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아이패드2 프리뷰
- 제작년도
- 2011
봉준호 감독의 편지를 받았을 때 확실히 기분이 묘했다. < 기생충 >(2019) 기자 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받았을 그 편지 얘기다. “부탁드립니다”로 시작하는 공식적인 편지는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간곡했다. 기자 시사에서 리뷰 공개 일자 등을 명시한 엠바고 서명을 받는 경우가 많다. 상영 전후 “기사 작성 시 영화의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 자제를 부탁드린다”라는 안내 멘트를 듣는 일도 빈번해졌다. 하지만 감독이 직접 쓴 편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토리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관객들이 때론 숨죽이고, 때론 놀라며 매 순간의 생생한 감정들과 함께 영화 속으로 빠져들기를, 만든 이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독이기 전에 열렬한 관객인 봉준호 감독의 편지는 ‘당신의 사인을 받았으니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공식 문서보다 힘이 셌던 것 같다. <기생충>이 개봉하고도 한동안 ‘스포 공포’ 없이 관련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아시다시피 <기생충>은 눈밭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러닝 타임이 진행되면서 이야깃거리가 쑥쑥 불어나는 영화다. 진즉 ‘해설’ 혹은 ‘분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엔딩까지 탈탈 털어낸 기사가 나올 법했지만 매체들의 ‘자발적 엠바고’ 기간은 꽤 길었다. 거의 모든 정보가 ‘즉시’ 거의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는 네트워크 시대에 봉준호 감독의 편지 한 장이 정중하게 미디어에 질문하는 것 같았다. 그토록 ‘빠른’ 정보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어벤져스: 엔드게임> <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 이하 <엔드게임>)이 쏟아낸 다채로운 ‘역대 최초’ 기록을 살펴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역대 최단기 관객 1백만 명 돌파. <엔드게임>은 개봉 당일 첫 상영 4시간 30분 만에 관객 수 1백만 명을 넘었다. 너무 빨라서 ‘오보’ 의심을 받았을 정도다. 이전 기록 보유작은 <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2018)으로 개봉 당일 오후 5시 반 경에 관객 수 1백만 명을 돌파했다. 화제성을 따지면 <엔드게임>의 압승이 당연해 보이지만,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이 6월 6일 현충일 개봉한 걸 감안하면 평일 개봉한 <엔드게임>의 기록이 더욱 놀랍다. 화제작 한편이 전국 상영관에 도배하다시피 내걸리는 ‘와이드 릴리즈’ 탓에 관객 수 돌파 기록은 마치 단거리 경주 기록처럼 매번 당겨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엔드게임>의 1백만 돌파 기록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엔드게임>의 러닝 타임은 무려 3시간 1분. 한번이라도 더 상영하고자 대부분 극장에서 오전 7시부터 조조 상영을 시작했고, 극장별로 차이는 있지만 10~20분 간격으로 회차가 이어졌다. 뭉툭하게 계산하자면, 첫 상영 4시간 30분 만에 달성한 1백만 관객은 오전 7시부터 8시 반 사이 영화를 본 조조 관객만으로 채워진 셈이다. 개봉 당일 총 관객 수는 약 138만 명. 소위 ‘프라임 타임’ 관객보다 조조 관객이 2배 이상 많았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누구보다 빨리 보고 싶은 ‘덕심’만큼이나, ‘스포 폭격’이 쏟아지기 전에 영화를 훼손 없이 즐기려는 관객들의 조바심이 작용했다고 본다. 특히 <엔드게임>은 개봉 전, 해외에서 도둑 촬영된 주요 영상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관객들의 스포일러 공포증이 극에 달했다. 기상천외한 스포일러 소동극의 주범은 개인이었지만, 주요 장면 묘사가 대부분인 리뷰를 경쟁적으로 쏟아낸 미디어도 관객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주얼 서스펙트> 전설로 회자되는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유주얼 서스펙트 , 1996),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식스센스 , 1999) 시절의 스포일러가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다면, 21세기 관객에게 스포일러는 미세먼지 같은 공해이자 공포다. 누구나 즉각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온라인 네트워크 환경이 최근의 스포일러 공해를 증폭시킨 건 맞다. 하지만 인터넷은 거들 뿐. 스포일러의 본질은 결국 ‘정보의 파워 게임’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는 힘이다. 스포일러의 기저에는 ‘정보’라는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자의 쾌감이 자리한다. 