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메이커
- 감독
- 레지스 게젤바쉬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Cathy ROBIN, 김재희, Jean-Francois DELON, 이희연, 김선경, 곽영선, Antonia BOSCO, Donald SUE, Thibaut CHATEL, 조은성, Denis COURATIN, 이도연, 울릉도 주민들
<만다라>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스튜디오가 인플루언서들의 극찬을 수집할 수 있다면 누가 영화평론가를 필요로 할까요?” 2023년 7월, 《가디언》에 실린 기사의 도발적 제목은 영화 저널리즘이 직면한 현실을 꼬집는다. 평론가 마누엘라 라직은 < 바비 >(그레타 거윅, 2023)의 런던 시사회 경험을 크게 두 가지 풍경으로 일축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인플루언서들 사이에 합류한 기자에게도 각종 굿즈를 건네주는 안내원. 그리고 이어지는 독려. “긍정적인 느낌을 공유해주세요!” 프리랜서 크리틱인 그는 자기 계정에 무슨 말을 쓰려다 말고 개봉 이틀 전에야 엠바고가 해제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당황했다고 쓴다. 기사는 가뜩이나 영화 매체의 대중문화적 위상이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무슨 소용인지 자조하는 모순적 자기검열로 마무리된다. 올해 칸 기자회견장 옆자리에서 통성명한 《인디와이어》 에디터에게 용기 내 이 기사를 본 적 있냐고 물었을 땐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왔다. “뻔한 소리, 요샌 부정적 평가를 미리 예측해서 특정 비판은 하지 말아 달라는 식의 가이드도 오는데요 뭘.” 비평가를 위한 친절한 가이드라. 선댄스발 코미디 영화 제목 같다고 생각했다. 취재 기자의 실무는 산업적 관점에 자주 노출되고 그래서 홍보, 마케팅 환경에 질식하기도 쉽다. 잡지사의 생리는 작품의 시의성이나 신속한 이슈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영화는 너무 성급히 말하게 되고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를 놓친다. 다각의 요구와 마감 시한, 닥쳐오는 개봉작들을 포용하는 이 일은 자기 감식안의 모서리를 ‘업계’의 비바람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극장에서 상영관을 확보하는 영화들은 중·저예산의 참신한 기획을 내건 작품들조차 아찔할 정도로 안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맞서지 않고 있다가는 예리해지긴커녕 시시각각 풍화될 가능성이 크다. 행여 영화기자의 호러라는 장르가 생긴다면 명대사는“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영화지”일 것이다. 취재의 특권은 비평 앞에서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그보다 본질적으로는 분열하고 충돌하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가끔 시끄럽다. 이 일은 자연스럽게 필름메이커들의 속내와 고충을 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과물로서의 작품 이전에 만드는 과정과 방식을 관찰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걸작이든 범작이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말한)다. 주관적 진실 속에서 창작자의 자부심과 소통하는 저널리스트의 객관성은 늘 자기 의심의 대상이다. 현장 비평을 향한 열의가 때로 거의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겠다는 실의를 동반한다. 매주 지면 안팎에서 줄다리기가 열린다. 감독, 창작자, 제작진의 예술적 비전을 정확히 전달하고 해설하는 중간자의 본분이 한쪽에, 작품 본연의 의도보다 평자의 패러다임이 선명한 창조적 쓰기가 다른 한쪽에서 실랑이하는 형국이다. 잡지계의 악명 높은 평론가 폴린 카엘에 관해 《뉴요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반대자(contrarian)”라고 정의한 바 있다. 카엘의 탁월한 반대는 역설적으로 발굴과 호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은 고전이 된 < 보니 앤 클라이드 >(아더 팬, 1967)를 구해내어 할리우드가 그 명성을 스스로 재창조하도록,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독려한 인물로 기억된다. 걸출한 반대자의 식견, 호전성, 무시무시한 헌신과 성실함을 동경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가 않다. 문제는 지금 여기에 선 사람의 막막한 과제다. <만다라> 중 법운과 지산 번뇌 앞에서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를 되짚어본다. 6년의 수행에도 여전히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자조 속에서 고뇌하는 승려 법운( 안성기 )은 술 취한 탕아 행색이 더 어울리는 행자 지산( 전무송 )과 스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법운은 지산에게서 구도의 가능성을 본다. 그의 야생성은 안쪽에 자리한 단호함과 순수를 동경하게 만든다. 그러나 법운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지는 끝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신당의 불상 점안식을 도운 뒤 마을 어귀에서 술에 의지하던 지산은 불탑 아래 엎드리며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얼어 죽는다. 지산을 발견한 법운은 그동안 자신이 찾아 헤맸던 깨달음을 하나의 형상으로 발견한 사람처럼 슬피 운다. 혹한의 날씨에 불상 앞에 납작 엎드린 자세로 굳어버린 수행자를 기리는 마지막 의식이 곧 법운의 몫이 된다. 