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크레파스
- 제작년도
- 2010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정해둔 나만의 애니메이션 장르가 있다. 제작기법이나 국적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 구분이랄까. 그중에 하나가 ‘용감한’이라는 장르다. 나만의 ‘용감한 애니메이션’으로 꼽아둔 작품 중 하나가 < 내 이름은 꾸제트 >다. 주인공인 아홉 살 소년 꾸제트는 알콜 중독인 엄마가 마셔버린 맥주 캔들을 주워다가 다락방에서 피라미드를 쌓으며 노는 아이다. 집 나간 아빠가 그리워서 아빠를 망토 걸친 슈퍼히어로로 그려 넣은 연을 날리기도 한다. 연의 뒷면에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아빠와 함께 있다는 어린 닭(영계)도 그려놓았다. 혼자인 엄마는 그날도 술에 취해서 다락방에 있던 꾸제트를 혼내러 올라오다가, 꾸제트가 무서워서 닫아버린 다락문에 부딪혀서 세상을 뜬다. 엄마마저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꾸제트는 경찰 아저씨 레이몽의 도움으로 보육원에 간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그곳의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꾸제트가 엄마 머리 위에서 다락방 문을 닫고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사고지만 살인의 순간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라니. (최근 청각장애를 지닌 소녀가 수화가 아닌 구음을 내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을 용감하게 담았던 애니메이션 < 목소리의 형태 >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잠시 후 꾸제트가 벽에 기대어 앉자 연이 창밖에서 날아 들어와 꾸제트 앞에 떨어진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연만큼 마음도 추락하는 느낌을 연출한 애니메이션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그 용감한 장면에 디테일이 깃들어 있다. 히어로 아빠가 웃고 있는 노란색 연을 꼬옥 끌어안는 꾸제트의 모습, 그때 꾸제트가 기댄 벽에 가득 그려진 무심한 듯 간절한 낙서가 그렇다. 결코 캐릭터와 이야기를 소홀히 다루지 않으려는 정성이 엿보인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무척 어울린다. 캐릭터는 물론이요,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배경 세트까지 오롯이 그 질감과 수작업의 공로가 들여다보이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어쩌면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끝끝내 해내려는 의지를 담기에 참 좋은 그릇이다. 여기에 캐릭터 인형의 손에 들린 작은 책가방, 책상 위의 앙증맞은 크레파스, 다락방에 널브러진 미니 사이즈의 책들이 더해져서 꾸제트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장면 장면이 그런 아름다움으로 빚어져 있는데,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경찰인 레이몽 아저씨가 꾸제트를 차에 태워 보육원으로 가는 순간이다. 꾸제트가 창밖으로 날린 연이 푸른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가도록 사이렌을 울리며 액셀을 밟아주는 레이몽 아저씨와 해맑게 웃는 꾸제트의 표정이 정갈하고 사랑스럽게 표현된다. 연을 함께 날려주는 어른이 이 세상에 한 명쯤 존재한다는 것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질 파리의 동명 동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는 이처럼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를 알록달록한 화면에 담았다. 파란 머리, 빨간 코,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꾸제트를 중심으로, 당근색 머리의 보육원 대장 시몽, 부끄러울 때면 노란색 앞머리로 얼굴의 반을 가려버리는 알리스, 꾸제트가 반한 갈색 머리의 당찬 소녀 까미유 등 아이들 각자의 사연도 아프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아이들은 온몸으로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이 아이들의 성장담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정성스런 손길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화려한 몸개그, 헛소동, CG의 세례 없이도 그게 가능하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찬찬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세밀한 질감은 이 아이들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어주고 싶거나 두 팔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증폭시킨다. ‘어쩌다 어른’이 된 이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함께 연을 날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다.
