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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Video Huge Crowd for Funeral of Korean 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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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nii]Nikon D4 RAW+JPEG Sutter Speed CES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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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DSLR 9회] JPEG, RAW 뭐로 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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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nt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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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의 神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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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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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MM raw stock requirements in Korea and dubbing of American Films for showing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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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chase of Raw Film Stock for MP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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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라는 말에 대하여
<히어>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인가?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런 우유부단한 답변이 엄밀한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화’와 ‘영화’라는 여타의 매체들과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분명한 현실이니 말이다. ‘만화영화’란 말이 애니메이션의 고유성 내지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에 만화영화라는 호칭이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고유성 내지 자율성이 위협받는 지점에서 그 매체의 성질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반론은 오히려 애니메이션이 겪는 고유한 문제를 묵과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거친 단언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매체사적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서둘러 훑어봐야만 하겠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무엇인가? 여기서는 저 위대한 애니메이터 노먼 맥라렌의 (1950년대 조지 시피아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인) 정의를 일단 따르기로 하자.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이다. 각 프레임 사이에 무엇이 발생했는가는 각각의 프레임상에 무엇이 존재하느냐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은 프레임들 사이의 속임수로 눈에 보이지 않는 틈새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예술이다.” 즉 우리네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들의 운동성을 (기록하는 대신) 만들어내고 나아가 시간의 흐름을 생성하기 위한 프레임 바이 프레임의 작업이 요구되는 미적 결과물 일체를 맥라렌은 애니메이션으로 정의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기초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짚는 이 정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니 오늘날이라서 더욱 탁월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만화와 영화의 조합어가 특정 매체를 표현하는 말이 된 걸까? 아무래도 ‘만화’는 그려진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과장하여 초현실적인 묘사를 왕왕 보여준다는 점이 같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운동(성)으로써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이 작용의 주 형식이 프레임과 숏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에서의 번역된 명칭만으로 너무 많은 걸 해석하려는 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테다. 