지산의 죽음 이후 법운의 행적에 어떤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움직인다.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 정일성 촬영감독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통과하며 청년들의 죽음이 들려오는 시절의 수치와 공허를 절감하는 중에 <만다라>를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기에 <만다라>는 시대를 감당하기 힘든 이들의 흔들림이 걸어갈 수 있는 하나의 길, 우회로를 터 내는 영화다. 말미에 이르러 법운은 승려라기보다 매개자로 변모한 모습이다. 암자에 불을 붙여 다비를 마친 후, 법운은 지산이 잊지 못했던 여인 옥순( 방희 )을 찾아간다. 지산의 유품, 그가 직접 조각한 매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불상을 전하러 간 것이다. 이어서 법운은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머니를 찾아가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담히 전한다. 직접 불붙인 암자의 화마를 잠자코 지켜본 뒤 여관방과 다방을 향한 법운은 혼란을 거두고 세속의 안쪽을 통과한다. 유품을 건네고 어머니(들)에게 (대신) 안부한다. 이 뜻밖의 행로에서 법운은 자기 안에 지산이, 또 다른 죽음들이 들어찬 사람같이 부지런하다. <만다라>의 마지막에는 먼 길을 걸어가는 매개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시 방향을 뒤집어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움직임이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그는 멀어진다. 물론 되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불탑 앞 기도하는 자세의 지산 / 암자에 불을 붙인 법운 속세와 구도의 경계에서 겁먹은 수행자의 클로즈업이 종내에 아득한 롱쇼트로 바뀌어 갈 동안 나는 극장에 앉아서 짐짓 딴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말을 전하고 의식을 치르는 매개자의 역할이 품을 수 있는 쓸모 같은 것을 궁리했다. 창작자와 관객, 예술과 산업, 비평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각각의 형식과 규격, 정당성 같은 것을 찾고 또 찾는 것이 아니라 영화 매체의 본래적 지향과 그것을 만들고 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태계에 제각기 충실할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데 바탕이 되고, 이미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에게 가는 경로를 터 낼 수 있다면. 한 주에 80페이지가 훌쩍 넘어 과연 어느 성실한 독자가 다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근심하게 되는 지면에 틈새를 더 파내어 보기로 한다. 이상할 정도로 말해지지 않는 영화들 쪽으로 조금 더 움직여보기로 한다. 슬며시 머릿속에 내게 주어진 길 하나를 그려본다. 직업적 특권 아래 남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영화와 영화 안팎의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는 길. 이 길이 안녕하냐고 물어올 때 드리우는 암울한 직업적 자의식을 거둬내고 나면 답은 간명하다. 저널리즘과 비평가를 위한 가이드가 주어지는 현실은 동시대 영화 매체가 처한 메마른 환경부터 극명히 가리킨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다시 밖에서 안으로 황무지를 횡단하는 시도의 필요를 믿어볼 때다. 영화 안팎의 안부를 그러모으는 매개자의 눈과 손이 겁을 떨쳐내기를. 말끔히는 어렵더라도 부단히, 부단히. <만다라> 중 김소미(영화기자) l 영화주간지 《 씨네21 》 취재팀장. 책 『불이 켜지기 전에』(2025)를 썼다.
경기도로 이사한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번 서울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났고, 마포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독립한 후에는 줄곧 은평구에 살았다. 부산 금정구 금정경찰서에서 보낸 군생활을 제외하면 서울의 서북 3구, 그 안에서도 반경 10키로미터가 넘지 않는 좁은 장소에서 평생을 산 셈이다. 개굴개굴. 그런 내게 사람들의 말은 토머스 울프와 이문열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두 작가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들 모두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경기도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울로 돌아가고 싶기는커녕 오히려 꼭 서울에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건 내가 (갈 곳 없는) 프리랜서이고, 이사를 통해 아내의 출퇴근길은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며, 아내와 나 모두 문화생활(정확히 말하면 외출)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고, 아이의 학군이나 사교육 같은 걸 신경 쓸 필요가 (아직은) 없는 데다가, 가족 중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전보다 적은 주거비용으로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아졌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변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요즘 제가 부동산에 꽂힌 이유에요. -그래서 이제 부동산 투자라도 하실 건가요. -아직은요. 대신 아내와 함께 일요일마다 ‘구해줘! 홈즈’를 챙겨보고 있어요. -그게 뭐지? 