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령
- 감독
- 김을백
- 제작년도
- 1964
- 출연
- 황해, 김혜정, 이민자, 최남현, 이예춘, 최봉, 박암, 김을백, 주선태, 독고성, 이업동, 윤인자, 전숙, 임해림, 윤일주, 남방운, 이향의, 이근우, 이봉기, 곽태용, 김옥경
< 어느 여배우의 고백 >은 영화배우들 사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나탈리 우드, 킴 노박, 존 웨인 같은 외국 스타들, 또 김지미 , 남정임 , 김진규 같은 충무로 스타들의 사진들을 배경으로 오프닝 크레딧이 뜬다. 말하자면 <어느 여배우의 고백>은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자기 반영성’의 테마를 전제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세계영화사에서 영화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는 태도, 곧 자기 반영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이다. 이 해에 두 개의 중요한 영화, 곧 페데리코 펠리니의 < 8과 1/2 >, 그리고 장-뤽 고다르의 <경멸>이 발표됐다. 주로 외부로 향해 있던 영화의 시선이 자기 내부로 향하는 성숙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김수용 감독의 <어느 여배우의 고백>은 한국영화사에서 자기 반영성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품이다. 충무로의 영화 만들기 과정 전부가 영화의 중요한 스토리로 이용되고 있어서다. 영화가 자신을 거울에 비추다 보니,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현실과 허구는 뒤섞인다. 그래서 주요 인물들은 전부 실제 이름 그대로 나온다. 김진규 는 과거 충무로의 스타였다. 영향력 있는 제작자와 상대 배우 캐스팅 문제로 다투다가 눈에 나는 바람에 영화계에서 쫓겨났다. 지금은 형편이 궁색하여, 거의 숨어 살다시피 한다. 우연히 옛 동료 황정순 을 만나, 과거 상대 배우의 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김진규는 연인이었던 그 배우가 출산하다 죽는 바람에 딸도 죽은 줄 알고 있었다. 그 딸, 남정임 은 술집을 운영하는 집에 입양돼 있다. 김진규는 딸의 외모에 깜짝 놀란다. 죽은 배우와 너무 닮아서다. 김진규는 자신의 궁색한 처지가 부끄러워 신분을 밝히지는 못하고, 남정임을 스타로 키우기 위해 뒤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당시 데뷔 2년 차였던 22살의 남정임은 실제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 어느 여배우의 고백 >은 1960년대 특유의 눈물을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드라마다. 할리우드의 고전 영향도 느껴진다. 무명의 여성을 스타로 길러내는 조지 쿠커의 < 스타 탄생 >(1954, 이 작품도 영화에 대한 영화다), 딸의 신분 상승을 위해 궁색한 처지를 숨기는 엄마의 희생에 관한 킹 비더의 < 스텔라 달라스 >(1937)의 서사구조가 자주 겹친다. 남정임 은 점점 스타로 성장하고, 김진규 는 그 과정에서 딸의 미래에 방해가 될까 봐 점점 뒤로 물러난다. 오로지 희생으로만 묘사되는 헌신적인 부성이 ‘최루’의 무기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충무로 세계가 그대로 노출된다. 감독( 전창근 )은 최선의 화면을 잡기 위해 재촬영을 거듭하고, 필름 값을 아끼려는 제작자( 허장강 )는 감독의 그런 태도에 화를 낸다. 다섯 편에 겹치기 출연하는 스타 배우( 한성 )는 촬영현장에 늦게 오기 일쑤고, 스타덤에서 밀려난 배우( 전계현 )는 질투심에서 신인 남정임 에게 못되게 군다. 남정임은 사라진 김진규 가 간혹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양어머니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하루 일하다 감독으로부터 ‘스캔들’ 주의를 듣는다(충무로에서 가끔 일어나던 일이다). 스타의 품위를 지키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충무로의 이런 ‘현실’들이 ‘허구’와의 경계를 자주 허무는 점이다. 전계현 은 신인 남정임 이 스타로 급성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좋아했던 남자 배우 한성 (1960년대 미소년 같은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과도 친해지자, 깡패를 동원해 두 사람의 관계를 깨려고 한다. 충무로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두 배우가 깡패의 폭력 앞에 놓여 있는 긴장된 순간에 감독의 “컷”하는 소리가 들리는 식이다. 우리가 보고 있던 영화 속의 현실은 사실 허구였던 것이다. < 어느 여배우의 고백 >은 현실이 허구이고, 허구가 또 현실일 수 있는 공간을 세련되게 교차하고 있다. 자기 반영적인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미덕을 갖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약간 높은 시선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되돌아보는 성찰적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브레히트의 용어를 빌리면, ‘비판적 관객’이 되는 셈이다. 동시에 단점도 있다. 일반영화에서 기대되는 ‘환영적 쾌락’, 곧 주인공과의 동일시와 감정이입이 종종 차단된다. 남정임 이 아버지의 헌신을 뒤늦게 알고, 오열하고 있을 때, 관객은 이것이 현실인지 연기인지 고민하기 때문에 배우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머뭇거려지는 것이다. < 어느 여배우의 고백 >은 이런 형식상의 도전 때문에라도 소중한 작품으로 남는다. 당시의(사실 지금도) 영화 환경에선 반상업적, 반대중적으로 여겨질 주제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지은 까닭이다. 