어린 시절 32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가진 12색 크레파스에는 하나밖에 없는 살색 크레파스가 그 친구에겐 무려 3종류나 있었고, 그 때는 그 친구가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가 오직 32색 크레파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굵어지고 더 이상 크레파스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사리분별을 하게 된 이후에도 가끔씩 궁금해진다. 누가 먼저 그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일까. 융 헤닌 감독의 < 피부색:꿀 >을 보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 피부색:꿀 >은 융 헤닌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한 입양 소년의 성장담이다. 고아원에서 지내다 벨기에로 입양된 소년 전정식은 보통의 양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다. 동양인 입양아의 피부색을 ‘꿀’색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입양아들의 사연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식적인 드라마라면 입양아가 겪는 고난과 양부모의 괄시, 혹독한 환경에서의 성장기를 다루겠지만 소년 융의 삶은 평범했다. 그는 평범하게 괴롭고, 평범하게 외롭고, 평범하게 반항한다. 양부모는 융을 특별히 차별하지도 않고 융도 특별히 엇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입양아로서 느끼는 상실감이 곳곳에 묻어 있다. 흔히 ‘보통’, ‘평범’이라는 말은 평화롭고 별일 없이 잘 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하는데, 이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실상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은 웃고, 울고, 싸우고, 상처 입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먹먹함으로 가득 차 있다. < 피부색:꿀 >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로 덮고 살아가는 진짜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연이 아니라 수십만 입양아들이 실제로 겪었을 법한 심적인 갈등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융 헤넨 감독은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고 멋대로 상상한 모습이 아닌 입양아의 민낯, 진짜 사연을 보여준다. 때문에 장면마다 공감했을 때의 울림 또한 각별하다. 일견 다큐에 어울릴 법한 소재처럼 보이지만 < 피부색:꿀 >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진짜 삶, 진짜 고민, 진짜 이야기가 지닌 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둠은 투명한 수채화풍의 배경과 둥글고 포근한 인물묘사를 만나 동화처럼 호소력 있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덕분에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와 보는 이에게 훈훈한 웃음마저 안긴다. 우리가 반드시 보고 제대로 알아야 할 진지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힘을 십분 활용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살색을 꿀색으로 부를 수 있는 동심.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진심. 그 위에 유럽인이면서 아시아인, 한국인이면서 유럽인인 작가 융 헤넨, 소년 전정식이 서 있다.
90학번인 나에게 1980년대는, 분명 살긴 했지만 미지의 시간대였다. 그 10년 동안 나는 학생이었고, 거리보다는 교실에서 세상을 이해했다. 몇몇 사건이 기억나긴 한다. 계엄령으로 집 근처 길에 단 한 사람도 다니지 않는 날이 있었고, 중학교 땐 여의도광장에 나가 외국 순방길에서 돌아오는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도 꽤나 흔들었다. 고등학교 땐 인근엔 대학교가 있어서 데모 구경을 숱하게 했고, 집 앞 골목에서 백골단에게 두들겨 맞는 대학생을 보기도 했다. 고3 땐 전교조에 가입한 국어 선생님과 윤리 선생님이 잘렸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모르고 살았다. 내가 < 바보 선언 >(1984)이라는 영화를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제목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비디오 대여점 한구석에 두꺼운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그 영화를 선뜻 집어 들 용기는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왜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영화, 앞부분에 대사 안 나오는데 그거 테이프가 잘못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원래 그런 거니까 괜히 다시 가져오지 마세요.” 대여점 주인 아줌마의 충고가 생각날 뿐이다. 별 기대 없이 만난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은 나에게 이미 완료된 1980년대를 비로소 알려준 영화다. 나에게 그 영화는 파격적인 다큐멘터리이자 충격 영상이었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깬다’. 