드라마에요? [셜록] 같은? -이사를 계획 중인 시청자가 사연을 보내면 연예인들이 대신 예산과 조건에 맞는 집을 보러 다니는 예능이에요. 열심히 보고 공부해서 부동산 전문가로 거듭나려고요. 지돈 씨도 나중에 이사 생각 있으면 말해요, 제가 잘 해드릴게요. -…그건 마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출발! 비디오 여행’을 꼭 챙겨본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지돈 씨, 저는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건 보지 않아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JD를 바라보았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접은 후로는요. 조셉 맨키위즈의 영화 <유령과 뮈어 부인>과 마그리트 뒤라스와 도미니크 노게즈의 대담집 [말의 색채]는 모두 부동산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루시 뮈어는 독립을 선언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1년 전에 죽은 남편까지 들먹이며 만류하지만 뮈어 부인의 의지를 꺾진 못한다. 부동산을 찾은 루시는 수상할 정도로 저렴한 바닷가 저택을 발견하고, 중개업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대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성격 더러운 전 주인의 유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뒤라스는 대뜸 자신을 매혹시켜 < 나탈리 그랑제 >를 만들게 한 집에 대한 이야기로 대담을 연다. 생애 처음 소유한 집. 정원에 창고까지 딸린 집은 당시 그녀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매우 비쌌지만,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겨우 살 수 있었다고.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덧붙인다. "내 책을 각색한 영화들이 너무 좋지 않아서 내가 직접 해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거나 그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1) 두 가지 교훈이 있다. 하나. 싸고 좋은 매물은 없고 집과 사람, 사람과 유령 사이에도 궁합은 있다. 둘. 혹시라도 문필 활동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라면 최소한 프랑스에서는 태어났어야 한다, 그것도 백 년쯤 전에, 되도록이면 마르그리트 뒤라스로… 한국에도 부동산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부동산 이야기로 시작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일단 떠오르는 건 이윤기 감독의 2008년 영화 < 멋진 하루 >다. 검은 화면 위로 오프닝 크레딧이 흐르면,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마석? 그게 어디야? -춘천 가는 길 어디라나 뭐라나? 아무튼 뭐 사자마자 두 배쯤 올랐대. 지금은 한 평당 70이라던데. -그럼 얼마나 번 건데? 걔는? -40에 샀다니까 30에 100해서… 삼 천? 그쯤 되겠네 -삼 천? (사이) 삼 천… -한 방에. 봐 봐, 얘 몇 주째 안 보이잖아. 전화도 잘 안 받아. 나는 구글에 '마석 땅값'을 검색한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2019년 6월의 기사("'드디어 호재 터졌다!' 남양주 마석역 일대 땅값 후끈")에 따르면 GTX 건설과 지하철 6호선 연장 계획이 동시에 발표되면서 마석역 인근 당 평당 평균 가격은 2017년 250만원, 2018년 350만원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450만원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0년과 2021년에는…? (알기 싫음) 담배를 나눠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향하는 곳은 스크린 경마장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부동산과 경마, 그리고 1년 전 350만원을 빌리고 잠적한 남자(하정우)에게 빚을 받아내기 위해 경마장을 찾은 여자(전도연)에서 시작하는 영화인 셈이다. 과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개봉한 영화답다고 할까. 돈이 없다며 느물느물하게 잡아 떼던 남자는 돈을 받기 전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여자에게 오늘 안으로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어떻게? 다른 여자들의 돈을 빌려서… 남자를 믿을 수 없는 여자는 남자와 동행하기로 하고, 카메라는 그런 둘을 따라간다. 옛 연인에게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여자들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데도 어째선지 무사태평하기만 한 남자와 옛 연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데 어쩐지 본인이 직접 운전까지하며 돈을 꾸러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자꾸 울컥하는 여자의 하루.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영화의 줄거리를 꼬치꼬치 늘어놓고 있는 걸까? 