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영상]공무원 해고자 원직복직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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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작년 한 해는 뭐 하는 한 해였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 판데믹 때문에 영화업계는 불안과 침체가 주였던 것 같은데 그나마 이래저래 만난 한국 영화들이 2020년을 관통하는 한 줄기 빛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1월 말, 2월 초 참가했던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는 윤단비 감독의 < 남매의 여름밤 >이 밝은 미래 부문 상을 탄 것, 같은 곳에서 다른 한국 영화들의 활약과 함께 작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탄 봉준호 감독의 < 기생충 >이 흑백 버전 월드 프리미어와 마스터클래스를 엄청난 열기 속에 마친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한 해, 곧이어 2월 초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전례 없이 비영어권 영화로 <기생충>이 최고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 상을 휩쓴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한 해였다. 세계인이 감탄한 가운데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LA 현지 시각 2월 9일) 끝나고 이틀인가 사흘 후, 연상호 감독과 < 반도 > 단독 인터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는 투자배급사의 밀폐된 유리 상자 같은 회의실 안에서는 마크스를 벗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진 일상에 오늘도 Zoom 화상 인터뷰가 잡혀있다.) 어쨌든 한국 안팎으로 2016년작 < 부산행 >이 이례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에 이어 그 후속작인 <반도> 역시 칸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후 여름 성수기 텐트폴 개봉의 수순을 밟을 것에 국제적인 기대가 이미 모아졌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2020년은 정말 신나는 한 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11월 말, 12월 초 시점에서는 이게 다 올해 얘기 맞나 팩트 체크를 해야 할 정도로 다른 세상의 먼 과거 얘기가 돼버린 것 같다.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COVID-19)’라는 말이나 ‘판데믹이 영화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얘기가 빠지는 기사는 거의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극장 관객 수는 폭락했고 영화사들은 극장 개봉을 미루거나 OTT로 직행했고, 칸 영화제도 취소한다 만다 한참 끌다가 결국 6월에서야 선정작 발표만 하고 물리적 영화제 자체는 취소하는 형태가 됐고, 앞으로 영화 제작과 상영은 잘해나갈 수 있을까 계속 불안하고 우울한 2020년이 돼버렸다. (그래도 일찍부터 세계 여름 동시기 개봉을 준비했던 <반도>는 그나마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잘 취한 한국 외 아시아 몇 개국 중심으로 개봉을 과감히 실행하면서 얼어 있었던 극장가를 어느 정도 녹여주었다. 칸 영화제는 열리지 않았지만 공식 선정작 목록에 오른 <반도>는 그것과 별 상관 없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또 세웠고, 국제 영화업계는 그 행보에 주목했다.) 그리고 수개월 간 개막을 할지 말지 고민하던 부산 국제영화제는 조심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 및 방역 조치를 강화한 상태의 축소된 행사를 10월에 개최하기로 했다. 이에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는 영화제에 선정된 떠오르는 한국 영화 신인들 몇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됐고, 덕분에 신선한 장편 데뷔작들을 또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그 중 뉴 커런츠 부문에 선정된 이란희 감독의 < 휴가 >가 기억에 가장 남는 영화 중의 한 편이다. 보통 취재를 위한 스크리너 링크를 받으면 당장 관람하지 못한다. 다른 일이 좀 없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때 가서 링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경우, 보내준 이에게 연락하기 곤란한 타이밍이다. 그래서 이메일로 받으면 “잘 받았습니다” 답신을 하기 전에 먼저 스크리너를 잠깐씩 틀어본다. 앞부분 크레딧과 첫 장면 몇 초가 잘 나오나 보고, 무작위로 중간쯤 계속 문제없이 나오나 한두 군데 정도를 틀어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2-5초씩만 틀어본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맨 끝은 피한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번 부산 영화제 기대작으로 받은 스크리너들은 거의 다 불과 그 몇 초 안에 ‘아, 이 영화 좋을 것 같다’ 싶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 보고 났더니 실제로 이 불안하고 침체된 시기에 영화에 대한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맞았다. 신기해서 주로 취재 기자로 일하는 나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와 평론가 친구들에게 SNS상으로 물었다. 어떻게 몇 초 안에 영화가 좋다는 게 티가 나지? 무슨 연출력의 힘이나 미쟝센의 요소들이 결합하면 총 5초 내에 느낌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쟁쟁한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제대로 답을 못 해준 건지 안 해준 건지 그저 좋은 영화를 봤다니 기뻐해 주고, 기껏 해 봤자 ‘많이 보다 보면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정도였다. 