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자
- 감독
- 전문호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곽진, 이영민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버려야 하는지는 언제나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장면마다 미묘하게 다른 표현과 뉘앙스가 영화 전체에 무슨 효과를 가져올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튀르키예의 여성감독 펠린 에스메르의 2017년 작품인 < 유용한 것 >에 이끌린 것은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유용한 것’이라는 제목은 과거에 시인이자 변호사로 일하는 주인공 라우라의 삶의 태도에 걸쳐 있는 실존적 질문을 가리키지만, 범위를 넓혀 생각해본다면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선별하고 삭제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화 작업에 대한 지시적인 자문(自問)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적 경험에 있어 무엇이 유용한 것이고 무용한지 규정하는 기준은 분명치 않다(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복수형의 기준과 판단이 있다는 식으로 회피하기란 쉽지만, 장면은 언제나 하나의 오케이컷만을 요구한다). 어떤 장면은 의미와 상징을 과시하지만, 어떤 장면은 선뜻 유용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쓸모없는 요소들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순간들로만 이루어진 장면에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쓸모와 의미는 불쑥 생성되어 영화적 경험에 남겨진다. 영화는 무의미와 의미가 끊임없이 긴장을 이루며 충돌하는 장소다. 영화 주변을 맴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 확신 없는 장소에서 모든 순간 결정을 거듭해야 하는 조건 앞에서 흥분을 느끼거나 불안에 몸서리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감독의 전작인 <연극>과 <망루>를 인상적으로 보았지만, 그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 없이 보게 된 작품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영화에 사로잡혔다. 일견 산만하게 느껴지는 첫 장면에서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한 변호사 라일라의 예기치 않은 여행을 다루는 이 영화는, 플랫폼 문 앞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커플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잠시 뒤에 문밖에서 서성이는 라일라의 모습이 보이고 카메라는 화면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라일라를 담아내기 위해 그녀의 걸음에 맞춰 좌우로 이동한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화면 바깥의 목소리는 라일라의 복합적인 성격을 말해준다(“그녀는 낭만적이고, 내향적이었으며, 조금은 사회성이 부족했다”). 짧지 않은 롱테이크로 구성된 첫 장면은 중심적인 영역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시각적/청각적 차원의 초점을 계속해서 움직인다. 이 영화에서 롱테이크의 지속은 하나의 움직임에서 다른 움직임을 불러들이고 여러 가지의 활동을 결합하는 형식이다. 그것은 영화의 화면을 지속적으로 변형하고, 한 인물의 내면을 다른 사람의 얼굴과 대면케 한다. 망설이듯 우왕좌왕하던 라일라가 문을 열고 나선다. 그녀가 문을 열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데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러므로 화면을 개방하는 다양한 시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일라는 고개를 돌려 결혼사진을 촬영 중인 커플을 바라본다. 이 순간에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커플뿐만이 아니라 우연히 그들 옆에서 촬영에 필요한 액자를 들어주던 카난이라는 어린 여성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는 어렵지만, 다음 장면에 카난의 아버지가 라일라에게 혼자 오디션을 보러 간 어린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하면서 두 사람은 여행의 경로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다른 목적지로 향하지만, 생각지 않게 같은 곳을 경유하고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별다른 말 없이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곳은 야간열차의 내부에서다. 여러 형태의 문으로 형성된 다양한 ‘틈’의 장소다. 라일라는 한밤의 창문을 거울처럼 관찰하면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카난과 맞닥뜨린다. 창문의 반영과 문틈의 개방은 그렇게 서로 다른 얼굴들을 만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특별한 순간은 야간열차의 식당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초반부의 장면에 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라일라와 카난의 옆자리로 우연히 두 여인이 합석하게 된다. 