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우리생활
- 감독
- 손영수
- 제작년도
- 1972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본 기획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1950~70년대 한국영화에 나타난 당대 서울의 도시공간을 조명해왔다. 현대사의 질곡에 휘말린 가족이 겪는 비극의 무대로서(< 오발탄 >),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공간으로서(< 도시로 간 처녀 >), 소외된 이들의 저항의 장(場)으로서(< 바보선언 >), 서울은 소시민의 삶을 표상하는 장치이자 말 없는 배우로서 충실히 기능했다. 이에 더해, 이번 논고에서는 ‘대도시’를 난생처음 접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서울이 필름 속에 어떻게 담겼는지 살펴봄으로써, 표상으로서의 서울에 깊이를 더하고자 한다. 유현목 감독의 < 수학여행 >(1968)은 한 번도 서울 구경을 해 본 적이 없는 외딴섬 ‘선유도’의 국민학교 아이들의 눈에 당대의 서울이 어떻게 비추어졌는지를 총천연색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이미 < 오발탄 >(1961)에서 비극의 무대로서 서울을 탁월하게 묘사한 바 있는 유현목 감독은, 본작에서 한층 더 대담한 시선으로 1968년 가을 서울 도심 곳곳을 포착했다. 총천연색으로 담긴 서울의 풍경은 앞서 본 기획에서 다룬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1966)에서도 감상할 수 있지만, 본작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68년의 시점이라는 점에서 급변하던 서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더욱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의 외딴섬 선유도 국민학생들은 1968년 10월 1일, 서울 출신 섬마을 선생님( 구봉서 )의 인솔 아래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기차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 줄로만 아는 순박한 아이들을 태운 기차는 한강철교(37분 34초경)를 건너 서울역에 닿는다. 드넓은 광장과 인파 속에서 처음 겪는 번잡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 뒤편으로, 현재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자리에 있던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들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38분 24초경). 3년 만에 재회한 선생님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아이들이 다 함께 64번 버스(現 750A번 버스)에 오르려는 찰나, 한 학생의 벗겨진 신발을 주우려다 버스를 놓친 선생님은 서울역 앞 광활한 대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카메라는 높은 부감(俯瞰) 시점에서, 종횡무진하는 자동차 사이를 달려 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담아낸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위험천만한 시퀀스이지만, 이 과감한 촬영 덕분에 우리는 전후 도시 복구의 상징과도 같은 관문빌딩(1960년 준공)과 형형색색의 택시, 버스가 어우러진 1968년 서울역 앞 풍경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역 전경 (37:56) 서울역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 (38:24) 서울역 앞 버스와 택시, 그리고 관문빌딩 (40:58)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건군 20주년 국군의 날 기념 현수막이 걸린 남대문과 그랜드호텔(1959년 준공, 現 흥국생명 빌딩) 앞을 지난다(41분 38초~41분 50초경). 이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버스 내부에서 차창 너머를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관객이 아이들과 같은 시선으로 서울의 경관을 체험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촬영 시점으로부터 불과 두 달 뒤 폐지될 서울전차를 목격한 한 아이가 “저거 전차 아녀?”라고 외치는 장면은, 후술할 후반부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시시각각 변화하던 서울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건군 20주년 국군의 날 기념 현수막이 걸린 남대문 (41:38) 서울전차와 그랜드호텔 (41:50) 이튿날, 서울 도심을 활보하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카메라는 과감하게 뒤쫓는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보다 2년 먼저 공개된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에 삽입된 것과 유사한 ‘보행자의 시선에서 서울상업은행 본사를 올려다보는 씬’이 등장한다(51분경). 한국은행 본점 옆에서 당시로서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을 13층 빌딩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일종의 ‘대도회지’의 표상으로서 당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은 아닌지 짐작하게 한다. 다음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서소문 옛 대한항공 본사 사옥(51분 15초경) 옆 육교에서 명동 방향을 굽어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포착하는데, 이때 ‘삼환기업’과 ‘현대건설’ 여덟 글자가 새겨진 타워크레인이 줌인되며 프레임을 가득 메운다. 감독의 의도를 전부 알 길은 없으나, 이 공사 현장은 바로 조선호텔(1970년 준공) 부지이며, 프레임에 담긴 타워크레인은 우리나라 공사 현장에 최초로 도입되어 당대 일간지에 기사화될 정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당대 최대 규모의 특급호텔의 공사 현장이자, 신식 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타워크레인을 포착하여 ‘대도회지’의 역동성을 드러내려 한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올려다본 서울상업은행 (51:00) 서소문 육교와 옛 대한항공 본사 사옥 (51:15) 조선호텔 부지에 놓인 채 줌인된 타워크레인 (51:29) 이후 수학여행단은 당시 구로공단에서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무역박람회(1시간 7분 33초 이후)를 방문한다. 