하나 만화영화라는 명칭은 사실 동아시아만의 것이 아닌데, 만화를 이르는 말 중 하나인 카툰(Cartoon)은 미국에서 만화영화와 비슷한 용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당장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전문 TV 방영사인 카툰 네트워크를 떠올려 보시라. 카툰 네트워크 스튜디오 그 태동기인 1910년대에 (< 리틀 네모 >의) 윈저 맥케이나 (< 고양이 펠릭스 >의) 오토 메스머 같은 위대한 만화가들의 세례를 받으면서 (셀-)애니메이션과 카툰은 창작에 있어서든 산업에 있어서든 깊이 뒤섞이고 혼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학자 찰스 솔로몬이 『마법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의 역사(Enchanted Drawings: The History of Animation)』에서 말했듯 “애니메이션은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서 그려진 카툰의 동의어”가 되었다. 다시 한 번 “그려진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과장하여 초현실적인 묘사를 왕왕 보여준다는 점”을 곱씹어 보자. 하지만 당연하게도, 21세기의 우리들은 애니메이션의 세부적이고 다양한 갈래를 ‘만화’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노먼 맥라렌의 추상 애니메이션, 이리 트른카의 퍼핏 애니메이션, 그리고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카메론, 1991)와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이후 컴퓨터 그래픽스의 영화적 활용을 순전히 만화와의 상관만으로 논할 수 있을까? 혹은 스탠 브래키지, 존 휘트니, 바술카 부부 등의 작업들처럼 분명 애니메이션의 성립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이나 (후대에 나온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애니메이션사 서술에서 주로 누락되고 실험영화사나 영상미술사에만 등장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이렇듯 오늘날 광대해진 애니메이션에 있어 ‘만화’의 특권성이란 어딘가 불충분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 영화학자 톰 거닝이 「순간을 애니메이션화하기: 애니메이션과 사진의 은밀한 대칭성(Animating the Instant: The Secret Symmetry between Animation and Photography)」을 비롯한 여러 연구에서 말했듯, 실사 영화의 역사와 전통적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단지 애니메이션이 좁은 의미에서 영화사의 일부인 것을 넘어) 서로 깊이 얽혀 있을뿐더러 순전히 기술의 계보로만 따지면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에 앞서서 우리네 세계에 출몰했다. 더군다나 요즈음 대부분의 대중적 실사 영화는 실사 이미지와 그래픽 이미지 사이의 디지털 합성으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부분적/비가시적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학자 수잰 부캔은 이를 ‘편재하는 애니메이션(pervasive animation)’이란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디지털 이후 영화는 근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특수한 일종이 되었다’라는, 미디어학자 션 커빗과 레프 마노비치의 따로 또 같은 주장은 그 도발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이라 할 만한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영화(사 서술)에 있어 렌즈 기반의 사진적 이미지가 지닌 특권성은 애니메이션을 주변화하거나 보조화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은폐된 기원이자 기둥으로서 애니메이션. (상) 원작 『여기서』(리처드 맥과이어, 2014) 중 / (하) 실사 영화 <히어> 중 (사진: " Here, 2014 ", Richard McGuire) 요컨대 애니메이션이란 범주는 ‘만화영화’로서의 요소를 강하게 지닌 동시에 이를 완전히 초과하는,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발터 벤야민)’에 처해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게 볼 만한 작품이 있다면, 아무래도 로버트 저메키스의 근작 < 히어 >(2024)이지 않을까? 리처드 맥과이어의 급진적인 반(反)만화 『여기서』를 영화화한다는 난제를 수행하면서, 저메키스는 원작의 (드라마적 서사와 정돈된 타임라인 없이 펼쳐지는) 초월적 고정 시점과 다중 프레임 구조에 적당한 인간적 중력을 부여하려 애쓴다. 