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PD]가을 하늘 아래 황순원문학촌(소나기마을)-경기
- 제작년도
- 2009
1950년 4월 『문예(文藝)』 제9호에 발표된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는 「소나기」와 더불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이자,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우리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이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독짓는 늙은이」를 영화화할 때에 몇 가지 어려움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송영감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십여 쪽에 불과한 소설의 길이에 따른 내용의 부재를 어떤 방식으로 채워나갈 것이며 아내가 떠난 후로부터 시작되어 송영감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상황 묘사에 담긴 송영감의 심정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 등이다. 하지만 < 독짓는 늙은이 >( 최하원 , 1969)는 소설의 중요한 이야기를 중간에 배치하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창작해서 액자구성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감독이 새롭게 해석한 부분과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감독의 관점을 강조한다. <독짓는 늙은이>는 양자로 보내졌던 당손( 김희라 )이 성인이 되어 집을 찾아온 장면부터 시작한다. 폐허가 된 집안을 둘러보다 가마를 발견한 당손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거지 떼 틈에 있는 송영감( 황해 )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인( 허장강 )의 이야기엔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송영감과 옥수( 윤정희 )의 우연한 만남과 결혼, 당손을 낳고 살아가는 단란한 모습과 석현이 옥수를 찾아온 상황을 보태어놓는다. 다시 노인과 당손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가마 구석에 거지 행색의 엄마 옥수와 당손이 만나는 장면이 이어진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당손의 애끓는 그리움과 어머니의 죄의식으로 얼룩진 삶을 한 장소로 불러 모음으로써 어떻게 모자간에 묻어둔 감정이 해소되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최하원은 흥미롭게도 원작에는 거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옥수의 기구한 삶(이름도 생겼다)과 죄의식을 관객들에게 상세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망가져버린 자신의 삶을 구제할 유일한 길을 아들 당손에게서 찾도록 한다. 아들의 사모곡과 어머니의 모성애는 뒤늦게라도 해후한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스틸 한겨울 길을 걷다 발견한 옥수를 데려와 동상에 걸린 몸을 녹여주고 보살펴주는 장면은 옥수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독을 동일한 대상처럼 정성껏 대하는 송영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원작에 없는 이러한 접근은 송영감의 욕망이 발현되는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과 옥수와 석현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장면을 불과 물의 이미지로 대비시킨다. 카메라는 예순이 다 되도록 혼자 살아왔던 송영감이 옥수의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장면을 오래도록 보여준다. 눈덩이가 녹기 시작하자 옥수의 육체는 물기로 뒤덮이고, 송영감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녀의 아름다운 육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카메라는 옥수의 다리, 상체와 송영감의 얼굴을 번갈이 보여줌으로써 흙을 주무르듯 옥수의 등을 매만지고 곡선을 빚어내듯 옥수의 종아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강조한다. 그리고 노인의 뜸막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이 인서트로 삽입된다.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독을 만들던 송영감의 손길이 아름다운 육신을 향한 염원으로 전이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섬세하고 끈질기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스틸 게다가 눈이 녹아 만들어내는 물은 다음 숏의 냇가로 이어진다. 옥수의 고무신 냄새를 맡다가 민망한 내색을 하고, 옥수의 속바지를 펼쳐 보이고 냄새를 맡는 장면은 옥수의 육체에 온기를 불어넣던 그의 손짓보다 강렬한 욕망의 표시이다. 설원 곁을 흘러가는 냇물이나 옥수의 어깨에서 스르륵 녹아내리는 눈은 초록이 우거진 봄날의 냇가로 이어진다. 특히 옥수의 욕망이 냇가에서 발현되는 장면은 소설과 다른 <독짓는 늙은이>만의 고유한 표지가 된다. 옥수가 어린 당손( 김정훈 )이 냇가로 흘려보낸 꽃을 들고 냄새를 맡는 장면은 눈여겨볼만하다. 옥수의 고무신/겨울/눈/송영감과 꽃/봄날/초록의 숲/옥수의 대비는 송영감의 욕망과 옥수가 욕망하는 대상을 대비시킴과 동시에 황혼녘의 송영감과 한창 젊은 나이인 옥수를 연상시킨다. 결정적인 장면은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 송영감이 자신을 가마로 밀어 넣는 악몽을 꾼 옥수의 눈에 비친 송영감의 시뻘건 얼굴이다. 물가에서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확인했던 옥수에게 불가에서 어른거리는 붉은 빛으로 물든 송영감의 얼굴은 욕망을 가로막는 불안이자 평생 불과 더불어 살아온 송영감의 삶 자체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날 집을 뛰쳐나간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스틸 노인에게 불은 독을 완성시키는 존재이자 사경을 헤매던 옥수를 살려낸 존재이며 노인의 쇠락과 죽음을 지켜보는 유일한 존재이고 그의 육신을 삼켜버린 존재이다. 최하원은 옥수 곁에 나무들과 산, 거세게 흐르는 물길을 배치하고 송영감의 곁에는 늘 장작불이나 가마의 불길을 배치시킨다. 아홉 살 때 흙을 만진 이후로 가마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송영감의 삶은 척박한 땅의 기운과 부드럽게 짓이긴 흙으로 대표되기에 그가 가마 앞에 단정히 앉아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몸을 던진 장면은 애처롭지만 한편으론 송영감이 마지막으로 매달렸던 삶의 한 자락을 떠올리게 만든다. >> 독짓는 늙은이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
