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소리쳐
- 감독
- 지웅배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최용석, 김지후, 김유남, 이정현, 안정환, 강학수
‘영화 프로듀서란 무슨 일을 하는가’ 라는 주제의 칼럼을 써주지 않겠느냐는 원고 청탁을 갑작스럽게, 사무실 옆 테라스에서 받았다. 영화 프로듀서의 역할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고,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글의 반응이 좋다며 편집자는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현역에 있지도 않은 데다 PD로서의 경험이 많지 않아 이런 글을 쓸 깜냥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거절하다 그럼에도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는, 개인적으로도 영화계 지망생 또는 시네필들에게 많은 문의가 왔었고, 내가 이 글에서 주로 언급하고자 하는 한 편의 영화, < 소셜포비아 >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특이한 시작과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소견이 나를 지배한 이유에서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 제작은 사실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①시나리오 ②사람들(감독, 배우, 스태프) ③예산 ④시간 이렇게 네 가지의 희소한 자원만 있으면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영화를 ‘찍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물론 모든 영화인들은 영화를 ‘영화’처럼 만들려고 하니까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 되는 결과에 봉착한다. 위 네 가지를 숫자 표기까지 하며 언급한 까닭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영화 제작에서 중요함의 우선순위를 강제로 나열하기 위해서지만, 사실 각각의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져 있어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프로듀서는 업무에 따른 역할과 책임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영화의 제작 케이스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 종류에는 프로듀서, 기획 프로듀서, 라인 프로듀서(Line Producer, 우리나라에선 제작실장이라고도 불린다), 이그지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우리나라에선 제작자 또는 대표님이라고 불린다) 등이 일반적이다. 업무가 구분되어 있지만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영화 프로듀서라고 부르는 사람은 제작자(일반적으로 제작사 대표)에게 제작 권한을 위임받은 1인 또는 다수의 프로듀서로서, 영화의 기획 시점부터 개봉까지 영화 제작과정을 총괄한다. 일반적 상업영화 기준으로 제작사와 시나리오, 감독, 배우 정도가 윤곽이 잡히게 되면 투자를 받거나, 거꾸로 투자를 받아 그를 통해 감독, 배우가 정해지는 등 유동적인 시스템 속에서, 투자 이후부터 개봉까지 시나리오 탈고와 캐스팅, 스태핑, 예산, 스케줄, 제작 진행, 후반 작업, 개봉까지 영화 제작 전반의 과정을 진행... ...역시 재미가 없다(사실 나도 잘 모른다).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한 원론적인 설명 등은 영화 관련 서적과 인터뷰, 인터넷에 정보가 무더기로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대신하여 내가 PD로 참여했던 < 소셜포비아 >의 제작 과정을 제작기 형식으로 전하도록 하겠다. 2013년 여름 어느 날, 이전부터 여러 작업을 함께 해왔던 이성중 촬영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에 선발되어 < 소셜포비아 >라는 장편을 준비 중인데 프로듀서가 필요하단다. 일반적으로는 프로듀서가 촬영감독을 섭외하는데 이 영화는 학교에서 제작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학생인 감독과 촬영감독이 프로듀서를 찾았던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프로듀서를 하기에는 나의 경험이 스스로 염려되었거니와 당시 막 < 타짜-신의 손 >의 제작팀에 들어갔기에 그의 부탁을 고사했다. 그러나 <소셜포비아> 라는 제목이 주는 기묘한 매력 때문인지 시나리오를 읽고 싶은 마음에 도통 잠이 오지 않는 밤의 연속이었다. 결국 시나리오를 받아 단숨에 읽어보고서는 무릎을 탁 쳤다. 거칠고 어수룩한 초고였지만 영화의 소재와 스타일, 인물들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 영화 만들고 싶다’라는 강렬한 욕구가 용솟음쳤고 바로 감독과 미팅을 잡았다. 종각역 어느 카페에서 홍석재 감독과 이성중 촬영감독과 나는 70페이지가량 되는 초고를 놓고 둘러앉았다. 