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脫苦)
- 감독
- 송인영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이화룡, 윤영수, 이동규, 미상씨
© 21세기북스 해외에서, 또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만나면 거의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그들은 최근 본 K-드라마 제목을 줄줄이 대며 엄지를 치켜든다. 뉴스는 글로벌 플랫폼 톱10 순위표를 띄워놓고 한류가 사상 최고의 전성기라고 전한다. 정책 당국도 이 그림을 보며 별문제 없다고 낙관한다. 그런데 업계 단톡방의 풍경은 반대다. 올해는 제작에 들어가는 작품이 아예 없다는 말, 투자사가 지갑을 닫아 대본이 캐비닛에서 묵고 있다는 말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올라온다. 밖에서는 박수가 쏟아지는데 무대 뒤에서는 스태프가 일자리를 잃고 제작사가 문을 닫는다. 환호와 위기가 같은 시점에 나란히 흐른다. 이 간극을 두고 한탄이 터져 나온 건 친하게 지내는 형, 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자리에서였다. 다들 현장에서 같은 답답함을 안고 살던 터라 이야기는 쉬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이거 누가 좀 제대로 정리해주면 좋겠다.” 막연한 푸념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묘하게 자리에 남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서우식 대표가 원숭이 이야기를 꺼냈다. 맨발로 숲을 누비던 원숭이들이 누군가 공짜로 나눠준 신발에 길들여져 굳은살을 잃고, 끝내는 신발값을 받아내는 장수에게 평생 매이게 된다는 우화다. 그는 이 이야기를 책 서문에 쓰면 되겠다고 했다.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푸념과 서문에 쓸 비유가 한 술자리에서 만난 셈이다. 쓰는 일은 내 몫이 됐지만, 책의 씨앗은 그날의 술자리와 서 대표의 그 비유였다. 『애프터 넷플릭스』는 그렇게 우리들의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우화를 맨 앞에 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다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원숭이가 신발을 빼앗겼다는 데 있지 않다. 신발을 신은 것은 원숭이 자신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고, 처음엔 그 신발이 편하고 달콤했다. 글로벌 OTT라는 자본이 들어왔을 때 우리도 그랬다. 제작비를 대주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그 길을, 우리는 위험을 피하려고 스스로 골라 걸어 들어갔다. 달콤한 허니문과 뒤이은 종속은 누군가에게 당한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길의 끝이었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어떤 진단도 남 탓에서 멈춘다. 그래서 이 우화를 글 맨 앞에 세웠다. 쓰는 내내 붙들고 있던 과제는 현장의 오독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야기를 만들려면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작의 수고가 든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시장에 내다 팔아 수익을 내는 미디어 산업은 셈법과 거래의 영역이다. 우리 제작 현장은 이 둘을 자주 혼동했다. 창작에는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비즈니스에는 계약의 원칙과 산업의 논리가 작동한다. 그런데 현장에는 그 자본의 논리마저 감성의 언어로 덮으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자기 자본은 한 푼도 태우지 않고 확정 수익을 안전하게 챙긴 쪽이, 작품이 크게 되자 ‘IP를 글로벌 자본에 빼앗겼다’라고 억울해하는 식이다. 그러나 돈을 받고 IP를 넘긴 것은 계약이다. 빼앗긴 게 아니라 판 것이고, 그 계약에 서명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문제는 IP가 플랫폼에 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IP를 끝까지 쥘 수 있는 계약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그런 조건을 요구할 체력과 협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기본을 비켜선 채 리스크는 지지 않고 과실만 얻으려 한 태도, 그것이 우리를 글로벌 하청기지에 머물게 한 패착이었다. 이 피해의식을 걷어내고 자본의 셈법을 있는 그대로 복기하는 데 집중했다. 바로잡고 싶었던 오독이 업계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책을 다루는 쪽의 인식은 더 위험했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순위표 상단을 점령하고 있으니 이 산업도 잘 나가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굳이 손볼 데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화면에 비치는 흥행과 그 흥행이 누구의 주머니로 흘러드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작품이 세계에서 1위를 해도 제작사는 정해진 제작비만 받고, IP도 수익의 상한도 글로벌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에서, 순위표는 산업의 건강을 말해주지 않는다. 흥행 지표를 산업의 체력으로 오독하는 순간 정책은 헛다리를 짚는다. 지원이 필요한 곳에 지원이 가지 않고, 손봐야 할 거래 구조는 방치된다. 잘나가고 있다는 착시가 가장 비싼 정책 오판을 부른다는 것, 이것이 위정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또 하나의 메시지였다. 2026년 1월, 넷플릭스 한국 진출 10주년 경과 / © Netflix 집필 방식도 술자리의 연장이었다. 챕터 하나를 끝내면 곧장 단톡방에 올렸다. 절망 어린 한숨이 오가던 그 방이, 이번엔 원고가 오가는 작업실이 됐다. 누구는 숫자가 틀렸다고 짚었고, 누구는 이 대목은 현장 감각과 다르다고 받아쳤다. 그렇게 한바탕 이야기를 거쳐 정리된 글은 다시 다른 지인들에게 보내 읽혔다. 받은 의견을 반영해 고치고, 다음 챕터를 또 올리고. 이 책은 그 왕복 속에서 한 장씩 쌓였다. 탈고가 가까워질 무렵 서글픈 일을 겪었다. 원고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을 정작 책 앞이나 감사의 글에 올릴 수 없었다. “이름이 나가면 넷플릭스나 큰 플랫폼 눈치가 보여 회사가 곤란해진다”라는 것이 거의 같은 거절 사유였다. 