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 감독
- 준오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이루아, 이양희, 김태환, 재희, 정희원, 주민준, 양수빈, 이승훈, 정재은, 김소율, 박준영, 정승원, 김민희, 김이도, 김태훈, 최수락, 김준석, 우다원, 김다니엘, 강일경, 이수정, 김정수, 곽동진, 령연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2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2월 2일. KMDb는 2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KMDb를 기획·구축하며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누군가 ‘무비씨’라는 이름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고,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가를 따라 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이름은 없다고 판단해 KMDb로 지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or.kr 도메인을 구매했다. KMDb에는 20년간 생겼다 없어진 콘텐츠와 기능이 많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기능도 상당했으나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워 하나둘 폐기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 전용 KMDb를 따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통합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한 기능과 콘텐츠로 운영하는 중이다. KMDb를 준비하며 호기롭게 “풀 크레딧을 가지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내가 한 것 같고 그래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 정책을 시작하며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를 보유하게 된 KMDb는 영화·영화인 DB 서비스뿐 아니라 VOD로 한국고전영화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영화글로 다양한 필자의 글을 소개했으며 리스트와 컬렉션이 순차적으로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2월 1일. 오픈 전날 디지털정보화팀의 담당 세 명은 그제야 동명이인에 대한 이슈를 발견하는 사고를 친다. 비슷비슷한 나이의 정유미 배우가 하나가 아니고 무려 세 명이래! 라는 비명을 한밤중에 지르며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을 분리하며 밤을 지새다 퇴근해 다음 날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동명이인 이슈는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할 수가 없다. IMDb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이슈를 KMDb 라고 별수 있겠는가. IMDb 매니저는 이름이 짧은 한국 인명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고충이 더 심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성명이 “정유미”인 배우 3인에 대한 KMDb 영화인 정보 KMDb는 영화·영화인 데이터의 완벽함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제는 영화인이 자신의 필모를 증빙하기 위한 웹사이트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문득 KMDb에 쌓인 데이터가 어떤 모양새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사용자들도 궁금해할까? KMDb 20주년 이벤트를 근사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로 가득한 사이트의 20년 묵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축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지난 20년의 통계 10선을 소개한다. 1.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극·비극) 의 수: 50,787편 2.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인 의 수: 83,279명 3. 가장 많이 접근된 영화인 페이지 정윤희(1위), 임권택(2위), 신성일(3위) / 사진: 전승열, 정기성 1위 | 정윤희 2위 | 임권택 3위 | 신성일 4위 | 김기영 5위 | 이상사 6위 | 김지미 7위 | 박노식 8위 | 김진규 9위 | 신상옥 10위 | 안성기 4. 작품 리스트(필모그라피) 가 가장 많은 영화인 1위 | 현동춘 | 편집 | 994편 2위 | 김희수 | 편집 | 863편 3위 | 최형래 | 음향효과 | 850편 4위 | 손인호 | 음향효과 | 793편 5위 | 김기범 | 배우 | 753편 6위 | 허장강 | 배우 | 687편 7위 | 임해림 | 배우 | 660편 8위 | 김재경 | 음향효과 | 657편 9위 | 윤일주 | 배우 | 650편 10위 | 최남현 | 배우 | 609편 5. 한 작품(장편영화)에 가장 많은 크레딧 을 올린 영화인 1위 | 노영석 | THE 자연인 (노영석, 2023) | 17개 공동 2위 | 박용철 | 싸이더:애,심 (박용철, 2019) | 16개 공동 2위 | 준오 | 휴게소 (준오, 2016) | 16개 ※ 노영석 감독은 <THE 자연인>에서 감독, 각본, 출연,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미술, 의상, 동시녹음, 사운드(음향), 시각효과, 색보정, 예고편, 포스터, 기타스탭(캘리그라피)을 담당함. 6. 참여 스태프 가 가장 많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1위) 1위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 | 1,665명 2위 | 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1,612명 3위 | 안시성 (김광식, 2018) | 1,502명 4위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 | 1,492명 5위 |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 | 1,487명 7. 상 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 1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58회 2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45회 3위 | 추격자 (나홍진, 2007) | 41회 4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40회 공동 5위 | 괴물 (봉준호, 2006) | 31회 공동 5위 | 벌새 (김보라, 2018) | 31회 ※ KMDb에서 관리하는 영화제·시상식에 한함 8. 리스트에서 본 영화로 가장 많이 체크된 작품 <올드보이>(1위), <괴물>(2위), <기생충>(3위) / 사진: 디씨어터 1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2,581명 2위 | 괴물 (봉준호, 2006) | 2,355명 3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2,178명 4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2,055명 5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 1,672명 6위 | 아가씨 (박찬욱, 2016) | 1,648명 7위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 1,574명 8위 | 마더 (봉준호, 2009) | 1,533명 9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1,515명 10위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 | 1,438명 ※ 박찬욱 감독 작품 4편, 봉준호 감독 작품 4편 9. 리스트에 본 영화 체크를 가장 많이 한 사용자 1위 | bo**** | 2,076편 2위 | ha**** | 1,865편 3위 | gs**** | 1,747편 4위 | ba**** | 1,696편 5위 | in**** | 1,636편 ※ ****는 ID의 글자 수와 일치하지 않음. 10.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화글 1위 | “ [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 (영화천국 Vol.48) | 정성일 | 91,634회 사실 진정한 20주년 이벤트라면 올해 KMDb가 전면 개편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득하지만 어찌 됐든 2026년 말 새로운 KMDb가 문을 열 것이다. 