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dB 페미니즘 : 당신 곁에 페미니즘
- 감독
- 배다현, 임다은, 천윤희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장서진, 진시현, 박진희, 이나라, 익명의 인터뷰이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이외 사진: 필자 제공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에는,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을 참 두려워했다. “걔 걸레야.” 돌아보면 나는 도덕과 규범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무척 신경 쓰는 학생이었음에도 주변에서 저 말이 들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걸레가 뭐 어때서.’ 창녀가 뭐 어때서. 문란하면 어때서. 난잡하면 어떻다고. 어린 마음에도 뾰족하게 갖고 있던 반감이, 수십 년이 지나 곧 사라질 미아리 텍사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여성들을 궁금하게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목적으로 걸레니 창녀니 하는 사람에게는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단어를 구성하는 속성들에는 그저 끌리고 끌어안고 싶다. 스무 살이 넘어 페미니즘을 접한 뒤 성매매가 얼마나 젠더 폭력이고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지를 배우는 와중에도, 나는 자꾸 성노동론을 찾아 읽게 되고 성노동자라는 존재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 좋았다. 물론 이런 생각들조차 내 머릿속의 관념일 뿐인지라 구체적인 현장에 들어가서는 내려놓아야 했다. 아니, 내려놓으려 했지만 결코 투명해질 수는 없는 나라는 사람의 위치성을 확인해야 했지만. “몰래 오가며 잿더미를 벗겨 낸 한 달, 그 전보다 많이 보았고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도 이해한다고도 말하지 않으련다.” - 김도희, 『하월곡 88』, 79쪽. 미술 작가 김도희는 2015년에 <걸레질>이라는 영상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미아리 텍사스에 들어가 골목에서 만나는 이모들에게 걸레를 빌려서는, 화재가 나고 10년 이상 방치된 건물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바닥에 어지러이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콘크리트 벽이 나올 때까지 벽지를 벗겨 낸다. “빈 거울방은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도 내 행위가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간단히 증명해 낸다. 무너진 샹들리에와 녹아내린 의자, 썩어 뒹구는 합판들을 치운 후 겉은 그을고 속엔 붉은 녹이 올라온 거울들을 닦는다.”(같은 책, 20쪽) 나는 그가 걸레질한 건물이 어딘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작가가 그곳에 머물던 때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2025년, 나 역시 그 건물에 있었다. 2025년 1월의 어느 날, 골목의 한쪽 끝인 1구역을 부순다고 했다. 촬영을 하고 싶었다. 새벽부터 골목에서 대기하다가 평소 지나다니며 보았던 방치된 건물의 깨진 유리문 사이로 들어갔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딛자 발밑이 으스러졌다. 나무가 다 삭아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계단 난간을 붙잡고 용을 써서 올라가니 여태껏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깊은 물 아래에 잠긴 도시처럼, 천장 없이 건물 내부의 형태만 남아 있었다. 회색빛의 벽과 바닥. 불에 그을린 벽. 그리고 곳곳에 콘크리트를 뚫고 자란 나무들. 아마 10년 전 김도희 작가가 물에 젖은 걸레를 뿌리에 덮어 주었을 나무들. 죽지 않게 하려고. 나는 철거 현장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꽁꽁 언 옥상을 기다시피 이동했다. 지난 3년간 백 번 이상은 지나다녔을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눈앞에서는 포클레인에 건물이 허술하게 쓸려 나가고 있었다. 한때는 성매매 업소로, 폐업 이후 고양이 집으로, 또 홈리스의 은둔처로도 쓰인 건물들이었다. 그 뒤로 50층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가 보였다. 꼭 같은 건물이 이 골목에 생길 것이다. 카메라를 쥔 손이 금방 얼었다.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마침 골목에서 자주 만나던 고양이가 건너편 옥상의 얼음판을 능숙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마루야!” 내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가 달아나고, 결국 공사 관계자에게 들키고 말았다. “가세요! 찍지 마세요!” 밀어내는 손짓을 하는 그에게 나는 모른 척하며 인사에 화답하듯 손을 흔들었다. 능청스럽게 그럴 수 있었던 건 며칠 전 그 사람과 대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이 골목에서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저도 여기 없어지는 거 마음 안 좋아요.” ○○건설이라 적힌 작업복을 입은 그는 아무래도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은 얼굴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이제는 펜스를 세워야 한다”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사방에서 “우리는 갈 데가 없다”, “쫓아내려면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골목에서 항의하는 미아리 주민들과 경찰, 용역과 연대자 들이 뒤엉켰다. 내가 미아리 텍사스를 드나든 이래 가장 시끄러운 날이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까지 건물 안에서 몰려나와 펜스를 설치하지 못하게 막았다. 구청의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이주를 강요받았지만 몇 년째 떠나지 못하는, 혹은 안 떠나길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이 골목에 마지막까지 남을 여성들. 내가 막연히 궁금해하고 기다렸던 얼굴들. 미아리 텍사스의 업소는 유리방이 아니라 벽면으로 가려진 형태라 바깥에서 내부를 볼 수가 없다. 그 집이 그 집 같다. 진상 손님이 경찰에 신고한다며 자기가 낸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가 현관 이모(호객 행위자)에게 맞고 쫓겨났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대문이 다 닫혀 있어서 자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단다.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고 돈만 뺏겼다고. 듣고 다들 어찌나 웃었던지. 내가 처음 미아리 텍사스에 들어갔던 2021년 말, 라포(rapport)라는 걸 형성해 보겠다고 막 쪄낸 백설기 한 박스를 들고 골목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쪽지도 만들었다. 