덕분에 럭키(現 LG), 포드-현대자동차, 신진자동차(現 GM코리아) 등 국내 대기업들의 파빌리온이 총천연색의 영상으로 기록되어, 우리나라 산업 및 무역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흥미를 선사한다. 곳곳에서 국내 대기업 명칭이 포착되는 국제무역박람회 현장 (1:07:00~) 영화 후반부, 마침내 서울전차를 타게 된 섬마을 아이들은 운전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운전수는 “전차는 새로운 문명인 자동차에 밀려 나가게 되었다(1시간 25분 38초경)”라며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사를 전한다. 나아가 그는 “이 늙은이는 이 낡은 전차를 떠나지만, 너희는 앞으로 부지런히 새것을 쫓아가야 한다”라고 당부하는데, 이는 초반부 “저거 전차 아녀?”라며 놀라워하던 아이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수미상관을 이룬다. 이 시퀀스의 촬영 장소는 당시 동대문에 있던 서울전차 차고로 추정된다. 영화가 1968년 9월 이후 촬영되었고 서울전차가 같은 해 11월 30일에 폐지되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서울전차 차고의 마지막 모습을 컬러로 담아낸 귀중한 영상 기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울전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과 운전수 <수학여행>의 플롯은 ‘섬마을 아이들의 인생 첫 서울 여행’과 ‘섬마을 선생님의 화목한 가정 회복기’로 요약될 정도로 실은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단순한 서사 구조 덕분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1968년 서울의 풍경이 극의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그 결과 57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는 ‘그때 그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지니게 되었다. 한국고전영화 속 도시공간을 들여다보는 이러한 시도가 꾸준히 축적된다면, 표상으로서의 1950~80년대 서울에 대한 통시적 고찰 또한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영화 속 공간적 배경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는 배역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곤 한다. 그 어떤 대사가 주어지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뒤에서 극의 전개를 뒷받침해주면서, 동시에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다. 따라서 영화를 감상할 때, 배경이 되는 공간(도시일 수도 있고, 농촌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다)에 집중하여 관찰하는 행위 또한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특히 1960-70년대에 걸쳐 총천연색 컬러로 제작된 한국의 영화들은 공간적 배경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자료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1980년 12월의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개시되기 이전까지, 대한뉴스를 비롯한 국가 주도의 기록 영화를 제외한다면 당대 한국의 ‘공간’을 총천연색으로 담아낸 매체는 오직 영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당시에도 컬러 ‘사진’은 존재하였지만, 아무리 사진의 해상도가 뛰어나다 한들, 24프레임으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활동사진’이 주는 생동감에 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화 필름이라는 프레임 속에 담긴 공간은, 그 화각이 사람의 시선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특성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경관(landscape)과는 또 다른 ‘의도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의 시선, 혹은 그 시선의 기저에 깔려있는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이러한 ‘경관’에 의도적으로 녹아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므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의도된 경관’으로 재해석할 때,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영화 해석의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 야행 >(김수용, 1977)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1973년에 촬영이 이뤄졌으나 당국의 검열로 인해 1977년에 개봉된 <야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당대 일간지에서의 영화평은 물론이요, 201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관련 비평이 이어져 오고 있는 ‘꼭 봐두어야 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야행>에 담긴 공간적 배경(당대의 ‘의도된 경관’)을 살펴보는 것 또한, 영화 제작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서울 도심 전경, 삼일고가도로, 광화문 지하보도를 넘나드는 도입부의 시퀀스 <야행>의 약 2분여에 걸친 도입부는 많은 비평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 한적한 농촌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도심의 삼일고가도로, 삼일빌딩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시점과 무관하게 상경의 과정을 나타내는 시퀀스임을 