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 감독
- 이용진, 하회창, 박철용, 이윤현
- 제작년도
- 2009
< 쿵푸팬더2 >의 누적관객수가 500만을 넘겼다. 2008년 글로벌배급으로 6억 3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 쿵푸팬더 >는 속편으로 다시 흥행몰이를 시작, 1편의 기록을 경신하며 포효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픽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드림웍스PDI의 애니메이션들은 차별적인 캐릭터성을 자랑한다. <쿵푸팬더2>의 감독을 맡은 최초 여성감독이자 한국인인 여인영 감독도 역시 캐릭터 일러스트가 전공이다. 다양한 캐릭터 디자인은 애니메이션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을 주도한다. ` 슈렉 ` 시리즈, < 몬스터 vs. 에어리언 >, < 드래곤 길들이기 > 등 시리즈 였거나, 이후 시리즈로 확대될 전망을 보여주는 드림웍스PDI의 작품들은 독특한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각 캐릭터들의 스타일과 성격, 진한 이야기성으로 잠재적인 플롯을 형성해낸다. 보여지는 캐릭터만으로도 이미 절반이상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러한 캐릭터의 외관상 반전이 전체 스토리 흐름을 스펙터클하게 구성해낸다. 실제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팬더곰의 움직임을 쿵푸의 달인으로 묘사하면서 쿵푸팬더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뛰어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상대방의 움직임 소리보다 자신의 배고픈 뱃속소리에 더 민감한 팬더곰 포는 한없이 착하지만 늘 불의에 참지 못하는 격한 감정의 전환으로 관객에게 동화된 자기최면과 대리만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의 스승으로 묘사되는 시푸사부는 능청스러운 너구리에서 출발하지만, 심오한 이성과 날카로운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그마한 외모로 관객을 긴장시키면서도 몇마디의 대사와 동작으로 보여주는 폭발적인 카리스마는 쿵푸라는 무술이 가진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미지를 단번에 설명해낸다. 무적의 5인방으로 등장하는 타이그리스(호랑이), 크레인(학), 바이퍼(뱀), 몽키(원숭이), 멘티스(사마귀) 등의 캐릭터는 다양한 동물들의 각 특징들을 조연의 성격과 무술의 특기와 융합시켜 스토리를 주도해간다. 마치 중국의 쿵푸가 동물들의 움직임을 전제로 만들어 낸 다양한 무술권법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환타지에 그대로 접목시켜, 관객들이 이미 자생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던 상상속의 무술세계를 현란한 서비스로 구현한다. 1편에서는 교활한 시장 캐릭터였으나 제작단계에서 제외되었던 공작새 로드 셴은 관객들이 기대했던 무서운 악당캐릭터의 외모보다는 정교하고 첨예한 악의 이미지를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로 기호화한다. 그를 둘러싼 악당그룹들, 수스세이어(산양), 울프보스(늑대), 고릴라(고릴라), 마스터크록(악어), 마스터 스트롱(물소), 마스터 선더링 리노(코뿔소) 등도 힘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을 동물 캐릭터로 디자인되었고, 목소리 캐릭터를 맡은 배우 또한 육체파 액션배우들로 채워졌다. 잔잔하고 섬세한 표정연기와 부분적인 대사표현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캐릭터보다, 강인하고 변함없는 스테레오타입의 인상과 근육질의 육체담론으로 표현되는 악당그룹 캐릭터들은 관객들에게 이미 규정되어버린 악의 강력함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이렇게 상호간 대치되는 캐릭터성의 그룹이미지는 쿵푸라는 무술이 보여주는 정중동의 이미지,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부드러움의 외유내강이 정교하게 표현된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재하지 않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상표현의 기교적 방식이다. 그래서 움직임 또한 실재하는 움직임보다 더 과장되고 왜곡되게 표현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적인 타이밍으로 관객들에게 인식된다. 그래서 보여지는 캐릭터들의 디자인과 성격부여, 움직임의 스타일은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적인 환타지를 전제하게 된다. 신선한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은 실사영화와 차별적인 애니메이션만의 환타지를 재생시키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결국, 최근 애니메이션의 흥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독창적인 캐릭터디자인이 보여주는 잠재된 스토리텔링임을 < 쿵푸팬더2 >의 성공은 증명해낸다.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란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것은 꽤나 오래전으로 기억된다. 극장에서 개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된 비디오로 접했으니 벌써 십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독특한 비주얼 이미지와 뒤틀린 유머로 큰 반향과 색다른 감동을 주었던 < 크리스마스의 악몽 >의 팀 버튼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꺼이 이 비디오를 구매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팀 버튼이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의 감독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 크리스마스의 악몽 >도 그때까지 팀 버튼의 연출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두 작품 모두 바로 헨리 셀릭이라는 스톱 모션의 거장에 의해 창조된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팀 버튼이라는 거장의 명성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실제로 애니메이션 타이틀에서조차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알려진 탓에 이런 오해들이 제법 생길만도 했다. 