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일의 사나이
- 감독
- 편거영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장동휘, 박노식, 남미리, 장혁, 김희라, 독고성, 최봉, 최창호, 안인숙, 사미자, 김기태, 박동룡, 이승엽, 한국남, 황백, 배수천, 김칠성, 이성일, 성소민, 김문주, 이동조, 김형택, 이동민, 남방운, 조길성, 선창봉, 이전성
1. 1970년대 변두리 극장을 선회하던 액션영화에 홍콩식 권격영화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협객물이라고 불렸던 이 영화들은 전지구적 유통망 속을 흘러가던 권격영화들의 한편에서 자국 관객들에 대한 강력한 어필로 70년대 한국의 액션영화 시장을 양분하였다. 이 ‘내수용’ 영화들이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들이 그 어떤 장르영화보다도 명료하게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체를 구성하는 적대의 선을 말 그대로 물리적인 방식으로 반복 재현해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실재하는 하나의 이름을 끌어옴으로써 가능해졌는데, 일찍이 독립전쟁을 수행한 ‘장군의 아들’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걸었던 이 고유명은 1930년대 중반 식민지 조선인들의 상업거주 지역인 종로통의 ‘주먹’으로 부상한 이래 해방 정국의 백색 테러리스트로서 ‘빨갱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1960년대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을 응징하는 정치 ‘협객’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미 당신도 짐작하다시피, 이 이름은 김두한이다. 이 이름이 그토록 오랫동안 (적어도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 대중문화의 강력한 원천으로 작동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일과 반공으로 성립된 대한민국의 고유한 두 적을 탁월한 폭력으로 능히 제압해내는 그는 그럼으로써 이 국가가 소망하는 강력한 남성성을 온몸으로 체현해내고 있는 자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는 통한의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이곳의 아들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식민지 남성들이 겪어야 했던 저 강렬한 고아의식과 전후의 비루한 아버지의 형상들을 떠올린다면 거리의 고아 소년이 독립운동가 ‘장군’의 위대한 혈통을 잇는 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얼마나 매혹적인 것인가. 1) 2. 이런 류의 영화들의 기억할만한 첫 시작은 1969년 1월에 개봉한 < 팔도 사나이 >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 김두한은 막 정치판에서 자취를 감춘 직후였으나,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에게 똥물을 퍼부었던 정치 협객 김두한의 인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이제 곧 그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매력적인 자원이 될 터이다. 2) 비록 김두한이라는 실명은 피하고 있지만 <팔도 사나이>는 ‘김두한 스토리’의 첫 번째 버전이라고 할만하다. 고아인 어린 소년 호(虎)는 자신을 길러준 노인으로부터 실은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독립투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른이 된 호는 주먹으로 종로를 평정하고, 그런 그에게 평양 박달이부터 광주 용팔이까지 팔도의 사나이들이 차례로 도전장을 내민다. 호는 이 싸움에서 거듭 승리를 거두고, 도전자들은 그를 ‘형님’으로 모신다. 이제 조선 주먹을 대표하게 된 호는 종로를 넘보는 일본 야쿠자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 놀랍도록 전형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김두한 스토리’의 원형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팔도’가 환기시키는 1960년대 후반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토’의 현현이라는 감각을 과시한다. ‘종로’의 주인 호가 도전을 받아들이고 굴복시키고 형제의 따뜻한 연을 맺는 일련의 과정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위계화를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내부를 계서적 형제관계로 마름질한 그는 외부의 적 과 맞서 싸워 통쾌한 승리를 거둬낸다. 3. <팔도 사나이>는 10만 7천명의 관객동원을 기록하였다. 1967년 기록적인 관람률을 보여주었던 국책영화 < 팔도강산 >의 성공 여파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온 수많은 ‘팔도’ 영화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 영화 이후 감독 김효천과 시나리오 작가 편거영은 각자의 방식대로 이 성공을 이어가고자 했다. 