오랜 KMDb 관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20년이 지난 이젠 누구나 KMDb를 KMDb(b를 소문자)로 써주길 바란다는 것 정도.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공포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조건 본다. 소재가 흥미롭거나, 취향에 따라 고어 장면이 많을 것 같거나, 귀신이 나온다거나 뭐든지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끌리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재가 무엇이건, 고어가 많이 나오건 말건, 원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아무리 설정이 그럴듯해도 긴장감이 전혀 없다면 허탕이다. 고어 장면이 많아 나오면 적당히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주로 하나에 집중된다. 공포감, 긴장감,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 하위 장르로 내려가면 단 하나의 포인트에도 만족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마니아들에 한정한다.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연출력에 따라서 너무 차이가 난다. < 링 > < 주온 > 등을 제작하며 J-호러를 이끌었던 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는 공포영화야말로 가장 테크니컬한 장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캐릭터가 좋고, 플롯이 뛰어나다 해도 연출력이 부족하여 지지부진하다면 공포영화로는 낙제점이다. 공포 없는 공포영화는 일반인에게 호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비난을 받는다. 반면 < 데드 캠프 >처럼 너무나 식상한 소재일지라도 긴장감이 뛰어나면 찬사를 받는다. 물론 장르 영화의 특성상 관습은 중요하다. 공포영화 마니아는 특촬물 마니아 못지않게 관습을 좋아한다. 난도질 영화에서 살인마들은 언제나 뚜벅뚜벅 걸어 다닌다. 마이클 마이어스도, 제이슨도 절대로 뛰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달려서 도망치는 희생자들은 언제나 발목을 잡힌다. 살인마의 위엄을 지키면서도 살육의 순간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그래서 공포 패러디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찍지 않을 때 맹렬하게 뛰는 살인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관습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일반 관객에게는 역겹고 식상한 영화가 되겠지만 마니아는 만족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포영화 마니아들은 일단 모든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아니면 내키는 대로 본다. 소재가 약간 흥미로운 영화를 고르긴 하지만 확률은 동일하다. 캠핑을 간 젊은이들이 살인마를 만난다. 그야말로 뻔하지만 일단 본다. 살인마의 캐릭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추격 장면이 살아 있고 죽음의 순간이 짜릿하기만 하다면 좋다. 공포영화 마니아 역시 전작이 좋았던 감독을 일단 고르고, 다음으로는 마구잡이로 본다. 대체로 실망한다. 확률은 높지 않다. 수작을 만나는 건 1/5 정도 될까. 요즘 같이 공포영화가 침체되어 있는 시대라면 수작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고른다. 신작이 나와도 가급적 보지 않다가 감상평이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 사우스바운드-죽음의 고속도로 >(이하 사우스바운드)도 볼만하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손이 갔다.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 V/H/S: 죽음을 부르는 비디오 >가 작은 성공을 거둔 후 옴니버스 공포가 많아졌다. 일본은 아예 옴니버스가 대세다. 실화 괴담이 공포물의 주류가 되다 보니까 세밀한 플롯이 없어도 되는, 간단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옴니버스 공포에 주력한다. <신미미부쿠로> <토리하다>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등. 옴니버스는 길면 30분, 짧으면 3분에서 5분 정도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줄 필요도 없다. 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났고, 도망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런 정도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귀신이 등장하고 쫓길 때의 임팩트만 있으면 성립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유행은 공포의 근원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기본기를 잊게 하는 경우도 많다. < 사우스바운드 >는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든 이들의 이야기다. 피를 뒤집어쓰고 운전하는 남자 두 명이 있다. 재즈를 연주하는 여성 세 명이 있다. 아내와 통화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남자가 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헤매는 남성이 있다. 일단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그들은 헤어날 수 없다. 끝없이 반복하다가 결국은 죽거나 갇혀버린다. <사우스바운드>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이상한 존재가 등장한다. 휴게소에 들렀다가 같은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두 남자에게 이상한 것이 보인다.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디멘터 같기도 하다. 그들이 뒤를 따른다. 아무리 달려도 같은 길 위에 있고, 기이한 존재들이 뒤를 따른다. 그러니까 <사우스바운드>는 초자연적인 공포영화다. 한 번 길에 들어선 후 헤어날 수 없는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공포물. 완전하게 독립된 이야기들은 아니고, 기묘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같다. 그리고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와 미세하게 겹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기도 하고 극적인 사건으로 조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공유한다. 자책. 그들은 모두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죽은 딸을 위해 복수하기도 하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악마 같은 존재들과 싸우기도 한다. 친구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선 그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결과는 동일하다. 그들 모두 길 위에서 맴돈다. 살았건, 죽었건. 마치 오대양을 떠도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 때문에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저주에 빠져 길 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 사우스바운드 > 각각의 에피소드는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무엇인지, 사이비 종교는 대체 무엇을 섬기는 것인지, 그들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요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책망하다가 스스로를 무간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일지도. <사우스바운드>는 무리하게 설명하지 않고,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상황에만 집중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에서 각각의 공포를 안겨준다. 엄청난 감흥은 없지만 계속 보게 된다. 어차피 걸작이 아니라면, 공포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좋다. 순간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느끼기만 한다면 만족할 수 있으니까.
