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 감독
- 최지선
- 제작년도
- 2004
정성조 (1946~2014)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던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가, 플루트와 색서폰 연주자이다. 서울대 음악대학 출신으로 KBS관현악단장과 서울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하는 등 ‘엘리트’ 음악인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러 현장에서 현역 재즈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김민기, 양희은 , 한대수 같은 1970년대 포크 음반에 중요한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사에서도 중요한 ‘배후’ 인물이었다. ‘ 정성조 쿼텟’ 또는 ‘정성조와 메신저스’를 통해 연주자로 구성된 그룹 활동을 하면서 대중음악에 재즈적 어법의 연주와 편곡을 삽입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재즈 록 어법이 보다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음악이 주효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 < 어제 내린 비 >( 이 장호 , 1974), < 영자의 전성시대 >( 김호선 , 1975), < 겨울 여자 >(김호선, 1977) 등의 영화에는 메신저스와 함께 트럼펫이나 색서폰 등의 브라스 섹션을 위시하여 재즈 록(또는 퓨전 재즈)적인 사운드가 투영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정성조는 ‘청년영화’ 또는 ‘호스테스 멜로드라마’를 위시한 새로운 영화의 개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상의 음악들은 ‘본격적인’ 의미의 사운드트랙 레코딩 시대를 개막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음악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시 한 작품을 위한 영화음악 음반이 발매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고, 영화음악 음반이라고 해도 단순하게 한두 곡의 주제가만이 해당 가수의 음반이나 컴필레이션 음반에 수록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의미의 사운드트랙 음반이 존재하지 않던 상황에서, 연주 음악과 주제가, 대화 클립 등을 모두 담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본격적인 사운드트랙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별들의 고향 >이나 < 바보들의 행진 >처럼 < 어제 내린 비 >나 < 영자의 전성시대 >의 경우 영화와 음악을 위한 상생전략으로서 음반사와의 기획물로 발매되기도 했다. 이전 시기 많은 영화음악가들의 작품이 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 사운드 위주였던 경향과 달리, 그는 밴드 음악이 주도하는 일렉트릭한(또는 록적인) 어법의 사운드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영화음악’의 경향을 이끈 선두주자였다. 1970년대 ‘청년영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젊은 영화들의 실험이 ( 강근식 이 속해있던 ‘동방의 빛’과 마찬가지로) 대중음악인의 작품과 조우하면서 화학작용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처럼 정성조 는 재즈 록 밴드 메신저스와 함께 (당시 대중가요계에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던) ‘모던한’ 사운드를 위한 실험을, 영화 스코어 위에 구현했다. 이는 여러 버전의 변주 트랙을 통해 마련되기도 했고, < 겨울 여자 >처럼 (곡명에 모두 삽입되어 있는 것처럼) ‘겨울’을 소재로 한 컨셉트 음반 형식을 통해 표현되기도 했다. 또한 노래 형식의 각인적인 주제가를 통해 대중적인 접근도 함께 담았다. 이후에도 그는 김호선 과는 < 밤의 찬가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 >(1979)의 영화(이상은 한 음반으로 발매)를, 이장호 와는 < 이장호의 외인구단 >을 통해 영화음악 작업을 이어갔다. 버클리 음대 유학파 1세대로서 수학하고 돌아온 뒤인 1980년대에도 그는 영화음악계에서 다수의 영화음악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했다. < 깊고 푸른 밤 >(1985)을 필두로 <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 <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 < 천국의 계단 >(1991) 등 배창호 감독의 영화의 작품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다. 이외에도 < 이혼하지 않는 여자 >( 곽지균 , 1992), < 레테의 연가 >( 장길수 , 1987),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이명세 , 1990), < 우리 사랑 이대로 >( 강정수 , 1992) 등에 참여했다. 영화음악의 경향은 보다 다채로와지는데, 정수라가 부른 영화주제가가 크게 히트했던 <이장호의 외인구단>처럼 노래 형식에 몰두된 경우도 있다. <깊고 푸른 밤>에서 ‘제인의 테마’처럼 쓸쓸하고 슬픈 트랙 이외에 불협화적이고 불길한 실험적 음악을 주인공의 절망과 갈등에 매치시킨 반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이나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는 경쾌한 스윙감 넘치는 재즈 클립을 통해 낭만적인 청춘영화의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 이장호의 외인구단 >으로 1986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 레테의 연가 >로 1987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정근 (1931~2007)은 196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영화음악 작곡가로, 1980년대까지 400편 이상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이하 작품 편수와 연도는 영상자료원 기록 기준으로 작성). 