같은 해 < 속 팔도 사나이 >, < 돌아온 팔도 사나이 >의 각본/연출을 맡기 시작한 편거영은 < 한국 제일의 사나이 >(1970), < 원한의 팔도 사나이 >(1970), < 예비군 팔도 사나이 >(1971), < 바보같은 사나이 >(1971)를 만들었고, 김효천은 < 명동출신 >(1969), < 명동노신사 >(1970), < 명동백작 >(1970), < 명동에 흐르는 세월 >(1971), < 명동을 떠나면서 >(1973) 등의 ‘명동’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 영화들은 적을 규정함으로써 어떻게 정치공동체가 형성되는가를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는 한국영화일 것이다. 이를테면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한 <명동노신사>는 남한 사회가 누구를 동지로 삼고 있으며, 누구를 적으로 하여 형성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룡(장동휘)과 덕팔은 해방 전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형제 같은’ 사이이다. 남조선노동당의 앞잡이가 된 덕팔은 강룡을 포섭하려고 하나 그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강룡의 노모와 누이를 살해하고 빨치산이 되어 산에 들어간다. 한편 강룡이 과거 덕팔과 함께 모셨던 형님 덕진은 국방경비대 창설의 주역이다. 강룡은 덕진 형님을 찾아가 자신의 부하들로 특별부대를 편성, ‘공산비적’을 소탕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밝힌다. 팔도에서 온 부하들을 이끈 강룡의 공비소탕전이 펼쳐진다. 부하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전사해간다. 홀로 살아남은 강룡이 이들을 추모한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결절점이 있다. 첫 번째, 형제애의 수사로 강조되는 하나의 민족. 함께 일본에 대항했던 덕팔과 강룡은 ‘형제 같은’ 사이였다. 두 번째, 그러나 이 ‘형제’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서로 총구를 겨눈다. 그리고 홀로 살아남은 전투의 증언자가 우리를 또 하나의 애도의 공동체로 초대한다. 요컨대, 이 영화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국가, 대한민국을 형성하기 위해서 누구의 피가 흘려졌는가? 3) 4. 김두한의 실명 사용은 그의 죽음 이후 가능해졌다.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1974년 < 실록 김두한 >을 시작으로 < 협객 김두한 >(1974), < 김두한 속 3부 >(1975), < 김두한 속 4부 >(1975)까지 이어진 ‘김두한’ 시리즈는 신필름의 마지막 흥행작이기도 하였다. 김두한이라는 실명이 사용되고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동시기 일본 야쿠자영화의 주요 경향, 소위 ‘실록 노선’을 창조적으로 벤치마킹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실록 노선’의 기념비적 시작을 알린 것은 1973년 정월에 개봉해서 일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후카사쿠 긴지의 < 의리없는 전쟁 >(1973)이었다. 전후 일본을 야쿠자들의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항쟁사로 그려내고 있는 이 시리즈가 격렬한 정치적 저항의 시기였던 일본 68이 좌절된 1970년대 일본 사회의 절망과 조응하는 것이었다면, 김두한의 ‘실록’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의 유신과 긴급조치의 시대에 그야말로 적절하게 조응하는 것이었다. 이 시리즈를 기획했던 자의 말처럼, 이 반일(<실록 김두한> <협객 김두한>)과 반공(<<김두한 속 3부>, <김두한 속 4부>)의 물리적 행위자는 “인정사정없이 줘패는” 행위를 통해 “분풀이 할 데 없는” 대중들을 “대리만족 시켜”주었다. 국가적 요구를 반영하는 이 폭력의 전시야말로 아마도 유신시대에 향유가능했던 가장 안전한 쾌락이었을 것이다. *** 1) 물론 반공에 비해서 반일이란 대한민국의 성립과정이 보여주고 있는 바 어느 정도 애매모호한 것일 수밖에 없다. 김두한의 이력 속에서 보자면 그는 1943년 조직된 총독부 협력단체인 반도의용정신대의 주도자였다. 이 단체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고등계 형사로 재직중이었던 장명원에 의해 ‘불량청년’들을 규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는 이 단체의 설립 및 활동에 근거하여 장명원을 기소하지만 이 기소는 반도의용정신대가 ‘표면상 왜 정책에 협력하는 것같이 보이’나 불량청년들을 ‘감화지도하여 선량한 청년을 육성’하였다는 이유로 유예된다. 