이러이러한 작업을 하고 싶고, 인터뷰를 원한다고 적었다. 사실 내가 만나고 싶은 건 성노동자인 아가씨들이었는데 문에 노크하기도 전에 가게 입구의 현관 이모들이 떡을 다 집어가 버렸다. 나중에는 이 현관 이모들이랑 정이 많이 들어 버리지만. 몇 년간 골목을 다녀도 아가씨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잠옷 입은 여자가 지나갈라치면 머뭇거리다 말을 못 걸기 일쑤였다. 나를 보는 표정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막연히 그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몇 년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내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척시켜 주었다. 그들은 미아리 텍사스라는 하나의 생태계를 확인하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88정화위원회라고 하는, 소위 미아리 텍사스를 대표한다는 이들에게 미아리의 역사에 대해 많이 들었다. 내심 이들이 아가씨들에 대한 이주 보상도 신경 써줄지가 궁금했지만 부러 따져 묻진 않았다. 골목을 쏘다니다 마주친 식당 이모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 술자리에서 들은 이상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다. 나처럼 고양이를 돌보는 업주의 환대를 받아 밥도 얻어먹고(업소에서 해주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 집 개랑 놀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비 오는 어느 날엔 포장마차에서 손님한테 맥주도 얻어 마셨다. 한때 영화판에 있었다는 그 남자는 “지금은 노가다를 하며 한 달에 한 번 여기 온다”라고 했다. 종종 들렀던 그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가게를 접고 나갈 때까지 내가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서 온 거라고는 했지만 다음에 찾아가면 자신의 포장마차를 이어받아서 해보라고 한다든가 또 다른 날에 가면 어느 가게에서 일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40년을 그 골목에서 일했던 그는 미성년자를 많이 고용했을 1990년대에는 가출한 청소년들의 손에 돈을 쥐여 주고 보내기도 했단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로 기억하는데 여전히 술을 팔며 야간에 일을 했다.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식을 혼자 다 키웠고 또 많은 재산을 딸에게 주었다고. 그런데도 생활의 반경은 여전히 포장마차 주변인 것 같았다. 낮에 골목을 지나갈 때면 포장마차 한쪽에 놓인 긴 의자에서 늘 주무시고 계셨다. 성노동자로 일한 지 20년을 훨씬 넘긴 미아리 텍사스 이주대책위원회(이하 이주대책위) 위원장은 미아리가 이제 고향 같다고 했다. 그와 나누었던 몇 번의 긴 대화는 작업뿐 아니라 내 삶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와 처음 연락이 닿은 날을 잊을 수 없다. 구청에서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한 이후 골목에 “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맞는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내심 설렜다. 현수막에 적힌 연락처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여러 번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걸려 온 전화에 급히 밖으로 나가 긴장하며 받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는 나에게 “기자님”이라고 했다.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위원장님을 비롯한 이주대책위 사람들은 한동안 내가 언론 쪽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그럴 능력은 없었다. 대신 매주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에 나가서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하며 버텼다. 그들은 어느새 나를 자신들의 편이라 여겼다. 나 역시 기꺼이 그런 위치로 이동하길 자처했다. 나는 프레임 밖에서 뭐라도 돕고자 ‘진짜’ 기자들에게 집회 소식과 투쟁의 목적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언론사에 연락을 돌리고 해당 기사나 방송이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답답함이 있다. 이주대책위의 ‘투쟁하는 이미지’와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는 구호는 탈성매매라는 틀 안에 흡수되고,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자료 화면으로만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의 투쟁은 철거민의 투쟁이었다. 나는 이 지점이 언론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비록 이들에게 이주 보상을 받을 법적 권리가 없더라도, 불법에 ‘지역의 오명’으로 치부되는 장소더라도, 이들이 한때 돈을 많이 벌었더라도, 그리고 그 돈을 가족을 부양하는 데 썼든 흥청망청 써버렸든 간에, 재개발 앞에서 건물주만 돈을 벌고 그 땅에 발붙이고 살던 사람들은 더 취약한 곳으로 밀려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성 인권 단체들 역시 아무리 성매매가 사회악으로 여겨져도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재개발 앞에서만은 함께 싸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현장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수시로 떠올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증명을 하기 위해 더 애써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포주에게 조종당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사연을 팔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사정이 힘들다 애원해도 비난을 받는다. <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 >의 2부에는 이런 고민들이 녹아 있다. 마지막 남은 업소에 대한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한 성노동자와 나란히 서서 스크럼을 짠 적이 있다. 담배 피는 그의 손을 무심히 쳐다보았는데 그는 깔깔 웃으며 매니큐어를 지웠다고 했다. “아씨, 유튜브 댓글에 누가 매니큐어 한 거 사치스럽다고 욕하잖아요.” 아씨, 속상했다. 미아리 텍사스는 그 어떤 곳보다 프레임 안팎에서 많은 일을 겪은 현장이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왔다. 정확히는 가도 볼 수가 없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립다. 나는 미아리 텍사스가 그립다. 깨지고 낡은 골목의 바닥이. 은은한 세제 냄새. 빗물이 흘러 들어가던 바닥의 구멍들. 