화면에는 라일라와 카난의 대화와 더불어, 합석한 두 여인의 몸짓이 붙잡힌다. 카난이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화는 테이블에 남겨진 세 사람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라일라는 합석한 이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연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차 칸 뒤편에서 심각한 얼굴로 통화하는 카난에게 시선을 던진다. 보고 듣고 만지고 먹는 일상의 감각들이 통일성 없이 쏟아지는 순간이다. 서로 다른 몸짓과 목소리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이전까지 진행되던 대화가 중단되고 타인의 반응이 화면 내부로 침범하는 것이다. 쓸모 있고 유용한 인물과 대화를 중심에 두고 그 밖의 나머지 것들을 배제하는 구성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을 산만하게 뒤섞고 얼굴과 말의 위계를 배척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픽션에 가져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스메르는 다큐멘터리로 경력을 시작한 작가이고 주목할 만한 작업인 <연극>은 농촌에 사는 아홉 명의 여자들이 자기 삶에서 가져온 소재로 연극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었다. 에스메르가 그리는 삶은 다성적이고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의 권리로 구성되어 있다. 열차가 전하는 매혹은 내부와 외부를 통과하며 무작위로 형성되는 만남에 있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고, 누군가는 우연히 도착하는 장소다. 그런 장소에서라면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무용하거나 비밀스러운 말을 주고받는 낯선 친밀함을 형성할 수 있다. 그것은 영화관에 가는 행위와도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라일라와 카난이 탑승한 야간열차는 이따금 이런저런 이유로 불이 꺼진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잠기고 창밖의 풍경과 눈앞에 있는 상대방의 얼굴만이 간신히 보인다. 그런 공간적 조건에서 카난은 처음 만난 라일라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이자 간호사인 그녀는 친구를 대신해 죽음을 원하는 남자의 조력 자살을 도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바로 이런 면모로 인해 <유용한 것>은 의도치 않게 코로나 이후 시기의 영화의 유용함을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면서, 고다르의 죽음 이후에 삶의 유용성을 고려하는 영화가 되기도 한다). 그녀의 아버지조차 알지 못했을 카난의 비밀을 듣게 된 라일라의 여행에는 예상치 못한 방향과 성질이 덧붙는다. 그들의 여행은 밤에 속해 있다. 밤의 어둠이 드리운 내밀한 무대는 한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진다. 인물 뒤편의 유리창 너머로는 아름다운 밤거리의 풍경이 지나가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간다면, 라일라는 자살을 택하는 남자(그는 라일라와 만나 그녀가 쓴 시집의 독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와 대화를 나누고, 오랜만에 재회한 동창들과 기나긴 말을 주고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밤의 야간열차에서 속삭여지는 말과 다른 성질의 대화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열차의 풍경들에서 이런 우연한 마주침과 내밀한 대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크리스티안의 펫졸트의 < 트랜짓 >의 마르세유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게오로그는 상처 입은 동승객이 고통 끝에 죽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미코 레베레자의 <노 데이터 플랜>에서 기차 내부의 이민자들은 얼굴을 숨기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나타나고 있다. 카말 알자파리의 <암피옥서스는 멀어요>에서 기차는 도착하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대기실에서 잠들어 있을 뿐이다. 열차는 정치적 망명의 얼룩진 기록으로, 불법 체류자들과 난민들의 피로한 기억이 새겨진 장소로 재편되고 있다. 풍경을 바라보고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는 장소의 기능은 희미해진다. 그것은 코로나 시기를 통과한 영화관의 곤경과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를 다시 영화의 장소라는 문제와 만나게 한다. <유용한 것>에서 변모하는 여행자의 ‘무용한’ 상태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건네는 조건이 된다. 그런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여행하는 영화가 제안하는 삶의 조건일 것이다. 의도를 갖지 않는 무작위에 의한 만남 속에서 영화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만남을 전제하는 장소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디서 영화를 나타나게 할 수 있을까?