홍석재 감독은 당시 단편영화 < 킵 콰이어트Keep Quiet >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므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이런 ‘덕력’ 가득한 시나리오를 쓰는 오타쿠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매우 컸다. 기대와는 다르게 꽃사슴같이 예쁜 외모는 나의 편협한 시각을 반성하게 만들었지만 당시 그의 행색은 영락없는 오타쿠 영화감독 꼴이라 나름 안심하기도 했다. 미팅을 주선한 이성중 촬영감독은 우리들 중 가장 연장자로 무척이나 아날로그 한 감성을 소유한 심성 탓인지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근래의 디지털 문화와 과도하게 그 문화에 쏠려버린 인물들의 심리 등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는데, 때문에서인지 홍석재 감독은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기이한 현상과 문화에 대해 나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나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첫 만남은 시나리오 얘기보다는 시덥지않은 인터넷, 게임, 만화책 얘기만 실컷 하다가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악수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영화 제작이 시작되었다. 나에겐 전도유망한 젊은 감독과, 20살 때부터 영화를 시작해 당시 영화 경력이 14년에 이르는 베테랑 촬영감독과, 지금 생각해도 너무 적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일금 육천만 원의 예산과, 다듬어지지 않아 아직 돌덩이 같은 시나리오와, 준비 기간과 촬영 기간을 포함한 5개월의 시간과, 동료 영화인들에게 도움을 호소하기 위한 아이폰이 있었다. 예산이 적은 것 빼곤 꽤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주승(왼쪽) 변요한 류준열 감사하게도 꽤 괜찮았던 캐스팅이었다는 평을 들었지만 최종 캐스팅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감독은 주연 중 ‘용민’ 역에 이주승 배우를 콕 집어 캐스팅 의사를 밝혔는데 나를 비롯한 제작진 모두가 동의했다. 가장 중요한 주연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신뢰할 수 있고 반짝이는 배우가 붙어주어 성공적인 시작이었다. 캐스팅이란 배우의 섭외뿐 아니라 제작진 안에서의 합의 과정까지 포함된다는 점을 상기하자. ‘지웅’역을 위해 꽤 많은 오디션과 배우 미팅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캐스팅 보드 맨 위에 있던 변요한 배우로 최종 낙점됐다. 당시 < 들개 >( 김정훈 , 2014)가 동경영화제에 초청되어 일본에 가 있던 변요한과 전화로 미팅을 잡고, 귀국하자마자 지체 없이 만났다. 주연배우들의 미팅 이후 계약까지, 캐스팅이 수월했던 건(눈물 나는 계약금의 설득은 수월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의 공이 컸다. 극 중 처음부터 끝까지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건을 진행하는 ‘현피 멤버’는 그 수가 무려 일곱이었는데, 배우 한 명을 볼 때 어느 역할 하나를 콕 집어 캐스팅하려고 하기보다는 여러 캐스트 중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캐스팅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류준열 배우를 ‘BJ양게’ 역으로 만나게 되었다(원래 류준열은 다른 역할로 오디션을 봤었다). 감독과 나는 BJ양게 역의 캐스팅을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시나리오 수정을 위해 감금시켜놓은 감독 대신(결국 시나리오는 탈고하지 못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연출부가 진행한 오디션의 영상을 돌려보던 나는 류준열 배우의 BJ방송 진행 연기 영상을 보고 바로 감독에게 추천했고, 오디션 영상을 본 감독은 박수를 쳤다. 써놓고 보니 너무 순조로운 것 같지만 말 못할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노량진에서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인물들의 영화를 만드느라 촬영 이전부터 노량진에 수십 번을 갔다. 실제 노량진에서 경찰시험을 준비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컵밥을 먹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져버린 노량진 육교를 수십 번 건너고, 500명의 학생이 한 강의실에 들어가서 수업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촬영부는 카메라와 함께 담요를 뒤집어쓰고 강의실 구석구석에 숨어 세 시간 동안 경찰학 강의를 들었다. 