생태계의 밥줄을 쥔 자본 앞에서, 생존을 향한 고민조차 익명 뒤로 물러서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실명을 올린 소수의 이들은, 그 눈치를 무릅쓰고 한국 미디어 산업을 위해 이름을 내건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렇게 나온 『애프터 넷플릭스』는 다행히 의미 있는 반응을 얻었다. 한류를 문화 현상으로만 그리며 칭송하던 기존 책들과 달리 산업의 시각에서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봤다는 점을, 독자들도 읽어주었다. 인문학적 상상력 쪽으로 기울어 있던 미디어 담론에 셈법과 거래의 언어를 들이댄 데 대해, 안팎에서 아프지만 필요한 지적이라는 공감이 모였다. 인식의 간극을 줄여보려던 처음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가닿았다고, 조심스레 안도했다. © Netflix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동안은 분위기가 잡혀가는 듯했다. 흥행과 산업의 건강을 구분해서 보자는 말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그러나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매기 강, 크리스 아펠한스, 2025)의 세계적 흥행을 지나며 상황은 빠르게 과거로 돌아갔다. 한국 콘텐츠가 또 한 번 세상을 호령했다는 환호가 모든 화면을 덮었고, 국뽕은 다시 넘쳐났다. 그 흥행으로 누가 얼마를 가져갔는지, 우리가 그 수익과 IP를 더 쥘 수 있는 구조였는지를 묻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계약대로 수익이 어디로 가는가는 따질 일이 아니다. 따져야 할 것은, 다음 흥행에서는 그 조건을 우리 쪽으로 끌어올 체력을 만들었는가다. 흥행 한 번에 그 질문이 통째로 묻히는 자리에서, 엄밀한 분석은 분위기를 깨는 잔소리로 밀려난다. 좁히려던 환호와 위기 사이의 간극은 줄기는커녕 더 벌어졌다. 글이라는 형식의 한계도 절감했다. 산업 구조와 셈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채 현장에서 버티는 이들의 애환과 분투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 그 점이 오래 마음에 걸린다. 그럼에도 이 아쉬움은 다음 글을 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미디어 산업의 구조를 다루는 전문서의 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국뽕이 잘 팔리는 자리에서 불편한 진단을 담은 책은 출판사부터 출간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인기 없는 이야기를 계속 기록해야 한다. 우리가 열광하는 화면 너머의 세계가, 신발을 벗지 못해 숲을 통째로 내준 원숭이들의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한탄을 책 한 권으로 묶었듯, 시장이 좁아지더라도 현장의 목소리와 산업의 셈법 사이에서 그 간극을 메우는 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조영신(미디어 연구자) l 『애프터 넷플릭스』를 썼다. 30여년간 미디어 시장을 연구했고, 얼마전까지 SK브로드밴드의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동국대 영상대학원 대우교수다. 최근엔 『숏폼시대-무마찰사회』를 탈고한 후 출판 준비 중이다.
어떤 시간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통과한 시간들이 그랬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는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것. 거대하고, 두렵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동시에, 달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고로, 나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기억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 첫여름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여전히 전부 소화해낼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순간을 돌아본다. < 첫여름 >(2025)은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만들었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 졸업작품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허기를 느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중추이다. 나는 자라면서 여자들이, 나아가 사회의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들이 따갑고 납작한 사회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생존하는지 보고 겪었다. 축적된 분노와 우울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갈망이 맺혔고, 그 창구가 내게는 영화였다. 자연스레,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얄밉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둘은 잠깐 동거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팩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한 장을 나눠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녀의 연애담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신이 나고, 음악을 힘껏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를 서툴게 표현하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잊었다.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 싶었지만 비싸 사지 못한다고 했던 할머니를, 애인 소식을 듣지 못해 앓던 할머니를 어린 나는 그토록 쉽게 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49재에서 불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바레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대웅전 마루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동안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혔고, 기필코 이를 영화에 담아내 갖겠다고 결심했다. ‘관객들이 노인이 아닌 한 여자와 동행했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 다짐 하나를 손에 쥐고 <첫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대웅전 주변에 앉은 영순(허진) <첫여름> 초고는 지금의 완고와 완연히 다르다. 