그런데 어떻게? (마구 혼재된 타임라인을 관통하기 위한) 모션 캡처와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부분적인 가족 드라마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영화는 불안정하고 과포화된 시각적 구도와 지나치게 매끈한 사물 이미지 등 그 외양에 있어 동시대 연극 같기도 하고, 제프 월이나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사진 같기도 하며, (저메키스 자신이 지난 2000년대에 천착했던) 모션 캡처 CG 애니메이션 같기도 한, 지극히 비(非)영화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달리 말해 반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비영화 <히어>에는 애니메이션이 활용된다는 것을 숨기거나 완화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그저 작품의 실패라고 쉽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저메키스에게는 ‘애니메이션다움’을 부상시키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식으론 알고 있는 ‘편재하는 애니메이션’의 비가시적인 사실을 과도하리만큼 가시화하는 것 말이다. 고정된 위치에서 인간사와 자연사를 번잡하게 조망할 수 있는 초월적 시선이란 (적어도 영화 내적으로는)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저메키스는 그러한 시선으로 보는 세계는 인간적 지각(의 기준)과 닮기보다는 퍽 애니메이션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믿음으로 치환하여 밀어 붙여본 것이다. 이는 반만화적인 구상과 비영화적인 구성을 지탱하고 구축하는 것이 애니메이션 기술이란 사실과도 겹치며, 우리를 마지막 장면으로 끌고 간다. 기억을 더듬는 노년의 부부를 무심히 바라보다 마침내 거대하고 유려하게 움직이는 ‘영화적’ 시선. 그것의 감동은 애니메이션적인 것과 영화적인 것 사이의 내재적인 혼융이 양자의 전환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근사하게 제시한다는 데에서 온다. 다시 한 번, 이 무모한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만화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함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이 이중구속 속에서 제 역량을 탁월하게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기에 이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은 은총에 가깝다. 윤아랑(비평가) l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감각을 문제시하는 문화 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 『라임 앤 리즌 2호: 오컬트』(공저, 2025) 등이 있다.
테리파이어 2
한국에서 공포영화를 좋아하기란 많은 난관이 있다. < 티탄 >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쥘리아 뒤쿠르노의 데뷔작 <로우>(Raw, 2016)는 칸을 비롯한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화제작이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되었으나 결국 수입되지 않았고, 넷플릭스를 통해 뒤늦게 공개됐다. 아마도 카니발리즘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닐까. 올해 아카데미 주요상을 휩쓴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와 < 더 웨일 >을 만든 제작사 A24의 영화는 언제나 독특하다. < 유전 >과 < 미드소마 >, < 더 위치 >, < 잇 컴스 앳 나잇 >, < 램 > 등 A24가 만든 공포영화들도 장르적으로는 아쉽다 말할 수 있어도 개성이라는 면에서는 모두 탁월하다. A24의 2022년 작품인 티 웨스트의 < X >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고, 약 1천 5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성공작이다. A24는 프리퀄인 < 펄 >(Pearl, 2022)을 바로 제작하여 작년 9월 개봉했고, 시퀄인 <맥신>(MaXXXin)도 제작 중이다. 그러나 오락성과 작품성 모두 뛰어난 공포영화 <X>는 한국에 수입되지 않았다. 1979년을 배경으로 시골 농장에 포르노 영화를 찍으러 갔다가 학살당하는 내용인데, 역시 ‘포르노 영화’라는 소재가 불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데미안 레온의 <테리파이어>(Terrifier, 2016)는 3만 5천 달러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슬래셔 영화다. 2016년부터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하다가 2018년 개봉한 <테리파이어>는 ‘아트 더 클라운’라는 개성적인 살인마 캐릭터와 신랄한 고어 장면이 찬사를 받으며 컬트영화가 되었다. 데미안 레온은 2편 제작을 위해 5만 달러 펀딩을 시작했고, 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하여 총 25만 달러를 모금했다. 상영시간 2시간 18분의 고어 슬래서 영화 <테리파이어 2>는 작년 미국에서 개봉하여 1천 5백만 달러의 극장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는 약 25만달러. <테리파이어> 1, 2편은 한국에 수입되지 않았다. 수입한다 해도 고어 장면이 노골적인 영화라 많은 장면이 잘려나갈 것이다. 온전하게 한국의 극장에서 <테리파이어2>를 볼 방법은 영화제를 통하는 것밖에 없다. 1970, 80년대의 슬래셔 영화를 리부트하는 감각으로 만들어진 화끈한 호러 영화 <테리파이어 2>를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호러영화에서 ‘캐릭터’는 대단히 중요하다. 살인마의 캐릭터를 잘 잡으면 시리즈가 끝없이 이어진다. < 할로윈 >의 마이클 마이어스, < 나이트메어 >의 프레디. < 13일의 금요일 >의 제이슨, <헬레이저>의 핀헤드 등은 호러 장르의 아이콘이다. 데미안 레온이 창조한 아트 더 클라운도 그들의 뒤를 이을 자격이 충분하다. 아트 더 클라운은 데미안 레온의 첫 번째 단편영화 <9번째 서클>(The 9th Circle, 2008)에 조역으로 등장했고, 단편 <테리파이어>(Terrifier, 2011)에 초자연적 존재로 등장하여 존재감을 드러냈다. 