펜과 크레파스로 거칠게 그린 그림, 어린이(이장호 감독의 아들인 이누리)의 내레이션, 국악과 전자음이 뒤섞인 사운드, 그리고 이장호 감독이 직접 출연한 첫 장면. 그는 옥상 위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이때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신음 소리처럼 감독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활…동…사…진…멸…종…위…기….” 이 영화는 감독이 자살하는 심정으로 만든 영화였고, 단 5분 만으로도 나는 뒤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얼얼함을 느꼈다. < 바보 선언 >에서 어떤 스토리를 추출해내려는 것만큼 ‘바보’ 짓도 없을 것이다. 김명곤 이 맡은 동칠이(영화 내내 ‘똥칠이’로 발음되는)와 혜영이( 이보희 ) 그리고 육덕이( 이희성 )가 남한 사회를 횡단하는 <바보 선언>은 기승전결을 무시하는 ‘공간의 영화’다. 옥상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이화여대 앞을 거쳐 창녀촌을 지나 청량리 역 앞으로 달려가고, 탁 트인 바닷가에서 어두컴컴한 고급 요정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혜영의 죽음을 맞이한다. 동칠이와 육덕이는 푸른 들판에서 혜영이의 진혼제를 지내고, 여의도광장에서 몸부림치듯 춤을 춘다. < 바보 선언 >을 다시 보면서,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이 영화가 일종의 SF(라는 표현이 조금 그렇다면), 적어도 ‘미래적 관점의 영화’라는 것. “옛날 한 옛날 20세기가 끝날 무렵 우리나라에 동칠이라는 바보 같은 어른이 살았습니다”라는 어린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바보 동칠이와 육덕이 같은 훌륭한 조상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행복합니다”라는 다소 역설적인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21세기, 어쩌면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1980년대 풍경이다. 흥미로운 건 2010년에 만나는 1984년 영화 < 바보 선언 >이, 사반세기가 넘는 시차를 두고 강렬하게 진동하며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진정한 클래식이다. 여전히 옥상은 죽음의 공간이고, 자본주의는 그 천민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동칠이와 육덕이는 비오는 날 창녀촌의 어느 담벼락 밑에 추레하게 쪼그려 앉아 있는데, 그 정서가 낯설지 않은 건 우리가 지금도 가난한 자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의도광장에서 그들의 시선에 포커스 아웃 상태로 잡히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마치 지금의 정치 상황을 예언이라도 한 듯해서 씁쓸하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스포츠에만 열광하고 영화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대, 아니 이젠 스포츠 경기처럼 영화의 스코어에만 관심을 가지는 ‘활동사진 멸종위기’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 바보 선언 >이 심금을 울리는 또 하나의 요소는 ‘소리’다. 당시 한국 사회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뒤흔들던 전자오락의 사운드는 국악이나 각종 효과음과 몽타주를 이루며 카오스의 세계를 만든다. ‘새타령’과 팝은 뒤엉킨다. 식민지 가요 ‘감격 시대’의 반어법, “달캉달캉~”으로 시작하는 구전가요의 은유법, 정처 없는 그들의 뒷모습에 깔리는 국악가요 ‘어디로 갈거나’의 직유법은 거의 대사가 없는 이 영화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공간인 여의도광장에서 장엄한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가 흐를 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소년의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고, 관객의 감정도 한 음씩 고조된다. < 어둠의 자식들 >(1981)의 속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사전 심의에서 제목과 시나리오의 전면 수정 지시를 받았고, 제작 편수를 채워야 수입 쿼터를 받을 수 있기에 한 달 안에 만들어야 했던 영화. 그래서 제목도 엉터리로, 시나리오도 엉터리로 써서 일단 심의를 통과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영화 문법을 정반대로 뒤집어 만든 영화. 배우들을 청량리역 광장에 풀어놓고 카메라는 숨겨놓은 채 촬영했던 영화. 망가진 시대에 일부러 망치려는 듯 만든 < 바보 선언 >은 형식과 내용 모두 저항하는, 한국영화사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러닝타임이다. 언젠가 이장호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전두환 독재 정권과 내가 함께 만든 영화”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10여 년이 흐른 후에 만든 < 천재 선언 >(1995)에 대해 “< 바보 선언 >에 절실한 저항의 에너지가 있었다면, <천재 선언>은 강력한 동기가 없이 <바보 선언>을 추억하는 영화였다”며 반성했다. 절실한 심정으로 선언했던 영화 <바보 선언>. 아마도 이토록 절규하는 영화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