이성구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 장군의 수염 >(1968)을 꼽는 데 이견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어령 원작, 김승옥 각본이라는 당대 최고 조합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이며, 프랑스의 누벨바그, 이탈리아의 심리적 리얼리즘의 한국 상륙으로 보일 정도로 세련된 영화적 표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전에, 196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성구 감독에게는 황순원 소설을 영화화한 < 일월 >(1967)과 이효석 소설을 영화화한 < 메밀꽃 필 무렵 >(1967)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로써 이성구 감독은 문예영화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메밀 꽃 필 무렵>은 1965년부터 시행된 우수영화 보상정책으로 인해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문예영화 전성기의 한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에도 출품되었다. 소설가 이효석이 193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을 1시간 40분 장편영화로 옮기면서 새로운 캐릭터와 사건들을 추가하였다. 장돌뱅이 허생원, 조선달, 동이 등 세 인물이 나귀를 끌고 봉평장을 오가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안에 서정적인 문체로 공간과 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는 아름다움이 원작의 특징이다. 반면 영화는 허생원의 첫사랑 분이와의 만남을 한 시퀀스로 구성하고, 분이의 떠돌이 생활과 분이를 찾아다니는 허생원의 분투기를 길게 묘사하며, 병으로 골골한 장돌뱅이 윤봉운의 이야기와 조선달의 아내 이야기 등을 삽입함으로써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윤봉운(허장강)과 조선달(김희갑) 평생을 장터로 떠돌아다니며 지낸 장돌뱅이 허생원( 박노식 분)은 조선달( 김희갑 분), 윤봉운( 허장강 분)과 봉평장에서 다음 장터로 이동하는 중에 젊은 장꾼 동이( 이순재 분)를 만난다. 허생원은 주막집 주모와 농담을 나누는 동이가 꼴 보기 싫어 손찌검을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나귀가 끈을 끓고 도망가려는 것을 동이가 잡아오고, 병든 윤봉운의 뒤처리를 해주는 모습에 동이를 다시 보게 된 허생원은 그와 점점 가까워지며 동행한다. 그 와중에 동이도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임을 알게 되는 허생원이 동이의 홀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제천을 향해 함께 떠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가족 결합을 염원하는 허생원의 로드무비다. 허생원의 외로움은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조선달과 비교되거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늙은 수컷 나귀를 연민 어린 감정으로 돌보는 것에서 잘 표현된다. 하고 또 한 말, 분이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조선달에게 또 늘어놓는 허생원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이동하기 위한 내레이션으로 활용하면서 그의 과거 로맨스가 플롯 구조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톱스타 김지미 가 허생원의 첫사랑 분이로 등장함에 따라 그의 극중 비중은 높아졌고, 그의 비극적 사연과 운명은 더욱더 극적으로 플롯화된다. 분이(김지미) 천하일색인 분이를 장에서 우연히 보고 마음을 빼앗겨버린 허생원은 밤새 뒤척이다 메밀꽃밭에 나가고, 여기서 그는 아버지의 노름빚에 팔려가게 될 분이와 마주친다. 원작에서는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신세 한탄을 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가 합방하게 되는 아름다운 사연이지만, 영화에서 허생원은 강압적으로 분이를 범한 후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훗날을 기약한다. 결국 둘은 만나지 못하고 분이와 아들 동이는 이리저리 팔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허용할 수 없는 표현이나, 60년대 멜로 영화가 관음증적 재미를 위해 관행적으로 그리던 겁탈 장면 방식을 노골적으로 사용하여 성적 긴장감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치명적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영화니 일부러 배제하고 감상하거나 빼버린 채 영화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이는 사랑을 맹세한 남자가 제시간에 데리러 오지 못해, 원래 계획되었던 아버지의 빚을 탕감하고자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이후 이리저리 되팔려가며 거래 대상이 된다. 이때 그녀의 값어치는 남자들에 의해 반반한 얼굴과 밤자리 실력으로 매겨진다. 철저히 돈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어린 아들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유린당하지만 살아남는 이 여성은 영화에서 원시적이고 신성한 기호로 재위치 된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신성함과 메밀꽃으로 기억되는 자연의 원시성을 동시에 가진 이상화된 여성이라는 기호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60년대 위로부터 강요된 열망이 낳은 일그러진 교섭 장소다. 이는 당대 문예영화의 향토성이 가진 공통감각이기도 하다. ‘왼손잡이’의 유전성 여부가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일정한 법칙을 따르지 않는 현대과학의 숙제이긴 하나 대체로 유전되는 경향이 많다고 하니, 허생원이 동이가 왼손잡이임을 알고 반기는 장면은 경험치에서 나온 믿음이다. 