데미안 레온은 두 편의 단편을 활용하여 장편 <올 할로우스 이브>(All Hallow’s Eve, 2013)를 연출한다. 할로윈에 캔디를 받으러 나갔던 아이의 주머니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디오테이프가 들어 있다. 베이비시터는 비디오를 틀었고, 아트 더 클라운이 등장하는 단편영화들을 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 데몬스2 >의 악마가 TV 브라운관을 통해 현실에 나오듯, 클라운이 베이비시터를 바라보고 다가와 브라운관을 두들기다가 현실로 들어온다. 데미안 레온은 <올 할로우스 이브>에서 아트 더 클라운의 가치를 충분히 깨달았고,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장편 <테리파이어>는 오로지 아트 더 클라운을 위한 슬래셔영화다. 할로윈 밤, 광대 코스튬을 입은 남자가 두 여성을 쫓아간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살육한다. 제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살육은 85분의 러닝타임 동안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저예산이기 때문에 장소와 인물의 제한은 필연적이다. 주인공은 몇 번이나 위기에서 도망치면서 아트 더 클라운을 죽이지 않는다. 클라운이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두고 도망치다가, 다시 공격당한다. 80년대 슬래셔 영화의 클리셰를 너무 반복해 사용하는 탓에 약간 지루한 감도 있다. 스토리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테리파이어>의 참신한 고어 장면들과 아트 더 클라운의 섬뜩한 매력은 호러영화 마니아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테리파이어>는 호러의 컬트가 되었다. <테리파이어 2>는 1편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진 데미안 레온이 작정하고 만든 영화다.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2시간 18분에 담았다. 호러 그것도 고어 영화를 2시간 넘게 본다는 것은 마니아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데미안 레온은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창의성이 넘치는 감독이 공식에 충실한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어 성공했을 때, 속편의 기회가 주어지면 자의식이 충만하다 못해 가득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팀 버튼의 < 배트맨2 >(Batman Returns, 1992), 길예르모 델 토로의 < 헬보이2 >(Hellboy 2: The Golden Army, 2008)가 그렇다. <배트맨>과 <헬보이>는 모두 걸작이지만, 철저하게 슈퍼히어로 영화의 공식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전개했다. 그러나 <배트맨2>와 <헬보이2>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경계선을 가볍게 초월해 버린다. <배트맨2>의 히어로는 배트맨이 아니라 캣우먼과 펭귄이고, 추방된 자들의 부활을 다룬다. 크리스토퍼 월킨이 연기한 빌런 맥스 슈렉의 존재는 스리슬쩍 지워진다. <헬보이2>는 길예르모가 애착을 가진 기형의 존재, 신묘한 기계장치, 뒤틀린 신화와 전설 그리고 저주까지 모두 등장하여 헬보이의 모험을 보여주는 판타지다. <테리파이어 2>를 <배트맨2>, <헬보이2>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데미안 레온의 야심만은 인정할 수 있다. <테리파이어 2>는 80년대 하이틴 슬래셔 영화 풍의 오프닝 크레딧으로 시작한다. 주인공도 10대의 남매다. 시에나는 자살한 아버지가 만들었던 검을 든 천사 코스튬으로 할로윈 파티에 가고 싶어한다. 동생 조나단은 아버지가 남긴 엽기적인 그림들이 아트 더 클라운과 관련있다고 믿는다. 1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아트 더 클라운은 어쩐 일인지, 시에나와 조나단 남매에게 집착한다. 친구 앨리와 시에나의 어머니를 죽인 아트 더 클라운은 조나단을 납치한다. 최종적으로 시에나와 아트 더 클라운의 맞대결이 벌어진다. <테리파이어>는 심플한 슬래셔영화였다.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아트 더 클라운도 초자연적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쫓고, 죽이고, 절단하는 장면을 긴장감 넘치게 구성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테리파이어 2>는 <나이트메어>를 연상시킨다. 부활한 아트 더 클라운은 초자연적인 괴물이고, 꿈과 현실을 넘나든다. 시에나와 조나단은 꿈속에서 클라운을 만나고, 깨어나자 현실에서도 상처가 지속된다. 학교의 환상 장면은 확실한 <나이트메어>의 오마쥬다. 그런데 묘하다. 죽음 직전까지 몰린 시에나는 환상적으로 되살아나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클라운과 최종 보스 대결을 벌인다. 영락없는 게임 판타지의 엔딩이고, 검을 든 여전사의 각성이 메인 플롯이 된다. <테리파이어 2>의 초점은 아트 더 클라운보다 시에나에게 맞춰져 있다. <테리파이어 2>는 데미안 레온의 야심이 넘쳐 장르도, 스토리도 마구 넘쳐난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테리파이어 2>가 성공적인 속편이 된 이유는 데미안 레온의 창의적이고 현란한 고어 장면들 때문이다. 시에나의 친구인 앨리의 집에 찾아 간 아트 더 클라운이 그녀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은 아주 길고 자세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테리파이어 2>는 호러영화 마니아에게 기억될 영화로 남는다. 조나단을 찾아 시에나와 함께 테마파크에 간 친구 브룩과 남자친구 제프가 아트 더 클라운에게 공격당하는 장면 역시 아이디어가 넘친다. <테리파이어2>는 데미안 레온의 야심으로 장황하고 호사스러운 속편이 되었지만, 하이틴 슬래셔 호러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 되었다. 공포와 긴장감, 살육 그리고 유머와 에로틱까지 겸비한, 21세기를 대표할 하이틴 슬래셔 영화다.