서평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분량을 채우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캐릭터 무비라는 것,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대책없이 낙관적이고 유연한 성격의 남자와 안 그래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유없이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의 여자가 티격태격 하면서도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료하고 헤어져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가지만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의 영향으로 그들 모두 그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종류의 영화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하는 사람은 여자 한 명뿐이라고 해야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을 남녀로 바꾼 다음 긴 이야기를 단 하루로 압축한 것 같은 이야기, '한국남자 조병운(하정우)' 같은 느낌으로… 영화가 중간을 지날 무렵, 경마장을 나설 때부터 남자가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의 비밀이 밝혀진다. 남자는 돈이 없어 전세금을 빼고 가방 하나에 살림을 넣은 채 친구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이 영화를 사업이 망하고 이혼까지 한 속편한 무주택자와 파혼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언제 길바닥으로 나앉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하위 중산층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단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한 마디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종류의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혹은 내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고, 어쩌면 이 문제는 인생보다 큰지도 몰라. 나는 머리도 식힐겸 <멋진 하루>가 담고 있는 2008년 서울의 이곳저곳 -- 개발 이전의 용산과 잠수교와 종로 뒷골목과 이태원 언덕길과 서소문 아파트와 연희동 사러가마트 등 -- 을 직접 둘러보면서 시간 속에 잠시 존재했던 어떤 것을 영원에 가깝게 붙잡아 고정시키는 이미지의 유령적인 성격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세이필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찬찬히 고민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서울을 향하는 9701번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편집자 주: 다음은 K정연이 JD에게 보낸 메일을 전재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위한 준비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K정연이 원고를 완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록 불완전한 메모의 형식이나마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JD의 동의를 받아 여기에 올린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분위기 모두 본 원고와는 동떨어져 있어 구태여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K정연은 마감공포증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추구해오던 약간의 재치 있는 문필 활동을 그만두고 정지돈과 함게 한국 영화에 대한 에세이 필름을 만들기로 한다. 어느 날 그는 9701번 버스를 타고 서오릉을 지나던 중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영화 평론가 유운성을 우연히 마주친다. 구산역에서 내리는 유운성을 따라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K정연. 구산동 도서관 마을에서 봉산의 이름없는 묘지로, 맘스터치에서 불광천으로 향하는 유운성의 행보를 쫓는 그의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희망 없이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편이 낫다. 희망 없이 수다를 떠는 데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냉소주의자의 태도다. 다만, 희망을 낙관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낙관이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둘러싼 요인들로 미루어볼 때 얼마간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진단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이 낙관적이라거나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도리 것이라고 전망하는 경제 전문가의 발언 따위를 떠올려보라. 희망은 여건에 비추어 미래를 낙관하는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응시하는 일이다. 희망은 낙관이라고 하는 타협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긍정하는 일이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그것들을 없애버리자고 요구하는 것이 희망이다…" 2)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K정연.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문자 메시지 보낸다. -JD, 당신은 시네마가 인생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나요? 쏘옥, 문자가 발송되는 소리와 함께 K정연 쓰러지면 손에서 미끌어지는 핸드폰. 띵 하는 메시지 수신음과 함께 JD의 문자가 액정에 표시된다. -JD: ??? 