초고는 손녀의 시점에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영순을 이해하게 되는 전개였다. 심지어 삼대가 만두도 빚었었다. 학수도 살아있었다! 어찌 됐든 초고는 실화와 훨씬 가까웠고, 지금의 영화 톤보다 안정적이고 온화했다. 거칠게 쓴 초고를 학교에 들고 갔을 때, 반응이 좋아 어리둥절했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훑기도 전에 나는 졸업작품을 함께 할 학우들과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야 했다. 곧이어 언어로는 절대 서술할 수 없는 고통, 재난 같은 고역의 시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았다. 탈고를 가져가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초고보다 나은 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동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든 환기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다. 동기를 따라 한답시고 스터디카페까지 도달한 나는 밤새 홀로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침 8시였다. 여전히 모니터도, 머리도 텅- 비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맺혔다. 그 고통은 공포였다. 나에겐 시나리오와 나를 보고 모여준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를 꺾지 않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결정을 내려야 다른 팀원들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나를 공포에 내몰았던 존재는 할머니였다. 학교 수업의 일환인 시나리오 크리틱에서 나는 단언했다. “내 졸업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팔아먹은 영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 할머니의 존재는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꾸짖었다. 너 따위가 한 사람의 존엄하고 아득한 삶을 꾸며내려고 하다니. 네게 어떤 자격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위선이고 거짓 같았다. 나는 고작 누군가의 삶을 담보 잡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해일처럼 나를 쓸고 해쳤다. 시간은 내 멱살을 잡아끌어 초고는 어느새 완고 비스름한 것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숨을 엄하게 짓눌렀다. 잡념과 눈물이 차올라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교수님을 찾아갔다. 허겁지겁 정리되지 않은 말과 추잡한 감정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들어주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실 전 제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불편해요.” 불편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초고의 불편함은 내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고를 써 내려갔다. 손녀 석윤이 아닌 영순이 오롯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사람같이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가뿐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초고를 쓰며 나는 손녀의 시선으로 영순의 삶을 그렸다. 20대 여성이 보고 싶은 노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노인을 전시하고 대상화한다는 감각을, 그 숨 막히는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의 출발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죗값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 영순이 주인공인 새로운 고를 A고, 손녀 석윤이 주인공인 이전 고를 B고라고 이름 붙여 팀원들에게 갔다. A고는 등장인물조차 정리가 안 된, 침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 같았고, B고는 더 이상 돌볼 게 없는 장성한 자식 같았다. 촬영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흔들렸다. AB고 대첩은 정확히 반반으로 파가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어느 시점에는 다 큰 자식을 독립시켜 안락하게 노후 준비나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선택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발버둥 쳤다. 팀원들은 굳건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안전한 길을 두고 도박을 하고 싶다는 연출자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회 없이 하라며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A고를 택했다. 나는 할머니 영순의 마음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 <첫여름>을 썼다. 태초부터 주인공은 정해져있었다. 우리 영화의 쟁점은 ‘노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순은 극중 70대였다. 70대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세월을 연기로 속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 배우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제한된다. 당연하다. 노인 배우는 배우이자 노인, 즉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시간을 한정하고 노인 배우가 안전히 연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로케이션도, 이동도 적지 않았다. 나아가, 노년기 삶을 가깝고 정직하게 담아내야 했다. 사려 깊고 섬세한 동료들, 그리고 영리한 준비와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과 같았다.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품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현장은 재난과 축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연출자는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채워줄 귀인을 알아보아야 하고, 계속해서 도움과 소통을 청해야 한다. 