[테마연재][스티븐 킹, 여름, 영화 #1] 암흑의 탑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트렁크 소설(trunk novel)’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가 생전에 발표하지 않고 묵혀 두었던 원고를 사후에 책으로 펴내는 경우, 또는 작가가 묵혀두었던 원고를 모종의 사유로 출판사가 요청하여 생전에 책으로 펴내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실존 인물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면 대개는 작가의 작품 목록에서 B급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아직 살아서 왕성하게 활동하는(심지어 살아서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이라면 어떨까? 10년 전 기준으로 이미 전 세계에서 3억 부가 넘게 팔린 책들을 써온 작가 스티븐 킹이 무려 33년에 걸쳐 완성한 7부작 판타지 소설이라면? 그가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발표하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책상 앞으로 돌아와 마침내 완성한, 그리하여 일생의 역작이라고 자부하는 대하 판타지 시리즈라면? 그렇다면 뭔가 있지 않을까? 그 질문의 답이 바로 이제부터 소개할 ‘다크 타워 The Dark Tower’ 시리즈다. < 석양의 무법자 >(1965)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의 2부인 「세 개의 문 The Drawing of the Three」에서 스티븐 킹이 밝힌 바에 따르면 다크 타워 시리즈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서사시 「롤랜드 공자 암흑의 탑에 이르다 Childe Roland to the Dark Tower Came」에서 시작됐다. 메인 주립 대학교 영문과 2학년이던 1967년, 킹은 전공 강의에서 그 시를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브라우닝이 쓴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시는 롤랜드라는 주인공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대지를 지나 암흑의 탑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킹은 암울하고 스산한 상징으로 가득한 이 시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은 나머지 주인공 롤랜드의 여정을 언젠가 판타지 소설로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70년, 킹은 우연히 보러 간 영화 한 편에서 주인공 롤랜드의 모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영화는, 하필이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 Per qualche dollaro in piu>(1965)였다. 영화를 채 절반도 보기 전에 킹은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톨킨풍의 원정과 마법을 담은 이야기이되, 배경은 레오네 풍의 터무니없을 만큼 장대한 서부여야만 했다.” 그리고 물론 주인공 롤랜드는 “물 빠진 리바이스 청바지 같은 연청색 눈, 차갑고, 예리하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조준경 같은 폭격수의 눈”을 지닌 클린트 이스트우드여야 했다. 이로써 킹은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다크 타워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는데, 그 목표란 다음과 같다. 1) <석양의 무법자>처럼 장대한 서부의 풍광을 배경으로 2)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총잡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3) 그냥 긴 책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긴 대중소설을 쓴다. 1)과 2)는 그렇다 쳐도 어쩌다가 3) 같은 목표를 세울 마음이 들었냐는 물음에 킹은 시리즈의 ‘여는 글’에서 이렇게 답한다. “그때는 그게 좋은 생각 같았거든요.” 3)은 (다행히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실패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미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5부까지의 분량만 해도 200자 원고지로 15,000 쪽이 넘는 데다, 출간을 기다리는 6부와 7부 및 시리즈의 외전 격에 해당하는 「열쇠 구멍으로 부는 바람 The Wind Through the Keyhole」의 분량을 합치면 무려 8,000쪽이 넘기 때문이다(6부와 7부의 한국어판은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스티븐 킹이 1970년에 타자기로 친 문장 한 줄, 즉 “검은 옷의 남자는 사막을 가로질러 달아났고, 총잡이는 그 뒤를 쫓았다.”