어쨌든지 내 나름대로 이 작품을 통해 마땅히 제대로 크레딧을 인정받아야 할 숨겨진 창조자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30년대 영국의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 주인공 제임스는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부모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제임스의 부모는 우스꽝스럽게도 동물원을 탈출한 코뿔소에 의해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제임스는 악덕하고 심술 맞은 친척 이모들에게 맡겨지고 그때부터 불행한 삶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언뜻 디즈니표 가족용 애니메이션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식상한 감동 스토리의 결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소년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런 전개로 지루해질 즈음부터 바로 헨리 셀릭과 팀 버튼 두 콤비 특유의 상상력과 유쾌한 비틀기가 더해지면서 모험 활극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는 순종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단순한 권선징악형의 디즈니 영화 공식이 답습되지 않는다.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의 캐릭터들이 아이와 벌레들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고 해서 자칫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동화와 같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펼쳐지지만, 저변에 깔린 의식의 배경은 절대 권력의 약자들로 그려진 이들의 모험담과 더불어 1930년대의 시대상을 다소 냉소적인 시선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실사 영화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환타지 어드벤처물로서 당시로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비주얼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특히, < 마틸다 >와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등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작가 로앨드 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테마는 바로 어린이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단순히 교훈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겪는 과정에서 웃음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사한다. 학대의 테마에서 극복, 정의, 성장의 코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그 위에 아름다운 선율까지 실어 비주얼적인 환상의 전환을 이뤄내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최첨단 신기술을 앞세워 화려한 볼거리의 CG 영상으로 점철된 요즘 영화들 속에서 가끔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 한 편 감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Oldies-but-goodies. 새삼스럽게 느끼지만, 명작이란 타이틀 앞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무색하기만 한 것 같다. / 추혜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강사)
1. 1980년대, 이장호 의 시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 현은 자신의 나이가 4.19와 5.16 시절에서 멈췄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를 자각 있는 청년으로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현의 표현처럼 1980년에 나이가 멈췄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끝없이 흘러가지만, 멈춰 있는 의식의 시간과 공간은 집요할 정도로 제자리 걸음이다. 그 제자리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제 발 밑을 더욱 깊게 파내려 갔을 것이다. 그 파내려간 자국, 나는 그것을 1980년 한국 근대의 상처라고 부르고 싶다. 1980년대 한국영화들 역시 그 상처의 흔적, 어눌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상처의 자국으로 본다. 그 영화들 속에 등장한 인물들, 그들은 1960년대 한국 영화 속 주인공들보다 더 못나고 집요하며 파괴적이었다. 그 역할은 대체로 남자들이 맡았다. 남성 감독들은 그렇게 남성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1980년대의 한국 영화도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광란의 1980년대를 다시 되돌아본다면, 1980년대는 한국의 근대가 겪어야 될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독재 정권에 대한 ''힘없는 저항''은 당연히 또다른 독재 군사 정권을 낳았던 것이고, 그 독재 정권이 추동했던 경제 개발은 당연히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했고, 그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한 경제 개발은 고유의 문화와 공동체의 미덕을 당연히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장호 감독이 서있었던 지점은 바로 그 곳이었다. 