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자(들)
- 감독
- 홍재희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홍성아, 정인기, 조한희
‘반짝이는 것’이 시각의 영역이라면, ‘박수 소리’는 청각의 영역이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보내는 소리 없는 박수(소리)이다. 소리 대신 양손을 흔들어 ‘짝짝짝’ 대신 ‘반짝반짝’을 한다. 영화 < 반짝이는 박수 소리 >는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 그/녀들에게 보내는 소리 없는 박수, 곧 지지와 응원이다. 동시에 영화는 ‘말의 세계’(감독은 듣고 말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세계를 침묵의 세계와는 다른 ‘말의 세계’라 표현한다)의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혹은 듣지 않았던 ‘침묵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감독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침묵의 세계와 말을 세계를 오가며 두 세계를 매개해왔듯이, 영화 역시 청각 장애인과 비청각 장애인의 세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건네려는 시도인 셈이다. 반짝이는 침묵의 세계, 소리 없는 일상 영화는 청각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부모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말을 할 수 없으므로 한 가정을 꾸려가기 위한 그들의 삶은 짐작보다도 훨씬 고단하고 힘들었을 텐데, 그들은 한없이 밝고 유쾌하게 지난 시간을 회고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두 사람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크리스마스트리만큼이나 반짝인다. 밥을 지어 먹고, 김장을 담그고, 장을 보고, 명절을 지내는 그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단단하게 구축되어, 그 자체로 이미 평화롭고 온전해 보인다. 침묵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혹은 함께 살아가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다. 엄마, 아빠를 중심으로 다큐를 찍으려고 하지만 과연 다큐를 통해 가족을 설명할 수 있을지, “찍으면 찍을수록 견고하고 완전”한 그 세계를 어떻게 다큐에 담아낼 수 있을지 감독은 묻는다. 영화는 부모님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지만, 이 영화가 해야 하는 가장 큰 몫은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침묵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처지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대신 감독은 내 안의 질문, 내 안의 이야기에 한층 더 가까이 그리고 깊이 다가선다. 장애를 가진 그들의 부모만큼이나 침묵의 세계와 말을 세계를 오가야 했던 아이들의 삶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감독인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곧 학교를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떠난다. 동생 광희 역시 기숙사형 대안학교에 입학해 집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부모가 장애인이므로 누구보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누구보다 ‘착하게, 빨리 자라야 했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선택한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의 침묵의 세계로부터, 그것이 주는 어떤 책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말의 세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방황하고 부유하는 삶을 정리하고, 정착을 준비 중이다. 광희는 마을 까페를 차릴 계획을 세우고, ‘혼자로 오롯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었던’ 나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 시간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반짝이는 박수 소리 >는 이 질문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다. 나와 내 동생은 왜 그렇게 떠돌아야만 했을까. 이제 우리는 부모의 장애 때문에 짊어져야 했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진 걸까, 오롯하게 나일 수 있는 걸까. 그래서 감독은 엄마, 아빠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다가도 이따금 카메라를 든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상처를 갖고 있을, 비슷한 질문의 답을 찾고 있을 동생에게 불쑥불쑥 묻는다. 나에게 보내는 질문 혹은 위로 < 반짝이는 박수 소리 >에서 가장 강렬하게 와 닿았던 장면이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바심 속에 밤을 새우며 첫 딸을 키워낸 엄마 아빠의 고생담도, IMF를 맞아 호떡 장사를 위해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독하게 장사를 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도, 장애를 가진 부모 때문에 종종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도 마음이 아팠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치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박혀있었던 듯한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부분이다. 아버지가 충실히 기록해놓은 어린 시절의 홈비디오는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족의 일면이지만, 거기에 입혀진 소리(하지만 부모들은 듣지 못했을 어린 그녀의 옹알이와 장난감 기계의 멜로디)와 아마도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 혹은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을 듯한 풍경은 그녀가 어린 나이에 감당했어야 했을 삶의 무게, 그녀가 느꼈을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그때의 어린 나를 만나 어루만지는 느낌, 어린 나의 상처와 아픔과 버거웠을 삶의 무게를 들여다보는 그런 느낌.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 온전히 그녀가 하고 싶었던 아니 해야 했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침묵의 세계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세계와 말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 상처를 보듬고 일어서야 그녀가 온전히 침묵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 반짝이는 박수 소리 >는 홍재희 감독의 < 아버지의 이메일 >을 닮았다. 그녀들의 삶을 붙잡고 있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 두 세계의 화해와 인정의 순간들, 오롯한 성찰과 다짐들 덕분에 이 작품 역시 반짝이고 있다.