상대에게 지금 그 정보가 필요한지는 중요치 않다. 하지만 미디어라면 ‘남보다 빨리, 많이 확보한 정보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어야 한다. 제 아무리 속도전에 치이고, 클릭 수에 목말라도 ‘이 정보가 지금 왜 필요한가’라는 고민이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의 간곡한 부탁의 편지가 뜨끔했던 건, 이 고민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가 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미디어의 일정에 따라 발행하면 그만인 때도 있었다. 스포일러는 무슨. 관객들은 몇 줄짜리 영화 소개도 반겼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미디어가 독점적 정보를 얻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관객들은 과다 공급되는 정보 중에서 더 까다롭게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고른다. 그나마 ‘조금 빨리 얻는 것’ 외에 정보 독점력을 잃어가는 우리 미디어들은 속도전에 내몰리다가 스포일러 공해에 합류하고 말 것인가. 글쎄, 단박에 답을 낼 고민은 아니다. 다만 봉준호 감독의 ‘스포금지’ 부탁 편지 이후 변화의 싹이 보이는 듯하다. 제약은 창조의 동력이라더니, <기생충>에 관한 새로운 시선과 독특한 형식이 돋보이는 기획 기사가 많았다. 영화를 아직 못 본 관객을 위한 ‘프리뷰’와 영화를 본 관객을 위한 ‘심층 리뷰’가 순차적으로 노출됐고, 주연 배우들은 물론 탁월한 조연 배우까지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차근히 받았다. 물론 읽을거리가 많은 영화의 풍성한 텍스트 덕이기도 하지만,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미디어들의 고민 덕도 크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시사회장에서 더 자주 감독들의 편지를 받을 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보다 덜 뜨끔해지면 좋겠다. 아니 “뭘 이런 걸 다”라고 빙긋 웃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2002년 < 하드보일드 초콜릿스타일 >과 < 진혼곡 >을 보고 두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이후 장르영화를 하겠구나, 생각했다. 뒤늦게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서 발견한 ‘창준’역의 장건재 감독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장건재 감독을 다시 만난 건 2008년. 안부가 궁금하던 사이 그가 작업한 단편 < 꿈속에서 > 프리뷰를 받았다. 영화를 보며 나의 기억 속에 막연한 선입견으로 배치되어있던 장건재 감독 작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감독의 자전적 작품인 < 꿈속에서 >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그린 영화로 장건재 감독의 정서를 엿보게 한다. 영화는 떠난 친구를 서정적 흐름으로 기리며 애잔하게 애도한다. 그 후 연출한 장편 < 회오리바람 >은 <꿈속에서>에서 보여준 서정성과 섬세함을 영화적으로 숙고한 작품이다. 장고의 시간 동안 제작된 <회오리바람>은 이전 필모그래피가 충실히 쌓인 작품으로 장건재 감독의 영화적 언어가 관객들과 공감을 일으킨 영화였다. 그리고 < 잠 못 드는 밤 >. 일상을 포착해 내는 감독의 관찰력과 그것을 영화로 옮기기까지 동반되었을 진중한 고민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주인공 주희와 현수는 결혼 2년을 맞은 30대 부부. 부유하진 않지만 둘만의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을 행복으로 사는 이들이다. 늦은 밤 산책을 하고 둘만의 기념일도 챙기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다. 그러던 이들의 대화에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등장한다. 둘만으로 부족함 없던 이들의 온전한 세계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현실적 고민으로 미세하게 흔들린다. 결코 가볍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이 문제는 둘만의 일상이 사라지게 할 것이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할 것이다. 이로 인한 불안감은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며 부부의 꿈으로, 상상으로 재현된다. 이 작품 또한 감독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 잠 못 드는 밤 >의 프로듀서와 감독은 실제 부부이며 이들의 협업은 이번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김수현, 김주령 배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스탭이다. 