우리가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떠올리면서 언제나 이장호를 앞자리에 세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장호는 독보적인 동시에 1980년대 영화 청년들에게는 ''스승''이었다. 그는 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한 인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다. 과거 '1980년 ''서울의 봄''에 때맞추어 나타난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를 시작으로 해서...'라고 표현할 당시의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란 바로 < 바람불어 좋은 날 >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또 당시 젊은 평론가들이 80년대 영화를 대상으로 뽑은 베스트 10에서도 이장호 의 영화는 < 바보선언 >(1위), <바람불어 좋은 날>(2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6위), < 과부춤 >(8위) 등 무려 네 편이나 포함될 정도였다. 80년대 이후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이장호를 가장 많이 언급한 까닭은 6,70년대 한국영화의 전통을 흡수하여 80년대에 쏟아낸 피드백 장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장호 감독보다 여러모로 선배격인 감독들과 동년배 감독들도 그러한 역할을 했지만 그가 유독 돋보인 까닭은 가장 충무로적으로 자라났으면서도 가장 격변기의 청년의식을 잘 대변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풍부한 공식 기억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또 한국영화를 ''직업적으로'' 기억하는 평론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잊혀지고 있다. 그 망각은, 현란한 변화로 압축할 수 있는 21세기식 변화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다른 이유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 즉, 80년대식 시선으로 이장호 의 영화들을 바라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집단 기억 상실증 혹은 현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뭔가 석연찮은 미학의 부재 등이 그 망각 현상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는 이장호의 시대였다. 2. 이장호 라는 상처 이장호 는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감독길로 들어섰고 다행히 이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청춘의 아름다움과 애정을 노래한 < 어제 내린 비 >(74), < 너 또한 별이 되어 >(75), <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75) 등을 연거푸 만들던 중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5년간의 강제된 공백기간을 가졌다. 당시의 한국은 남자머리가 길다고 파출소에서 강제로 머리를 자르거나 길을 가는 여자를 불러 세워 미니 스커트의 길이를 자로 재던, 말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혹한 불행의 시기였지만 대통령의 부하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눌 정도로 국민들의 억제된 민주화 요구가 서서히 폭발 직전에 다다른 그 시절은 상대적으로 그의 의식이 첨예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 바람불어 좋은 날 >(80)은 바로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세 청년이 결국 서울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독재 정권의 경제 개발과 그 개발이 가져온 빈부의 격차와 인간성의 파괴 등을 담은 것이었다. 그는 시대의 상처를 자신의 재기작에 심었던 것이었다.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후 < 어둠의 자식들 >(81), < 낮은 데로 임하소서 >(81), < 바보선언 >(83), < 과부춤 >(83)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성 드라마 혹은 관객과 현실을 이어주는 영화들이 있는가하면, 여러모로 동의를 구하지 못한 작품인 < 일송정 푸른 솔은 >(83)이나 < 무릎과 무릎사이 >(84), < 어우동 >(85)같은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 그의 부정적인 재능이 결집된 < 이장호의 외인구단 >(86), < 와이의 체험 >(87) 등이 그의 작품연보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사회 반영의 의지, 흥행 집착, 작가의 지향 등이 마구 뒤섞인 그의 작품연보는 보는 이들은 물론 본인조차 무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무튼 그는 어떤 것이라도 다 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을 만들어도 불안한 기간을 거치면서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평자들의 평가가 엇갈리기는 해도, 이 작품에 대한 견해는 가장 진지하면서도 가장 실험적인 그리고 이야기와 형식의 독특한 경지를 확보한 것이라는데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장호 는 이 작품에서 민속신앙과 우리 민족의 용해된 삶,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가차없이 침범 당하는 개인의 삶, 분단과 통일에 대한 뒤틀린 견해로 가득찬 사회 등을 풍부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영화만 본다면 그는 작가이자 격조 높은 예술가였다. 