전후(戰後) 1950년대 영화음악이 기존에 존재하는 음반 수록곡들을 선곡하는 차원에 비중을 두었다면, 전정근을 위시한 음악가들은 창작을 통해 새로운 한국 영화음악의 도래를 알렸다. 전정근 은 1954년에는 당시 많은 음악인들과 마찬가지로 군악대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의 연주와 창작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영화음악 입문은 < 잊을 수 없는 사람들 >( 유재현 , 1958)에서 김대현 의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공식적인 데뷔작은 < 주마등 >( 이만희 , 1961)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는 한상기 가, 김수용 감독의 영화에는 정윤주 가 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했다면) 전정근은 이만희 감독의 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했는데, 이만희 감독의 작품 51편 중 44편의 영화에 음악을 맡았다. 전정근의 데뷔작 <주마등>을 비롯해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추격자 >(1964), < 흑맥 >(1964), < 7인의 여포로 >(1965), < 만추 >(1966), < 귀로 >(1967), < 여로 >(1968), < 쇠사슬을 끊어라 >(1971), < 0시 > (1973),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 등 많은 작품을 담당했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이외에도 다른 많은 감독들의 작품에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1960, 70년대 한국의 영화계는 과도한 다작 시스템을 통해 형성되었던 시기였던 만큼, 영화음악의 수요 역시 다량이 필요로 했다. 그렇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과 인력 부족으로 한 사람이 많은 작품을 소화해야 했고, 심지어 하나의 음악을 여러 영화에 돌려써야 했을 정도였다. 전정근 의 영화음악이 장르를 불문하고 멜로드라마, 사극, 호러, 액션, 전쟁물, 수사물, 애니메이션 등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 관속의 미인화 >(1970), < 넋 >(1973) 같은 호러 영화, < 호피와 차돌바위 >(1967), < 홍길동전 >(1967), < 황금철인 >(1968), < 황금박쥐 >(1968) 등의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광대하다. 그중에서도 전정근 의 주요 스타일을 거론한다면, 당시 영화음악들에 오케스트라 스타일의 작법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현악 편성의 스코어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합창곡 스타일을 통해 웅장하고 비감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도 뛰어났다. 그의 오케스트라 편성에 합창곡을 편성하는 작풍은 헐리우드의 영화음악 스타일(가령 미클로스 로자가 음악을 맡은 < 벤허 > 같은 1950년대 영화음악)과도 맞물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은 군사물, 전쟁영화 같이 박진감이나 웅장함의 표현이 강조되는 스타일을 위해 사용되곤 했다. 예를 들어 전정근의 증언에 따르면, 대작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에서는 6, 70명, 합창단 30, 40명을 동원하는 큰 규모의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의 경우, 그의 회고에 따르면 30인조 오케스트라를 대동했다. 그의 데뷔작 < 주마등 >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들이 합창 편성의 음악들을 배치했는데, 국립, 시립 또는 방송국 합창단부터, 때에 따라 음악대학 출신으로 구성된 은종합창단 등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관현악단의 지휘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영화의 장르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전형으로 만들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관악기 또는 브라스 섹션은 전쟁 영화에 주효했던 반면, 멜로 드라마에는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주로 분위기를 주조했다. < 귀로 >에서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김희갑의 연주를 대동한다던가, < 만추 >에서는 멜로디언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주조해냈다. 괴기영화에서는 불협화음이 이용되었으며, 톱이나 차이니스 공 같은 악기를 통해 적절한 효과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 한국 영화음악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1964년 < 흑맥 >으로 청룡영화제 음악상을,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국제영화예술상을 수상했다. 1966년 <만추>는 부일영화제 음악상을, 1967년 < 귀로 >는 아시아영화제 음악상을 거머쥐며 196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로 자리잡았다. 2008년 제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 글: 최지선