시간 흐르면 비 내리는 밤의 불광천. 헤드랜턴을 쓴 JD가 수풀 사이를 뒤지고 있다. 아! 탄성을 지르는 JD. 정신을 잃은 채 반쯤 개천에 잠긴 K정연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코코아를 마시던 K정연이 대답한다. -유운성 선생님을 만났어요. -유운성쌤 이요? 유운성 쌤은 어디 갔는데요? -모르겠어요. 천변의 벤치에 앉더니, 저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있잖아요, 과거의 문 같은 거. 움직이지도 앉고 한참을 앉아 있더군요. 저는 가야했어요. 마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마감을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모든 게 깜깜해졌어요.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병원 진료실. 의사가 K정연에게 말한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마감공포증입니다. -선생님, 담당 편집자에게 제가 입원을 해야 해서 원고를 마감할 수 없다고 전화 한통만 해주시겠어요?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K정연.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그런데 놀지도 않고 일도 안 한다면? 빠르게 교차 편집 되는 장면들. 다양한 시간, 다양한 날씨 아래 거리에 있는 K정연. 불안한듯 고개를 돌리면 시선 끝에 걸리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남성의 흐릿한 모습. 유운성이다. 쫓아가보지만 매번 잡히지 않고 사라지는 유운성. 절규하는 K정연. 캄캄한 공간. 푸른 조명이 켜지면 수백 수천 개로 보이는 K정연의 모습. 거울 방이다. 잠시 후 붉은 조명과 함께 거울 속 K정연의 모습이 유운성의 뒷모습으로 바뀐다. 다시 장면 바뀌면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장을 나서는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런데 모두 유운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의 유운성을 뒤쫓는 K정연. 정확한 시대도 장소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가다 마침내 유운성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벽을 보고 선 유운성에게 다가가는 K정연.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데 유운성의 셔츠를 쥐는데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유운성. K정연이 쥐었던 손을 펴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USB. -루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K정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JD. 서럽게 우는 K정연에게 묻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나요. -아니요. -슬픈 꿈을 꾸었나요. -아니요. -그럼… -하룬 해도 파로키 하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JD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K정연. -지돈 씨, 저는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실은 자주, 너무 지겹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평론가가 있습니다. 진과 성. 진 쪽의 평론가에는 이동진과 김영진이 있고, 성 쪽의 평론가에는 정성일과 유운성이 있는 식으로요. -그건 성명학인가요. -분류학이라고 해두죠. -하지만 저는 진도 아니고 성도 아닌 걸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는 법이죠. 이를테면, 진과 성의 사이 같은 곳이. -?? -진과 성의 사이에 있는 정. 그게 바로 정연씨의 자리랍니다. 자, 저를 따라해보세요. 진! 정! 성! -진 정 성…? -바로 그겁니다! 진정성!!! K정연이 JD에게 손을 내민다. 손바닥 위에 놓인 USB. 겉면에는 "cinema, 2004"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건…? -꿈 속에서… 제게… -2004년이라면, 라브 디아즈의 < 필리핀 가족의 진화 >일까요? -글쎄요… -리산드로 알론소의 < 죽은 사람들 >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 도플갱어 >? 그건 2003년이지. 그럼 < 밝은미래 >? 아냐 그건 2002년이고. 아니면 홍상수의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보면 알겠죠. 조심스럽게 노트북에 USB를 꼽는 K정연. 곧바로 자동재생으로 영화가 재생된다. 주인공이 불분명한 예식장안 풍경 예식이 끝난 듯 신부의 부케를 받으려 한쪽으로 몰려서는 여자들 신부가 등뒤로 부케를 던지고 날아오르는 부케를 향해 손을 뻗는 여자들 부케가 첫 번째 손을 튕겨서 다음 손을 거쳐서 통통 튕겨나가고 이 손 저 손을 차례로 튕겨나가다가 허공을 뱅그르르 돌던 부케가 왠 막대사탕을 들고 있는 손안으로 쏙- 들어간다. 카메라 빠지면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선 이빨이 빠진 여자 아이가 방긋하고 웃는다. 여자아이 손에 들린 부케를 놀란 눈으로 보는 여자들. 그 위로 타이틀. “어린신부” 3) 1) 마르그리트 뒤라스.도미니크 노게즈, [말의 색채], 유지나 옮김, 미메시스, 2006 2) 유운성, '시네마, 역량과 유령 사이에서', [씨네21] 1300호 3) 필름메이커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어린 신부> 시나리오에서 인용했다. https://www.filmmakers.co.kr/koreanScreenplays/54717 *** 그 외에도 히치콕의 < 현기증 > 뤽 베송의 < 루시 > 하룬 파로키의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황인찬의 시 '무화과숲' 중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등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힌다.