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 2
- 감독
- 홍형숙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송두율, 홍형숙
성미산 마을에 살고 있다. 생면부지의 열 가족과 함께 돈을 모아 대지를 구입해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4호(먼저 지어진 건물이 3개가 있다)라는 이름의 공공주택을 지었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대개 그렇듯이 마을에서 이름 대신 불리는 별명도 생겼다. 과메기를 좋아해 과메기라고 지었다. 몇몇 코흘리개들은 ‘꽈배기’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에 이사 온 지 딱 1년 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집단보다는 개인 생활이 훨씬 편했던 내가 이곳에 온 건 거창한 이유나 사명감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아이가 없기 때문에 공공육아는 큰 관심이 없다. 마을 생활을 하고 싶다는 대단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과 이것을 붙잡을 마음조차 없는 정부의 주택정책에 신물이 나 있던 차에 공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우연히 보고 참여하게 됐다. 덕분에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다큐멘터리 < 춤추는 숲 >처럼 음식을 나눠 먹고, 마을 체육대회에 참여해 함께 운동하며,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해서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 살이’라는 걸 해보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무척 귀찮다. 먼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이웃이 음식을 선물해주면 그 고마운 마음에 보답해야 하고, 주말에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낮잠은 포기해야 한다. 공공주택이나 마을 일에 큰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시간을 내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신경 써야 할 일이 곱절은 늘었고, 그 과정에서 이웃과 소리를 높일 때도 많다. 혼자서 온갖 짜증을 내다가 이 집과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살기 전에 봤던 < 춤추는 숲 >을 최근 다시 감상했다. 예전에 알고 있던 그 작품과 너무나 달랐다. 다시 본 <춤추는 숲>은 서울에 이런 공동체 마을이 있다는 호기심,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성미산 마을과 다르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질투심, 마을이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교훈 등 이런 메시지를 말하려는 작품이 아니었다. 남들과 함께 살려면 노력과 수고로움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다큐멘터리였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성미산 개발 반대 운동을 하는 장면은 사람들이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이웃끼리 많은 갈등을 겪었는지, 추운 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들였는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여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산을 지켰다고 생각하니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는 나로서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머리가 아찔해진다. 뭐든지 간절히 바라기만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아주 냉혹한 현실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강석필 감독과 홍형숙 감독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신작 < 소년, 달리다 >를 선보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 춤추는 숲 >에 이은 성미산 마을 3부작 중 2부작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성미산 개발 반대 운동 당시 어렸던 민수와 상호, 두 소년이 성년이 된 이야기인데, 일 핑계로 아직 보지 못했다. 지나온 시간 동안 두 소년이 어떻게 자랐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숲은 빛이 춤추는 사원이자 대성당이다. -제인구달 어느 날, 아이를 재우며 제인 구달의 책 <내가 사랑한 침팬지>를 읽게 되었다. 아이는 일찌감치 잠이 들고, 책장을 덮으려는 순간 한 구절이 다가왔다. ‘숲은 빛이 춤추는 사원이자 대성당이다’ 성미산 마을 연작다큐멘터리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춤추는 숲 >은 우리 가족이 성미산 마을에 터를 잡은 지 5년째 되던 해, 강석필 감독(마을별명 맥가이버)이 마을 다큐를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다면, 아이에게는 믿을만한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했고, 우리에게는 동네 친구 몇 명쯤은 사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서울을 조금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수도권 일대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홍피디가 살던 지금의 성미산 마을에 깃들게 되었다. 이후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무렵, 맥가이버(줄여서 맥)와 호호는 비로소 ‘마을’이라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맥가이버!” 도시의 어떤 곳에서 이런 인사가 가능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처럼 흐르는 따뜻함.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좋은 관계이고, 그런 관계가 생활에서 확장된 것이 마을이다. 바로 그 마을에서 성미산 사람들은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성미산 마을에는 한가지 특별한 매력이 더해진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더 나은 길은 없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용감하게 길을 찾아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을 춤추게 하는 마을의 힘은 무엇일까?’ < 춤추는 숲 >은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다큐멘터리다. 물론 이 질문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과 더불어, 마을의 일원인 내부자의 시선이 동반되는 독특한 입장이 담겨있다. 지금이야 한국사회 전역에서 ‘마을’이 화두지만, 6년 전 맥이 <춤추는 숲>을 기획할 때만 해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여 년 전 한 줌의 부모들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세우고 성미산 마을의 씨앗을 뿌릴 때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마을’은 죽은 말이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한국형 마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성미산 마을이 시작된 것이다. 낙지가 달려오고, 굼벵이가 실려가다. 마을의 일상을 다루고 싶었던 마을연작 중 1부는, 2010년 성미산 개발이라는 돌발상황을 맞으며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 춤추는 숲 >에서 성미산 개발을 둘러싼 상황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개발 그 자체가 작품의 화두는 아니다. 마을로서는 특별한 위기의 순간을 맞았으나, 제작진의 관심사는 그것을 풀어가는 마을과 사람들에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개발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곧바로 환경다큐멘터리로 규정하거나 머리띠와 구호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춤추는 숲>은 다른 맥락에 기대어 있다. 영화에는 낡은 가치를 뒤집는 성미산 사람들만의 유쾌한 해법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즐겁되, 함께 행복한 방법’을 찾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쾌한 반전은 파란만장한 싸움의 과정에서도 늘 숨어있었다. 