그러나 예술가이면서도 그는 영화 제작자였다. 판영화사를 차려서 우습고도 야릇한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장호를 근대 한국의 상처이자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1980년대 한국 영화의 상처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의 정확한 문맥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와 행적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의 개념들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영화의 모더니티, 신파성, 한국형 내러티브와 스타일, 집단주의, 사회문화적 맥락 등은 이장호 를 통하여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뉴 웨이브, 이장호]({영상문화정보}, 2002년 여름호)에 실린 글을 토대로 다시 쓴 글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교수) / 2003년 <프로필> 1945년 5월 15일 서울 출생 1966년 홍익대학 미술대학 건축미술과 2년 수료. < 작품 연보 > 1974 '' 별들의 고향 ''감독 데뷔 제13회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 제11회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 신인상 수상 1975 어제 내린 비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6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1980 바람불어 좋은 날 제19회 대종상 감독상 수상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영화부문) 작품상ㆍ대상 수상 1981 어둠의 자식들 (흥행 베스트)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2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제21회 대종상 작품상ㆍ감독상 수상 제18회 한국연극ㆍ영화예술상 작품상 수상 1983 일송정 푸른 솔은 제 22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수상 1983 바보선언 시카고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OUTSTANDING OF MERIT' 수상 1984 과부춤 일본 키네마준보 우수외국영화에 선정 1984 무릎과 무릎사이 (흥행 베스트) 1985 어우동 (흥행 베스트) 1986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취임 1986 이장호의 외인구단 (흥행 베스트) 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2회 동경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1987 Y(와이)의 체험 1988 바보선언 ''과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베를린 국제영화제 영인터내셔널포름 부문 동시출품으로 ZITY상, CALIGARI상 각각 수상 1988. 9. 제 26회 뉴욕 필름페스티발 선정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1990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1992 명자 아키꼬 쏘냐 1995 천재선언 제9회 기독교문화대상 영화부문 수상 < 주요 경력 > 1996년∼2000년 8월 31일 -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1997년 - 부천시 영상도시화 PROJECT 연구원 1997년 - 제1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 창작 오페라 ''황진이'' 연출, 예술의 전당<오페라하우스> 공연 2000년 - 중국문화부초청 8월 24일, 25일 북경 21세기극장 오페라 ''황진이''공연 연출 2000년 - (사)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 2001년 -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TM 공동개최기념공연 오페라 ''황진이'' 도쿄 신국립극장공연(4월 15ㆍ16일) 연출 2001년 - 전주시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2002년 - 미주 한국일보 초청 오페라 ''황진이'' LA -Hollywoo d KODAK 극장 공연 (8월7. 8일) 연출 2002년 11월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3년 현재 - 전주대학교 예체능영상학부 연극영화전공주임교수 < 주요 논문 > 「부천 영상산업화 연구보고서 」(공동), 부천시 , 1997년. 「일본문화개방 이대로 좋은가?」(단독), 아태평화재단 , 1998년. 「큰 정신 작은 영화」(단독), 한성대학교 , 1999년. < 주요 저서 > 「모두 주고 싶다」 태멘출판사 , 1980년 「바보처럼 나그네처럼」 도서출판 산하, 1987년 < 기타 영상제작배급실적 > 1986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 제작배급 1987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작배급 1987년 - Y의 체험 제작배급 1988년 - 깜동 공동제작배급 1988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2 공동제작배급 1989년 - 독일 이탈리아 합작영화 '' 모모 '' 수입배급 1989년 - 베르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죄''(영국제작)수입배급 1989년 - 미스코뿔소 미스터코란도 제작 배급 1990년 - 미국영화 ''헬레이저'' 수입배급 1991년 - 미국영화 '' 헬 바운드 '' 수입배급 1992년 - ' '숲 속의 방 '' 제작배급 1992년 - '' 핸드백 속 이야기 '' 제작배급 1994년 - KBS 텔레비젼 특집드라마 3부작 ''너의 뺨에 입 맞추리'' 외주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