 배우를 대상으로 그 역량과 기여도 등 비중에 따라 45매 내지 30매 또는 15매 분량으로 나눠 집필하게 될 것이다. 발표 기회를 준 영상자료원 관계자들에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필자 김종원 약력 소개] 1937년 제주시 출생. 1957년~59년 월간 《문학예술》(5월호)및 《사상계》(2월호) 시 추천으로 문단 등장. 1959년 11월 월간 종합지 《자유공론》에 처음으로 「한국 영화평론의 위기와 과제」 발표. 1959년 12월 격월간 《시나리오문예》를 통해 영화평론 활동 시작. 1960년 6월 이영일 등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 1981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제3대 회장. 1994년 청룡영화상 제1회 정영일 영화평론상 수상 2001년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제2대 회장. 1998년~2014년 청주대학교 공연영상학부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겸임교수 2011년~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 저서로 영화평론집 『영상시대의 우화』(1985 제삼기획), 『스크린 인생론』(1989, 교보문고), 『우리영화100년』(2002, 현암사) 『한국영화사와 비평의 접점』 1,2권 (2007, 현대미학사) 등.
많은 감독이 소설을 영화화 하지만 생각보다 이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서사를 따라가는 관객들에겐 '아는' 이야기를 참고 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하고, 원작의 아우라를 즐긴 독자들에겐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보다 더 매력적인 장면들이 필요하다. 물론 그 작품을 선택한 감독의 영화적 '야심'도 (영화의 성패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출몰한다. 여기에 원작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의 숙명처럼 보일 지경이다. 원작이 단단할수록 영화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자연 더욱 무거워진다. 그러니 1987년 발표된 소설가 이문열의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영화화한 박종원 감독의 결심도 남다른 것이었으리라. 게다가 자유당 정권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국민학교'로 옮겨오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독재 권력이 생성-유지되는 역학(dynamic)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야기 구조는 90년대 초, 검열이라는 문제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관뿐인 듯한 이 선택에서 박종원 감독이 보여준 몇몇 지점은 꽤 흥미롭다. 12살 '한병태'( 고정일 )는 서울에 살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시골 학교로 전학 온다.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병태지만, 반 아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급장'인 '엄석대'( 홍경인 )의 말에만 복종하며 병태를 적대시한다. 병태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석대가 반에서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선생님들조차 암묵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부조리한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해 병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석대에게 도전하지만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채 좌절을 반복하고 만다. 결국 '살기 위해' 병태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석대의 '부하'로 충성을 맹세하기로 한다. 하지만 석대의 세상은 아이들의 이상한 분위기를 의심하다 석대의 모든 비행을 알게 된 신규 부임 교사 ‘정원’( 최민식 )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는 정원을 병태의 '현재' 시점에 다시 한번 등장시킨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은 전 담임교사( 신구 )의 장례식에서 재회하게 되는데, 정원 역시 이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비굴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선 진실과 자유를 가르치며, 엄석대의 권력 앞에서 숨을 죽이는 아이들을 다그치던 패기는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영화는 엄석대의 권력 앞에서 저항하다 무릎을 꿇고 말았던 병태의 모습과 이런 정원의 모습을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병태의 '실패'가 결코 병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이 태도는 진실과 자유라는 이상을 호기롭게 논하던 그를 과거 속에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독자들에게 일말의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었던 소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현재 시점으로 엄석대를 불러내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원작에서 병태는 기차에서 형사에게 체포돼 끌려가는 석대와 우연히 마주친다.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결국 이도 저도 잘 되지 않고 실업자나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게 되자 병태는 석대가 군림했던 그 시절을 문득 떠올린다.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실업자가 되어 한발 물러서서 보니 세상이 한층 잘 보였다. 내가 갑자기 낯선, 이상한 곳으로 전학 온 듯한 느낌이 들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전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거기서 빛났던 내 자랑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들만의 질서로 다스려지는 어떤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진 느낌. 그리고 거기서 엄석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되살아났다. 이런 세상이라면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급장'으로 존재해주길 바랐던 석대가 형사에게 무력하게 잡혀가는 모습을 본 병태는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내와 아이들 곁에서 늦도록 술잔을 비웠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두어 방울 떨군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게 나를 위한 것인지 그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에서였는지 새로운 비관에서였는지는 지금에조차 뚜렷하지 않다.") 상당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던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병태가 석대(가 군림했던 시기)를 그리워한다는 사실보다 그가 '실업자'로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났을 때 석대를 떠올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병태는 결국 못난 것 하나 없는 자신이 제대로 사회(학교)에서 '반짝반짝' 성공한 사람(급장)이 되지 못했던 건 내 탓도, 사회의 탓도 아닌 '석대'의 탓이라고 원망하는 데 그치고 만다. 하지만 영화는 어떠한가? 석대가 온다는 무성한 소문 속에 병태는 마지막까지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고 엄석대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근조화환만 등장한다. 단정할 순 없지만, 이 화환은 석대가 어떤 형태든 병태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성공' 했음을 암시한다. 석대를 무너뜨렸던 새 담임 교사 정원은 '변질' 돼 버렸고, 사회는 석대를 버젓한 성공의 대열로 올려놓았다. 소설 속 병태의 허무감은 그 화살의 일부가 병태 자신을 향해 있는 반면, 영화 속 병태의 패배감은 오롯이 여전히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다. 이때 영화는 병태가 '석대의 세상'으로 편입하는 순간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살아남기 위해 병태는 석대에게 무릎을 꿇고 그가 세워 놓은 규칙을 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병태가 석대의 세상에 편입되는 것은 석대의 시험 부정 사실을 담임에게 이르려고 했다가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서고 만 순간부터일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담임 앞에 용기를 내 선 병태를 '줌아웃 트랙인'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촬영하게 되면 화면 속의 병태의 크기는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배경은 화면 뒤로 물러가는 듯한 묘한 효과를 얻게 되는데, 그 덕분에 석대의 잘못을 누구 보다 견디지 못했던 병태가 현실과 부딪쳐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서 유리(遊離)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은 병태가 거리에서 학생들이 벌이는 ‘독재반대시위’ 행렬에 휘말릴까 골목에 숨어 있다 도망치는 모습과 맥을 같이 한다. 현실에 눈을 감기로 한 병태는 끝내 그 열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소설과 영화가 나온 지 약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제 ‘석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걸까? 당신은, 아니 우리는 ‘병태’가 아니라고, 석대의 시험을 대신 봐주며 물을 떠다 바치던 친구들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마치 예언처럼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렇게 시작한다.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生)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