노량진이라서 좋았던 것은 3천 원으로 뷔페식 식사와 과일에 라면까지 마음대로 끓여 먹을 수 있는 ‘고시식당’이었는데, 많은 제작진들이 좋아해서 다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단가가 나올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세 군데가 넘는 경찰서에 협조를 구해 촬영을 하다 어느 한 곳에서는 쫓겨나기도 했고, 옥탑방에서 자살 신을 찍다가 경찰에 신고가 들어와 영화촬영을 설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예산이다. 매일 아침은 김밥이고, 현장에 간식은커녕 물 외에 다른 음료도 없었다. 배우, 스태프들 모두와 계약을 하긴 했지만, 계약서상 금액을 보면 허탈한 웃음이 났다. 발전차를 쓰지 못해 그 무거운 발전기를 모든 회차에 들고 다녔고, 가게에서 전기를 빌려다 길바닥에서 분장을 하고, 의상 실장은 배우, 스태프들의 옷을 빌리기 위해 그들의 빈곤한 옷장을 털었다(인물들의 설정이 고시생이어서 다행이었다).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지만 손난로를 추가로 살 돈이 없어서 ‘영하 10도 이하인 회차에만 손난로를 준다는 기준을 세워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다 울컥했다. 촬영 중 대기할 공간이 없어 24시간 맥도날드에서 밤을 새우다 쫓겨나고, 깎고 깎아서 세트에 들어갔지만 시간을 초과해 촬영 종료한 척 문을 잠그고 세트장 직원 몰래 조용히 찍다가 쫓겨날 뻔했다. 이듬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예산이 1억 가까이 늘었다는 말을 듣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억울했다. <소셜포비아> 촬영현장 영화는 절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한 쇼트의 탑에서 엔드까지, 시각적, 청각적인 표현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논의와 고성이 오가고, 서로 기대고 도와가며 영화를 만든다. 프로듀서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영화의 완성까지 이끌어 가는 스태프인 것인데 나의 경우에는 예산을 이유로 너무나 척박한 환경을 제공해 우리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역류성 식도염, 원형 탈모, 간헐적 혈변이 익숙해지는 때가 되니 영화의 촬영이 끝났다. 몇 번의 추가촬영까지 진행하고 후반 작업이 시작되었다. 서교동 한국영화아카데미 3과 1/2층에 가면 맥(Mac) 몇 대가 놓여있는 매우 좁은 편집실이 있는데, 각자 자리의 구획을 나누기 위한 파티션이 철창으로 되어있어서(거짓말이 아니다.) 몇몇 감독들이 마치 유치장과 같은 곳에서 감금당해 편집하는듯한 기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개월간의 감금(편집)과 후반 작업이 끝나고 영화는 완성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프리미어 상영을 했다. 모든 상영이 매진됐고, 박수가 나왔다. 두 개의 상을 수상했고 잡지와 매체에 < 소셜포비아 >가 소개되었으며, 우리는 계속 트위터를 새로고침 했다. 홍석재 감독은 단편 영화들을 만들 때부터 영화제에 초청되어 수상하면 상을 꼭 두 개를 탔는데, 이쯤 되면 영화계의 홍진호, 또는 영화계의 용개라고 불려야 할 것 같다. 몇 번의 국내외 영화제를 다녀오고 해가 넘어가서 개봉을 하게 되었다. <소셜포비아>를 만들 당시 나는 우리 배우들에게 “수퍼스타가 될거야” 란 말을 습관적으로 말했는데, 그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다. 배우들이 수퍼스타가 된 덕분에 <소셜포비아>는 독립영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많은 상영관을 가지고 개봉했다. 저예산 독립영화였고, 배우들은 무명이었고 감독을 포함한 많은 헤드 스태프들이 장편 데뷔하는 작품이었다. 척박하고 궁핍했고 추웠지만 우리는 치열했다. < 소셜포비아 >의 프로듀서로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은 너무 많았다. 프로듀서로 참여해 큰 즐거움이 한가지 있다면 처음 기대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논하고 비평하며 현실 사회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 감독과 촬영감독과 함께 논했던,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의도했던 대로 말이다. 또 한 가지, 함께 했던 동료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배우들은 스타가 되었고, 감독은 계약했고,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조명감독은 또 다른 장편을 만들었다. 막내는 < 옥자 > 제작팀에 들어가서 브래드 피트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나는 지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수집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담당자로서 마지막 한 마디. 우리의 영화유산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소중한 자료의 기증을 부탁드린다.