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을(를) 위한 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백남준 의 작업은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작업은 <머리를 위한 선>(1961)으로, 작곡가 라 몬테 영(La Monte Young)이 쓴 퍼포먼스 스코어 <구성 19 #10 밥 모리스에게 Composition 19 #10(to Bob Morris)>에서의 지시문 “선을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라”를 백남준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잉크를 머리에 묻혀 길이가 긴 종이에 선을 그리는 퍼포먼스였다. 이 외에도 사람 머리 조각을 쇠사슬로 매달고 신어볼 수 있게 만든 <걸음을 위한 선>(1961), 거름 체에 물건을 매달아 악기처럼 소리를 내 볼 수 있도록 한 <손을 위한 선>(1961), 슬리퍼, 양철 주전자, 열쇠, 나무 인형 등 잡다한 사물을 줄에 매달아 바람에 의해 서로 부딪히게 만들어 풍경처럼 소리를 내게 만든 <바람을 위한 선>(1963)과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물을 설치한 후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한 <코를 위한 선>(1963), 검은 TV 화면 가운데에 가늘고 긴 흰색 세로줄이 나타난 < TV를 위한 선 >(1963) 등등이 있다. 이 작업들이, 그리고 백남준이 선 사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을뿐더러 그의 예술적 실천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 유용한 접근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작업이 전시되었던, TV를 처음으로 전시장 안에 들여옴으로써 백남준을 유명하게 만든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떠올려 보자. 이 전시의 독특함은 작업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었다. 전시의 제목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가 원했던 것은 ‘음악’을 ‘전시’하는 것이었던 듯한데, 관객은 전시장에 놓인 각종 작업을 직접 다루고 소리를 내 보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음악을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로 보여주고자 했던 인터미디어적 특성, 작업에 대한 자유로운 경험과 자율적인 의미 생산에 대한 강조. 백남준은 1962년 갤러리스트 롤프 예를링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전시가 “회화나 조각이 아닌 ‘시간-예술’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이 그러하듯 시간을 통해서 가능한 미적 경험이었고 그리하여 전시장에서의 작품이란 관객의 시간과 상호적일 수 있는 장치였다. 그림 1: <흰색 회화>(1951) 앞에 앉아 있는 라우센버그 < 영화를 위한 선 >(1962-64)은 ‘비어 있는’ 필름의 프로젝션이다. 즉,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리더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빛으로 쏴 흰 화면을 만든다. 이 화면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필름에 난 스크래치나 묻어 있는 먼지 때문에 무언가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것뿐이다. 일반적으로 필름 프로젝션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의 형식과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 이 반영화(antifilm)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존 케이지는 이미지 없이 프로젝션 되는 <영화를 위한 선>을 보고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 White Painting>(1951)를 떠올렸다고 한다. 케이지가 라우센버그의 회화에 영향을 받아 <4분 33초>(1952)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라우센버그는 “캔버스는 절대로 비어있지 않다”라고 믿었고, 케이지는 “소리는 언제나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이에 응답했다. 그림 없는 회화, 소리 없는 음악, 그리고 이미지가 없는 영화. 서로 상이한 매체지만 이들은 모두 비어있는 것이자 가득 찬 것에 대한 실험이었다. 라우센버그가 시각의 영역에, 케이지가 소리의 영역에 있었다면, 유령과 같은 이미지가 물러난 백남준 의 화면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기대되는 서사가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물적 조건인 기계 장치가 만들어내는 시간은 투명하다. 볼 것 없는 화면과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소리 앞에서 관객은 자기 자신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게 된다. 백남준은 기본적으로 지루함의 미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지루함이 발생할 때 경계가 사라지는 일종의 미학적 순간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루함은 흥미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이기도 하다. ‘음악의 전시’ 서문에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니 해보라. 