당시 김두한은 대표적인 극우 테러리스트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2)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과 국회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항의로 벌어진 김두한의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 내각이 총사퇴하고 김두한 자신은 제명론이 비등한 가운데 자진 사퇴, 국회의장 모욕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었다. 1967년 총선에서 ‘서민층에 호소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민당 공천(수원)으로 선거에 나온 그는 “북괴에는 농촌까지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우리 농촌은 헐벗고 있다”는 요지의 연설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된다. 김두한은 그해 11월 보석으로 출감된 이후 정치계에서 은퇴하였다. 3) 강룡과 덕팔의 이야기는 김두한의 실제 스토리로부터 비롯되었다. 1947년 김두한은 죽마고우 정진용을 그가 좌익 행동대장이라는 이유로 린치, 살해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두한은 미군정에 의해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이승만에게 특별사면 받았다.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1969년. 영화 < 팔도 사나이 >가 개봉된다. 장동휘 , 박노식 , 독고성 , 황해 , 허장강 , 이대엽 , 오지명 . 충무로 최고의 액션 배우들이 모두 총 출동한 것이다. 감독은 김효천 . 항해사 이력을 가진 마초. 부잣집 아들에 호남 형으로 생긴 이 사나이는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안고 충무로에 들어왔으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아 멜로 영화로 데뷔한 뒤 자신의 본령인 사내들의 주먹세계를 그리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편거영. 그는 영화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다가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에 입성하여 이만희 감독의 스릴러 범죄영화 < 다이알 112를 돌려라 >를 비롯하여 1960년대 초 붐을 이룬 스릴러 범죄영화와 전쟁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충무로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전쟁 영화 < 특전대 >로 데뷔를 한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였다. 영화 < 팔도사나이 >는 조선 사나이들의 신화의 세계, 한국판 웨스턴이었다. 장동휘가 연기한 종로의 주먹 김두한과 대결을 하여 그의 주먹 앞에 무릎을 꿇고 의형제를 맺은 조선 팔도에서 모여든 여덟 명의 사내들이 힘을 합하여 종로에서 일본 깡패들을 몰아낸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김두한을 연기한 장동휘의 투박하고 무뚝뚝하지만 의리 있는 큰 형 캐릭터와 용팔이 박노식의 좌충우돌 유머러스한 캐릭터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선이 굵고 호방하며 투박한 조선 사내들의 주먹과 의리의 세계를 그리는데 자신이 있었던 김효천과 거친 사내들의 이야기를 잘 다루지만, 이야기 속에 유머와 서스펜스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편거영 이 만나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 것이다. <팔도사나이>는 흥행에 성공했고, 이 공로로 편거영은 팔도사나이의 속편 < 돌아온 팔도사나이 >를 만든다. 편거영이 만든 속편에서는 김두한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김두한에게 도전 했다가 한방에 나가떨어졌던 조연, 용팔이 박노식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제 강점기의 종로 뒷골목 깡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1960년대 말 서울로 영화의 배경을 옮겨와 버린다. 그리하여 1960년대 한국 남성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한 명장면이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박노식이 사과 두 상자를 짊어지고 아현동 고개를 올라가는 신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지개에 사과 두 상자를 짊어지고 신촌의 서강대까지 배달을 가는 박노식의 얼굴과 겨드랑이에 흐르는 땀. 목에 걸친 수건은 후줄근하게 땀에 젖었고, 걸어도, 걸어도 신촌의 서강대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편거영 감독은 주먹신화 이야기로 속편을 만들지 않고, 1960년대 말 근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대의 소모되는 남성을 그리는데 주력한다. 한때 주먹세계에서 밥을 먹던 박노식은 개과천선하였다. 사랑하는 아내 사미자 와 산동네의 판잣집에서 살면서 집 앞 골목에 화로를 놓고 꽁치를 구워먹으며 가난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맛을 알아 버린 것이다. 