가끔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고, 되게 훌륭한 뭔가를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꽤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내게 홍재희 감독의 < 암사자(들) >은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마장동 우시장을 배경으로 폭력에 대한 짧은 우화를 들려주는 이 영화는 섬뜩함과 기묘한 웃음기를 동시에 가진 영화다. 우시장에서 도축업을 하고 있는 정희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다. 매일 도박으로 시간을 때우며 집안일은 돌보지 않는 남편 탓에 아이의 미래가 아예 블랙홀이라 홀로 병원에 가 낙태 시술까지 받을 정도로 인간적인 면에서 핀치에 몰려있다. 이는 주변 상인들에게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 다른 가게의 아주머니들은 정희를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옆 가게 내장집 아지매는 고기를 싫어하는 정희에게 소의 골로 만든 요리를 내밀며 “고기 파는 년이 고기를 싫어해서 어떻게 해. 강해지려면 육식을 해라. 육식을 해야 사자 맹키로 힘이 나는기라.”라고 말한다. 이 말이 신경 쓰이는 정희는, 그 날부터 고기를 먹기 시작한다. 고기를 먹은 정희가 갑자기 힘이 나서 남편을 때려눕히고 ‘아싸 좋구나’ 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먹지 않았던 ‘고기’를 먹으면서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하우스에서 탈탈 털리고 돌아와 아내를 향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모아놓은 돈 없느냐고 묻고, 기어코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을 거대한 소의 뒷다리 뼈로 대가리(이런 놈은 굳이 ‘머리’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를 박살 내며 외친다. “나는 년이 아니라 정희야. 김! 정! 희!” < 황해 >의 면정학보다 2년 앞서 ‘뼈’가 가진 무기로서의 박력을 맘껏 보여준 뒤, 그녀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집에 가던 길에 정희를 보러 들른 내장집 아지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시장의 친한 동료들을 부른다. 마장동 우시장 외길인생을 보내온 이들이 모여서 할 일은 무엇인가? 에이 알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화두가 된 것은 한두 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개그맨의 망언으로 ‘여성혐오’와 ‘페미니스트’가 또 한 번 쟁점이 되기도 했다. SNS를 필두로 한 넷상에서는 꽤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넷을 벗어나면 오히려 ‘지들끼리 한 얘긴데’라며 두둔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대충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개그맨은 가장 하차 요구가 컸던 단 하나의 프로그램에서만 하차했고, 나머지에는 꾸준히 출연하는 중이다. 발언의 강도를 생각한다면 나름 편해 보이는 조치다. 반성은 했을까? 글쎄. 사과문을 읽어보면 좀 아리송한 기분도 든다. 연예인을 ‘공인’으로 보지는 않지만 본인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니 공인이고 뭐고를 떠나 옆집 아저씨가 한 이야기라 해도 ‘저 아저씨 이상하다. 말 섞지 말자’ 라고 할 만한 수위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 암사자(들) >이 떠올랐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듣고, 안 듣고, 맥락을 파악 못 하는 사람이 꽤 많은 상황을 보면서 어쩌면, 이치에 맞고 합리적인 논쟁보다는 오히려 ‘니들 자꾸 그러면 정형해버린다! ㅋㅋㅋ’ 하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더 눈높이에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나오는 마장동 인간정형 4인방의 호쾌한 콩트에는 “이놈 꼬추는 내가 잘랐다! 이걸 꼬추라고 달고 다녔냐 으이그” 하는 식의 구수한 대사들이 들어있다. 앞으로 아파트의 어린이들에겐 ‘너 자꾸 쿵쾅거리면 마장동 아줌마가 꼬추 떼어간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잘 먹힐지도 모르겠다. 뭐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저 생각나는 대로 떠들지 말고, ‘왜’ 그런지 좀 더 넓은 견지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홍재희 감독은 2012년에 < 아버지의 이메일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좋은 평가를 얻고 차기작을 준비 중인 것 같다. 낯선 공간과 익숙한 이야기가 만나 미묘한 재미를 준 < 암사자(들) >같은 작품을 기대해 본다. P.S : 이 영화는 단편영화 전문 온라인 상영관 유에포(youefo.com)에서 볼 수 있다. http://youefo.com/film/364