평소와 달리 화려하게 꾸민 아가씨들의 얼굴들, 친한 현관 이모와 세 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던 새벽 5시의 가을 공기. 여름이면 천막 위로 드리워진 오동나무 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던 것도. 그리고 찢어진 천막 사이로 들어오던 강렬한 빛. 그 장소에서 발생했던 죽음과 폭력, 고통까지 잊지 않으면서, 그립다고 말하고 싶다. 내 마음 가는 대로 골목을 마구 찍은 휴대폰 사진 8,000장이 남았다.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 상영을 시작하고 비슷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그리움의 정서를 전해 주었다. 이제 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나는 “집창촌이 그립다”라는 말을 해도 되는 여지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그럼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도 좀 더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거냐 저거냐를 따져 묻는 거친 이야기들이 지배하지 않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동안 겪은 내 경험도 그 장소에 포개어 본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내가 말하는 그리움은 낭만화된, 그곳을 대상화해서 가능한 감정인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늘 있다. 물론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대상화는 피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 수밖에 없고 타자에게 어느 정도 나를 투영해야만 연대할 수 있기도 하니까. 그게 또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재현이라는 것일 테고. 실재하는 존재 앞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할 뿐이다. 미아리 텍사스의 가까이에 있으면서 변하기도, 더 강화된 생각도 있다. 다만 곁에서 겪은 구체적인 이들의 생생한 모습과 말, 장소에 대한 감각만은 오래 간직하고 싶다. 골목의 모든 건물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에 캣맘과 함께 공사장에 들어간 적이 있다. 깨진 잔해들 사이에서 제 모양을 유지한 채 덩그러니 놓인 전등을 발견했다. 미아리 텍사스 골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사물은 한낮에도 어둑한 골목을 밝히던 크고 둥근 그 전등이었다. 그게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를 다 돌아다녀 봤다. 내가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반쯤 자랑스럽게 말하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서로가 긴장 없이 웃던 순간의 연결감도. 모두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전국에 성매매 집결지가 정말 몇 남지 않았다. 남은 곳들만은 도시 재생이나 재개발이라는 명목은 아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충분히 반영된 (사라짐만은 아닌)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자 한다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2026년 8월 현재. 미아리 텍사스 골목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큐-코멘터리: 프레임 밖의 문장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윤미(영화감독) l <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 >(2021), < 깃발, 창공, 파티 >(2019), < 콘크리트의 불안 >(2017) 등 연출.
<해피엔드> / © ㈜명필름 ***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 ’ 가 진행 중이다. 1919년 < 의리적 구토 >로 시작해 2025년 개봉작까지 8,4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 역사를 ‘영화 제목’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목은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문장(혹은 단어)이지만, 이를 통시적으로 관통해 보면 제목 하나하나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 제목은 한 편의 영화를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가 태어난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는 문장이다. KMDb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두 편의 글을 공유한다. 1970~90년대 ‘저항’의 움직임 을 다룬 문주화 영화평론가에 이어, 이윤종 영화 연구자가 1980년대 한국영화계에 발생한 ‘에로티시즘’ 영화의 붐을 제목에서 읽어낸다. ***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이 최초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등 유럽 모더니즘 감독들과 전후의 일본 신세대 감독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실험적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각적 에로티시즘을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 50년대 중반부터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영화는 물질적 제작 여건이 상당히 열악했던 50년대부터 세계영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갔던 셈이다. 영화의 제목에서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부터이지만, 에로티시즘의 조류는 50년대 중반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영화적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살펴보며 제목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에로티시즘, 세계영화의 문법 앞서 언급했던 1950년대에 등장한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은 윤인자 가 주연을 맡았던 < 운명의 손 >(한형모, 1954)의 한 장면이다. < 쉬리 >(강제규, 1999)와 유사한 내용의 스파이 스릴러물인 <운명의 손>에서 그녀는 북한군 첩보원 역을 맡아 남한의 방첩대원과 사랑에 빠져 그와의 비극적 결전 장면에서 아주 짧은 입맞춤을 나눈다. 