죽은 아내가 “늘 가고 싶었다”던 일본에 가서 그녀가 생전 보고 싶었던 후지산과 벚꽃을 ‘대신’ 눈에 담은 남편 루디. 도리스 되리의 영화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2008)을 보며 그 여정이 사뭇 쓸쓸하지만, 벚꽃(이 영화의 원제가 Cherry Blossoms이기도 하다)이 만개하듯 애틋한 감정으로 충만해 짐을 느낀다. 비록 사랑하는 아내 없이 저 혼자만의 여행이었지만 남자는 그녀의 기억과 함께 평생 최초의 일본여행을 끝마친다. 지상에서의 사랑은 이미 끝났지만, 사랑은 그 크기만큼 고스란히 남겨지는 사랑질량보존의 법칙 아래서. < 베를린의 연인Gluck >(2012)은 도리스 되리가 믿고 있는 그 ‘사랑''''이 과연 얼마나, 어디까지 유효한지,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돌아보는 또 하나의 실험이다. 이번은 좀 극한의 상황에 기반하는데, 여자 이리나(알바 로르와처)는 고국에서 내전으로 부모님을 잃고 집단 강간당한 채 베를린으로 와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매춘을 택한 그녀는, 어느 날 거리에서 개와 함께 사는 펑크족 칼리(빈젠즈 키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상처를 가진 여자와, 자신이 상처를 가진지도 미처 몰랐던 남자는 서로를 의지하며 이제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리나의 주요 고객이었던 남자가 애꿎게도 이리나와 섹스 도중 죽게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칼리는 이 순간 위기에 처한 이리나를 위해 ‘무엇이든’하는데, 그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끔찍한 행동을 동반하는 결정이다. 이리나의 변호를 자처한 변호사 노아(매티아스 브랜트)의 아내는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듣고 “당신도 그런 상황이라면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줄 수 있겠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해서 우리 역시 마찬가지 답변을 요구하게 된다. 사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톤이 다소 불균질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또 화면으로 제시된 사건의 충격적 비주얼 재현에 비해, 결말이 도출되는 과정이 상당히 쉽고, 더군다나 기대 이상으로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도리스 되리는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에서 우리가 보았던 그 먹먹함이 남겨질 틈을 주지 않고, 대신 경쾌한 음악으로 이들의 사랑에 힘을 보태준다. 동화같은 분위기에 일조하는 건 영화의 관찰자로 개입하는 변호사 노아의 탓이 크다. 그는 이리나와 딱 한 번, 운전하는 도중 그녀를 칠 뻔했던 ‘교차로에서의 인연’을 빌미로, 위기에 처한 그녀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선다. 변호사마다 각자 전공분야가 있다면 노아의 핵심 소송 분야는 특이하게도 “행복을 추구하는 형사소송 변호사”다. 그는 “행복이 우릴 버리는 순간, 즉 인생이 영원히 바뀌는 사고나 재난의 순간엔 내가 전문가다”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까다롭고 돈 안 되고 변호하기 힘든 의뢰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타일의 변호사다. 이리나 커플에게도 그는 마치 ‘수호천사’처럼 등장하는데,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실화에 바탕한다. 독일의 형법 전문 변호사 페르난디트 본 쉬락크는 자신이 변호한 사건 중 희귀한 사건을 골라 기록한 「살인자를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까」를 집필한다. 으레 그럴법한 범인의 얼굴을 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극악무도한 살인에 이르기까지, 숙명의 작용, 그리고 아이러니한 인생의 단면을 표현한 책으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으로, 도리스 되리는 처음으로 원작을 가지고 각색 작업을 한다. 도리스 되리의 전작들 <남자들> < 파니 핑크 > < 헤어드레서 > < 베를린의 연인 >은 도리스 되리의 작품을 돌아볼 때 데뷔작 <남자들>(1985) 부터 < 파니 핑크 >(1994), < 헤어드레서 >(2010) 등을 거치며 면면히 이어져 온 도리스 되리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한껏 배양한 작품이다. 부모의 시체 옆에서 강간을 당했던, 감당하지 못할 비극을 지니고 있는 이리나는, 내전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면 다시 그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고, 자신의 생살에 옷핀을 꽂아 피를 내면서 그 고통을 참아야 할 정도로 마음을 다쳤지만, 끝까지 자신의 삶을 놓치지 않는 여자다. 불법체류자로, 매춘부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지만 베를린에서 이리나의 생활은 상당히 활기차다. 그녀는 칼리를 만나고 처음으로 ‘사랑해서’ 섹스를 하는 행복함을 얻게 되고, 싸구려 호텔에서 벗어나 자기가 데코레이션 할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그와의 미래를 꿈꾼다. 