17살 나는 아버지의 이직으로 17년간 살던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이사하는 그날 부모님과 누나는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먼저 상경했지만, 이삿짐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던(?) 아버지는 장남인 나를 이삿짐 트럭에 앉혔다. 나는 아버지가 주신 여비로 휴게소에 들러 아저씨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었고, 아저씨들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고, 부산 트럭은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처음 보는 63빌딩과 거대한 한강. 한강을 에워싸고 있는 아파트와 빌딩. 그 위로 펼쳐진 노을.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던 호돌이. 모두가 그렇게 ‘서울’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부산의 짠내와는 다른 선선한 대륙의 호방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17년이 흘렀다. 사투리를 고쳤고, 깍쟁이가 된 지금. 나에게 올림픽대로는 짜증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부산을 가기위해 애를 쓴다. 지금은 나를 반겨 줄 친척하나 없지만, 17년이 지나서 부산은 그 존재만으로 든든한 고향이 되어있었다. < 서울유람 >의 주인공 진우는 친아버지의 죽음으로 새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살다, 신경성 난청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에서 진우를 안내할 이는 새 아버지의 아들, 부산출신의 명제다. 퉁명스러운 부산사투리를 쓰는 명제는 진우를 서울대학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서울대학행 버스에 오르고(서울대학병원은 서울대학이 아닌 대학로에 위치해있다.), 인심 쓰듯 데려간 박물관은 휴관이다. 이 모든 것이 못마땅한 진우는 남아있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버스표를 바꿔 부산에 내려갈 것이라 말한다. 명제는 진우를 달래 자신이 살고 있는 달동네로 진우를 안내한다. 그리고 명제는 매일 운동 삼아 하는 야구놀이를 진우에게 보여준다. 혼자 공을 던지고, 혼자 중계하고, 혼자 신나하는 명제를 바라보는 진우. 어느새 진우도 야구놀이에 동참한다. “형 이걸 매일하는 거야? 혼자?” “어, 거의 매일한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고향을 가지고 있는 배다른 형제가 서울에서 만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다. 서울로 올라와 매일 홀로 공터에서 야구놀이를 하는 명제와 낯선 부산에 내려와 어색한 새 아버지와 생활하는 진우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어 보인다. 신경성 난청을 가지고 있는 진우는 때로는 난청이 좋을 때도 있다고 명제에게 고백하고, 그를 바라보는 명제도 그런 진우가 퍽 이해가 간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결혼식 외에는 대면하지 않았던 배다른 형제는 서로의 외로움을 바라보며 점점 더 가까워진다. 별다른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아도, 각기 가지고 있는 외로움 그 자체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나는 영화를 보며, 17년 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당시가 떠올랐다. 그때는 부산친구들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들으며, 부단히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애를 썼고, 서울과 친해지기 위해 안달이 났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행동은 외로워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몸부림에 불구하고, 나는 서울과 친해지지 못했다. 부산으로 내려간 진우도, 서울로 올라간 명제도 그랬을지 모른다. 진우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며, 불편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 고향이라는 곳에서 작은 위로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낯선 배다른 형제와의 만남이었고, 또 다른 어색함과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명제 역시 부산에서 올라온 낯선 동생을 맞이할 때만 해도, 부담스럽고 짐 같은 느낌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서 비슷한 외로움을 발견하고 위로하고 있다. 영화는 진우가 명제에게 “이제 잘 들리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고, 노을 지는 버스 창밖으로 미소 짓고 있는 진우의 표정으로 끝이 난다. 나는 그런 진우를 가 부러워졌다. 이제 서울에는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