공교롭게도 윤인자는 한국영화 최초의 욕조 신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광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에서 그녀는 성악가를 지망하는 고학생으로서 온천장에 여행을 가서 욕조 안에서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고 앉아 있는 장면을 촬영한다. <운명의 손>의 키스 신은 뽀뽀에 가까운 데다 다소 성(聖)스러운 느낌마저 들어 에로틱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를 선정적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며, <그 여자의 일생>의 어깨 노출 장면은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연출이었던 만큼 윤인자는 50년대 최고의 섹시 배우로 등극하게 되었다. <운명의 손> 중 한국영화 최초 키스 신 60년대에는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한 군부 정권의 강력한 검열로 인해 에로티시즘의 표현이 불가능했을 것 같지만, 세계영화의 조류를 따르려는 한국영화계의 강렬한 몸부림으로 인한 것인지, 뒷모습이지만 여성의 누드 장면이 최초로 등장해 감독이 검찰에 기소되고 벌금형이 부과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현목 감독의 1965년작 < 춘몽 >이 그것으로 일본의 실험적 핑크영화인 <백일몽>(다케치 테쓰지, 1964)의 대본을 번안해 일본적인 화면을 유럽 모더니즘, 특히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상징주의가 결합된 무대로 변형해 연출한 것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영상 실험을 중시한 <춘몽>에는 여주인공이 제목처럼 ‘봄의 꿈’을 표현한 추상화와 같은 텅 빈 백화점에서 누드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장면이 뒷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히는데, 여배우는 실상 살색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는 60년대에 상당히 많아서 문예영화의 다수가 지금의 기대치로는 매우 수위가 낮은 정사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승옥 소설가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하는 < 안개 >(김수용, 1967), 오영수와 차범석의 동명소설을 각각 원작으로 하는 < 갯마을 >(김수용, 1965)과 < 산불 >(김수용, 1967), 이어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을 들 수 있다. 정진우 감독의 청춘영화인 < 초우 >(1966)와 < 초연 >(1966)도 유사한 흐름 속에 있었으나, <춘몽>에 이어 검열의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한 비운의 영화는 <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69)였다. D. H. 로렌스의 영국 모더니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서사의 <벽속의 여자>는 성 불구인 남자친구와 혈기왕성한 다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성( 문희 )의 방황을 내세워 박종호 감독이 외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했다. <춘몽>, <벽속의 여자> / © 세기상사(주) 70년대에 접어들면 < 해변의 정사 >(신봉승, 1970, 필름 소실), < 속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70), < 그날밤 생긴 일 >(이영우, 1971), < 벽속의 남자 >(박종호, 1972), < 몸 전체로 사랑을 >(홍파, 1973) 등의 영화 제목이 눈에 띈다. 60년대의 마지막 해에 감독이 불구속 기소되긴 했으나 제법 괜찮은 흥행을 거둔 <벽속의 여자>의 속편과 더불어 유사한 제목의 남성 버전 영화가 제작되고, 다른 영화들도 이 영화처럼 삼각관계를 앞세운 연애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의 영화적 에로티시즘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집약된다. 첫째, 작가주의 감독인 김기영 감독과 하명중 감독이 에로티시즘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을 70년대에 꾸준히 만든 것이 하나이다. 김기영 감독은 1960년작 < 하녀 >에 이어 < 화녀 >(1971), < 충녀 >(1972), < 육체의 약속 >(1975), < 이어도 >(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 수녀 >(1979), < 느미 >(1980)에 이르는 ‘여자’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사회적 욕망과 엮어서 펼쳐냈다. 하길종 은 미국 유학 후 화려하게 데뷔한 만큼 여러 논란(표절이 아님에도 이탈리아 영화 표절론 및 동성애 묘사 논란 등)에 휩싸이기도 했던 < 화분 >(1972)에 이어 < 수절 >(1973)과 < 한네의 승천 >(1977)에서도 다소 높은 수위의 정사 장면을 선보이는 시도를 했다. <육체의 약속>, <한네의 승천> / © ㈜동아수출공사, 동국대학교 둘째,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난과 외압에 의해 성매매업에 종사하게 되는 젊은 여성들의 고난과 불운을 다루는 ‘호스티스 영화’의 등장이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인 < 별들의 고향 >(1974)에 이어 김호선 감독의 < 영자의 전성시대 >(1975)가 젊은 호스티스의 방황과 좌절을 그리며 침체를 겪던 70년대 충무로에 촉촉한 단비와도 같은 대흥행으로 가뭄을 해소시키자 대다수의 감독들이 호스티스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홍파 감독의 <몸 전체로 사랑을>도 여자친구와 호스티스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를 그리고 있고 하길종 감독도 < 속 별들의 고향 >(1978)을 연출했던 것을 감안하면, 호스티스 영화의 시작은 이미 1973년부터 예고되어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마저 허물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중현의 동명 히트곡을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호스티스 영화 < 미인 >(이형표, 1975)을 포함하여, < 여자들만 사는 거리 >(김호선, 1976), < 나는 77번 아가씨 >(박호태, 1978), < 미스양의 모험 >(김응천, 1978), <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8), <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엽, 1979), < 가시를 삼킨 장미 >(정진우, 1979), < 속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9), <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박용준,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 >(김호선, 1979)등이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계보에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 호스티스 영화의 제목들은 여성의 노동과 욕망을 비유와 은유를 거쳐 우회하지 않고 매우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영자의 전성시대>, <미인>, <꽃순이를 아시나요> / © ㈜태흥영화, 김미연 한국적인 ‘에로’가 꽃피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에로티시즘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호스티스에서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확대되며 다양한 장르물 속에서 에로티시즘이 