gore : 1. 뿔로 들이받다 2. (특히 폭행당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 선혈 (네이버 어학사전) 호러 영화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 축을 축축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이 신체변형, 피, 보통 인체 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들의 (본의 아닌) 외출을 다룬 것들이다. 이들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슬래셔, 스플래터, 좀비물, 오컬트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그 표현 수위가 정도를 넘어서는 일종의 현상이며. 이 현상들은 보통 ‘고어’라는 말의 테두리 안에 정리되곤 한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이 분야만 선호하는 마니아들이 생각보다 튼실한 층을 형성하는 편이고, 이런 장르를 패러디해 먹고사는 ‘트로마(TROMA)’같은 레이블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 사정은 다르다. 오래전부터 영화 필름 자르기를 냉면집 면 자르는 정도로 생각하고 아주 편안하게 편집 및 삭제를 해온 덕에, 국내에 개봉된 이쪽 장르의 영화는 거의 전무하고 비디오로 출시가 된다 해도 장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핵심 고명들은 다 심의위원 본인들만 맛본 채 거세되어 출시되곤 했다. 그들에게 감독의 의도나 팬들의 성원은 삼돌이 빤쓰 갈아입는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예술 수준’과 ‘국민 정서’를 수호하는 수호신들답게 한낱 영화 따위의 운명은 창조주의 의도와 너무 쉽게 달라지곤 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신체변형, 금기, 악취미 등을 다룬 지옥 같은 비주얼로 유명한 많은 영화들이 고향에서 머나먼 한국 땅에 와서 당치도 않은 코미디로 둔갑하는 꼴은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작고하신 루치오 풀치 영감님이 한국에 출시된 본인의 영화를 봤다면 ‘쟘-비’ 가 되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셨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어떤 장르보다 금기가 바로 핵심이 되는 호러 장르팬 들은 음지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고자’를 유행어로 밀고 있는 평론가, 방송인 THE ‘사마천’ 허지웅 씨가 운영했던 ‘호러타임즈’가 유명했고 PC통신의 여러 동호회들이 적은 회원 수 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나우누리의 ‘고블린’의 회원이었다.) 그러다 문득, 좁고 평화롭던 호러 커뮤니티가 (전보다는) 주목을 받게 되니, 세기말의 기운을 타고 흘러온 ‘엽기 열풍’ 탓이었다. 컬트니 키치니 평생 만날 일 없던 말들에 사람들은 큰 호기심을 가졌고, 그땐 호러 영화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상영회에도 새로 유입되는 관람객이 심심찮게 있었다. (최근에는 홍대 인근의 카페를 빌려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시네마 지옥’이라는 상영회가 아주 몹쓸 영화들을 틀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프닝 타이틀 그런 와중에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다. 사지절단류 호러의 기원전이자 고어라는 말이 부서진 마네킹으로 풀이되는 살육의 불모지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난도질 영화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게 < 씨어터 > 였다. < 싱글즈 >로 유명한 권칠인 감독이 기획하고 지금은 뭘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박재범 감독이 연출한 < 씨어터 >는 아주 단순명쾌한 영화다. 영화 < 스크림 >의 특별 상영이 있던 밤,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캐릭터를 가지고 극장에 모여든다. 깡패, 창녀, 고딩 커플, 벤처 기업 청년 CEO 등... 이렇게 쓰면 많은 것 같지만 그래 봐야 13명이다. 하여간 이 13명이 극장주의 살육게임에 캐릭터가 되어 하나하나 잔혹하게 살해된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죽게 될 면면의 인물들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는 설정이다. 이건 그냥 람베르토 바바의 < 데몬스 >에서 가져온 것이다. 감독은 이야기를 길게 풀 생각 없이, 논리나 현실에 단절된 상황을 설정하고 시원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잔혹함에 굶주려 있는 관객들을(혹은 자신을) 위해 마구 달려줘도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이 영화는 박재범 감독이 사비를 털어 만든 초저예산 영화기 때문이다. 하여, 살해 장면은 맛있는 것을 아껴먹듯이 야금야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빈 부분을 감독이 긴박감 있는 추격씬과 러브스토리 그리고 끝내주는 반전으로 채워주면 좋았겠지만 그는 개그대잔치를 선택했다. 돈이 안 들기 때문이었을 게다. 물론 공포와 웃음은 그 무엇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관객 중 가장 험악한 인상을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알고 보니 보람 재활원에서 탈출한 정신지체 장애인이라 영구 흉내를 내며 응애응애 해버리면 나도 슬프고 배우도 슬프고 장애인 인권도 슬픈... 