처음에는 (아마) 흥미롭겠지만 나중에는 지루해질 것이다. 견딜 것! (아마) 다시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지루해질 것이다. 견딜 것!” 백남준이 보기에 영화라는 것은 시간을 구조화하는 주요한 시간 기반 매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드러내기 위해 영화를 지배하던 형식과 내용이 직조된 기존의 구조를 제거해야만 했을 것이다. < 영화를 위한 선 >이 1960년대에 등장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60년대는 전반적인 모든 예술의 영역에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적 실천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로버트 모리스는 1961년 <두 개의 기둥 Two Columns>을 만들어 마이클 프리드가 ‘연극성’이라고 폄하한 바로 그 전시장에서의 경험, 현상학적 미학을 강조한 미니멀리즘의 시작을 알렸다. 루시 리파드는 개념 미술의 맥락에서 미적 오브제가 사라져가는 60년대의 경향을 가리켜 ‘비물질화’라는 용어를 그의 1973년 저서에서 사용한다. 1958년 1월, 이미 앨런 캐프로는 「아트뉴스」지에 ‘잭슨 폴록의 유산’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삶의 영역으로 확장된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고 플럭서스 또한 마찬가지로 예술과 삶의 경계를 지워 예술을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다다에 뿌리를 둔 플럭서스는 단순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다양한 방식으로 ‘DIY(Do-It-Yourself)’ 미학을 전파했다. 여기에는 1950년대에 존 케이지가 탐구한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영화의 영역에서 또한 대단한 에너지를 지닌 움직임이 있었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를 중심으로 아방가르드 영화가 활발히 전개된 것이다. 1962년 23명의 독립영화 감독이 모여 뉴 아메리카 시네마 그룹이 정식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이들이 적극적이었던 것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영화를 유통시키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조나스 메카스가 1964년 세운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는 당시 등장하던 영화와 비디오 예술 실천을 위한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은 시각예술과 퍼포먼스가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곳이 되었고, 다양한 방식의 전시와 유통을 통해 주류 예술 밖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들이 실험되었다. 그림 2: 1965년 10월 28일자 「빌리지 보이스」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할 당시 백남준 의 여행용 비자를 위한 스폰서가 바로 메카스였다. 메카스는 플럭서스의 핵심 인물이었던 마키우나스와 잘 알고 지냈다. 백남준이 뉴욕에서 처음으로 < 영화를 위한 선 >을 선보였던 것은 1964년 마키우나스가 초대해서 참여하게 된 플럭스홀(Fluxhall)에서의 6주간의 플럭서스 페스티벌(Fully Guaranteed 12 Fluxus Concerts)이었다. 백남준은 4월 25일 다섯 번째 콘서트(Concert No. 5)에서 <피아노를 위한 플럭서스 콘서트 Fluxus Concert for Piano>라는 제목의 작업과 함께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고, 5월 8일 여덟 번째 콘서트(Concert No. 8)에서는 <영화를 위한 선>을 단독으로 상영했다. 브루스 젠킨슨에 따르면, 이 행사에서 <영화를 위한 선>은 “업라이트 피아노와 더블베이스가 놓인 다락 공간의 전면에 위치한 가정용 영화 스크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크기로 상영되었다. 1965년 11월 2일에는 조나스 메카스가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에서 만든 행사 ‘뉴 시네마 페스티벌Ⅰ’에서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다. 다케히사 고수기는 이 행사에서 백남준이 노출된 빈 필름과 노출되지 않은 빈 필름 두 가지 버전으로 스크리닝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라이브 퍼포먼스를 결합시켰다고 회고한다. 피터 무어가 촬영한 <영화를 위한 선>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진이 바로 이 행사에서의 기록이다. 이 사진을 보면 백남준은 <영화를 위한 선>이 상영되는 스크린을 마주하고 서 있다. 한 해 전의 상영과는 달리 스크린의 크기가 훌쩍 커졌다. 그는 영사기와 스크린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화면을 드나드는 간단한 행위를 수행했는데, 이는 퍼포먼스라기보다는 <영화를 위한 선>에 대한 백남준 자기 자신의 관람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영화의 미니멀리즘적 경험인 것이다. 메카스는 「빌리지 보이스」에 다음과 같이 썼다. “백남준의 (시네마테크에서의) 저녁을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라 몬테 영, 스탠 브래키지, 그리고리 마르코폴로스, 잭 스미스, 혹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앤디 워홀의 예술처럼, 그의 예술은 천 년 동안 이어진 미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다른 고전적인 예술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분석되고 경험된다. (...) 