주먹질로 사람을 패고 피를 봐야만 밥이 나오고, 잠자리가 나오며, 술이 나오는 그런 황폐한 세계와 사미자와 사는 이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박노식은 사미자와 만든 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과 두 상자를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현동 고개를 걷고 있는 것이다. 포악했던 과거를 버리고, 굽신굽신 고개를 숙여가며 일거리를 얻어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는 60년대 한국의 사내들. 편거영 감독은 한국의 깡패 영화에 그 시대 남성들의 비애를 담아낸 것이다. 편거영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 시대의 남성들이 단순히 깡패영화인 줄 알고 이 영화를 보았다가 감동을 받고 힘을 얻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영화로 박노식은 서민들의 애환을 표현하는 사내 용팔이로 거듭나고, 용팔이는 박노식의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가 되었으며, 한국 남성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속편을 만들어낸 캐릭터가 되었다. 편거영 감독은 이후 의미 없는 자기복제의 반복인 팔도 사나이 시리즈로 자신의 영화인생을 마감하지만, <돌아온 팔도사나이>의 아현동 고개 장면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감독이다.
오늘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종종 들었던 질문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도대체 선정 기준이 뭔가요?” 답은 ‘랜덤’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뽑는다는 것은 아니다. 장르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물론 랜덤으로 고른 영화라도 그중에서 누락되는 작품들이 있다. 너무 심심해서 지적하는 것 자체가 맥 빠지는 작품도 있고, 아무리 노려봐도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대사가 너무 이상해서 해독이 불가능한 작품도 있다. 내가 소개하는 작품들 대부분은 그 중간에 속해있다. 그렇다면 걸작들은? 물론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소실된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이를 재구성하는 건 이 시리즈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지금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소멸된 과거의 관습들이다. 걸작은 그런 관습에 얽혀 있더라도 결국 그를 극복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니 굳이 내가 대신 읽어줄 필요는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늘 소개할 영화는 편거영 이 감독, 각본을 맡은 영화 < 위기 113 >(1966) 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간첩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60년대 후반에 간첩은 사실성을 포기한 어떤 종류의 과장도 허용할 수 있게 하는 핑계였고, 간첩 영화는 그 핑계를 알리바이 삼아 뭐든지 할 수 있는 놀이터였다. 영화는 익명의 신고인이 113에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은 어마어마한 경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3시 30분 도착 외항기 편으로 미본토불 50만딸라가 암반입됩니다. 이 밀수딸라를 적발해내지 못하면 잔인무도한 공산간첩들은 전체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며 그 심장에 겨눠진 방아쇠를 땡길것입니다. 이 뒤에 공항의 액션이 벌어진다. 황대성이라는 남자가 ‘백색씽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를 미행하다가 화장실에서 그를 마취시킨다. 황대성은 백색씽글의 단장에서 지령문을 꺼내 사진을 찍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휘동이라는 남자가 그 뒤에 화장실에 들어오는데 정신을 차린 백색씽글은 독이 묻은 살인 반지로 그를 살해한다. 이 액션 장면은 정신이 없으면서도 무의미하다. 정리하면 백색씽글과 휘동은 간첩이고 황대성은 간첩 사냥꾼이며 백색씽글은 실수로 휘동을 죽인 모양인데, 일단 단장 속 지령문을 몰래 찍는다면서 그렇게 대놓고 마취제를 쓰면 들통이 날 수밖에 없지 않나? 게다가 백색씽글과 황대성은 단역이다. 특히 백색씽글은 몇 페이지 뒤 동료들에게 고문당하는 장면 이후로는 나오지 않는다. 뒤에 소문을 들어보면 시체는 청계천 밑에 버려졌단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뒤에 나오는 간첩단이다. 윤 박사, 박 목사... 