어느 날 새벽, 용역들이 대거 투입돼서 성미산 지킴이 텐트를 부수는 상황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있었다. 상황을 보고하는 기자회견에서 진행자 멘트가 압권이었다. “굼벵이가 쓰러지자, 낙지가 달려오고, 토끼가 몸싸움을 했습니다!” 푸하하! 눈물겨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잠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맥가이버와 호호처럼 마을에서는 별명을 쓴다. 그런데 그날 산에 있었던 사람들이 ‘굼벵이와 낙지, 토끼’였던 것이다. 이런 기막힌 순간은 촬영되었지만, 영화의 흐름상 아쉽게도 쓰이지는 않았다. 쟁이와 꽃다지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다. 6년 동안 공들인 < 춤추는 숲 >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면서, 영화의 주연배우들인 주민들이 동행하게 되었다. 영화제에 배우로 참석하는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싶기도 했고, 제3자인 관객들로부터 자신들이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자리라 설레고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3분 동안 끊이지 않고 박수가 이어졌다. 객석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첫 번째 포문이 열었다. “가슴 아픈 상황이라 보는 내내 대성통곡했습니다. 동시에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울다가 웃다가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 진하게 뒤풀이를 하고 서울로 가는 쟁이가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맥가이버와 호호! 영화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쟁이와 꽃다지는 여전히 마음의 상처를 돌보는 중이다. 행복한 영화, 마을이 움직인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오랜 속담이 있다. 아이가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돌봄 속에 자라듯, < 춤추는 숲 > 역시 비단 제작진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품을 거쳐 마을에서 나고 자란 특별한 영화다. 이 행복하고 감사한 영화가 만들어낼 의미 있는 기적을 예감하면서, <춤추는 숲>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유쾌한 바람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사진설명_ 1. 상단사진: .< 춤추는 숲 > 청소년 홍보팀과 홍형숙 PD 2. 중간사진 (좌) 강석필 감독과 홍형숙 PD (사진 김성곤) (우상) < 춤추는 숲 > 예고편 촬영한 김우영 촬영감독과 연출한 자경 감독 (사진 가림토) (우하) < 춤추는 숲 > 예고편에 출연한 마을 주민 배우 고창석 님의 가족 (사진 가림토)
나는 독립영화 저술가이면서 판타지 소설가이고, 양쪽의 일을 모두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어서 나름 운 좋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독립영화나 판타지/SF 소설이나 둘 다 한국의 문화산업에서는 주류가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기 때문에, 두 쪽의 소비자를 만나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좋은 독립영화를 봤는데 그걸 장르 쪽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나, 판타지 독자들이 재밌는 독립영화를 봤고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독립영화 중에는 장르적 성격의 영화가 많다. 이를테면 장형윤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판타지/SF 장르 매니아 중에서도 팬을 많이 만났다. B급 영화의 느낌을 의도한 몇 편의 독립영화들, 아마도 <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 >나 < 브레인 웨이브 > 같은 영화는 매니아들사이에서 < 원더풀 데이즈 >나 < 예스터데이 > 못지않게 유명할 것이다. 꼭 장르적인 요소가 중심인 영화는 아니더라도 매니아를 자극할만한 영화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김진만 감독의 < 소이연 >의 경우 장르 매니아의 시선으로 본다면 생태계에 온갖 변종들이 나타난 그로테스크한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감독의 상상력이 관객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경우라고 할까.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이 지구를 돌아다니는 설정으로는 새로운 소설도 한편 쓸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장르적이지 않아 보이는 영화에서도 장르적 상상력은 가능하다. 나는 정재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 호수길 >을 보면서, 이건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와 바라본 것 같은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E.T가 은평구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개발 중이구나, 하고 깨달은 다음 (엘리엇을 만나지 않고) 떠나는 것이다. 홍형숙 감독의 < 경계도시2 >를 보면서도 장르소설 기법에서 흔히 쓰이는 ‘몰락’의 플롯을, 즉 위대한 인물이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하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구조를 떠올렸다. 반대로 <경계도시2>를 부활의 이야기로 본 글을 읽은 적 있는데 그건 송두율 교수가 무죄 판결 받는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본다면, <경계도시2>는 현실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상승과 몰락의 이야기로 보인다. 작년에 접한 독립영화중 장르 매니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두 편 있다. 최진성 감독의 < 고양이 입속으로 뛰어들다 >와 조성희 감독의 < 남매의 집 >이다. <고양이 입속으로 뛰어들다>가 보여주는 화려한 영상미는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이 지겹게 되풀이 하는 이른바 ‘퀄리티 논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만큼 훌륭하다. 순수한 사랑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에서만 재현 가능한 상상력을 덧붙여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로 엮어낸 솜씨도 멋지다. 이 영화는 장르 매니아인 내 눈으로 보기엔 정말 근사해 보였다. <남매의 집>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좋다. 좁은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상상력은 강렬한 드라마와 상승효과를 일으켜 극대화 되면서 집 밖으로 뻗어나간다. 남매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일이 밖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훌륭하게 짜인 이야기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의 확장이다. 샤말란의 < 사인 >이 한 가족만을 보여주면서도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구성해냈듯이 <남매의 집>도 같은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정병묵 감독의 < 영의 지점 >을 온라인 영화 사이트 유에프오(yoUeFO)에서 봤다. 다시 본 영화는 SF 장르 영화로서 손색없는 훌륭한 영화였다. 그리고 몇 년 전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볼 방법이 없다는 글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봤던 기억도 떠올렸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영화를 접할 경로가 많아졌지만 독립영화는 이 부분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유에프오나 상상마당 인디플러그처럼 단편/장편 영화도 쉽게 접근과 다운로드가 가능한 온라인 사이트도 생겼고 DVD도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이런 유통방식이 더 활발해진다면 내가 판타지 소설을 쓸 때 작가 대 독자로서 만나곤 하는 장르 매니아를, 독립영화 애호가로서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위치로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