에서 시작하여 200자 원고지 24,000매에 이르는 대하 판타지 소설로 완성된 다크 타워 시리즈를 단선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 ‘순서쌍과 좌표’ 단원의 핵심 개념인 엑스축과 와이축을 이용하여 시리즈 전체의 얼개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크 타워 시리즈 다크 타워 시리즈의 줄거리를 뭉뚱그려 요약하면 ‘가상의 세계에 사는 총잡이 롤랜드가 현실 세계의 인물들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여 파티를 구성한 다음, 모든 세계의 중심축인 암흑의 탑을 파괴하려는 크림슨 킹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각각의 인물들이 합류하는 과정을 엑스축이라고 하면, 이 축은 미국 환상 문학의 금자탑인 「오즈의 마법사」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오즈의 마법사」와 반대로 현실 세계의 인물들이 가상 세계의 총잡이에게 납치당하다시피 합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먼저 주인공인 총잡이 롤랜드 디셰인이 어떤 인물인지부터 알아보자. 롤랜드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변질된’ 세계다. 폐허가 된 주유소나 수도 펌프, 모노레일 열차 같은 문명의 이기들이 뜨문뜨문 남아 있기는 하지만, 종이가 금처럼 귀하고 총은 그보다 더욱 귀한 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에서 총을 사용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총잡이는 아서 왕 이야기의 기사와 같은 존재이고 그런 총잡이를 돕는 것은 마법사들의 일이다. 총잡이 가문의 후계자인 롤랜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시국가 길르앗의 군주가 될 운명이었지만, 마법사 마튼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역에 가담하면서 나라를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된다. 그는 마튼이 변신한 인물로 추정되는 ‘검은 옷의 남자’ 월터를 쫓아 광대한 사막과 산맥을 지나 갖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서쪽 바닷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월터와 기나긴 대화를 나눈다(여기까지가 1부 「최후의 총잡이 The Gunslinger」의 내용이다). 독자들은 시리즈의 서장 격인 1부를 읽으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를 연발하다가 2부 「세 개의 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1부의 결말에서 검은 옷의 남자는 타로 카드로 총잡이의 미래를 점치며 ‘뱃사람’과 ‘사로잡힌 남자’, ‘그늘 속의 여인’, ‘죽음’, ‘탑’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준다. 이 카드의 상징들이 바로 총잡이가 앞으로 만날 인연들인 것이다. 2부 첫머리에서 가재 괴물 떼에게 습격당해 총잡이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손 손가락을 두 개나 잃어버린 롤랜드는 바닷가 백사장에 서 있는 수수께끼의 문을 통해 현실 세계로 건너가고, 뉴욕에 사는 에디 딘과 오데타 홈스를 자기 세계로 데려간다. 3부 「황무지 The Waste Lands」에서는 에디와 오데타, 롤랜드가 힘을 합쳐 뉴욕에 사는 소년 제이크를 불러낸다. 롤랜드와 함께 운명 공동체인 ‘카텟’을 결성한 세 사람의 면면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와 함께 위대하고 무서운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는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와 허수아비만큼이나 범상치 않다. 1980년대의 마약 중독자 에디는 형을 인질로 잡은 마피아에게 협박을 당하여 바하마에서 뉴욕까지 헤로인을 운반하는 와중에 비행기에서 롤랜드를 만난다. 1960년대의 오데타는 흑인 민권 운동에 헌신하는 부유한 지식인 여성이지만, 지하철에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한 이후 조현병을 앓으며 ‘데타’라는 난폭한 인격을 숨기고 있다. 1970년대의 제이크는 전형적인 중산층 콩가루 집안의 외아들로 등굣길에 검은 옷의 남자 월터에게 떠밀려 차에 치여 숨을 거두면서 롤랜드의 세계로 건너가는데, 이곳에서 검은 옷의 남자를 쫓으려는 롤랜드의 욕심 때문에 또 한 번 죽음을 맞고(1부) 다시 한번 부활한다(3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동료들은 두뇌와 마음과 용기를 얻고자 마법사가 있는 에메랄드 시를 찾아 노란 벽돌 길을 따라 희망찬 모험에 나서지만, 「다크 타워」에서 롤랜드의 동료들은 자기가 왜 끌려왔는지도 모르는 세계에서 집에 돌아가기 위해 탑을 찾아 ‘빔(beam)의 길’을 따라 무시무시한 모험을 거듭한다(물론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도로시 일행에 강아지 토토가 있었듯이 롤랜드 카텟에는 개와 너구리를 합친 것처럼 생긴 개너구리 ‘오이’가 함께한다. 스티븐 킹 멀티버스 시리즈의 4부 「마법사와 수정 구슬 Wizard and Glass」까지 거울에 비친 「오즈의 마법사」를 엑스축으로 삼아 진행되던 이야기는 5부 「칼라의 늑대들 Wolves of the Calla」에 이르러 또 하나의 축을 따라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이 와이축은 다름 아닌 ‘스티븐 킹 멀티버스(multiverse)’, 즉 킹이 쓴 여러 소설의 시공간과 등장인물들로 구성된 ‘다중 우주’다. 사실 스티븐 킹 멀티버스는 시리즈의 4부 「마법사와 수정 구슬」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폭주 모노레일 블레인을 상대로 수수께끼 대결을 벌여 승리한 롤랜드 카텟은 캔자스주 토피카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킹의 다른 소설 「스탠드」에서 인류를 절멸의 위기에 몰아넣은 슈퍼 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현실 세계의 캔자스였다. 