모든 가족에는 그들만의 비극이 있는 법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가족들 역시 들여다보면 얽히고 설킨 말 못할 사연이 있다. 도대체 이 비극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홍재희 감독의 가족에게 그 원인은 술에 취해 휘두르는 아버지의 폭력인가, 혹은 그 곁에서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평생 묵묵히 견디기만 했던 어머니였을까? 아니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저 멀리 그를 버린 자식들인가. 감독은 이 비극의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마지막 생해였던 2008년에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내온 이메일함을 열어본다. 43통의 이메일들은 아버지가 남긴 자기 생의 기록이었다. 홍성섭. 1938년 5월 25일 황해도 황주군 구락면 출생, 2008일 12월 23일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사망. 평생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으셨던 아버지의 삶은 그가 관통한 한반도의 근현대사 그 자체였다. 1948년 그는 북조선의 인민군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월남한다. 바로 비극의 시작. 이후 그는 평생 북에 남겨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부역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이내 계모 때문에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된다. 1965년 교사였던 어머니와 선을 보고는 단지 서울 여자가 아니고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1964년 한국은 월남전에 파병을 보내게 되었고, 그는 한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홀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는 해외건설 촉진법으로 중동건설붐이 한창이던 사우디로 오일 달러를 벌러 간다.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 곁을, 이 땅을 떠나려 했다. 서독에 광부로 가려했고, 베트남에서는 미국에 가려 했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와선 브라질로, 사우디에서는 호주로 이민을 가고자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의 발을 묶은 것은 바로 반공체제였다. 처남들이 6.25때 보도연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외 출국을 금지 당했고, 소망이었던 이민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좌절한 그는 무력감에 평생 동안 2평짜리 골방에서 술만 마셔댔고, 술에 취한 채 ‘빨갱이’집안을 원망하며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완전히 변했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미쳤다.’ 자기 연민에 빠져 그가 미쳐갔던 건 오로지 그의 잘못이었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왜 그토록 조국을 떠나려 했을까? 지긋지긋한 인민군을 벗어나 남한으로 왔으나 그의 자유는 국가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살았던 그에게 이 나라는, 그 시대는 무엇이었을까? 실향민이자, 반공 시대에 의해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에게 남한은 진정 그의 조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주의와 군사적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아버지란 국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전쟁과 이념대립, 군사정권 시절에 개인의 삶이란 국가의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꿈과 자유 찾아 그가 머물던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이 가족의 비극은 전쟁, 남북의 사상 대립, 그리고 군부독재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의 미시적 생의 기록은 질곡의 근현대사를 직조한 씨줄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도박에 빠져 지내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일자리를 잃고서 절망에 빠져 지내던 그의 삶은 당시 들이닥친 IMF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대를 겪어 보지 못한 우리에게 아버지는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상처 입은 타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거나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연좌제에 묶여 이민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의 딸이자 감독의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미국으로 떠난 그녀는 과연 자신의 바람대로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기이하게도 아들에게 히스테리에 가까운 역정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정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와 오버랩 된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에 보이는 냉담한 반응 속에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포용하려는 대신 그토록 고통을 주었던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난 그녀 역시 여전히 아버지-국가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나의 단순한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그로부터 버림받은 역사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모두 자기 시대의 역사적 부산물이었고, 그들을 혐오하는 우리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해 불가능한 아버지의 모습만큼이나 가족의 비극은 계속 이어질 것 같지만,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역사에 다가서고자 감독이 내민 담담한 용기에 나 역시 당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