이 장면은 허생원과 동이를 더욱 강하게 연결하는 결정적 장치로 기능한다. 허생원(박노식)과 동이(이순재)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허생원과 동이가, 물어 빠진 허생원을 젊은 동이가 업어주기까지 점점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면서 두 사람의 유대와 연대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간다. 두 사람의 심정적 변화는 그들의 물리적 위치와 맞물리며 잘 고안된 방식으로 시각화된다. 이제 정착해야 할 때, 오랜 유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는 늙어가는 몸이 전하는 애처로움, 그리고 평생 찾아다닌 숙명의 여인에 대한 애달픈 갈망이 영화 전체에 아우라를 남기는, 처연함과 원시성이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메밀꽃 필 무렵> VOD 보러가기→
애니메이션 < 소나기 >는 참 의외의 작품이다. 원작인 황순원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 「소나기」가 오랜 시간 교과서에 실렸던 만큼 그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안재훈 감독과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는 이 유명한 한국 근대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설의 문장과 행간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케 한다. 무엇보다 첫사랑의 원형과도 같은 소년 소녀의 서정이 어떤 형태였는지, 상상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목격하는 기쁨을 준다. 도시에서 전학을 온 병약한 소녀와 무뚝뚝이 시골 소년이 개울가에서 마주친다. 둘은 몇 번을 마주치고도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다가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낸다. (소설을 읽을 때도 깨닫지 못했던 이 사실을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실감했다!) 산과 들을 쏘다니던 두 아이는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쩍 가까워진다. 그날 이후 소년은 소녀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며칠 만에 핏기없는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난 소녀는 곧 이사를 가게 됐다며 아쉬워한다. 설상가상, 소년은 어느 밤 부모님의 대화 속에서 뜻밖에도 며칠을 앓다가 변변한 약도 써보지 못한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된다. 소년 부모님의 대화로 끝나는 소설 「소나기」의 엔딩은 이렇게 충격적이면서도 시적인 여운을 남기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 소나기 >는 그 여운을 소중히 다루면서 소나기처럼 스쳐 간 그 시절의 어떤 마음을 더해 그렸다는 점에서 놀랍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 억새풀밭 사이에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엔딩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문장에 지혜로운 상상을 더한 셈이다. 황순원 원작의 표현처럼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던’ 소녀 때문에 가슴 떨렸던 기억을 어렴풋이 간직한 소년. 그래서 소녀를 떠올리면 드는 감정에 제대로 이름 붙여볼 겨를도 없었던 소년의 마음이 억새풀을 스치는 바람을 따라 스크린에 번진다. 엔딩만이 아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애니메이션 < 소나기 >는 그렇게 아직 설익은 소년 소녀의 마음을 담는다.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는 소년에게 “이 바보!”하고 조약돌을 던지는 소녀의 모습이 보이고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릴 때, 그 시절의 어떤 감정은 아주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랑스럽게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 부드럽게 흔들리는 들꽃, 학교 종이 선명하게 울리는 운동장과 교실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그 감정을 증폭시킨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장면에서 소년과 소녀는 주인공인데도 크게 그려지지 않는다. 어떨 땐 풍경에 묻혀 있다. 소년과 소녀의 모습보다 하늘의 구름, 다양한 꽃과 나무, 개울물의 반짝임이 훨씬 자주, 훨씬 디테일하게 등장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 도전적인 연출은 애니메이터로서 안재훈 감독이 추구해온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소나기>는 표면적으로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실은 이 땅에 태어나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어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지녔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에 대한 부담을 안고 만든 이 작품이 새삼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순간 스쳐 가는 소중한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안재훈 감독은 이전에도 한국 근대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왔다. < 메밀꽃(필 무렵- 이효석), 운수 좋은 날(현진건), 그리고 봄봄(김유정) >이 그 시작이었다. ‘시즌 2’에 해당하는 < 소나기 >는 여름의 끝자락에 개봉해서 기대만큼 많은 관객과 마주하진 못했다. 국내 극장 환경에서 <소나기>의 개봉은 여러모로 도전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다양한 공동체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이 작품의 정성만큼은 많은 이들이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