구현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에로방화 [1] 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1982년 초에 개봉한 정인엽 감독의 < 애마부인 >으로, 이 영화의 제목은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프랑스 영화이자 작품성 있는 에로물로 유명한 < 엠마뉴엘 Ⅰ >(쥐스트 자캥, 1974)을 연상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다만 ‘말을 사랑하는 부인’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부에서 문제삼은, ‘애마’의 어감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말 마(馬)’ 자가 삼베를 뜻하는 ‘마(麻)’로 바뀌었다는 슬픈 비화 또한 항상 영화를 따라다닌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애마부인>은 중산층 가정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커리어에만 너무 매진하여 아내와 가정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모던한 주제의 영화다. <애마부인>의 등장 이전부터 < 아낌없이 바쳤는데 >(박호태, 1980), < 화려한 경험 >(이상구, 1980),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진우, 1981), < 색깔있는 여자 >(김성수, 1981),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1981), < 육체의 문 >(이기환, 1981), < 피막 >(이두용, 1981)등의 영화에서 멜로드라마, 시대극, 스릴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급과 삶의 방식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애마부인> / © 최재용 에로방화는 크게 현대극과 사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대극은 <애마부인>을 포함하여 < 사랑의 노예 >(고영남, 1982), < 반노 >(이영실, 1982), < 자유처녀 >(김기영, 1982), < 나비품에서 울었다 >(임권택, 1983),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정지영, 1983), < 김마리라는 부인 >(정인엽, 1983), < 엑스(X) >(하명중, 1983), < 오마담의 외출 >(김수형, 1983),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 < 달빛 멜로디 >(이황림, 1984), < 밤의 열기 속으로 >(장길수, 1985), < 육식동물 >(김기영, 1985), < 장사의 꿈 >(신승수, 1985), < 여왕벌 >(이원세, 1985), < 달빛 사냥꾼 >(신승수, 1986), < 두 여자의 집 >(곽지균, 1987), < 레테의 연가 >(장길수, 1987), < 안개기둥 >(박철수, 1986), < 매춘 >(유진선, 1988), < 성공시대 >(장선우, 1988), < 성야 >(신승수, 1988), < 아메리카 아메리카 >(장길수, 1988), < 그후로도 오랫동안 >(곽지균, 1989), <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송영수, 1989), < 불의 나라 >(장길수, 1989), < 서울무지개 >(김호선, 1989), < 추억의 이름으로 >(유영진, 1989), < 물의 나라 >(유영진, 1990)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이들 현대극은 급속하게 산업화된 한국 사회에서 이전과 달라진 입지를 가진 여성들이 변화된 연애와 결혼, 생계와 직업 세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국적 근대화의 빛과 어둠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극은 <피막>을 포함하여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1984), < 땡볕 >(하명중, 1984), < 내시 >(이두용, 1986), < 변강쇠 >(엄종선, 1986), < 뽕 >(이두용, 1985), < 태 >(하명중, 1986), < 씨받이 >(임권택, 1986), < 사노 >(엄종선, 1987), < 감자 >(변장호, 1987), < 사방지 >(송경식, 1988), < 아다다 >(임권택, 1987), < 업 >(이두용, 1988)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대다수가 칸, 베를린, 베니스는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나 북미권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며 영화사상 거의 최초로 한국영화를 세계 무대에서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에로사극은 전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양반 가부장제에 빗대어 80년대의 신군부 독재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상) <무릎과 무릎 사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 ©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뽕> / © 정지훈,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보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8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 세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째, 에로티시즘을 차용하면서도 80년대보다 더 강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들이 가부장제하에서 겪는 억압과 고통, 저항 등을 그리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김유진, 1990), < 물위를 걷는 여자 >(박철수, 1990), < 수탉 >(신승수, 1990), <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 1990),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1989), < 경마장 가는 길 >(장선우, 1991),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이석기, 1991), <서울, 에비타>(박철수, 1991), < 아그네스를 위하여 >(유영진, 1991), <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길수, 1991), < 그대안의 블루 >(이현승, 1992), < 개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 네온속으로 노을지다 >(이현승, 1995),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오병철, 1995),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1996), < 산부인과 >(박철수, 1997), < 올가미 >(김성홍, 1997), <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강우석, 1998), < 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1998), < 송어 >(박종원, 1999) 등의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둘째, 에로티시즘이 