나같이 느리고 서툰 연출자에게 <첫여름> 팀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운이었다. 확신이 없어도 현장에 가고 보는 대책 없는 나의 버릇은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난도가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맨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들기지도 않고 무식하게 머리만 박았다. 나는 끝까지 엔딩을 정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도, 팀원들도 만족할 만한 엔딩을 쓰지 못했다. 이상했다. 첫 장면은 머릿속에서 재현될 만큼 확연했는데, 영순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첫여름> 촬영 현장 더불어, 나는 콘티에 약한 연출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이를 장면화하는 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 카메라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다른 동기들보다 없었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욕심을 부린다. 나와 김시진 촬영감독은 우리 둘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 <첫여름>에서는 사찰에서 영순이 춤추는 씬이 공백이었다. 콘티는 있기야 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연출자로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촬영 계획표가 변동되며, 휠체어 씬과 사찰 씬을 다 소화해야 하는 날. 결국 휠체어 씬의 반 이상을 찍지 못한 채 사찰로 이동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찰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찰에서의 춤 씬을 설계하고 설득할 유일한 기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녹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책임한 나를 증오했다. 스태프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고요하고 우아한 자연 속에 고장 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해가 지면 사찰에 다시는 못 온다. 한복을 입고 휠체어를 직접 다 끌며 열연하셨던 허진 선생님은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나는 춤을 포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 나 스스로가 오싹했다. 사찰에서 영순이 춤을 추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했다. 허진 선생님 또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감정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주셨다. 어느 지점에는 춤을 추는 감정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아 어려워하셨다. 배우도, 콘티도, 시간도 모두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찍었다. 이 씬을 찍지 않으면 이 영화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버티고, 설득하고, 성실히 시간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스스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중요한 씬을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허탈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갈수록 내가 그렸던 할머니의 얼굴이 허진 선생님 위로 살며시 드리워졌다. 선생님의 몸짓을 보고 마음에 미약한 움직임이 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49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사찰 씬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싸한 가을 냄새가 코에 맴돌았다. 내가 만약 확신을 가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설득했었다면 그날 사찰 씬 촬영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 장면을 편집할 때마다 나는 현장의 나로 돌아갔다.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다 겨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뭐가 됐든 나는 동료와 배우를 설득해내지 못한 연출자였다. 자책에서 벗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신과 솔직함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연출자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사찰 앞, 춤을 추는 영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은 연애와 같았다. 나는 프리 기간 거의 매주 부산-서울을 통근하며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많았다. 그녀와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팀원들에게 긴 글을 썼다. 확신을 잘 갖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준 배우였다. 나는 분명 허진 선생님에서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허진 선생님은 톡- 쏘는 청귤 같았다. 작고 푸른데, 시면서도 달고, 균일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 가능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외로운 여자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셨고, 사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녀는 그 시절을 버텨낸 여성들이 문신처럼 가진 흉터를 가졌다. 그게 우리 할머니를 닮아 괜스레 마음이 저렸다. 영순은 더 이상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고,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허진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가 닮은 것을 거부하지 않도록 했다. 