누구나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멋진 구성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퀀스에서 주로 비치는 공간은 고속도로,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고가교, 서울 도심의 삼일고가도로, 그리고 광화문 지하보도라는 ‘입체 공간’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감독이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서울이라는 장소의 근대성, 도시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2024년 현재의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의 외관 (필자 촬영 및 제공) 주인공 현주( 윤정희 )가 근무하는 은행은, 안국동 로터리에 위치한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 김중업 설계)으로, 서울 도심 중에서도 ‘한복판’인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15층의 갱생보호회관은 대폭 리뉴얼을 거친 지금에도 여전히 위용을 뽐내는 건물이니, 반세기 전 서울에서는 더더욱 그 존재감이 돋보였을 것이다. 현충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반포주공아파트로 걸어들어가는 현주의 모습 현주가 거주하는 반포주공아파트는, 영화가 촬영되던 시점에 갓 입주가 이루어진 말 그대로 최첨단의 아파트 단지였다. <야행>에 대한 비평 이외에도, 반포주공아파트의 의의에 대한 논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서 한강 이남에 지어진 최초의 중산층을 겨냥한 아파트 단지로서, 현재의 강남 아파트 신화의 방아쇠를 당긴 단지에서,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엔 유유자적하나 심리적으로는 항상 결핍된 ‘모던한 삶’을 살아간다. 소월길에서부터 덕수궁까지 배회하는 현주의 시퀀스 영화의 20분-23분경에서, 현주는 정처 없이 서울 도심을 배회한다. 남산 소월길을 걷다가 구매한 마스크를 두르고, 시청 앞 덕수궁에 들러서 동물을 감상하거나, 정관헌에서 차를 마시는 현주의 행동은 50년이 지난 지금, 퇴근 후 직장인들의 모습을 종종 관찰할 수 있는 덕수궁의 풍경과 금세 오버랩된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카메라는 그저 현주와 풍경을 비출 뿐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 심적으로 허전해 보이는 현주의 심리 상태를 체감할 수 있는 훌륭한 시퀀스이다. 꺽다리 빌딩 사이에서 조용히, 혹은 외로이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덕수궁, 그리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익명의 도시인들의 모습이 현주라는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주의 고향, 홍성군 홍주읍성의 조양문 영화의 40분 이후, 현주가 잠시 생각의 전환을 위해 귀성한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카메라는 장항선의 옛 역사, 홍주읍성의 조양문, 읍내의 도로를 컬러로 비추며, 최첨단을 달리던 대도회지 서울과는 대조적인 경관을 훑는다. 강변1로와 5로(현재의 노들길 동작역 부근), 그리고 갓 준공된 반포주공아파트의 부감 시퀀스 51분경에 등장하는 현주의 주거지, 반포주공아파트를 부감하는 씬은 만약 이 씬만 떼어놓고 본다면 마치 대한주택공사의 홍보 영화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현대적이며, 도시적이다. 특히 씬의 도입부를 1971년에 갓 개통된 동작동 강변1로와 강변5로(현 노들길)의 경계점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감독은 초고밀도의 서울 도심, 비포장도로 천지인 현주의 고향과는 대비되는 인공적이고 균질하며, 인간성이 결여된(실제로 영화 촬영 시점에서는 입주가 100% 완료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시가지 강남’을 이 씬에 담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은행 앞 사거리의 육교 영화의 후반부, 60분과 68분경에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은행 앞 육교가 동일한 구도에서 시간대만 낮과 밤으로 달리한 채 등장한다. 재밌게도, 이러한 구도는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1966) 등의 타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단골’ 구도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도회지 서울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구도로서 너나 할 것 없이 이 육교를 꼽았던 것이다. 걸음을 서두르는 박대리와 그 뒤에 우뚝 솟은 갱생보호회관의 전경 영화의 막바지, 74분경에 예상외의 행동을 하는 현주에 당황한 박대리( 신성일 )는 안국동 사거리의 육교를 황급히 걸어 내려오며 은행으로 들어가는데, 이 씬에서 당당한 풍채의 갱생보호회관 외관이 잠시나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78분 즈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현주가 거주하는 반포주공아파트가 다시 비친다. 비록 영화 전체에 걸쳐서 공간적 배경이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장면은 단 한 컷도 없으나, 현주와 박대리의 상반된 물리적 관계가 유지되는 두 곳의 장소 모두, 결국에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반포주공아파트와 갱생보호회관은 ‘의도된 경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2024년 현재 아쉽게도 반포주공아파트와 갱생보호회관 모두 촬영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전자는 바로 지난해 재건축을 위해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후자는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영화 촬영 당시와는 외관이 상당히 바뀌었다. 예정된 파국을 맞이했던 현주와 박대리 두 사람의 관계처럼, 두 곳의 ‘의도된 경관’ 또한 현실 세계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영화 <야행>을 온전히 역사의 영역에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