시리즈의 5부 「칼라의 늑대들」에서는 롤랜드 카텟에 새로운 동료가 합류한다. 현실 세계의 미국 뉴욕에서 온 그 동료의 이름은 도널드 캘러핸, 바로 킹의 소설 「살렘스 롯」에서 흡혈귀의 피를 마시고 신앙을 저버린 가톨릭 신부다. 「칼라의 늑대들」의 절반가량은 캘러핸이 살렘스 롯을 떠난 이후 미국 전역을 방랑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우리는 그의 사연을 통해 현실 세계에 수많은 ‘비밀 고속도로’가 있으며 이 길이 여러 다중 우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캘러핸의 뒤를 쫓는 크림슨 킹의 부하들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 등장하는 ‘노란 코트를 입은 사내들’이다(크림슨 킹이라는 존재 자체는 킹이 1994년에 발표한 「불면증」에 처음 등장한다). 「칼라의 늑대들」의 결말 부분에서 캘러핸은 자신이 「살렘스 롯」이라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것을 발견하고 경악하는데, 아직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6부 「수재나의 노래 Song of Susannah」에서는 아예 스티븐 킹 본인이 메인주에 사는 소설가로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메타 픽션의 성격을 띠게 된다. 또한 시리즈의 대단원인 7부 「암흑의 탑 The Dark Tower」에서는 (역시 올해 영화화되어 개봉을 기다리는) 킹의 소설 「그것」에 나오는 ‘거북이’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여 마침내 다중 우주의 비밀이 밝혀진다. < 다크 타워 >(2017)의 이드리스 엘바 이처럼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 전체를 망라하는 판타지 시리즈를 영화계에서 가만둘 리가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오래전부터 다크 타워 시리즈에 눈독을 들였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에 마침내 감독이자 제작자인 J. J. 에이브럼스와 아키바 골즈먼이 영화화 계획을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2008년에 에이브럼스가 손을 뗀다고 발표한 이후 다크 타워 영화화 프로젝트는 한동안 표류했고, 2010년 론 하워드 감독이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다시 추진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하워드 감독은 심지어 영화 3부작과 드라마 2시즌을 함께 제작하여 ‘영화-드라마-영화-드라마-영화’의 순서로 시리즈 전체를 영상화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포부가 너무 야심 찼던 걸까. 이듬해인 2011년에 유니버설 픽처스는 프로젝트를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영화화 판권은 다시 워너브러더스로 넘어갔다. 워너브러더스는 러셀 크로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이듬해인 2012년에 역시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로부터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영화화 프로젝트를 2015년에 소니 픽처스와 MRC가 다시 재개한다고 발표하더니, 이번에는 정말로 영화로 만들고 말았다. 연출은 < 미결처리반 Q > 시리즈의 각본가 출신으로 < 로얄 어페어 >를 연출하여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린 덴마크의 니콜라이 아셀 감독이 맡았고 주인공 롤랜드 역은 이드리스 엘바가, 검은 옷의 남자 역은 매슈 매코너헤이가 맡았다.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해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8월 23일에 <다크 타워: 희망의 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될 예정이다(영화판 한국어 제목의 부제가 암흑의 탑(dark tower)이 아니라 ‘희망의 탑’이 된 까닭은 아마도 흥행을 간절히 바라는 수입사의 희망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모델로 창조한 총잡이 롤랜드 역을 어째서 이드리스 엘바가 맡았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아마도 다음의 한 줄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그때는 1967년이었고 지금은 2017년이므로.” 우여곡절 끝에 영화화되기는 했지만, 이 한 편으로 다크 타워 시리즈의 전모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물론 책을 읽으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번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후속편의 제작 여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3부작 영화와 2시즌 드라마로 예정된 다크 타워 영상화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든 아니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건드리는 모든 대상을 파괴하며 살아온 주인공이 자신과 세계의 운명을 거머쥔 암흑의 탑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여 그 탑의 꼭대기에 무엇이 있을지(또는 없을지) 밝혀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스티븐 킹이 2부 「세 개의 문」의 닫는 글에 적은 한마디를 되뇌며 기다릴 때다. “그리고 탑은 더욱 가까워졌다.”