나의 전략은 허진 선생님이 그녀 자신으로 연기해도, 영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허진과 영순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 초짜 감독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지치고 애정하며 관계를 쌓았다. <첫여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노인을 20대 여성이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판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살아낸 한 여자가 되어 말을 하고, 감정을 서술해야 했다. 내 시나리오의 빈칸들은 내가 진정으로 영순의 신체와 일상을 이해할 수 없음에서 비롯됐다. 별 수를 다 써봐도 영순이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아침에는 어떤 컨디션인지, 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보통 컷 사인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다시 자신이 된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은 달랐다. 나는 5회차 촬영 내내 영순이 된 허진을, 허진이 된 영순을 봤다. 빈칸들은 허진 선생님으로 인해 메꿔졌다. 허진 선생님 손등에 난 검버섯 하나와 주름 한 겹이 꾸며낸 대사 몇 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선배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었고, 나는 신이 나 그 세월을 훔쳤다. 허진 선생님의 몸짓과 숨소리는 내가 연출해낸 것이 아니다. <첫여름> 촬영 중 허진 배우와 허가영 감독 영화 속 영순의 대사, “그놈이 만져주면 동하더라.”는 원래 “그놈이 만져주면 젖어.”였다. 카바레에서 영순과 덕희( 김미향 )는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주고받았었다. <첫여름>을 쓰면서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았던 장면과 대사였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과 리딩을 한 첫날, 선생님은 바로 이 대사와 장면을 빼자고 제안하셨다. 노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기싸움을 했고, 나는 벼랑에 매달려 애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허진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그만큼 허진 선생님 또한 다른 부분들을 내게 선뜻 양보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나의 타협일 수도 있었겠다는 자책이 맴돈다. 그러나, <첫여름>은 배우에게 기대 살을 붙이는 영화였다. 치열하게 설득한 후, 기꺼이 배우를 믿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젊은 내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말투 하나, 몸의 반응 하나까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카바레를 무작정 찾아가 춤을 즐기는 분들과 가까워져 그분들을 영화의 단역으로 모시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까마시고 그 공간이 가진 온도와 냄새를 살갗으로 느꼈던 순간들, 그곳에서 맴도는 언어와 소문들을 훔치고, 노인들과 함께 춤췄던 순간들을 <첫여름>을 만들어가며 가장 사랑했다. 노인은 욕망하는 주체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년 여성의 욕망을 지우고, 외면하고, 혐오한다. 소위 춤바람, 노망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들의 움직임은 분명한 역동을 가진다. 속절없이 늙어버린 신체와 삶 안에서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고, 결국 ‘인간’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대어 존재를 긍정한다. 나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카바레에서 만난 노인들의 흘린 땀에서, 그 몸부림과 사랑에서 노인들이 만들어간 문화와 생존을 보았다. 특히, 영화 속 여성의 욕망은 종종 극단적으로 다뤄진다. 억눌리거나, 폭발하거나. 하지만 그사이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나의 외할머니 역시 사랑을 하고, 춤을 췄지만,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다.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에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첫여름> 편집 기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원체 편집을 못한다. 속옷가게 씬 편집할 때는 손도 못 대고 벙쪄 있던 기억이 있다. <첫여름>을 사랑했기에, 현장이 눈앞에서 재생되고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의 <첫여름>은 처음 그렸던 <첫여름>과 닮고도 많이 달랐다. 이 영화는 더 지저분하고 사람 냄새가 그윽한 영화이길 바랐는데, 내가 더 갔어야 했는데,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 실망이 나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첫여름>이 담아낸 영순의 얼굴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궤적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도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우리가 이야기로서 마주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사랑, 섹스 그리고 삶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동료들이 굳건하고 세밀하게 만들어낸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생명을 다시 직시하고 믿으며 <첫여름>을 만들었다. 칸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아주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을 만나고, 선명히 상영되고, 수상했던 기억을 가끔 꺼내어본다. <첫여름>이 영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면서 내 삶은 질주하듯 전복됐다. 그 변화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감정은 거대하고 짙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만 하다. 