김수철 (1957~ )은 잘 알려져 있듯 19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1978년 그룹사운드 ‘작은거인’으로 전국대학축제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두 장의 그룹 음반을 발표하며 록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는 솔로 가수로서 <못다 핀 꽃 한 송이>(1983), <젊은 그대>(1984)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구가했다. 그렇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해 의미 있는 실험은 영화음악을 통해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영화모임 활동을 통해 그는 이미 영화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대중 가수로 활동하였을 때에도 이른바 ‘국악가요’ 창작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가 영화음악가로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배창호 감독의 로드무비이자 청춘영화로 그가 출연하기도 했던 < 고래사냥 >(1984)을 통해서였다. 이후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감독들의 주요 영화들, 예를 들어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와 < 그들도 우리처럼 >(1990), 이명세 감독의 < 개그맨 >(1988), 장길수 감독의 <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1)와 < 웨스턴 에비뉴 >(1993), 장선우 감독의 < 경마장 가는 길 >(1991) 등을 통해 영화음악가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의 영화음악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 칠수와 만수 > 사운드트랙 음반은 주로 노래 스타일의 곡과 이를 변주한 버전을 위주로 실은, 다소 평이한 편곡이라고 평가받기도 했지만, ‘무엇이 변했나’에는 당시 가요에는 부재하던 랩을 삽입하는 특이한 시도도 담겨 있다. < 두 여자의 집 >(1987, 곽지균 )의 경우 메인 테마가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현악 연주로 편성되었다면, 러브 테마는 김수철 특유의 발라드적인 선율을 왈츠풍 현악에 담아내며 대조적인 구성을 들려준다. 한편 그의 주제가 중에는 유쾌하고 심플한(동요적이기까지 한) 노래가 인기를 얻기도 했다. < 고래사냥 >에도 삽입된 ‘나도야 간다’나, 만화영화 < 날아라 슈퍼보드 >(1990)의 주제곡 ‘치키치키챠카챠카’, <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1993, 김유진 )의 대다수 곡들처럼.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손꼽을 수 있는 김수철 의 의미는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접목하여 탁월한 음악적 성취를 이룬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 있다. 무용음악, 뮤지컬음악을 아울렀을 뿐 아니라, 장대한 규모의 국제적인 행사음악을 통해서도 그의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가 발표한 국악 음반이 소량밖에 판매되지 않아 전부 폐기해야 했으면서도 전통음악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계속 몰두했다. 그런 점에서 김수철 본인의 음악적 지향과 가장 잘 부합했던 영화음악은 뭐니뭐니해도 임권택 감독 작품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당시 흥행 기록을 수립했던 < 서편제 >(1993)를 비롯해,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노는 계집) 창 >(1997)을 비롯해 최근의 < 달빛 길어 올리기 >(2010) 등에 이르기까지 임권택 감독이 천착해왔던 한국적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특히 <서편제>는 주인공은 김명곤 이나 오정해 가 하는 판소리이지만, 이러한 ‘전통’이 ‘현대적으로’ 반향되도록 조율했던 일등공신은 김수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인테마라 할 수 있는 ‘천년학’이나, 고즈넉하게 펼쳐지는 대금이나 소금(또는 그 둘)이 어우러지는 ‘소리길’은 이질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서양악기인 신시사이저와 전통악기가 더없이 조화롭다. <축제>의 경우에도 ‘먼길’에서의 아쟁이 협연하는 비감한 정서와, ‘꽃의 동화(하나)’에서의 소금 편성을 통한 소박하고 아기자기함을 아우르도록 편곡했다. 그는 사운드트랙 음반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음악을 음반으로도 발매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많은 영화음악들이 음반으로 발매되지 못하여 영화가 끝나면 사라져 버리는 운명에 처했던 상황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영화음악 음반사상 높은(당시 기록으로 대략 7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국악을 대중적으로도 넓게 알린 < 서편제 > OST는 그렇게 탄생했다. 김수철 은 < 창 > 이후 13년 만에 이준익 감독의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0)과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영화음악에 참여했으며, 2010년 제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 글: 최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