그런 일이지만, 어쨌든 이 영화엔 쌍팔년대 유머가 넘실댄다. (만약 당신의 기억 속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막 떠온 회를 깡패와 업소 여성이 극장 로비에서 쭈그려 앉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다면, 100% < 씨어터 >를 본 것이다.) 극장 로비에서 회 먹기(좌측) /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것이 드러난 후 구구단을 필사적으로 외는 장면(우측) 그렇다고 살해 장면까지 어처구니없다는 얘긴 아니다. 영화에는 다양한 살해방법이 보인다. 깨진 형광등으로 입에 박아넣기, 동상 손가락에 눈 쑤셔 넣기, 죽은 척하는 소녀 발목 썰기(이에 이은 목 톱질!). 내장 꺼내 줄넘기하기 등등 아껴먹는다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노골적인 살해 시퀀스가 영화를 수놓고 있다. 그 강도는 2000년 이전, 이후에 나온 모든 공포 영화를 통틀어도 대적할 영화가 없을 정도다. 한국 공포 영화는 언제나 ‘한’의 정서였다. 귀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한이 맺힌 인간이 괴물화 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 씨어터 >는 한국 공포영화사의 밖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것처럼 그렇게 존재했다. 당시 ‘이상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증폭되면서 많은 (당시의) ‘이상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았다. <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나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같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혹은 개봉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씨어터>는 가장 막가는 시도였다. 그 증거로 이 영화는 개봉도 못 했다. 감독은 애초에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처럼 찍고, 한국 최초(일 것으로 생각된다)의 인터넷 개봉을 시도한다. 현재는 사라진 도메인인 www.theater2000.co.kr 이라는 웹 사이트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외의 공식적인 상영은 2000년 제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있었을 뿐이다. 이후 암암리에 호러 영화 동호회에서 상영이 되었고, 2001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잔혹한 장면들. 그러나 이 글에서 묘사된 많은 장면들은 비디오판에 아예 없거나 편집되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비디오판 < 씨어터 >를 다시 보았다. 예상했던 바지만, 영화가 집중했던 부분은 모두다 날아가 버린 채, 썰렁한 개그만이 남아있었다. 개그연구가가 아니라면 굳이 이 영화를 ‘비디오’로 다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무려 ‘20분’. ‘20분’이 잘려나갔다. 20분이면 하나의 생명이 잉태될 수 있는 시간이며 어쩌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간이고 그것이 어떤 ‘이야기’라면 아예 다른 것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씨어터>는 한국 영화사에 ‘한국 고어 영화의 시작’, 이른 이정표로서 우뚝 서 있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 스스로 더 잔혹한 것은 한국의 영화 제작환경, 그리고 영화를 개똥만도 못하게 보고 있던 당시 검열기관의 무지함과 잔혹성을 보여주는 ‘현실 고어’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박재범 감독이 <씨어터 2.0>을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관람했고 1편에 비해 영 못 미친다는 평만 볼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지 A.로메로는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으로 ‘좀비’를 탄생시키며 그 안에 매카시즘을 비유했고, 다리오 아르젠토는 < 서스피리아 >등을 통해 ‘공포’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증명해 냈으며 루치오 풀치는 다양한 잔혹 영화를 통해 사지절단류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쾌감의 영역을 튼실하게 구축해냈다. 우리는 과거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안 돼’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이, 변변한 공포영화 한 번 나와 본 적이 거의 없다.(아주 가끔 좋은 공포 영화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분류가 애매하긴 하지만 < 독 >이나 < 불신지옥 >, < 기담 > 등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한국에 이러한 ‘장르’가 있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숫자이다.) 호러영화의 팬으로서,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멋진 스플래터(혹은 슬래셔)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피가 튀고 뼈가 보이며 내장이 흩날리는 그런 멋진 광경을 말이다. 