빛이 이미지가 된 자리에 이미지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림 3: 플럭스키트, 1965 그림 4: 플럭스키트 안의 <영화를 위한 선> 패키지 < 영화를 위한 선 >이 언제 최초로 만들어졌는지는 모호하다. 「플럭서스 Etc: 질베르트 & 릴라 실버만 콜렉션」에 따르면 <영화를 위한 선>이 포함된 백남준 의 필름 스크리닝이 1962년 12월 파리의 학생과 예술가를 위한 미국인 센터(American Center for Student and Artists in Paris)에서 있었고, 마키우나스 또한 「필름 컬처」 1966년 겨울호에 <영화를 위한 선>의 제작연도를 ‘1962-1964’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작업은 제작년도를 표기하기에 무척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영화를 위한 선>의 필름은 이후 여러 버전으로 제작되어 유통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이 작업의 핵심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생필름을 프로젝션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 작업의 요체는 필름일까? 백남준이 사용했던 바로 그 원본 필름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작업이 제공하는, 백남준이 고민했던 시간에 대한 경험이 중요한 작업일까? <영화를 위한 선>은 형식과 그것이 놓이는 맥락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있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1962년의 상영에 대해 케이지는 “1시간 길이의 이미지 없는 필름”으로 기억했으며, 메카스는 시네마테크에서 16mm필름으로 30여분 길이로 상영했다고 밝힌다, 여기에 더해 마키우나스가 플럭서스의 오브제와 인쇄물을 보급하고 유통시키기 위해 DIY 버전으로 만든 에디션 플럭스키트(Fluxkit, ‘A’ 카피와 ‘B’ 카피 모두 1965년 제작) 이후에는 <영화를 위한 선>이 주로 루핑으로 상영되었음을 상기해보면(이는 유통을 위해 작은 크기의 패키지로 제작된 탓에 필름의 길이가 짧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업의 정해진 상영 방식은 없는 듯하다. 이 말은, <영화를 위한 선>의 물질적 상태가 정해진 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를 위한 선> 단 한 작품에 대한 연구를 통한 전시를 기획하고 이에 관련된 책 「Revisions: Zen for Film」을 펴낸 한나 횔링이 다루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영화를 위한 선>을 전시장에서 봤던 세 번의 경험을 떠올리는데, 한번은 필름 프로젝터로, 한번은 디지털화된 이미지의 프로젝션으로, 한번은 필름이 담긴 캔이 유물처럼 전시되어있는 경우였다. 그는 작품이 여러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러한 상태, 계속적으로 재물질화 되고 관객의 참여 또한 그 의미가 갱신되는 이러한 상태가 <영화를 위한 선>의 복잡하고 흥미로운 점임을 얘기한다.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의 이벤트를 조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영화의 문화와 이것을 유희적으로 즐기는 데 관심이 많았다. 플럭서스의 활동을 영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 그의 노력 덕분에 플럭서스 그룹은 플럭스필름(Fluxfilm)라는 이름 아래 많은 필름 작품을 만들어냈다. 마키우나스는 1962년부터 1970년 사이에 백남준 , 오노 요코, 벤 보티에, 폴 샤리츠 등 플럭서스 그룹에서 제작한 영화 37편을 모아 플럭서스 앤솔로지(Fluxus Anthology)를 편집했는데, 그 첫 번째(Fluxfilm No.1)가 바로 < 영화를 위한 선 >이다. 이 버전에서 <영화를 위한 선>의 러닝타임은 7분 58초이다.(플럭서스 앤솔로지의 전작은 모두 우부웹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www.ubu.com/film/fluxfilm.html). <영화를 위한 선>의 16mm 버전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아카이브 형태로 수장고에 보존 중이다. 질베르트 & 릴라 실버만 플럭서스 컬렉션에 포함된 이 필름은 현존하는 필름 중 유일한 극장용의 긴 버전이지만, 이는 더 이상 상영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누군가가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인 <영화를 위한 선>의 이 버전을 대여하고자 하는 경우 미술관은 필름을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크리닝의 개념만을 대여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즉 <영화를 위한 선>을 빌리는 이는 프로젝터를 구비하기만 한다면, 길이를 마음대로 정하여 아무 16mm 빈 필름 리더를 상영에 사용할 수 있다. 최근 뉴욕현대미술관의 정책은 원본 필름을 이 작업의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나 횔링은 밝히고 있다. 이는 분명 설치나 참여형 예술, 이벤트로서의 영화, 퍼포먼스 등 최근의 예술 실천뿐만 아니라 디지털 사본이 무한히 증식 가능한 당대의 매체적 조건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일 것이다. <영화를 위한 선>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메인 사진 설명: 피터 무어, <영화를 위한 선> 앞에 서 있는 백남준. 1965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