감독은 배우들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발전시켰고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를 완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절제된 구도와 정제된 사운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군더더기 없이 배치되어 집중하도록 한다. 65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 흐르고 엔딩이 올라갈 때, 이후 ‘주희’와 ‘현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말하는 가운데서도 일련의 수순으로 찾아온 ‘양육과 출산’의 고민.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딜 그들의 성장과 변화할 세계가 궁금해진다. 관객은 ‘보통의 일상’이 감독 안에서 치열하게 다듬어져 영화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통해 감독의 세계관과 만나게 된다. 장건재 감독의 초기작부터 봐온 관객으로서 이번 < 잠 못 드는 밤 >을 관람하고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한동안 감독 안에서 곱씹어질 수 많은 ‘보통의 일상’들이 진정성 있게 영화적으로 확대되길, 다음 작품에서도 기대해 본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 무림토끼 >란 제목으로 소개됐다. 원제는 <토협전기 兎俠傳奇>. 중국이 만든 첫 3D애니메이션이고, 3년 동안 1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제작진은 제목을 ‘쿵푸토끼’로 짓고 싶었겠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해 다른 제목을 떠올렸을 거라 생각했다. 무술을 하는 토끼라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레전드 오브 래빗>은 < 쿵푸팬더 >를 본 중국인들의 화답이다. 주인공인 ‘투’는 호떡을 잘 만드는 요리사다. 무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적어도 그가 호떡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쿵푸의 경지에 올라있다. 어느 날, 전국의 무림 지존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원숭이 대사부가 한때 제자였던 판다 슬래시에게 배신을 당한다. 간신히 붙은 목숨으로 도망쳐 나온 대사부는 우연히 투를 만나고, 그에게 자신이 가진 신공의 기운을 전해준다. 그리고는 어릴 적 자신의 품을 떠난 딸 피오나를 찾아달라고 말한다. 도심으로 향한 투는 우연히 슬래시의 도장에서 일하게 되고, 피오니란 이름의 쿵푸 고수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슬래시의 야욕을 막으려 노력하고, 투는 점점 자신 안에 내재된 쿵푸의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애니메이터들은 < 쿵푸팬더 >에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쿵푸팬더>는 아시아 문화마저 완벽에 가깝게 모사하는 할리우드의 흡수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호권, 사권, 학권등 실제 동물들이 재현하는 쿵푸 동작부터 시푸가 포의 식탐을 이용해 훈련을 시키는 시퀀스까지, 중국이 만들었고 전 세계가 즐겼던 쿵푸영화의 잔재미들을 모조리 포함시켰다. 자국의 상징인 동물을 데려다, 역시 자국의 국기인 쿵푸를 소재로 삼은 할리우드에 대한 중국의 미움은 판다를 아예 악역으로 설정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 레전드 오브 래빗 > 속의 판다는 <쿵푸 팬더>의 판다보다 훨씬 큰 덩치에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 당연히 게으른 캐릭터가 아닌 그가 귀여워 보일 리도 없다. 심지어 이런 말도 듣는다. “눈에 마스카라만 칠하면 다 쿵푸팬더냐?”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리뷰 룸에서 이 영화를 보다가 마음 한 구석이 짠해졌다. 형형색색의 미감으로 담은 배경과 현란한 액션, 무엇보다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는 < 쿵푸팬더 >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감흥은 <쿵푸팬더>에 미치지 못한다. 분명 <쿵푸팬더>를 먼저 보고 자란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 레전드 오브 래빗 >을 <쿵푸팬더>의 아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중국이 ‘짝퉁의 왕국’이라고 해도 제작진이 그걸 몰랐을까? 할리우드가 쿵푸영화의 관습을 연구해 창조한 결과물을 역수입할 때, 그들의 자존심은 더 상처받을 게 분명하다. <레전드 오브 래빗>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관한 애니메이션이다. <쿵푸팬더>의 아류를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쿵푸팬더>를 능가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자존심을 세워야 하는데, 결국에는 다시 중국이 무협의 지존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 그래서 결국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동물을 저주해야 하는 딜레마라니.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산업을 통틀어서 볼 때도 흔치않은 사례 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