유행이 너무 지나서 이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나. ‘그래도 언젠간’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똘끼를 지닌 박재범의 후예가 나타나길 기대해 마지않는 것이다. 박동빈의 어제와 오늘 P.S : 이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한 사람, ‘마징가’를 연기한 배우는 ‘ 박동빈 ’이다.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에서 입에서 주스를 흘리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배우다. 세월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한 미아리에서 근무하는 업소여성으로 등장하는 ‘장경희’씨는 2003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개그우먼과 ‘미녀 삼총사’라는 걸그룹(일단 여자 셋이니)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성우에 힘쓰고 있다. 매점 주인으로 나오는 서범석씨는 뮤지컬계에서 한몫하시는 분 같고... 어찌돼도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것은 감독 박재범 뿐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언젠가는 꼭! < 씨어터 >의 무삭제판이 공개되길 바란다. 박동빈 장경희 노진원 감독 박재범 각본 박재범 개봉극장 www.theater2000.co.kr (온라인 개봉)
중학생인 병화( 이지웅 )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수학여행에 마음이 설렌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느냐”며 수학여행 참가를 만류하는 엄마에게 병화는 자신이 벌어서 갈 테니 걱정 말라 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건강보조식품을 배달한 지 한 달. 첫 월급을 받으면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는 병화의 계획은, 첫 달부터 월급을 줄 수 없다는 사장의 으름장 때문에 예기치 않게 틀어진다. 병화는 친구들과 연습한 ‘제주도 푸른밤’을 부르지도 못하고, 사전을 팔아 간신히 산 새 운동화도 신지 못하게 됐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수학여행을 떠난 날, 병화는 선생(조판수)에게 떠밀려 자신처럼 생활고 때문에 학교에 덩그러니 남은 다른 반 두 친구와 함께 서울 근교의 해수욕장을 찾는다. 누구나 유년의 기억을 갖고 있다. 동시에 유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누구에게만 특별한 유년의 한 때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성장이라는 소재가 지닌 매력이다. 하지만 유년기의 특별한 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저절로 보편적인 공감이 뒤따르진 않는다. 김희진 감독의 < 수학여행 >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성장영화의 드라마투르기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성장영화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해간다. 이를테면 소년의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러하다. <수학여행>은 사건의 연쇄를 만들거나 과도한 대사로 병화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묘사하지 않는다. 병화는 어렵고 힘든 나를 제발 좀 봐 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 수학여행 >은 사건이나 캐릭터를 내세우는 대신 그들이 마시는 공기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해수욕장으로 원치 않는 ‘수학여행’을 가게 된 병화 일행. 지하철이 한강을 지날 때 예민(장의영)은 병화에게 심드렁한 말투로 ‘이게 한강이야?’라고 툭 내뱉는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묻는 이 뭉툭하고 짧은 대사의 울림은 묵직하고 크다. 예민의 진짜 질문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한강이냐?’고 듣는 이는 없을 것이다. 관객은 예민의 질문과 병화의 침묵을,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창피함의 대면으로 읽을 수도 있고, 반면 수학여행을 어떻게든 가고 싶었던 소년, 소녀가 수줍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말걸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유년의 결핍을 더듬어 볼 어떤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도 빼놓을 수 없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병화는 운동화에 가득한 모래를 발견한다. 운동화를 뒤집자 한 줌의 모래가 스르륵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서 병화는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김희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갖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갖지 못하는 것 또한 많았던” 유년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는데, 운동화의 모래와 병화의 웃음은 공백으로서의 유년을 조금이나마 위무해주는 행복한 기억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얼마전 폐막한 서울독립영화제 2010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