시상식 때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순간은 특히 그렇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동료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동료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섹션 수상 현장 그저 신기했다. 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눈이 부셨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봤다. 한편으론 영화제가 지나치게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종종 영화제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문화적 자본을 누리고 소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영화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라 시네프 섹션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또래 감독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영화를 비교하고, 만져보고, 느끼며 신났다. 그들과 소통하며 동시대의 영화인들이 가지는 시선을 봤고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얼굴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발표를 해야 해서 앞줄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영순의 표정과 마음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감정을 일으키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그 귀한 감각을 만끽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다. <첫여름>은 그 많은 관객들 하나하나를 만나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나갔다. 이 날 것의 반응들과 감정들을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연출자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인 관객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는, 내가 왜 창작자로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회와 연결되고, 인간과 대화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랑했던 진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여름>과 함께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이토록 가득해 넘쳐흐르던 첫여름이었다. 허가영(영화감독) l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너를 심을 땅 >(2025), <첫여름>(2025) 연출·각본. * 촬영 현장 및 일부 스틸: 필자 본인 제공
그림1.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프로덕션과정이 가녹음→촬영→가편집→합성→종합편집 등의 과정으로 이어지며 에피소드당 4주 정도 소요된다. ⓒCentral animation studios 프로덕션 과정이란 흔히 본격적인 제작 기간을 말한다. 프리 과정이 우여곡절 끝에 잘 진행되었다면, 제작과정은 그야말로 순조롭게 잘 진행될 수도 있다. 많은 제작사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도 본격적인 제작 과정인 프로덕션 기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돌발적인 변수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는 각 제작사의 PD나, 제작 담당들의 업무가 눈에 띄게 많아지는데, 제작일정, 인력 분배, 신규인원 채용, 외주 진행, 예산, 기타 행정 업무들이 모두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프로덕션 과정에 들어서면 제작팀 전반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로 보자면,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진행된 시나리오-디자인-콘티-애니메틱의 검토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제작에 들어가게 되면서, 감독은 시리즈 연출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담당하며, 미술 감독과 촬영 감독, 그리고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각각의 제작 공정에 대한 책임을 담당하고 진행하게 된다. PD들은 제작과정 전반에 대한 행정관리, 인사관리, 예산관리, 일정관리 등을 담당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일정 변동과 마감관리를 진행한다. 각각의 회사와 제작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내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11~15분 분량의 26부작 작품의 경우 제작 기간을 거의 1년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의 제작 지원 사업이 약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이며, 배급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 방송국 일정, 그리고 투자사 등의 판단 여부 등이 주요하다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작사 입장에서도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제작비가 인상되기 때문에 제작기간을 합리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지점이 제일 크다. 따라서 프로덕션 과정에 있어서 많은 갈등 부분은 작품 제작의 일정과 작품의 퀄리티 컨트롤에 있다. 물론 다른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하에 말이다. 하지만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제작 과정은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일반적인 TV 시리즈의 프로덕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애니메틱을 바탕으로 씬 및 쇼트, 분리된 각각의 영상들이 애니메이터에게 전달된다. 이는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초 단위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한 영상이며 움직임의 궤적, 시간, 대사 등이 포함되는 일종의 에피소드별 제작 설계도이기도 하다. 