로맨티시즘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로맨틱코미디의 조류가 형성되며 미성년자 관람불가 로코물이 당대에 큰 흥행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 결혼이야기 >(김의석, 1992), < 미스터 맘마 >(강우석, 1992), < 가슴달린 남자 >(신승수, 1993), < 그 여자, 그 남자 >(김의석, 1993), <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유동훈, 1993), < 마누라 죽이기 >(강우석, 1994), < 닥터봉 >(이광훈, 1995), < 고스트 맘마 >(한지승, 1995), < 코르셋 >(정병각, 1996), < 넘버 3 >(송능한, 1997), < 미스터 콘돔 >(양윤호, 1997)등이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 접속 >(장윤현, 1997)과 < 정사 >(이재용, 1998)도 에로물과 로맨스물의 경계를 흩뜨려 놓은 작품들로 당대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들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영화임에도 포르노에 근접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90년대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80년대 <애마부인>의 대흥행 이후 <애마> 시리즈로 나온 영화들을 포함하여 <매춘> 시리즈 및 과일 이름을 딴 < 산딸기 >(김수형, 1982), <뽕>, < 빨간 앵두 >(박호태, 1982) 시리즈가 90년대에도 꾸준히 만들어진다. 80년대에 맨 처음 흥행에 성공했던 이들 영화의 1편은 대중영화의 선에서 만들어졌고 한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작품들이었으나, 90년대까지 이어지는 후속 시리즈들은 소프트포르노에 가까운 성애물로 변질된다. 그리고 80년대 에로방화와는 에로티시즘의 수위가 다른 본격 성인용 대중영화들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흥행에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 성애의 침묵 >(정인엽, 1992),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양병간, 1993), < 아담이 눈뜰때 >(김호선, 1993), < 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선우, 1994),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오일환, 1996), < 모텔 선인장 >(박기용, 1997), < 쁘아종 >(박재호, 1997), < 창(노는계집 창) >(임권택, 1997), < 물위의 하룻밤 >(강정수, 1998), < 실락원 >(장길수, 1998), < 죽이는 이야기 >(여균동, 1997), < 해피엔드 >(정지우, 1999), < 노랑머리 >(김유민, 1999), < 거짓말 >(장선우, 1999)등이 있다. <성애의 침묵>에는 <엠마뉴엘> 시리즈로 유명한 네덜란드 여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아담이 눈뜰 때>, <거짓말>은 외설론에 휩싸였던 장정일의 소설 [2] 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은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의 여성 캐릭터와 정사 장면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많은 논란을 얻기도, 매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해피엔드>, <거짓말> / © ㈜명필름, 신씨네 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은 남성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치중했다는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시각화하고 부각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점차 여성영화로 진화했다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5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 속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억압하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성적·사회적 욕망을 억누르는 피해자로 그려지던 여성들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에 이르러서는 여성 해방에서 더 나아가 개인적 쾌락을 위해 사회적 일탈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욕망의 주체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은 거의 완전히 소멸되기 시작하여 2020년대에는 로맨스와 멜로드라마마저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로맨스와 멜로드라마가 부재하다는 것은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성의 연애와 결혼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면 여성이 영화 속에 등장할 자리조차 없다는 2020년대 중반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 [1] ‘에로방화’는 비디오 출시 전용의 소프트포르노 영화인 에로비디오와 이 시대 35mm 극장 개봉용 영화를 구분하기 위해 필자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에로’라는 단어 때문에 편견이 생기기 쉽지만, 당대에는 에로라는 표현이 항상 사용되던 것이고, 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 불렀기 때문에 이 역사적 용어를 소환해 당대에 극장에서 개봉한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대중영화를 ‘에로방화’라 지칭하기로 한다. [2] 앞선 3편의 영화는 장정일의 동명소설을, 영화 <거짓말>은 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를 원작으로 한다. 이윤종(영화 연구자) l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연구에 이어 1980년대 이후 한국 스릴러 장르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활동. 저서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198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진보적 양면성』(영화진흥위원회, 2024), 논문으로 「젠더와 계급 갈등 위에 교차된 인종화: <버닝>의 벤 캐릭터에 대한 재고찰」(아시아영화연구, 2023) 및 「한국영화의 은자적 코스모폴리타니즘: 배창호의 <적도의 꽃>을 중심으로」(2024) 등 집필.