주인공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3초 동안 나오는데 ‘뭐 하나 동행해 보고 싶다’,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배경과 소리가 나오는 장면을 2초 동안 보는데 ‘저 안에서 호흡해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무슨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휴가>도 분명히 그런 영화 중 하나다. <휴가>는 중년의 해고 노동자 재복이 동료들과 함께 1,882일째 농성하는 날 해고 무효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고, 일단 장기 농성을 하던 차가운 노상의 텐트를 떠나 며칠간 재충전의 시간, 남들처럼 ‘휴가’를 가자는 결론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엉망이 된 집에 들어간 재복은 밀린 청소와 정리를 시작하는데 딸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정을 비웠던 아빠가 반갑지 않다. 농성장에서 식사 담당인 재복은 집에서도 따뜻한 밥을 차리지만 애들은 외면하고 늘 먹었던 듯한 라면을 알아서 해 먹는다. 고3인 큰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합격한 대학에 낼 예치금이 필요하고, 작은딸은 롱 패딩 코트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복은 얼마 없는 휴가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친구가 관리자로 있는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전에 단편 영화 < 파마 >, < 천막 > 등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외 다수 영화제에서 기대주로 떠올랐던 이란희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감독은 2012년 실제로 어떤 기타 공장 해고 노동자 밴드 공연을 보고 그 멤버들에 관한 시나리오를 쓸 생각으로 취재하다가 결국 단편 영화를 몇 편 찍게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보게 된 장기 농성자들 중에 12년간 투쟁한 사람이 농성장을 중간에 떠났다가 몇 번이나 돌아온 것을 보면서 궁금해하다가 어떤 일을 하다가 왜 돌아왔는지 이해하려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할 일이 있고 ‘일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렇듯 재복도 가깝게는 함께 지낸 공장 동료들과 멀게는 더 큰 노조 조직들과의 연대 의식과 책임감으로 농성에 성실히 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돌보아야 할 가족들이 있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복은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누군가 억울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한다 생각하면 없는 처지에도 발 벗고 나서서 도우려 한다. 말주변이 없는 듯하면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소신을 갖고 말할 때는 사람들이 당황해하면서도 설득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봉하 배우는 성실한 곰 같으면서도 섬세한 면을 드러내는 재복을 연기하는데 가슴을 천천히 미어지게 한다. 이 영화 전체가 그런 것 같다. 덤덤하게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니는데 섬세한 순간순간과 사건들이 모여서 조용히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게 있다. 스포일러를 쓰지 않고 이란희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칭찬하기 힘들다. 그런데 어쨌든 시나리오를 받쳐준 노신웅 촬영감독과 한동훈 동시녹음 기사와 이연정 편집자의 역할도 꼽을 만할 것 같다. 분명 처음에 2~5초씩 스크리너를 돌렸을 때 매력을 느끼게 한 그 모습들이나 소리들도 감독의 연출 아래 그들의 공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 큰딸 현희를 연기한 김정연 배우, 작은딸 현빈을 연기한 이승주 배우, 그리고 작업장의 젊은 동료 준영을 연기한 김아석 배우를 보면서 계속해서 한국 영화의 자라나는 연기자 풀이 메마르지 않음에 희망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영화는 10회차, 2월 18일부터 3월 1일 사이에 촬영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저희가 촬영을 마치자마자 한국이 난리 났었다’는 감독의 기억이 있다.) 주로 인천에서 촬영했는데, 한 회차는 서울 강남역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농성장에서 찍었다고 한다. 노조를 만들려다가 해고돼 복직을 위해 355일 동안 고공농성한 김용희씨가 아직 철탑 위에 있을 때의 농성장인데, 그 로케이션이 영화 속에 제대로 활용된다. 감독은 '노동 이슈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고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도 평생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것 같다. 허투루 살지 않고, 최대한 성실하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도리를 지키며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이들을 보살피려는 재복도 그런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양극화로 ‘좋은 인성까지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세습되고 있는 생각이 들더라’ 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만, 어쨌든 제도가 바뀌든 안 바뀌든 살아야 하니까 그럼 우리는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뭘 가지고 여유가 있어서 나오는 에티켓 같은 것이 아니라 힘든 와중에도 이 일은 하는 내가 사람이니까 잘하려고 하는 고민’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도 재복은 누가 보든 말든 착실하게 정성껏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농성하느라 묵혔던 기술과 경력을 살려 가구 만드는 아르바이트에 임할 때 나름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남들처럼 휴가 때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픈 등에 파스를 붙여가면서 노동하는 것인데도 나름 품위가 있어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대충 감이 왔겠지만 <휴가>는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가 아니다. 