애니메이터는 이를 바탕으로 할당받은 분량을 점검하고 매일 매일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만들어진 쇼트 단위 또는 씬 단위의 영상들은 애니메이션 감독에 의해 ‘재작업’ 또는 ‘통과’ 결정이 내려지고, ‘통과’ 딱지가 붙은 분량은 촬영팀으로 보내진다. CG로 진행되는 경우는 씬 단위 전체를 각 단위에서 마무리 짓기도 한다. 스톱모션의 경우에는 촬영과 애니메이팅이 동시에 이뤄지며, 이 과정이 끝난 이후 필요에 의해 후반 CG 팀으로 넘겨진다. 일반적으로 감독은 이 과정에서 가편집을 통해 앞뒤 장면의 완성도나 움직임의 훅업, 감정이나 톤의 흐름을 파악하고 전체적인 편집 타이밍을 점검하기도 한다. 이후 CG 실로 넘어간 작업물에는 이후 컴포지팅과 같은 합성 작업이 이뤄지고, 별도의 이펙트 과정이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이 작업 이후에는 성우더빙, 사운드 디자인, 효과음 등등의 기간도 진행된다. 제작 기간을 1년으로 잡는다는 것은, (간단하게 계산해서) 프로덕션 과정 만으로만 본다고 하면 한 달에 두 편 정도의 분량, 즉 한 달에 23분 정도의 촬영본 또는 영상본이 나와야 일정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이는 수치 만으로만 그러하고 실제로는 한 달에 30분 이상의 분량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방영 일자가 정해지는 방식에 자비가 없다 보니, 프로덕션의 과정은 더욱 힘이 든다. 말하자면 TV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100% 사전 제작이 없다. 흔히들 많으면 (26부작 중) 8편에서 10편, 적을 경우는 4편을 사전제작하고 방영에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7년 하반기인 9월에 방영이 시작되는 TV 시리즈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제작사가 8편의 작품을 사전에 만들어 두고 매주 한편씩 방영을 한다고 하면, 보통 4개월이 지난 12월 말 정도가 되면 제작 속도와 방영 속도가 거의 비슷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에피소드 16편 정도가 방영되고 나면, 제작사는 제작 일정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한 편의 시리즈 에피소드 제작 과정을 4~6주 정도로 보는데, 각 공정별로 2주 정도씩 구분하고, 업무를 연달아서 작업하게 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풀 3D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블라킹-애니메이팅-조명/FX렌더링-합성을 6주 정도 사이클로, 2D애니메이션은 레이아웃-원화-동화-촬영-합성 등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촬영-가편집-합성-FX과정을 6주 동안에 반복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 에피소드의 제작 과정은 1편이 완성되는 6주 동안 다른 두 편이 동시에 맞물려 진행되어야 방영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당연히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만약 하나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 모든 일정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모든 제작과정에는 일정이든, 퀄리티든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프리프로덕션을 공고하게 하는 이유도 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 가끔 업계의 선배들의 이야기처럼 전설 같은 해결사(문제가 생긴 작화와 동화를 불과 며칠 만에 해결해 버린다든지 뭐 그런 정말 전설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외주 특공대들을 이용한다든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일은 부끄럽지만, 야근이다. 많은 업계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야근이 부지기수다. 영상 관련 종사자들의 거의 모두가 이런 경험이 있는데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는 프로듀서의 잘못이며, 일정 계산의 착오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가끔 방송에서 지난 시리즈들의 이야기를 함께 묶어 방영하는 에피소드, 보통 총집편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방영된다면 사고가 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야심이 있었다.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TV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쫓는 포기와 무성의를 벗어나고자, 건물은 허술했지만 스튜디오의 젊은 스태프는 우리의 의욕에 답하며 힘을 모아 주었다. 비상 걸린 1년이 시작되고 우리는 맹렬히 일했다. 수면 부족과 과로, 너무 긴장해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중략) 몸이 많이 망가졌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그걸 격려로 버티며 일을 끝냈다. (중략) 텔레비전의 무서움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반복해서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텔레비전이었다. 뭐든지 일상화는 탐욕. 비상사태를 일상으로 요구받으며 알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TV시리즈」, 「아사히신문」 1987년 9월 21일 자에서 부분 인용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야자키의 고백(?)에도 언급된 것처럼 ‘비상 걸린 1년’은 지금 2017년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업계로 진출하고 있는 젊은 대표님들과 사장님들도 모두 이러한 상황을 겪어 왔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과 비정상적인 과정을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점점 이런 관행(?)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현실성 있는 일정이, 또는 회사의 규모에 맞는 작품과 일정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작은 스튜디오가 지속적으로 인력을 유지하고 다른 프로젝트로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스튜디오도 지난 3년 동안 공식적인 야근이 없었다. 