도리스 되리 감독은 이리나가 집을 인테리어 하는데 저 혼자 들이는 수고를 보여주는데 꽤 긴 장면에 할애하는데, 하트 모양으로 설치한 벽면 라이트, 인조잔디처럼 깔아놓은 초록색 카펫, 장미 모양이 새겨진 발 매트, 싱크서랍에 넣은 아기자기한 식기 등 이리나의 취향을 반영한 것 같은 소품들은 하나같이 밝고 예쁘다.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헤매는 29살 외로운 여성 파니 핑크의 강렬한 색감으로 치장된 집(<파니 핑크>)이나 바람피운 남편과 결별하고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카티가 꾸민 베를린 빈티지 색감이 총동원된 미용실((<헤어드레서>)처럼, 이리나의 공간 역시 자신에게 닥친 힘겨운 운명을 헤쳐 나가려는 여성 이리나의 의지, 칼라 테라피에 가까운 치유의 기능이 더해진다. 캡처하고 싶은 화면들이 가득한 도리스 되리의 영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작업의 동반자였던 카메라맨과 프로듀서를 몇 년 사이에 죽음으로 잃게 된 도리스 되리 감독은 이후 불교에 심취하게 됐고, 작품의 곳곳에 인연과 운명의 기운들이 함께한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에서 루디가 공원에서 만난 춤추는 소녀 같은 존재가 대표적이다) “오예, 너는 내 처음 오예야”라는 둘만의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이리나에게, 칼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절박한 존재이자 그녀의 운명이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불행을 도려낼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여서이자, 그녀 역시 칼리를 보호하고 돌봐줄 수 있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베를린의 연인 >은 신파를 바탕으로 하되,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은 소소한 드라마다. 도리스 되리의 필모그래피 중 수작의 반열에 오르긴 힘들지만, 감독의 특징적 요소들은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일요일 대학로를 가기 위해 종로를 지나가면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가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 중 한국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동아시아 외국인이 많이 나와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낯설기보단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예전 파키스탄 지진 때 구호 활동을 위해 찾아간 후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까이 보아 온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식당에 한두 명씩 보이던 중국 동포들이나, 유학을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서 생긴 다문화 가정들이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 다문화 가정이 이렇게 많아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2014년 3월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160만 명을 넘었고, 그중 결혼이민자 약 11만 명 외에도 체류자격을 기준으로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를 동반 또는 초청해 가족생활이 가능한 외국인 규모가 약 8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은 이미 단일 민족을 넘어서 다문화 사회가 현실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예전보단 적어졌지만 아직도 한국인인가 비한국인인가를 나누는 안타까운 시각이 남아있다. 하루아침에 개선되어 질 수 없겠지만 한발 한발 노력해서 이주민 및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종 차별적 시선 및 인식 전환과 함께 다문화 사회를 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작업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기법으로 만든 < 이상한 과일 Strange Fruit >(2013)은 얼마나 쉽게 우리가 외국인에 대하여 두려움과 증오를 얻는지 또한 얼마나 쉽게 우리가 ‘낯선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작품을 만든 Shimi Asresay와 Hili Noy 감독은 인종차별에 대해 논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인종차별이 모두에게 고통스럽고, 모든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는 주제이며, 그 대상은 종교 때문에 유대인 대학살에 휩쓸린 가족들이기도 하고, 지금 시대에는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받는 사람들로 보았다. 또한 우리 모두는 동일한 선상에 있을 수 있고, 우리는 인종차별을 경험할 수도 있고,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감독은 우리 모두 앞에 희망적으로 거울을 놓아줄 수 있는 영화 그리고 더 나아가 차별과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 믿어야 할 때가 왔을 때, 우리가 정말 자기 자신의 믿음을 주장 할 수 있을까요?” http://vimeo.com/9238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