저예산 독립 영화다. 인천영상위원회, 한국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전주영화제작소 등 여러 단체의 기획개발, 제작, 후반 작업 등 각 단계별 지원뿐만 아니라, 밥을 날라다 주고 장소를 빌려준 지역 주민들의 성원 등 여로모로 지원이 들어간 작품이다. 영화업계 역시 양극화되어가는 상황에서 <휴가>와 같은 독립영화들도 품위 있게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족한 글을 몇 자 적어봤다. 가장 인간적인 작은 단위의 관찰과 동조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문제와 함께 좀 더 넓은 폭의 사회 문제도 곱씹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는 지원해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지역이나 국가의 단체로서든, 개인 극장 입장권을 예매하는 관람객으로서든, 밥을 날라다 주는 이웃으로서든 말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파업투쟁을 했다. 사측의 맞불 집회와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파업은 끝났고,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거리로 떠밀려 나왔다. 공장 벽을 물들이던, 공장 밖에서 노동자의 가족들이 울부짖던 ‘같이 살자’는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 안녕 히어로 >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운의 아들 현우를 통해 투쟁 이후의 삶을 바라본다. 뉴스를 도배하던 파업 이후, 일상의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현우가 아홉 살 때 아빠는 파업을 했고 감옥에 갔다. 그때부터 ‘평범’했던 현우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현우가 열세 살 때부터 열여섯이 되어가는 4년여의 시간을 담는다. 그 안에는 2009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진압부터 송전탑과 굴뚝에 오르던 해고자들의 모습, 그들을 해고한 것은 정당했다고 판결한 대법원까지,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은 괴로운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현우의 표정을 카메라 너머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었다. 입학식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흘깃거리는 눈빛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찍는 동안 경계를 풀지 못하는 긴장 같은 것. 현우의 아빠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파업투쟁에 함께 했다. 그리고 해고노동자가 되었다. “용기를 주는 박카스가 있다면 뭘 할 거냐”는 감독의 질문에 현우는 “버릴래요, 아님 다른 사람 주거나”라고 답한다. 현우의 대답은 그런 순간들을 떠오르게 했다. 모든 게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던 어떤 날들. 영화 속 현우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의 직업란에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빠가 대체 뭘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아홉 살 때 아빠는 감옥에 잡혀갔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학교에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빠는 병원에 있다고 둘러대야 했다.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상처가 되는 시기였다. 사실을 알면 친구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너희를 위해 노동운동을 한다는 부모의 말은 나에게 최고의 모순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위험한 일을 하는지, 약한 사람들 편에 서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이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은 병을 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업 이후 평택 시내에는 쌍용자동차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했다.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해고된 상처는 지역 전체에 드리워졌다. 해고자들은 소송도 하고, 삼보일배도 하고, 송전탑과 굴뚝에도 오르면서 할 수 있는 싸움을 다 했다. 싸움은 번번이 실패했다.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력해졌다. 영화 속 현우네 집은 밝아 보였다. 아빠가 현관 키를 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급하게 자는 척 연기하는 동생 민서와 벌떡 일어나 아빠를 반겨주는 현우의 인사가 따뜻했다. 아빠 먹으라고 아이들이 남겨둔 치킨 조각이나 오손도손 앉아서 아빠 직업란에 쓸 단어를 찾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 무력감은 현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선거 유세차량에 아빠를 따라 덥석 오르는 민서와 달리, 현우는 아빠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아빠를 알아볼까봐 아빠 가 선거에 나오는 건 싫다고 말한다. 용감했던 아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 다음, ‘나쁜 사람’들이 가는 감옥에 갔다. 영화에 다 담기지 않은 많은 시간동안 현우에게는 용기조차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가 영웅처럼 느껴진다”는 현우의 마지막 말이 더없이 울컥했다. < 안녕 히어로 >의 한영희 감독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빠인 노동자 한 명의 싸움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싸움의 당사자가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이야기는 ‘노동조합’ 이나 ‘투쟁’이라는 단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삶을 만나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게 정말 괜찮은 사회인 건가, 하고. 