다들 그럴싸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비행기에서 발견되지 않은 50만 달러의 행방도 밝혀지는데, 그건 알고 봤더니 비행기 타이어 속에 숨겨 가져왔던 모양이다. 당연히 “그 50만 달러를 어떻게 넣었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게 정상이겠지만 영화는 그런 소소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50만 달러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영화는 역시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원자력과 관련된 정보를 빼내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 굳이 50만 달러라는 돈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인물 관계도 여러분은 지금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개고생만 하다 죽은 백색씽글을 위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은 백색씽글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407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김두식이란 간첩이다. 보고 있으면 ‘봉’이라는 단어가 김두식을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다. 겉보기는 그럴싸하다. 잘 나가는 사업가에 결혼도 해서 아들이 하나 있고 여동생도 있다. 하지만 아내는 악독하기 그지없고, 아들은 병 때문에 아프며, 여동생이라는 양희도 진짜 동생이 아니라 불쌍하다고 데려와 같이 사는 고아다. 무엇보다 동료들이 그를 싫어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중간까지 이게 원자력 정보를 빼내 북으로 튀려는 북한 공작원 이야기인지 직장 내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중반 이후로는 확신이 선다. 이 영화는 간첩 영화인 척하는 집단 따돌림 영화다. 어느 정도냐고? 초중반에 윤 박사는 두식의 아들을 독살한다. 순전히 아빠가 하는 짓이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윤 박사는 심지어 두식의 아내 양순과 불륜 중인데, 귀찮아지니까 그 사람도 죽여버린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도 심장이 찢어지지 않는다면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아차린 두식의 독백을 들어보라. 우리집 사람이 정숙치 못한것은 내가 간첩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야, 모를꺼야! 그렇다면? 철환이를 잃은 충격에서? 그전부터 그랬어... 차라리 양희가 우리 가정의 주부가 된다면? ...그것은 안돼! 난 간첩인걸... 난 행복한 가정을 가질수 없어... 난 간첩이란 말야! 아까 한 말 취소다. 징징거리는 걸 보니 사람들이 왜 그를 싫어하는지 알겠다. 척 봐도 순진무구한 척하면서 눈치 없이 사고치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양희만 봐도, 새파랗게 젊은 술집 아르바이트 생을 데려와 여동생으로 삼겠다고 우기고는 툭하면 눈길을 주었을 상황이 눈에 보인다. 당연히 아내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지. 심지어 양희 엄마의 장례식 비용과 등록금을 대주느라고 공작금 15만 원을 유용했다고? 물론 두식의 이런 태도가 집단 괴롭힘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두식이 답이 없는 인간이라도 이를 해결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테니까. 두식은 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듣는다. 이미 아내는 북으로 올라갔다는 거짓말과 함께. 양순은 두식의 정체를 모르는 게 설정이 아니었나? 상관없다. 두식은 이미 양희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양희 역을 맡은 배우는 태현실이다. 당시 한국 여자배우들은 봉급을 받기 위해 이런 대사를 읊어야 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오빠! 전 오빠의 은혜를 잊지 못해요. 불쌍한 저를 구원해 주셔서 오늘의 삶을 영위케 해주신 높으신 은공을... 그런데 요즈음은 저보다 오빠가 더 쓸쓸해 보여요. 제 힘으로 오빠의 고독을 풀어 드릴 수 없을까요? 아이 나좀 봐... 오빠 그만 주무세요. 우린 서로 참아야 하지 않아요? 그래놓고 각본가는 ‘하고 침대로 가서 벌렁 눕는다’라는 지문을 덧붙인다. 그 뒤에 무슨 일에 일어났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고, 결말로 건너뛰자. 두식은 공작금 1,400만 원을 빼서 양희와 함께 부산으로 달아난다. 일본으로 밀항을 준비하던 도중 간첩단이 양희를 납치한다. 앞 페이지에 등장했던 황대성이 등장해 두식을 돕고 간첩단은 일망타진된다. 두식이 그 뒤에 무슨 일을 겪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되지만 아마 내 상상은 각본가의 상상과 전혀 다를 것이다. 물론 내가 더 정확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