아마 그런 형식의 남다름 때문에 내용은 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신파조로 흐른 것 같다. <어느 여배우의 고백> 덕분에 한국영화사는 형식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계몽주의 시대의 풍자 코미디다. 코미디인데, 보는 내내 약간 긴장을 느끼는 것은 당대 귀족의 권위를 대단히 같잖게 보고 있어서다. 곧 지배층이 여기선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하인 커플(피가로와 수잔나)과 주인 커플(백작과 백작 부인)의 역할의 역전에서 빚어지는 소동이 이 코미디의 백미다. 주인은 소인배 같고, 하인이 관용을 베풀어서다. 그런 소동을 가능하게 만든 장치가 바로 ‘변복(變服)’이다. 백작은 부인이 하녀 수잔나의 옷을 입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걸다, 상대가 아내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용서를 빈다. <피가로의 결혼>이 은근히 ‘위험한’ 것은 용서를 비는 장면을 객석에서 보면, 화려한 의상의 귀족 남자가 수수한 복장의 하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서다. 귀족은 무릎을 꿇고, 하녀, 곧 시민은 관용을 베푸는 이 장면에서 프랑스혁명의 전조를 읽기도 한다(슬라보예 지젝, 믈라덴 돌라르 지음,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 이병일 감독의 < 시집가는 날 >의 주요한 모티브도 변복이다. 졸부로 보이는 맹 진사( 김승호 )는 김 판서 댁의 아들 미언(최현)과 혼사를 성사시켜 결혼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소문에 그 아들은 ‘절름발이’라는 것이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사회적 신분이 필요하지만, 장애인에게 딸 갑분( 김유희 )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맹 진사는 딸 대신 딸의 몸종인 입분( 조미령 )을 딸처럼 꾸며 결혼식장에 내세운다. 입분은 어쩔 수 없이 주인의 명령대로 갑분처럼 변복하여 신랑 앞에 선다. 그런데 장애인인 줄 알았던 신랑은 훤칠한 청년이고, 멋진 옷을 입은 입분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신부로 비치는 것이다. 맹 진사와 딸은 자신들의 경솔함을 뉘우치지만, 이미 신랑은 입분의 비밀까지 모두 이해하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뒤다. 신랑은 ‘참된 마음’을 가진 신부를 원했고, 그래서 일부러 나쁜 소문을 냈는데, 마침내 천생배필을 찾았다며 입분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피가로의 결혼>과 < 시집가는 날 > 두 작품 모두 사회적 제도와 통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피가로의 결혼>은 신분제도라는 것 자체를 무시하며, <시집가는 날>은 부(富)와 관용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분과 부를 표시하는 것은 사람의 내면이 아니라 복장인데, 따라서 누구나 다른 복장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뭇 공격적인 풍자를 담고 있다. 그만큼 물려받은 신분인 귀족, 인품이 따르지 못한 부자는 인정할 수 없으며, 금방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는 서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데, 백작은 그들이 입은 옷에 따라 부인을 하녀로 하녀를 부인으로 오인한다. <시집가는 날>에서 하녀 입분은 주인의 딸 갑분의 옷을 입었는데, 여성스럽고 조심스런 태도를 가진 입분은 누가 봐도 더 품위 있어 보인다(전통적인 미모를 가진 조미령 의 스타성이 한몫했을 테다). 백작부인과 하녀, 갑분과 입분은 항상 대체 가능한데,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는 냉소인 것이다. < 시집가는 날 >이 발표될 때는 한국영화가 비로소 전화(戰火)의 상처에서 벗어날 때다. 영화사가 이영일에 따르면 해방과 전쟁의 질곡을 넘어 한국영화가 중흥의 발판을 마련할 때다(「한국영화전사」). 아마 당대의 경제적 변화에 올라탄 졸부도 많았을 것 같다. <시집가는 날>은 사회적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당시의 신흥계급에 대한 통렬한 냉소를 시대극의 형식을 빌려 그리고 있다(영화의 배경은 졸부들이 족보를 사던 구한말이다). 맹 진사는 며칠 머물기를 원하는 어느 선비의 부탁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구두쇠로 표현돼 있다. 자기 이익에만 눈이 먼 부자인 맹 진사, 사람에 대한 이해는 하녀보다 훨씬 얕은 주인집 딸, 이들처럼 사회적 역할을 외면하는 기득권층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뜻일 테다. < 시집가는 날 >이 유난히 강조하는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옛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빼어난 동양화 같은 마을 풍경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향수(과거) 또는 염원(미래)으로 보인다(촬영감독은 임병호 ). 과거의 상징은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양반인 판서 아들 미언, 그리고 미래의 상징은 맑은 마음을 가진 하녀 입분으로 표현돼 있다. 인정의 대상에서 현재의 기득권자인 맹 진사댁 사람들은 배제돼 있는 데서도 <시집가는 날>의 세태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런 냉소는 지금도 대단한 효력을 가질 것 같다. 미래를 지향하며, 현재의 권위를 부정하는 태도가 강조돼 있어서다. 아마 이런 반제도적인 풍자가 <시집가는 날>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주목하게 하는 이유일 테다(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애인에 대한 이 영화의 성찰 없는 태도다. 보기에 따라서는 잔인할 정도인데, 사실 우리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공격성을 갖고 있었다. 