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닥파닥 비행선
- 감독
- 문지민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문선희, 오인성, 한상덕, 장승길, 손원일, 엄상현, 홍경화, 이연희, 윤세웅
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작품을 보고 있었다. 피와 폭력, 욕설 등 표현의 수위가 제법 높은 작품이었는데 두 그룹의 가족 관객이 눈에 띄었다. 감독이 상영 전 가벼운 경고(?)를 했지만 작품이 중반에 이르도록 요지부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의 아이들은 잠시 극장을 나간 듯했으나 이내 다시 돌아왔고, 다른 가족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가족 모두 상영의 중간에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은 주최 측이나 한참 동안 아이들과 영화를 감상한 부모들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나 보는 움직이는 그림이 잔인해 봤자 얼마나 잔인할까 싶었던 걸까. 이것이 현재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한 장르로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TV,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대부분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오후 시간에 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해외에서는 다양한 장르,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한국 작가들의 장,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단편은 이미 2000년대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만 해도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정다희 감독의 < 의자 위의 남자 >와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가 각각 대상을 수상하며 독창적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편 역시 이성강 감독의 < 마리 이야기 >와 성백엽 감독의 < 오세암 >이 안시에서 2002년, 2004년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 안재훈 ,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 이대희 감독의 < 파닥파닥 >, 장형윤 감독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등이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은 영화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고 장편은 < 블루시걸 > < 아마게돈 > < 원더풀 데이즈 > 등 과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화제성에 비해 부진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철저히 상업 논리에 따르는 국내 거대 배급사들이 아동을 타깃 삼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 돼지의 왕 >은 첫선을 보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확보의 한계에 부딪히며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는 청소년, 여성 타깃의 감성적인 작품임에도 흥행을 위해 국내 시장의 애니메이션 주요 수요층인 가족 관객 중심의 홍보를 선택해야 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해외 애니메이션들도 픽사나 드림웍스, 디즈니 등의 작품 외에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수요가 일부 마니아에 국한돼 있는 형편이다. 반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겨울왕국> 처럼 막대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뛰어난 퀄리티의 영상과 어른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전 세계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픽사의 작품 퀄리티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형성을 지닌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더욱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힘 있는 스토리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매력과 울림을 가지고 있는 국산 창작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즐기고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 앞에서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오히려 낮은 퀄리티와 비슷비슷한 내용의 아동 타깃의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 극장가에서 동급으로 취급되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국내 감독들은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덕표 감독의 성인을 위한 국내 최초의 VOD 전용 애니메이션 < 발광하는 현대사 >, 현대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오롯이 옮겨낸 안재훈 감독의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등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애니메이션은 작품들의 실패를 딛고 다양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엄태화 , 엄태구 형제의 < 잉투기 >를 보는 내내, 엉뚱하게도 미국영화 < 브릭 >이 떠올랐다. 이제는 스타 배우이자 감독이 된 조셉 고든 레빗이 고등학교 내 살인과 마약과 범죄를 해결하는 ‘고딩’을 연기했던 <브릭>은 그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로저 에버트에게 “고전 미스터리 탐정물의 자세를 현대적인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로 완벽하게 바꾸어놓았다”는 인상적인 평을 받은 바 있다. 뜬금없이, 2008년 개봉한 청춘 필름누아르 영화의 기억을 길어 올린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 브릭 >은 저예산에 20일이란 짧은 촬영 기간 동안 젊은 배우들을 데리고 신인 감독(이후 조셉 고든 레빗과 < 루퍼 >를 함께 만든 라이언 존슨)의 아이디어와 연출력, 그리고 7년을 준비했다는 시나리오로 승부해 ‘작품’을 만들어낸 케이스다. 개인적으로 <브릭>이 뇌리에 각인된 이후 종종 리얼리즘과 작가주의에 과하게 경도되는 우리 독립영화들을 확인할 때마다, 우리는 언제 이같이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저예산임에도 장르성을 경유하는 동시에 단단한 이야기와 캐릭터, 개성을 갖춘 튀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바람과 근심을 지녀왔었다. 그러기를 수년째, 드디어 < 잉투기 >가 왔다. ‘잉여’ 담론이 흥했던 2013년을 관통한 <잉투기>에서 < 브릭 >의 그 활력과 생동감을 맛본 것은 실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영자로 대변되는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캐릭터, 피해자인 칡콩팥 ‘태식’이 미스터리한 가해자 ‘젖존슨’의 실체를 파악해 나가는 내러티브 구조, 10대부터 30대까지라면 꽤나 널리 공감할 ‘갤러리’, ‘현피’, ‘먹방’ 등 인터넷 ‘루저’ 문화에 관한 생생한 묘사, 그리고 태식과 희준으로 대변되는 하릴없이 부유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청춘’들에 대한 복잡미묘한 시선까지. 특히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지질할 수밖에 없는 ‘잉여’들을 극의 중심에 끌어들이는 것 자체로 (20대들의 박탈감이나 ‘일베’의 일면을 연상시키는)동시대성을 획득하는 한편 위로와 관조, 냉소를 넘나드는 거리 두기에도 성공한다는 점에서,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은 장편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 브릭 >이 필름누아르 안에 청춘과 성장 기운을 녹여내는 기성품으로서의 활력이 도드라진다면, < 잉투기 >는 성장영화의 내러티브를 지속적으로 비틀면서도 탈주까지는 시도하지 않는 묘한 활력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전형적이고 획일적인 장르성은 거부하지만 동시대 영화관객들과의 친밀도는 계속 높여나갈 수 있을 만큼의 영화적인 전형성과 보편성은 획득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의 반 타의 반 방임과 자학과 인정욕구를 넘나드는 이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공력이 실로 놀라웠다. 엄태화 감독은 레퍼런스로 < 400번의 구타 >와 < 허공에의 질주 >, <바보들의 행진> 등을 꼽았다고 한다. < 잉투기 >의 요소요소를 되새기게 하는 리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잉투기>에는 분명 저 작품들 모두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젊은이의 고민들이 2013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얼굴에 가로 새겨져 있다. 데뷔작에서 확인시켜 준 동시대성과 활력이라면, 엄태화 감독은 청춘의 이야기를 넘어 어떤 장르든 제식대로 요리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부디, 묵직한 듯 싱싱하고 반골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차기작으로 이내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