사진: 창비 박사학위논문 제출 기한이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여전히 명확한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남은 시간을 꾸준히 쓰기만 해도 눈사태처럼 쌓여 있는 백지를 채우기에는 준비해둔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가득했다. 그것은 대학원 시절 내내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누적되었던 불만과 환멸, 분노와 냉소 같은 것이었다. 십여 년 동안 대학원의 골방에 묵으며 쌓인 이런 정념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면서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보고 겪어온 장면들을 수없이 복기하곤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참여정부의 탈권위주의적인 기조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의 희망과 자신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 변화에 대한 기대와 전망 속에 펼쳐졌다. 사회 전반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아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페미니즘, 장애인권, 신자유주의 비판 등 여러 진보적인 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환상을 깨는 사건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과 노동자들의 죽음, 대학의 기업화, 한미 FTA 등. 주변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의 그 우울함을 기억한다. 숭례문 화재와 명박산성,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무현의 죽음,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의혹 등으로 점철된 5년. 그리고 이어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는 이미 무너진 사회가 물에 잠기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 이명박근혜 시대를 기어이 우리 손으로 끝내던 그때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는지.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 촛불이 물결처럼 넘실대던 그 ‘스펙터클’ 이후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낸 공(功, merit)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에 가고 어떻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가? 그들은 여성 비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가? 이토록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의역 김군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왜 죽었는가? 왜 동성애는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서도) 반대되는가? 왜 장애인은 아직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에 속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가 이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학문의 언어로 던지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한 것은 하나의 은유였다. 역사는 극(劇, drama)이라는 것. 가깝게는 지난 2024년 12월 하룻밤 사이에 계엄 선포와 해제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K-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도 한국 현대사에는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리고 이미 만들어져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영화 같은 역사,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이 은유를 단순한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발판으로 삼았다. 만일 역사가 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러하듯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은 좋은 극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이런 극을 보며 감동해도 좋은가?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자랑스러워해도 되는가? (상) <오! 꿈의 나라>, <명성, 그 6일의 기록> 중 / (하) <꽃잎> 중 / © 이은, 푸른영상,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이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 혹은 드라마가 어떤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봤다. 역사라는 극을 구상하는 작가로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극에 참여하여 연기하는 배우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을 상연해왔는지 살펴봤다. 1980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까운 기원으로 설정하고, 이 시기에 생산되었거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사진, 소설, 시, 그림, 노래, 수기 등을 되는대로 수집하여 보고 읽고 들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와 5․18기념재단 사진아카이브 를 매일 들락거렸고, 대학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유튜브,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등을 뒤져서 < 오! 꿈의 나라 >(이은, 장동홍, 장윤현, 1989)나 < 꽃잎 >(장선우, 1996), < 명성, 그 6일의 기록 >(김동원, 1997) 등을 보았다. 임철우, 공선옥, 김영현, 공지영, 권여선 등의 소설을 읽었고, 각종 도록과 온라인 갤러리에서 오윤, 신학철, 홍성담, 강요배, 임옥상 등의 민중미술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1980년대의 여러 일간지를 교차하여 훑어보고 나무위키까지도 활용하면서 각종 사건을 연도별·월별로 숙지했고, 사건의 장소를 지도와 영상에서 찾아보거나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길을 오갈 때는 꽃다지부터 안치환, 윤선애, 이성지, 그리고 김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민중가요를 들었다. 인용을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017)나 『소년이 온다』(2014)를 다시 들춰볼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일쑤였고 영락없이 눈물을 쏟곤 했다. 낮에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그 생명력에 감격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훼손된 주검 사진을 보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일은 연구를 위해 각종 표와 숫자로 이루어진 자료(data) 속에 파묻히는 작업과는 달랐다. 