과거를 읽는 하나의 중요한 테마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신상옥 감독은 동경미술학교 출신이다. 그의 작품이 유난히 미술적인 매력에 주목하고 있는 점은 우연이 아닐 테다. 화가가 주인공인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반 고흐의 꽃을 닮은 독특한 오프닝 크레딧의 < 자매의 화원 >(1959),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장면이 인상적인 < 벙어리 삼룡 >(1964), 또는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암시로서의 마을 전체 풍경의 묘사 등은 신상옥의 미술 취향을 잘 설명하는 대목이다. 1950년대 후반 신상옥의 멜로드라마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 동심초 >(1959)도 전체 마을을 묘사한 첫 화면부터 미술적인 매력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롱숏으로 잡은 서울의 어느 마을 풍경인데, 마치 독일 표현주의의 걸작인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의 불안한 도시를 보는 듯하다. 비탈진 산의 정상 부근엔 하늘로 치솟은 교회 탑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전통의 존재와 서구 문명의 유입 사이의 불균형이 기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데, < 동심초 >는 그런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 멜로드라마이다. 숙희( 최은희 )는 1950년대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인 전쟁미망인이다. 대학생 딸( 엄앵란 )과 함께 살며, 작은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 간부인 상규( 김진규 )의 도움으로 겨우 양장점을 꾸리고 있는데, 사실 그와는 비밀리에 사랑도 키워왔다. 하지만 숙희는 남들의 눈이 무서워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상규라고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이미 약혼녀( 도금봉 )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숙희가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 동심초 >가 개봉될 당시는 더글러스 서크의 소위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관객의 눈물을 자극할 때였다. 이를테면 < 순정에 맺은 사랑 All That Heaven Allows>(1955)에서 보듯 서구에서도 미망인이 사랑을 하는 것은 여전히 ‘주홍 글씨’의 일탈이었다. 상규의 친구( 김석훈 )는 물론이고, 자신도 미망인인 상규의 누나( 주증녀 )도 두 사람의 관계는 중단하는 게 옳다고 충고한다. 말하자면 전통의 명령을 따르는 게 순리라는 입장이다. 상규와 숙희의 관계를 지지하는 유일한 인물이 숙희의 딸인 ‘대학생’이다. 곧 당대 소수의견의 대변자이자 새로운 문명의 학습자이다. < 동심초 >는 이 두 진영, 곧 구질서와 신질서의 길항관계를 꾸준히 비교하며 극의 긴장을 끌어가고 있다. 상규와 숙희가 한 번쯤은 서로 사랑을 고백하며, 육체적 표현도 서슴지 말았으면 하는 순간에도 화면은 두 사람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다. 영화도 사회적 평판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용하는 게 ‘꿈’의 장치다. < 벙어리 삼룡 >에서 말했듯, 꿈은 신상옥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종종 쓰는 모티브다. 숙희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고향으로 내려갔고, 상규는 그곳까지 따라갔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도착한 그 날 밤, 숙희가 숙소를 찾아와 두 사람은 달빛 아래의 들판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역시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들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사랑을 고백하고, 상규는 숙희를 간절하게 끌어안는다. 바람에 몹시 일렁이는 풀처럼 두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고, 관객의 마음도 흥분된다. 상규가 아침에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는 말이다. 신상옥 감독은 이 장면을 루이스 부뉴엘의 초현실주의 영화처럼 꿈이라고 예고하는 장치를 전혀 쓰지 않고, 느닷없이 보여준다. 사실처럼 봤는데, 꿈으로 밝혀진 표현법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사실상 누구의 편을 드는지 다 보여주고, 통념의 비판은 지혜롭게 피해간 것이다. < 동심초 >가 발표될 당시는 신상옥 - 최은희 커플과 홍성기 - 김지미 커플이 본격적으로 경쟁을 벌일 때였다. 두 진영은 멜로드라마를 만들며 서로 힘을 겨뤘고,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 영화의 미학도 발전했다. 홍성기 감독은 김지미 주연의 멜로드라마 < 별아 내 가슴에 >(1958), < 산 넘어 바다 건너 >(1958) 등을 내놓았다. 두 진영의 경쟁은 < 춘향전 >(홍성기)과 < 성춘향 >(신상옥)이 발표되는 1961년에 절정을 맞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술적 매력이 돋보였던 신상옥 의 작품 속에 초현실주의적인 요소까지 끌어와, 멜로드라마의 표현법을 확장한 작품이 < 동심초 >이다. 곧이어 신상옥은 < 자매의 화원 >, < 이 생명 다하도록 >(1960) 등 자신의 멜로드라마 대표작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어느덧 신상옥은 멜로드라마 감독으로서의 명성도 쌓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