아니 한 일주일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야근을 하게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을 해드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모든 스태프, 아티스트 분들에게 건강과 안녕을...) 그림2. 제작과정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트 양식. 이는 2D, 3D, 스톱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보통 제작 과정에서 전달되어야 하는 상황들과 진행사항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각 에피소드 마다 씬 단위로 의견과 전달사항, 진행과정등이 담긴다. 이어서 후반 작업이다. 제작되는 방식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후반 작업은 사운드, 성우녹음,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납품과정까지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에피소드 하나당 6주 정도의 사이클을 겹쳐서 진행된다고 본다면, 후반 음악 과정은 2~4주 정도로 소요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성우들의 녹음은 2주에 2~4편을 묶어서 진행하는데,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경우에는 방송 1~2주 전에 심의를 진행해야 하므로 방송 일정 최소 한 달 전에 진행한다. 우리같이 작은 스튜디오의 경우 초기 몇 편 정도는 감독이 함께 녹음 과정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별도의 녹음 연출자의 책임 하에 진행된다. 음악의 경우는 보통 녹음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곳의 소속 작곡자나 대표가 진행한다. 주제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외 캐릭터마다 테마곡들이 존재하는데, 시리즈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음악의 경우는 20곡부터 많게는 40여 곡에 이른다. 많은 녹음 스튜디오들이 평소에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을 제작해 두고, 애니메이션 감독과 작곡가가 에피소드의 톤을 확인하면서 음악을 선정한다. 성우 녹음과 음악, 그리고 효과음 등의 작업이 완료되면, 마지막으로 감독의 종합 검토가 이뤄진다. 감독은 최종적으로 취합한 영상과 사운드들을 점검하고, 종합 편집을 진행하는데, 이때 마지막 편집이 진행되거나, 재촬영 또는 재녹음 등이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일정 문제 때문에 간단하게 넘긴다. 왜냐면 방송 심의에서 수정 사항을 요구하거나 불가 판정 등이 오기 때문이다. 특히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대사나 행동, 묘사되는 캐릭터 등에 불필요한 요소가 있을 경우는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심의에서 별다른 지적이 없으면, 이제는 방송이다. 공중파에서 에피소드 1편이 방송될 때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하지만 마음에 남는 순간은 마지막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이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제작하는 작품은 방송에서 보기 힘들다. 시간도 없고, 이미 너무나 많이 봤고, 그리고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편은 가능하면 다 함께 본다. 많은 아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자본, 시간, 일정, 능력, 마니아 또는 오타쿠, 노동, 열정, 정당한 대가라는 단어들이 그 마지막 편이 방영될 때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 편이 방영되면, 프로젝트의 종료를 알리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매번 에피소드에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이지만, 그거 하나 믿고 덤벼들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작품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은 같이 간다. 말은 안 해도 스태프들은 방송 마지막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자기 이름만은 크게 보고 빨리 발견한다. 부모님들이나, 친구, 친척, 할머니들에게도 보여준다. 그게 ‘1년 동안의 비상사태’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눈물겨운 보상이다. 하지만 진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들의 열정이 허비되지 않도록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도록 말이다. 짧은 기간 동안 짧은 지면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애니메이션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어느새 마지막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하였는데, 무게감과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게 다가왔다. 글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탈고도 하지 못한 글들이었다. 이글도 아마도 탈고조차 못 할 듯. 그러나 아직 풀지 못한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많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의 현실도 냉정하게 보여주지 못했고, 스태프들의 인건비 문제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또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도 다음 에피소드를 준비해야 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또 준비해야 한다. 이 기간이 보릿고개라 스태프들의 고용유지를 위한 방안도 준비해야 하고, 은행 대출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프로젝트의 앤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으니까. 다들 파이팅이다. 스태프들, 아티스트 분들, 해결사분들, 그리고 대표님들. 그리고 애니메이션 마니아 분들 모두. 우린 또다시 ‘1년 동안의 비상사태’를 준비하며, 좀 더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