그것은 연구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역사적 교양을 뒤늦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 역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나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답하곤 했지만,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webs of significance)”에 동참한다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었다. [1]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나아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신념처럼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본 다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은 어떤 몸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때로는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터지고 덜렁거리는 몸, 벌벌 떨며 밀실의 욕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몸, 해체되고 허물어진 채 부패해가는 몸이었고, 때로는 뒷사람에 밀려 앞으로 앞으로 넘실대며 나아가는 몸, 주변의 건물을 울림통 삼아 웅장한 구호와 노래를 뿜어내는 인파의 거대한 몸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런 몸의 이미지를 보는 나의 몸 역시 차분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는 온몸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지만,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과연 살만한 것이었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 2009년 1월 7일 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진: 네이버 영화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중 김영호( 설경구 )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몸과 마음에 회복될 수 없는 흔적을 가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찬란한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역시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이런 민주주의를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마냥 자랑스러워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객석을 박차고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역’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영화 < 1987 >(장준환, 201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요?” 하고 냉소하던 연희( 김태리 )가 선배 이한열( 강동원 )의 죽음을 보고 회심하여 광장으로 달려나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극의 국면 역시 결정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현실에서 경험한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극에 배우로서 참여하지도 않았고, 객석에서 이러한 극을 보며 감격하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의 극장 밖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의 주역들이 민주화된 사회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낯선 것이었고 남의 것이었다. 이들의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부정하기까지 했던 자들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주인공 아니냐’며 함께 무대로 올라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자고 호소한다면 극장 밖에선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1987>, <극장전>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 < 극장전 >(홍상수, 2005) 중 영실( 엄지원 )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계속해나갈 수도,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의 작가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죽음-결집의 레퍼토리와 함께 몸과 마음이 쪼개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이러한 영화가 주는 극적 쾌감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우리 삶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덜 자랑스럽고 덜 극적이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란과 탄핵을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수호의 이력을 다시 한 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 최근의 역사를 완전무장 하고서 국회로 쳐들어온 계엄군이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시민들이라는 스펙터클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소수자와의 연대, 성평등, 노동 있는 민주주의, 평화와 안전, 기억과 애도 등을 외쳤다. [2] 이러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거기에 힘이 보태진다면, 크고 대단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가 아끼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1] 막스 베버,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김덕영 옮김, 길, 2021, 293쪽;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 13쪽. [2] 유현미․김이선․김정환․박상은․장진범, 「광장에서 만난 세계: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 『경제와 사회』 146.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정환(사회학자) l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을 전공 분야로 삼고 있다. 『연구자의 탄생』(2022, 공저),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2020, 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신자유주의적 상상』(2026, 공역), 『사회론』(2015) 등의 책을 옮겼다.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해석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전개와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