현우의 아빠는 7년의 투쟁 끝에 복직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130명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 현우는 촛불집회 이후 많이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작은 힘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은 현우에게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담은 < 그림자들의 섬 >에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자신의 신념, 이상, 혹은 의리, 관계 등의 이유로 ‘뭔가’를 놓지 않고 버텨온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신념’이나 ‘믿음’보다는 먹고 사는 것의 문제, 실리가 더 중요해진 요즘, 사는 것에 지칠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냥 놓아버리면 안 되는지. 그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들이 버티어냈을 시간들, 견뎌냈을 아픔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들이 온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섬세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희망버스’와 ‘김진숙 지도위원’ 외에는 한진중공업에 별다른 정보가 없던 사람들에게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역사, 투쟁의 역사, 그리고 노동자들이 싸워온 시간들의 기록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교과서 같은 영화이다. 김정근 감독의 전작인 < 버스를 타라 >가 희망버스 자체를 집중적으로 기록했다면, < 그림자들의 섬 >의 8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버스를 타라>의 프리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조그마한 사진관의 무대 위로 불러 모은다. 80년대 입사한 이제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부터 2000년대 입사한 젊은 노동자들까지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억과 꿈, 아픔과 상처, 일상과 기적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의 용접공이 된다는 꿈에 부풀어있었던 입사 시절부터,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너무나 열악했던 노동 조건, 옆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후회되고 아팠던 순간들, 민주노조의 설립과정과 투쟁이 확산되었던 승리의 경험 등. 이 영화는 오랜 기간 민주노조를 만드는데 함께 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위해 같은 곳을 지켜온 평범하지만 단단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영화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퍼즐처럼 맞춰지는 30년 한진중공업의 역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평범하지만 다양한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줬던 ‘희망버스’와 300일이 넘어서야 고공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회사와의 합의로 이 영화가,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그림자들의 섬 >이 < 버스를 타라 >의 프리퀄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영화의 러닝타임으로 보자면, 이 부분은 영화의 거의 후반부에 해당하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재’는 굉장히 무겁고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현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권에 들어서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회사는 복수노조를 설립한다. 설 자리를 잃은 민주노조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끈을 놓지 않는다. “원망하는 건, 지원하는 건 쉬워요. 미워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기다리는 게 힘들지.”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 한 마디는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용산참사’는 올해 1월 7주기를 맞았다. 2009년 5월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 이루어졌던 노동자들의 투쟁과 복직투쟁은 지금도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비극에 대한 진상규명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는 게 바빠서, 기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재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와 잘못된 환경 속에 있고, 어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바쁜 이유 역시, 그 불안정한 삶의 모서리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을 알 수 없는 그 삶의 모서리를 지키느라 남의 일에는 도통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201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16년 8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나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시간의 경과를 느끼기는 어렵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만은 아닐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동참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